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정운》 서문(신숙주) 전체 번역
천지(天地)의 기운이 어우러져 큰 조화(造化)가 끊임없이 흐르자 사람이 태어났다. 음양(陰陽)의 기운이 서로 부딪히고 움직이면서 소리가 생겨났다. 소리가 생기면 저절로 칠음(七音)이 갖추어지고, 칠음이 갖추어지면 사성(四聲)도 완성된다. 칠음과 사성은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교차하여 청탁(淸濁), 경중(輕重), 심천(深淺), 질서(疾徐)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복희(庖犧)가 팔괘(八卦)를 그리고 창힐(蒼頡)이 문자를 만든 것도 모두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심약(沈約), 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학자들이 운서(韻書)를 편찬하여 소리를 분류하고 운을 맞추면서 성운학(聲韻學)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이후에도 많은 학자들이 저마다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으나, 논의가 많아질수록 오류 또한 적지 않았다.
이에 사마광(司馬光)은 이를 도표로 정리하였고, 소옹(邵雍)은 수(數)의 원리로 설명하여 여러 설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그러나 지방마다 말소리가 달라 어느 것이 바른 소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사실 소리 자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사람이 다른 것도 본질이 아니라 사는 지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역이 다르면 자연환경과 풍토가 달라지고, 풍토가 달라지면 기질이 달라지며, 기질이 달라지면 호흡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동남 지방 사람들은 치음(齒音)과 순음(脣音)을 많이 사용하고, 서북 지방 사람들은 협음(頰音)과 후음(喉音)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문자 체계는 같더라도 실제 발음은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 동방(東方)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독립된 지역이므로 풍토와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호흡과 발음이 중국의 발음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말의 발음이 중국어와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자의 글자음(字音)은 원래 중국음과 같아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호흡이 돌고 구르는 과정과 입을 열고 닫는 방식이 우리말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글자의 음도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었다.
비록 음가는 변하였더라도 청탁과 사성의 기본 원리는 옛날과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를 바로잡아 기록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들은 반절법(反切法)을 알지 못하고 성모(聲母)를 연결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글자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음으로 읽기도 하고, 선왕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음을 빌려 쓰기도 하였으며, 두 글자를 하나로 합치거나 하나를 둘로 나누기도 하고, 다른 글자를 빌려 쓰거나 점과 획을 더하고 빼기도 하였다. 또는 중국음을 따르기도 하고 속음을 따르기도 하여 자모(字母), 칠음, 청탁, 사성이 모두 크게 흐트러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아음(牙音)에서는 계모(溪母)의 글자 대부분이 견모(見母)로 바뀌었으니 이것은 성모가 변한 것이다. 또 어떤 계모는 효모(曉母)로 바뀌었으니 이것은 칠음의 체계가 변한 것이다.
우리말에는 청음과 탁음을 구별하는 체계가 중국과 다르지 않은데도, 한자음에서는 탁음이 거의 사라졌다. 이는 청탁이 변한 것이다.
또 우리말에서는 사성의 구별이 매우 분명하지만, 한자음에서는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의 구별이 없어졌다. 질(質)·물(勿) 등의 운은 본래 단모(端母)를 종성으로 삼아야 하지만, 세속에서는 래모(來母)로 발음하여 소리가 느려졌으므로 입성(入聲)의 성질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사성이 변한 것이다.
또한 단모가 래모로 변한 것은 종성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차제(次第)'의 '제', '목단(牧丹)'의 '단'처럼 초성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많이 나타난다.
우리말에서는 계모를 매우 많이 사용하는데도 한자음에서는 '쾌(快)' 한 글자에서만 계모의 음을 남겨 두었으니, 이는 더욱 우스운 일이다.
이 때문에 글자의 획은 잘못되어 '어(魚)'와 '노(魯)'가 뒤섞이는 것처럼 진짜와 가짜가 혼란스러워졌고, 소리는 경수(涇水)와 위수(渭水)가 함께 흐르듯 뒤섞여 버렸다. 가로로는 사성의 질서를 잃고 세로로는 칠음의 체계를 잃어버렸으며, 날줄과 씨줄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여 가볍고 무거운 순서까지 모두 뒤바뀌었다. 이처럼 성운의 체계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세상에는 이러한 잘못을 아는 학자도 있어 개인적으로 고쳐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임의로 고친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여 대부분은 옛 관습을 그대로 따랐다. 만약 지금 크게 바로잡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폐단은 더욱 심해져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본래 옛사람들이 시를 지을 때에는 운이 서로 조화되기만 하면 되었을 뿐, 반드시 같은 운부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시경』 이후 한나라·위나라·진나라·당나라의 시인들도 모두 그러하였다. 예를 들어 '동(東)'과 '동(冬)', '강(江)'과 '양(陽)' 같은 운은 서로 통용되었다. 그러므로 운부가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 운을 맞출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자모(字母)는 본래 소리를 구별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 중순음(重脣音)과 경순음(輕脣音),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正齒音) 같은 구분도 우리나라의 한자음에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발음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며, 굳이 중국의 36자모를 그대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임금(세종)께서는 유학을 숭상하고 도를 존중하며 문화를 크게 일으키셨다. 정사를 돌보시는 바쁜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깊이 염려하시어 신숙주와 최항,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강희안, 이현로, 조변안, 김증 등에게 명하여 민간의 발음을 널리 조사하고 여러 문헌을 두루 살펴, 널리 쓰이는 실제 음을 바탕으로 옛 운서의 반절과 대조하게 하셨다. 자모와 칠음, 청탁과 사성에 이르기까지 그 근원을 하나하나 연구하여 본래의 체계를 회복하도록 하셨다.
신들은 학식이 부족하여 여러 차례 임금의 가르침을 받으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옛 운서를 검토하여 합칠 것은 합치고 나눌 것은 나누었으며, 하나를 합치고 하나를 나누는 모든 결정과 성모와 운모의 정리는 모두 임금께서 직접 판단하셨고 각각 충분한 근거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사성을 기준으로 조정하여 모두 91운과 23자모를 정하고, 새로 창제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가를 정확하게 표시하였다. 또한 질운과 물운에서는 종래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영향을 보충하여 옛 습관을 바로잡았으며, 오래된 오류를 모두 없애게 되었다.
책이 완성되자 이름을 『동국정운』이라 하고, 신 숙주에게 서문을 짓게 하셨다.
신 숙주는 생각하건대 사람은 모두 천지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며, 소리는 그 기운에서 생겨난다. 청탁은 음양의 이치이며, 사성은 사계절의 운행과 같다. 천지의 질서가 바로 서면 음양의 위치가 바로 서고, 사계절의 운행이 바르면 만물의 생성도 질서를 찾는다. 성운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는 성인의 도가 천지 속에 담겨 있었고, 문자가 생긴 뒤에는 그 도가 책 속에 기록되었다. 성인의 도를 알려면 먼저 글의 뜻을 알아야 하고, 글의 뜻을 알려면 먼저 성운을 알아야 한다. 성운은 학문의 출발점이며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학문이다.
우리 임금께서 성운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옛것과 지금을 절충하고, 만세의 백성들을 위한 길잡이를 마련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옛 운서들은 설명이 매우 자세하였지만 배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정확한 발음을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에는 만세토록 하나의 정확한 소리로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발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음운을 전하는 핵심이 되었다.
청탁이 분명해지면 천지의 질서가 바로 서고, 사성이 바르게 되면 사계절의 운행도 조화를 이룬다. 이는 천지의 조화를 두루 통달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자모는 서로 밀고 이끌며 칠균(七均), 십이율(十二律), 팔십사조(八十四調)의 음악까지도 모두 큰 조화를 이루게 된다.
후세의 사람들이 소리를 바르게 살펴 음을 알고, 음을 알아 음악을 알고, 음악을 알아 정치를 이해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 책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동국정운』 서문 핵심 정리
1. 소리는 자연의 법칙에서 나온다.
- 사람의 말소리는 하늘과 땅의 기운(天地之氣)에서 생긴다.
- 소리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칠음(七音)과 사성(四聲)이 갖추어진다.
- 청(淸)·탁(濁), 경(輕)·중(重), 심(深)·천(淺), 질(疾)·서(徐)는 모두 자연의 원리이다.
- 문자는 이러한 자연의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 문자보다 먼저 소리가 존재한다.
- 복희(庖犧)는 팔괘를 만들었고,
- 창힐(蒼頡)은 문자를 만들었다.
- 모두 자연의 원리를 본떠 만든 것이다.
- 문자란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기록하는 도구이다.
3. 중국에도 오래전부터 음운학이 발전하였다.
- 심약(沈約), 육법언(陸法言) 이후 수많은 운서가 만들어졌다.
- 그러나 학자마다 의견이 달라 오류도 많았다.
- 사마광(司馬光)은 운도를 만들고,
- 소강절(邵康節)은 수리(數理)로 이를 설명하여 여러 학설을 통합하였다.
4. 지역이 다르면 발음도 달라진다.
소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지역(地方)이 다르기 때문에 발음이 달라진다.
그 이유는
지형이 다르면 풍습이 다르고
↓
풍습이 다르면 기질이 달라지고
↓
기질이 다르면 호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 중국 동남 지방은 치음과 순음이 발달하고
- 중국 서북 지방은 협음과 후음이 발달하였다.
그래서
글은 같아도 발음은 서로 달라진다.
5. 한국의 한자음도 중국음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풍토와 기후가 중국과 다르므로
호흡도 다르고
말소리도 다르다.
따라서
한국 한자음이 중국음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자연현상이라고 설명한다.
6. 그러나 음운의 기본 체계는 변하지 않는다.
발음은 달라질 수 있지만
다음의 기본 체계는 유지되어야 한다.
- 자모(字母)
- 칠음(七音)
- 청탁(淸濁)
- 사성(四聲)
그런데 오랫동안 이것을 바로잡은 책이 없었다.
7. 당시 한자음이 크게 무너져 있었다.
잘못된 발음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지적한다.
(1) 반절법을 모른다.
글자를 어떻게 읽는지 모른다.
(2) 글자 모양이 비슷하면 같은 음으로 읽는다.
예)
비슷하게 생긴 글자를 같은 음으로 읽는다.
(3) 왕의 이름을 피하려고 음을 바꾼다.
피휘(避諱) 때문에
원래 음이 변하였다.
(4) 두 글자를 하나로 합친다.
(5) 한 음을 둘로 나눈다.
(6) 다른 글자를 빌려 쓴다.
(7) 점과 획을 더하거나 뺀다.
(8) 중국음과 우리말을 뒤섞는다.
결국
자모
칠음
청탁
사성
모두 무너졌다고 말한다.
8. 실제로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1) 계모(溪母)가 견모(見母)가 되었다.
예)
ㅋ → ㄱ
이는
자모가 변한 것이다.
(2) 계모가 효모가 되었다.
ㅋ → ㅎ
이는
칠음이 변한 것이다.
(3) 탁음이 사라졌다.
우리말에는
원래 청탁의 구별이 있는데
한자음에서는
탁음이 없어졌다.
이는
청탁의 변화이다.
(4) 사성이 무너졌다.
상성
거성
구별이 없어졌다.
(5) 입성 종성이 잘못되었다.
원래
ㄷ으로 끝나야 하는데
ㄹ로 읽는다.
그래서
입성이 무너졌다.
(6) 초성도 변하였다.
단(端)이
래(來)로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7) 계모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말에는
ㅋ 소리가 많은데
한자음에서는
'쾌(快)' 한 글자만 남았다.
신숙주는 이것을
"매우 우스운 일(此尤可笑者也)"이라고까지 표현한다.
9. 음운 체계가 완전히 뒤섞였다.
신숙주는
당시 상황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 물고기와 노나라 글자가 뒤섞이고
- 경수와 위수가 함께 흐르듯
-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다.
즉
가로축인
사성(四聲)
세로축인
칠음(七音)
모두 무너졌다는 것이다.
10. 학자들도 문제를 알고 있었다.
어떤 선비는
개인적으로 고쳐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고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잘못된 음이 계속 이어졌다.
11. 반드시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
세종은
이 상태를 더 두면
돌이킬 수 없는 폐단이 생긴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한자음을 바로잡기로 한다.
12. 세종은 대규모 음운 연구를 실시하였다.
세종은
- 신숙주
- 최항
- 성삼문
- 박팽년
- 이개
- 강희안
- 이현로
- 조변안
- 김증
등에게 명하여
- 중국 운서
- 현실음
- 우리말 발음
- 고운(古韻)
을 모두 조사하게 하였다.
13. 『홍무정운』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세종은
기존 운서를 그대로 베끼지 않았다.
- 합칠 것은 합치고
- 나눌 것은 나누었다.
모든 결정은
세종이 직접 재가하였다.
14. 그 결과 『동국정운』이 완성되었다.
최종적으로
- 91운(韻)
- 23자모(字母)
를 정하였다.
그리고
새로 만든 『훈민정음』으로
그 소리를 정확하게 적게 하였다.
15. 훈민정음의 역할
신숙주는
훈민정음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만세토록 하나의 소리를 유지한다.
- 털끝만큼의 오차도 없다.
- 소리를 전하는 핵심(樞紐)이다.
16. 음운은 학문의 출발점이다.
성인의 도를 알려면
↓
글의 뜻을 알아야 하고
↓
글의 뜻을 알려면
↓
반드시 성운(聲韻)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운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다.
17. 훈민정음의 의의
신숙주는 훈민정음을 단순한 새 문자가 아니라,
- 청탁을 바로잡고
- 사성을 바로잡고
- 칠음을 바로잡으며
- 음운 질서를 회복한 문자
라고 평가한다.
훈민정음은 자연의 소리 질서를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는 문자이며, 『동국정운』은 그 음운 질서를 국가 차원에서 바로 세우기 위해 편찬된 표준 한자음 운서라는 것이 서문의 핵심 결론이다.
제1부
原文
○是月, 《東國正韻》成, 凡六卷, 命刊行。 集賢殿應敎申叔舟奉敎序曰:
번역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었다. 모두 6권이며, 임금이 간행하도록 명하였다.
집현전 응교(應敎) 신숙주(申叔舟)가 왕명을 받들어 다음과 같이 서문을 지었다.
原文
天地絪縕, 大化流行而人生焉; 陰陽相軋, 氣機交激而聲生焉。
번역
천지의 기운(氣運)이 서로 어우러져(絪縕) 큰 조화(大化)가 흘러 사람을 낳고,
음양(陰陽)의 기운이 서로 부딪혀(相軋) 기운(氣機)이 서로 움직이면서 소리(聲)가 생겨난다.
原文
聲旣生焉, 而七音自具, 七音具而四聲亦備, 七音四聲, 經緯相交, 而淸濁輕重深淺疾徐, 生於自然矣。
번역
소리가 생기면 자연히 칠음(七音)이 갖추어지고,
칠음이 갖추어지면 사성(四聲)도 함께 완비된다.
칠음과 사성은 날줄과 씨줄(經緯)처럼 서로 얽혀 있으며,
청음과 탁음(淸濁), 가벼움과 무거움(輕重), 깊고 얕음(深淺), 빠르고 느림(疾徐)은 모두 자연의 이치에서 생겨난다.
原文
是故庖犧畫卦, 蒼頡制字, 亦皆因其自然之理, 以通萬物之情,
번역
그러므로 복희씨(庖犧)가 팔괘를 그리고,
창힐(蒼頡)이 문자를 만든 것도 모두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만물의 뜻과 이치를 통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原文
及至沈、陸, 諸子彙分類集, 諧聲協韻, 而聲韻之說始興。
번역
그 뒤 심약(沈約)과 육법언(陸法言)에 이르러서는,
여러 학자들이 소리를 분류하고 모아
성(聲)을 조화시키고 운(韻)을 맞추는 학문이 일어나면서,
성운학(聲韻學)의 이론이 비로소 크게 발전하였다.
原文
作者相繼, 各出機杼; 論議旣衆, 舛誤亦多。
번역
이후 저술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져
저마다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지만,
논의가 많아질수록 잘못되고 어긋난 것(舛誤)도 많아졌다.
原文
於是, 溫公著之於圖, 康節明之於數, 探賾鉤深, 以一諸說。
번역
이에 온공(溫公, 사마광)은 이를 도표(圖)로 정리하였고,
강절(康節, 소옹)은 수리(數理)로 그 원리를 밝혔다.
깊은 뜻을 탐구하고 미묘한 이치를 밝혀 여러 학설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原文
然其五方之音各異, 邪正之辨紛紜。
번역
그러나 천하 여러 지방(五方)의 음(音)은 서로 달랐으며,
어느 것이 바른 소리이고 어느 것이 잘못된 소리인가를 둘러싼 논란도 매우 많았다.
原文
夫音非有異同, 人有異同; 人非有異同, 方有異同,
번역
대저 소리(音) 자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 다르며,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방(方)이 서로 다를 뿐이다.
原文
蓋以地勢別而風氣殊, 風氣殊而呼吸異,
번역
이는 지형(地勢)이 다르므로 풍토와 기질(風氣)이 달라지고,
풍토와 기질이 다르므로 호흡하는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原文
東南之齒唇, 西北之頰喉是已。
번역
동남 지방 사람들은 치아와 입술(齒唇)을 많이 사용하여 발음하고,
서북 지방 사람들은 볼과 목구멍(頰喉)을 많이 사용하여 발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原文
遂使文軌雖通, 聲音不同焉。
번역
그리하여 문자와 제도(文軌)는 서로 통일되어 있어도,
발음(聲音)은 서로 같을 수 없게 되었다.
제2부
原文
吾東方表裏山河, 自爲一區, 風氣已殊於中國, 呼吸豈與華音相合歟!
번역
우리 동방(東方, 우리나라)은 안팎이 모두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독립된 지역을 이루고 있으므로 풍토와 기질(風氣)이 이미 중국과 다르다. 그러니 호흡하는 방식이 어찌 중국의 발음(華音)과 서로 같을 수 있겠는가.
原文
然則語音之所以與中國異者, 理之然也。
번역
그러므로 우리말의 발음이 중국과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原文
至於文字之音則宜若與華音相合矣, 然其呼吸旋轉之間, 輕重翕闢之機, 亦必有自牽於語音者, 此其字音之所以亦隨而變也。
번역
그러나 한자의 글자음(字音)은 마땅히 중국음과 같아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호흡이 돌고(旋轉) 굴러가는 과정과, 발음할 때의 가볍고 무거움(輕重), 입이 열리고 닫히는 움직임(翕闢)이 모두 우리말의 발음 습관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한자의 글자음 또한 우리말의 영향을 받아 함께 변하게 된 것이다.
原文
其音雖變, 淸濁四聲則猶古也,
번역
비록 발음은 변하였더라도 청음과 탁음(淸濁), 그리고 사성(四聲)의 원리는 옛날과 다르지 않았다.
原文
而曾無著書以傳其正,
번역
그러나 그 올바른 음을 기록하여 전한 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原文
庸師俗儒不知切字之法, 昧於紐攝之要,
번역
평범한 스승과 속된 선비들은 반절법(切字法)을 알지 못하고, 성모(聲母)를 계통적으로 묶는 원리(紐攝)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原文
或因字體相似而爲一音,
번역
어떤 이는 글자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발음이라고 하였고,
原文
或因前代避諱而假他音,
번역
어떤 이는 옛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기 위하여 다른 발음을 빌려 사용하였다.
原文
或合二字爲一,
번역
어떤 이는 두 개의 발음을 하나로 합쳐 버렸고,
原文
或分一音爲二,
번역
어떤 이는 하나의 발음을 둘로 나누어 버렸다.
原文
或借用他字,
번역
어떤 이는 다른 글자를 빌려 대신 사용하였고,
原文
或加減點畫,
번역
어떤 이는 점이나 획을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기도 하였다.
原文
或依漢音,
번역
어떤 이는 중국 발음을 그대로 따랐고,
原文
或從俚語,
번역
어떤 이는 당시의 속된 발음(俚語)을 따랐다.
原文
而字母七音淸濁四聲, 皆有變焉。
번역
그 결과 자모(字母), 칠음(七音), 청탁(淸濁), 사성(四聲)이 모두 본래의 모습을 잃고 변하게 되었다.
原文
若以牙音言之, 溪母之字, 太半入於見母, 此字母之變也;
번역
예를 들어 아음(牙音, 연구개음)을 보면, 계모(溪母)의 글자 대부분이 견모(見母)로 바뀌었다. 이것은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다.
原文
溪母之字, 或入於曉母, 此七音之變也。
번역
또 계모(溪母)의 글자가 효모(曉母)로 바뀐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다.
原文
我國語音, 其淸濁之辨, 與中國無異,
번역
우리말의 발음에는 청음과 탁음을 구별하는 원리가 중국과 다를 바 없다.
原文
而於字音獨無濁聲, 豈有此理!
번역
그런데 한자음에서는 유독 탁음(濁聲)이 없어졌으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原文
此淸濁之變也。
번역
이것이 바로 청탁(淸濁)이 변한 것이다.
原文
語音則四聲甚明, 字音則上去無別。
번역
우리말에는 사성(四聲)의 구별이 매우 분명한데, 한자음에서는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의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原文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번역
질(質)운과 물(勿)운 계열은 원래 단모(端母)를 종성으로 삼아야 한다.
原文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不宜入聲,
번역
그런데 세상에서는 래모(來母)로 발음하니 소리가 느리고 완만하여 입성(入聲)에 적합하지 않다.
原文
此四聲之變也。
번역
이것이 사성(四聲)이 변한 것이다.
제3부
原文
端之爲來, 不唯終聲, 如次第之第、牧丹之丹之類, 初聲之變者亦衆。
번역
단모(端母)가 래모(來母)로 바뀐 것은 종성(終聲)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차제(次第)'의 제(第), '모란(牧丹)'의 **단(丹)**과 같은 경우처럼 초성(初聲)에서도 바뀐 예가 매우 많다.
原文
國語多用溪母, 而字音則獨夬之一音而已, 此尤可笑者也。
번역
우리말에서는 계모(溪母)의 소리를 매우 많이 사용하는데도, 한자음에서는 겨우 쾌(夬) 한 글자에서만 계모의 소리를 남겨 두었으니, 이것은 더욱 우스운 일이다.
原文
由是字畫訛而魚魯混眞,
번역
이 때문에 글자의 획이 잘못되어 어(魚)와 노(魯)를 서로 혼동하게 되었고,
原文
聲音亂而涇渭同流,
번역
발음도 어지러워져 원래 구별되어야 할 소리가 마치 경수(涇水)와 위수(渭水)가 함께 흐르듯 뒤섞여 버렸다.
原文
橫失四聲之經, 縱亂七音之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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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는 사성(四聲)의 기준(經)을 잃었고,
세로로는 칠음(七音)의 체계(緯)가 무너졌다.
原文
經緯不交, 輕重易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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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과 칠음이 서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고,
가볍고 무거운 소리의 순서도 뒤바뀌었다.
原文
而聲韻之變極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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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성운(聲韻)의 혼란은 극도에 이르렀다.
原文
世之爲儒師者, 往往或知其失, 私自改之, 以敎子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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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유학자 가운데는 이러한 잘못을 아는 사람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발음을 고쳐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原文
然重於擅改, 因循舊習者多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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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의로 고친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여 대부분은 옛 습관을 그대로 따랐다.
原文
若不大正之, 則愈久愈甚, 將有不可救之弊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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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를 크게 바로잡지 않는다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폐단에 이르게 될 것이다.
原文
蓋古之爲詩也, 協其音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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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옛사람들이 시(詩)를 지을 때에는 단지 소리를 서로 조화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原文
自三百篇而降, 漢、魏、晋、唐諸家, 亦未嘗拘於一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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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 삼백 편 이후의 한(漢)·위(魏)·진(晉)·당(唐)의 시인들도 한 가지 운율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原文
如東之與冬、江之與陽之類, 豈可以韻別而不相通協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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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동(東) 운과 동(冬) 운, 강(江) 운과 양(陽) 운도 서로 운을 맞추어 사용하였다. 어찌 운부(韻部)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原文
且字母之作, 諧於聲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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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모(字母)를 만든 목적은 소리를 나타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原文
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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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 순중음(唇重音)과 순경음(唇輕音),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正齒音) 같은 구별은,
原文
於我國字音, 未可分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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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한자음에서는 분명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原文
亦當因其自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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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말의 실제 발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
原文
何必泥於三十六字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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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반드시 중국의 36자모(三十六字母) 체계만을 그대로 고집할 필요가 있겠는가?
제4부
原文
恭惟我主上殿下崇儒重道, 右文興化, 無所不用其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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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유학(儒學)을 숭상하고 도(道)를 존중하시며, 문화를 숭상하고 교화를 일으키는 데 조금도 힘을 아끼지 않으셨다.
原文
萬機之暇, 慨念及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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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국정을 처리하시는 바쁜 가운데에도 이 문제를 깊이 염려하셨다.
原文
爰命臣叔舟及守集賢殿直提學臣崔恒、守直集賢殿臣成三問ㆍ臣朴彭年、守集賢殿校理臣李愷、守吏曹正郞臣姜希顔、守兵曹正郞臣李賢老、守承文院校理臣曺變安、承文院副校理臣金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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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신(臣) 신숙주와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최항(崔恒), 집현전 학사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집현전 교리(校理) 이개(李愷), 이조 정랑(吏曹正郞) 강희안(姜希顔), 병조 정랑(兵曹正郞) 이현로(李賢老),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 조변안(曺變安), 승문원 부교리(副校理) 김증(金曾) 등에게 명령하셨다.
原文
旁採俗習, 博考傳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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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민간의 실제 발음을 수집하고, 여러 옛 문헌을 폭넓게 조사하게 하셨다.
原文
本諸廣用之音, 協之古韻之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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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널리 사용되던 실제 발음을 근본으로 삼고, 옛 운서(韻書)의 반절법(反切法)과 서로 대조하여 맞추게 하셨다.
原文
字母七音、淸濁四聲, 靡不究其源委, 以復乎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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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字母), 칠음(七音), 청탁(淸濁), 사성(四聲)의 근원과 변천을 남김없이 연구하여 본래의 올바른 모습(正)을 회복하도록 하셨다.
原文
臣等才識淺短, 學問孤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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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재주와 식견이 얕고 학문 또한 부족하였습니다.
原文
奉承未達, 每煩指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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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의 뜻을 충분히 받들지 못하여 여러 번 임금께서 직접 가르쳐 주셔야만 하였습니다.
原文
乃因古人編韻定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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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옛사람들이 운(韻)을 편찬하고 자모(字母)를 정한 방법을 따르되,
原文
可倂者倂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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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칠 수 있는 것은 합치고,
原文
可分者分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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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 것은 나누었습니다.
原文
一倂一分、一聲一韻, 皆稟宸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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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합칠 것인가, 나눌 것인가, 하나하나의 성모(聲母)와 운모(韻母)에 이르기까지 모두 임금의 재가(宸斷)를 받아 결정하였습니다.
原文
而亦各有考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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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결정에는 각각 충분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原文
於是調以四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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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사성(四聲)에 따라 음을 조정하여,
原文
定爲九十一韻二十三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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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운(九十一韻)과 23자모(二十三母)를 확정하였습니다.
주석
여기의 23자모는 《동국정운》의 성모 체계를 말하며, 뒤에 《훈민정음》에서 사용하는 초성 체계와 직접 연결됩니다.
原文
以御製《訓民正音》定其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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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금께서 친히 지으신 《훈민정음》으로 그 소리를 정확하게 정하였습니다.
주석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동국정운》의 음가는 《훈민정음》으로 확정하였다는 뜻입니다.
原文
又於質勿諸韻, 以影補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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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질(質)운과 물(勿)운 등에서는 영모(影母)로 래모(來母)를 바로잡아,
原文
因俗歸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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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현실 발음을 본래의 올바른 발음으로 되돌렸다.
原文
舊習譌謬, 至是而悉革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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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어져 온 잘못된 관습과 오류는 이에 이르러 모두 바로잡게 되었다.
原文
書成, 賜名曰《東國正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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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완성되자 임금께서는 그 이름을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사하셨다.
原文
仍命臣叔舟爲序。
번역
그리고 신숙주에게 서문을 짓도록 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