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가 생기는 과정
범망경(梵網經. Brahmajala sutta. D1.)
1. 비방하는 스승과 칭송하는 제자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500명의 많은 비구 대중과 함께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에 난 대로를 따라가고 계셨다. 숩삐야 유행승도 제자인 브라흐마닷따라는 젊은 바라문과 함께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에 난 대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숩삐야 유행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존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했다. 그러나 숩삐야 유행승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브라흐마닷따는 세존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하였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올곧거나 적대적인 말을 하면서 세존과 비구 승가의 뒤를 계속해서 따르고 있었다.
1.2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더불어 암발랏티까에 있는 왕의 객사에서 하룻밤을 머무셨다. 숩삐야 유행승도 제자인 젊은 바라문 브라흐마닷따와 함께 암발랏티까에 있는 왕의 객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거기서도 숩삐야 유행승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세존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했다. 그러나 숩삐야 유행승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브라흐마닷따는 세존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올곧거나 적대적인 말을 하면서 머물렀다.
1.3 많은 비구들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강당에 함께 모여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였다.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분,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중생들의 다양한 의향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숩삐야 유행승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세존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숩삐야 유행승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브라흐마닷따는 세존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했습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올곧거나 적대적인 말을 하면서 세존과 비구 승가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읍니다."라고.
1.4 세존께서 비구들이 이러 주제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강당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해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후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서로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세존에게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강당에 함께 모여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하였읍니다.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분,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중생들의 다양한 의향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숩삐야 유행승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세존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숩삐야 유향승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브라흐마닷따는 세존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했습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올걷거나 적대적인 말을 하면서 세존과 비구 승가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희들이 서로 끝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2. 비방에 대해서
1.5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할 것이다.그때 그대들은 분노하거나 불쾌감을 가져서는 안되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남들이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할 것이다. 그때 만약 그대들이 분노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대들에게 또한 그것 때문에 장애가 생길 것이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남들이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할 것이다. 그때 만약 그대들이 분노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남들이 말을 잘했는지 말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할 것이다. 그때 그대들은 거기서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은 거짓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은 없읍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찾아지지 않습니다.'라고."
3. 칭송에 대해서
1.6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칭송하거나 법을 칭송하거나 승가를 칭송할 것이다. 그대 그대들은 기쁨이나 만족이나 마음의 고양됨을 행해서는 안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칭송하거나 법을 칭송하거나 승가를 칭송할 것이다. 그대 만약 그대들이 기뻐하고 만족하고 고양되면 그대들에게 또한 그것 때문에 장애가 생길 것이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칭송하거나 법을 칭송하거나 승가를 칭송할 것이다. 그때 그대들은 거기서 사실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진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읍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찾아집니다.'라고"
2.1. Cūḷasīla
4-1. 계(戒)에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함 (짧은 계)
1.7 "비구들이여, 범부는 단지 작고 하챦은 이것, (세속적인) 계(戒)에만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비구들이여, 범부가 단지 작고 하챦은 계에 의해 여래를 칭송하여 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① "사문 고따마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몽둥이를 내려놓았고 칼을 내려놓았고, 모든 살아있는 중생들을 향하여 관대하고 자비한 마음을 갖고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② "사문 고따마는 주지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준 것만울 받는 자이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는 자입니다. 스스로 훔치지 않아 청정한 존재로 머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③ "사문 고따마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렸기 때문에 청정범행을 닦는 자이다.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떠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④ "사문 고따마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그분은 진실을 말하는 자이고, 믿을만하고, 신뢰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 세상을 세상을 속이지 많습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⑤ "사문 고따마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이간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람들을 이간하고자 여기서 듣고서 저기서 다르게 말하지 습니다. 저기서 듣고서 이들에게 말하여 이간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간을 회유하는 자이거나 화합을 가져오는 자입니다.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위해 노력하며 화합을 즐겨하며 화합을 만드는 말을 합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⑥ "사문 고따마는 거친 말(욕설)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친 말을 하는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예의 바르고, 대중들이 좋아하고, 대중들이 들어서 즐거운 그런 말을 말합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⑦ "사문 고따마는 꾸며대는 말(잡담)을 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꾸며대는 말을 하는 행위를 멀리 떠난 자입니다. 적절한 때에 말하는 자이고, 진실되게 말하는 자이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에 맞게 말하는 자이고, 율에 맞게 말하는 자입니다. 적절한 때에, 근거를 갖춘, 절제된, 이익이 되는 말을 말합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세속적인 계에만 국한하여 : 즉 (삼매나 통찰지등의) 더 높은 덕(guna)을 제회하고 단지 작고 하챦은 세속적인 계마을 가지고 칭송하는 것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Ibid). 이렇게 말씀하시고 중생들이 붓다를 칭송하는 계의 항목을 상세하게 열거하신 후에 이것을 넘어서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견해나 학설을 62가지로 분류하여 말씀하신다.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 가운데서 '일곱 가지 근본이 되는 학습계목(satta mulasikkhapadani)"을 열거하였다. 10불선업 가운데 마지막 세 가지인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는 제외하고, 중생들이 칭송하는 세속적인 계를 다음 단락에서 더 열거하신다. 여기서는 중생들이 붓다를 칭송하는 제한되고 세속적인 계이기 때문에, 더 높은 덕목에 해당되는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를 근원적으로 단속하는 게목은 세속 중생들의 영역이 아니라서 제외 되었다고 복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DAT.i.157)
1.8
사문 고따마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자여서 밤에 먹는 것을 삼가고, 때 아닌 때 먹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춤, 노래, 연주, 구경거리 등을 행하지도 또는 보거나 듣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장식하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높고 큰 침상의 잠자리를 갖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생고기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여인이나 여자 아이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닭과 돼지등의 가축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코끼리, 소, 말, 암말등을 받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농토나 토지등의 전답을 소유하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남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중개하거나 사고파는 것(상행위)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저울을 속이고 돈을 속이고 도량을 속이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어떠한 종류의 속이는 부정한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거나 또는 누군가를 강제하고 구속하여 폭력을 행하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2.2. Majjhimasīla
4-2. 계(戒)에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함 - 사문답지 못한 행위에 빠짐(중간 길이의 계)
1.9 "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예를 들면,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번째로 종자로 번식을 하는 씨앗과 초목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면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씨앗류나 초목을 손상시키는 이런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0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히고, 의복을 축적히고, 탈 것을 축적하고, 침구와 좌구를 축적하고, 향을 축적하고, 재산을 축적하는 등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 행위를 하면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축적하는 것을 즐기는 이런 행위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1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마술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사의 묘기, 코끼리싸움, 말싸움, 황소싸움, 물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 마차싸움, 봉 싸움, 주먹 싸움,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열병식 등 갖가지 구경거리를 보고 즐기거나 행하는데 빠져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갖가지 구경거리를 보고 즐기거나 행하는데 빠져서 머무는 이런 행위를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2"'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8목 체스장기, 10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 놀이, 자치기, 손에 물감을 믇혀 그림 그리는 놀이, 풀피리 불기 놀이, 장난감 쟁기질 놀이, 재주 넘기 놀이, 잎으로 만든 팔랑개비 놀이, 잎으로 만든 장난감 용기 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놀이, 허공이나 등뒤에 쓴 글자 맞히기 놀이, 생각 맞히기 놀이, 불구자 흉내내기, 도박 등 갖가지 놀이나 도박을 하고 즐기는데 빠져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갖가지 놀이나 도박을 하고 즐기는데 빠져서 머무는 행위를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3"'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긴 의자, 소파, 긴 털이 달린 깔개, 여러 가지 색의 모직 덮개(이불), 흰색 모직 덮개, 꽃무늬의 모직 덮개, 솜을 채운 침대덮개, 사자나 호랑이 모습을 수놓은 침대덮개, 양쪽에 술 장식이 달린 덮개, 한쪽에만 술 장식이 달린 모직 덮개, 보석이 박힌 덮개, 비단 덮개, 춤추는 소녀들이 사용하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마차의 깔게, 사슴가죽 깔개, 영양가죽 깔개, 차양있는 양탄자, 붉은 베게와 붉은 발 받침을 장식한 높고 큰 침상을 사용하면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높고 큰 침상을 사용하는 이런 것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4"'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몸에 향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몸을 문지르고, 향수에 목욕과 머리를 빗으며, 눈을 감색으로 물들이고,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고, 얼굴에 분칠하고, 팔찌를 차기, 머리띠, 장식용 지팡이, 장식한 약통, ㅅ긴 칼, 수놓은 가죽신을 신고, 터번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관모를 쓰고, 긴 술로 장식한 하얀 옷을 입으며, 일산을 쓰고, 야크꼬리로 만든 총채를 잡으며 등 몸을 꾸미고 치장하고 장식하는 일을 즐기고 몰두하는데 빠져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런 몸을 꾸미고 치장하고 장식하는 일을 즐기고 몰두하는데 빠져서 머무는 것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5"'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왕에 대한 이야기, 도둑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대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상에 대한 이야기, 화환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족에 대한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거리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잡다한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대한 이야기,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 등 하챦은 이야기를 하면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챦은 이야기를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하챦은 이야기의 원어는 tiracchakatha 이다. 여기서는 모두 27가지 하챦은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청정도론등의 주석서에는 모두 32가지 하챦은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청정도론의 복주석서(Pm)에 의하면 27가지에다가 산, 강, 섬에 대한 이야기와 천상과 해탈에 대한 것도 하챦은 이야기에 포함시켜서 모두 32가지라고 한다. 즉 말로만 해탈을 논하는 것도 하챦은 이야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1.16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는 자이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는 앞에 말해야 하는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하는 것을 앞에 말한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논파되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되었다. 말을 취소하라.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라.; 라는 등 불필요한 논쟁에 몰두하면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불필요한 논쟁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의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가고,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라는 등의 심부름이나 전령을 하면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8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기만하고, 불평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기만과 불평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4-3. 계(戒)에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함 - 사문의 삿된 생활수단(긴 길이의 계)
1.19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몸과 얼굴의 특징으로 예언하기, 예감이나 징조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흔적에 따라서 점치기, 불의 봉헌, 주걱으로 헌공, 벼 헌공, 쌀가루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입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손금 보기, 집터 보기, 대지 보기, 묘지의 귀신 퇴치, 악령 퇴치,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기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 피하기, 동물들의 울음을 듣는 능력 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이런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하천한 지식: 원어는 tiracchana-vijja이다. vijja는 일반적으로 전문지식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것과 비교되는 용어로 sippa가 있는데 이것은 전문기술이라는 의미이다. vijja는 넓은 의미로 여러 학문분야나 여러 직업의 전문지식을 말한다. 여기서는 하천한(tiracchana)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특히 여러 가지 점치기, 예언, 주술등 종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나쁜 생계수단들이 언급되고 있다. 출가자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해서는 안되며 탁발(걸식)로 생계를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1.20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보석의 특징(색깔이나 모양이나 다른 특징등), 옷감의 특징, 지팡이의 특징, 칼의 특징, 긴 칼의 특징, 화살의 특징, 활의 특징, 다른 무기의 특징, 마차의 특징, 귀걸이의 특징, 여자의 특징, 남자의 특징, 소년의 특징, 소녀의 특징, 남녀 노비의 특징, 코끼리의 특징, 말의 특징, 물소의 특징, 황소의 특징, 암소의 특징, 염소의 특징, 양의 특징, 닭의 특징, 사슴의 특징, 큰 도마뱀의 특징, 거북이의 특징 등을 이용하여 갖가지 방법으로 점을 치는 하천한 지식을 통한 이런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점을 치는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1"'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이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편에 속한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상대편에 속한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상대편에 속한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우리 편에 속한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우리 편에 속한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상대편에 속한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상대편에 속한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편에 속한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이편의 패배가 있을 것이다.'라는 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들어가 일직선을 이루는 때)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궤도로 운행할 것이다. 해와 달이 잘못된 궤도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해질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행성의 합삭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이 올바른 궤도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이 잘못된 궤도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짙은 노을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진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천둥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의 뜨고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3"'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얘를 들면,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풍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 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4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약혼이나 결혼날짜를 택일하고, 귀신을 부르고 혹은 쫓으며 갖가지 기도와 여러 방법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여 모으기도 하고 흩어지게 하고, 불행이나 행운을 가져오게 하는 주문, 낙태를 주문하고, 장님이나 귀머거리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거울에(신울 모셔와서) 물어보는 점을 치고, 소녀나 하녀의 몸을 이용하여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것 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5"'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지들은 믿음으로 주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예를 들면,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쫓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를 지낸다. 구토제, 설사제, 거담제와 점액제거제를 주고,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제거제를 주고, 안과, 외과, 어린아이를 치료하는 기술을 행하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정화제와 필수적인 약용식물을 처방하는 등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머뭅니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기술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떠난 자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범부가 단지 작고 하챦은 계에 의해 여래를 칭송하여 말하는 것이다.
Idaṁ kho, bhikkhave, appamattakaṁ oramattakaṁ sīlamattakaṁ, yena puthujjano tathāgatassa vaṇṇaṁ vadamāno vadeyya.
3. Diṭṭhi
5. 법(法)을 통한 칭송
1.26 "비구들이여, 또 다른 법들이 있어서 그것은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며, 깨닫기도 힘들고, 평온하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 또는 자아개념을 넘어서 있고, 독창적이며, 오직 현자들만이 알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심오하고, 보기 힘들고, 깨닫기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 또는 자아개념을 넘어섰고, 독창적이며, 오직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하는 자들이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그 법들은 어떤 것인가?
Atthi, bhikkhave, aññeva dhammā gambhīrā duddasā duranubodhā santā paṇītā atakkāvacarā nipuṇā paṇḍitavedanīyā, ye tathāgato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Katame ca te, bhikkhave, dhammā gambhīrā duddasā duranubodhā santā paṇītā atakkāvacarā nipuṇā paṇḍitavedanīyā, ye tathāgato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6.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 - 18가지(aṭṭhārasa)
1.27 "비구들이여, 과거의 겁들에 속한 것들로부터 과거에 대해 추측하고, 과거에 대해 18가지 경우로 다양하게 해석하여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면 그 사문.바라문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과거에 겁들에 속한 것들로부터 과거에 대해 추측하고, 과거에 대해 18가지 경우로 다양하게 해석하여 선언하는가?"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pubbantakappikā pubbantānudiṭṭhino, pubbantaṁ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aṭṭhārasa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pubbantakappikā pubbantānudiṭṭhino pubbantaṁ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aṭṭhārasahi vatthūhi?
3.1.1. Sassatavāda
6-1-1.영속론자들-삼매를 얻어, 수십만 생을 기억해내기 때문에(1)
1.28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로 영원한 자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 영속론자인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면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네 가지 경우로 영원한 자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ṁ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ānipi jātisatāni anekānipi jātisahassāni anekānipi jātisatasahassāni: ‘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봉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전하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계),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숨낳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것에 의해 나는 '자아와 세상은 영속한다.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봉우리처럼 서 있고, 쇠말둑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전하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이 영원한 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6-1-2.영속론자들-삼매를 얻어, 다섯 겁의 생을 기억해내기 때문에(2)
1.29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로, 영속론자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영속론자가 되어 영원한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여러 전생(다섯겁 생)을 기억한다. 즉 하나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세계), 두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세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네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다섯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보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즉 하나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두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세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네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다섯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다섯 겁의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자아와 세상은 영속한다.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유전하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이 영원한 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 두 번째 경우이다."
6-1-3.영속론자들-삼매를 얻어, 마흔 겁의 생을 기억해내기 때문에(3)
1.30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로, 영속론자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영속론자가 되어 영원한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여러 전생(마흔 겁)을 기억한다. 즉 열 번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세계), 스무 번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서른 번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마흔 번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라고. 이처럼 마흔 겁의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그 특색과 더불어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속한다.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봉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나는 여러 전생(마흔 겁)을 기억한다.
즉 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세계), 스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서른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마흔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라고. 이처럼 마흔 겁의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그 특색과 더불어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보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나는 여러 전생(마흔 겁)을 기억한다. 즉 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세계), 스무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서른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 마흔 개의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을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여러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이처럼 마흔 겁의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그 특색과 더불어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이 영원한 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 세 번째 경우이다."
6-1-4.영속론자들-스스로 규명했기 때문에(4)
1.31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로, 영속론자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영속론자가 되어 영원한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논리가요 관찰자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갈애의 형성과정을 추론하고 관찰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규명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봉우리처럼 서 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이 영원한 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 네 번째 경우이다."
Catutth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takkī hoti vīmaṁsī, so takkapariyāhataṁ vīmaṁsānucaritaṁ sayaṁ paṭibhānaṁ evamāha: ‘sassato attā ca loko ca vañjho kūṭaṭṭho esikaṭṭhāyiṭṭhito; te ca sattā sandhāvanti saṁsaranti cavanti upapajjanti, atthi tveva sassatisaman’ti. Idaṁ, bhikkhave, catutthaṁ ṭhānaṁ, yaṁ āgamma yaṁ ārabbha eke samaṇabrāhmaṇā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6-1-5.영속론자들-이것 이외에는 없다
1.32 "비구들이여, 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네가지 경우로 영원한 자아와 세상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영원한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이라면 누구든지 이 4가지 경우거나 혹은 이 4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다른 경우는 없다."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sabbe te imeheva catūhi vatthūhi, etesaṁ vā aññatarena; natthi ito bahiddhā.
6-1-6.영속론자들-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1.3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Tayidaṁ, bhikkhave, tathāgato pajānāti: ‘ime diṭṭhiṭṭhānā evaṅgahitā evaṁparāmaṭṭhā evaṅgatikā bhavanti evaṁabhisamparāyā’ti, tañca tathāgato pajānāti, tato ca uttaritaraṁ pajānāti; tañca pajānanaṁ na parāmasati, aparāmasato cassa paccattaññeva nibbuti vidit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anupādāvimutto, bhikkhave, tathāgato.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me kho te, bhikkhave, dhammā gambhīrā duddasā duranubodhā santā paṇītā atakkāvacarā nipuṇā paṇḍitavedanīyā, ye tathāgato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첫 번째 바나와라가 끝났다.
*'바나와라(bhanavara)'란 쉬지않고 계속해서 외울 수 있는 만큼의 분량을 말한다. 바나와라는 문자 그대로 '암송(bhana)의 전환점(vara)'이라는 말인데 경전을 외워 내려가다가 한 바나와라가 끝나면 쉬었다가 다시 외우는 것이 반복되고 그 다음 바나와라가 끝나면 또 쉬었다가 시작한다. 한 바나와라는 8음절로 된 사구게(四句偈)로 250게송의 분량이라고 한다. 그래서 총 4x8x250=8,000음절이 된다.
3.1.2. Ekaccasassatavāda
6-2-1.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바로 전생, 범천에서 먼저 난 자(5)
2.1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일부는 영원하고(영속론자)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것(비영속론자)을 설하는 자들인데, 네 가지 경우로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네 가지 경우로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일부영속과 일부비영속론자들에는 두 가지가 있다. 중생(satta)에 대한 일부영속 일부 비영속론자들과 상카라에 대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이다.(DA.i.109) 여기서는 특정한 세상에서 이곳에 온 자들이고 그 세상에 자기보다 먼저 있었던 신이 자기를 창조한 것이라 믿고 그렇게 주장하는 견해를 3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 세상에 먼저 있었던 신은 영속한다고 주장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태어난 신들은 영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절대자설과 창조설에 대한 붓다의 분명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붓다는 그들의 말이 결코 틀렸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본 것에 한해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싯점까지일 뿐 그 이전은 알지 못하는 경우에 속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편향된 견해를 고집하고 주장하는 것은 견해의 그물에 걸려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2.2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무너지는 때가 있다. 세상에서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서 태어나게 된다. 마음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희열(喜.기쁨)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ṁ loko saṁvaṭṭati. Saṁvaṭṭamāne loke yebhuyyena sattā ābhassarasaṁvattanikā honti. Te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ṁ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anti.
2.3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다시 이루어진다. 이루어 지는 세상에 비어 있는 범천의 하늘 궁전이 나타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비어 있는 범천의 하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Hoti kho so, bhikkhave, samayo, yaṁ kadāci karahaci dīghassa addhuno accayena ayaṁ loko vivaṭṭati. Vivaṭṭamāne loke suññaṁ brahmavimānaṁ pātubhavati. Atha kho aññataro satto āyukkhayā vā puññakkhayā vā ābhassarakāyā cavitvā suññaṁ brahmavimānaṁ upapajjati. So tattha hoti manomayo pītibhakkho sayampabho antalikkhacaro subhaṭṭhāyī,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ati.
2.4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동요가 생긴다. '다른 중생이 여기에 왔으면!.'이라고. 그때 중생들도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하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
Tassa tattha ekakassa dīgharattaṁ nivusitattā anabhirati paritassanā uppajjati: ‘aho vata aññepi sattā itthattaṁ āgaccheyyun’ti. Atha aññepi sattā āyukkhayā vā puññakkhayā vā ābhassarakāyā cavitvā brahmavimānaṁ upapajjanti tassa sattassa sahabyataṁ. Tepi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ṁpabhā antalikkha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ṁ dīghamaddhānaṁ tiṭṭhanti.
2.5 "비구들이여, 그때 첫 번째로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정복자요, 정복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을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이 된 자, 신분을 부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나에 의해 이 중생들은 창조되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전에 내게 '다른 중생이 여기에 왔으면!'이라고 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러한 내 마음의 바램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Tatra, bhikkhave, yo so satto paṭhamaṁ upapanno tassa evaṁ hoti: ‘ahamasmi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ṁ.Mayā ime sattā nimmitā. Taṁ kissa hetu? Mamañhi pubbe etadahosi:
“aho vata aññepi sattā itthattaṁ āgaccheyyun”ti. Iti mama ca manopaṇidhi, ime ca sattā itthattaṁ āgatā’ti.
나중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범천인 이 존자는 대범천이고, 정복자요, 정복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을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이 된 자, 신분을 부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다. 범천인 이 존자에 의해 우리는 창조되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라고."
Yepi te sattā pacchā upapannā, tesampi evaṁ hoti: ‘ayaṁ kho bhavaṁ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ṁ. Iminā mayaṁ bhotā brahmunā nimmitā. Taṁ kissa hetu? Imañhi mayaṁ addasāma idha paṭhamaṁ upapannaṁ, mayaṁ panamha pacchā upapannā’ti.
2.6 "비구들이여, 거기서 먼저 태어난 그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큰 위력을 가졌다. 그리고 나중에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 생겼으며, 더 작은 위력을 가졌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지금 상태[今生.금생)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 상태로 온 자가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의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범천인 그 존자는 대범천이고, 정복자요, 정복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 지배자, 권능을 가진 자, 창시자, 창조자, 으뜸이 된 자, 신분을 부부여하는 자, 주인, 과거와 미래의 것들의 아버지다. 범천인 그 존자에 의해 우리는 창조되었다. 그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존재인 그는 영원히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범천인 그 존자에 의해 창조된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지금의 상태로 왔다(이곳에 태어났다.)' 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자아와 세상을 선언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6-2-2.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유희로 타락해버린 자들이라는 신들(6)
2.7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놀이에 의한 결점이 가득한)'들이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 신들은 그 무리로부터 떨어진다(죽는다)."
*이 신들은 본경에서 언급하듯이 놀이에 빠진 신들이다. D20(큰 모임경)에도 언급되고 있는 신들인데 사대왕천의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그들은 천상의 정원에서 유희에 빠져서 먹고 마시는 것조차 잊어 버려 마치 화환이 시들듯이 죽는다고 한다.
2.8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신이 그 무리로부터 떨어져 지금 상태로(이곳 세상에 태어나는)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 상태로 온 자가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2.9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희로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리지 않았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신들은 그 무리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존재인 그들은 영원히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유희로 타락해 버려서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지금의 상태로 왔다(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자아와 세상을 선언하는 두 번째 경우이다."
6-2-3.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마음이 타락해버린 자들이라는 신들(7)
2.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마음이 타락해버린 자(마음에 의한 결점이 가득한)'들이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서로를 바라본다. 오랜 세월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은 서로의 마음들을 불쾌하게 한다. 그들은 서로 간에 불쾌한 그 마음들 때문에 몸도 피로하고 마음도 피로하다. 그 신들은 그 무리로부터 떨어진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들은 사대왕천의 신들인데 축제에서 마차를 타고 가다가 서로 분노(kodha)하여 경쟁하고 다투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DA.i.114).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이 신들은 지나치게 남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AA.iii.147)
2.11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신이 그 무리로부터 떨어져 지금 상태로 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 상태로 온 자가 집으로부터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의 결과로 마음이 삼매를 닦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그런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2.12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신 존자들은 거친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마음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다. 서로 간에 불쾌하지 않은 그 마음들 때문에 몸도 피로하지 않고 마음도 피로하지 않다. 그래서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존재인 그들은 영원히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거친 마음을 가진 우리는 오랜 세월 서로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서로 바라보는 우리는 서로의 마음들을 불쾌하게 했다. 그런 우리는 서로 간의 불쾌한 마음들 때문에 몸들도 피로했고 마음들도 피로했다. 이렇게 그 무리로부터 떨어진 우리는 무상하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지금의 상태로 았다(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자아와 세상을 선언하는 세 번째 경우이다."
6-2-4.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心, 意, 識(심의식)이라는 자아는 영속한다(8)
2.13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무엇과 관련하여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논리가요 관찰자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갈애의 형성과정을 추론하고 관찰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규명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눈이라 하고 귀라 하고 코라 하고 혀라 하고 몸이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변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마음(心)이라 하고 마노(意)라고 하고 의식(識)이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히 그렇게 존재한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인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자아와 세상을 선언하는 네 번째 경우이다."
6-2-5.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이것 이외에는 없다
2.14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네가지 경우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이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는다라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4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4가지 중 한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6-2-6.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2.1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3-1.유한과 무한을 설하는자들-유한하다는 인식으로 머물기 때문(9)
2.16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인데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하여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2.17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은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6-3-2.유한과 무한을 설하는자들-무한하다는 인식으로 머물기 때문(10)
2.18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하여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마음이 그 삼매에 들어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니 않았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두 번째 경우이다.
6-3-3.유한과 무한을 설하는자들-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유한하기도(11)
2.19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그 삼매에 들어 위아래로는 유한하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역시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마음이 그 삼매에 들어 위아래로는 유한하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세 번째 경우이다.
6-3-4.유한과 무한을 설하는자들-유한한 것도 무한한 것도 아니다(12)
2.20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논리가요 관찰자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갈애의 형성과정을 추론하고 관찰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규명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역시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역시 거짓이다. 이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네 번째 경우이다.
6-3-5.유한과 무한을 설하는자들-이것 이외에는 없다.
2.21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이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6-3-6.유한과 무한을 설하는자들-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2.2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4-1.애매모호한 자들-善,不善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거짓말이 되므로(13)
2.2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애매모호한 자들인데,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원어는 amaravikkhepika 이다. 일반 불교개론서에서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회의론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아마라위케삐카를 설명한다.
끝남이 없다고 해서 아마라(amara)이다. 이것을 무엇을 말하는가? 나에게는 이러하다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삿된 견해를 가진 자의 끝이 없는 견해와 주장을 말한다. 여러 곳으로 던짐이 위케빠이다. 끝이 없는 견해와 주장으로 이리저리 던진다고 해서 아마라위케빠(애매모호하게 늘어놓음)이다, 이런 것을 가진 자들이 애매모호한 자들(amaravikkhepika)이다.
다른 설명은 이러하다. '아마라는 어떤 물고기이다. 이것은 물속에서 매끄럽게 위로 움직이고 아래로 움직이며 가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다. 그와 같이 이런 주장도 이리저리 치달리기 때문에 거머쥐지 못한다.'라고 해서 아마라위케빠(애매모호하게 늘어놓음)라 한다. 이런 것을 가진 자들이 애매모호한 자들(amaravikkhepika)이다. (DA.i.115)
2.24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이것은 선함(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不善)이다.'라고 있는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선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선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선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설명한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혐오스러운 것이고, 두렵고 혐오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혐오하여, '이것은 선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라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 첫 번째 경우이다."
*이 첫 번째 경우는 자기 자신이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혐오하지만, 모른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애매모호하게 말을 늘어놓는 경우이다.
6-4-2.애매모호한 자들-善,不善을 철저히 알지 못하여 집착이 되므로(14)
2.25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하여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이것은 선함(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이것은 선하지 않음(不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선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선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선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바램이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아니면 적개심을 가져올 것이다. 나에게 바램이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적개심을 가져오는 것은 나에게 집착이 될 것이다. 나에게 집착이 되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혐오스러운 것이다. 두렵고 혐오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집착을 두려워하고 집착을 혐오하여, '이것은 선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라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 두 번째 경우이다."
*두 번째는 집착(취착((upadana)를 두려워하여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경우이다. 주석서에서는 열의와 욕망(chanda-raga)의 둘은 집착이고 성냄과 적개심(dosa-patigha)의 둘은 곤혹스러운 것(vighata)이라고 설명을 한 뒤 그러나 이 모두는 강하게 움켜쥐면 집착이고 없애려고 하면 곤혹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DA.i.116-117)
6-4-3.애매모호한 자들-善,不善을 철저히 알지 못하여 논파 당하므로(15)
2.26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하여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려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이것은 선함(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不善)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선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선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알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선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라고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학식있는 사문·바라문들은 영리하고, 다른 자들의 교리에 능통하고, (화살로) 머리털을 쪼갤 수 있는 능숙한 궁수처럼 욧점을 지적하고. 이 선함과 선하지 않음에 대해 그들은 지속적으로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여 내가 말한 설명 가운데서 허점을 발견하여 나늘 논파해 버릴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 나를 논파하면, 나는 그들에게 대꾸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지 못하면 그것은 나에게 두려운 혐오스러운 것이다. 두렵고 혐오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 이처럼 그는 계속된 질문을 두려워하고 계속된 질문을 혐오하여, '이것은 선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라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 세 번째 경우이다."
*세 번째는 현자(지자)들 즉 남들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따지는 것(anuyoga)을 두려워하여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경우이다.
6-4-4.애매모호한 자들-멍청하고 어리석어서(16)
2.27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의거해서 무엇을 기반으로 하여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지하고 대단히 어리석다.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①만일 그대가 '저 세상이 있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②만일 그대가 '저 세상이 없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없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③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④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⑤'화생(化生)은 있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화생은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화생은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⑥'화생(化生)은 없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화생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화생은 없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⑦'화생(化生)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화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화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⑧'화생(化生)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화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화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⑨'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果)과 과보(果熟)는 있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잘 지은 없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⑩'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果)과 과보(果熟)는 없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없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⑪'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果)과 과보(果熟)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⑫'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果)과 과보(果熟)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⑬'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⑭'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⑮'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안히고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⑯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다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 네 번째 경우이다."
*화생(化生)으로 번역한 원문은 opapatika 이다. upa(위로)+vpada(가다)의 명사형으로 문자 그대로 '그 위로 가서 바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모태등의 탱나는 곳을 빌리지 않고 그대로 다음생을 받는 것을 뜻한다. 천상의 신들과 지옥 중생과 아귀등이 화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복주석서에서는 이 네 번째 경우를 두고 멍청하고 특히 대단히 어리석다고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앞의 세 경우도 선법·불선법등의 고유성질(sabhava)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멍청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선법·불선법 등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은 자각(avabodha)하고 있다. 그러나 이 네 번째의 경우에는 그러한 자각조차도 없기 때문에 멍청하고 대단히 어리석다고 한다.(DAT.i.214)
6-4-5.애매모호한 자들-이것 이외에는 없다.
2.28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이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 것은 모두 이 4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4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6-4-6. 애매모호한 자들-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2.29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5-1.우연발생론자들(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 asanna-satta)의 신들(17)
2.30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2가지 기반에 의해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는 발생에 속하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생기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2 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는 발생에 속하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생기는 자아와 세상은 천명하는가?"
2.31 "비구들이여, 무상유정(無想有情)이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인식이 생겨나면 그 무리로부터 죽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중생들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줄가한 그는 노력의 결과로, 정진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 네 번째 경우이다." 의 결과로, 실천의 결과로, 불방일의 결과로, 바른 마음 기울임을 닦아서 삼매를 얻는다. 마음이 삼매에 들어 (재생연결)의 인식이 생겨난 것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는 발생에 속하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생기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첫 번째 경우이다."
*무상유정천(無想有精天,asanna-satta)는 색계의 제4선천(四禪天)의 두 번째로 광과천의 위이다. 이 무상유정천 위는 정거천이고 정거천은 불환자들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무상유정천은 중생으로 태어나는 경지로는 색계에서 가장 높은 천상이다. 출가자의 마음이 제4선에 들어서 인식을 없애 버리려는 의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들은 무상유정천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인식에 대해서 혐오하기 때문에 이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무상유정천에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고 오직 물질로 된 몸만이 있다(acittuppada rupamattakattabhava-DA.i.118). 그래서 마음이 없었던 경지 즉 무상유정천을 기억하는 자는 우연발생론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상유정천에 태어나기 전의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무상유정천과 상수멸의 경지는 유사한 점이 많지만 전자는 아직 중생의 경지이고 상수멸은 불환자와 아라한이 들 수 있는 경지이므로 이 둘은 이런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6-5-2.우연발생론자들-스스로 규명했기 때문에(18)
2.32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2 가지 기반에 의해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는 발생에 속하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생기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논리가요 관찰자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갈애의 형성과정을 추론하고 관찰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규명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라고.
비구들이여,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하여 어떤 바라문 존자들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는 발생에 속하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생기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두 번째 경우이다."
6-5-3.우연발생론자들 - 이것 이외에는 없다.
2.33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두 가지 경우로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바라문들이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둘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6-5-4.우연발생론자들 - 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2.3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6-1.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 - 이것 이외에는 없다.
2.35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18 가지 기반에 의해서 그 사문·바라문들은 과거애 속하고, 과거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에 대한 여러가지 교리를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과거에 대한 회이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18 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18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6-6-2.과거로 모색하는 자들 - 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2.3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미래로 모색하는 자들 - 44가지
2.37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44가지 기반에 의해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졌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한다. 여러가지 교리를 단언한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44가지 기반에 의해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졌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가?"
7-1.사후에 자아는 인식(想)을 가지고 존재한다.(16가지 / 19∼34)
2.38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16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진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진 자아를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16가지 기반에 의해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진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진 자아를 천명하는가? 그들은
7-1-1.물질을 가진다(19)
그들은 (1) '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여기서 물질은 보통의 물질로 봐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육신도 죽지않고 다음 세상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주석서에서는 여기서 비록 '자아는 물질을 가졌다'라고 표현했지만자아는 일반적인 물질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색계 선정의 대상인 까시나의 물질(Kasina-rupa)에서 생긴 닮은 표상을 자아라고 거머쥐거나 혹은 까시나의 물질을 통해서 생긴 인식(tatta-pavattasanna)을 인식이라고 거머쥐고서 자아는 물질을 가졌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아지까와(邪命外道) 등(Ajivakadayo)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한다.(DA.i.119) 여기에 대해서 복주서는 다시 '물질을 가진(rupi)'을'변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물질을 가진 것(ruppanasilo rupi)'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덧붙이고 있다.(DAT.i.222)
* 병들지 않음(aroga)이란 항상함(nicca.常)을 말한다.(DA.i.119)
7-1-2.물질을 갖지 않는다.(20)
(2) '자아는 물질을 갖지 않는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무색계 증득(等至)의 표상(arupa-samapatti-nimitta)을 자아라고 거머쥐거나 증득의 인식(samapatti-sanna)을 자아라고 거머쥐는 것을 말하며 니간타 등(Niganthadayo)이 여기에 해당한다.(Ibid) 이것도 삼매체험을 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즉 까시나를 제거한 뒤에 전개되는 허공(空), 의식(識), 존재하지 않음(無所有) 등의 표상을 자아라거나 인식이라고 거머쥐는 경지를 말한다.
7-1-3.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가지지 않기도 한다(21)
(3) '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복주서에 의하면, 처음에는 색계 선정에 들어 그것의 대상인 까시나의 물질(kasina-rupa)에서 생긴 표상을 자아라고 거머쥐고, 더 나아가서 무색계 선정에 들어 무색계 선정의 대상인 허공 등 추상적인 표상을 자아라고 여기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DAT.i.223)
7-1-4.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22)
(4) '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이것은 단지 논리적인 것일 뿐(takkagaheneva)이라고 주석서는 말한다(DA.i.119)
7-1-5.유한하다.(23)
(5) '자아는 유한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여기서는 닮은 표상(patibhaga-nimitta)을 우주의 끝까지 확장하지 않고(avaddahetva) 단지 그 표상 자체를 세상이라고 거머쥐기 때문에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져서(antasanni) 세상에 머문다(DA.i.115)
* 여기서 세상의 "유한함, 무한함,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함, 우한하지도 무한하지 않음의 넷을 들고 있다. 여기서도 삼매의 힘으로 세상의 유한함과 무한함을 관찰한다. 그러나 그런 관찰에는 항상 지금여기에서 삼매에 드는 관찰자 자신의 체험이 게재되어 있다. 이러한 체험을 이 법망경 3.32에서는 '느낀 것'(vedayita)라고 표현하고 있다.
7-1-6.무한하다.(24)
(6) '자아는 무한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까시나를 우주의 끝까지 확장하여(vaddihitakasina)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진다.(DA.i.115) 까시나(kasina)는 산스끄리뜨 끄릇스나(krtsna)에 해당하는 빠알리어인데'전체의, 모든'을 뜻하는 형용사이다.이것이 사마타를 닦는 열가지 대상을 기술하는 전문용어로 정착되었다. 까시나에는 1) 흙의 까시나 2)물의 까시나 3)불의 까시나 4)바람의 까시나 5)푸른색의 까시나6)노란색의 까시나 7)붉은 색의 까시나 8)흰색의 까시나 9)허공의 까시나 10)광명의 까시나의열가지 까시나가 있다.
7-1-7.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25)
(7) '자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닮은 표상을 위로는 확장하지 않고 옆으로만 확장하여 위아래로는 유한하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진다.(Ibid)
7-1-8.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26)
(8) '자아는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논리와 해석을 수반하여 자신이 스스로 규명했기 때문에..
7-1-9.단일한 인식을 가진다.(27)
(9) '자아는 단일한 인식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 주석서에서는 증득의 경지(samapannka)를 통해서 단일한 인식이 생긴다고 설명한다(Ibid)여기에 대해서 복주서는 "증득(samapatti)이란 여덞 가지가 있다.그 증득이 다르므로 인식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 증득의 경지를 통해서도 자아가 여러가지 인식을 얻을(nanattasanni)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증득은 하나의 인식으로 확립되기 때문에 증득의 경지를 통해서는 단일한 인식을 얻는다(ekattasanni)고 했다(DAT.i.224)
7-1-10.다양한 인식을 가진다.(28)
(10) '자아는 다양한 인식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 주석서에는 증득이 아닌 경지(asamapannaka)을 통해서 다양한 인식이 생긴다고 한다.(Ibid)복주서에는 증득이 다르므로 인식도 다르지만여기서는 밖의 보통의 여러가지 거친 대상을 통해서 다양한 인식이 생긴다고 설명한다.(DAT.i.224)
7-1-11.제한된 인식을 가진다.(29)
(11) '자아는 제한된 인식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 주석서에서는 작은 까시나(parittakasina)를 통해서 생긴 인식이라고 설명한다.(DA.i.119) 작은 까시나란 아직 확장하지 않은 표상을 뜻한다.
7-1-12.무량한 인식을 가진다.(30)
(12) '자아는 무량한 인식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 주석서에서는 큰 까시나(vipulakasina)를 통해서 생긴 인식이라고 설명한다.(DA.i.119) 큰 까시나란 확장한 표상을 말한다.
7-1-13.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31)
(13)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천안통을 얻어서 그 하늘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제3선에 들어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고 자아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ekantasukhi)이라고 거머쥔다.(Ibid)
7-1-14.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32)
(14)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지옥(niraya)에 태어나서 괴로움을 겪는 중생들을 보고서 자아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라고 거머쥔다.(Ibid)
7-1-15.행복한 것이기도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33)
(15) '자아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인간세상에 태어나서 중생들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보고서 이렇게 거머쥔다.(Ibid)
7-1-16.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34)
(16) '자아는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 행복도 괴로움도 없이 오직 평온하게 머무는 광과천(Vehapphaladeva)의 범천들을 보고서 이렇게 거머쥔다.(Ibid) 광과천(廣果天)은 색계 4선천의 첫 번째 천상인데 이 천상은 다른 천상보다 그 과보가 수승하기 때문에 광과천이라 부른다고 한다.
7-1-17.사후에 자아는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 - 이것 이외에는 없다.
2.39 "비구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은 참으로 이런 16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진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진 자아를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진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진 자아를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16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16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것이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7-1-18.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2.40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바나와라가 끝났다.
7-2.사후에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존재한다.(8가지/ 35∼42)
3.1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8가지 기반에 의해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하는가? 그들은
①'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②'자아는 물질을 갖지 않는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③'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 라고 천명한다.
④'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⑤'자아는 유한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⑥'자아는 무한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⑦'자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 라고 천명한다.
⑧'자아는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7-2-1.사후에 자아는 인식 없이 존재한다 - 이것 이외에는 없다.
3.3 "비구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은 참으로 이런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8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8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7-2-2.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3.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3.인식을 가지는 것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8가지/43∼50)
3.5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8 가지 기반에 의헤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를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8가지 기반에 의해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를 천명하는가?
3.6 "그들은
①'자아는 물질(色)을 가진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②'자아는 물질을 갖지 않는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③'자아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④'자아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⑤'자아는 유한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⑥'자아는 무한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⑦'자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⑧'자아는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죽고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천명한다."
7-3-1.인식을 가지지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이것 외에는 없다.
3.7 "비구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은 참으로 이런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자를 말하고,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자아를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사후에 속하는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자를 말하고, 사후에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자아를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8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8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7-3-2.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3.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4. 사후단멸론자들
3.9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7가지 기반에 의해 단멸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와 존재 않음을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한 7가지 기반에 의해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단멸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와 존재 않음을 천명하는가?"
7-4-1.사후단멸론자-물질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51)
3.1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다.
'존자여 이 자아는 물질을 가졌고, 사대(四大)로 이루어졌으며, 부모에게 생겨났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괴와 존재하지 않음을 천명한다."
*물질적인 몸(rupa-kaya)을 두고 인간의 자아(manussattabhava)라고 하며 이것이 바로 자아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DA.i.120) 그리고 이 자아는 이 몸이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 단멸론이다. 유물론적인 사고이다.
7-4-2.사후단멸론자-욕계 천상의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52)
3.11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천상에 있고 물질을 가졌고 욕계에 있고 음식을 먹습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두 번째 경우는 천상의 자아(dibbattabhava)를 주장한다. 여기서 천상이란 신들의 세상에 태어난 것을 말하며 욕계에 있다는 것은 여섯 가지 욕계 천상에 태어난 것을 말한다.(Ibid) 즉 욕계 천상에 태어난 중생들이 이런 천상에서의 목숨이 다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견해를 가지는 것이 두 번째 단멸론이다.
7-4-3.사후단멸론자-색계 천상의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53)
3.12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천상에 있고 형상을 가졌고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졌으며 감각의 근(根)이 구족합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마음으로 이루어졌고(manomaya)'라는 것은 선(禪)의 마음(jhana-mano)에 의해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 범천의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과 다른 경지 즉 색계 천상에 있는 자를 두고 한 말이다.(Ibid) 이것은 색계 천상에 태어난 중생들이 색계 천상에서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는 견해를 가지는 경우이다.
7-4-4.사후단멸론자-공무변처의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54)
3.13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접촉에 대한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에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얻은 자의 자아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괴와 없어짐을 천명한다."
7-4-5.사후단멸론자-식무변처의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55)
3.14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의식(識)'라고 하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얻은 자의 자아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괴와 없어짐을 천명한다."
7-4-6.사후단멸론자-무소유처의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56)
3.15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은 자의 자아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괴와 없어짐을 천명한다."
7-4-7.사후단멸론자-비상비비상처의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존재치않는다(57)
3.16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얻은 자의 자아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7-4-8.사후단멸론자들-이것 이외에는 없다.
3.17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7가지 기반에 의해 단멸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와 존재 않음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단멸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와 존재 않음을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7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7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7-4-9.사후단멸론자들-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3.1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5.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3.19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5가지 기반에 의해 지금.여기(現法)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한 5가지 기반에 의해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지금.여기에서의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가?"
7-5-1.지금여기-나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마음껏 즐기기 때문에(58)
3.2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다.
'존자여, 이 자아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쾌락을 마음껏 충분히 즐깁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자아는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7-5-2.지금여기-희열과 행복이 있는 初禪을 구족하여 머물기 때문(59)
3.21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존자여, 참으로 감각적 쾌락이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이며, 변하고 바뀌는 성질이기 때문에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자아는 감각적인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는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분리됨으로부터 생겨난 희열(喜.기쁨)과 행복(樂.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7-5-3.지금여기-삼매의 희열과 행복이 있는 二禪을 구족하여 머물기에(60)
3.22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가 이 있는 한 초선은 거칠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자아는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7-5-4.지금여기-희열이 사라진 正念定知의 三禪을 구족하여 머물기에(61)
3.23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희열에 의지한 제2선(二禪)은 거칠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자아는 희열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定知)을 지녀, 행복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행복이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7-5-5.지금여기-버리고도 청정한 捨念淸靜의 四禪을 구족하여 머물기에(62)
3.24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자아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행복이라는 내적인 관심이 남아 있는 한 제3선(三禪)은 거칠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자아는 행복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에 기쁨과 슬픔(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평정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을 지닌(捨念淸靜)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자아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7-5-6.지금여기 열반을..-이것 이외에는 없다
3.25 "비구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5가지 기반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지금.여기에서의 구경의 열반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지금.여기에서의 열반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지금.여기에서의 구경의 열반을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5가지 기반에 의하는 것이다.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되어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5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5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7-5-7.지금여기 열반을..-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3.2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이것 이외에는 없다.
3.27 "비구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44가지 기반에 의해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졌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졌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44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44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7.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3.2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1. 62見 (과거로/미래로/지금여기) - 이것 이외에는 없다.
3.29 "비구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은 이들 62가지 기반에 의해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62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이 62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경우는 없다."
8-2. 62見 - 분명히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3.30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편향되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애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철저히 안다. 여래는 이것을 철저히 알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안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철저히 알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정를 분명하게 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집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갈애의 형성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철저히 알았고, 겪어 알아, 갖춘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1. 62가지 견해는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 동요이고 모부림일 뿐.
3.32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3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4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5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이런저럼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4 가지 경우로 어려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6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2 가지 경우로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7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18가지 경우로 과거에 속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8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9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자아가 인식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40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41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괴와 없어짐을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42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5가지 경우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43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35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갈애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느낀 것)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9-2. 62가지 견해는 단지 감감접촉(觸)을 조건한 것이다.
3.45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46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47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48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이런저럼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4 가지 기반에 의해 어려운 말로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49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2 가지 기반에 의해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0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18가지 기반에 의해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1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16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2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자아가 인식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3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4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7가지 기반에 의해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5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5가지 기반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6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4가지 기반에 의해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57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62가지 기반에 의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모든 견해가 지금여기 체험하는 것 혹은 체험한 것(vedayita)에 바탕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꿰뚫어 봐야한다. 체험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체험이란 감각기능(根)-대상(境)-의식(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에 바탕하고 있다. 삼사화합이란 다름 아니 감각접촉(phassa,觸)이다. 그러므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혹은 과거와 미래로의 자아와 세상에 대한 견해와 교설은 모두 감각접촉을 조건한 것이다.
9-3. 62見은 감각접촉(觸) 없이 경험될 수 없다.
3.58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59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0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 가지 기반에 의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1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이런저럼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4 가지 기반에 의해 어려운 말을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2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2 가지 기반에 의해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3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18가지 기반에 의해 과거에 속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4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16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5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자아가 인식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6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8가지 기반에 의해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7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7가지 기반에 의해 중생의 단멸과 파괴와 없어짐을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8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5가지 기반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9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44가지 기반에 의해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70 "비구들이여, 거기서 그 사문·바라문들이 62가지 기반에 의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9-4. 62가지 견해는 감관의 체험이 동요되어 있게되며, 괴로움을 생기게 한다.
3.71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사문·바라문들도,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애매모호하게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우
우연발생론자인 사문·바라문들도,
사후에 (자아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사후에 (자아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사후에 (자아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단멸론자인 사문·바라문들도,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사문·바라문들도,
과거를 모색하는 사문·바라문들도,
미래를 모색하는 사문·바라문들도,
62가지 경우로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바라문들도 그들 모두는
1) 여섯 가지 감각장소(入,處)을 통해
2) (갖가지 대상과 맞닿아) 계속해서 일어나는 감각접촉으로 인해
3) (잘못된 견해의 느낌을) 경험한다.
4) 그런 느낌이 그들에게 갈애를 생기게 하고,
5) 갈애는 집착을 생기게 하고,
6) 집착은 존재를 생기게 하고,
7) 존재는 태어남을 생기게 하고,
8) 태어남은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을 생기게 한다.
9-5. 여섯감관의 작용(五蘊)이 개공(皆空)함을 알아,이 모든 견해를 넘는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감각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맛과 잘못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철저히 안다. 이것이 이들 모든 (견해들)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철저히 안다."
10. 62가지 견해의 그물 -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
3.72 "비구들이여,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은 모두 이 62가지 기반에 의한 그물에 걸린 것이다. 위로 오르는 자들은 그물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위로 오르는 자들은 여기서 그물에 완전히 갇힌채 오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숙련된 어부나 어부의 제자가 아주 미세한 구멍을 가진 그물로 작은 호수의 물에 펼친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에 있는 그물 구멍보다 큰 생명체들은 모두 이 그물에 걸렸다. 위로 오르는 것들은 그물에 걸린 채 오른다. 위로 오르는 것들은 여기서 그물에 완전히 갇힌 채 오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천명하는 사문·바라문들은 모두 이 62가지 기반에 의한 그물 안에 있다. 위로 오르는 자들은 그물에 걸린 채 오른다. 위로 오르는 자들은 여기에 그물에 완전히 갇힌 채 오른다."
11.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린 채 머무름
3.73 "비구들이여, 여래의 몸은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린 채 머물러 있다. 그런 몸이 머무는 동안에 신과 인간들은 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멸하여 생명이 다하면 신과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 예를 들면 망고 열매들이 달려있는 가지가 있다 하자. 만일 그 가지가 끊어지면 그 가지에 달려있는 망고는 모두 떨어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래의 몸은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란 채 머물러 있다. 그런 몸이 머무는 동안에 신과 인간들은 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멸하여 생명이 다하면 신과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
12. 뜻의 그물/법의 그물/범천의 그물/견해의 그물/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
3.74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 법문을
뜻의 그물(義網)이라고 받아 지녀라.
법의 그물(法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범천의 그물(梵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견해의 그물(見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無上戰勝)라고도 받아 지녀라."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기뻐하며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찬탄하였다.
이러한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이 설해졌을 때 일만의 세계가 진동하였다.
범망경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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