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 |
-범불교도 대회에 참가하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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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7일 수요일 오후 2시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늦여름의 태양이 작열하였습니다. 이미 시청 앞 광장은 군중들?운집한 가운데 스님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절박한 현실을 고발하면서 이 정권의 사과와 납득할 만한 후속조치를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빈자리를 찾느라 광장 주변을 에둘러 빙빙 돌아다니다 뜻밖에 행사장 밖의 이 시대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산 넘어 산, 그 너머 또 산”
한국불교가 싸워야 할 대상은 이렇게나 많았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입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대충 눈을 감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지내온 결과입니다. 한국불교는 누구와, 무엇과 싸워야 할까요?
첫째, 한국불교는 일부 비뚤어진 개신교와 싸워야 합니다. 종교는 자기들이 신봉하는 가르침이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 종교가 최고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들이 한국의 좁은 땅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믿음과 정반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지내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 종교의 진리성을 양보할 수는 없지만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일부 개신교는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불교는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둘째, 한국불교는 이 정권과 싸워야 합니다. 지금의 대통령이 불교 아닌 종교를 가졌다하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종교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타종교를 교묘하게 조롱하고 말살시키려는 공직자의 행태를 낱낱이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공직자는 공명정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부 공직자는 천박할 정도로 자기 종교색을 드러냅니다. 그런 자들은 옷을 벗으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셋째, 한국불교는 ‘불교계는 다른 사회문제에는 눈 감고 있다가 꼭 자기 밥그릇 빼앗길 것 같은 문제에만 저렇게 난리다’라는 사회의 비난과 싸워야 합니다. 그들을 설득하려면 종교편향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고 있는 나라의 사례들을 연구해서 이 정권에 자꾸 들이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교편향 행위가 사람들 개개인의 인성과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넷째, 한국불교는 ‘산중불교’와 싸워야 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종교와 종교인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교가 이 현실에 과연 필요하기나 하냐며 시청 앞 집회에 기가 막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세간을 초탈한 분이라지만 매일 아침 탁발을 하러 마을을 돌아다니셨습니다. 부처님을 따라 출가한 스님들도 매일 사람들의 대문 앞에 서서 밥을 빌면서 세속인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불교는 이러한 모습이었는데 ‘산중불교’ ‘산중노승’이라는 말이 왜 21세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입니까?
다섯째, 한국불교는 냉소주의나 패배감과 싸워야 합니다. 오늘 시청 앞 범불교도 대회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승속을 막론한 많은 불교계 지도층 인사와 신도들을 만났습니다. 허리 굽은 할머니 신자들은 스님의 말 한 마디에 그 뙤약볕에 몇 시간을 자리 지키며 앉아 있는데 일부 불자들 중에는 ‘어차피 모든 것이 정치야!’라거나, ‘아무리 해봐라. 고쳐지는가’라며 냉소를 띄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 때문에 오늘의 한국불교가 제 할 일을 못하고 제 위상을 깎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들과 싸워야 합니다. 불교는 생명을 존중합니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줄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생활 속에서 몸으로 입증해 보이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탐욕을 미워합니다. 탐욕이란 제 밥그릇만 챙기는 행위입니다. 불교는 보시를 존중합니다. 보시는 ‘주는 것’입니다. 이다음에 형편이 나아질 때 예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것을 뚝 떼어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보시’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혹시 우리 불교계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없습니까? 시청 앞에서의 불교계 외침이 저 청와대에서부터 사찰이 무너져라 기도를 올리는 예배당까지, 그리고 아예 무관심하거나 냉소를 짓는 사람들 가슴속까지 메아리치려면 한국불교는 가장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들을 밀어내야 합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스님들과 신자들을 보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여법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상투적인 형용사는 의미 없습니다. 처절하고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비폭력과 자비를 남발한 결과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단발성의 이벤트가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에 현실적으로 맞서는 불국토 건립의 첫 출발입니다. 현실을 외면하면 제 가치를 발하기도 전에 인간사회에서 퇴출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한국불교계가 비뚤어진 세상을 향하여 정법의 사자후를 제대로 토해낼 바로 그 시작점에 우리는 서있습니다.
2008년 8월27일 뙤약볕이 내리쬐는 광장에서 나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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