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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어떤 등을 달까?

 

202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오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을 석가 탄신일로 부르다가 2017부처님 오신날로 변경되었다. '석가'라는 단어가 부처님의 종족 이름이지 부처님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불자들은 사찰에 연등을 단다. 왜 언제부터 연등을 달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기름등을 켰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승원을 밝히는 목적이었다. 그런 연유로 연등회(燃燈會)는 연꽃 연(蓮)자를 사용하지 않고 태울연(燃)자를 써서 연등회(燃燈會)라고 하는 것이 공식명칭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 등불은 양초 등불로 대체되고 요즈음에는 전기나 태양광으로 연등을 밝힌다부처님 오신 날에는 불자들이 등을 켜는 모범으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이야기가 회자된다. 부처님이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무는 기원정사에 기름 등불을 밝혔다. 이것을 본 가난한 여인 난타(難陀)는 자신도 등불을 켜고 싶어서 하루종일 구걸하여 얻은 쌀을 팔아서 기름을 구했. 부처님 앞에 등불을 켜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름집 주인은 그녀를 어여삐 여겨 지불한 돈보다 기름을 더 주었다. 가난한 여인은 등불을 켜면서 이 공덕으로 부처님처럼 공덕과 지혜를 얻어지이다라고 기도하였다. 다음 날, 다른 모든 등불은 꺼졌는데 오직 난타여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目連)존자가 그 등불을 끄려고 노력하였으나, 목련존자의 신통력으로도 끌 수가 없었다. 부처님은 목련존자에게 너는 신통력으로도 이 등불을 끌 수가 없느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등불을 켠 가난한 여인의 무량한 공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후로 연등회(燃燈會)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이제 연등회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이자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문화 상품이다. 연등의 크기나 모양이 다르기에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있다. 가격을 책정하지 않고 성의껏 다세요라고 말하면, 불자들은 정성껏 달라는 말이 더 부담 된다고말한다. 어쩔 수 없이 연등 가격을 책정하고 있지만 가격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은 보기에 불편하다. 사찰에서 불자들을 경쟁시키는 것처럼 보이고, 연등을 켜는 불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만심이나 재력을 뽐내는 것처럼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올해의 부처님 오신날은 특별하다. 작년 12.3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어 올해 44일 대통령이 파면되기까지 국가가 몹시 혼란스러웠다. 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국회로 달려가서 무장군인과 탱크를 막은 용감한 시민들, 계엄현장에 투입되었으나 소극적으로 임무수행을 한 군인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령을 해제하기 위하여 국회로 달려간 국회의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올해는 그들을 위해서 연등을 달고자 한다. 불자님들도 올해는 민주공화국 회복의 연등, 민주주의를 지켜낸 용감한 시민들을 위하여 감사의 연등을 달았으면 좋겠다.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K-민주주의가 더욱 번영하고 k-문화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연등을 달면 좋겠다. 이번 계엄정국에서 청년들이 자신이 아끼는 응원봉을 들고나와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뭉클하였다. 은박지를 온 몸에 감고 아스팔트에 앉아서 눈보라를 맞고 있는 국민을 보면서 나도 멀리서나마 응원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SNS에 발언을 하면, 그때 출가 수행자는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불자들이 있었다그러나 종교이든 정치이든 모두 사람의 일이다. 어느 종교를 갖고 있던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과 종교인을 나누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불교에서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면 정치는 관계와 제도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을 말하고 있듯이 불교도 관계와 제도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종교든 정치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나라를 개국한 단군왕검이 건국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천명한 것이나, 사람들의 괴로움을 여의고 행복하게 한다(離苦得樂)는 불교의 목적은 같은 내용이다.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자유 추구권과 행복 추구권이 있듯이 불교에서도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스님들은 매일 아침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고나서 비는 순조롭게 내리고 바람은 순조롭게 불어서 국민들이 안락하고 편안하여지이다(雨順風調民安樂)라고 축원한다. 어느 때는 남북통일 속히 성취되고(南北統一 速成就)  세계는 영원토록 평화로워지이다( 世界平和於無窮)라고 축원하기도한다. 승려가 정치 참여를 해서는 안된다는 이들에게 묻고싶다. 이렇게 스님들이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국민의 편안을 축원하는 것이 정치참여인가? 

 

붓다는 당시에는 왕조정치였기에 출가자들이 정치에 참여 할 일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의 민주공화국에서는 출가자들도 헌법에서 요구하는 교육의 의무, 국민의 의무, 국방의 의무, 선거권등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고있다. 종교인도 재산세, 취득세, 전기세등 각종 세금을 내고 있다.출가자도 대한민국에 사는 개인은 국민이며, 시민이며, 때로는 예술가, 학자, 공무원, 교사,학생, 노동자이다. 종교인이니까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말은 여러 이름중에서 하나의 이름만 가지라고 말하는 것인데 우리의 삶은 그렇게 분리되지 않는다. 또한 승가는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공동체이다. 승려는 승가안에서 대중의 공의(公儀)를 모으는 민주적인 생활태도를 익혀왔다. 더구나 대승불교는 10가지 바라밀을 제시하며 중생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의 괴로움을 덜어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으로 임진왜란때 출가자들이 무기를 들고 나서서 왜군을 물리치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는등 호국불교의 전통을 가지게 된 것이다. 베트남 승려들은 식민통치에 분신하는 것으로 저항하였고, 미얀마에서도 승려들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혁명에 동참하였고, 티벳 승려들은 티벳의 독립을 위하여 지금도 분신으로 저항하고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0조에도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되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특정 종교권력자종교집단이고, 정치는 특정 정치권력자정치집단이다. 인간의 행위를 종교와 정치적 행위로 정확하게 분리할 수 없음에도 헌법에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종교권력자와 정치권력자가 결탁하여 공동체에 나쁜 짓을 저질러온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종교권력자와 정치권력자가 결탁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나 정치인이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경고하는 표현이다. 이번 12.3 계엄으로 하루 아침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가 될 뻔하였다. 거짓 말을 밥먹듯이 하고 상대방을 배려 할 줄 모르는 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분들이 있다면 깊이 위우치는 참회의 연등도 달아야한다. 우리 각자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잘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자유와 행복이 시작된다. 악한 자를 옹호하는 기사를 쓰는 언론, 특정인을 위해서 선택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검찰, 이들을 철저히 단죄하지 않고서는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지속되기 어렵다.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는거에서 우리의 자유와 행복이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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