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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말에 자유로운 분, 언어에 걸리지 않는 분

누가 부처님에게 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akiriyavādo), 지음을 말하는 자(kiriyavādo), 단멸을 말하는 자(ucchedavādo),혐오 하는자(jegucchī), 폐지론자(venayiko), 고행자(tapassī), 모태에 들지 않는 자(apagabbho), 편안한 자(assāsako),즐김이 없는자(Nibbhogo),재미가 없는 자(Arasarūpo)라고 칭찬하고 비판해도 모두 그렇다고 대답한다. 부처님은 말에 자유로운 분, 언어에 걸리지 않는 분이다.

예를들어 무작론자 (akiriyavādo,업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와 행작론자(kiriyavādo,업지음을 말하는 자)는 반대어다. 그러기에 부처님이 이 두가지 입장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은 모순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부처님이 어떤 입장에 서든 모순이 되지 않게 설명한다.  이렇게 상대방의 말을 가져와 사용하되 상대방의 의미규정에서 자유롭게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처님의 언어 사용이다. 이것을 선종에서는 말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고, 개는 돌덩이를 쫒고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고 비유한다. 

 

 

 

웨란자 경(A8:11)

 

고따마 존자는 맛이 없는 분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맛이 없는 분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형상의 맛, 소리의 맛, 냄새의 맛, 맛의 맛, 감촉의 맛을 여래는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맛이 없는 분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Arasarūpo맛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arasarūpo samaṇo gotamo’ti. Ye te, brāhmaṇa, rūparasā saddarasā gandharasā rasarasā phoṭṭhabbarasā, te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arasarūp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재물이 없는 분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재물이 없는 분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형상의 재물, 소리의 재물, 냄새의 재물, 맛의 재물, 감촉의 재물을 여래는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재물이 없는 분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Nibbhogo(즐김)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nibbhogo samaṇo gotamo’ti. Ye te, brāhmaṇa, rūpabhogā saddabhogā gandhabhogā rasabhogā ­phoṭṭhab­ba­bhogā, te tathāgatassa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nibbhog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분(도덕부정론자)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분(도덕부정론자)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나는 []지음 없음을 가르친다. 나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에게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짓지 말 것을 가르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분(도덕부정론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Akiriyavādo(무작)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akiriyavādo samaṇo gotamo’ti. Ahañhi, brāhmaṇa, akiriyaṃ vadāmi kāya­ducca­ritassa vacī­ducca­ritassa mano­ducca­ritassa.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kiriyaṃ vadāmi.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akiriyavād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단멸을 말하는 분(단멸론자)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단멸을 말하는 분(단멸론자)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단멸을 가르친다. 나는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단멸할 것을 가르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단멸을 말하는 분(단멸론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Ucchedavādo단멸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ucchedavādo samaṇo gotamo’ti. Ahañhi, brāhmaṇa, ucchedaṃ vadāmi rāgassa dosassa mohassa.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ucchedaṃ vadāmi.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ucchedavād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혐오하는 분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혐오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나는 혐오하는 자이다. 나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말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혐오하고,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마음에 품는 것을 혐오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혐오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Jegucchī혐오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jegucchī samaṇo gotamo’ti. Ahañhi, brāhmaṇa, jigucchāmi kāya­ducca­ritena vacī­ducca­ritena mano­ducca­ritena.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samāpattiyā jigucchāmi.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jegucchī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폐지론자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폐지론자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폐지하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나는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폐지시키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폐지론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Venayiko제거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venayiko samaṇo gotamo’ti. Ahañhi, brāhmaṇa, vinayāya dhammaṃ desemi rāgassa dosassa mohassa. Anekavihit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vinayāya dhammaṃ desemi.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venayik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고행자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고행자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나는 나쁜 불선법들에 대해서 고행할 것을 가르친다.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말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에 대해서 고행할 것을 가르친다. 고행을 통해서 나쁜 불선법들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고행자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여래는 고행을 통해서 나쁜 불선법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고행하는 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Tapassī 학대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tapassī samaṇo gotamo’ti. Tapanīyāhaṃ, brāhmaṇa, pāpake akusale dhamme vadāmi, kāyaduccaritaṃ vacīduccaritaṃ manoduccaritaṃ. Yassa kho, brāhmaṇa, tapanīyā pāpakā akusalā dhamm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mahaṃ tapassīti vadāmi. Tathāgatassa kho, brāhmaṇa, tapanīyā pāpakā akusalā dhammā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tapassī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ī”ti.

 

 

 

 고따마 존자는 모태에 들지 않는 분입니다.”

바라문이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모태에 들지 않는 분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라문이여, 내생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再有]를 받아 태어남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여래는 내생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再有]를 받아 태어남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고따마 존자는 모태에 들지 않는 분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닭에게 여덟 개나 열 개나 열 두 개의 계란이 있다 하자. 닭은 계란들 위에서 바르게 품고 바르게 온기를 주고 바르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그러면 병아리들은 발톱 끝이나 부리로 달걀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올 수 있다. 이런 병아리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온 병아리는 제일 맏이인가 제일 어린가? 그대는 무어라 말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는 제일 맏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는 그들 가운데 제일 맏이입니다.”

“Apagabbho입태거부 bhavaṃ gotamo”ti? “Atthi khvesa,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apagabbho samaṇo gotamo’ti. Yassa kho, brāhmaṇa, āyatiṃ gabbhaseyyā punabbha­vā­bhi­nib­batti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mahaṃ apagabbhoti vadāmi. Tathāgatassa kho, brāhmaṇa, āyatiṃ gabbhaseyyā punabbha­vā­bhi­nib­batti pahīnā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Ayaṃ kho, brāhmaṇa, pariyāyo yena maṃ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apagabbho samaṇo gotamo’ti, no ca kho yaṃ tvaṃ sandhāya vadesi.

 

 

 

 

시하 경(A8:12)

 

1.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하고 있었다.

 

2. 그때 니간타의 제자인 시하 대장군이 그 회중에 앉아있었다. 시하 대장군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그분 세존은 아라한이고 정등각이실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을 친견하러 가야겠다.’

 

3. 그때 시하 대장군은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러 가고자 합니다.”

시하여, 그대는 []지음을 말하는 자(도덕긍정론자)인데 왜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인 사문 고따마를 보러 가고자 하는가? 시하여,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그러자 세존을 친견하러 떠나려던 시하 대장군의 의도는 가라앉아버렸다.

 

4. 두 번째에도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하고 있었다.

두 번째에도 니간타의 제자인 시하 대장군이 그 회중에 앉아있었다. 시하 대장군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그분 세존은 아라한이고 정등각이실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을 친견하러 가야겠다.’

그때 시하 대장군은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를 친견하러 가고자 합니다.”

시하여, 그대는 []지음을 말하는 자(도덕긍정론자)인데 왜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도덕부정론자)인 사문 고따마를 보러 가고자 하는가? 시하여,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그러자 두 번째에도 세존을 친견하러 떠나려던 시하 대장군의 의도는 가라앉아버렸다.

 

5. 세 번째에도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하고 있었다.

세 번째에도 니간타의 제자인 시하 대장군이 그 회중에 앉아있었다. 시하 대장군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그분 세존은 아라한이고 정등각이실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잘 알려진 많은 릿차위들이 집회소에 모여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한다. 그런데 니간타들에게 허락을 청하건 청하지 않건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니 나는 니간타들에게 허락을 청하지 않고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을 친견하러 가야겠다.’

그때 시하 대장군은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서 한낮에 오백 대의 마차를 준비하여 웨살리를 나갔다. 더 이상 마차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서 큰 숲으로 들어갔다. 시하 대장군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대장군 시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한 것입니까?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한 것입니까? [세존께서 설하셨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사람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저는 세존을 비방하고 싶지 않습니다.”

 

6.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akiriyavādo도덕부정론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지음을 말하는 자(kiriyavādo도덕긍정론자)라서 []지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ucchedavādo단멸론자)라서 단멸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혐오를 느끼는 자‘jegucchī라서 혐오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폐지론자venayiko라서 폐지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고행자‘tapassī라서 고행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apagabbho라서 모태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시하여,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편안한 자assāsako라서 안식(安息)을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akiriyavādo samaṇo gotamo, akiriy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kiriyavādo samaṇo gotamo, kiriy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ucchedavādo samaṇo gotamo, ucched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jegucchī samaṇo gotamo, jegucchit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venayiko samaṇo gotamo, vinay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tapassī samaṇo gotamo, tapassit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apagabbho samaṇo gotamo, apagabbhat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Atthi, sīha, pariyāyo, yena maṁ pariyāyena sammā vadamāno vadeyya: ‘assāsako samaṇo gotamo, assāsāya dhammaṁ deseti, tena ca sāvake vinetī’ti.

 

 

7.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지음 없음을 가르친다. 나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에게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짓지 말 것을 가르친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지음 없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 없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지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지음을 가르친다. 나는 몸으로 좋은 행위를 짓고 말로 좋은 행위를 짓고 마음으로 좋은 행위를 짓는 자에게 여러 가지 선법들을 지을 것을 가르친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지음을 말하는 자라서 []지음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14. 씨하여, 어떤 면에서는 마땅히 '수행자 고따마는 무작론자로서 무작의 가르침을 설한다. 그리고 그것으로서 제자를 인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이유란 무엇입니까? 씨하여, 나는 신체적인 악행, 언어적인 악행, 정신적인 악행의 무작을 설하고 여러 가지 악 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무작을 설합니다. 씨하여, 이것이 마땅히 '수 행자 고따마는 무작론자로서 무작의 가르침을 설한다. 그리고 그것 으로서 제자를 인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이유입니다. 

15. 씨하여, 어떤 면에서는 마땅히 '수행자 고따마는 행작론자로서 행작의 가르침을 설한다. 그리고 그것으로서 제자를 인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이유란 무엇입니까? 씨하여, 나는 신체적인 선행, 언어적인 선행, 정신적인 선행의 행작을 설하고 여러 가지 착 하고 건전한 것들의 행작을 설합니다. 씨하여, 이것이 마땅히 '수행 자 고따마는 행작론자로서 행작의 가르침을 설한다. 그리고 그것으 로서 제자를 인도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이유입니다. (전재성)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라서 단멸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단멸을 가르친다. 나는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단멸할 것을 가르친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단멸을 말하는 자라서 단멸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혐오를 느끼는 자라서 혐오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혐오하는 자이다. 나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말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혐오하고,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혐오한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혐오를 느끼는 자라서 혐오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폐지론자라서 폐지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폐지하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나는 여러 가지 나쁜 불선법들을 폐지시키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폐지론자여서 폐지하기 위하여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고행자라서 고행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나쁜 불선법들에 대해서 고행할 것을 말한다.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말로 짓는 나쁜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나쁜 행위에 대해서 고행할 것을 말한다. 고행을 통해서 나쁜 불선법들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고행자라고 말한다. 바라문이여, 여래는 고행을 통해서 나쁜 불선법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고행자라서 고행의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말할지도 모른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서 모태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내생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再有]를 받아 태어남이 제거되고 그 뿌리가 잘리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되고 멸절되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된 자를 나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시하여, 여래는 내생에 모태에 들어 다시 존재[再有]를 받아 태어남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만들었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모태에 들지 않는 자라서 모태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시하여, 어떤 이유가 있어,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편안한 자라서 안식(安息)을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가?

시하여, 나는 편안한 자여서 최고의 편안함으로 안식을 위해 법을 설하고 이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 시하여, 이것이 그 이유이니, 그 때문에 나에 대해 바르게 말하는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는 편안한 자라서 안식(安息)을 위해 법을 설하고 그것으로 제자들을 인도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8. 이렇게 말씀하시자 시하 대장군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시하여, 심사숙고한 연후에 행하라. 그대와 같이 잘 알려진 사람은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다.”

세존이시여, ‘시하여, 심사숙고한 연후에 행하라. 그대와 같이 잘 알려진 사람은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다.’라는 세존의 이러한 [말씀]으로 저는 더욱더 마음이 흡족하고 기쁩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외도들은 저를 제자로 얻은 뒤 시하 대장군은 우리의 제자가 되었다.’라고 온 웨살리에 깃발을 들고 다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존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하여, 심사숙고한 연후에 행하라. 그대와 같이 잘 알려진 사람은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다.’라고. 세존이시여, 이런 저는 두 번째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또한 귀의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세존께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시하여, 그대의 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니간타들을 위하여 준비된 우물물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오면 음식을 공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세존이시여, ‘시하여, 그대의 가문은 오랜 세월 동안 니간타들을 후원해왔다. 그러니 그들이 오면 음식을 공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라는 세존의 이러하신 말씀으로 저는 더욱더 마음이 흡족하고 기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듣기를 사문 고따마는 내게만 보시를 해야 한다. 남들에게 보시하면 안 된다. 내 제자들에게만 보시해야 한다. 남의 제자들에게 보시하면 안 된다. 내게 보시한 것은 큰 과보가 있다. 남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과보가 없다. 내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과보가 있다. 남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과보가 없다.’라고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존께서는 제게 니간타들에게도 보시를 하게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때가 오면 저희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저는 세 번째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또한 귀의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그날까지 세존께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9. 그러자 세존께서는 시하 대장군에게 순차적인 가르침을 설하셨다.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욕망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원, 출리에 대한 공덕을 밝혀주셨다. 세존께서는 시하 대장군의 마음이 준비가 되고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이 고무되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생겼음을 아시게 되었을 때, 부처님들께서 직접 얻으신 괴로움[]과 일어남[]과 소멸[]과 도[]라는 법의 가르침을 드러내셨다.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이 바르게 잘 염색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그것은 모두 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인 시하 대장군에게 생겼다.

 

10. 시하 대장군은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체득했고 법을 간파했고 의심을 건넜고 혼란을 제거했고 무외를 얻었고 스승의 교법에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그러자 시하 대장군은 세존께서 침묵으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그리고는 시하 대장군은 어떤 사람을 불러 말했다. ‘여보게 이 사람아, 그대는 가서 신선한 생선이 있는지를 알아보라.’라고. 그런 다음 시하 대장군은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세존께 시간을 알려드리게 했다.

세존이시여, 시하 대장군의 집에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11.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시하 대장군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 무렵 많은 니간타들은 웨살리에서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에서 팔을 마구 흔들면서 오늘 시하 대장군이 크고 살찐 짐승들을 잡아서 사문 고따마를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사문 고따마는 그것이 자신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을 알면서도 자신 때문에 준비한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시하 대장군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시하 대장군에게 귓속말로 이 사실을 전했다.

존자님, 지금 많은 니간타들이 웨살리에서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에서 팔을 마구 흔들면서 오늘 시하 대장군이 크고 살찐 짐승들을 잡아서 사문 고따마를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사문 고따마는 자신을 위하여 만든 것을 알면서도 자신 때문에 준비한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서 울부짖는 것을 아십니까?”

여보게, 그만하게나. 그 존자들은 오랜 세월동안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해왔지만 그 존자들은 근거 없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과 다른 그런 비방으로 세존을 해치지 못한다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버릴지언정 고의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네.”

 

12. 그때 시하 대장군은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딱딱하고 부드러운 여러 맛난 음식을 손수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시하 대장군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시하 대장군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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