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부처님의 불운한 말년
부처님의 말년은 불운했다. 출가했을 때부터 좋은 인연을 맺어온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72세때 아들 아잣타삿투에 의해서 감옥에 갇혔다가 끝내 굶어죽었다. 빔비사라왕은 15세에 왕위에 올라 52년간 통치하다 67세에 죽었는데 부처님과 승가에 보시를 많이 하고 수다원과를 얻은 사람이 이렇게 불운한 말년을 맞이한 것이다. 빔비사라왕이 굶어 죽자 왕비였던 꼬살라데위 (Kosaladevi)도 따라죽었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은 부처님이 열반하셨던 80세때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아자타삿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잠긴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에서 죽었다. 그 해 꼬살라의 위두다바에게 샤끼야족은 몰살을 당하였다. 부처님은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나뭇잎파리가 없는 나무밑에 앉아 “친족의 그늘은 나무그늘 보다 시원하다”라는 말을 3번이나 왕을 말렸지만 당신의 종족들이 학살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당신의 아들 라훌라 그리고 당신의 아내였던 아쇼다라 양모였던 마하빠자빠티도 당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고 당신이 열반들기 6개월전에 사리뿟다와 목갈라나의 입적을 보아야했다. 데와닷따는 끝임없이 당신을 괴롭혔다. 그는 부처님 면전에서 이제 부처님은 늙으셨으니 선정에 들어 행복하게 지내시고 “저에게 승단 을 맡겨주십시오”라고 요구 했다가 ‘다른 사람이 뱉은 가래를 삼키는 자’라는 꾸중을 들었다. 그 뒤 아잣따삿투는 부처님이 받아들이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다섯 가지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부처님께 제안했다. 첫째, 비구는 평생 숲속에서만 생활하고 사원에서 살면 안 된다. 둘째, 비구는 오직 탁발해서 먹어야 하고 일체 신도들의 공양청에 응해서는 안된다. 셋째, 비구는 남들이 입다버린 누더기로만 가사를 만들어 입어야 하고 재가자들이 새 천으로 가사를 만들어 입어서는 안된다. 넷째, 비구는 평생 나무 아래에서 머물러야 하며 지붕 아래에서 자서는 안된다. 다섯째, 비구는 생선이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예상한대로 이 다섯가지 엄격한 규칙을 부처님이 거부하시자 부처님도 사치에 물들어 있다고 비난했다. 이것을 빌미로 500명의 새내기 승려를 이끌고 가야산으로 가서 최초로 승가를 분열 시켰다. 부처님은 사리뿟다와 목갈라나를 보내서 그들의 대부분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현장스님의 기록에 의하면 데와닷따의 무리들은 7세기까지 인도에 존재했다고 한다. 데와닷따는 아잣따왕자에게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죽이고 왕이되라고 유혹했다. 빔비사라왕은 신하들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려던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왕이 된 아잣따삿투는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어 굶어죽게 만들었다. 대신에 가야산에 자리를 잡은 데와닷다 승가에게 3년동안 오백대의 수레로 음식을 실어 나르며 극진히 공양 올렸다. 빔비사라왕은 죽어서 천신으로 태어나 부처님을 찾아와서는 “세존이시여, 저는 자나와사바(Janavasabha)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빔비사라입니다.”(Dl8)라고 인사를 드렸다. 부처님이 천신 자나와사바에게 어떻게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묻자 그는 “세존이시여, 당신의 가르침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데와닷따의 꾀임에 빠진 아잣따삿투는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활을 잘 쏘는 자객 31명을 보냈다. 5번이나 살해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객들은 부처님의 자비심에 감화되어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했다. 데와닷따는 영축산을 거니시는 부처님께 바위를 굴려 살해하려 했지만 부처님의 발등에 상처를 입히는 정도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꼬끼리조련사를 꾀어 부처님이 오시는 길에 술취한 날라기리 코끼리를 풀어놓게 만들었지만 코끼리마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모두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술취한 코끼리를 제도하는 시무외인을 한 부처님의 모습은 왕사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되어 많은 조각상으로 나타나게된다.
부처님은 데와닷따의 행동을 보고 데와닷따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용서 받을 수 없다.”(A6:62)
데와닷따가 부처님은 연로하셨으니 그만 쉬시고 자신이 승가를 이끌겠다는 요구하고 승가를 분열시킬 목적으로 다섯가지 계율을 제안했을 때 까지만 해도 재가자들은 데와닷따의 본심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처님을 살해하려는 세 번의 시도가 발각되고 모든 왕사성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되자 아자따삿투왕도 데와닷따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지속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죽인 과보로 매일 악몽으로 괴로워 하던 아자따삿투왕은 주치의 지와까의 안내로 부처님을 만나 귀의하였다. 그는 불멸후 3개월후 개최된 제1차결집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왕의 후원이 끊기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던 데와닷따는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찾아뵈려고 가마를 타고 부처님이 계시는 사왓티로 갔다. 그 동안의 악업으로 부처님을 뵙지도 못하고 연못에 빠져 죽었다. 그 후 데와닷따는 악인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전생담에서는 데와닷따가 윤회를 거듭하며 부처님을 괴롭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부처님을 평생 따르고 시봉했던 빠세나디왕은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왕사성밖에서 추위에 떨다죽었고 빔비사라왕도 감옥에서 굶어죽었고 몸에 꿀을 바르고 왕을 살리려고 노력하던 왕비 꼬살라데위도 따라서 죽었다. 부처님이 세 번이나 말류했지만 사꺄족은 위두다바왕에게 몰살당하였다. 외도들에게 목갈라나는 맞아죽었고 부인이었던 야소다라비구니, 양모인 마하빠자빠띠, 살아생전에 후계자로지목했던 사리뿟따의 죽음을 보셔야했다. 열반하시기전에는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을 받고 죽을듯한 괴로움을 받으셨다.
모든 존재들은 태어났고 늙었고 병들었고 죽었다. 부처님은 그 길을 가셨고 수많은 제자들도 생로병사의 길을 갔다.
바람속의 먼지같은 삶의 여정에서 부처님의 말년은 불운했다. 그 불운한 부처님에게 마지막 제자 수밧다가 찾아왔다. 아난다는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내려했으나 부처님은 그를 가까이 오게해서 깨달음으로 이끄셨다. 다른 대중들에게는 “지금 궁금한 것은 물어라. 나중에 그때 묻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고 당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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