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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까 석주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현재 네팔의 룸비니에는 아소까왕(B.C.273년~232년)이 세운 석주(石柱)가 있다. 그 석주에는 브라흐미 글자로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왕위에 오른지 20년에 신들의 사랑을 받는 '삐야다시' 왕은 이 곳에 와서 참배하였다.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 나는 이곳에 돌담을 쌓고 석주를 세웠다. 여기에서 세존께서 태어났기에 룸비니 마을에는 생산의 1/8만 내도록 하였다.”

“신들의 사랑을 받는(Devānaṃpiyena) 삐야다시(Piyadasina)”는 아소까왕(Asoka)의 다른 이름이다. 마우리야 왕조의 제 3대인 아소까는 즉위 8년후 42세에 불교로 개종하였다. 처음 몇 년은 신심이 없이 지내다가 즉위 10년부터 보드가야를 찾아 참배하고 팔만사천개의 탑을 쌓고 인도전역에 바위와 석주(石柱)에 칙령(勅令)을 새겼다. 룸비니 칙령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서 사꺄무니 부처님이 태어났다(hida Budhe jāte Sakyamuni)”라는 문장 때문이다. 그때까지 어떤 학자들은 부처님이 실존인물이 아니라 힌두신화에 나오는 상상의 인물이라고 보고 있었다. 룸비니 석주 칙령의 해석으로 8대불교성지가 확인되었고, 종교를 차별없이 대하는 마음, 식물과 동물에게까지 사랑을 베푼 아소까왕의 행위가 알려지게 되어 아소까는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륜성왕이 되었다.
또한 아소까 석주에 새겨진 브라흐미(brahmi)문자는 부처님의 사리함에 새겨진 문자와 같은 것으로 부처님도 사용하시던 문자이다. 브라흐미문자는 싯달타가 어린 시절에 배운 문자중에서 하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500년동안 암송되다가 스리랑카에서 문자로 기록되었으나 부처님 당시에 살던 인도인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문자를 사용하였다.

* 부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였던 2700년전 브라흐미문자는 훈민정음과 자음체계가 같으며 발음도 같다.

𑀓𑀔𑀕𑀖𑀗  ㄱ  ㅋ ㄲ ㆁ , 

𑀘𑀙𑀚𑀛𑀜   ㅈ ㅊ ㅉ ㄴ ,

𑀢𑀣𑀤𑀥𑀦   ㄷ ㅌ ㄸ  ㄴ ,

𑀧𑀨𑀩𑀪𑀫  ㅂ  ㅍ ㅃ ㅁ

 

* 비구 허정과 형제자매들은 4월9일 백장암에서 어머니의 49재를 맞아 룸비니석주의 칙령이 새겨진 ‘다포’와 ‘백장암 독송집’을 보시하며 어머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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