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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출간한 김용옥씨

 

도올 “한국기독교 ‘부모은중경’ 덕봤다”

‘효경한글역주’ 출간한 김용옥씨

 

도올 김용옥은 최근 유교경전 <효경> 번역서를 출간하면서 현대사회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효(孝)’의 담론을 끌어냈다. 진정한 효는 아래서 위로의 복종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의 무한량한 은혜에 따른 최소한의 갚음이며, 이는 불교경전 <부모은중경>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주 기자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61, 金容沃)을 만났다. 지난 7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통나무출판사에서 만났다. 통나무는 60여권에 달하는 도올의 책이 나온 산실이다. 그는 최근 중국인들이 성서(聖書)로 내세우는 13경 중 가장 먼저 ‘경(經)’이라는 이름이 붙은 <효경(孝經)>을 번역했다. <논어>에 이어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의 두 번째 성과물인 <효경한글역주>다. 책은 유교의 ‘효(孝)’ 담론에만 머물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효와 <부모은중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등을 문헌적 근거에 따른 명징한 논리와 풍부한 식견으로 통쾌하게 풀어냈다. 특히 불교에 대한 오랜 고찰로 이뤄진 도올의 불교관으로 오늘날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는 또 보름 앞으로 다가온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총무원장의 자격론에 관해서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기독교 신념엔 부모은중경적 가치 있다” 주장

 불교 보은사상은 유교 충화된 효와 다른 차원

 

- <효경한글역주>에 관해 소개해 달라.

“<효경한글역주>는 <효경>에 대해서 최고의 정보를 정확하게 모아놓은 것이다. 문화의 진보는 후학들에게 시간을 단축시켜줘야 한다. 따라서 이런 작업을 하면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좋아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요새 출판계 풍조는 진정한 학자들의 활약이 어려운 현실이다. 책은 <효경>이라는 유교경전을 다뤘지만 유교에만 국한시켜 저술하지 않았다. 불교를 비롯한 기독교와 유교를 망라했고 주자학이 훼손한 효의 본원적 의미를 물으면서 효사상의 문명사적 전개를 폈다. 이번 책은 우리나라 경학사상에 굉장히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 주자학이 훼손한 ‘효 사상’은 무엇인가.

“주자는 훌륭한 사상가임에 틀림없지만 자기 사상을 마치 종교의 교주처럼 절대화시켜 자유로운 논의를 막아버린 우를 범했다. 특히 <효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잘못됐다. 그것은 효(孝)를 충(忠)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 오류다. 효와 충은 다르다. 충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감 같은 것이다. 충이라는 것이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다. 효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마음이다. 이것을 국가에 대한 충성, 임금에 대한 충이란 개념으로 비약시켜서 충효사상이라고 묶은 것은 잘못됐다. 효는 자연발생적인 쌍방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효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인간의 도덕은 있을 수 없다. 불교가 협애한 가족주의를 벗어나야 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효를 상당히 강조하는 까닭이다.”

 

 

- 불교가 말하는 효는 어떤 의미인가.

“오늘날 개화된 사람들에게 있어 효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것은 조선왕조가 충효를 너무 강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 때문에 효라는 개념의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웃음) 그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효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성화된 효의 개념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불교의 보은(報恩)사상이다. 보은사상은 밑에서 위로의 복종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의 대자대비한 은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먼저 무한량한 은(恩)이 없으면 보은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의미를 갖고 무한량한 은혜를 논하면 굉장히 불순해진다. <효경>이나 <삼강행실도>나 기타 유교경전을 보면 효의 대상이 모두 아버지로만 되어 있다. 모녀 관계는 언급되지 않고 부자관계, 부녀관계, 부부관계만 언급되어 있다. 특히 <삼강행실도>가 철저히 아버지 중심의 효를 말한 것은, 군(君)은 신(臣)의 벼리(綱)가 된다고 하는 군위신강(君爲臣綱)에 부위자강(父爲子綱)과 부위부강(夫爲婦綱)을 귀속시켜야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정치적이지 않다. 불교는 아주 현명하게도 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효를 이야기했다. 엄마라는 개인의 은혜 뿐만아니라 무수 억겁에 걸친 엄마들의 은혜니까 결국 인간에게 쏟아지는 보편적인 은혜가 된다. 그 은혜에 대해서 이렇게 모든 엄마들이 고생을 해서 오늘 우리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 최소한의 보은이 없겠는가, 그것을 모르면 인간이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좁은 인과적 행동이 아닌 넓고 무량한 자비공덕의 보편적 행동으로 승화될 수 있는 새로운 효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그것이 <부모은중경>이라고 하는 불경의 위대성이다.”

 

 

- <부모은중경>은 어떤 경전인가.

“우리나라의 <부모은중경>은 정조 때에 용주사에서 판각된 용주사판본으로 인해서 아주 보편화됐다. <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정조는 우연한 기회에 장흥 보림사의 보경이라는 스님을 만났는데 그가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을 정조에게 바쳤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용주사 창건 전에 있던 갈양사를 창건한 염거스님이 가지산문 장흥 보림사의 제2대 조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은중경>이야말로 가지산문이 인류사에 제시한 최고의 걸작품이다. 이는 중국의 경전도 인도의 경전도 아닌 가지산문에서 나온 우리나라 토착경전이다.

그렇다면 고려말에 은중경은 왜 성립됐는가. 아마도 조선왕조가 불교를 탄압하면서 새롭고 강력한 세속적 윤리를 가진 유교가 도입되자 불교계에선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생각할 때, <부모은중경>은 가지산문의 탁월한 학승이 성리학의 주요개념인 효에 상응할만한 불교이념을 제시해야만 했던 어떤 역사적 필연성을 이미 여말선초의 격동기에 예감하고 새롭게 한국적 정서를 감안해서 찬술한 한국불교의 한 토착적 대맥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 속에서 우리 불교는 결코 세속적 윤리를 거부한 종교가 아니다. <부모은중경>의 위대한 측면은 <삼강행실도>가 강요하는 복종의 윤리를 하해(河海)와도 같은 자비의 윤리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 책에서 우리나라 기독교도 <부모은중경>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했다.

“구한말 기독교 전파도 실상 <부모은중경>의 덕을 입었다. 함석현 신부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가 ‘효기독론’을 주장하게 되는 배경에도 불교 효가 제시하는 보편적 패러다임이 깔려 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인들의 심리상태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모태신앙’ 운운하면서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교회에 나가는 신념의 배면에는 <부모은중경>적 가치관이 배어 있다. 그들의 기독교는 실제로 ‘은중경기독교’인 것이다. 이 기나긴 효의 역사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우리 민중의 효 가치관은 <삼강행실도>의 효에서, <부모은중경>의 효로, 사복음서의 효로 확대되어 나갔다가, 요즘은 묵시론적 대형교회의 효로 축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오랜 세월 경전과 논서 등을 통해 불교에 관한 깊은 고찰을 해왔다. 쉽게 말해 불교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불교는 우주의 본질을 고루 바라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창밖의 감나무를 보면서)어떻게 보면 저 나무가 서 있는 것도 좀 고통스러워 보인다. 비바람에 버티고 있느라고 얼마나 힘들까.(웃음) 하물며 인간세상이란 것이 다 고통스러운 것이고, 이를 회피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리얼리즘이다. 그 고통의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나의 마음이다. 불교는 나의 마음의 문제에서 고통이 오는 것이고 나의 마음에 집착과 번뇌를 어떻게 벗어버리는가에 대해서 끊임없는 나로 하여금 통찰을 갖게 하는 종교다. 그래서 내가 큰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종교가 불교다. 큰 마음을 갖고 고통스러울 때 그것을 이겨내는데 힘을 준 종교가 불교다.”

 

 

- 그러한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불교가 완수해야 할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불교는 거시적으로 본다면 외부탄압을 감수하더라도 사회문제에 대해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불교가 21세기에 떳떳하게 설 수 있다. 기독교가 오늘 번성한 것은 독재와 투쟁하며 받은 탄압으로 버틴 것이다. 탄압을 받을수록 종교는 위대해지는 측면이 있다. 조선불교가 탄압받았다고 하지만 실제 조선불교는 탄압받은 것도 없다.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등 저렇게 큰 사찰이 보존되는 정도의 탄압은 탄압도 아니다. 그저 스님들을 도성안에 못들어오게 하는 등 승려의 신분을 낮춘 수준이다. 그나마 그런 탄압이 있었기에 조선불교가 순결해졌다. 그래서 청정한 산중불교가 성립됐고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500년 순결한 불교’가 됐다. 그런 면에서 불교는 조선유학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탄압의 시기를 우리 불교는 아름답게 버티어 냈다. (이 대목에서 도올은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에 와서 정의로운 발언을 하지 못하고 탄압받을까 무서워서 망설이고 주춤하면 되겠는가. 환경문제나 에너지문제, 이념의 문제에 있어서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앞장서야 한다. 그만큼 자유로운 사상적 가능성을 내포한 종교가 불교이다.”

 

 

- 불교의 사회적 역할론을 강조했는데, 오는 22일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을 뽑는다. 총무원장은 어떤 분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스님들은 너무나 높은 경지에서 설법을 하신다. 그런 말씀은 사회적으로 긴박한 메시지를 갈구할 때 때로는 한심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또한 종교지도자의 이같은 모습에 젊은이들은 실망한다. 나는 한국불교의 총무원장이라면 정부와 각을 세우라 마라 이런 것을 떠나서, 무슨 일이든 ‘합리적인 담론’을 만들어가야 하는 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수긍할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내야 한다. 한국불교계는 불교가 가진 역량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인 어떤 것으로도 불교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불교는 선불교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회창폐불(會昌廢佛, 842년부터 4년에 걸친 당무종의 불교탄압)이래 지속된 송대의 배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선종이 쇠퇴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한 것은, 대장경의 율장 그러니까 원시불교의 승가계율에 기초한 법규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중국사찰에 맞는 승단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중국식 청규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선불교의 위대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침없이 합리적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 ‘4대강 문제’만 해도 그런 개발사업들이 합리적으로 우리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말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담론이 난무하는 시대에 불교지도자들이 참으로 합리적인 담론을 펼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총무원장 역시 사회를 바라보는 무게와 실력과 냉철한 사고력을 가진 분으로 뽑아주길 바란다. 경지가 높던 덕이 많던 그런 사람 우리는 싫다. 이게 모든 불자들의 바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남북관계나 이념문제에 관해서도 불교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를 진보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북한이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들 빈국을 자꾸만 자기네 교세를 확장하는 방편의 장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인간의 문제로서, 언어를 공유하는 한민족의 문제로서, 다같은 불심을 가진 불자의 입장에서, 남북문제와 이념갈등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가는데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불교의 힘이다. 불교는 그 위대한 역량을 21세기에 유감없는 발휘해야 한다.”

 

 

- 대학시절 생물학으로 시작해 신학, 철학에 이어 최근엔 의학까지 섭렵했다.

“내가 실질적으로 체험하지 않은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내게 그 원칙은 20대에 섰다. 무엇이든지 체험하려고 노력했고 아마추어로 겉도는 것이 제일 싫다. 재즈에 관심있으면 바로 재즈학교에 등록해서 공부한다. 시간낭비 없이 본령으로 바로 진입했고 가급적으로 많은 인간의 세계를 탐색하고자 하는 열망이 청년시절부터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고 보니 어떤가.

“그냥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병원 안가고 살 수 있게 해줘서 좋다.(웃음) 루소의 <에밀>에도 의학의 발전은 인간을 굉장히 비참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건강이나 수명에 도움받은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불교적 수양의 위대성도 여기에 비롯된다.”

 

 

 

 

- 지금까지 쓴 책만도 60여권에 육박한다. 힘들고 지치지 않은가.

“많이 힘들지만 이제 천직으로 된 것이다. 매일 매일 진짜 정진하는 삶이 아니면 집필은 불가능하다. 내가 정진하는 삶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잘 자는 것’이다. 꿈없이 잘자는 것이다. 그게 참 어렵다. 아침에 일어날 때 머리가 말갛게 일어나야만 하루의 집필이 가능하다. 자고 일어난 순간에 해탈에 가까운 인간이 됐구나 안됐구나 항상 느낀다.(웃음)”

 

 

 

하정은 기자

2009-10-09 오전 11:18:02 / 송고
 
 

‘효경’ 주제 야단법석 열린다

10월24일 영암 도갑사서

도올 김용옥은 오는 24일 오후3시 영암 도갑사에서 최근 출간한 <효경한글역주>를 테마로 도갑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야단법석’을 연다.
 
이번 법석은 도갑사 주지 월우스님이 해남 대흥사에서 지낼 때부터 맺었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됐다. 우연이지만 영암은 또다른 인연이 있다. 백제 왕인(王仁)이 <논어> <천자문>과 함께 <효경>을 일본에 전했는데, 민간전승에 따르면 왕인은 전남 영암인으로 월출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한다.
 
이날 ‘야단법석’은 목포 MBC가 생중계할 예정이다. 유교경전으로 사찰에서 법석을 여는 이례적인 자리가 될 전망이다.
 
하정은 기자
2009-10-09 오전 11:33:45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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