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교육은 백지에 새로 짜야 합니다.
존경하는 대덕스님들께.
종단을 이끄시는 존경하옵는 여러 대덕스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미국에 살고 있는 비구니 일아입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한지도 18년이 됩니다. 총무원장님과 교육원장님이 새롭게 바뀌었고 이 분들은 능히 남이 상상 할 수 없는 일대 개혁을 하여 고여 있는 물의 물꼬를 터서 다시 이 시대에 필요한 불교를 세우시리라 확신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저는 기독교와 가톨릭에 수년간 익숙하게 살았기 때문에 저의 눈에 비친 불교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하여 외람되오나 저의 짧은 소견을 말씀드림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먼저 한인 교포가 가장 많은 미국 엘에이 (LA)의 불교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말씀드리고 승가교육의 문제점과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LA 불교 현황>
2008년 한인 업소록에 교회수는 708개, 신학대학은 48개, 기도원 30개, 천주교 25개, 원불교 7개, 불교는 15개 (조계종은 10개)입니다. 조계종 10개의 사찰 중 정혜사 어린이 청소년 법회가 가장 활발하고 (아이들이 약 60명) 그 나머지 사찰은 모두 제사와 염불에 의존하고, 신도가 점점 줄어 노인네 신도를 빼면 몇 안 되는 상황입니다.
기독교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엘에이의 한인을 모두 기독교화 하겠다는 운동인 “LA (엘에이) 성시화운동”을 시작하여 지금도 각 신학대학에는 성시화운동본부가 있고 엘에이를 기독교화 하는 운동을 하고 있고 이곳 한국인의 약 70%는 기독교도가 되었습니다. 한 건물에 교회가 세 개나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그렇게 교회가 많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소리를 안 듣는 곳이 없고, 모임에서 기도를 하고 한인 사회의 큰 행사는 대개는 교회에서 기독교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버스를 타면 전도사들이 극성이고 길을 갈 때에도 옆에 붙어서 예수 믿으라고 하고 한번은 어떤 광신도가 “중이 왜 산에 살지 여기 있느냐“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런 광신도들은 절 안에까지 들어와서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괴롭힙니다. 미국의 어떤 기독교 나라도 한국 기독교처럼 이렇게 광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책임이 불교에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절에는 마귀가 있는 곳이니 가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엘에이에서 불교 신도로 사는 것은 투사적 신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불교도로 엘에이에 산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절에 다닌 사람도 모두 기독교로 가버립니다.
<한인들의 불교를 보는 눈>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불교를 무식한 구태의 종교, 미신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스님들을 무식하고 점이나 치고 미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어느 절에서는 스님이 시간 약속을 하여 돈 받고 사주팔자니 점을 보아주고, …사 라고 절 이름을 간판 걸고 들어가 보면 부처님 모셔놓고 점치는 곳입니다. 이런 불교가 사람들에게 미신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현 실정>
한국에서 강원도 안 가고 선방에만 다녔다는 스님들이 미국에 오면 이분들은 포교의 열정도 없을뿐더러 부처님이나 불교 교리도 잘 모르고, 설법도 못하고, 강의도 못하고, 어린이, 학생들, 청년 지도도 할 줄 모르고, 포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거기다 선방만 다녔기 때문에 염불을 못한다고 말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전쟁터에 나간 사람이 맨 주먹으로 싸우겠다는 식이지요.
이런 스님을 사찰이나 신도들이 환영할 리가 없지요. 이 스님을 이렇게 무능력자로 만들어 슬프게 하는 근본원인은 “강원 안가도 기초선원만 나오면 구족계 받는다.”는 종단의 잘못된 교육제도 때문입니다. 일생을 참선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소임이나 사찰운영 등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참선만을 한다 해도, 배운 사람이 참선하는 것은 지도를 가지고 목적지를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기초선원 제도는 없어져야 됩니다.
LA 불교의 모습이 이 지경인데 아직도 스님들을 서당식 강원교육에 선교육만 시키니 한탄스럽습니다. 작금의 종교편향으로 불교를 무시하는 현상은 기독교의 훼불을 비롯한 수많은 피해를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사안일로 일관해온 스님들의 결과입니다.
다음은 강원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잘못된 강원교육:
저의 주장은 수백 년 내려온 서당식 현 강원 교육은 스님들을 무능력자로 배출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의 한도 내에서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는 유물관에나 있어야 할 그런 구태의연한 서당식 교육이 강원에서 아직도 그대로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강원교육은 현장에서 즉각 써 먹을 수 있는 필요한 교육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고 써 먹을 데가 없는 죽은 교육입니다. 지금 한문으로 된 경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독 한국의 기독교 광신도들이 이렇게 기고만장하여 판을 치는 것은 시비하지 말라는 선불교에 치중한 서당식 교육을 받은 스님들의 무사안일한 사고방식에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700개가 넘는 작은 불상들의 목을 다 자르고 불상을 여기저기서 훼불하고 사찰에 방화를 하고 부산에서 사찰 무너지라고 광란의 짓들을 해대도 불교는 그저 당하기만 하고 침묵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불교의 안일한 대처는 이들의 광적인 행태를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와 지금과 같은 종교편향의 형국에 이르렀다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이미 지난번 범불교도 대회처럼 기독교 만행을 규탄했어야 합니다.
불교가 힘이 있어야, 스님들이 힘이 있어야 불교의 존립이 가능합니다. 한국불교는 선불교에만 치우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스님들의 각 개인의 성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강원에서 무조건 참선 공부나 시켜 선방에나 보내야 최고요 포교한다고 하면 하근기라고 보는 풍토가 한국 불교를 쇠퇴하게 만든 주범이지요.
더구나 경전이나 서적은 걸림돌이라고 읽지도 말고 무조건 깨치면 된다고 스님들을 무식쟁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에 계속 당하고 산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남한테 큰 소리도 칠 자신이 생기고 알아야 중생의 스승 될 자격이 있습니다.
➀ 행자 교과서부터 문제 있음
불문에 처음 들어와서 가르치는 과목이 초발심자경문입니다. 초심 (고려 보조국사), 발심 (신라 원효스님), 자경문 (고려 야운스님). 처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출가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일생과 그 가르침은 가르치지 않고 옛날 스님들의 글만 가르치는 것은 누가 들어도 납득키 어려운 모순입니다. 수백 년 변치 않는 행자 교과서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부처님의 일생과 근본 가르침을 가르쳐야 합니다.
➁ 행자교육 기간의 문제
한데 모아 교육시키는 행자 교육기간은 적어도 1년은 되어야 합니다. 해인사나 운문사 같은 규모가 큰 강원에서 함께 모아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➂ 기초선원의 폐지
강원안가도 기초선원만 나오면 구족계 받는다는 규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일생을 참선만 할 수 없습니다. 참선하더라도 이론을 알아야합니다.
➃ 스님들의 청정정 회복 절실
스님들의 사회적 위상은 바닥입니다. 2009년 9월 28,29일 글로벌리서치에서 전국 19세 이상 천명의 전화응답방식으로 조사한 종교의 사회적 신뢰도 평가에서 가톨릭 (36.2%), 개신교 (26.1%), 불교 (22%)였습니다. 종교별 호감도는 가톨릭 (33.7%), 개신교 (28%), 불교 (26%)였습니다. 신뢰도와 호감도에서 가톨릭과는 너무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개신교보다 더 신뢰심이 가지 않고 개신교보다도 더 호감이 안 가는 불교로 전락된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깊이 통찰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무사안일하게 제처 놓을 일이 아닙니다.
➄ 사미니에서 구족계 받는 기간 동안의 재교육 절실, 모든 스님의 재교육 절실
신부나 수녀들은 매년 재 수련을 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사미의 재 수련도 없고 구족계 받으면 끝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사미 5년 동안 매년 여름방학 한 달간씩 재교육을 실시하여 스님들의 자질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구족계 후에도 매년 재 수련이 모든 스님에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승가대학 졸업한 비구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부 비구 스님들의 타락상은 벌써 사미 때부터 엉망이라 합니다. 청정성 회복은 철저한 재수련이 필요합니다.
2. 강원 교과목의 문제점: 대부분 승가대학 현 교육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년 |
전통 명칭 |
과목 이름 (기본 과목) |
약간의 다른 과목 있음 |
1학년 |
치문과 |
치문 | |
2학년 |
사집과 |
서장, 도서, 선요, 절요, 우법소승… | |
3학년 |
사교과 |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 | |
4학년 |
대교과 |
화엄경 |
과목 |
한자명 |
내용 |
저자 |
치문 |
緇門 |
중국의 역대 선지식들의 유문을 편집한 책 |
중국 스님 |
서장 |
書狀 |
대혜종고 스님이 선의 질문에 답한 편지글 |
중국 스님 |
도서 |
都序 |
중국 규봉 종밀스님의 중국 선 사상의 형성 |
중국 스님 |
선요 |
禪要 |
중국 고봉 원묘 스님의 선법의 요의를 적은 책 |
중국 스님 |
절요 |
節要 |
보조국사 지눌의 선의 정혜쌍수를 말한 책 |
한국 스님 |
능엄경 |
능嚴經 |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에 의거한 공관을 성립 |
중국위경? |
기신론 |
起信論 |
대승경의 공통된 교리를 말함 |
마명? |
금강경 |
金剛經 |
공, 무아를 설함. 집착을 경계함 |
대승경전 |
원각경 |
圓覺經 |
마음의 본 성품을 관함 |
중국위경? |
화엄경 |
華嚴經 |
대승불교의 수행체계의 정립, 보살행과 깨달음 |
대승경전 |
<위의 강원 전통 과목의 문제점>
① 초기경전을 가르치지 않는 오류
표에 있듯이 중국스님 일색입니다. 강원에 입학한 사미에게 첫 학기에 가르치는 것은 옛날 중국 스님들의 글인 치문입니다. 너무나 큰 오류는 강원에서 첫 대면하는 과목은 마땅히 부처님의 일생,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어야 합니다. 출가자는 불교의 뿌리인 부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웬 중국스님 글인지요. 그것도 한문으로 되어있어 난자 새기다가 많은 시간을 다 낭비하고 뜻도 한문서체에 국집하여 큰 틀의 이해를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강원 1학년에서는 빠알리 경전의 부처님의 일생과 근본 가르침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스님들의 주체성 확립에 아주 중요합니다. 스님들이 먼저 배워야 할 분은 중국스님도 아니고, 한국스님도 아닌 부처님 바로 그분이고 그분의 진설입니다.
종단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창립법회를 하고 공식적으로 출범을 선언한바 있습니다. 이들은 신선한 경쟁자가 될 것입니다. 상좌불교는 빠알리 경전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계율을 중요시합니다. 노랑 가사 입은 스님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빠알리어로 예불을 하고 빠알리어로 경전을 줄줄 다 외웁니다. 사람들은 점점 빠알리어 경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 재가 신도들이 운영하는 불교대학이나 몇몇 단체에서는 빠알리어 경전을 강의하고 빠알리 경전 독송회가 있어 매주 독송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변화에도 아직도 빠알리어 경전을 배우지 않는 곳은 강원이고 스님들입니다. 재가자들은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다 검색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스님들만 점점 더 뒤 떨어지고 구시대에 머물러 고립되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세계불교대회같은 행사도 하는데 빠알리 경전을 모르고 어찌 세계 석학들과 토론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근본 경전인 초기 경전을 부정하는 것은 부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중심은 어떤 훌륭한 중국선사나 한국선사도 아니고, 대승 보살도 아니고, 대승경전도 아니고, 바로 부처님일 뿐입니다. 그리고 바로 부처님의 육성이 담겨 있는 초기경전 빠알리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초기경전인 빠알리 경전을 가르쳐야 합니다. 불교의 뿌리를 알려야 합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직접 만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따르는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은 무엇인가”라는 학인스님들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합니다.
② 대승불교에의 지나친 치우침
현 강원 교과목은 대승불교 일색입니다.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에 지나치게 치우치다보니 상좌불교를 위의 강원 과목에도 있습니다만 “우법소승 (愚法小乘)”이라고 소승이 어리석은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결과적으로는 부처님의 초기경전이 어리석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런 왜곡된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강원의 절대 변하지 않는 절집 전통에 놀라울 뿐입니다.
학인 스님들에게 바른 안목, 바른 지식, 역사적인 사실을 사실대로 바로 알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천태 지의대사는 소승을 매도하는 법화경에 심취하여 오시교판 (五時敎判)으로 각 경전을 분류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이것은 역사적인 지식이 없는 중국 스님의 논리였는데 이렇게 잘못 꿰맞추어 놓은 오시교판은 불교에 대한 지식을 왜곡시켰고 이런 논리는 몽매한 중생을 잘못 이끌어 소승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③ 한문 난자만 새겨야 하는 한문본만의 치우친 과목
치문, 사집, 사교, 대교라고 이름을 붙여 과목을 정한 것은 조선 중엽에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350여 년 동안을 이 네 가지에 준하여 스님들을 그대로 교육하였다는 결론입니다. 서당식 교육은 한국 불교 쇠퇴의 주범입니다.
한문으로 된 책을 그렇게 많이 꼭 가르쳐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그렇게 짠 분의 기호였을 뿐입니다. 살아가는데 한자를 읽고 뜻을 알 정도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한문 원전도 빠알리어나 산스끄리뜨어처럼 외국어 원전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글세대에 맞는 한글 경전을 가르쳐야 하고, 컴퓨터 세대에 맞는 컴퓨터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몇 배의 효과를 얻을 것이고 학인들도 몇 배나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폭 넓은 공부를 시키지 않고 난자만 습득하며 배우는 한문본 서당식 교육은 숲은 모르고 이파리 하나만 들고 공부하는 격입니다.
④ 선과 연관된 과목 일변도로 치우침, 포교 복지 외면
학인의 성향에 따라 참선이든, 포교든, 교학이든, 복지이든 선택하여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탄탄한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한국불교가 선객만 길러 참선만 시키고 포교와 복지는 전혀 가르치지 않은 결과가 불교의 현실을 가져왔다고 생각됩니다. 참선 공부를 시키듯 포교와 복지 공부도 시켜야 합니다. 배우지도 않고 개념도 없이 저절로 포교나 복지활동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포교와 복지의 빼어난 모델인 아소까 사상을 가르쳐야 합니다.
3. 중앙승가대학의 문제점
<중앙승가대학에서 초기경전을 가르치지 않는 오류>
중앙승가대학 불교학과의 “필수전공” 과목을 보면: 밀교, 부파불교, 유식, 율전, 정토사상, 중관론, 종전강독 (조사어록), 천태사상, 한국불교, 화엄사상. 이었습니다.
“필수전공”이란 누구나 반드시 전공에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인데 초기경전인 빠알리 경전은 없습니다. 모두 대승불교 일변도입니다. 더구나 가장 후기불교에 속하는 부처님의 참모습과는 거리가 먼 밀교는 필수과목으로 놓고 초기경전은 없습니다. 조사어록, 논서들은 필수이면서 초기경전은 없습니다. 너무 모순입니다. 불교학과에서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것은 부처님 직설입니다. 후대에 걸러진 밀교나 조사 어록이나 논서가 아닌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경전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결과만으로도 현 승가교육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라는 결론입니다.
4. 강원을 폐지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강원의 몇 개의 과목만 바꾼다고 절대 승가교육이 해결될 수 없습니다. 도루묵입니다. 학인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제대로 시설과 공부 여건이 갖추어진 중앙승가대학이나 동국대에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스님들 교육 수준이 신부님들 수준이 됩니다. 강원은 시설, 교수진, 환경이 공부를 제대로 할 여건이 못 됩니다, 강원은 불교 침체의 주범입니다. 그러니 강원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2008년 전국 강원 입학생 현황 (조계종 2009년 통계자료집)입니다. 운문사외에는 모두 20명 미만입니다. 이런데도 강원을 고수하는 스님들, 이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학인들을 보내야 합니다.
<비구강원>: 해인사(20명), 통도사(20명), 송광사(12명), 범어사(10명), 쌍계사(9명), 불국사(8명), 화엄사(8명), 직지사(8명), 법주사(7명), 선운사(5명), 수덕사(4명), 백양사(3명).
<비구니강원>: 운문사(40명), 동학사(15명), 청암사(14명), 봉녕사(13명), 삼선강원(10명), 유마사 (2명)
<중앙승가대>: 사미(43명), 사미니(23명)
<동국대>: 사미 (31명), 사미니(18명)
<강원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스님들에게 제대로 공부를 시키려면 강원은 폐지하고 모두 중앙승가대나 동국대에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➀ 강원을 그냥 존속시키는 한 승가교육은 절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강원의 일부 교과과정을 수정한다 해도 교수진도 문제고 여러 상황이 어렵습니다. 공부할 여건이 전혀 안 된다는 결론입니다. 강원이 존속하는 한 이런 논란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불교는 점점 퇴보할 것입니다. 불교의 미래는 스님들의 수준 있는 양질의 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원은 폐지돼야 합니다.
➁ 강원은 중물 들이러 보내는 곳이지 공부 위주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그 결과가 무능력자 스님들을 배출하고 불교가 퇴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물이 너무 잘 들어 ‘신뢰도와 호감도’에서 가톨릭과 기독교에도 뒤지는지요? 중물을 한번만 들이면 잘 빠집니다. 매년 모든 스님들의 재교육이 절실합니다. 공부를 시켜야 할 때는 알차게 시켜야 합니다. 각 사찰의 이득 때문에 학인을 붙잡아 두려는 것은 아닌지요. 이런 안일한 생각이 있는 한 불교는 점점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물을 걱정하신다면 공동 행자교육을 1년으로 늘리고 사미기간에는 매해 여름 한 달간씩 재교육을 하고 구족계 후에도 모든 스님에게 필수로 매년 재교육을 하면 될 것입니다.
➂ 제대로 된 학교에서, 자질을 갖춘 박사학위 교수로부터, 도서관과 컴퓨터를 활용한 제대로 된 연구와 공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합당해야 합니다. 학인 숫자가 적으면 교수진이나 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에, 다시 서당식 교육에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이제는 각자의 사찰의 이득이나 일손이 아쉬워 학인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붙잡아두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불교의 앞날을 이끌 학인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➃ 다양한 교과목을 접하여 인식을 높이고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학이나, 참선, 포교, 복지, 역경, 상담 등 자신의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방면에 능력자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학인들에게 포교의 열정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포교의 중심은 훌륭한 설법입니다. 설법의 방법과 실습을 가르쳐야 합니다.
➄ 사찰의 소임이나 자질구레한 운력에 얽매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강원교육은 시도 때도 없이 운력이 있습니다. 소임도 살아야 하고요. 그러나 학교 공부하는 그 기간만큼은 다른 것에 끄달리지 않고 공부와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➅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도 못하는 여러 강원에 들어가는 예산은 중앙승가대나 동국대의 스님들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개라도 제대로 된 불교대학, 제대로 된 승가대학을 만들고 키워야 합니다.
➆ * 네 개의 강원을 하나로 묶어 학년별로 통합을 추진한다는 견해
즉 하나의 강원이 하나의 학년을 맡는 방식은 학인을 제대로 가르칠 만한 환경이 못 되는데도 학인이 없어 억지로라도 자기 절에 강원을 유치해야 된다는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 인터넷 화상 강의를 도입한다는 견해
실재 인물의 교수가 강의하는 것을 듣게 해야지 왜 인터넷 강의를 듣게 합니까? 학인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일반대학의 사회복지학과와 연계해서 수강하는 방식
중앙승가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수 있는데 스님들을 일반대학으로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결론>
학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한국불교는 달라집니다. 초기경전의 불교의 뿌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제 구실을 못하는 강원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학인들을 중앙승가대학과 동국대에 보내 수준 높은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한글세대 컴퓨터 세대에 맞는 한글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학인들의 근기와 성향에 따라 선이든, 포교이든, 교학이든, 복지이든, 역경이든 선택하여 전공하게 하여 다양한 방면에 인재를 양성하여야 합니다. 학인들의 다양한 교육은 불교의 미래, 불교의 힘과 직결돼 있습니다.
종교편향을 걱정하기 이전에 종교편향의 말이 나올 수 없도록 만드는 능력 있는 스님들의 배출이 급선무입니다. 불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스님들의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불법이 허물어지는 원인을 과감히 개혁해야 합니다. 그 주범이 바로 강원이고 그런 강원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자승 총무원장님과 현응 교육원장님은 막중한 승가교육 개혁을 기필코 이루시리라 확신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적이고 배타적이지 않고 미래의 종교로 서구인들은 불교를 꼽았습니다. 이 좋은 불교를 더 윤택하게 할 훌륭한 스님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합니다. 저의 외람된 짧은 소견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11월 27일 일아 합장.
일아(一雅·62) 스님
일아 스님은 서울여대를 졸업하고 여고 교사를 하다가 서울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에 입회했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한 뒤 수녀가 됐다. 그렇게 6∼7년가량 수녀로 살았다. 송광사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을 만나 석남사에서 법희 스님(현 석남사 선원장)을 은사로 출가했다.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미얀마의 마하시명상센터와 태국의 위백아솜 위파사나 명상수도원에 에서 수행했다. 그런 뒤 40대 중반인 91년 미국으로 건너간 스님은 17년 동안 살면서 뉴욕스토니브룩주립대 종교학과 학사 과정을 거쳐 웨스트대 비교종교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2002)를 받았다. LA 로메리카 불교대학과 LA 갈릴리 신학대학원에선 불교학 강의 했다.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2008)>과 인도의 전륜성왕 <아소까(민족사,2009)>을 출간했다. 내년 봄에는 칼럼집을, 가을엔 불교 연구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a href="http://www.mediabuddha.net/detail.php?number=4873
" target="_blank">미디어 붓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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