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김훈 선배를 만났다.(왜 ‘그래서’인가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 ‘손목 시계 없이 사는 법’(http://wnetwork.hani.co.kr/june/view.html?log_no=1850)을 꾸욱 눌러 주세요. “왜 김훈인가”라고 생각하는 분은 여기 ‘경찰기자 김훈을 기억하시나요’(http://hani.co.kr/arti/society/media/137475.html)를 클릭해 눌러주세요.)
애초 계획은 이랬다. 김훈 선배와 잘 알고 있는 <한겨레> 선배 2명과 함께 끝장 토론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또 모두들 그런 형식을 만들어 만나는 것을 싫어해 그냥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잠깐. 김훈 선배와 내가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는 메일이 몇통 왔다. 김훈 선배와 함께 잠시 동안 기동팀에서 경찰기자를 했었다. 남들보다 좀 더 김 선배를 지켜 볼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란 직업의 매력이긴 하다.
*김 선배, 그동안 뭘 했나요?
만나자 마자 “그동안 뭘 하셨어요”라고 물어봤다. 김 선배는 혼자 있으면서 글만 썼다고 했다. “숨어서 글만 쓰고 있었어. 혼자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가장 바쁘고, 가장 재미있고, 그래서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어. 난 시끄러우면 글을 못 쓴다구.” 하지만 그는 가끔 인사동에 나와 술도 마셨을 것이다.
김 선배의 일산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집필실(글 쓰는 방)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가 적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군대있을 때 총을 항상 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썩지 않도록 그렇게 한다는 얘기야.”
“한겨레는 왜 그만뒀어요?” “세상 꼴이 보기 싫었어, 노무현이고 한겨레고… 근데, 그런 얘기하지 말자.” 그래도 기자인데, 계속 꼬치꼬치 물어봤다. 김 선배의 대답은? “나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안 하니까. 엄청난 적들이 생기고, 엄청난 오해가 생겨. 나의 정직한 내면을 말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지. 이 사회에서는 그렇잖아, 끝없는 박해가 들어오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긴 한데,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해야 할 것 같다.
*김훈과 밥
김훈 선배는 밥 얘기를 자주했다. “요즘 젊은애들, 자기 손으로 자기 밥을 못 벌잖아.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권도 생기는 거야. 젊은이들이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지.”
“며칠 전 전북 김제에서 올라왔는데, 포구가 다 막혔어. 그 곳 사람들도 이제 다 떠나게 됐어. 이전에 그 곳 밥값은 5천원이었는데, 지금은 3500원 밖에 안받더라고. 잘 차린 전라도 상차림 밥상이 3500원밖에 안 해. 밥 먹으니 눈물나더라.”
김 선배가 쓴 수필집 <밥벌이의 지겨움> 가운데 내가 잊지 못하는 구절이 하나 있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그는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할까?
*무지몽매한 젊은것들
김훈 선배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젊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월드컵 때문에 거리응원 많이 하는데, 축구 같은데 관심 없어. 그냥 공차는 놀이야. 4강이 되면 4위의 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젊은것들은 4강이 되면 살판이 난줄 알아. 아무 살판도 없는데.”
“나는 저렇게 무질서하고 저런 혼란스러운 젊은 시절을 지났다는 것이 큰 다행이다. 다시는 젊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는 왜 젊음을 싫어할까?
*김훈과 간결체
김 선배는 20대 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었고, 수십년간 하루도 이순신 장군을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2001년 두 달 만에 뚝딱 <칼의 노래>를 썼다고 했다.
“칼의 노래의 간결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우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전에는 한없이 긴 글도 썼어. 문장은 전략의 소산이야. 어떤 주제를 드러내려면 어떤 문체를 써야할지 고민해 내야 해. 사람들이 칼의 노래 문체가 화려하다고 그러는데… 주어하고 동사만 썼는데. 수사학 안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수사학이 됐다고 그러더라.”
*김훈과 기자
“‘너는 개자식이다’라고 말하고 싶잖아. 하지만 기자는 ‘너는 개자식’이라고 쓰면 안 돼. 그렇게 쓰면 그 자식은 개자식이 안 되고, 내가 개자식이 되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자식이 개자식이라는 말을 입증해야 해. 입증하려면 수많은 사실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해. 기자의 본질은 문장가가 아니고, 스파이야. 남을 염탐해 많은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기자야.”
그의 젊은 기자에 대한 훈계는 이어졌다. “젊은 기자들은 사실을 장악하려는 훈련을 하지 않고, 김훈이를 흉내 내 멋쟁이 문장가가 되려고 하는데, 그런 놈들은 다 망해요. 다 망해.”
*혁명·노동·열정 vs 퇴폐·절망·방황
김훈 선배는 북한 문인들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몇 번 다녀왔다고 했다. “북한 시인들을 만났는데. 나를 욕하더라. 남조선의 타락한 부루조아다. 뭐 그런 거지. 몽상가 같은 말이야.”
“북한 문인들이 자신들 문학의 목표는 다섯 가지래. 혁명과 노동, 사랑과 열정, 그리고 분노. 분노는 미제와 압제에 대한 분노야. 사랑은, 당과 노동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정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열정이라더만.”
김 선배의 마지막 말로 밥집에 모인 사람은 모두 넘어갔다. “그래서 내가 북한 문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그기에 혹시 퇴폐는 없나요. 퇴폐가 인간인데… 그렇게 말하니 ‘남조선 작가가 (퇴폐) 하니까 할 필요가 없대’. 절망과 방황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음편에는 김훈 선배가 전두환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쓴 것과, 왜 그렇게 밥에 천착하는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찾아뵙도록 할게요.
정혁준/편집국 편집기획팀 기자 june@hani.co.kr
애초 계획은 이랬다. 김훈 선배와 잘 알고 있는 <한겨레> 선배 2명과 함께 끝장 토론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또 모두들 그런 형식을 만들어 만나는 것을 싫어해 그냥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잠깐. 김훈 선배와 내가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는 메일이 몇통 왔다. 김훈 선배와 함께 잠시 동안 기동팀에서 경찰기자를 했었다. 남들보다 좀 더 김 선배를 지켜 볼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란 직업의 매력이긴 하다.
*김 선배, 그동안 뭘 했나요?
만나자 마자 “그동안 뭘 하셨어요”라고 물어봤다. 김 선배는 혼자 있으면서 글만 썼다고 했다. “숨어서 글만 쓰고 있었어. 혼자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가장 바쁘고, 가장 재미있고, 그래서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어. 난 시끄러우면 글을 못 쓴다구.” 하지만 그는 가끔 인사동에 나와 술도 마셨을 것이다.
김 선배의 일산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집필실(글 쓰는 방)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가 적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군대있을 때 총을 항상 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썩지 않도록 그렇게 한다는 얘기야.”
“한겨레는 왜 그만뒀어요?” “세상 꼴이 보기 싫었어, 노무현이고 한겨레고… 근데, 그런 얘기하지 말자.” 그래도 기자인데, 계속 꼬치꼬치 물어봤다. 김 선배의 대답은? “나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안 하니까. 엄청난 적들이 생기고, 엄청난 오해가 생겨. 나의 정직한 내면을 말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지. 이 사회에서는 그렇잖아, 끝없는 박해가 들어오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긴 한데,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해야 할 것 같다.
*김훈과 밥
김훈 선배는 밥 얘기를 자주했다. “요즘 젊은애들, 자기 손으로 자기 밥을 못 벌잖아.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권도 생기는 거야. 젊은이들이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지.”
“며칠 전 전북 김제에서 올라왔는데, 포구가 다 막혔어. 그 곳 사람들도 이제 다 떠나게 됐어. 이전에 그 곳 밥값은 5천원이었는데, 지금은 3500원 밖에 안받더라고. 잘 차린 전라도 상차림 밥상이 3500원밖에 안 해. 밥 먹으니 눈물나더라.”
김 선배가 쓴 수필집 <밥벌이의 지겨움> 가운데 내가 잊지 못하는 구절이 하나 있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그는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할까?
*무지몽매한 젊은것들
김훈 선배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젊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월드컵 때문에 거리응원 많이 하는데, 축구 같은데 관심 없어. 그냥 공차는 놀이야. 4강이 되면 4위의 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젊은것들은 4강이 되면 살판이 난줄 알아. 아무 살판도 없는데.”
“나는 저렇게 무질서하고 저런 혼란스러운 젊은 시절을 지났다는 것이 큰 다행이다. 다시는 젊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는 왜 젊음을 싫어할까?
*김훈과 간결체
김 선배는 20대 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었고, 수십년간 하루도 이순신 장군을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2001년 두 달 만에 뚝딱 <칼의 노래>를 썼다고 했다.
“칼의 노래의 간결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우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전에는 한없이 긴 글도 썼어. 문장은 전략의 소산이야. 어떤 주제를 드러내려면 어떤 문체를 써야할지 고민해 내야 해. 사람들이 칼의 노래 문체가 화려하다고 그러는데… 주어하고 동사만 썼는데. 수사학 안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수사학이 됐다고 그러더라.”
*김훈과 기자
“‘너는 개자식이다’라고 말하고 싶잖아. 하지만 기자는 ‘너는 개자식’이라고 쓰면 안 돼. 그렇게 쓰면 그 자식은 개자식이 안 되고, 내가 개자식이 되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자식이 개자식이라는 말을 입증해야 해. 입증하려면 수많은 사실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해. 기자의 본질은 문장가가 아니고, 스파이야. 남을 염탐해 많은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기자야.”
그의 젊은 기자에 대한 훈계는 이어졌다. “젊은 기자들은 사실을 장악하려는 훈련을 하지 않고, 김훈이를 흉내 내 멋쟁이 문장가가 되려고 하는데, 그런 놈들은 다 망해요. 다 망해.”
*혁명·노동·열정 vs 퇴폐·절망·방황
김훈 선배는 북한 문인들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몇 번 다녀왔다고 했다. “북한 시인들을 만났는데. 나를 욕하더라. 남조선의 타락한 부루조아다. 뭐 그런 거지. 몽상가 같은 말이야.”
“북한 문인들이 자신들 문학의 목표는 다섯 가지래. 혁명과 노동, 사랑과 열정, 그리고 분노. 분노는 미제와 압제에 대한 분노야. 사랑은, 당과 노동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정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열정이라더만.”
김 선배의 마지막 말로 밥집에 모인 사람은 모두 넘어갔다. “그래서 내가 북한 문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그기에 혹시 퇴폐는 없나요. 퇴폐가 인간인데… 그렇게 말하니 ‘남조선 작가가 (퇴폐) 하니까 할 필요가 없대’. 절망과 방황은 말할 것도 없고…”
다음편에는 김훈 선배가 전두환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쓴 것과, 왜 그렇게 밥에 천착하는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찾아뵙도록 할게요.
정혁준/편집국 편집기획팀 기자 june@hani.co.kr
출처 : 김훈이 좋은 사람들
글쓴이 : 검 은 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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