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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황홀한 수행감옥”

 

“무문관, 황홀한 수행감옥”
백담사 무금선원 동안거 결제 현장

2009년 11월 30일 (월) 22:42:28 여수령 기자 webmaster@budgate.net

   
▲ 백담사 무문관이 동안거 결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백담사 가는 길은 자연으로 드는 길이다.

비취색 백담계곡을 따라 산길을 굽이돌아 백담사로 간다. 겨울 한철 살림을 위해 백담사에 방부를 들인 납자들 역시 이 길을 밟았을 것이다. 그들은 저 웅장한 자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안거 결제를 하루 앞둔 11월 30일,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을 찾았다. 무금선원은 이제 갓 출가한 사미승들을 위한 기본선원과 법랍 20년 이상의 구참(舊參)들만 방부를 들이는 무문관(無門關)이 공존하는 곳.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는, 이름 그대로 무고무금(無古無今)의 현장이다.

백담사는 한철 살림을 위해 경내를 깨끗이 쓸고 가꾼 모습이 역력하다. 계곡을 잇는 다리를 건너 금강문에 들어선다. 왼편으로 난 오솔길에 접어드니 무문관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으니 물음이 계신 분은 백담사 주지스님을 찾아가십시오.” 짧은 안내문이 무문관의 기백을 드러낸다.

   
▲ 밖에서 자물쇠로 잠긴 무문관.
평소엔 같이 결제에 드는 스님들조차 서로 얼굴을 모르는 무문관 스님들이 이날은 특별히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백담사 종무원이 “선방 스님들이 웬일이신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다. 무금선원장 신룡스님은 “절밥을 먹고 사는 처지에 불교를 위해 힘쓰는 분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뜻에서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동안거에는 무금선원 기본선원에 35명, 무문관에 11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다. 무문관은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폐문정진’을 하는 곳으로, 2~3평 정도의 독방에서 홀로 생활하며 정진하는 곳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내설악이 비치는 작은 창문과 하루 한 끼 공양이 오가는 공양구(供養口)가 전부다. 책은 물론 편지나 소포도 허용되지 않는 그야말로 ‘감옥’과 다름 아닌 곳이다.

무문관서 맛본 “매화 피는 향기”

일반인들에게는 감옥생활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무문관 생활을 지수스님(무문관 한주)은 “수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스럽고 황금 같은 삶”이라고 말한다.

지수스님은 무문관을 선택한 이유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무문관에 세 번째 방부를 들였습니다. 제방 선원에서의 결제는 대중과 함께 생활해야 하므로 낭비와 시비를 줄이기 위해 각자의 시간을 적지 않게 할애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자신, 자신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곳이 바로 무문관이지요.”

   
▲ 백담사 무문관 한주 지수스님.
하루 24시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년을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는 곳이 무문관이다. 외부와 단절된 그 곳, 사소한 대화나 소통도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서의 수행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초발심과 달리 무문관에 들고 처음 보름 동안은 온갖 장애를 겪습니다. 폐소공포증은 물론이고 환청과 정신분열에 시달리게 됩니다.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을 꾸리지 않으면 금새 몸과 마음이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지수스님은 정해진 시간에 108배 절 수행을 하고 바른 자세로 몸과 마음의 기운으로 추스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나태해지려는 몸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신과의 싸움. 그 싸움의 끝에서 스님은 “매화 피는 향기를 맛봤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 향기는 쉽게 오지 않는다.

지난 하안거에 이어 두 번째로 방부를 들인 관명스님(전 법주사 선원장)은 “지난 하안거 수행에서 조금 미진함을 느껴 다시 무문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대화ㆍ시비 끊어진 곳서 자신과의 싸움 시작”

관명스님은 “오롯이 혼자 생활하는 무문관은 대중선방과 달리 시비와 대화가 끊어진 곳이며 그곳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고 한다.

“생명 있는 것은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무문관에서는 그 활동조차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먹는 것, 움직이는 것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혼자 있다 보면 기운이 가라앉기 쉬운데 시비가 끊어진 그 자리에서 자신과 싸우다 보면 스스로 레벨 업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무문관은 철저히 혼자만의 길을 걷는 곳이지만 때때로 자신의 수행 경지를 내비치기도 한다.

   
▲ 백담사 무금선원장 신룡스님.
신룡스님은 “‘나는 아직 점검할 때가 아니다’라고 적힌 메모를 두어 차례 받았고 이 메모를 큰스님께 전해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문을 박차고 나올 때를 기다릴 뿐, 따로 점검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백담사 주지 삼조스님은 “처음 무문관 결제를 마치고 문을 열 때, 스님들이 초췌한 모습일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문을 나서는 스님의 얼굴이 한없이 맑고 밝은 모습이라 감동을 받았다”며 “이러한 무문관 수행 전통이 수행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전하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 최근 간화선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선수행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선방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신룡스님은 “최근 참선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간화선 수행이 대중화됐다. 하지만 이것이 몸의 안위를 다 누리면서 마음의 안위까지 구하려는 이기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고 말한다. 참선이란 깨달음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대발원 없이, 단순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방에 대한 우려, 현상만 가지고는 곤란”

최근 실상사와 백양사에서 열린 ‘야단법석’에서 지적된 해제비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신룡스님은 “해제비 문제는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지적해서는 안 된다”며 “수행자들에 대한 복지 틀이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수좌들 스스로 생필품과 의료비, 차비 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 해제비”라는 것이다. 해제비 문화만 나무랄 것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평생 수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참다운 승가복지”라고 스님은 강조했다.

   
▲ 무문관에 방부를 들인 야운스님과 주지 삼조스님, 전 법주사 선원장 관명스님.(왼쪽부터)
수행자 스스로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았다. 스님은 “해제 때 떠나는 만행이 곡해된 부분이 없지 않다. 수행자들이 해제 기간에는 삶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펼쳐본다면 또 다른 수행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100여 분 간의 시간 동안 질문과 답변을 마무리할 시간. 스님들은 기사를 통해 무문관 수행이 신비화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신룡스님은 “무조건 간화선 수행만이 수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간화선 수행전통이 사멸되지 않도록 지켜가야 하고, 그 맥을 이곳 무문관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덧 내설악에 저녁이 찾아들었다. 낮 동안 여유롭던 겨울바람이 매서운 기세를 드러냈다. 다시, 오른 길을 되짚어 백담사를 내려왔다. 푸른 계곡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백담사의 선풍(禪風)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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