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에 벽제 화장장인 승화원에서 서울장묘문화센터의 주관으로 '임종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임종체험을 직접 할 수 있는 기회이긴 했으나, 솔직히 죽기 전부터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누워 화장장 소각로까지 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손톱 끝만큼도 없는지라 그냥 구경만 하기로 했습니다.
승화원에서 '임종체험'을 한다는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노인복지전문가이자 죽음준비 전문강사인 유경 기자였습니다. 유경 기자는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는 '임종체험'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화장장에서 하는 '임종체험'은 처음인지라 직접 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취재를 권하더군요.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당연지사. 해서 한밤중에 화장장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날의 '임종체험'은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경 기자는 행사가 끝난 뒤에 "죽음은 이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종체험이 거의 이벤트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장묘문화센터에서 주최를 했다고는 하나, 직접 주관한 곳은 개인업체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유경 기자,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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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경 기자의 영정사진. 위패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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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
| 임종체험은 행사 주관업체 대표의 죽음 강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강의는 한 시간가량 이어졌는데 한밤중에 화장장에 앉아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노라니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차분하게 다가올 '임종체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강의내용은 이번 행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서울장묘문화센터 소장은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번 임종체험이 "(참석자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본인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강의내용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지요.
유경 기자는 강의에 대해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죽음준비는 "죽음이 있으므로 현재의 삶이 그만큼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이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게 아니다"라는 게 유경 기자의 설명입니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종체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날 임종체험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은 전부 10명이었습니다. 서울장묘문화센터 직원들과 일부 취재진까지 합하면 참석인원은 30여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승화원 건물 1층에 마련된 행사장은 컴컴했습니다. 앞쪽에서는 검은 띠로 장식한 조화가 놓여 있었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임종체험자들, 저승사자를 따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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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유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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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
| 임종체험자들은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 행사장에 도착합니다. 그곳에는 흰 옷에 흰 날개를 단 천사가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남자였고, 천사는 여자였습니다. 죽으면 저승사자를 따라 이승을 떠난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장례식장에서 저승사자와 천사까지 만나니 갑자기 현실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행사장 바닥에는 관들이 줄지어 놓여 있더군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관이 놓인 건 처음 봤습니다. 관 속에는 수의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임종체험자들이 영정사진을 찍었는데 관 옆에 영정사진과 위패가 놓여 있더군요. 저는 유경 기자 옆에 서 있었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유경 기자의 영정사진과 위패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아주 묘해지더군요. 하지만 유경 기자의 표정은 아주 덤덤했습니다. 잠시 후 임종체험자들은 수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이 앞으로 나가 유언장을 낭독했습니다.
이윽고 관 속으로 들어가는 차례입니다. 신발을 벗고 관 속에 들어가 누운 유경 기자. 나중에 한 남자 참석자는 관이 꽉 맞아 움직일 수 없어 두려웠다는 소감을 밝혔는데 유경 기자는 이전에 죽음체험을 할 때 들어갔던 관보다 넓어서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런 체험도 여러 번 하다보면 이력이 붙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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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 속에 수의을 입고 누운 유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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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
| 관 뚜껑이 닫히고, 저승사자가 망치를 들고 관에다 못질을 합니다. 땅땅땅... 못질하는 소리가 실내에 퍼져 나갑니다. 어둔 실내에서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관마다 찾아다니면서 못질을 하는 모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어린아이나, 노약자, 임산부는 체험을 삼가주세요'라는 멘트가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저승사자가 관마다 찾아다니며 흙을 한 삽씩 퍼서 관 위에 뿌립니다. 매장하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리고 난 뒤 천사가 관 위에다 국화 한 송이를 놓습니다. 다음 순서는 소각로로 관을 옮기는 것입니다. 몇 사람이 관을 흰 천으로 질끈 동여맵니다. 번쩍 들리는 관. 관은 수레위에 올려져 소각로를 향해 떠납니다.
직접 들어가 본 화장장 소각로
평소에 화장장 소각로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유족들은 소각로 입구까지만 따라갈 수 있지요. 소각로는 죽은 자의 공간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소각로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개의 소각로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의 소각로에 유경 기자가 누워 있는 관이 들어갔습니다. 소각로에서는 후끈거리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더군요. 낮에 소각로를 가동했기 때문이겠지요.
문득 유경 기자가 걱정되어 관을 두드리며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괜찮다는 대답이 관 속에서 들리더군요. 다행히 폐쇄공포증은 없나 봅니다. 조금 뒤 소각로 문이 닫혔습니다. 실제상황이라면 뜨거운 불꽃이 관을 삼키겠지만, '체험'이기 때문에 일이 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뒤 소각로 문은 열렸습니다.
관 뚜껑이 열리고, 수의를 입은 유경 기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유경 기자의 '환생'입니다. 유경 기자는 관 뚜껑이 열려 위를 보니 굴뚝이 보이더랍니다. 유경 기자도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는 체험은 해봤지만 소각로 위에 누워 보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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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각로 안으로 들어간 유경 기자의 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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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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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따라 소각로까지 가서 관이 소각로 안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저와 달리 관 속에 얌전하게 누워만 있었던 유경 기자는 화장장 소각로 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 이야기합니다. 유경 기자는 죽음 이후는 본인의 몫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고 명쾌하게 정리를 합니다. 죽은 자를 수의를 입혀 관 속에 넣고, 장례를 치러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건 남겨진 자들이 하는 일이지 죽은 자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서 유경 기자는 관 속에 베개가 없어서 맨 바닥에 머리가 닿아 누워 있을 때나 이동할 때 머리가 아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실제로는 관 속에 베개가 들어간다고 하네요.
이번 행사가 '임종체험'이기 때문에 '환생'한 사람들은 한쪽의 회의실에서 소감문을 작성했습니다. 음료수도 마시고, 천사로부터 환생을 축하(?)하는 장미도 한 송이씩 받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유경 기자와 저는 승화원 건물이 마주 보이는 휴식공간의 나무의자에 앉아 그날 행사에 대한 평가를 했습니다. 밤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요. 주변은 어둡고 고즈넉했습니다.
유경 기자는 '임종체험'을 화장장에서 깜깜한 밤에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죽음은 어둡고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장례식은 한밤중이 아니라 환한 낮에 치러지고 있습니다. 유경 기자는 "유언장을 한번 써보고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 누워보는 게 죽음 준비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렇게 해서 '한여름 밤의 화장장에서의 임종체험'은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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