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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장자(長子)종단이라는 오해

장자(長子)종단이라는 오해

 

대한불교조계종을 흔히 한국불교의 장자(長子)종단이라고 부른다. 타종단에서 조계종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종단 소속 스님들과 불자들이 하는 말이다. 조계종이 장자종단이라면 태고종, 천태종, 관음종, 법화종, 진각종등과 형제 종단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다른 종단을 조계종과 같은 승단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종단의 승려들을 같은 도반(道伴)이라고 인정하는 말이다. 세속에서는 혈연(血緣)으로 맺어진 자식들을 형제라고 부르지만, 출가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의 규칙을 수지(受持)하고 실천해야 형제 즉, 도반(道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대한불교조계종 종헌 제91항에는 "승려는 독신자라야 한다."라고 명시되어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종단(승단)이라면 율장에 맞게 독신자 종단임을 내걸어야 한다. 하지만 태고종 홈페이지(http://www.taego.org/)의 안내에서 태고종의 종지종풍란에는 독신 규정을 지우고 다음과 같이 승려의 결혼을 허락하고 있다.

 

"태고종은 자기 수행만을 위주로 하는 은둔적이고 폐쇄적인 소승적 태도를 지양하고 사회속에 뛰어들어 직접 중생들과 고통을 나누며 중생구원의 보살불교를 실천하는 '대승교화종단'으로 취처와 가족생활을 인정하는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충남의 어느 태고종 사찰에서는 위 글에서 대승교화종단이다라는 문장에서 그치고 취처와 가족생활을 인정하는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삭제한 체로 자신의 사찰을 소개하고 있다. 그 부분이 떳떳하지 못하고 자랑스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만드신 율장의 비구 계목, 비구니 계목으로 포살하지 못하는 태고종, 개인재산을 인정하는 태고종은 정확한 의미에서 승가가 아니다. 태고종 스님과 조계종 스님을 같은 자리에서 포살과 자자를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계율의 차이 때문에 같은 자리에서 포살과 자자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태고종을 형제(兄弟)로 인정하고 차자(次子)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태고종은 승려가 결혼하고 가족생활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도리어 독신 승단을 은둔적이고 폐쇄적인 소승적 종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승려가 결혼하는 것이 대승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면 태고종은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종헌, 종지종풍에 넣어서 자주자주 알리고 승려의 부인들에게도 승단의 주요 직책을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조계사에서 개최된 전국승려대회에는 태고종등 결혼하는 종파의 승려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하나의 율장을 가지고 같이 포살과 자자를 행하지 못하는 승려들의 모임은 '승려대회'라고 부를 수 없다. '불자대회'라고 불러야한다. 조계종단이나 불교신문, 불교방송등 교계 기자들은 승가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모두 승려대회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조계종단에서 만든 삼귀의에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하지 않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잘못된 삼귀의를 비판하지 못하는 승려들과 학자들과 기자들의 무지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조계종 스님들과 불자들은 조계종이 한국불교의 장자종단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작년에 천년동안 승가의 공유물로 전승되어오던 조계산 선암사가 사회법의 판결에 의해서 태고종의 소유가 되었다. 사회법에 의하면 선암사는 현재 태고종 승려들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기에 태고종의 소유라고 판결 할 수 있지만 2700년간 내려오는 승가정신에 의하면 이 판결은 승가의 공유물을 승가가 아닌 곳에서 탈취한 것이다. 조계종은 승가의 의미를 모르므로 사회법으로만 싸우다가 패소하게 된 것이다. 몇 천년이고 후대의 승가에 물려주어야 할 공유물을 빼앗긴 것은 대한민국 불교역사에서 매우 불행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현재까지 이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종단의 소임자도 한 사람도 없다.

 

한국불교가 장자종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가 승가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고 조계종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발언이다. 승단과 종단에 대한 이해가 정확한 이해가 없기에 이러한 말들을 쓰면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조계종 스님중에도 은처가 있고 계율에 맞지 않게 고급 승용차를 타는 스님들이 있다". "태고종 스님들 중에서도 결혼하지 않는 스님들이 있다"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 글을 쓴 취지는 우리가 승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자는 것이고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몰랐을 때,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 지를 알리기 위해서 쓴 글이다.

 

 

페이스북 '장자(長子)종단이라는 오해'라는 나의 글에 달린 법우스님의 댓글.

 

법우스님

태고종 선암사 재적승으로서 이 글을 보고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고민이 많았습니다. 중들 말싸움하는 꼴로 비칠 것이 자명하여,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부끄럽게도 마음공부가 덜된 탓에 발길이 멈춰져서 몇자 적습니다.
1. 태고종이 승려결혼을 용인하게 된 배경
1925년 조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승려 70%가량이 결혼하였고, 이후 그 증가는 더 커집니다. 일본의 경우 1937년경 부터 대부분의 불교종단에서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다시말해 승려 결혼이 일본보다 10년이상 이른시기에 빠른 속도로 조선불교에서 확산된 셈인데,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당시 조선 승려들이 불교근대화의 한 방법으로써 승려결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굳이 이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는 "대처=왜색=친일"이라는 거짓 프레임에 빠져 논의가 어긋나는 것을 우려해서 입니다.
어떻든 1950년대 절대 다수의 승려가 이미 결혼한 상황에서 이른바 비구대처 분규가 일어나는데, 태고종은 당시 불교계의 현실이었던 승려결혼을 자율에 맞기고 안고 가자는 입장이었고, 조계종은 털어내고 가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구요.
2. 지계의 문제
스님께서는 조계종만 승가이고, 태고종을 비롯한 다른 종단은 승가도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 오만한 잣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소승이 보기에 계율경시의 경향은 어느 특정 종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불교계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남의 옷에 묻은 때는 잘보이고 자기옷에 묻은 때는 잘 안보이기 마련입니다만, 지계를 중시하시는 입장이시라면, 남의 옷 보다는 흰옷 입은 사람처럼 자신에게 묻은 한 점 티끌을 살피시기를 권합니다.
3. 선암사 문제
소승이 출가하며 선암사 고문헌이나 비문 등을 조사하며 확인한 결과, 소승의 법맥은 은,법사 모두 저로부터 6대조까지 선암사 직계임을 확인했습니다. 사자상승의 원칙에 따라 계계상승되어 온 선암사 법맥을 모독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선암사는 외부세력인 조계종에서 실재하지도 않는 조계종 선암사를 내세워 뺏으려 하였지, 누가 뺏어서 점유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혹 선암사 스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지 보셨어요~? 어느 총림보다도 여법하게 정진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4. 불교 갈라치기의 피해는 불교계 전체
소승이 보기에 스님의 이 글은 불교갈라치기의 전형입니다. 보수니 진보니, 전라도니 경상도니, 운동권이니 비운동권이니 하는 식으로 우리사회를 갈라치기하는 정치판의 싸구려 술책이 온 나라를 피해주듯이, 스님은 결혼/미혼만으로 타종단을 모독하며 현재불교계를 갈라치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소승이 보기에 우리 불교가 계신교에 밀려서 제2종교로까지 퇴보한 것도 이승만의 불교갈라치기 이후 불교계가 분열된 원인이 큽니다. 부디 불교갈라치기의 위험성을 아시길 바랍니다.
5. 불교의 다양성과 단합의 필요성
소승이 보기에 성불의 길이 다양하듯이 우리 불교계에 서로 중시하는 것이 다른 다양한 종단이 있는 것이 불교발전을 위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계율을 중시하는 종단도 있고, 선을 중시하는 종단도 있고, 염불을 중시하는 종단도 있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 불교계의 종단은 교리나 수행체계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봅니다만, 각각의 종단이 자기정체성을 확립는 노력을 계속해 간다면 개선되리라고 봅니다. 한편, 현재 우리사회의 종교지형에서 불교는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과 경쟁하며 그 지평을 확장시켜가야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불교종단간의 상호협력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리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처럼 상대종단을 승가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면 어찌 협력하고 불교공통의 이익을 지키겠습니까?
6. 마치며
소승은 백장암을 사랑합니다. 특히 3층석탑과 석등의 섬세한 조각들은 백미 중의 백미라고 아끼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간간히 들려주시는 백장암 소식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 스님의 이글은 저를 향한 모독이기에 두서 없지만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다소 거친 표현들은 미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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