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부터의 혁명을 읽고
정지우 이우정 두 사람이 “더 이상 자살하는 젊은이가 없기를...”이라는 염원과 사명감을 가지고 썼다. 영화의 내용과 철학서적을 소개하며 끝까지 자신들이 견지하는 주제를 밀어부친다. 착한 과와 선생님처럼 새로운 단원이 시작할때면 복습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치열한 토론을 했으며 각 주제에 얼마나 공감을 했을지 느껴진다. 같이 뛰어들어 그들의 이야기에 발을 적시고 싶은 충동이 든다. 저자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이런 책이 현대인에게 불교를 소개하는 매혹적인 시도라고 보여진다. 누구에게라도 붙들리면 소용이 되는 것, 그것은 불교자체의 힘이겠으나 그동안 우리는 너무 구태의연하게 불교를 우리 언어의 에 담아 팔아왔다. 그래서 스님들이나 불자님들이 이 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이러한 시도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러한 시도가 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번역된 초기경전이 인터넷에 올려져서 누구나 경전을 검색하고 인용하고 응용하도록 해야한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다른 인문학 서적들처럼 가볍게 읽을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부분은 잘 읽혀지지도 않았다. 삶-현실, 주인자아-노예자아등 저자가 정의하고 있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읽어나가기가 벅찼다. 그래서 중간부분부터 읽었는데 거기부터는 글의 힘이 느껴져서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군데 군데 밑줄 긋고 싶은 내공있는 문장들이 많았다. 몇 개를 인용해본다.
“근래에 논인을 공경 할줄 모르는 것은 단순히 버릇이 없어서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배척’이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은 단순히 종교를 믿거나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오면 사람들이 모여도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언어가 사유판단, 반성의 계속되는 사유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저 유행하는 ‘코드’에 따라 선택되기 때문이다.“
”상대주의가 오히려 ‘근거없는 나’를 강화시키게 되었다. 나는 상대주위에 절대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에 이제 무조건 옳은 존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현대인의 언어는 공적 언어(현실의 언어)들에 함몰되어 있다. 이 언어는 사회 현실에 편승하는 길만을 지시한다. 이러한 현실 언어는 그 자체로 죽음을 몰아낸 언어들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살 것처럼 현실을 추구하도록 종용한다. 대신 우리가 죽음을 이해하려고 할 때 오는 것은 삶의 언어이다. 이 언어는 가장 먼저 사랑을 가르친다.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그 삶을 지속시키고 강화시키고 확대시킬 언어를 가르친다. 그 언어는 결단, 책임, 의지, 인내 같은 단어들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정신력을 붙잡고 계속되는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 우리가 자기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붙잡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복권이 시작된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이책을 쓰노라는 고백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고구정녕한 자비가 느껴지는 책이다. 특히 바른견해를 갖게 하기 위하여 철학자,영화등을 인용하여 호기심을 드높이고 이해도를 높이려한 시도는 성공하고 있으며 어려운 책을 끝까지 붙들고 있게하는 힘을 준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말하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해줄 테니 나도 인정해줘”라는 식의 위험성을 간파해 내어 조계종에서 시도하였던 종교평화선언 같은 시도가 잘못된 것임을 다시 일깨워 준다.
보이지 않는 느끼지 못한 실체(神)를 버리고 관계성으로, 특히 내면의 관계성으로 들어가라는 저자들의 충고는 불교의 연기성과 유교의 현실철학이 신을 상정하지 않고 세계를 해석하고,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계성을 파악하는 사실판단이 곧 구원임을 말하는 불교와 닮았다. 일독을 권한다. 일독을 하고 나서 누구와도 토론을 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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