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담당 진성 대종사 영결식-다비식 현장, 천진불, 불꽃 되어 사바에 나투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당 진성 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대종사가 후학들을 제접하며 직접 불사를 통해 총림의 격을 갖춘 수덕사에서 1만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여법하게 봉행됐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을 비롯해 도천, 천운, 진제, 고산, 혜정, 고우 스님 등 원로회의 의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전국선원수좌회는 물론 총무원 집행부, 중앙종회의원, 교구본사 주지 등 1000여 명의 스님들이 자리를 지켰다.
또 현각 스님 등 외국인 스님들과 스리랑카 왓치사라 스님, 락파쵸고 티베트 동아시아 대표부 대표, 그리고 1만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수행자의 본분사를 다하며 후학들을 지도했던 대종사의 뜻을 기렸다.
입적에 들기 전 마지막 한 말씀을 청하는 문도들에게 ‘그 일은 언구에 있지 아니해, 내 가풍은 (주먹을 들어 보이며)이것이로다!’라고 일러주고, ‘來無一物來(올 때 한 물건도 없이 왔고), 去無一物去(갈 때 한 물건도 없이 가는 것이로다. 去來本無事(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 靑山草自靑(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름이로다.)’라는 임종게를 남긴 채 홀연히 입적에 든 대종사를 가까이서 모셔온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은 “큰스님께서는 마음을 깨치지 못한 자는 경계의 종노릇 밖에 할 수 없다며 늘 후학들의 정진을 독려하셨다”고 대종사의 모습을 전했다.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도 “큰스님은 늘 선농일치의 정신을 강조하시면서 자신의 말씀으로 대중을 감화시켰다”며 대종사의 모습을 전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수행본분납자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했다.
영결식은 3월 22일
이어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성성(惺惺)하실 때는 선지(禪旨)가 대방무외(大方無外)하여 바다와 산을 눌렀고 대기대용(大機大用)은 드넓어 저 하늘을 치솟았다”고 대종사의 뜻을 기렸다.
또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적정열반의 세계에 오래 머물지 마시고 속환사바하시어 미혹한 중생을 이끌어 주실 것”을 청하며 대종사의 입적을 애도했다.
재가불자를 대표해 영결식장에 선
김 회장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사를 하는 동안 곳곳에서 재가불자들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여 영결식장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또 이명박 대통령도
덕숭산에 모인 1만여 사부대중의 애도 속에 1시간에 걸쳐 봉행된 영결식에 이어 대중들은 대종사의 법구를 연화대로 이운해 다비장을 거행했다.
수천 기의 만장을 앞세우고 연화대로 이운 된 법구는 한 스님이 “원담당 진성 대종사 집에 불 들어갑니다”(擧火)를 세 번 외치고, 또 다른 스님이 “스님! 어서 나오십시오”라고 외치는 순간 불꽃이 타오르며 산화하기 시작했다.
연화대에 불꽃이 피어오르자 애써 슬픔을 참으며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대중들 사이에서 하나 둘 흐느끼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불길이 하늘을 치솟자 이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오열하며 “큰스님, 큰스님”하고 대종사를 소리 높여 부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덕숭총림의 방장으로 주석하는 동안 수많은 수좌들을 제접하면서 1700공안에만 매달릴 뿐 진정으로 공부한 수행자가 없음을 걱정하며 평소 “도인이라는 헛 껍데기 이름에 만족하지 말고 진실한 수행자가 될 것”을 거듭 당부하고 경허·만공 스님으로부터 이어온 수행가풍을 드날렸던 덕숭산 천진불 원담 진성 대종사는 그렇게 대중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 가는 길에서 ‘무아(無我)’의 이치를 전하고 ‘공(公)’과 ‘연기(緣起)’의 법을 설했다.
예산 수덕사=
사진=
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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