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만원이 넘는다는 꽃등심보다 맛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나는 안다네,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시장 자판에 올려진 고등어. 곧 누군가의 손에 들려 불에 굽히고 식탁에 올려 질 테지만 고등어의 눈은 슬프지 않다. 따뜻하다. 오히려 퇴근길의 서민들을 향해 “수고 했어요”라고 격려한다.
과학도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전향한 ‘루시드폴’ 조윤석〈사진〉 씨(35)의 4집 앨범 타이틀곡 ‘고등어’. 이 노래는 귓가를 맴도는 부드러운 선율과 입에 쩍쩍 달라붙는 가사가 일품이다. 또 현란한 비트와 고음 발성만이 주를 이루는 아이돌 노래 일색의 가요 차트에서 줄곧 상위에 머물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떤 곡은 선사들의 선문답처럼 순식간에, 어떤 노래는 공식을 밝히듯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야 완성되죠. ‘고등어’는 전자에 속합니다. 불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곡이죠.”
인디밴드 ‘미선이’로 시작해 ‘루시드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4장의 개인 앨범을 통해 시종일관 소외된 이웃과 서민을 다독여 온 조윤석 씨. 그의 노래가 ‘치유의 음악’으로 회자되듯 자신의 ‘불교 인연’도 술과 고뇌에 쌓여 지내던 1998년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바로 그 치유에서 시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주 힘든 시기에 무심코 읽기 시작한 천수경이 사무치게 와 닿았어요. 독실한 불자였다는 친할머니가 얘기가 문득 떠오르더군요. 불교신자의 길을 결심한 건 그 찰나였죠. 그 후 천수경 강해서를 읽고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 경전과 선어록을 읽으며 불교적 가치관이 마음 속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 즈음 주위에서 보는 제 모습도 무척 밝아졌다고 해요.”
대학 졸업 후 스웨덴, 스위스로 이어진 유학 생활의 외로움은 그의 신심을 더욱 굳건하게 했다. 고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매일 저녁 예불을 봤고 머리맡에는 항상 경전을 두고 읽었다. 200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달라이라마 초청법석에 참가한 일은 티베트 불교에 매료되는 계기가 됐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함께 하는 국제적인 토론회였어요. 질의응답 시간에 어느 질문자가 자신은 너무 바빠서 수행할 시간이 없다, 도대체 언제 수행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죠. 달라이 라마는 웃으시며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하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심각하고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라는 그 말씀에 죽비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이날 법석의 영향이었을까. 공학도와 음악인 사이에서 머물고 있던 그는 4년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음악인으로의 전향을 선언했다. 그의 학위가 세계적인 논문지에 실리고 결과물은 미국에서 특허까지 취득해 이미 순탄한 미래가 보장됐는데도 말이다.
“불교를 감히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불이(不二)사상’이라고 생각해요. 너와 내가 없고 과거, 현재, 미래도 없는, 모두 하나인거죠.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위스에서 천성산 문제와 새만금 개발 사업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불이사상, 생태중심 사상을 과학보다는 노래로 표현하는 게 제 소임이라는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티베트 불교 출가자가 되고 싶다”는 조윤석 씨. 승속의 경계를 떠나 그는 이미 노래로 온 생명을 치유하는 순례자가 분명하다.
부처님 자비와 문수 지혜 깃든 명반
루시드폴 4집 〈레미제라블〉
‘루시드폴’ 조윤석 씨의 4집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그가 2009년 초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음악인으로 전업을 선언한 후 처음 발표한 앨범이다. 지난해 12월 발매되자마자 3일 만에 1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036호 [2010년 02월 17일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