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기불교

위빠사나 수행의 정신 치료적 유용성

지상강좌|정신과 의사가 경험한 위빠사나 수행
위빠사나 수행의 정신 치료적 유용성

강사│전현수(신경정신과 의사)





* 이 글은 2006년 10월 11일, 대한불교진흥원(이사장 홍승희)에서 실시한 불교사상강좌의 내용을 편집부에서 녹취, 정리한 것이다.



생각은 그냥 일어나는 것

저는 정신과 의사이며 정신 치료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한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것입니다.
1985년도 봄에 당시 동국대 교수로 계시던 고익진 선생님을 만나 처음으로 불교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후 고익진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수행이 잘 안 되던 차에 우 빤디따 스님이 쓴 『바로 이번 생』이란 책을 선물 받아 읽은 후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몸과 마음을 그냥 관찰해서 무슨 오묘한 불법을 깨닫겠나 싶어 위빠사나 수행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죠. 그런데 그 책을 읽고 이게 경전에 입각한 대단한 수행법이구나, 생각하고 그 수행을 해 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3년 당시 수행構?오신 분들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잘하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미얀마로 가라더군요. 어렵게 한 달 가량 출가를 할 수 있게 되어 미얀마 참매 센터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제가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제일 크게 변화된 것은 싫고 귀찮은 일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시간 날 때 좌선을 하면서 그 시간만 수행 시간이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했죠. 그런데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관찰해 보니 일상생활이 전부 다 좌선과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그러면 진공청소기가 돌아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그 순간이 바로 수행 시간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도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 되니까 재미없고 귀찮고, 그런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전환되면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식사 준비를 할 때도 ‘나는 팔자가 나빠서 뒷바라지나 하고 밥이나 하고……’ 이런 생각을 안 하겠죠.
제 경험으로 제가 처음에 제일 신기하게 여긴 것은 좌선이었습니다. 고요한 상태에서 배에 집중하다 보니 생각이 탁, 들어요. 그런 걸 잘 들여다보니 생각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고 내가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이란 누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떠오르는 겁니다. 어제나 몇 시간 전이나 가까운 일들, 어떤 때는 고민…… 내 속에는 거대한 생각의 탱크가 있어 들어간 것이 올라온다고 보면 됩니다. 떠오르는데, 결국은 들어간 것이 올라오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넣지 말아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내 생각을 잘 보호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우리 환자가 환자 된 이유 알겠더군요.
정신병은 대부분 고립 상태에서 생깁니다. 남하고 전혀 소통이 없는 가운데 자기 생각에 빠져 드는데 어떤 사람은 한 일 년 정도 자기 생각 속에 빠져요. 그러고 나면 그 생각이 자기 안에 꽉 차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건 무척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몸과 마음은 내 것이 아니야

만약 여러분도 걱정이 있다면 그것을 놓으셔야 돼요. 제가 환자 분들께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특히 사랑에 실패한 분들, 또는 사업에 실패한 분들을 보면 그것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실패했다’라고. 그러나 그건 정리가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점점 그 생각에 빠져 들 수밖에요. 아까 말씀 드렸 듯,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몸이란 것은 마음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움직이지만, 몸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의도, 이런 것도 그 순간에 그냥 떠오르는 겁니다. 몸과 마음의 현상이 있고, 몸과 마음의 본질대로 움직여 가는 겁니다. 그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내가 지금 괴로워요, 화가 나요. 이것은 내 정신이 있는데, 거기에 괴로움이란 현상이 일어난 거예요. 내가 지금 화난 게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훨씬 달라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은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이 수행이 철저히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현재에 집중하기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경험해야 할 중요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모든 것은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괴로운 것은 일어났다가도 사라지니까요. 즐거운 것이 일어나도 사실 너무 기뻐할 것은 없는 겁니다. 두 번째는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된 존재인데 몸이 있고 마음이 있는 한은 그것들이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몸을 가진 한, 몸으로 일어나는 괴로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나 정신을 가진 한은 정신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괴로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실용적인 수행입니다. 그걸 알면 사실 죽음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죽음을 해결하는 데는 몇 가지 길이 있는데,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알게 되면 죽음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현재에 집중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실용적인 깨달음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얀마에는 모기가 무척 많습니다. 그 탓에 모기에 자주 물리는데, 그때 처음으로 모기가 물기 위해 팔에 내려앉고, 피를 다 빨아먹고 날아갈 때까지를 관찰해 봤습니다. 미얀마 모기가 팔에 처음에 탁 내려앉아 조금 있으면 가렵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가려움의 정도가 상상 이상으로 심해요. 하지만 그 가려운 것이 어떤 정점에 다다르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도 가렵지 않습니다. 그걸 계속 관찰하면서 특이한 걸 느꼈는데, 보통 때의 가려움과 달리 수행, 즉 관찰할 때의 가려운 정도는 줄어듭니다. 견딜 만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즉 가려운 걸 관찰해 보니 정도가 줄고 나중엔 그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다 보니 가려운 정도가 사라진다는 걸 이미 아니까 견딜 만한 겁니다. 처음엔 신기했는데.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통증 클리닉의 의사에게 이 얘기를 들려줘서 통증 있는 사람들도 도움을 받도록 해야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고통은 없어지는 것

두 번째 관찰로, 이번엔 신체적인 통증을 관찰하게 됐습니다. 제가 발톱 무좀이 심한데, 손질을 할 때 심한 경우 살을 어떻게 좀 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것이 위빠사나 수행 전에는 무척 괴로웠어요. 역시 위빠사나 수행하는 중 아플 때 가만히 지켜보니, 모기 관찰 때처럼 그 통증이 줄어드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통증이 결국은 사라진다는 것, 하나 더 덧붙이자면 시술하는 사람이 눈으로 보니까 내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더해진 거지요. 그 뒤로 저는 통증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만의 경험은 아니에요. 여러분도 한번 해 보세요. 그것이 두 번째 신체적 고통의 관찰입니다.
세 번째 관찰한 것이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마음의 동요가 있지 않습니까. 정신적인 고통이 있을 때 신체적인 고통이 있을 때처럼 가만히 느껴 봤어요. 느껴 보니까 정신적인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과는 비교가 안 돼요. 그냥 싹 없어지더라고요. 제 경험으로는, 산에 먹구름이 끼었다가 뭐가 비치니까 싹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 위빠사나 수행이 정신적 경험에 대해서 훨씬 강하구나’ 해서 마음이 불편하면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면 다시 고요한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말씀하신 것 같아요. 인간은 고통 속에 놓인 존재라고. 그리고 고통은 원인이 있으며 없어지는 것이 가능하다고요. 그 없어지는 방법이 사성제거든요. 물론 완벽하지는 않겠죠. 그러나 살아가기에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는 것을 세 가지를 통해 경험했습니다.


감각의 문을 잘 단속하라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집중력이 강해집니다.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 전에는, 사람이 죽은 뒤에 어떻게 되나 하는 의문들이 있었는데 위빠사나 수행을 한 후에는 그런 의문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냥 원인에 따라서 무조건, 그 결과대로 가는 거예요. 수행을 철저히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모든 것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받아들이고, 또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삼매에서 어느 정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는 들숨날숨을 관찰하고 아침에 눈 뜰 때는 눈 뜨는 것을 느끼면서 그 상태를 유지합니다. 나중에는 어떤 걸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할 때 순수하게 그것만 있는 것과 그때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난 것을 잘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번뇌를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보는 데서 무엇인가가 올라오면 올라온 걸 알고 피하고 놓을 수 있거든요. 번뇌가 일어나는 걸 조기에 단속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서 처음에는 예상 못했던 일을 경험한 것이지요.
오개(五蓋)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다섯 가지 덮개인 감각적 욕망, 악의, 게으름과 혼침, 들뜸과 회한, 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오개가 싹 없어지면 선정에 드는 겁니다. 선정에 들어서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경험하고 사선의 집중된 힘으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여덟 가지 지혜를 숙명통을 포함해서 무진통까지. 그중에서 감각의 문을 잘 단속하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함이 물밀 듯이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감각의 문을 잘 단속해서, 눈으로 보되 전체적인 것도 취하지 말고 보는 대상의 세세한 것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것을 실천하는 길은, 우리가 무엇을 볼 때 백 퍼센트 집중해서 보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됩니다.


순간순간에 살면 영원히 사는 것

죽음에 대한 문제만 말씀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죽음을 해결하는 길은 두 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는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하고 항상 실천하면, 내 것이 아닌 것이 없어지는 걸 신경 쓰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현재에 계속해서 집중하면 사실 죽음이 없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에 계속 집중하고 순간순간에 살면 죽음은 없는 겁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마음은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몸은 마음을 따라갑니다. 마음이 사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통해 마음을 자세히 보시면 마음은 언제나 어느 대상에 가 있습니다. 절대로 가만히 있는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불건전한 대상은 과거와 미래예요. 지나간 것이거나 앞으로 올 것입니다. 과거는 우리로 하여금 화나게 만들거나 아쉬움을 줘요. 미래는 자세히 보면 불안하게 만듭니다. 혹은 들뜨게 만듭니다. 건전한 대상은 현재입니다. 수행은 전부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있는 한 불건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줍니다. 그리고 현재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숲 속에 사는 수행자는 하루에 한 끼만 먹고도 어쩌면 얼굴이 그렇게 깨끗하냐는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지나간 것에 애태우지 않고 앞으로 올 것 바라지 않고 현재에 잘 머물기 때문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수행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불교는 번뇌를 보리(菩提)로 만드는 전환의 종교입니다.






전현수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의대 대학원에서 신경정신과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정신과 전문의로 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순천향의대 신경정신과 외래교수, 한국정신치료학회 정회원, 불교상담개발원 자문위원, 대원불교대학 불교상담 심리치료학과 강사, 불교와 정신치료 연구회의 회원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대의학의 치료 방법에 불교 명상 프로그램을 접목시킨 ‘명상과 자기 치유 8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대인들의 마음 치유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에 『울고 싶을 때 울어라』가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