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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Re:장아함경의 편집시기는 대승불교의 출현 무렵으로 보는 근거?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저는 칩거해서 상윳따 니까야의 최종 편집본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번 정도 까페에 들어와 보는데 오리나무님이 다른 법우님들이 댓글로 달아주신 좋은 글들을 지우면서까지 몇 번에 걸쳐서 수정본을 만들면서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까페 운영자로서 이 글에는 답글을 달지 않으면 오리나무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되어 답글을 적어봅니다.

 

저는 오리나무님이 올려주신 “장아함경에는 과거7불, 미래불, 보살사상, 탑신앙, 봇다공뎍 찬탄 등의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보아 이 경전의 편집시기가 대승불교의 출현시기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곧 불멸 후 200~250 년 경으로 추정한다.”는 글을 토대로 저의 견해를 피력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곳에는 아함경은 없기 때문에 제가 번역한 디가 니까야 자료를 토대로 답글을 달겠습니다.

 

먼저 과거7불이 언급되면 대승불교의 출현이라고 봐야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칠불의 언급은 디가 니까야의 대전기경(D14)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윳따 니까야의 위빳시 경(S12:4)부터 사꺄무니 고따마 경(S12:10)까지 일곱 경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전기경과 상윳따 니까야의 이 일곱 경들은 석가모니 부처님뿐만아니라 과거의 부처님들까지도 모두 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통해서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깨달아서 부처님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칠불의 언급이 있기 때문에 후대요 대승불교의 출현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상윳따 니까야도 후대작인가요? 너무 억지스런 주장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앙굿따라 니까야의 아비부 경(A3:80) 등에서도 시키 부처님이 언급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칠불의 언급이 있기에 장아함 혹은 디가 니까야는 대승불교의 출현과 관계된 후대의 작품이라 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래불인 미륵불(멧떼야, Metteyya)은 디가 니까야 전륜성왕 사자후경(M26) §§25~26에 나타납니다. 미래불인 미륵불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대승불교 운운하는 것도 비상식적인 발상이라고 여겨집니다. 과거불을 언급했으면 당연히 미래불도 언급되어야 상식적이지 않습니까?

 

자이나교에서는 자이나 교조 마하위라 이전에 23명의 띠르탕까라(대성자)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종교의 위대성과 정통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현재 교조 이전에도 이미 부처님들과 띠르탕까라들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신화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인도라는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보살의 이야기는 이미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디가 니까야에만 나타나는 것이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다. 맛지마 니까야 M26, M36과 상윳따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와 쿳다까 니까야의 도처에 보살은 나타납니다. 보살은 결코 대승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 차용해간 개념입니다. 그러나 초기불전들에서 보살(bodhisatta)은 항상 깨닫기 전의 부처님들께만 적용되는 술어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보살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보리심을 발한 존재를 모두 보살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깨달았지만 반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분들도 보살이라 부릅니다. 이처럼 대승불교 운동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보살이라는 개념을 확장시켰을 뿐입니다. 그들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생명체들도 보살이라 불러야 한다는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였고, 이렇게 보살이라는 개념을 보편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성공하여 대승불교 운동은 도도한 흐름을 타고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지 디가 니까야에 보살이라는 용어가 나타난다고 해서 이것을 두고 후대 운운 대승불교 운운하는 것은 정말 불교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 내뱉는 무책임한 말이라 여겨집니다.

 

탑 혹은 탑묘에 대한 이야기는 디가 니까야 대반열반경(D16)에 많이 나타나고 다른 니까야의 경들에도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자탑(바후뿟띠까 쩨띠야)도 대반열반경 등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후대의 탑(thuupa, stuupa)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후대의 탑으로 이해해버린다면 정말 우스운 꼴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대반열반경 번역에 달았던 주해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탑묘’로 옮긴 cetiya(Sk. caitya)는 √ci(to heap up)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돌이나 흙, 벽돌 등을 쌓아서 만든 ‘기념물, 분묘’를 지칭하는 것이 일차적인 의미이다. 샤따빠따 브라흐마나 등의 바라문교의 제의서에도 짜이땨(caitya)라는 단어가 나타나며 짜이땨에 가서 제사지내는 것이 기술되어 있다. 아마 조상신이나 그 지역의 토지신 아니면 유력한 신을 모시고 그 지방 부족들이 모여서 제사 지내거나 숭배하던 장소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지금도 인도의 시골에 가보면 곳곳에 이런 크고 작은 건물이나 조형물이 있으며 이런 곳을 짜이땨라 부르고 있다. 초기경에서 쩨띠야(cetiya)는 불교의 탑묘를 지칭하는 말로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불교의 탑묘를 나타낼 때는 대부분 투빠(thuupa, Sk. stuupa, 스뚜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스뚜빠라는 단어는 브라흐마나(제의서) 문헌에서 묘지 ― 초기 아리야족들은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였다 ― 라는 뜻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기경에서 쩨띠야는 불교 이전부터 있었던 신성한 곳을 말하며 불교 수행자들뿐 아니라 여러 종교의 수행자들의 좋은 거주처가 되었고 부처님께서도 이런 쩨띠야에 많이 머무셨다.

 

물론 대반열반경(D16)은 부처님의 마지막 행장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당연히 부처님 입멸후에 투빠(탑)를 건립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말 대반열반경은 우스운 경이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디가 니까야나 장아함에 탑이나 탑묘가 나타난다고 해서 후대운운하거나 대승과 관계지으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붓다공덕의 찬탄이 디가 니까야에만 나오는가요? 최초기의 설법을 담고 있는 것으로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숫따니빠따에도 도처에 나타나고 맛지마 니까야나 상윳따 니까야나 앙굿따라 니까야 등의 다른 니까야들에도 많이 나타납니다. 물론 디가 니까야는 긴 경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찬탄 구절이 길고 보다 더 상세합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구절이 길고 상세하다고 해서 후대 운운, 대승불교 운운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고 근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므로 법우님이 제시한 이런 이유는 디가 니까야나 장아함이 후대에 결집된 것이라는 어떤 증거자료도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4부 니까야의 특정 경을 두고 후대적인 발상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장아함이나 디가 니까야 같은 특정 아함이나 니까야 전체를 두고 싸잡아서 후대운운하거나 대승운운 하는 것은 너무 차원이 낮은 발상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제석문경(D21)이 상윳따 니까야 할릿디까니 경2(S22:4)에서 할릿디까니 장자에 의해서 인용되어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설명해달라고 아래와 같이 질문되고 있습니다.

“존자시여, 세존께서는『디가 니까야「제석문경(D21 §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애를 부수어 해탈한 사문바라문들만이 구경의 완성을 이루고 구경의 유가안은을 얻고 구경의 청정범행을 닦고 구경의 목적을 얻으며 신과 인간들 가운데서 뛰어나다.’라고. 존자시여, 이처럼 세존께서 간략하게 설하신 뜻을 어떻게 자세하게 알아야 합니까?”

만일 백보양보하여 법우님이 주장하시는 몇몇 터무니 없는 이유 때문에 디가 니까야나 장아함이 모두 후대에 결집된 것이라 한다면 상윳따 니까야에 디가 니까야를 인용하는 구절이 나타나기 때문에 상윳따 니까야는 디가 니까야 보다 더 후대에 결집된 것인가요? 우습지 않습니까?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요즘 보면 부쩍 초기불전들을 애써 깎아 내리고 대승과 별차이가 없다는 식의 비하적인 발상을 하는 분들이 눈에 뜨입니다. 그런데 왜 초기불교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한국불교에 올해 들어부터 부쩍 나타날까요? 그건 대승불교를 신봉하는 한국 불자님들 사이에 대승불교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위기감 때문일 것입니다. 구참스님들이나 연세 많으신 신도님들 사이에 이런 위기감이 아주 많아진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근거 없이 섣불리 초기불교를 비하하려는 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은 ... 한문 자료만 가지고 초기불교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만용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초기불교의 경들을 두고 후대발상 운운 대승불교 운운하려면 적어도 빠알리어와 산스끄리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계의 뛰어난 불교학자 치고 빠알리어와 산스끄리뜨의 대가가 아닌 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빠알리어와 산스끄리뜨를 알면 불교 이전시대의 베다와 제의서와 우빠니샤드와 동시대의 자이나교와 후대의 힌두사상 등과 비교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적어도 이정도 되어야 후대발상 운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정인 법우님이 올리신 제가 존경하는 권오민 교수님의 글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권오민 교수님이 빠알리어와 산스끄리뜨에 문외한임은 한국불교학계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분이 초기불교와 대승을 비교하여 초기불교를 폄하하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진중하지 못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마성스님의 지적처럼 세계의 저명한 불교학자들 가운데서 <현존하는 니까야가 불설이 아니라고 단언적으로 선언한 학자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빠알리어와 산스끄리뜨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이를 베다와 브라흐마나와 우빠니샤드와 자이나교의 아르다마가디와 조금이라도 비교해서 관찰한다면 만용에 가까운 발언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리나무 법우님은 <동일한 용어들이 초기대승경전과 초기불전인 장아함경에 공통적으로 보인다는 말인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라고 하셨는데 당연히 초기불교의 용어들을 채용하여 대승불교경전들은 그것을 좋게 말하면 더 심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금강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금강경의 산스끄리뜨는 대부분이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술어들입니다. 그리고 금강경의 상(산냐)은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산냐를 더 심화시킨 것이지요. 물론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해당하는 술어는 초기불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아상(atta-san$n$a)과 중생상(satta-san$n$aa)과 수자상(jiiva-san$n$aa)은 놀랍게도 청정도론과 주석서 문헌에는 자주 나타납니다.

 

이렇게 본다면 금강경은 청정도론과 주석서가 만들어지던 시대와 관련이 있는 경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청정도론과 주석서들은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서 AD5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모태가 되는 가르침은 이보다 더 이전에 있었겠지만 적어도 금강경은 초기불전들보다는 훨씬 뒤에 주석서문헌들이 성행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그리고 디가 니까야 뿐만아니라 상윳따 니까야 등의 초기불전에는 신화적이 표현이 많이 나타납니다. 신화적 표현은 모든 고대 문명에서 즐겨쓰던 기법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국의 여러 신화, 인도 신화 등등에는 이러한 신화가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인도에서 생긴 불교도 당연히 이러한 신화적 기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자이나교 경전들에도 신화는 많습니다. 이러한 신화를 배격한 것이 오히려 아비담마/아비달마입니다. 신화적 기법이 있다고 해서 이를 후대로 보는 것은 전혀 우스운 발상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신화를 서로 비교해보면 특정 경전의 신화가 어느 시대의 영향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초기불교신화는 모두 초기불교이전의 신화들 즉 4베다 특히 브라흐마나(제의서) 문헌과 초기우빠니샤드 문헌의 신화들과 관계있습니다. 그리고 초기불전의 신화는 모두 부처님이 신들과 인간들의 스승(천인사)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화적인 기법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가르치고 계신 것은 저 온처계근제연과 37보리분법 그리고 계/정/혜/해탈/해탈지견 등의 불교의 기본 가르침들임은 자명합니다. 초기불전에서 신화적인 기법이 많이 나온다해서 이것을 대승불교의 신화와 같이 봐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대승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신화는 대부분 대승불교가 흥기하던 시대의 신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비슈누와 시바가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라는 식의 신화 말입니다. 물론 불교가 생기고 나자 부처님은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힌두신화속에 편입이 됩니다. ... 그러므로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신화와 대승불전에 나타나는 신화는 그 배경이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구분을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백보 양보하여 디가 니까야를 불멸 후 200~250 년 경(즉 BC3세기경)의 아쇼카 대왕때 있었던 3차결집 때 완성된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대승경전이 출현한 BC 1세기나 AD1세기 보다는 200-250년 경이나 앞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으로도 장아함이나 디가 니까의 편집시기를 대승불교의 출현시기 무렵으로 추정하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입니다. 중요한 발언일수록 근거 없는 카더라식의 주장이 되어서는 정말 곤란할 것입니다. ...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시간관계상 이만 줄입니다. 적다가 보니 두서가 없이 되었지만 올려주신 질문에 조금이라도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각묵 합장

 

출처 : 초기불전연구원
글쓴이 : 초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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