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오체투지 그리고 기껏 사진 |
목요일 오후는 모든 것이 갑자기 뒤엉켜버린 오후였다. 금요일 아침 7시에 오미동 주민들과 함께 한옥테마마을 견학을 하기로 했었다. 물론 나의 임무는 사진이었을 것이다. 밥벌이 관련해서 제법 오랜 시간 지연되었던 피드백이 목요일 오후에 자료와 함께 돌아왔다. 돈은 벌어야 할 것이다. 밥을 먹어야 하니까. 사실은 좀 더 적극적인 기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한 바른 자세일 것이다. 담배 한 대 피는 정도 고민하다가 마을과의 제법 오랜 약속인 관광버스 동승을 포기하기로 했다. 만인에게 ''밥벌이 때문에''란 이유는 항상 가장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아, 돈벌어야제. 다녀올텐께 걱정하들 말어."
그러면 금요일 일정은 정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오마이뉴스를 검색하다가 다른 곳도 아닌 지리산에서, 그것도 지척인 노고단에서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오체투지가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판문점이나 설악산이나 동해안에서 오체투지를 진행했다면 나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지리산이다. 배추에 물을 주면서 이런 저런 일정에 대해 궁리를 했다. 하루가 급한 일들인데 결국 그 중 하나는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정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부음이다. 미술평론가 최열 형의 부친상이다. 가지 않을 수 없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이끼와 통증과 기쁨으로 남아 있는 관계다. 오전에 별세하셨고 토요일 아침이 발인이다. 금, 토... 안된다. 이것은 무조건 ''오늘'' 문상하는 것이 답이란 결론이 났다. 서둘러 밥을 해 먹고 어둠을 달려 광주로 차를 몰았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 버린 세월들이 어두운 섬진강을 따라 흘러갔다. 아홉 시 넘어 광주 목적지에 도착했고 선배님 한 분을 태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과거의 인연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금요일 저녁을 피해 이 밤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바램이었을 뿐. 광주비엔날레가 이 날 프레스오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홍어와 수육을 앞에 둔 몇 년 만의 만남들이 이어졌다. 광주를 출발한 것이 결국 새벽 1시가 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지리산편지를 올린 시간이 새벽 2시 30분 경이었다. 새벽 3시에 편지는 자동발송된다. 그 이후에 올린 편지는 발송되지 못한다. 새벽 3시 넘어 잠을 청했다. 알람을 6:30으로 해 두었다. 노고단 오체투지 현장으로 가기로 했다. 다른 모든 일정은 일단 모르겠다. 그냥 간다. 그것만 정했다. 조문하고 상주들과 인사하는데 큰상주인 형이 우리를 다른 상주들에게 소개했다.
"제 동지들입니다."
알람은 나를 깨우지 못했다. 대략 11시경 취침을 하는 사람이 운전에 늦은 취침에 많은 담배에 무엇보다 답하기 힘든 간만의 안부와 궁금함에 대한 대화들이 6:30이 아닌 8:30 이라는 시간을 보장했다. 새벽의 뉴스 검색에서 오체투지단은 아침 8시에 노고단대피소를 출발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미 늦다. 그래도 간다. 9시 경에 성삼재 주차장에 주차했다. 뛰는 듯 걸어 올라갔다. 무냉기 지나 산장으로 이어지는 지름길 계단으로 내려 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회도로를 따라 내려올 것이란 판단을 했다. 계속 걸었다. 그리고 오체투지를 수행 중인 무리를 만났다.
마지막 뉴스 검색에서 일행은 50여 명이었는데 아침의 오체투지단은 10여인이었다. 조용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모퉁이 길을 돌아 깃발을 든 청년이 보였을 때 카메라를 열었다. 그리고 거의 자동적으로 나 역시 완전히 땅바닥에 배를 깔았다. 이하 오체투지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의 사진은 모두 땅바닥에 나를 맡겼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봤자 내가 한 일은 ''기껏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이제 나의 말은 하지 않겠다. 수경 스님의 말씀과 문규현 신부님의 말씀을 아래 사진에 나누어 편집했다.
수경 스님의 말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땅의 품에 안기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온 숨을 땅에 바치고, 땅이 베풀어 주는 기운으로만 기어서 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오체투지가 온전히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눈으로는 더 넓게 더 멀리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손으로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과 반대로 무릎을 굽히고, 팔꿈치를 꺾고, 머리를 숙여 온 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서 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오체투지가 생명의 바다를 평화로이 떠다니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체투지는 인간다움의 표상인 직립에 반하는 일입니다. 직립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게 했고 인간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만물의 폭군''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언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위협적인 생명체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 속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모순된 생명체''라는 의미도 숨겨져 있습니다.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인간의 걸음에 반하는 오체투지에서 사람의 길을 찾으려 합니다.
사람의 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만물을 지배하는 데서 사람다움을 찾으려 한다면, 인간의 폭력성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인간의 위대성을 인정받으려 한다면 유사 이래 인간이 저지른 무수한 폭력과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생명의 실상을 통찰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도 생명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써 이것이 존재할 수 있는 만유의 실상을 통찰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와 ''공(空)''입니다. 아무 것도 없어서 ''공''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로서의 존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입니다. 나(我)는 ''땅''과 ''물''과 ''태양'' 그리고 바람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와 만물은 ''한 몸''입니다.
사람의 사람다움은 이웃과 자연을 내 몸처럼 여기고 부처님으로 공경하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습니다. 이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옳은 줄 알지만 기꺼이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참회와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오체투지는 참회와 기도입니다. 삭발한 머리와 먹물 옷에서도 자유로워지겠습니다
절집 밥을 축낸 지도 40년이 넘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수행자답게 잘 살았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벌써 ''나이가 벼슬''인 때가 되고 보니 이런저런 대접을 받을 일도 많아졌습니다. 만약 이런 삶을 그냥 수용한다면 수행자로서 나의 삶은 끝입니다. 한 인간으로서도 허망한 삶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체투지의 길을 갑니다. 처절하게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수행자로서 나의 삶을 반조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환계(還戒)''의 심정으로 오체투지를 합니다. 다시 부처님께 계를 바치고 초심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계율로부터 자유로워졌다거나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의미에서 ''환계''가 아닙니다. 진정 계체를 얻을 수 있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삭발한 머리와 먹물 옷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비로소 나는 평화를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가자라 하여 마냥 세상의 시비분별로부터 물러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합니다. 번뇌의 진흙탕이 바로 보살의 정토라고 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는 한 누구도 세상의 선악 시비 분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함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조사님들이 일깨워 주신바 번뇌가 보리인 이치를 체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알게 모르게 ''번뇌가 보리''라는 가르침을 치열하지 못한 삶의 변명으로 삼으며 조사님들을 욕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체투지의 길을 나섭니다.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 대지의 품에 온 몸과 마음을 던지고 또 던져 번뇌의 한가운데서 평화로워질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찾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사에 시름 겨워하고 있습니다. 나의 오체투지가 이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나의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할 따름입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사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로 서는 계기가 되어서 내가 변한 만큼이라도 세상이 변화고 나와 인연이 닿는 생명들과 선한 기운을 나누게 하는 평화의 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겹고 외로운 누군가가, 땅바닥에 엎드려 자신과 같이 어깨를 들썩이는 걸 알고 작은 위안이라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의 사정이 어지럽습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니 몸이 고달파지고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니 인간적 자존감이 상처를 받습니다.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 방식이 민주주의와 생태, 인권의 위기는 물론 종교 간 대립까지 부추겨 국민 통합을 해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위기 국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더 큰 위기가 위기를 덮어버리는 식으로 위기를 넘겨온 것입니다. 어쩌면 위기를 위기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인식의 부재가 더 큰 위기인지도 모릅니다. 타성적인 위기 인식으로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길이 무엇인지를 다 압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알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입니다.
대통령답게, 기업가답게, 국회의원답게, 공무원으로서 공복답게, 공권력으로서 경찰답게, 종교인으로서 신부는 신부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수행자로서 스님네들은 스님답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직분답게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잘 알 것입니다. 다만 아는 대로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오체투지를 합니다. 나의 오체투지가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보고 만물동체라는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의 길을 한 뼘이라도 넓히는 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평화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신 사람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불기 2552년 9월 2일 만 생명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수경 합장
문규현 신부님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길을 떠나며
다시 순례길을 떠납니다.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입니다. 이 둘이 오체투지, 온 몸을 땅에 내리고 보듬으며 갑니다. 가늠도 안 되게 고되고 하염없이 느린 길을 기꺼이 갑니다. 허나 우리의 고행이 도리어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순례가 위로의 길, 용기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여정이 민족의 길, 화해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과 삶, 공동체와 사회에 존엄과 존중심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사랑과 자비, 공존과 평화, 정의를 행하고 이루려는 선한 마음들이 더욱 힘내길 기도합니다. 낙심과 냉소, 쉽게 얻고 누리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애쓰고 헌신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는 가운데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양심과 인간애, 진실과 진리에 목말라하는 자세를 굳건히 지켜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체투지, 이 여정은 특히 손에 가슴에 생활 속에 촛불을 피어올린 청소년들과 수많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수난과 상처, 모욕과 폭력, 수배와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이 순간에도 묵묵히 진리의 길을 가는 그 모든 고결한 정신에 드리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촛불이 밝히는 것은 생명의 귀함과 꿈이 있는 미래입니다. 자존과 품위이고, 신뢰와 진정성입니다. 주권과 민주주의입니다.
그 아름다운 불빛들에게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지, 더불어 무엇을 해야 할지 수없이 고뇌하고 기도했습니다. 하여 이제 아주 단순하고 응집된 표현으로 이 길을 갑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향해 절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하고 진정한 마음들, 그 착하고 여린 마음들을 품고 기억하며 이 길을 갑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생명력 있고 희망이 있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가겠노라는 맹세의 길을 갑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용기의 원천입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행태에 오체투지로 항의하고 저항합니다. 저들이 숭배하는 경쟁과 실용으로 보자면 극단적으로 바보스럽고 누추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돈과 일등놀이에 몰두하는 사회에는 결코 희망이 없음을, 성공지상주의와 이기심이 뒤덮은 사회는 죽은 공동체임을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몸짓으로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천지간에 불통이고 사방이 ''명박산성''입니다. 정권 스스로 무법탈법이요, 공권력을 앞세우지 않고선 그 무슨 일도 행하질 못하는 지경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20년 전 30년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더 추해지고 초라해질 자멸의 길을 그만 가길 기도합니다. 정녕 종교인이라면 진정한 참회와 속죄의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한 정치, 신독재와 신공안정국·신냉전주의·신종교전쟁으로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경기부양을 앞세워 대운하를 재론하고 부동산투기판을 재연합니다. 핵발전소 증설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 위장합니다. 21세기를 살며 22세기를 준비하는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고작 20세기에 잡아두려는 천박한 발상입니다. 나라의 조화와 균형, 지속가능한 발전을 파괴하는 행태에 반드시 냉정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촛불은 조용히 불씨요 홀씨가 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들불이 되고 횃불이 될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섭니다(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
남과 북 사이조차 단절과 분단심리가 견고해지는 오늘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우려스럽습니다. 현 정권은 아예 민족통일이나 평화 문제엔 관심 없는 듯합니다. ''국지전 가능성'' 같은 용어조차 쉽게 입에 올리며 적대감과 긴장을 격화시킬 뿐입니다. 애절한 아우성은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습니다. 남과 북은 공존과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함께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산맥과 강 길에는 단절이 없고 벽이 없습니다.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온 민족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온 산하를 따라가며 남북 사이에 소통과 화해의 길이 열리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참된 변화와 희망의 바람은 우리 자신에게서 불어옵니다. 우리 현실을 짓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우리 자신의 태만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왜곡된 형상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내면과 생활을 바꿔갈 때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 감사와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서로에게 빛이 되고 거친 바람 막는 병풍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믿음과 희망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인내와 끈기로 영혼을 단련시키십시오. 각자의 자리와 모양새는 다르나 영혼을 나누고 마음으로 연대하며, 더불어 즐겁게 진리를 구하는 순례의 길을 함께 갑시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요한 8,32).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제 몸과 마음은 1976년 사제수품을 받던 그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바닥에 온 몸을 엎드리곤 가장 겸손한 태도로, 모든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처럼 이웃과 세상을 섬기겠노라 다짐하던 그 때입니다. 이제 사제수품 32년을 훌쩍 넘어 황혼길에 든 이 시간, 다시금 더 비우고 더 버리고 더 낮춥니다. 첫 마음에 저를 세웁니다.
2008년 9월 2일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 문규현 신부 드림
* 나는 90분 정도 ''기껏 사진이나 찍었을 뿐''이다. 수경 스님은 정말 많이 힘들어 보였다. 토요일에 여유가 있다면 다른 정보를 추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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