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신 : 25일 오후 2시] "정부가 만든 분향소엔 가고싶지 않다"
25일 오전 11시 30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시작과 함께 정부 공식 분향소 2곳이 열렸지만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는 여전히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까지 대한문 앞 도로에 빽빽이 배치됐던 경찰 버스는 약간 헐거워진 상태. 그러나 시청 앞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여전히 경찰버스로 빈틈없이 원천봉쇄 돼 있다.
덕수궁 대한문 양쪽 돌담길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은 여전히 봉쇄 중인 서울광장을 가리키며 "경찰이 고인에 대한 예도 모른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김정화(45)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러 왔는데 이렇게 좁은데 사람들을 가두기보다 넓은 광장을 여는 게 맞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정연희(27)씨는 "정부가 만든 분향소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며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씨는 "자전거도 타시고 농민처럼 평범히 사시고 싶었던 분이 이렇게 가시다니 안타깝다"며 "노 전 대통령은 참으로 서민적인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일부 시민들은 분향소 옆에 마련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서명에 동참한 박아무개(40)씨는 "이명박과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탄핵이 힘들 수 있더라도 이것이라도 해야 노 전 대통령이 편안하게 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인사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들과 비극을 해소할 수 있었음 해 이곳을 찾았다"며 "정부 공식 분향소보단 광장의 상징성이 있는 만큼 시청 앞 광장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재향군인회 표명렬 대표는 "유신 때나 5공 때야 물리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이같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를 통제하는 것은 이 정권이 자기 묘를 스스로 파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표 대표는 이어, "광장이 노래나 부르고 춤추는 곳이 아니다, 광장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냐"며 "정부는 어서 빨리 광장을 열어 국민들의 생각을 분출할 수 있게 해주고 노 전 대통령이 가시는 길에 의미를 되살리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서울광장을 시민 분향소로 즉각 개방하라"
|
▲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까지 가로막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남소연 |
| |
|
▲ 덕수궁 대한문앞(사진 왼쪽 부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넓은 서울광장은 경찰버스로 원봉쇄되어 있다. |
ⓒ 남소연 |
| |
한편,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5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민생민주국민회의는 이날 낮 12시 덕수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모행렬을 가로막는 경찰계엄을 즉각 해제하고 서울광장을 시민 분향소로 즉각 개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대한문 바로 옆에 있는 드넓은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완전히 차단하고 대한문 앞 분향소에 참여하는 시민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결례일 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며 "추모마저 방해당하는 국민들 가슴에 무엇이 쌓이고 맺힐 것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직시하라"고 경고했다.
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촛불정국 때 반성한다고 말한 뒤 시청광장을 틀어막았고 지금도 비통하고 애석하다 말하며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권리를 막고 있다"며 "분노는 이렇게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더 깊이 내재돼 더 큰 폭발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방송법 등 'MB악법'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이명박 정부가 이제 국민들이 흘리는 슬픔의 눈물까지 막고 있다"며 "지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추모행렬을 막는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원인과 국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
▲ 24일 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앞에 국화꽃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 권우성 |
| |
[6신 : 25일 새벽 3시]
서거 이틀째 24일, 10만여 명 조문한 듯... 장례 일정 끝까지 거리 분향소 유지
"공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참 매력적인 사람이잖아요."
이연숙(43)씨는 새벽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 거리 분향소를 지키는 이유를 이렇게 짧고 '쿨'하게 답했다. 비단 이씨만이 아니었다. 24일 덕수궁 앞 거리 분향소를 찾은 많은 사람들 역시 비슷한 심경이었다.
거리 분향소 '상황실'에 따르면 24일 조문에 참여한 사람들은 약 10만여 명에 달한다. 상황실의 한 관계자는 "4만여 명이 다녀간 23일 토요일보다 국화꽃, 검은 리본 등 모든 물품이 3배 이상 더 나갔다"며 "최소한 10만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25일 새벽 2시 현재까지도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시민 500여 명이 남아 있다. 조문 행렬 역시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정치 토론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부는 촛불을 밝힌 채 슬픈 표정으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상황실은 노 전 대통령의 모든 장례 일정이 끝날 때까지 거리 분향소를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