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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초기불교의 四大教法과 대승불교의 四依止

2022년 여름부터 백장암 대중은 매 안거 기간에 실상사 대중과 한 달에 한 번 만나 차담을 나누기로 약속하였다. 오늘이 바로  1달에 1회 열리는 산중차담일이라 백장암 대중은 실상사로 오전 9시 30분까지 내려갔다. 중도와 팔정도에 대한 이야기 끝에 도법스님은 대승불교에서 법을 판단하는 기준인 4의지(catvāri pratisaranāni­)를 거론하셨다. 대승열반경에는  4가지 법의 판단 기준을 사의지(四依止­)라고 표현하는데 초기경(D16)에서는 사대교법(Catuma­hāpa­desa­)이라말한다. 제목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대승열반경에의  4가지 법의 판단 기준(四依止­)은 다음과 같다. 1.依義不依語 2.依了義不依不了義 3.依法不依人 4.依智不依識. 평상시에 도법스님은 의지(四依止­)를 근거로 뜻(artha)에 의지하지 문장(vyañjana)에 의지하지 말라고 자주 말한다. 사대교법(四大教法)에서는 누가 어떤 말을 하던지 오직 '경(經)과 율()'에 견주어 판단하는데 의지(四依止­)에는 율()에 견주어 보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경(經)도 소승경은 배우지 말라고한다. 부처님은 사대교법(四大教法)을 말했지 의지(四依止­)를 설하지 않았다. 대승열반경에 나타나는 용어들이나 내용을 보면 알수 있다. 대승은 초기경의 사대교법(四大教法)을 모방해서 그들이 만든 경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의지(四依止­)를 만든 것이다. 대승불교의 사의지(四依止­)에 대한 설명을 보자. 

 

 

1.依義不依語

대승불교의 依義不依語는 뜻(artha)에 의지하지 문장(vyañjana)에 의지하지 말라고 설한다. 대승의 열반경에서는 "문자장구(文字章句)는 허황되고 진실하지 않고 성문이나 연각의 소견(所見)이다.이러한 문자언어에 의지하면 망상번뇌가 더욱 늘어나거나 성문이나 연각의 치우친 모습에 떨어져 대승의 대반열반(大般涅槃)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설명한다. 뜻이란 것은 단어(pada)와 문장(byañjana)으로 드러나는 것인데, 문장(vyañjana)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멀다. 대승의 말이 맞다면 부처님은 전도선언에서 "의미(sāttha)와 문장(sabyañjana)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 어지럽힘 경 (A2:2O)에서 “비구들이여, 단어(pada)와 문장(byañjana)이 잘못 구성될 때 뜻(attha)도 바르게 전달되지 않는다(dunnayo).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이 정법(saddhamma)을 어지럽히고 사라지게 한다." 고 경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2.依了義不依不了義

대승불교의 依了義不依不了義는 "바른 뜻을 담은 경전(了義經)에 의지하고 바르지 못한 경전(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면서 바르지 못한 경전(不了義經)에 구분(九部)교를 들고 있다. 오부 니까야로 정리되기 이전에 '9분교(경(sutta),응송(geyya),수기(veyyākaraṇa),게송(gāthā),감흥어(udāna),여시어(tivuttaka),본생담(jātaka),미증유법(abbhutadhamma),문답(vedalla))'가 부처님 말씀의 전부였는데 이것을 불요의경(不了義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전부인 '구분교'를 부정하고 대승방등12부경(大乘方等十二部經)이 바른 뜻을 담은 경전(了義經)에 의지하라고 말한다. 초기경전을 바르지 못한 경전(不了義經)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니까야를 가장 권위있는 경(經)이라고 판단하는 불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 

 

 

3.依法不依人

 대승열반경에서 "법에 의지함이란 곧 법성(依法者即是法性)이요,  사람을 의지하지 않음이란 곧 성문(不依人者即是聲聞)이다"라고 설명한다.  대반열반경(D16)에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attadīpā]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attasaraṇā] 머물라"고 가르치며 자신을 섬으로 삼는 것은 4념처를 닦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대승교도들은 법성(法性)에 의지하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법성(法性)에 맞는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는가? 개인의 판단에 맡기게 된다. 결국 법성(法性)에 의지하라고 말은 수백년동안 결집으로 공인된 경과 율을 부정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것이라고 볼수 있다. 대승열반경에는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 40년 동안에는 염부제에서 널리 유포되다가 그런 뒤에 이내 열반경이 땅에 묻혀버릴 것이다(我般涅槃後四十年中 於閻浮提廣行流布 然後乃當隱沒於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2승의 사람이 대반열반경을 싫어해서 그렇다는 것이다.(二乘之人亦復如是 憎惡無上大涅槃經). 이런 말을 어찌 정등각자인 부처님이 할  수 있을까? 이런 내용만 보아도 대승 열반경이 어떻게 만들어진 경전이고 당시에 불자들에게 어떠한 취급을 받았는지 알수 있다. 

 

 

4.依智不依識

대승불교는 依智不依識  즉, 지혜(jñāna)에 의지하고 식(vijñāna)에 의지하지 말라고한다.  대승열반경에는 이른 바 지혜라는 것은 곧 여래이니(所言智者即是如來), 여래가 곧 법신임을 안다면(若知如來即是法身) 이러한 참 지혜가 의지해야 한다(如是真智所應依止)고 말한다. 범부에게 지혜가 있을리 만무하건만 처음부터 지혜에 의지하라고 말하면 일반인들이 어떻게 수행하라는 말인가? 실천하기 어려운 이러한 기준을 내세우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또한 경전이나 필요한 물건을 바쳐드리되(經書什物悉以奉上), 그 경서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及其經書亦不應依)라는 표현들은 이러한 대승불교의 4의지(四依止­)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알수 있게 한다. 즉,  대승불교의 4의지(四依止­)라는 것은 초기경의 사대교법(Catuma­hāpa­desa­)을 모방하여 대승경전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짝퉁논리에 불과 한것이다. 실제로 열반경에서는 선문승들이 "방등 대승경전이란 것은 모두 천마(天魔) 파순(波旬)이 말한 것이다(所有方等大乘經典悉是天魔波旬所說)이라 비방한다는 표현도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이 열반경이 사이비경전이라고 평가되었음을 말하는 증거일것이다.

 

 

 

또 성문승은 불요의이며 위없는 대승은 요의이다. 성문이 말한 것을 증득하여 알아라 함은 불요의이며 보살이 말한 것을 증득하여 알아라 함은 요의이다. 만일 여래가 음식으로 자란다 하면 불요의이며 만일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다 하면 요의이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는 것이 나무가 다하여 불이 꺼짐과 같다 하면 그것은 불요의이며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 하면 그것은 요의이다.성문승의 법은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성문승을 말하였으므로 마치 장자가 아들에게 반쪽 글자[半字]를 가르친 것과 같다.

又聲聞乘名不了義無上大乘乃名了義若言如來無常變易名不了義若言如來常住不變是名了義聲聞所說應證知者名不了義菩薩所說應證知者名爲了義若言如來食所長養是不了義若言常住不變易者是名了義若言如來入於涅槃如薪盡火滅名不了義若言如來入法性者是名了義.聲聞乘法則不應依何以故如來爲欲度衆生故以方便力說聲聞乘猶如長者教子半字

 

 

모든 비구들이 제각기 종과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받아두면서도 정한지 부정한지도 알지 못하고, 계율인지 계율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그런 비구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그들과 함께 빛[光]을 섞으면서도 티끌은 함께하지 않고 자기의 행할 곳과 부처님의 행하는 곳을 잘 분별하여 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바라이죄를 범한 것을 보고도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에 나타나서 바른 법을 세우고 보호하게 하려는 까닭으로 침묵하며 다스리지 않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런 사람은 법을 보호하기 위한 까닭에 비록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파계라고 이름하지 않는다.見諸比丘各各受畜奴婢僕使不淨之物淨與不淨一切不知是律非律亦復不識是人爲欲調伏如是諸比丘故與共和光不同其塵自所行處及佛行處善能別知雖見諸人犯波羅夷默然不擧何以故我出於世爲欲建立護持正法是故默然而不擧處善男子如是之人爲護法故雖有所犯不名破戒

 

 

 

 

 

 


 

[참고자료]

 

초기불교 열반경 四依 ­Catuma­hāpa­desa­

 

4.7. 세존께서는 거기 보가나가라에서 아난다 탑묘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큰 권위[大法教]를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告諸比丘 當與汝等說四大教法。諦聽。諦聽。善思念之。諸比丘言。唯然。世尊。願樂欲聞。何謂為四。

 

 

4.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sammukhā metaṁ, āvuso, bhagavato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큰 권위이다.”

若有比丘作如是言。諸賢。我於彼村.彼城.彼國。躬從佛聞。躬受是教。從其聞者。不應不信。亦不應毀。當於諸經推其虛實。依律.依法究其本末。若其所言非經.非律.非法。當語彼言。佛不說此。汝謬受耶。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違。賢士。汝莫受持。莫為人說。當捐捨之。若其所言依經.依律.依法者。當語彼言。汝所言是真佛所說。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應。賢士。汝當受持。廣為人說。慎勿捐捨。此為第一大教法也。

 

 

4.9.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장로들과 유명한 스승(sathero sapāmokkho.)이 계시는 승가가 있습니다.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승가의 면전에서 듣고 승가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일단]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ṃ vadeyya: ‘amukasmiṃ nāma āvāse saṅgho viharati sathero sapāmokkho. Tassa me saṅghassa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ayaṃ dhammo ayaṃ vinayo idaṃ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ṃ neva abhinan­d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ṃ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큰 권위이다.”

 復次。比丘作如是言。我於彼村.彼城.彼國。和合眾僧.多聞耆舊。親從其聞。親受是法.是律.是教。從其聞者。不應不信。亦不應毀。當於諸經推其虛實。依法.依律究其本末。若其所言非經.非律.非法者。當語彼言。佛不說此。汝於彼眾謬聽受耶。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違。賢士。汝莫持此。莫為人說。當捐捨之。若其所言依經.依律.依法者。當語彼言。汝所言是真佛所說。所以者何。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應。賢士。汝當受持。廣為人說。慎勿捐捨。此為第二大教法也。

 

 

4.10.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많은 장로 비구들이 계십니다.(sambahulā therā bhikkhū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장로들의 면전에서 듣고 장로들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일단]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만일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큰 권위이다.”

 復次。比丘作如是言。我於彼村.彼城.彼國。眾多比丘持法.持律.持律儀者。親從其聞。親受是法.是律.是教。從其聞者。不應不信。亦不應毀。當於諸經推其虛實。依法.依律究其本末。若其所言非經.非律.非法者。當語彼言。佛不說此。汝於眾多比丘謬聽受耶。所以然者。我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違。賢士。汝莫受持。莫為人說。當捐捨之。若其所言依經.依律.依法者。當語彼言。汝所言是真佛所說。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應。賢士。汝當受持。廣為人說。慎勿捐捨。是為第三大教法也。

 

 

4.11.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아무개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한 분의 장로 비구가 계십니다.(eko thero bhikkhu viharati bahussuto āgatāgamo dhammadharo vinayadharo mātikādharo.) 그런 나는 이것을 그 장로의 면전에서 듣고 장로들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일단]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큰 권위이다.”

復次。比丘作如是言。我於彼村.彼城.彼國。一比丘持法.持律.持律儀者。親從其聞。親受是法.是律.是教。從其聞者。不應不信。亦不應毀。當於諸經推其虛實依法.依律究其本末。若所言非經.非律.非法者。當語彼言。佛不說此。汝於一比丘所謬聽受耶。所以然者。我依諸經.依法.依律。汝先所言。與法相違。賢士。汝莫受持。莫為人說。
當捐捨之。若其所言依經.依律.依法者。當語彼言。汝所言是真佛所說。所以然者。我依諸經.依律.依法。汝先所言。與法相應。賢士。當勤受持。廣為人說。慎勿捐捨。是為第四大教法也。

 

 

 

 


 

 

 

대승불교 四依

 

사의 초문 제43(四依初門第四十三)

 


1.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음[依法不依人]

dharmatāpratiśaraṇatā na pudgaladṛṣṭyupalambho na grāhyābhiniviṣṭatā

실상[實相]과 그 실상을 따르는 일체의 선법을 모두 법이라 하며 또는 법신[法身]’이라고도 한다. 만약 실상법신[實相法身]을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으면, 만행공덕이 다 갖추어져 일체가 청정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을 법 의지함[依法]’이라 한다. ‘사람에 의지하지 않음[不依人]’이란, 사람은 오온으로 이루어 진 것이며 몸의 상호를  거짓으로 이름한 것[假名]이니, 만약 이 몸의 상호를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으면 만행공덕이 전도[顚倒]되어  마침내 법신[法身]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不依人]’고 한다.
무슨까닭인가? 열반을 설할때 마왕파순이 부처의 모습을 할수 있는데 하물며 네가지에 의지하는 사람의 모습을 못하겠는가? 비록 범부이더라도 설한 바와 행하는 바가 실상과 상응하면 의지하고 믿을 수 있으며, 비록 부처의 모습을 나타내더라도 설한 바와 행하는 바가 실상의 법에 어그러지는 자를 의지해선 안 된다. 하물며 나머지 사람이랴.
一依法不依人 依法者實相及一切隨順實相善法通名為法亦名法身若依實相法而修諸波羅蜜萬行功德皆悉具足一切清淨能至菩提故云依法不依人者人是攬五陰所成假名相好之身若依相好之身修諸波羅蜜萬行功德則皆墮顛倒終不得見真實法身故云不依人也所以者何如涅槃說魔王波旬尚能作佛況不能作四依之是故雖是凡夫若所說行與實相相應可依信雖現佛身相好若所說行乖實相則不應依況餘人也

 

 


2.바른 뜻을 담은 경전에 의지하고 바르지 못한 경전에 의지하지 않음[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nītārthasūtrāntapratiśaraṇatā na neyārthasaṃvṛtyabhiniveśaḥ

‘요의경'에 의지함’이란, 일체의 대승과 방등 등 부처님의 가르침[十二部經]이 모두 중도불성과 실상의 여여한 이치를  밝혔으니, 만약 이 가르침에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으면 만행공덕이 마음과 중도와 상응하여 능히 불성여래장의 이치를 본다.고로 요의경에 의지해야한다.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위 성문이 행하는 바의 경전[九部] 가운데 중도불성·여래장의 이치를 닦지 않는 것이니,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해 모든 바라밀을 닦으면 만행공이 이변[二邊]에 떨어져 불성과 여래장의 이치를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요의경을 의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二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依了義經者謂諸大乘方等十二部經中皆明中道佛性實相如如之理若依此教而修諸波羅蜜行功德則心與中道相應能見佛性如來藏故云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者所謂聲聞所應行九部中不修中道佛性如來藏若依此教而修諸波羅蜜萬行功德二邊不見佛性如來藏理故云不依不了義經也

 



3.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음[依義不依語]

arthapratiśaraṇatā na vyañjanapratiśaraṇatā

‘뜻[義]’이란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이니, 만약 이 중도실상에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닦으면 만행공덕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길이 멸하여 전도된 것을 없애어 마음과 마음이 고요하여[心心寂滅] 자연히 한량없는 선정에 들어간다. 이것을 ‘뜻에 의지함[依義]’이라 한다. ‘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세간의 말이니, 문자장구(文字章句)는 허황되고 진실하지 않으며 나아가 성문이나 연각의 소견(所見)이다. 진제(眞諦)·열반에도 또한 문자가 있지만 법화경의 화성의 비유같은 것이다. 이러한 문자언어에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과 만행공덕을 닦으면 논쟁·언쟁·망상번뇌가 더욱 늘어나거나 성문이나 연각의 치우친 모습에 떨어져 대승의 대반열반에 이르지 못한다. 고로 ‘말에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三依義不依語 依義者義是中道第一義若依中道第一義諦而修諸波羅蜜萬行功德則言語道斷心行處滅破諸顛倒心心寂滅自然流入無量禪定故云依義不依語語是世間語文字章句虛誑無實乃至二乘所見真諦涅槃亦有文字故法華經以化城喻若依如是文字言語而修諸波羅蜜行功德則增長諍訟妄想煩惱或墮二乘之不到大乘大般涅槃故云不依語也

 

 

 

 


4.지혜에 의지하고 잘못된 인식에 의지하지 않음[依智不依識]

jñānapratiśaraṇatā na vijñānapratiśaraṇatā

‘지혜[智]에 의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꿰뚫어 비추는 것이다. 만약 바르게 관찰하는 지혜로 마음이 집착할 바 없게 돼 모든 바라밀과 만행공덕을 닦으면 능히 일체 번뇌와 끝없는 생사의 업을 깨뜨리고 반드시 대승 열반의 상(常)·락(樂)·아(我)·정(淨)을 얻게 되므로 ‘지혜에 의지한다’고 한다. ‘식(識)’이란 망상의 마음을 말하니, 만약 망식[妄識]에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과 만행공덕을 닦으면 일체 번뇌와 생사에 얽매여 모든 고통들이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식(識)에 의지하지 말라’고 한다.
四依智不依識 依智者照了之心名之為若於正觀智慧心無所著而修諸波羅蜜萬行功德則能破散五住煩惱及無邊生死之業必獲大乘涅槃常樂我淨故云依智依識者妄想之心名之為識若依妄識而修諸波羅蜜萬行功德則搆集五住煩惱二邊生死之業是以流轉無際眾苦不息故云不依識

 

 

 

 

 


 

 

 

 

 

 

四依止를 설하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6권

 

大般涅槃經卷第六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6권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북량(北涼) 천축삼장 담무참(曇無讖) 역
   
如來性品第四之三 4-3. 여래성품(如來性品) 
   
「善男子! “선남자야, 
是大涅槃微妙經中, 이 대열반이라는 미묘한 경전 가운데   
有四種人,能護正法、 네 종류 사람이 있어 능히 정법을 수호하고, 
建立正法、憶念正法, 정법을 건립하고, 정법을 억념(憶念)하며  
能多利益憐愍世間, 많은 이익으로 세간을 연민(憐愍)하고,  
為世間依安樂人天。 세간의 의지가 되어 인천(人天)을 안락케 하나니, 
何等為四? 무엇이 그 넷인가? 
有人出世具煩惱性是名第一, 어떤 사람은 세상을 벗어났으되 
  번뇌의 성품을 지녔으니 이것이 첫째요, 
須陀洹人、斯陀含人是名第二, 수다원(須陀洹)인 사람이나 
  사다함(斯陀含)인 사람이 둘째이며, 
阿那含人是名第三, 아나함(阿那含)인 사람이 셋째요, 
阿羅漢人是名第四。 아라한(阿羅漢)인 사람이 넷째이니, 
是四種人出現於世, 이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출현하여 
能多利益憐愍世間, 많은 이익으로 세간을 연민하고 
為世間依安樂人天。 세간의 의지가 되어 인천을 안락케 하느니라. 
   
「云何名為具煩惱性? 무엇을 번뇌의 성품을 가졌다고 하는가? 
若有人能奉持禁戒, 만일 어떤 사람이 금계를 받들어 지니고, 
威儀具足,建立正法, 위의가 구족하며, 정법을 세우며, 
從佛所聞,解其文義, 부처님께 들은 바에 그 뜻을 이해하고, 
轉為他人分別宣說, 다른 사람에게 분별하여 연설하니,  
所謂少欲是道,多欲非道, 소위 소욕(少欲)이 도(道)요, 다욕은 도가 아니라는  
廣說如是八大人覺, 이러한 여덟 가지 대인의 깨달음을 자세히 설명하여  
有犯罪者教令發露,懺悔滅除, 범죄자는 죄를 털어 놓고 참회하여 멸제하게 하며, 
善知菩薩方便所行祕密之法, 보살의 방편으로 행하는 비밀한 법을 잘 알더라도    
是名凡夫,非第八人。 이는 범부요 제팔인(第八人;忍)이 아니니, 
第八人者,不名凡夫,名為菩薩, 제팔인이란 범부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하되 
不名為佛。 부처라고 하지는 않느니라.
「第二人者名須陀洹、斯陀含, 두번째 사람[第二人]은 수다원과 사다함이라 하여, 
若得正法,受持正法, 만약 정법을 얻어 간직하여 지키고, 
從佛聞法,如其所聞, 부처님을 쫓아 법을 들었거든 들은 바와 같이 하며,  
聞已書寫,受持讀誦, 써서 베끼고 수지독송하면서 
轉為他說。 남에게 설해 전파한다거나,  
若聞法已,不寫不受、 또 법을 듣고서도 쓰지도 받지도 않고 
不持不說, 지키지도 설하지도 않고,  
而言奴婢不淨之物佛聽畜者, 노비나 부정한 물건을 축적하도록 
  부처님이 허락하셨다고 하는 것은 
無有是處, 옳지 않다고 한다면, 
是名第二人。 이것을 두번째 사람이라 하거니와, 
如是之人未得第二、第三住處*, 이런 사람은 아직 제2, 제3 주처(住處)를 얻지 못하였으되 
名為菩薩,已得受記。 보살이라 하고 이미 수기를 얻었느니라.
 
   
「第三人者名阿那含, 세번째 사람[第三人]은 아나함이라 하는데, 
阿那含者, 아나함이란  
誹謗正法若言聽畜奴婢、 정법을 비방하여 노비나 하인이나 
僕使、不淨之物, 부정한 물건의 축적을 허락하셨다 하거나, 
受持外道典籍、書論, 외도들의 경과 논서를 받아 지니고    
及為客塵煩惱所障, 객진(客塵) 번뇌에 장애를 받게 되어  
諸舊煩惱之所覆蓋, 온갖 묵은 번뇌에 덮여 있거나, 
若藏如來真實舍利, 또 여래의 진실한 사리(舍利)를 간직하고서도   
及為外病之所惱害, 외부의 병(病)에 시달리게 되거나    
或為四大毒蛇所侵, 혹은 4대(四大) 독사의 침해를 받게 된다거나, 
論說我者,悉無是處; 아(我)를 논설하는 이런 것들은 다 옳지 못하고,  
若說無我,斯有是處。 무아(無我)를 설해야 옳은 것이며,   
說著世法,無有是處; 또 세간법에 집착하여 설하면 옳지 않고 
若說大乘相續不絕, 대승이 계속되어 끊기지 않게 말한다면 
斯有是處。 이것이 옳은 것이요,  
若所受身有八萬虫, 또 받은 몸에 8만의 벌레가 있다 하면 
亦無是處; 또한 옳지 않고, 
永離婬欲乃至夢中不失不淨, 음욕을 영원히 떠나서 
  꿈에라도 부정하다는 생각을 잃지 말아야  
斯有是處。 이것이 옳은 것이며,   
臨終之日生怖畏者, 임종하는 날 두려움을 내는 것도 
亦無是處。 역시 옳지 않다고 하느니라. 
阿那含者為何謂也? 아나함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是人不還。 이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不還].  
如上所說所有過患,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지고 있던 허물[過患]이 
永不能污往返周旋。 영원히 더럽히지 못하고 오가며 주위를 맴돈다. 
名為菩薩,已得受記, 보살이라 이름하고 이미 수기를 얻아서  
不久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머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是則名為第三人也。 이것을 제3인(第三人)이라고 하느니라.
   
「第四人者名阿羅漢, 네번째 사람[第四人]은 아라한이라 하는데, 
阿羅漢者, 아라한이란 
斷諸煩惱,捨於重擔, 모든 번뇌를 끊어 무거운 짐을 버리고,   
逮得己利,所作已辦, 자기의 이익을 얻음에 할 바를 마쳐서   
住第十地,得自在智; 제10지에 머무는 자재한 지혜를 얻었으며,  
隨人所樂種種色像, 사람이 좋아하는 갖가지 모습을 
悉能示現; 다 시현할 수 있으며, 
如所莊嚴欲成佛道, 장엄한 대로 불도를 이루려면 
即能得成。 곧 이룰 수 있으니,   
能成如是無量功德, 이렇게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였기에 
名阿羅漢。 아라한이라 한다. 
是名四人出現於世, 이 네 종류 사람이 세간에 출현하여 
能多利益憐愍世間, 많은 이익으로 세간을 연민하고 
為世間依安樂人天, 세간의 의지가 되어 인천을 안락케 하거니와,  
於人天中最尊最勝, 인천 가운데 가장 높고 뛰어남이 
猶如如來,名人中勝, 마치 여래와 같기에 인중승(人中勝)이라 하여 
為歸依處。」 귀의처(歸依處)가 되는 것이니라.”
   
迦葉白佛言:「世尊!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我今不依是四種人。 저는 이 네 종류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나이다. 
何以故?如《瞿師羅經》中, 왜냐하면 구사라경(瞿師羅經)에서 
佛為瞿師羅說: 부처님이 구사라에게 말씀하시기를 
『若天魔梵為欲破壞,變為佛像,  ‘천마나 범천들이 파괴시키고자  
  부처님의 모습으로 변해  
具足莊嚴三十二相、八十種好、 32상과 80종호를 구족히 갖추고서,    
圓光一尋,面部圓滿猶月盛明, 둥근 광명은 한 길이 되게 하고  
  얼굴은 원만하기 보름달 같이 하고  
眉間毫相白踰珂雪, 미간의 백호상은 옥이나 눈보다 희게 하여  
如是莊嚴來向汝者, 이렇게 장엄하고 너에게 오리니,  
汝當撿校定其虛實, 너는 마땅히 잘 살피고 그 허실을 결정하여  
既覺知已,應當降伏。』 기왕 깨달아 알았거든 항복시켜야 한다.’ 하셨으니,  
世尊!魔等尚能變作佛身, 세존이시여, 마구니 같은 것이 
  부처님 몸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데 
況當不能作羅漢等四種之身, 하물며 아라한 등의 네 가지 몸으로 변신하여 
坐臥空中, 공중에서 앉고 눕고, 
左脇出水,右脇出火, 왼쪽 옆구리로는 물을 뿜고, 
  오른쪽 옆구리로는 불을 뿜으며, 
身出烟炎,猶如火聚? 몸에서 연기 뿜어내기를 
  불덩이 같이 할 수 없겠나이까?  
以是因緣,我於是中, 이런 인연으로 저는 그 가운데 
心不生信。 믿음이 생기지 않거니와, 
或有所說,不能稟受, 혹 누가 말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고, 
亦無敬念,而作依止。」 공경하여 의지할 마음도 없나이다.”
   
佛言:「善男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於我所說若生疑者,尚不應受, 내가 하는 말에도 의심이 나면 
  받아들이지 않을 터인데, 
況如是等? 하물며 그런 것들이겠느냐? 
是故應當善分別知,是善、不善, 그 때문에 잘 분별하여 이것이 선인지 불선인지, 
可作、不可作, 해도 좋은지 해서는 안 되는지를 알아서   
如是作已,長夜受樂。 그랗게 행하여야 오랜 낙을 누릴 것이니라. 
善男子! 선남자야, 
譬如偷狗,夜入人舍, 마치 도둑개가 밤에 집에 들어온 것을 
其家婢使若覺知者, 그 집 하인들이 만약 알았거든   
即應驅罵: 곧 꾸짖어 쫓기를,   
『汝疾出去,若不出者,當奪汝命。』  ‘빨리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면   
偷狗聞之,即去不還。 도둑개가 듣고 달아나 다시 오지 않듯이,  
汝等從今,亦應如是降伏波旬, 너희도 이제부터는 그렇게 파순이 항복하도록 
應作是言:『波旬! 말하기를, ‘파순아, 
汝今不應作如是像, 너는 그런 모습을 해서는 안 된다.
若故作者, 만일 고의로 한다면 
當以五繫,繫縛於汝。』 오계(五繫)로 너를 묶어버리겠다.’ 하면 
魔聞是已,便當還去, 파순이 듣고 곧 되돌아 가기를 
如彼偷狗,更不復還。」 도둑개와 같이 하여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라.”
   
迦葉白佛言:「世尊!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如佛為瞿師羅長者說, 부처님께서 구사라(瞿師羅) 장자에게 말씀하셨듯이 
若能如是降伏魔者, 그렇게 마군을 항복시킬 수 있다면  
亦可得近大般涅槃, 대반열반에 가까워진 것일 터인데, 
如來何必說是四人為依止處? 여래께서는 하필 그 네 사람을 의지처라 하시나이까? 
如是四人,所可言說, 그와 같은 네 종류 사람이 말한 바를  
未必可信。」 꼭 믿을 수는 없겠나이다.”
   
佛告迦葉:「善男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如我所說,亦復如是, 내가 망한 바도 그와 같아서 
非為不爾。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善男子! 선남자야, 
我為聲聞、有肉眼者, 나는 육안(肉眼)을 가진 성문들에게  
說言降魔, 마군을 항복시키라 한 것이지  
不為修學大乘人說。 대승을 수학(修學)하는 사람에게 말한 것이 아니다. 
聲聞之人雖有天眼, 성문인 사람은 비록 천안(天眼)이 있으나 
故名肉眼。 오히려 그 때문에 육안이라 하고, 
學大乘者, 대승을 배우는 사람은 
雖有肉眼乃名佛眼。 육안이 있더라도 불안(佛眼)이라고 하는데  
何以故?是大乘經名為佛乘, 왜냐하면 이 대승경전을 불승(佛乘)이라 하고,   
而此佛乘最上最勝。 이 불승은 최상이요 최승(最勝)이기 때문이니라. 
善男子! 선남자야, 
譬如有人勇健威猛, 마치 어떤 사람이 용맹건장하고 위맹(威猛)하여 
有怯弱者常來依附。 겁 많고 약한 자들이 늘 와서 의지하는데,  
其勇健人常教怯者, 그 용맹건장한 사람은 항상 겁약한 자 가르치기를, 
汝當如是持弓執箭,  ‘너희는 마땅히 이렇게 활과 살을 들고, 
修學矟道、長鉤、羂索。 창 쓰는 법과 갈고리 걸기[長鉤]나 
  오랏줄 얽기[羂索]를 배우고 닦아야 한다.’ 하고,   
又復告言: 또 말하기를, 
『夫鬪戰者,雖如履刃,  ‘싸운다는 것이 칼날을 밟는 것 같더라도  
不應生於怖畏之想, 두렵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니, 
當視人天生輕弱想, 인간이나 천신을 보거든 약하다고 가벼이 여기고, 
應自生心作勇健想。 스스로는 용맹건장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或時有人素無膽勇, 혹시 어떤 사람이 담도 용기도 없으면서  
詐作健相, 짐짓 건장한 척  
執持弓刀、種種器仗,以自莊嚴, 활과 칼 같은 여러 병장기를 들어 그럴듯하게 차리고 
來至陣中,唱呼大喚。 진중(陣中)으로 와서 큰소리를 외치거든, 
汝於是人,亦復不應生於憂怖。 너희는 그런 사람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如是輩人,若見汝時不怖畏者, 이런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때의 너를 보면  
當知是人不久散壞,如彼偷狗。』 머지 않아 저 도둑개와 같이 
  흩어져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듯이, 
善男子!如來亦爾,告諸聲聞: 선남자야, 여래도 그러하여 성문들에게 고하기를,
『汝等不應畏魔波旬,  '너희는 마왕 파순을 두려워하지 말라. 
若魔波旬化作佛身,至汝所者, 만일 마왕 파순이 부처님으로 변신하여 너에게 오거든 
汝當精勤堅固其心,降伏於魔。 너는 정근(精勤)하고 마음을 견고히 하여 
  마군을 항복시켜야 한다. 
時魔即當愁憂不樂,復道而去。』 그러면 곧 마군은 걱정스럽고 편치 못해  
  온 길로 가버릴 것이다.’고 하느니라.
善男子! 선남자야, 
如彼健人不從他習, 저 건장한 사람이 남을 쫓아 익히지 않듯이, 
學大乘者亦復如是, 대승을 배우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得聞種種深密經典, 갖가지 깊고 비밀한 경전을 듣고 
其心欣樂不生驚怖。 마음으로 기뻐하며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나니, . 
何以故?如是修學大乘之人, 왜냐하면 이렇게 수학(修學)하는 대승인은 
已曾供養、恭敬、 과거에 무량만억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禮拜過去無量萬億佛故, 공경하고, 예배하였기에 
雖有無量億千魔眾欲來侵嬈, 무량억천의 마군들이 침해하고자 해도 
於是事中終不驚畏。 그런 일에 결코 놀라지 않기 때문이니라. 
   
善男子! 선남자야, 
譬如有人得阿竭陀藥, 마치 사람이 아갈타(阿竭陀) 약을 얻으면 
不畏一切。 아무 것도 두렵지 않은 것은 
毒蛇等畏是藥力故, 독사가 이 약의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亦能消除一切毒等。 또한 모든 독을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듯이,    
是大乘經亦復如是, 이 대승경전도 그와 같아서 
如彼藥力不畏一切諸魔毒等, 마치 그 악의 힘처럼 
  모든 마군의 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亦能降伏令更不起。 또한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항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니라.
   
「復次善男子!譬如有龍, 또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용이   
性甚妬憋,欲害人時, 성품이 거칠어서 사람을 해치려 할 때면  
或以眼視,或以氣噓, 노려 보거나 혹은 기를 뿜어내기에   
是故一切師子、虎豹、豺狼、 그래서 사자나 호랑이, 표범, 늑대, 이리, 
狗犬皆生怖畏, 개들이 다 두려워 하여   
是等惡獸,或聞聲見形, 그 악한 짐승들은 소리를 듣거나 모습을 보거나   
或觸其身,無不喪命。 몸에 닿으면 다 죽게 되고,    
有善呪者以呪力故, 또 어느 주술 잘하는 자[善呪者]가 주술력으로  
能令如是諸惡毒龍、金翅鳥等、 이러한 악독한 용과 금시조(金翅鳥).
惡象師子、虎豹豺狼, 악한 코끼리, 사자, 호랑이, 표범, 늑대, 이리를 
皆悉調善,任為御乘。 모두 다 잘 길들여 마음대로 타고 부리니,   
如是等獸,見彼善呪, 그런 악한 짐승들이 선주자(善呪者)를 보면  
即便調伏。 곧 조복하게 되느니라. 
聲聞緣覺亦復如是, 성문 연각도 그처럼  
見魔波旬皆生恐怖, 마왕 파순을 보고 모두가 두려움을 내지만, 
而魔波旬亦復不生畏懼之心, 마왕 파순은 두려워하지 않고 
猶行魔業。 마업(魔業)을 행하는데,  
學大乘者亦復如是, 대승을 배우는 이도 그와 같아서 
見諸聲聞怖畏魔事, 성문들이 마사(魔事)를 두려워 하여  
於此大乘不生信樂, 대승에 믿는 즐거움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先以方便降伏諸魔, 먼저 방편으로 마군을 항복시켜서  
悉令調善堪任為乘, 다 탈것[乘]으로서의 소임을 감당하도록 
  잘 조복하게 하려는  
因為廣說種種妙法。 인연으로 갖가지 묘법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聲聞緣覺見調魔已, 성문 연각들은 조복된 마군을 봐도 
不生怖畏, 두려워 하지 않고,  
於此大乘無上正法, 이 대승의 무상정법(無上正法)에 
方生信樂,作如是言: 비로소 믿는 즐거움이 생겨 이렇게 말하느니라.  
『我等從今不應於此正法之中  ‘우리도 이제부터는 이 정법 안에서 
而作障礙。』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復次善男子! 또 선남자야, 
聲聞緣覺於諸煩惱而生怖畏, 성문 연각은 번뇌를 두려워하지만  
學大乘者都無恐懼, 대승을 배우는 이는 두려움이 전혀 없으니, 
修學大乘有如是力。 대승을 수학(修學)함에는 이러한 힘이 있기에 
以是因緣先所說者, 그 인연으로 앞서 말한 것은 
為欲令彼聲聞緣覺調伏諸魔, 성문 연각들에게 마군을 조복하라 한 것이지, 
非為大乘。 대승을 위한 것이 아니었느니라. 
是大涅槃微妙經典, 이 대열반이라는 미묘한 경전은 
不可消伏,甚奇甚特。 꺽어 소멸시킬 수 없는 심히 기특(奇特)한 것이라. 
若有聞者,聞已信受, 만일 누가 듣고서 믿음으로 받아서 
能信如來是常住法, 여래가 곧 상주법(常住法)임을 믿을 수 있다면  
如是之人甚為希有, 이런 사람은 몹씨 희유하여   
如優曇花。 마치 우담바라 꽃과 같을 것이며, 
我涅槃後, 내가 열반한 뒤에 
若有得聞如是大乘微妙經典, 어떤 이가 이렇게 미묘한 대승 경전을 듣고서  
生信敬心,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낸다면 
當知是等於未來世百千億劫, 마땅히 알라. 이런 이들은 미래세 백천억 겁 동안 
不墮惡道。」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라.”
   
爾時佛告迦葉菩薩: 이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고하셨다. 
「善男子! “선남자야, 
我涅槃後當有百千無量眾生, 내가 열반한 뒤에 백천의 무량한 중생들이 
誹謗不信是大涅槃微妙經典。」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비방하며 불신할 것이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世尊!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是諸眾生於佛滅後, 그 중생들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久近便當誹謗是經? 언제 쯤에 이 경을 비방하게 되나이까? 
世尊!復有何等純善眾生, 세존이시여, 또 어떤 순수하고 선한 중생이 
當能拔濟是謗法者?」 법을 비방하는 그들을 제도할 수 있겠나이까?”
   
佛告迦葉:「善男子! 부처님이 가섭에게 고하셨다. “선남자야, 
我般涅槃後四十年中, 내가 열반한 뒤 40년 동안에는 
於閻浮提廣行流布, 염부제에서 널리 유포되다가 
然後乃當隱沒於地。 그런 뒤에 이내 땅에 묻혀버릴 것이니라.  
善男子!譬如甘蔗、稻米、 선남자야, 비유컨대 사탕수수, 멥쌀, 
石蜜、乳酥、醍醐, 석밀, 우유, 연유, 제호는 
隨有之處,其土人民, 곳에 따라 그 땅의 백성들이 
皆言是味,味中第一。 이것이 바로 맛이요 맛 중의 제일이라 하지만  
或復有人純食粟米及以稗子, 혹 또 어떤 사람들은 좁쌀과 피[稗]를 먹으면서  
是人亦言我所食者,最為第一, 그 사람들 또한 내가 먹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니,  
是薄福人受業報故。 이 박복한 사람은 나쁜 업보를 받았기 때문이며,   
若是福人,耳初不聞粟稗之名, 그 복 있는 사람은 애초에 좁쌀이나 피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하고 
所食唯是粳糧、 먹을 것이란 오로지 쌀과 
甘蔗、石蜜、醍醐。 사탕수수, 석밀, 제호인 줄만 아느니라.   
是大涅槃微妙經典亦復如是,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그와 같아서 
鈍根薄福不樂聽聞, 근기가 둔하고 박복하여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如彼薄福, 마치 저 박복한 자가 
憎惡粳糧及石蜜等。 쌀과 석밀을 싫어하는 것과 같다. 
二乘之人亦復如是, 2승의 사람도 그와 같이 
憎惡無上大涅槃經。 위없는 대반열반경을 싫어하려니와  
或有眾生其心甘樂聽受是經, 혹 어떤 중생이 이 경전 듣기를 좋아하여 
聞已歡喜,不生誹謗, 듣고서 기뻐하며 비방하지 아니하면 
如彼福人,食於稻糧。 저 복 있는 사람이 쌀을 먹는 것과 같으니라.
   
「善男子!譬如有王,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왕이 
居在山中險難惡處, 산 속 험악한 곳에 살면서 
雖有甘蔗、稻糧、石蜜, 비록 사탕수수와 쌀, 석밀이 있지만  
以其難得,貪惜積聚, 얻기 어려우니 아껴두고 
不敢噉食,懼其有盡, 없어질까 두려워 먹으려 하지 않으면서 
唯食粟稗。 오로지 좁쌀과 피만 먹고 있자  
有異國王聞之憐笑, 다른 나라 왕이 그 딱하고 우스운 사정을 듣고 
即以車載稻糧、甘蔗而送與之。 수레에 쌀과 사탕수수를 실어 보냈는데, 
其王得已,即便分張, 그 왕이 받고서 곧 온 나라 사람들에게 나눠서 
舉國共食。 다 같이 먹게 하였다면  
民既食已,皆生歡喜, 백성들이 먹고 모두 기뻐하며  
咸作是言:『因彼王故,  ‘저 왕 때문에 우리가 
令我得是希有之食。』 이 흔치 않은 것을 먹었다’고 할 것이니라. 
善男子!是四種人亦復如是, 선남자야, 이 네 종류 사람도 그와 같이   
為此無上大法之將, 이 더없이 큰 법의 장수가 되었는데, 
是四種中或有一人, 이 네 종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見於他方無量菩薩, 다른 지방의 무량한 보살들을 보니, 
雖學如是大乘經典, 비록 그러한 대승 경전을 배우고 
若自書寫,若令他書, 스스로 쓰거나 남을 쓰게는 하지만 
為利養故、為稱譽故、 이익을 바라고, 명예를 위하고, 
為了法故、為依止故、 법을 알기 위하고, 의지하려 하고, 
為用博易其餘經故, 다른 경으로 바꾸기 위하는 까닭에   
不能廣為他人宣說, 다른 사람에게 널리 선포될 수 없는지라   
是故持是微妙經典, 그래서 이 미묘한 경전을 
送至彼方與彼菩薩, 그 지방으로 보내 보살들에게 주어서  
令發無上菩提之心,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여 
安住菩提。 보리에 안주케 한다면
而是菩薩得是經已, 그 보살들이 이 경을 얻고서 
即便廣為他人演說, 곧 다른 이들에게 널리 연설하여 
令無量眾得受如是大乘法味。 무량한 대중들로 하여금 
  대승의 법맛을 받게한다면  
皆悉是此一菩薩力, 모두가 그 한 보살의 힘인 것이요, 
所未聞經悉令得聞, 듣지 못하던 경전을 듣게 한 것이라  
如彼人民, 마치 저 백성들이 
因王力故得希有食。 왕의 힘으로 희유한 음식을 먹은 것과 같으니라.
又善男子! 또 선남자야, 
是大涅槃微妙經典所流布處,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이 유포된 곳은 
當知其地即是金剛, 마땅히 알라, 그 땅이 곧 금강이요,  
是中諸人亦如金剛, 그 안의 모든 사람들도 금강과 같아서  
若有能聽如是經者, 만일 누가 이러한 경을 들을 수 있다면 
即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隨其所願悉得成就, 그 소원을 모두 성취하게 되어 
如我今日所可宣說。 내가 오늘에 선설(宣說)하는 것과 같으니라.   
汝等比丘應善受持, 너희 비구들은 잘 수지하여야 하리니, 
若有眾生不能聽聞如是經典, 누구나 이러한 경전을 듣지 못하면  
當知是人甚可憐愍。 몹씨 가련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何以故? 왜냐하면 
是人不能受持 이 사람은 이러한 대승경전의 심오한 이치를 
如是大乘經典甚深義故。」 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世尊!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如來滅後四十年中, 여래가 열반하신 후 40년 동안 
是大乘典大涅槃經 이 대승경전인 대열반경이 
於閻浮提廣行流布, 염부제에 널리 유포되다가 
過是已後沒於地者, 지나고 난 뒤에 땅에 묻혀버린다면 
却後久近復當還出?」 그 후 얼마나 되서야 다시 나오게 되나이까?”
   
佛言:「善男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若我正法餘八十年,前四十年, 나의 정법이 80년 남았을 무렵에 앞의 40년은 
是經復當於閻浮提, 이 경이 염부제에 다시 
雨大法雨。」 큰 법의 비를 내릴 것이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世尊! 가섭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如是經典,正法滅時、 이러한 경전을 정법이 소멸할 때나 
正戒毀時、非法增長時、 정계(正戒)가 허물어질 때, 비법(非法)이 증장할 때, 
無如法眾生時, 여법(如法)한 중생이 없을 때에는 
誰能聽受、奉持、讀誦, 어느 누가 청수(聽受), 봉지(奉持), 독송(讀誦)하며 
令其通利、供養恭敬、 그에 통달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며 
書寫解說? 쓰고 해설할 수 있겠나이까? 
唯願如來,憐愍眾生,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사  
分別廣說, 분별하고 자세히 설하시어 
令諸菩薩聞已受持, 보살들로 하여금 들어서 수지하고,  
持已即得不退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수지하여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爾時佛讚迦葉: 그러자 부처님이 가섭을 칭찬하셨다.
「善哉,善哉!善男子! “참으로 장하도다. 선남자야, 
汝今善能問如是義。 네가 지금 이러한 이치를 물을 수 있다니. 
善男子!若有眾生, 선남자야, 만일 어느 중생이 
於熙連河沙等諸佛所發菩提心, 희련(熙連)강 모래알과 같은 부처님 처소에 
  보리심을 발하여야 
乃能於是惡世受持如是經典, 마침내 이 악한 세상에서 이런 경전을 수지하고 
不生誹謗。善男子! 비방하지 않을 것이니라. 선남자야, 
若有能於一恒河沙等 만일 누가 1항하사와 같은 
諸佛世尊發菩提心, 제불세존께 보리심을 세우거든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런 뒤에 악한 세상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愛樂是典, 이 경전을 좋아하게 되겠으나      
不能為人分別廣說。 사람들에게 분별하여 자세히 설할 수는 없고,  
善男子!若有眾生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於二恒河沙等佛所發菩提心, 2항하사와 같은 부처님께 보리심을 세우면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런 뒤에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正解信樂,受持讀誦, 바로 이해하여 믿고 좋아하며 수지독송하겠으나  
亦不能為他人廣說。 역시 타인에게 자세히 설할 수는 없으며, 
若有眾生於三恒河沙等 어떤 중생이 3항하사와 같은  
佛所發菩提心,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세우면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 후에야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受持讀誦書寫經卷, 이 경을 수지독송하며 서사(書寫)하여 
雖為他說,未解深義。 겨우 타인에게 설하겠으나  
  깊은 뜻은 아직 이해할 수 없느니라.   
若有眾生於四恒河沙等 또 어떤 중생이 4항하사와 같은  
佛所發菩提心,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 후에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受持讀誦書寫經卷, 이 경을 수지독송하며 서사한다면  
為他廣說十六分中一分之義, 남에게 16분의 1의 뜻을 설하겠으나 
雖復演說亦不具足。 비록 설하더라도 구족하지 못할 것이요,   
若有眾生於五恒河沙等 어떤 중생이 5항하사와 같은  
佛所發菩提心,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 후에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受持讀誦書寫經卷, 이 경을 수지독송하며 서사한다면 
廣為人說十六分中八分之義。 남에게 16분의 8의 뜻을 설할 수 있으며, . 
若有眾生於六恒河沙等 어떤 중생이 6항하사와 같은  
佛所發菩提心,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 후에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受持讀誦書寫經卷, 이 경을 수지독송하며 서사한다면 
為他廣說十六分中十二分義。 남에게 16분의 12의 뜻을 설할 수 있으며,  
若有眾生於七恒河沙等 어떤 중생이 7항하사와 같은  
佛所發菩提心,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런 다음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受持讀誦書寫經卷, 이 경을 수지독송하며 서사한다면 
為他廣說十六分中十四分義。 남에게 16분의 14의 뜻을 설할 수 있으며,  
   
若有眾生於八恒河沙等 만일 어떤 중생이 8항하사와 같은  
佛所發菩提心, 부처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然後乃能於惡世中不謗是法, 그런 후에 악세에서 이 법을 비방하지 않아서 
受持讀誦書寫經卷, 이 경을 수지독송하고 서사하고,  
亦勸他人令得書寫, 또 남에게도 서사하기를 권하며, 
自能聽受, 자신이 들어서 받아들이고[聽受], 
復勸他人令得聽受、 다시 타인에게도 청수(聽受)하고 
讀誦通利, 독송하여 꿰뚫어 통달하고, 
擁護堅持憐愍世間諸眾生故, 옹호하여 굳게 간직하도록 권하거든  
  세간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요, 
供養是經, 이 경을 공양하면서  
亦勸他人令其供養恭敬尊重 남에게도 권하여 공양하고 공경존중하고 
讀誦禮拜, 독송하고 예배케 하며,  
亦復如是,具足能解,盡其義味, 또한 그와 같이 그 모든 의미
所謂如來常住不變,畢竟安樂, 이른바 여래는 상주불변이요,  
  필경안락이라는 것을 구족히 이해케 하고, 
廣說眾生悉有佛性,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여  
善知如來所有法藏。 여래의 법장을 잘 알게 하려니와 
供養如是諸佛等已, 이렇게 제불을 공양하고 
建立如是無上正法, 이렇게 무상정법을 세워서  
受持擁護, 수지(受持)하고 옹호(擁護)할 것이니,   
若有始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누구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면  
當知是人未來之世,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미래세에 
必能建立如是正法, 반드시 그와 같이 정법을 세워서 
受持擁護。 수지하고 옹호할 것이니라.  
是故汝今不應不知, 그러므로 너는 이제 
未來世中護法之人。 미래세의 호법인을 몰라서는 안 되리니,  
何以故?是發心者於未來世, 왜냐하면 그 발심자가 미래세에 
必能護持無上正法。 반드시 무상정법을 호지하기 때문이니라.
   
「善男子!有惡比丘, 선남자야, 어느 사악한 비구는 
聞我涅槃不生憂愁: 나의 열반에 대해 들어도 아무런 근심 없이. 
『今日如來入般涅槃,  ‘오늘 여래가 열반에 드신다니 
何期快哉。 어찌 이 통쾌함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如來在世,遮我等利, 여래가 세상에 계시면서 우리 이익을 막으시다가 
今入涅槃, 이제 열반에 드신다니 
誰復當有遮奪我者? 뉘라서 또 나를 막고 빼앗을 자가 있겠는가? 
若無遮奪, 빼앗을 자가 없으면 
我則還得如本利養。 나는 본래의 이익을 다시 얻게 될 것이다. 
如來在世禁戒嚴峻, 여래가 세상에 계시면서 계율로 엄히 금하셨으나 
今入涅槃,悉當放捨。 이제 열반에 드시면 모두 버릴 것이다. 
所受袈裟本為法式, 가사를 받는 것은 본래 법식(法式)을 위함이니 
今當廢壞如木頭幡。』 이제 나무 끝 깃발처럼 찢어버리겠다.’고 하려니와
如是等人誹謗、拒逆是大乘經。 이런 사람이 대승경전을 비방하고 거역할 것이다. 
   
善男子!汝今應當如是憶持, 선남자야, 너는 이제 이렇게 기억하거라.  
若有眾生成就具足無量功德, 어느 중생이 무량한 공덕을 구족히 성취하면  
乃能信是大乘經典,信已受持。 이내 이 대승경전을 믿고, 믿고서는 수지하거니와 
其餘眾生有樂法者, 법을 좋아하는 다른 중생들에게   
若能廣為解說此經, 이 경전을 자세히 해설해 줄 수 있다면,  
其人聞已, 그 사람이 듣고서 
過去無量阿僧祇劫所作惡業, 과거 무량 아승지 겁 동안에 지은 악업이 
皆悉除滅。 모두 다 제멸(除滅)할 것이니라. 
若有不信是經典者, 만일 이 경전을 불신한다면   
現身當為無量病苦之所惱害, 금생에 한량없는 병고에 시달리게 되고  
多為眾人所見罵辱,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보일 것이며, 
命終之後人所輕賤, 죽은 뒤에도 사람들의 경멸을 받고, 
顏貌醜陋, 용모는 누추하고, 
資生艱難,常不供足, 살림이 가난하여 모든 것이 항상 부족하며, 
雖復少得麁澁弊惡, 비록 큰 폐악(弊惡)은 적다 해도 
生生常處貧窮、下賤、 태어날 때마다 늘 빈궁하고 미천하며 
誹謗正法、邪見之家。 정법을 비방하는 사견의 집안에 있게 되느니라.  
若臨終時,或值荒亂、 임종할 때면 큰 난리를 만나거나 
刀兵競起,帝王暴虐、 전쟁이 자주 일어나고 왕은 포악하며, 
怨家讎隟之所侵逼, 원수들의 침해로 핍박을 당할 것이요, 
雖有善友,而不遭遇, 선지식이 있더라도 만나지 못하고 
資生所須求不能得, 필요한 물건을 찾아도 얻을 수 없으며, 
雖少得利,常患飢渴, 이득이 적으니 항상 기갈에 허덕이고 
唯為凡下之所顧識, 오로지 하천한 사람들만 들여다 볼 뿐  
國王大臣悉不齒錄。 국왕 대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이니라.   
設復聞其有所宣說, 설사 그가 설법 들은 것이 있다 해도 
正使是理,終不信受。 그 이치를 바르게 하지 않고 
  끝내 믿어들이지 아니 하니, 
如是之人不至善處, 이러한 사람은 좋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如折翼鳥不能飛行, 마치 날개 부러진 새 날지 못하듯이 
是人亦爾於未來世, 이 사람도 그러하여 미래세에 
不能得至人天善處。 인간 천상의 좋은 곳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若復有人能信如是大乘經典, 또 어떤 사람이 이러한 대승경전을 믿는다면  
本所受形雖復麁陋, 타고 난 용모가 비록 누추하더라도 
以經功德即便端正, 경전의 공덕으로 곧 단정해지고 
威顏色力,日更增多, 위의와 안색이 날로 좋아질 것이라    
常為人天之所樂見, 항상 인간과 천상이 좋게 보아서  
恭敬愛戀,情無捨離。 공경하고 사랑하며 정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며,  
國王大臣及家親屬聞其所說, 국왕 대신이나 일가친척들이 그의 말을 들으면 
悉皆敬信。 모두 다 공경히 믿을 것이니,  
若我聲聞弟子之中, 나의 성문 제자들 가운데 
欲行第一希有事者, 제일가는 희유한 일을 행하려거든 
當為世間廣宣如是大乘經典。 마땅히 세간을 위해 이러한 대승경전을 
  널리 알려야 하느니라. 
   
「善男子!譬如霧露, 선남자야, 비유컨대 이슬 안개는 
勢雖欲住,不過日出, 머물고자 힘을 써봐도 일출을 넘기지 못하고 
日既出已,消滅無餘。 해가 뜨면 깨끗이 소멸해버리듯이, 
善男子!是諸眾生所有惡業,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지닌 악업도 
亦復如是,住世勢力, 그와 같아서 세상에 머무는 세력은 
不過得見大涅槃日, 대열반의 해 볼 때를 넘기지 못하고 
是日既出,悉能除滅一切惡業。 그 해가 뜨면 모든 악업이 다 제멸되느니라. 
   
「復次善男子! 또 선남자야, 
譬如有人出家剃髮, 어떤 사람이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雖服袈裟,故未得受沙彌十戒, 가사는 입었어도 사미 10계를 아직 받지 않았는데, 
或有長者來請眾僧, 혹 어느 장자가 스님들 오시기를 청하면 
未受戒者,即與大眾俱共受請, 수계하지 못한 자도 대중스님들 따라 함께 가니,  
雖未受戒,已墮僧數。 수계하지 못해도 스님 수에는 이미 낀 것이듯이,  
善男子!若有眾生, 선남자야, 만일 어느 중생이  
發心始學是大乘典大涅槃經, 발심하여 대승경전인 이 대열반경을 처음 배워서   
書持讀誦亦復如是, 쓰고 지니고 독송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雖未具足位階十住, 비록 위계(位階) 10주(住)가 구족하지 못하더라도 
則已墮於十住數中。 이미 10주의 수에는 이미 낀 것이니라. 
*十住 ; 發心住,治地住,修行住,生貴住,方便具足住,正心住,不退住,童真住,法王子住,灌頂住,
或有眾生是佛弟子或非弟子, 혹 어느 중생이 불제자거나 아니거나 간에 
若因貪怖、或因利養, 탐욕이나 이양을 목적으로  
聽受是經乃至一偈,聞已不謗, 이 경전을 한 게송만이라도 듣고 비방하지 않는다면 
當知是人則為已近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가까워진 것이니라. 
善男子!以是因緣,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我說四人為世間依。 내가 네 종류 사람이 세간의 의지처라 말했거니와  
善男子!如是四人, 선남자야, 이 네 종류 사람이 
若以佛說,言非佛說, 부처님 말씀을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 한다는 것은 
無有是處, 말이 않되기에 
是故我說如是四人為世間依。 그래서 내가 그와 같은 네 종류 사람이 
  세간의 의지처라 한 것이니, 
善男子!汝應供養如是四人。」 선남자야, 너는 그 네 사람을 공양해야 하느니라.”
   
「世尊!我當云何識知是人,  “세존이시여, 제가 어떻게 
而為供養?」 그 사람을 알아보고 공양하오리까?”
   
佛告迦葉: 부처님이 가섭에게 고하셨다. 
「若有建立、護持正法, “만일 누가 정법을 세워서 호지한다면 
如是之人應從啟請, 이런 사람을 쫓아 일깨워주기를 청하며   
當捨身命而供養之, 신명을 바쳐서 공양하되  
如我於是大乘經說: 내가 이 대승경에 설하는 대로 하거라.”
   
「『有知法者, 若老若少,   『정법을 아는 이라면 노소를 막론하고 
故應供養, 恭敬禮拜,   마땅히 공양하며 공경하여 예배하기를
猶如事火, 婆羅門等。 마치 불을 섬기는 바라문과 같이 하라.
   
有知法者, 若老若少,   정법을 아는 이라면 노소를 막론하고 
故應供養, 恭敬禮拜,   마땅히 공양하며 공경하여 예배하기를
亦如諸天, 奉事帝釋。』」 제천(諸天)이 제석천왕 섬기듯 하라.』
   
迦葉菩薩白佛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如佛所說,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供養師長正應如是。 스승을 공양함은 정녕 그러하겠사오나 
今有所疑唯願廣說。 의문나는 것이 있으니 자세히 설해 주소서. 
若有長宿護持禁戒, 만일 어느 노스님이 금계를 지키지만 
從年少邊諮受未聞, 주변의 젊은이들로부터 자문(諮問)을 받는다면  
云何是人當禮敬不? 어찌 이 사람이 예경을 받겠나이까? 
若當禮敬,是則不名為持戒也。 예경해야 한다면 이는 지계(持戒)가 아니겠사옵고, 
若是年少護持禁戒, 또 나이 어린 사람이 금계를 지키지만 
從諸宿舊破戒人邊諮受未聞, 주변의 파계한 늙은이로부터 자문을 받는다면  
復應禮不? 그래도 예경해야 하나이까? 
若出家人,從在家人諮受未聞, 출가인이 재가인으로부터 자문을 받는다면 
復當禮不? 그래도 예경해야 하나이까? 
然出家人不應禮敬在家人也。 그러나 출가인이 재가인을 예경해서는 아니되고, 
然佛法中年少幼小 불법 중에는 나이 어린 젊은 사람은 
應當恭敬耆舊長宿, 나이 많은 노스님을 공경해야 하거니와  
以是長宿先受具戒, 그 노스님은 먼저 구족계를 받아 
成就威儀, 위의를 성취하였으니,  
是故應當供養恭敬。 그래서 공양하며 공경해야 마땅한 것이라   
如佛言曰:『其破戒者, 부처님 말씀하신 바, '파계자는 
是佛法中所不容受, 불법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음이  
猶如良田多有稊稗。』 좋은 밭의 많은 피[稊稗]들과 같다'와 같사옵고,  
又如佛說: 또 부처님 말씀하신,
『有知法者,若老若少,  '법을 아는 이가 있거든 노소를 막론하고 
故應供養如事帝釋。』 제석천왕 섬기듯 공양하라.'와 같사온데, 
如是二句,其義云何? 이러한 두 구절은 무슨 뜻이옵니까? 
將非如來虛妄說耶? 여래의 허망한 말씀이 아니겠나이까? 
如佛言曰: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持戒比丘亦有所犯。』  '계를 지키는 비구도 범하는 것이 있다' 하셨는데 
何故如來而作是說? 왜 여래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며,  
世尊亦於餘經中說聽治破戒, 세존께서는 또 다른 경 가운데  '파계를 다스리라' 하셨거니와
   
如是所說,其義未了。」 그렇게 말씀하신 뜻을 아직 모르겠나이다.”
   
佛告迦葉:「善男子! 부처님이 가섭에게 고하셨다. “선남자야, 
我為未來諸菩薩等 나는 대승을 배우는 미래의 보살들에게  
學大乘者說如是偈, 그와 같은 게송을 설한 것이요, 
不為聲聞弟子說也。 성문 제자를 위해 설한 것이 아니니라. 
善男子!如我先說, 선남자야, 내가 앞서 말한 대로  
正法滅已,毀正戒時, 정법이 멸하여 정계(正戒)가 훼손되었을 때 
增長破戒。非法盛時。 파계는 날로 늘고 비법이 성행할 때,  
一切聖人隱不現時、 모든 성인들이 숨어 나타나지 않을 때, 
受畜奴婢不淨物時, 노비나 부정한 물건을 받아 모을 때, 
是四人中,當有一人出現於世, 네 종류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 
剃除鬚髮,出家修道。 머리 깎고 출가하여 수도하려니와,   
見諸比丘各各受畜奴婢、僕使、 비구들이 저마다 노비와 하인이나  
不淨之物, 부정한 물건을 받아 모으면서  
淨與不淨一切不知, 청정한지 부정한지 일체 모르고 
是律非律亦復不識。 율(律)인지 율 아닌지도 모르는 것을 보고서  
是人為欲調伏如是諸比丘故, 이 사람은 그런 비구들을 조복시키고자  
與共和光,不同其塵,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되 번뇌는 같이 하지 않고   
自所行處及佛行處, 자신의 행할 곳[行處]과 부처님의 행처를 
善能別知。 잘 분별해 아느니라.  
雖見諸人犯波羅夷, 사람들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을 보더라도 
默然不舉。 묵묵히 들추지 않나니,  
何以故?我出於世,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 출현하여  
為欲建立護持正法, 정법을 세우고 호지하고자 하기에  
是故默然而不舉處。 그래서 묵연히 들추지 않거니와,  
善男子!如是之人為護法故, 선남자야, 이런 사람은 법을 수호하기에 
雖有所犯,不名破戒。 범한 바가 있더라도 파계라 하지 않느니라.
   
「善男子!如有國王遇病崩亡, 선남자야, 어떤 나라에 왕이 병들어 죽자  
儲君稚小,未任紹繼。 세자가 어려서 왕위를 아직 계승하지 못했는데,   
有旃陀羅,豐饒財寶, 어느 전다라(旃陀邏)가 풍요한 재보와   
巨富無量,多有眷屬, 거대한 부가 한량없고, 많은 권속이 있으니,   
自以強力,伺國虛弱篡居王位。 자기의 강한 힘으로 
  나라가 허약해짐을 노려 왕위를 빼앗았느니라. 
治化未久,國人、居士、 다스린지 오래지 않아서 나라의 거사와 
婆羅門等,亡叛逃走,遠投他國。 바라문들이 배반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가버리고, 
   
雖有在者,乃至不欲眼見是王。 남아 있는 자들도 왕으로 여기려 하지 않았으나   
或有長者、婆羅門等不離本土, 어떤 장자나 바라문들은 본토를 떠나지 않기를  
譬如諸樹隨其生處,即是中死。 마치 나무가 난 자리에서 죽듯이 하였느니라. 
旃陀羅王,知其國人逃叛者眾, 전다라 왕은 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여 도망 가는 것을 알자  
   
尋即還遣諸旃陀羅守邏諸道, 찾아서 돌려 보내도록 전다라들을 보내 길목을 지키게 하고 
   
復於七日,擊鼓唱令: 다시 7일이 지나서 북을 치며 영을 내리되, 
『諸婆羅門,有能為我作灌頂師者,  ‘바라문들이여, 나에게 관정사(灌頂師)가 되어준다면 
   
當以半國而為爵賞。』 나라의 반으로 상을 내리겠노라.’ 하였느니라. 
諸婆羅門聞是語已, 바라문들은 그 말을 듣고서도 
悉無來者,各作是言: 아무도 가지 않고 저마다 말하기를, 
『何處當有婆羅門種,作如是事?』  ‘그런 짓을 할 바라문이 어디 있겠어?’ 하니, 
旃陀羅王復作是言: 전다라 왕이 다시 
『婆羅門中若無一人為我師者,  ‘바라문들 중에 
  나의 관정사가 되어 줄 자가 아무도 없다면 
我要當令諸婆羅門, 나는 바라문들에게 명하여 
與旃陀羅共住食宿, 전다라들과 함께 의식주를 같이 하고, 
同其事業; 같이 일하도록 할 것이로되, 
若有能來灌我頂者, 만일 누가 관정사로 와준다면 
半國之封,此言不虛。 나라의 반을 주겠으니, 이 말은 헛되지 않다. 
呪術所致三十三天上妙甘露、 주술로 모셔온 33천상의 묘한 감로인  
不死之藥,亦當共分而服食之。』 불사약도 마땅히 함께 나누어 먹겠다.’ 하였느니라. 
   
「爾時有一婆羅門子, 그때 한 바라문의 아들이 
年在弱冠,修治淨行, 약관의 나이에 청정행을 닦아   
長髮為相,善知呪術, 긴머리의 모습으로 주술에 능했는데  
往至王所,白言: 왕에게 가서 말하기를,   
『大王!王所勅使,我悉能為。』  ‘대왕이시여, 왕께서 하명하신 것을 
  제가 다 할 수 있나이다.’ 하니, 
爾時大王心生歡喜, 이에 대왕이 크게 기뻐하며 
受此童子作灌頂師。 이 동자를 관정사(灌頂師)로 삼자  
諸婆羅門聞是事已, 다른 바라문들이 이 소문을 듣고 
皆生瞋恚,責此童子: 모두 분노하여 이 동자를 꾸짖어 
『汝婆羅門,  ‘너는 바라문인데 
云何乃作旃陀羅師?』 어찌 전다라의 스승이 되느냐?’ 하였느니라.  
爾時其王,即分半國與是童子, 그 왕이 나라의 반을 이 동자에게 주고 
因共治國,經歷多時。 나라를 함께 다스리며 여러 해가 지났을 때  
爾時童子語其王言: 동자가 왕에게 말하기를, 
『我捨家法,來作王師,  ‘저는 가법(家法)을 어기고 왕의 스승이 되어  
然教大王微密呪術, 대왕께 은밀한 주술을 가르쳤건만 
而今大王,猶不見親。』 대왕께서는 가까이 하지 않으시나이다.’ 하니, 
時王答言: 그러자 왕이 대답했느니라.
『我今云何不親汝耶?』  ‘내가 지금 어찌 그대를 가까이 하지 않겠는가?’
童子答言: 동자가 말하기를, 
『先王所有不死之藥,  ‘선왕께서 지니셨던 불사약은 
猶未共食。』 아직 같이 먹어보지 못했나이다.’ 하자, 
王言:『善哉,善哉! 왕이 대답하되, ‘참으로 그러하구려.  
大師!我實不知。 대사여, 내가 사실 모르고 있었으니, 
師若須者,唯願持去。』 대사가 필요하거든 가져가기 바라오.’ 하니, 
是時童子,聞王語已, 이에 동자는 왕의 말을 듣고서 
即取歸家,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請諸大臣而共食之。 대신들을 청해 함께 먹었느니라. 
諸臣食已,即共白王: 대신들이 먹고서 다같이 왕 앞에서   
『快哉,大師!  ‘대단하십니다. 대사여!
有是甘露不死之藥。』 감로의 불사약이 있다니.’ 하니, 
王既知已,語其師言: 왕이 알고서 대사에게 말했느니라. 
『云何大師獨與諸臣服食甘露, ‘왜 대사는 대신들에게만 감로약을 먹게 하고  
而不見分?』 爾時童子,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소?’ 그러자 동자가 
更以其餘雜毒之藥,與王令服。 다른 독이 섞인 약을 왕에게 주어 먹게 하니,  
王既服已,須臾藥發, 왕이 먹고서 순식간에 약효가 발하여 
悶亂躄地, 혼절해 쓰러져서 
無所覺知,猶如死人。 죽은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되었느니라.  
爾時童子立本儲君, 그러자 동자는 본래의 태자를 세워 
還以為王,作如是言: 왕을 삼고 말하기를, 
『師子御座,  ‘임금의 사자좌에 
法不應令旃陀羅昇。 전다라가 오르게 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我從昔來, 나는 예로부터 
未曾聞見旃陀羅種而為王也, 전다라 종족으로 왕을 삼았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고  
若旃陀羅治國理民, 전다라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無有是處。 말이 안 되니,  
汝今應還,紹繼先王, 태자가 이제 선왕을 계승하여 
正法治國。』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마땅합나다.’
爾時童子經理是已, 동자는 이렇게 하고서 
復以解藥與旃陀羅, 다시 해독약을 전다라에게 주어 
令其醒寤,既醒寤已, 깨어나게 하고 깨어나자 
驅令出國。 나라 밖으로 쫓아버렸느니라. 
是時童子雖為是事, 그때 동자가 비록 이런 일을 하였으나  
猶故不失婆羅門法, 오히려 그 때문에 바라문 법을 잃지 않았으니,  
其餘居士、婆羅門等, 다른 거사나 바라문들이  
聞其所作歎未曾有,讚言: 듣고서 미증유하다 기뻐하며 칭찬하기를, 
『善哉,善哉!仁者!  ‘참으로 장하도다. 그대여!  
善能驅遣旃陀羅王。』 전다라 왕을 쫓아낼 수 있었다니.’ 하였느니라.
   
「善男子!我涅槃後,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에 
護持正法諸菩薩等,亦復如是, 정법을 호지하는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以方便力,與彼破戒假名、 방편으로 저 파계하여 이름 뿐이며  
受畜一切不淨物僧, 부정한 것들을 모으는 중들과 함께  
同其事業。 그들의 사업을 같이 하느니라.   
爾時菩薩若見有人雖多犯戒, 그때 보살은 어떤 사람이 많은 계를 범하더라도  
能治毀禁諸惡比丘, 금계를 훼손하는 악한 비구를 다스리는 것을 보거든   
即往其所,恭敬禮拜, 곧 그에게 가서 공경히 예배하고 
四事供養, 4사공양(四事供養)*하며 
經書什物悉以奉上; 경전이나 필요한 물건을 바쳐드리되   
如其自無,要當方便, 자신에게 없다면 마땅한 방편을 써서 
從諸檀越求覓而與。 단월들로부터 구해서 주려니와,   
為是事故, 이 일을 위해서라면 
應畜八種不淨之物。 8종 부정물(八種不淨物)*도 모아야 하리니,    
何以故?是人為治諸惡比丘, 왜냐하면 이 사람이 악한 비구들을 다스리려는 것이라  
如彼童子驅旃陀羅。 마치 저 동자가 전다라를 몰아냄과 같기 때문이니라.  
爾時菩薩雖復恭敬禮拜是人, 그때에 보살들이 비록 이런 사람을 공경하고 예배하며 
受畜八種不淨之物,悉無有罪。 8종 부정물을 받아 모아도 모두 죄가 없으니,  
何以故? 어째서인가 하면 
以是菩薩為欲擯治諸惡比丘, 이 보살이 악한 비구들을 물리치도록 함으로써  
令清淨僧得安隱住, 청정비구들로 하여금 편안히 머물러서  
流布方等大乘經典, 방등(方等)대승경전을 유포하여 
利益一切諸天人故。 모든 인천을 이익케 하기 때문이니라. 
善男子!以是因緣, 선남자야, 이런 인연으로 
我於經中說是二偈, 내가 경전 가운데 그 두 게송을 말하여 
令諸菩薩皆共讚嘆護法之人, 보살들로 하여금 호법인을 함께 찬탄케 한 것은 
如彼居士婆羅門等稱讚童子: 마치 저 거사와 바라문들이 동자를 칭찬하여 
『善哉,善哉。』  '참으로 장하도다.'고 하는 것과 같다.
護法菩薩正應如是, 호법보살도 정녕 그러하여,   
若有人見護法之人, 만일 누가 호법인(護法人)이  
與破戒者同其事業, 파계자와 더불어 함께 사업하는 것을 보고  
說有罪者, 죄가 있다고 말한다면  
當知其人自受其殃。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며, 
是護法者實無有罪。 이 호법인은 실로 죄가 없느니라.
善男子!若有比丘犯禁戒已, 선남자야, 만일 비구가 금계를 범하고도 
憍慢心故,覆藏不悔, 교만심 때문에 감추고 참회하지 않으면 
當知是人名真破戒。 마땅히 알라. 그는 진정한 파계라 하려니와  
菩薩摩訶薩為護法故, 보살마하살이 호법을 위해 
雖有所犯不名破戒。 범하는 것은 파계라 하지 않나니   
何以故?以無憍慢,發露悔故。 그것은 교만없이 드러내 참회하기 때문이며,  
善男子! 선남자야, 
是故我於經中覆相, 그런 까닭에 내가 경 가운데서 거듭하여   
說如是偈: 이러한 게송을 설하기를,  
   
「『有知法者, 若老若少,    『법을 아는 이가 있거든 노소를 막론하고 
故應供養, 恭敬禮拜。   마땅히 공양하며 공경히 예배하되,  
猶如事火, 婆羅門等, 마치 불 섬기는 바라문들과 같이,  
如第二天, 奉事帝釋。』 제2천(第二天)이 제석 모시듯이 하라.』
  하는 것이니, 
「以是因緣,我亦不為學聲聞人, 따라서 나는 성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但為菩薩而說是偈。」 다만 보살을 위해 이 게송을 설한 것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如是等菩薩摩訶薩,  “세존이시여, 이러한 보살마하살은 
於戒極緩, 계율에 느슨한데 
本所受戒為具在不?」 본래 수계(受戒)한 것이 있기나 합니까?”
   
佛言:「善男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汝今不應作如是說。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何以故?本所受戒, 왜냐하면 본래 수계한 것은 
如本不失; 본래대로 잃지 않았거니와   
設有所犯,即應懺悔, 설사 범한 것이 있더라도 곧 참회하니  
悔已清淨。 참회하고 나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善男子!如故堤塘, 선남자야, 마치 오래된 둑이 
穿穴有孔,水則淋漏。 구멍이 생겨 물이 새는 것과 같거니와  
何以故?無人治故。 그것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若有人治,水則不出。 어떤 이가 관리하면 물이 새지 않을 것이니라.  
菩薩亦爾, 보살도 그러하여 
雖與破戒共作布薩, 비록 파계자와 더불어 함께 포살(布薩)하고 
受戒自恣,同其僧事。 수계(受戒) 자자(自恣)하며 그 중의 일을 같이 하되  
所有戒律, 소유한 계율은 
不如堤塘穿穴淋漏。 둑이 구멍나 새듯이 하지 않느니라. 
何以故?若無清淨持戒之人, 왜냐하면 만일 청정한 지계인이 없으면 
僧則損減,慢緩懈怠日有增長。 스님은 없어져서 느슨함과 게으름이 날로 늘어나고,  
若有清淨持戒之人, 청정한 지계인이 있으면 
即能具足不失本戒。 본래의 계를 구족하여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善男子!於乘緩者乃名為緩, 선남자야, 승(乘)에 느슨해야 느슨하다 하고, 
於戒緩者不名為緩。 계에 느슨하면 느슨하다고 하지 않느니라. 
菩薩摩訶薩於此大乘, 보살마하살은 이 대승(大乘)에서  
心不懈慢,是名本戒。 마음이 게으르거나 교만하지 아니하니  
  이것을 근본계[本戒]라 하거나와,   
為護正法,以大乘水而自澡浴, 정법 수호를 위해 대승의 물로 목욕하기에 
是故菩薩雖現破戒, 그래서 보살이 파계를 보이더라도 
不名為緩。」 느슨하다 하지 않는 것이니라.”
   
迦葉菩薩白佛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眾僧之中有四種人,  “스님들 중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어서   
如菴羅果,生熟難知。 암라(菴羅) 열매가 설었는지 익었는지 
  알기 어려운 것과 같겠사온데,   
破戒、持戒云何可識?」 파계한지 지계한지를 어떻게 알겠나이까?”
   
佛言:「善男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因大涅槃微妙經典, 대열반의 마묘한 경전으로 인해 
則易可知。 쉽게 알 수 있느니라. 
云何因是大涅槃經可得知耶? 왜 이 대열반경으로 인해 알 수 있다고 하겠느냐? 
譬如田夫,種稻穀等, 마치 밭의 농부가 벼씨를 심고 
芸除稗[禾*秀],以肉眼觀, 김을 매 피를 뽑고 육안으로 보았을 때  
名為淨田, 깨끗한 밭이라 하겠지만, 
至其成實,草穀各異。 결실을 맺기에 이르면 풀과 벼가 각각 다르니라. 
如是八事,能污染僧, 이와 같이 여덟 가지 일은 승단을 오염시키니 
若能除却,以肉眼觀則知清淨。 제거하면 육안으로 보아 청정함을 알 수 있나니,    
若有持戒、破戒,不作惡時, 지계와 파계는 악을 짓지 않을 때에는 
以肉眼觀難可分別; 육안으로 봐서 분별하기 어렵지만 
若惡彰露,則易可知, 악이 드러나면 쉽게 알 수 있어서  
如彼稗[禾*秀],易可分別。 마치 저 피들을 쉽게 가려낼 수 있는 것과 같다. 
僧中亦爾, 스님들도 그러하여  
若能遠離於八不淨毒蛇之法, 8부정(八不淨)이라는 독사와 같은 법에서 벗어나면 
是名清淨聖眾福田, 이를 청정성중(淸淨聖衆)인 복전(福田)이라 하여  
應為人天之所供養, 마땅히 인천의 공양을 받게 되겠지만  
清淨果報, 청정한 과보는 
非是肉眼所能分別。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復次善男子! 또 선남자야, 
如迦羅迦林,其樹眾多, 가라가(迦羅迦) 숲에는 가라가 나무가 많은데 
於是林中唯有一樹, 이 숲 가운데 하나 뿐인 나무가 있어 
名鎮頭迦。 이름을 진두가(鎭頭迦)라 하였느니라. 
是迦羅迦樹、鎮頭迦樹, 이 가라가 나무와 진두가 나무의  
二果相似,不可分別。 두 열매는 서로 비슷하여 분별할 수 없었다.  
其果熟時,有一女人,悉皆拾取, 그 열매가 익었을 때 한 여인이 다 땄는데  
鎮頭迦果纔有一分, 진두가 열매는 겨우 일부이고,  
迦羅迦果乃有十分。 가라가 열매가 대부분이었지만 
是女不識, 그 여인은 알지 못하니 
齎來詣市而衒賣之。 시장에 가져가서 팔았느니라. 
凡愚小兒,復不別故, 어리석은 어린 아이가 구별하지 못했기에  
買迦羅迦果,噉已命終。 가라가 열매를 사서 먹자 죽고 말았다. 
有智人輩,聞是事已, 어떤 지혜로운 자가 그 일을 듣고 
即問女人: 그 여인에게 묻기를, 
『姊於何處持是果來?』  '자매는 그 열매를 어디서 가져왔소?' 하자, 
是時女人即示方所, 이에 여인이 장소를 가리키니,  
諸人即言: 사람들이 말하기를, 
『如是方所,多有無量迦羅迦樹,  ‘그 장소에는 가라가 나무는 한없이 많은데  
唯有一根鎮頭迦樹。』 진두가 나무는 오로지 한 뿌리만 있다.’ 하면서 
諸人知已,笑而捨去。 비웃고 가버렸느니라. 
   
「善男子!大眾之中, 선남자야, 대중 가운데 
八不淨法亦復如是, 8부정법도 그와 같아서 
於是眾中多有受用如是八法, 대중들 중에는 여덟 법을 수용하는 자는 많고, 
唯有一人清淨持戒, 오로지 한 사람만이 지계를 청정히 하여 
不受如是八不淨法, 그러한 8부정법을 수용하지 아니 하면서  
而知諸人受畜非法, 사람들이 법 아닌 것을 받아 모으는 줄 알지만 
然與同事不相捨離, 버리지 않고 더불어 함께 일 하는 것이 
如彼林中一鎮頭迦樹。 마치 가라가 숲 속 한 그루 진두가와 같으니라.
有優婆塞,見是諸人多有非法, 어느 우바새도 많은 비법(非法)이 있는 사람을 
併不恭敬供養是人, 공경도 공양도 않으려니와 
若欲供養,應先問言: 공양하려거든 마땅히 먼저 묻기를,    
『大德,如是八事,為受畜不?  ‘스님은 그러한 8부정법을 받습니까? 
佛所聽不?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까? 
若言佛聽, 만일 부처님이 허락하셨다면 
如是之人得共布薩羯磨自恣不?』 저 사람들과 포살(布薩)이나 갈마(羯磨), 
  자자(自恣)를 함께 합니까?’ 하면, 
是優婆塞如是問已,眾皆答言: 우바새의 물음에 그 대중들은 대답하기를,  
『如是八事,如來憐愍,  ‘그와 같은 여덟가지를 여래가 가엾이 여겨 
皆悉聽畜。』 모으도록 다 허락하셨다.’ 하니, 
優婆塞言: 우바새는 말하기를, 
『祇洹精舍有諸比丘,  ‘기원정사에 있는 비구들이 
或言金銀佛所聽畜, 부처님이 금이나 은 받기를 허락하셨다 하거나, 
或言不聽。 혹은 허락하지 않으셨다고도 하지만, 
有言聽者, 그 어느 허락했다 하는 자도 
是不聽者不與共住、 허락치 않았다는 자들과는 함께 머물지도, 
說戒自恣, 계를 설하지도, 자자하지도 않고, 
乃至不共一河飲水, 심지어 같은 강물도 함께 먹지 아니하며, 
利養之物悉不共之。 이양물(利養物)을 같이 쓰지 않는데, 
汝等云何言佛聽許?』 당신들은 어째서 부처님이 허락하셨다고 하는가?' 
  할 것이니라.
佛、天中天,雖復受之, 부처님은 천중천(天中天)이니 비록 받으실지언정  
汝等眾僧亦不應畜。 너희 중들은 받아 모으면 안 되느니라.  
若有受者, 만일 받는 이가 있거든 
乃至不應與共說戒、 그와 함께 계를 설하거나[說戒] 
自恣羯磨、同其僧事, 자자, 갈마하거나 같은 스님 일을 하면 안 되리니, 
若共說戒、自恣羯磨、 만일 함께 설계(說戒)나 자자, 갈마나 
同僧事者, 같은 승사(僧事)를 하면 
命終即當墮於地獄, 목숨이 끊어지면 곧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如彼諸人食迦羅果已, 마치 저 사람들이 가라가 열매를 먹고 
而便命終。 죽는 것과 같으니라.’
   
「復次善男子! 또 선남자야, 
譬如城市有賣藥人, 어느 성의 시장에 있는 약을 파는 사람이   
有妙甘藥出於雪山, 설산에서 나는 묘하게 단 약이 있었고,   
亦復多賣其餘雜藥, 그 밖에 다른 섞인 약도 팔았는데, 
味甘相似。 맛의 달기가 서로 비슷하였느니라. 
時有諸人咸皆欲買, 그때 사람들이 다같이 사려 하였지만  
然不識別,至賣藥所問言: 식별할 수 없어서 약 파는 곳에 가서 
『汝有雪山藥不?』  '당신에게 설산의 약이 있소?' 하고 물으니, 
其賣藥人,即答言有。 약장사가 있다고 대답하고,  
是人欺詐,以餘雜藥,語買者言: 다른 섞인 약으로 속이며 사려는 이에게   
『此是雪山甘好妙藥。』  '이것이 설산의 달고 좋은 묘약입니다.' 하자, 
時買藥者,以肉眼故不能善別, 이에 사는 이가 육안으로 잘 구별할 수 없어서 
即買持去,復作是念: 곧 약을 사 가지고 가서 생각했느니라. 
『我今已得雪山甘藥。』  '나는 이제 설산의 감로약을 얻었다.' 
   
迦葉!若聲聞僧中, 가섭아, 성문승들 중에는 
有假名僧、有真實僧、 이름만 빌린 스님도 있고 진실한 스님도 있고 
有和合僧, 화합하는 스님도 있어서  
若持戒、破戒, 지계하거나 파계하거나 하지만 
於是眾中等應供養,恭敬禮拜。 이 대중에게 똑 같이 공양하고 공경히 예배하니, 
是優婆塞以肉眼故,不能分別。 이 우바새가 육안으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喻如彼人,不能分別雪山甘藥。 마치 저 사람이 설산의 감로약을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誰是持戒?誰是破戒? 누가 지계하고, 누가 파계했으며, 
誰是真僧?誰是假僧? 누가 진실한 스님이고, 누가 가짜 스님인가? 
有天眼者乃能分別。 천안이 있는 자라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니라. 
迦葉!若優婆塞知是比丘是破戒人, 가섭아, 우바새는 비구가 파계인임을 알거든  
不應給施禮拜供養。 시주하고 예배하고 공양하지 말 것이며, 
若知是人受畜八法, 그 사람이 8부정법을 받는 것을 안 경우에도  
亦復不應給施所須禮拜供養。 또한 필요한 것을 시주하거나 
  예배하고 공양하지 말아야 하리니,    
若於僧中有破戒者, 스님들 중의 어떤 파계자에게도    
不應以被袈裟因緣恭敬禮拜。」 가사를 입었다는 인연만으로 
  공경하고 예배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迦葉菩薩復白佛言: 가섭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善哉,善哉。  “세존이시여, 참으로 옳사옵니다.  
如來所說真實不虛, 여래의 말씀이 진실하여 허망치 않으니, 
我當頂受。(,?) 제가 정수(頂受)하기를  
譬如金剛,珍寶異物,(。?) 마치 금강이나 진보와 같이 하겠나이다. 
如佛所說, 부처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是諸比丘當依四法。 비구들은 네 가지 법에 의지해야 하리니,  
何等為四? 무엇이 그 넷인가 하오면,  
依法不依人, 법(法)에 의지하고 사람[人]에게 의지하지 말며, 
依義不依語, 뜻[義]에 의지하고 말[語]에 의지하지 말며, 
依智不依識, 지혜[智]에 의지하고 지식[識]에 의지하지 말며, 
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오니, 
   
如是四法, 이 네 가지 법이 네 종류 사람[四種人] 아닌 자를 
應當證知非四種人。」 마땅히 가려내 알게 할 것이옵니다.”
佛言:「善男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依法者,即是如來大般涅槃, 의지할 법[依法]이란 곧 여래의 대반열반이니, 
一切佛法即是法性, 일체의 불법(佛法)이 곧 법의 성품[法性]이요, 
是法性者即是如來, 이 법성이 곧 여래인지라 
是故如來常住不變。 그러므로 여래는 상주불변(常住不變)인 것이니라. 
若復有言如來無常, 또 어떤 이가 여래는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是人不知、不見法性。 그 사람은 법의 성품을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니. 
若不知見是法性者, 법성을 지견(知見)치 못한 자에게 
不應依止。 의지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如上所說,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四人出世護持法者, 네 사람[四種人]은 세상에 나서 법을 호지하는 자이니, 
應當證知而為依止。何以故? 분별해 알아서 의지처로 삼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是人善解如來微密深奧藏故, 이 사람은 여래의 비밀하고 심오한 법장을 잘 해득하여
能知如來常住不變, 능히 여래는 상주불변인 줄을 알기 때문이니, 
若言如來無常變易, 여래가 무상하여 변역(變易)한다고 말한다면 
無有是處。 옳지 못하느니라. 
如是四人即名如來。何以故? 이 4종인(四種人)을 곧 여래라 하나니, 그것은  
是人能解如來密語及能說故。 이 사람이 여래의 밀어(密語)를 이해하고 
  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若有人能了知如來甚深密藏, 어떤 사람이 여래의 심오하고 비밀한 법장을 알고 
及知如來常住不變, 또 여래는 상주불변임을 알았거든  
如是之人, 이런 사람이 
若為利養說言如來是無常者, 이양을 위해 여래가 무상하다 말하는 것은 
無有是處。 옳지 못하느니라.   
如是之人尚可依止, 이런 사람도 의지할 수 있으려니와 
何況不依是四人也? 하물며 어찌 그 4종인에게 못하겠는가? 
依法者即是法性, 법에 의지함[依法]이란 곧 법성이요, 
不依人者即是聲聞, 사람을 의지하지 않음[不依人]이란 곧 성문이며,  
法性者即是如來, 법성이란 곧 여래요, 
聲聞者即是有為, 성문이란 곧 유위(有爲)이며, 
如來者,即是常住, 여래란 곧 상주(常住)요, 
有為者即是無常。 유위란 곧 무상(無常)이니라. 
善男子!若人破戒為利養故, 선남자야, 사람이 파계하고서 이양을 위해 
說言如來無常變易, 여래는 무상하여 변역한다고 하거든  
如是之人所不應依。 이런 사람은 의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니, 
善男子!是名定義。 선남자야, 이것은 정한 이치[定義]이니라.
   
「依義不依語者,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義者名曰覺了, 뜻이란 깨달아 앎[覺了]을 이르는 것이요, 
覺了義者名不羸劣, 각료(覺了)의 뜻은 열등[羸劣]하지 않음이며, 
不羸劣者名曰滿足, 이열(羸劣)하지 않다는 것은 만족함이며, 
滿足義者名曰如來常住不變、 만족함의 뜻은 여래의 상주불변이요, 
如來常住不變義者即是法常, 여래가 상주불변이라는 뜻은 법의 항상함[法常]이며, 
法常義者即是僧常, 법상(法常)의 뜻은 승가의 항상함[僧常]이니, 
是名依義不依語也。 이것이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니라. 
   
何等語言所不應依? 어떠한 말이 의지해서 안 되는 것인가? 
所謂諸論、綺飾文辭。 소위 제론(諸論)과 번드레한 문사(文辭)이니,  
如佛所說無量諸經, 부처님이 설하신 무량한 경전들에 
貪求無厭, 탐욕으로 구하기를 마다하지 않거나  
多姦諛諂,詐現親附, 간교함과 아첨이 많고,  거짓 친한 체하고, 
現相求利, 그럴듯한 모양새로  이익을 추구하고,  
經理白衣為其執役, 재가인[白衣]을 부려 집역(執役)을 시키면서 
又復唱言: 또 말하기를, 
『佛聽比丘畜諸奴婢、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노비나 
不淨之物,金銀珍寶、 부정한 물건과 금, 은 같은 진귀한 보배와  
穀米倉庫、牛羊象馬, 곡식의 창고나 소, 양, 코끼리, 말 따위를 모으고, 
販賣求利, 판매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於飢饉世憐愍子故, 기근(飢饉)이 든 때에는 제자를 불쌍히 여기시므로  
聽諸比丘儲貯陳宿, 비구들이 모아두고 한 곳에 오래 묵으면서 
手自作食, 제손으로 밥을 지어서 
不受而噉。』 공양을 받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한다면 
如是等語所不應依。 이러한 것들이 의지해서는 안되는 말이니라.
   
「依智不依識者,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所言智者即是如來。 이른 바 지혜라는 것은 곧 여래이니, 
若有聲聞,不能善知如來功德, 만일 어느 성문이 여래의 공덕을 잘 알지 못하면 
如是之識不應依止。 그런 지식에 의지해서는 안 되려니와, 
若知如來即是法身, 여래가 곧 법신임을 안다면 
如是真智所應依止。 그러한 참 지혜가 의지해야 할 바이니라. 
若見如來方便之身, 만일 여래의 방편의 몸을 보고 
言是陰界諸入所攝, 이를 5음(陰), 18계(界), 6입(入)을 빌어  
食所長養,亦不應依, 음식으로 길러진 것이라 말한다면 또한 의지해서는 안 될 것이니  
   
是故知識不可依止。 그래서 지식은 의지할 수 없거니와, 
若復有人作是說者, 또 누가 이런 말을 지은 것이나 
及其經書亦不應依。 그 경서(經書)도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 
   
「依了義經, 요의경에 의지하고 
不依不了義經。 불요의경에는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不了義經者,謂聲聞乘, 불요의경이란 성문승을 이르는 것이며,  
聞佛如來深密藏處, 부처님 여래의 깊고 비밀한 법장을 듣고 
悉生疑怪, 모두 괴이하다 의심을 내면서  
不知是藏出大智海, 이 법장에서 큰 지혜바다가 나오는 줄 모르니, 
猶如嬰兒無所別知, 마치 어린애가 분별력 없는 것과 같거니와 
是則名為不了義也。 이것을 곧 불요의라 하느니라. 
   
「了義者名為菩薩, 요의(了義)란 보살을 이르는 것이며,  
真實智慧隨於自心, 진실한 지혜가 자기 마음을 따르니 
無礙大智, 거침없는 대지혜여서  
猶如大人無所不知, 마치 어른이 알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거니와 
是名了義。 이것을 요의라 하느니라. 
又聲聞乘名不了義; 또 성문승은 불요의라 하고, 
無上大乘乃名了義。 위없는 대승이라야 요의라 할 것이며,  
若言如來無常變易名不了義; 여래는 무상하여 변역한다 하면 불요의요, 
若言如來常住不變是名了義。 여래는 상주불변이라 하면 요의이며, 
聲聞所說應證知者名不了義; 성문의 말을 증지(證知)해야 한다는 것은 불요의요, 
菩薩所說應證知者名為了義。 보살의 말을 증지해야 한다는 것은 요의이며,  
若言如來食所長養,是不了義; 만일 여래가 음식으로 길러진 것이라 하면 불요의요, 
若言常住不變易者,是名了義。 상주불변한다고 한다면 요의이며, 
若言如來入於涅槃, 여래가 열반에 드는 것이 
如薪盡火滅,名不了義; 땔감이 다해 불이 꺼짐과 같다 하면 불요의요, 
若言如來入法性者,是名了義。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들었다 하면 요의라 하리니,  
聲聞乘法則不應依。 성문승의 법은 의지할 것이 못되느니라. 
何以故?如來為欲度眾生故, 왜냐하면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고자  
以方便力說聲聞乘, 방편으로 성문승을 설하신 것이라  
猶如長者教子半字。 마치 장자가 아들에게 반자(半字)를 
  가르친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善男子!聲聞乘者猶如初耕, 선남자야, 성문승이란 밭은 갈았으나   
未得果實, 아직 열매를 거두지 못한 것과 같아서  
如是名為不了義也, 이러한 것을 불요의라 하는 것이니, 
是故不應依聲聞乘。 이런 까닭에 성문승을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 
大乘之法則應依止。何以故? 대승의 법에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如來為欲度眾生故,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고자  
以方便力說於大乘, 방편으로 대승을 설하셨기 때문이라  
是故應依,是名了義。 따라서 의지해야 마땅하고, 이를 요의라 하는 것이니,  
   
如是四依應當證知。 이러한 4의(四依)를 증지해야 하느니라.
   
「復次依義者, 또 뜻[義]에 의지하라는 것은  
義名質直, 뜻은 질직(質直)함을 이르고, 
質直者名曰光明, 질직한 것은 광명이라 하며,  
光明者名不羸劣, 광명이란 이열(羸劣)하지 않음이요, 
不羸劣者名曰如來。 이열하지 않은 것을 여래라 한다.  
又光明者名為智慧, 또 광명은 지혜를 말하고, 
質直者名為常住, 질직이란 상주라 할 것이며, 
如來常者名為依法, 여래가 항상하다는 것은 
  법에 의지함[依法]이라 하거니와,  
法者名常,亦名無邊、 법이란 상(常) 또는 무변(無邊)을 이르며, 
不可思議、不可執持、 불가사의하고, 붙잡을 수 없고[不可執持],  
不可繫縛而亦可見; 묶을 수도 없지만 볼 수는 있는 것이라고도 하니,  
若有說言不可見者, 만일 누가 볼 수 없다고 말한다면 
如是之人所不應依, 이런 사람은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에 
是故依法不依於人。 그래서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 것이요, 
若有人以微妙之語,宣說無常, 누가 만일 미묘한 말로 무상하다고 연설하거든  
如是之言所不應依, 이런 말은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是故依義不依於語。 따라서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니라. 
   
依智者, 지혜에 의지한다는 것은 
眾僧是常,無為不變, 승가는 항상하고 무위불변(無爲不變)하며 
不畜八種不淨之物, 여덟 가지 부정한 것을 모으지 않는 것이므로  
是故依智不依於識。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 것이며,  
若有說言,識作識受, 식(識)으로 짓고 식으로 아는 것이라 말한다면 
無和合僧。何以故? 화합승(和合僧)은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夫和合者名無所有, 화합이란 무소유를 이르는 것이거늘  
無所有者云何言常? 무소유인 것을 어떻게 항상하다 말하겠느냐? 
是故此識不可依止。 그러므로 식은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니라.
   
依了義者, 요의(了義)에 의지한다는 것은, 
了義者名為知足, 요의란 지족(知足)을 이르는 것이라 
終不詐現威儀清白、 결코 거짓으로 위의가 청백한 척하거나  
憍慢自高,貪求利養, 교만하고 높은 체하거나 이양을 탐내지 않고, 
亦於如來隨宜方便所說法中不生執著, 여래가 방편으로 설한 법에 집착하지도 않나니, 
是名了義。 이것을 요의라 하거니와 
若有能住如是等中, 누가 만일 이러한 가운데 머물 수 있다면 
當知是人,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則為已得住第一義, 이미 제일의(第一義)에 머문 것이니, 
是故名為依了義經。 그러므로 요의경에 의지하라는 것이니라. 
   
「不依不了義, 불요의에 의지하지 말 것이니,  
不了義者如經中說, 불요의란 경전에서 
一切燒燃、一切無常、 일체소연(一切燒燃)이요, 일체무상(無常)이며,  
一切皆苦、一切皆空、 일체개고(皆苦), 일체개공(皆空),  
一切無我, 일체무아(無我)라 하였거니롸 
是名不了義。 이것을 불요의라 한다. 
何以故?以不能了如是義故, 왜냐하면 그로써는 바른 뜻을 알 수 없기에  
令諸眾生墮阿鼻獄。 중생들을 아비지옥에 떨어뜨리기 때문이요, 
所以者何?以取著故, 그 것에 집착하므로써 
於義不了。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一切燒者, 일체가 타버린다[燒燃]는 것은 
謂如來說涅槃亦燒; 여래가 열반도 타버린다고 말한 것을 이르며, 
一切無常者, 일체가 무상(無常)하다는 것은 
涅槃亦無常; 열반도 무상하다는 것이며, 
苦空無我,亦復如是。 고(苦), 공(空), 무아(無我)도 그와 같다.   
是故名為不了義經, 따라서 불요의경이라 하는 것이니  
不應依止。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 
   
善男子! 선남자야, 
若有人言如來憐愍一切眾生, 누가 만일 '여래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善知時宜,以知時故, 적절한 때를 잘 아시며, 때를 아시므로 
說輕為重,說重為輕。 가벼운 것을 무겁게 여기고 
  무거운 것을 가볍게 여기신다'고 말하거나, 
如來觀知所有弟子, 또 '여래는 제자들을 살펴   
有諸檀越供給所須、 어느 시주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令無所乏, 궁핍함이 없게 하고 있거든    
如是之人, 이런 사람에게는 
佛則不聽受畜奴婢、金銀財寶、 부처님이 노비나 금,은 따위의 재보를 받거나 
販賣市易、不淨物等。 부정한 물건을 시장에서 팔고 사는 행위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若諸弟子無有檀越供給所須, 제자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시주도 없고
時世飢饉,飲食難得, 기근이 든 때라 음식을 얻기 어렵거든 
為欲建立護持正法, 정법을 세우고 호지하기 위해 
我聽弟子受畜奴婢、 부처님은 제자가 노비와  
金銀車乘、田宅穀米、 금과 은, 수레, 밭, 집, 곡식 따위를 받거나 
賣易所須, 필요한 것을 팔고 교환하는 일을 허락하되, 
雖聽受畜如是等物, 비록 이런 물건 받는 일을 허락하더라도 
要當淨施篤信檀越。 신심이 돈독한 시주의 
  청정한 보시여야 한다고 하셨다' 말한다면
如是四法所應依止。 이러한 네 가지 법은 의지해야 할 것들이며,   
若有戒律、阿毘曇、 어떤 계율이나 아비담(阿毘曇)이나   
修多羅不違是四, 수다라(修多羅)가 이 네 가지에 위배되지 않다면  
亦應依止。 또한 의지해서 마땅할 것이지만,   
若有說言,有時非時, 누가 만일 ‘때이거나 때가 아니거나, 
有能護法不能護法, 호법할 수 있거나 없거나 간에, 
如來悉聽一切比丘, 여래는 모든 비구에게 
受畜如是不淨物者, 그렇듯 부정한 물건 모으기를 허락하셨다’고 말하면, 
如是之言不應依止。 그런 말에 의지해서는 안 되려니와,  
若有戒律、阿毘曇、 어떤 계율이나 아비담이나 
修多羅中,有同是說, 수다라 안에 이와 같은 말이 있다면 
如是三分亦不應依。 이러한 세 가지도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 
我為肉眼諸眾生等, 나는 육안을 가진 중생들을 위해  
說是四依, 이 의지할 네 가지[四依]를 설한 것이요,
終不為於有慧眼者。 결코 혜안(慧眼)이 있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니,  
是故我今說是四依, 이런 까닭에 내가 이제 그 4의(四依)를 말하거니와,  
法者即是法性, 법(法)이란 곧 법의 성품[法性]이요, 
義者即是如來常住不變, 뜻(義)이란 여래의 상주불변(常住不變)이며, 
智者了知一切眾生悉有佛性, 지혜[智]란 일체중생은 다 불성이 있음을 요지하는 것이며, 
了義者了達一切大乘經典。」 요의(了義)란 모든 대승경전에 통달하는 것이니라.”
   

 

 

출처: 

《成实论》[13]、《顺正理论》[14]、《大般涅槃经》[15]、 《大方等大集经·无尽意菩萨品》[16]、《大宝积经·菩萨藏会·般若波罗蜜多品》[17]、 《大智度论》[18]、 《菩萨善戒经》[19]、 《瑜伽师地论》[20]、 《显扬圣教论》[21]、 《禅法要解》[22]、 《注维摩诘经》[23]、《摄大乘讲疏》[24]、《维摩义记》[25]、《自在王菩萨经》[26]、《法界次第初门》、《大方广佛华严经随疏演义钞》[27]。

 

 

 

《大方等大集經·無盡意菩薩品》:複次舍利弗,菩薩摩訶薩有四依法亦不可盡。何等為四?依義不依語,依智不依識,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依法不依人。云何依義不依語?語者若入世法中而有所說,義者解出世法無文字相。……語者說從發心至坐道場,修集莊嚴菩提功德,義者以一念慧覺一切法。舍利弗,舉要言之,能說八萬四千法聚是名為語,知諸文字不可宣說是名為義。云何依智不依於識?識者四識住處。何等四?色識住處,受想行識住處。智者解了四識性無所住。……識者行有為法;智者知無為法識無所行,無為法性無有識知。識者生住滅相;智者無生住滅相。舍利弗,是名依智不依於識。云何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不了義經者分別修道;了義經者不分別果。不了義經者所作行業信有果報;了義經者盡諸煩惱。不了義經者訶諸煩惱;了義經者贊白淨法。不了義經者說生死苦惱;了義經者生死涅槃一相無二。不了義經者贊說種種莊嚴文字。了義經者說甚深經難持難了。不了義經者多為眾生說罪福相,令聞法者心生欣戚;了義經者凡所演說必令聽者心得調伏。不了義經者若說我、人、眾生、壽命、養育士夫、作者、受者種種文辭,諸法無有施者受者,而為他說有施有受;了義經者說空、無相、無願、無作、無生,無有我、人、眾生、壽命、養育士夫、作者、受者,常說無量諸解脫門。是名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云何依法不依於人?。……如來為化攝人見者故,說依法不依於人。是法性者,不變不易、無作非作、無住不住、一切平等,等亦平等,不平等者亦復平等,無思無緣得正決定,於一切法無別無異,性相無礙猶如虛空,是名法性。若有依止是法性者,終不復離一相之法,入是門者觀一切法同一法性。是故說言依一切法不依於人。舍利弗,是名菩薩摩訶薩四依無盡。

 

 

 

《大智度論·初品·十方諸菩薩來釋論》:「佛經有二義:有易了義,有深遠難解義。如佛欲入涅槃時,語諸比丘:「從今日應依法不依人,應依義不依語,應依智不依識,應依了義經不依未了義。」「依法」者,法有十二部,應隨此法,不應隨人。「依義」者,義中無諍好惡、罪福、虛實故,語以得義,義非語也。如人以指指月以示惑者,惑者視指而不視月,人語之言:「我以指指月令汝知之,汝何看指而不視月?」此亦如是,語為義指,語非義也。是以故不應依語。「依智」者,智能籌量、分別善惡;識常求樂、不入正要。是故言「不應依識」。「依了義經」者:有一切智人佛第一,一切諸經書中佛法第一,一切眾生中比丘僧第一;布施得大富,持戒得生天——如是等是了義經。如說法師說法有五種利:一者大富,二者人所愛,三者端正,四者名聲,五者後得涅槃——是為未了義。云何「未了」?施得大富,是為了了可解;說法無財施而言「得富」,「得富」者,說法人種種讚施,破人慳心,亦自除慳,以是因緣得富,是故言「未了」。」

 

 

 

 

 

《菩薩善戒經·菩薩地三十七助道品》:「菩薩依義不依於字,菩薩聽法不為依字,唯為依義。菩薩摩訶薩依法不依人。知法非法,知如是法,是佛所說是長老說是眾僧說。若是非法,雖聞佛說心不生信。復有是法,非佛所說非長老說非眾僧說,雖非佛說長老僧說,是法相者,聞則信受。菩薩摩訶薩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依了義者,不可動不可移,了義經者不生疑心。菩薩若於了義經中生疑心者,則可移動。菩薩依智不依識。何以故?修智慧者,名淨智故。是故菩薩解甚深義。雖於深義未得解了,終不生謗。是名菩薩成就四依。菩薩成就如是四依。」

 

 

 

 

《瑜伽師地論·本地分·菩薩地初持瑜伽處菩提分品》:「云何菩薩修正四依?謂諸菩薩為求義故,從他聽法,不為求世藻飾文詞。菩薩求義,不為求文。而聽法時雖遇常流言音說法,但依於義恭敬聽受。又諸菩薩如實了知闇說大說,如實知已以理為依,不由耆長眾所知識補特伽羅若佛若僧所說法故,即便信受。是故不依補特伽羅。如是菩薩以理為依,補特伽羅非所依故,於真實義心不動搖,於正法中他緣匪奪。又諸菩薩於如來所,深殖正信深殖清淨,一向澄清淨,唯依如來了義經典,非不了義。了義經典為所依故,於佛所說法毘奈耶不可引奪。何以故?以佛所說不了義經,依種種門辯本性義,猶未決定,尚生疑惑,非了義故。若諸菩薩於了義經不決定者,於佛所說法毘奈耶猶可引奪。又諸菩薩於真證智見為真實,非於聞思,但識法義,非真證智。是諸菩薩如實了知,修所成智,所應知者。非唯聞思所成,諸識所能了達。如實知已,聞如來說最極甚深所有法義,終不誹毀。是名菩薩修正四依。依正四依善修習,故略顯四量。謂所說義,正理,大師修所成慧,真實證智。又諸菩薩一切四依為所依止,精勤發起正加行,故於出要道明了開示無有迷惑。」

 

 

 

 

《顯揚聖教論·攝事品》:「所依者,謂四種依,廣說如經。一依法不依眾生,謂若法是如來所說或弟子說十二分教隨學隨轉,不隨眾生所行行學亦不隨轉。二依義不依文,謂若法非飾詞者,所造綺文字句,唯能顯了獨滿清淨鮮白梵行,於此法中恭敬信解。非於能顯顛倒梵行,及不顯了梵行,但飾詞者,所造綺文字句。三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謂於如來所說相似甚深空性相應隨順諸緣緣起法中不妄執著,如言淺義亦不住自內見取心,唯勤尋究顯了義經。四依智不依識。謂不唯聽聞而生知足,便不進修法隨法行,然為盡諸漏勤求自內證真諦智。」

 

 

 

 

《注維摩詰經》:「什曰:佛言我泥洹後,當依止四法以為大師,所謂四依法也。明此四法可依止可信受也。依於法不依人者,法謂經教也。當依經法,不可以人勝故,背法依人也。法有二種,一文字語言二義法,莫依語也。義亦有二種,一識所知義二智所知義,識則唯求虛妄五欲不求實利智,能求實利棄五欲故。依智所知義不依識所知義,為求智所知義故依智也。智所知義亦有二種,一了義經二不了義經。不了義經如佛說殺父母無罪未分別,是不了義也。若言無明是父,愛是母,生死根本故名父母,斷其本則生死盡,故言殺之無罪既分別是了義經也。復次若佛言佛是人中第一,涅槃是法中第一,如是等皆名了義也。是故當依了義經莫依不了義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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