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공의제(직선제)를 시행해야 하는가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은 수계, 교육, 법계, 승복,안거 등을 하나의 종헌·종법으로 규율하는 현전승가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전국 사찰은 사실상 하루동안 왕복이 가능한 하나의 결계안에 놓여있다. 우리종단의 출가자는 모두 같은 계율을 받고, 같은 가사를 입으며, 같은 승적을 가지고, 같은 종헌·종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렇다면 종단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권리 또한 모든 종도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것이 맞다. 평등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실현된다. 총무원장 직선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승가는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수행 공동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정치는 부정적인 것이고 수행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이다. 그러나 직선제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율장의 갈마제도에 관한 것이다.
율장에서는 하나의 결계 안에서 일부 구성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행하는 갈마를 비법갈마(非法羯磨)로 규정한다. 현재 조계종은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현전승가로 종단을 운영하면서도 총무원장 선출에는 일부 선거인단만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는 교통과 통신의 한계 때문에 대표자를 통한 간선제가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전국 어디에서나 반나절이면 이동할 수있다. 교구본사나 지역별 투표소를 통한 투표도 가능하며, 전자투표와 모바일 투표를 활용할수도 있다. 대중공의제는 정치를 확대하려는 제도가 아니라 승가의 평등 원칙을 실현하는 제도이다. 수행과 종단 운영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도 수행이며, 율장에 따라 갈마를 올바르게 시행하는 것도 수행이다.
율장에 따르면 법(法)과 비법(非法), 율(律)과 비율(非律)을 판정하는 쟁사(諍事)갈마는 승가의 분열을 막기 위해 충분한 토론과 대중의 분위기를 확인하여, 세번 물어서 다수결로 판정하도록 하였다. 반면 수계, 결계, 포살, 소임자 선출과 같은 비쟁사(非諍事)갈마는 한번 묻고 대답(白二羯磨)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하였다. 갈마가 만장일치로 결정되면 좋치만 갈마의 기본 원칙은 다수결이다. 총무원장 선출은 이러한 비쟁사갈마의 다수결 원칙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직선제는 세속 정치의 논리를 승가에 들여오는 제도가 아니라, 현전승가의 의사를 가장 충실하게 확인하는 갈마의 방식이다.오늘날 종단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부분의 종도가 배제되고 있다는 인식이 종단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직선제는 율장의 대중공의 정신을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