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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호진 스님의 <성지에서 쓴 편지>를 읽고

 

 

호진 스님의 <성지에서 쓴 편지>를 읽고

 

 

 

 

 

  호진스님의 <성지에서 쓴 편지>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6명의 스님들과 인도성지 순례를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 다니며 인간붓다를 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부처님이 머무셨거나 지나치셨던 장소에 도착 할 때마다 경전을 독송하며 토론을 하고 부처님의 행적을 더듬어 갔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도성지순례>를 하고 있었기에 호진스님의 성지순례 과정을 편지글 형태로 쓴 이 책을 누구보다도 빨리 읽어 보고 싶었지만 인도에서 이 책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였다.  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4월 초에 조계사 앞 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하였고 천장사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

 

호진 스님은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까지 278킬로미터의 길을 14일 동안 걸었고 라즈기르의 영취산에서 열반지인 꾸시나라까지 352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20일에 걸쳐서 맨몸으로 걸었다. 이러한 고행을 통해서 호진스님이 찾으려는 것은 신화와 기적 같은 것이 완전히 제거된 인간냄새 나는 부처님이다. 호진스님은 경전에 묘사된 부처님의 신통력을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초기불교를 30년이나 연구한 스님은 석가모니 붓다의 친설이라고 전해진 아함경조차 후기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경전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님의 자세는 아직도 대승경전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라고 믿는 대승불교 권에서 유별난 것이며, 쓸모없는 경전의 어떤 부분을 도려 내겠다는 시도는 받아들이기 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호진스님의 책을 비판한 이제열 법사는 “비록 경전에 부처님에게 마라가 등장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부처님은 마라의 유혹을 받을 수도 없고, 마라의 영향을 받을 수도 없다.”라고 호진스님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입장이라기 보다는 거의 모든 대승불교도가 갖는 확고한 부처님상일 것이다.

 

나는 호진스님의 치열함과 연구방법을 좋아하며, 후대에 첨가된 한문 경전들은 빠알리 경전과 비교하여 버릴것은 버려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호진스님은 4성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3전 12행의 내용을 후대에 생긴 것이라고 보고, 마하왁가에서 나오는 12연기가 깨달음의 내용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천불화현, 도리천 방문, 술취한 코끼리를 조복 시킨 일,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바친 사건등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이러한 입장 차이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어떤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그 자료를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치만 이 책에서 정의한 깨달음과 열반만큼은 이곳에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스님은 깨달음과 열반을 다른 차원으로 보고 있는데 “깨달음은 '수단'이고 '열반이 목적입니다.” “깨달음은 '이해의 영역'이고 열반은 '체험의 영역'입니다.”라는 설명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초전법륜경을 이해하는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에서 꼰단냐의 깨달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하왁가에 나오는 초전법륜경에서 꼰단냐가 깨달음을 얻는 표현은 이렇다.

 

“그리고 세존께서 이 가르침을 설하시자, 꼰단냐는 먼지와 때를 멀리 여윈 법안(法眼)을 얻었다. 곧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아,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구나. 아,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구나.”

이리하여 꼰단냐 장로는 그때부터 안냐 꼰단냐(Añña Kondañña)로 불리게 되었다.

진실로 안냐 꼰단냐는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알았고, 법을 꿰뚫었다. 의심에서 벗어났고, 망설임을 제거했고, 두려움이 없었고, 스승의 가르침 외에 다른 것은 필요없게 되었다. 그가 세존께 청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오너라, 비구여. 내 이미 교법을 잘 설해 놓았다. 바르게 괴로움을 소멸시키고자 한다면 청정한 수행을 하라.” 안냐 꼰단냐는 이렇게 구족계를 받았다.

 

 호진스님은 안냐 꼰단냐(Añña Kondañña)의 안냐(Añña)가 여러 한문 경전에서 知,解,了達등으로 번역되었음을 설명하고 '이해(解)'의 뜻으로 보고 있는데 사실은 안냐(Añña)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이 경전의 문장표현과 문맥상의 의미는 꼰단냐가 처음으로 수다원과를 얻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꼰단냐가 얻은 법안이란 수다원으로서의 법안이고 깨달음이지 아라한의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4명의 수행자들이 꼰단냐와 같은 수다원의 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세존과 비구들은 세 비구가 걸식해 온 음식을 먹으며 지내다가 왑빠(Vappa) 와 밧디야(Bhaddiya)가 깨달음을 얻었고 시간이 더 지나서 마지막으로 마하나마(Mahānāma)와 앗사지(Assaji)가  법안을 얻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오비구들이 모두 수다원을 얻었을 때 무아경을 설하게 되는데 이 경을 듣고 비로서 그들은 모두 아라한이 된다.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이러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아라한의 오도송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소멸한다’라는 수다원의 오도송과는 다르다. 

 

마지마 니까야 M73번 경에서는 초전법륜경의 이러한 표현이 수다원의 상태란 것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왓차여, 나의 제자로서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쾌락을 수용하지만(kāmabhogino), 가르침을 따르고, 훈계를 받아들이고, 의심에서 벗어나, 의혹을 제거했고, 두려움 없고, 스승의 가르침 외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사는 우바새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그 보다 훨씬 많다.”

 

이 경에서 왓차곳따는 부처님에게 '당신은 아라한과 아나함의 지위를 얻은 제자를 몇 명이나 있냐'고 묻는데 붓다는 자신의 비구 비구니 제자중에서 아라한과나 아나함과를 얻은 제자가 무수히 많다고 대답한다. 왓차곳따는 다시 수다원의 지위에 오른 우바새가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 붓다는 수다원에 오른 제자가 무수히 많다고 답변하는 내용이다. 붓다의 대답에서 ‘흰 옷을 입고 감각적 쾌락을 수용하지만(kāmabhogino)’이라는 표현은 재가자로서 결혼생활을 하는 우바새를 말하고 ‘가르침을 따르고, 훈계를 받아들이고, 의심에서 벗어나, 의혹을 제거했고, 두려움 없고, 스승의 가르침 외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수다원의 지위에 오른 것을 말한다. 이밖에 수다원과를 묘사하는 다른 표현은 수행자가 10가지 족쇄 중에서 3가지 족쇄를 제거한 상태로 설명되기도 한다. 

아라한의 깨달음은 곧 탐진치의 소멸인 열반이므로 '깨달음은 수단이고 열반은 목적'이라는 표현은 성립 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수다원의 깨달음'을 의미한다면 지당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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