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와 길상사
서울의 한복판, 불교의 중심이라 불리는 조계사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불교의 상징이자 종단 운영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 사찰에 다시 세워진 칠성각은 불자들에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전통의 복원을 표방하며 새롭게 조성된 칠성각은, 정작 불교 내부의 토론 없이 조용히 강행되었다. 이것은 조계사 주지가 단독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조계사는 한국불교의 대표성을 띠는 공간이고, 수많은 국내외 방문객들이 불교를 처음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징적 공간에서 무엇을 새롭게 조성할때는 승가의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칠성신앙은 오랜 민간신앙과 불교가 교차해온 상징이긴 하지만, 그것이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니다. 그러하기에 불교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한 성철스님등은 "산신·칠성은 불교가 아니다."라며 칠성각, 산신각을 사찰에서 몰아내야한다고 주장 했었다. 오늘날 다시 불교의 중심인 조계사에서 칠성각을 복원한다면, 최소한 조계종 내부에서 폭넓은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있어야 했다.조계사 주지 원명 스님은 “무속신앙의 대표 존재는 북두칠성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관 밑에 칠성판을 깔았고, 태어나기 전에는 칠성으로 있다가 환지본처한다고 했다. 불교가 칠성 신앙을 수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칠성각 불사를 했다"고 말했다. 조계사에 칠성각을 조성한 것은 민족 전통신앙을 보듬자는 의미라는 것인데, 사찰이 부처님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는곳인가 아니면 민족전통신앙을 보존하는 곳인가? 불교가 전파될 때 칠성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그당시 민중의 정서를 반영하기 위한 '울며 겨자 먹기식'의 선택이었지 결코 자랑스런 불교역사는 아니었다.
주계사 주지는 “세계와 교류하는 신앙이 되고자 칠성각 아래에 불교 국가들의 국기를 그려 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이 불교국가인지 의심이들고 또한 서까래 갯수의 한계때문에 많은 나라의 국기들이 의도치 않게 배제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배제된 국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라가 배제된 합당한 이유를 설명을 할 수 없다. 화합과 희망의 불사가아니라 과거로 퇴행하는 불사,불란의 원인이될 불사를 한 셈이다.한 개인의 얕은 생각때문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공간을 이렇게 혼잡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불교는 본래 사유와 대화의 종교다. 부처님 당대의 승가 전통은 공동체내에서 토론, 공론화, 합의를 중시했다. 그런데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 승가대중과의 대화 없이 칠성각을 건립했다는 것, 그 자체가 한국불교가 처한 단절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와 대조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다. 요정에서 사찰로 변모한 길상사에는 한 여인의 형상이 서 있다. 성모 마리아를 닮은 얼굴, 관세음보살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 조각상은 화합과 창조의 정신에서 출발했다. 법정 스님이 가톨릭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들어진 이 관세음보살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왼손에 정병을 든 채, 고요한 미소로 세상의 고통을 품어주는 형상이다. 이 형상 앞에서는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다. 이 조각에는 자비와 사랑, 치유와 화합이라는 보편 윤리가 녹아 있다.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은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두 종교 지도자의 서로를 향한 존중과 사랑의 기억을 담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며 각자의 종교 위에 사랑의 가교를 놓았던 분들이다.
칠성각 불사는 신자들에게 기도할 대상을 하나 더 제공했을 수는 있겠지만, 지혜와 자비의 종교가 감당해야 할 시대의 역활을 외면하였다.2025년 조계사는 왜 한국불교를 상징하는 공간에 비불교적인 전각을 세웠는가? 부처님의 생애를 자세히 알리거나 불교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리는 조형물을 세울수는 없었는가?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것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까. 지금 조계사에 필요한 것은 칠성님앞에 수명장수를 기도하는 기복신앙이 아니라,불교의 보편적 가치인 지혜와 자비를 나누는 불사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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