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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말걸기

호진 · 지안스님에게 듣는다 / 부처님오신날 특별대담

 

 

2500여년 부처님가르침의 원천은 무엇인가

호진 · 지안스님에게 듣는다 / 부처님오신날 특별대담

 

  

매년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이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환희심 나는 날이다.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살펴보고, 가르침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본지는 지난 4월18일 영축총림 통도사 반야암에서 전 동국대 교수 호진스님과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지안스님을 초청한 가운데 ‘부처님 오신날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사회는 본지 이성수 차장이 맡았다.

 

 

“부처님가르침, 2500여년 이어져 온 힘은…

 

 중생들에게 삶의 지표 제시해주는 데 있어”

 


 前 동국대 교수 호진스님(왼쪽)과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지안스님



 

● 호진스님 : 1964년 법인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호진스님은 1969년 동국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1981년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까지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에서 불교학을 가르쳤다. 저서로 <무아.윤회문제의 연구>, <불적답사기>가 있고, <인도불교사>와 <아쇼까왕의 비문>등을 번역했다. 경주 기림사에 머물면서 저술에 몰두 하고 있다.

● 지안스님 : 1970년 벽안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지안스님은 1974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후 통도사 강원에서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1978년부터 10년간 통도사 강주를 지냈으며, 2001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승가대학원장 소임을 보면서 교직자 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금강경 강의〉〈신심명 강의〉 〈기초경전 해설〉 등이 있다.

 


 

-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부탁드린다.

지안스님 :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상황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좋을 때는 나쁜 때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어려울 때는 편한 때를 생각해야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이번의 어려움도 슬기롭게 견뎌내면 머지않아 좋은 때가 올 것이다. 의기소침하지 말고 좀 더 힘을 내어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럴 때 일수록 삶의 근본문제를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 부처님 가르침이 전해진지 2500년이 지났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1600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법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호진스님 : 불교가 인생의 근본 문제에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인데, 우리의 중심 문제는 동일하다. 예를 들면 생노병사의 문제라든지, 인간의 욕망문제, 행복(열반) 추구 등. 시대가 바뀌고,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 근본에 있어서는 다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가르침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안스님 :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인류(중생)에게 삶의 본질과 그 문제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불교의 근본교리인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는 ‘인간의 현실을 바르게 알도록 하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상을 제시해 주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효하다. 불교의 진리는 인간의 현실을 떠날 수 없다. 항상 우리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해 준다. 그렇기에 인간의 문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 왔던 것이다.

- 하지만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불교는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을 감내해야 했고, 해방 후에는 다른 종교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도 사실 아닌가.

지안스님 : 부처님 가르침이 아무리 탁월한 진리라 해도 그것을 수용하는 인간 세상의 상황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정법(正法).말법(末法) 시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불교를 바르고 깊게 믿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마구니가 강하고, 불법이 약하다’는 ‘마강법약(魔强法弱)’이란 말이 있듯이, 시대에 따라 굴곡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가치가 땅에 떨어질 리는 없다.

호진스님 : 현대라는 시대에 들어와서 서양의 문물이 세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동양은 서양의 문명 앞에서 거의 압도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서양을 등에 업은 기독교는 불교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종교 자체의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어느 문명인가. 설사 불교가 정서적으로 우리에게 맞고, 사상적으로 우월하다 할지라도, 현재로서는 우리사회에서 동양 문명이 주도권을 상실해 버린 것과 더불어, 동양 종교인 불교 역시 종교적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잃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만을 되돌아보면서 시대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불교 자신이 새로운 시대와 문명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큰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지안스님 :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사회적 배경과 역사의 진행 과정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전환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이에 비해 농경시대에서 산업사회는 수백 년,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시대는 불과 수십 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 강조하는 ‘도(道)를 닦아라’ ‘수행하라’는 메시지는 인간의 근본문제를 직시하라는 것이지만 때로는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 또 인간의 의식 템포가 빠른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본질 문제에 사고의 외면을 당하는 경향이 나타나 이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데는 어려운 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일반인들이 불교를 수용하고 현실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교가 현대인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불교인들은 어느 때 보다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 호진스님은 지난해 1년간 부처님 성지를 도보순례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깊이 생각한 점과 감명 깊은 점은 무엇이었는가.

호진스님 :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오래전부터 인도의 계절의 순환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안거 때 비는 어떤 식으로 오는지, 40℃가 넘는 더위는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했다. 부처님이 활약했던 지역의 토지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직접 보고 싶었다. 항상 경전만을 통해 연구를 하다 보니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부처님은 2500여 년 전 인도라는 먼 나라에 살았던 추상적인 존재로, 그리고 역사성이 거의 없는 전설과 신화로 가려진 인물로 느껴졌다. 이번에 약 1년 동안 여러 성지에서 몇 달씩 살면서 여러가지 의문점들을 풀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비록 2500여 년 전에 수행하고, 머물고, 여행했던 곳이긴 하지만, 그 현장에서 받은 느낌은 특별한 것이었다. 감동이 컸다.

- 성지를 순례하면서 가장 감동을 받은 곳은 어디였는가.

지안스님 : 8대 성지 또는 4대 성지 가운데 가장 감동이 깊은 곳은 아무래도 성도지(成道地) 보드가야였다. 부처님께서 한 나라의 왕자로서 부귀영화를 과감히 버리고 어려운 수행을 거쳐 깨달음을 성취한 그곳이 우리 불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성지인 룸비니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영축산이나 쿠시나가라 같은 곳도 가슴 속 깊이 부처님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부처님 성지에 도착해 눈물을 흘리는 불자를 여러 명 보았다. 그만큼 성지에서는 받는 감동이 크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피부에 와 닿는다.

- 초라한 성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을 텐데.

호진스님 : 그렇다. 대부분의 성지가 너무 초라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성지들의 모습은 모두 약 100여 년 이래로 발굴해서 복원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인도를 불교국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사실일 뿐 현재의 인도는 완전한 힌두교 국가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인도에서 시집간 딸이 몰락한 친정집에 가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물론 지난 20년 동안 많이 달라지고 변화된 곳도 있었다. 특히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는 많이 변했다. 네팔정부에서 무려 200만평(660만㎡)이라는 넓은 땅을 불교성지 개발을 위해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서 100만평(330㎡)을 분양해 원하는 나라 불교인들이 사찰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40개의 사원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16개 사원이 건립되었다. 룸비니는 성지 가운데서 가장 후미진 곳이었지만 지금은 8대 성지 가운데서 가장 활기에 찬 곳이 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절인 대성석가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주지 법신스님을 비롯한 우리나라 불자들의 원력으로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각국의 사원 가운데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슈라바스티, 사르나트(녹야원), 쿠시나가라, 보드가야에도 한국 절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불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 불자들과 종단의 보다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

- 한국인들도 성지순례를 많이 가는데, 그들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

지안스님 : 불자들에게 성지순례는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책에서만 보고 이해하는 것 보다는 직접 성지에 가서 참배하면 느낌과 감동이 다르다. 직접 성지순례를 하면 부처님을 이해하는 관점이나 수준이 높아지고, 불법에 대해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성지 순례를 하면서 얻게 되는 좋은 점이다.

호진스님 : 성지에 가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불교 순례단을 만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순례객들이 제일 비순례적인 것 같았다. 관광도 아니고 순례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절하고 사진 찍고 돌아가기 바빴다. 우리나라 불교 신도들은 성지 순례를 거의 여행사를 통해 하기 때문에 안내자들도 대부분 여행사 직원들인 것 같았다. 이에 비해 다른 나라 불자들이 스님들의 안내로 여유를 가지고 진지한 순례를 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의식도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앞으로 우리나라 불자들도 성지순례를 좀 더 많이 하게 될 터인데, 성지에서 하는 의식(儀式)도 개발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예불문이나 <천수경>은 성지에서 어울리지 않았다.

- 부처님 성지와 관련해서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호진스님 : 성지관리가 부실했다. 예를 들면 영축산에는 관리인 한 명과 경찰관 두 명이 있었다. 순례객들이 의식을 거행 하고 있는데도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떠들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무기를 소지 하고, 향실 주위를 어슬렁대었다. 그곳에 갈 때마다 그들의 거동이 눈에 거슬렸고, 기분이 상했다. 순례객들이 그곳을 떠나고 나면 관리인은 불전을 한 움큼씩 세어서 주머니에 넣곤 했다. 불전함도 없었다. 매년 그곳에 들어오는 불전이 적지 않을 것인데, 그 돈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궁금했다. 영축산 근방에 있는 방글라데시아 절에서 3개월 동안 지냈는데, 그곳 주지스님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축산이 위치한 라즈기르에는 사원이 4곳뿐인데다, 모두 외국절이기 때문에 성지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안스님 : 성지에 놓는 불전(佛錢)이 성지를 관리 하는데 쓰여야 할뿐 아니라, 그 지역의 발전이나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면 좋겠다. 성지의 관리와 순례자들의 편의시설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을 위한 병원 또는 학교를 세우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불교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이기 때문에 성지에 발언권이 없겠지만,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성지가 위치하고 있는 주 정부에 성지운영을 위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건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방치하다시피 해 두는 것은 문제다. 최소한 성지의 시주금은 위원회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 그곳에서 관리하거나 해당하는 지역의 주정부에서 관리하는 방법을 마련하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진스님과 지안스님은  “우리시대에 맞는 부처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두 스님께서는 지난해 불교신문 지면을 통해 ‘부처님 성지순례’ 편지를 교환하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호진스님 : 내가 오래 전부터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부처님의 역사적인 모습이다. 부처님이 존경스럽다고 해서 지나치게 신격화하거나 초인적인 모습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 싯다르타라는 역사적인 인물은 더욱 비역사적인 존재로 되어 버린다. 그의 가르침 역시 거기에 맞추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불교는 비역사적인 존재가 가르친 가르침처럼 되어 버린다.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가면서 힌두교에 흡수되어 버렸다. 인도에서 불교가 없어지게 된 것은 이슬람교의 침입 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자멸(自滅)해 버린 것이다. 현장스님이 7세기에 인도에 갔을 때 이미 불교는 인도 땅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의 여행기의 여러 곳에서 “사원은 황폐하고, 승려는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교가 인도에 들어간 것은 현장스님보다 400년 후였다. 부처님의 역사적인 모습을 찾는 것은 불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불교가 훨씬 건강해질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부처님의 모습을 추구하고, 거기에서 불교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지안스님 : 지난해 호진스님의 불교 성지 도보순례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역시 감동을 받았다. 서구에서는 이미 학자들이 ‘앞으로 탈종교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탈종교문제’를 주제로 토론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서양종교는 물론 현대종교가 과거 의존적이며, 허구적인 것을 추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대에 와서 종교에서 전설과 신화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사람들은 과학문명에 덜 훈습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설과 신화를 받아들였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인들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것에 귀를 기울인다. 종교는 현실에서 중생들을 계도해야 한다. 시대 상황에 맞는 역사 인식을 가지고 대안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호진스님이 원력을 가지고 성지를 도보로 순례 한 것은 바로 부처님의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하고자 한 것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호진스님 : 우리나라 불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부처님 상은 너무 낡았고, 비역사적인 것이다. 이제는 과감하게 부처님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 시대에 맞는 부처님의 모습을 찾아내어야 한다.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우리 선인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부처님 상을 만들었던 것처럼.

지안스님 : 그렇다. 세속에서는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 같은 것도 보통 20년이면 새롭게 바꾼다고 한다. 오랫동안 승가교육에 종사해온 입장에서 보면, 교재가 이미 몇 백 년 전에 나온 것이다. 근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기존 불교가 새로운 변화를 보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한다. 그리고 불교 내에서 지성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통을 내세운다는 명분아래 과거만을 답습하고 되풀이하면 미래지향적인 힘이 나오지 않는다.

   

 

● 호진스님

“역사적 인물 부처님 찾고자 성지 도보순례,  이를 통해 ‘불교의 정체성’회복 계기됐으면”

  
 
● 지안스님

“현대종교서 전설.신화 제거하는 일 중요,  ‘인간적 부처님’ 찾아 나선 호진스님 감동”
 
    
  
호진스님 : 그렇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다.

지안스님 : 불교가 새롭게 일반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아야한다.

호진스님 : 사실 부처님 모습이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전이나 문서로는 한계가 있다. 부처님의 역사적인 모습과 원음을 찾으려는 노력은 2500여 년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불교의 정체성을 찾아, 거기에서 다시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2500여 년 전 인도의 고대 불교시대로 돌아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지안스님 : 중세를 거치는 과정을 말하면, 현대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생각한 것들은 현대의 사고방식과 다른 것이 많다. 특히 종교에 그런 것이 많다. 이제 중세인들의 사고방식에 기준을 맞춰서는 안 된다. 그 방식이 과학문명시대인 현대에서는 맞지 않다. 억지로 비과학적인 것을 주입하려는 것은 헛된 노력이다. 서구에서는 오래전에 르네상스도 있었고, 종교개혁도 일어났다. 불교도 현대에 맞게 많은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21세기에 가장 많이 변해야 할 분야는 바로 종교라고 생각한다.

호진스님 : 한국불교는 고대 또는 중세적인 교육을 베풀면서 현대를 살려고 할뿐 아니라, 현대인들을 교화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공상차원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내용과 사고방식과 조직으로서는 첨단을 달리고 있는 사회를 계도한다는 것은 두고라도, 따라가기조차도 어려울 것이다.

지안스님 : 사실 기존 불교는 역사적으로 해오던 것을 답습하고 거기에 지배받고 있다. ‘다시 생각하는 불교’로, 이 시대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재정립해야 한다. 불교를 다시 볼 수 있는 연구와 노력을 통해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일방적으로 불교가 좋다고 자랑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정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http://www.ibulgyo.com/archive2007/200904/200904281240914014.asp
[불교신문 2522호/ 5월2일자]

2009-04-28 오전 10:27:04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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