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종단에서 향봉스님이 베다에서 나타나는 조상신(peta)과 그 음식(Pinda) 이야기를 하며 '윤회는 없다'라는 주장을 하고있다. 부처님의 언어가 가진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을 보고 전체를 보았다고 착각한 결과다. 중론의 게송을 근거로 윤회를 부정하는 것도 중론의 효용성과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있다. 그가 인용한 게송은 관사견품의세번째 게송인데 이 게송은 게송 1번 2번 게송과 같이 사견을 논파하는 맥락에서 등장하는데 그는 이것을 부처님의 말씀처럼 오해하고 있다.
3번째 게송은 이렇가.
"過去世有我 是事不可得 過去世中我 不作今世我(과거세유아 시사불가득 과거세중아 부작금세아)"
과거세에 내가 있었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거세에서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않는다.
제27 관사견품(觀邪見品) : 31송.
여러 가지 사견을 논파함으로써 정견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인다. 여기서는 주로 3세를 통하여 자아가 실재한다는 사견을 논파하고 있다. 즉 "나는 과거세(過去世)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세간은 영원한가 하는 등의 견해는 모두 과거세에 의한 것이고, 나는 미래세(未來世)에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세간은 유한한가 등의 견해는 모두 미래세에 의한 것이다.이러한 질문은 초기경전에서 대답하지 않는 무기의 문제로서 취급되었던 것이다.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동일하다' 고 처음부터 주장하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다르다' 고 주장하여 괴로움을 받게 됨으로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 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S12:17)
27-1) 我於過去世 爲有爲是無 世間常等見 皆依過去世(아어과거세 위유위시무 세간상등견 개의과거세)
내가 과거세(過去世: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에 존재했나 존재하지 않았나, 世間은 常住하는가 등의 견해는 모두 과거세에 의존한 것이다.
27-1) dṛṣṭayo ’bhūvaṃ nābhūvaṃ kiṃ nv atīte ’dhvanīti ca/
yāstāḥ śāśvatalokādyāḥ pūrvāntaṃ samupāśritāḥ//
도대체 내가 과거세(前生)에 존재했었나 존재하지 않았었나, 세간은 常住했는가 등의 見解들은 <以前의 限界>에 의거해 있다.
27-2) 我於未來世 爲作爲不作 有邊等諸見 皆依未來世(아어미래세 위작위부작 유변등제견 개의미래세)
내가 미래세를 짓겠는가 짓지 않겠는가, 유변(有邊)인가 등의 여러 견해는 다 미래세에 의존한 것이다.
27-2) dṛṣṭayo na bhaviṣyāmi kimanyo ’nāgate ’dhvani/
bhaviṣyāmīti cāntādyā aparāntaṃ samāśritāḥ//
내가 미래세에 존재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존재하겠는가, 또 限界등의 견해는 <나중의 限界>에 의거해 있다.
27-3) 過去世有我 是事不可得 過去世中我 不作今世我(과거세유아 시사불가득 과거세중아 부작금세아)
과거세에 내가 있었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거세에서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않는다.
27-3) abhūmatītamadhvānamityetannopapadyate/
yo hi janmasu pūrveṣu sa eva na bhavatyayam//
과거세에 나는 존재했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전의(전생의) 생애들에서의 것, 그것은 결코 이것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27-4) 若謂我卽是 而身有異相 若當離於身 何處別有我(약위아즉시 이신유이상 약당이어신 하처별유아)
내가 바로 그것이지만 몸은 다른 모습을 띈다고 하겠지만 만일 몸을 떠난다면 어디에 따로 <나>가 존재하겠는가?
27-4) sa evātmeti tu bhavedupādānaṃ viśiṣyate/
upādānavinirmukta ātmā te katamaḥ punaḥ//
그것(=전생의 나)이 바로 나(=自我)라고 하겠지만 取가 구별된다. 취를 떠난 그대의 <나>는 다시 무엇이 있겠느냐?
27-5) 離身無有我 是事爲已成 若謂身卽我 若都無有我(이신무유아 시사위이성 약위신즉아 약도무유아)
몸을 떠나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실은 이미 성립했었다. 만일 몸이 그대로 자아라면 그대에게는 자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27-5) upādānavinirmukto nāstyātmeti kṛte sati/
syādupādānamevātmā nāsti cātmeti vaḥ punaḥ//
取를 떠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 取가 바로 자아가 될 것이며 그대의 견해대로라면(vaḥ) 다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꼴이 된다.
초기경전에서 근거가 되는 경전
12.17
7) 나형외도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라자가하로 들어가셨다.
그때 나형외도 깟싸빠가 세존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섰다.
한쪽으로 물러서서 나형외도 깟싸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깟싸빠] "저는 존자 고따마께 기꺼이 어떤 점에 관해서 질문을 하려 합니다. 만약 사정이 허락하신다면 존자 고따마께서는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세존] "깟싸빠여,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두번째로 나형외도 깟싸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깟싸빠] "저는 존자 고따마께 기꺼이 어떤 점에 관해서 질문을 하려 합니다. 만약 사정이 허락하신다면 존자 고따마께서는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세존] "깟싸빠여,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세번째로 나형외도 깟싸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깟싸빠] "저는 존자 고따마께 기꺼이 어떤 점에 관해서 질문을 하려 합니다. 만약 사정이 허락하신다면 존자 고따마께서는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세존] "깟싸빠여,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나형외도 깟싸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깟싸빠] "그러나 존자 고따마께 결코 많은 질문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원한다면 질문하라."
“Puccha, kassapa, yadākaṅkhasī”ti.
[깟싸빠]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Kiṁ nu kho, bho gotama, ‘sayaṅkataṁ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Kiṁ pana, bho gotama, paraṅkataṁ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세존께서 말씀하셨다.
‘Kiṁ nu kho, bho gotama, sayaṅkatañca paraṅkatañca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Kiṁ pana, bho gotama, asayaṅkāraṁ aparaṅkāraṁ adhiccasamuppannaṁ dukkhan’ti?
‘Mā hevaṁ, kassapā’ti bhagavā avoca.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깟싸빠여,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
‘Kiṁ nu kho, bho gotama, natthi dukkhan’ti?
‘Na kho, kassapa, natthi dukkhaṁ. Atthi kho, kassapa, dukkhan’ti.
[깟싸빠] "그렇다면 세존 고따마께서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세존] "깟싸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보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본다."
‘Tena hi bhavaṁ gotamo dukkhaṁ na jānāti, na passatī’ti.
‘Na khvāhaṁ, kassapa, dukkhaṁ na jānāmi, na passāmi. Jānāmi khvāhaṁ, kassapa, dukkhaṁ; passāmi khvāhaṁ, kassapa, dukkhan’”ti.
[깟싸빠]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문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문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문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문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문께서는 '깟싸빠여,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깟싸빠여,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존 고따마께서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사문께서는 '깟싸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보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본다' 고 대답했습니다. 존경하는 세존께서는 저에게 괴로움을 보여주십시오. 존경하는 세존께서는 저에게 괴로움을 가르쳐주십시오."
[세존]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동일하다' 고 처음부터 주장하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So karoti so paṭisaṁvedayatī’ti kho, kassapa, ādito sato ‘sayaṅkataṁ dukkhan’ti iti vadaṁ sassataṁ etaṁ pareti.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다르다' 고 주장하여 괴로움을 받게 됨으로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 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Añño karoti añño paṭisaṁvedayatī’ti kho, kassapa, vedanābhitunnassa sato ‘paraṅkataṁ dukkhan’ti iti vadaṁ ucchedaṁ etaṁ pareti.
깟싸빠여, 여래는 이러한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로서 가르침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취착이 소멸하며, 취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나형외도 깟싸빠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깟싸빠]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비구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세존의 앞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이전에 이교도였던 자로서 이러한 가르침과 계율 아래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4개월을 견습하고 4개월이 지난 뒤에 견습을 마치고 발심하여 원하면 비구들이 그를 출가시켜 비구가 되도록 구족계를 준다. 그러나 나는 개개인의 개성의 차이에 관해 잘 알고 있다."
[깟싸빠] "세존이시여, 만약 이전에 이교도였던 자로서 이러한 가르침과 계율 아래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4개월을 견습하고 4개월이 지난 뒤에 견습을 마치고 발심하여 원하면 비구들이 그를 출가시켜 비구가 되도록 구족계를 준다면 저는 4년을 견습하고 4년이 지난 뒤에 견습을 마치고 발심하여 원하면 저를 출가시켜 비구가 되도록 구족계를 주고 하십시오."
이렇게 나형외도 깟싸빠는 세존의 앞에서 허락을 얻어 출가하여 곧바로 구족계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존자 깟싸빠는 구족계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떨어져서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였다.그는 오래지 않아 양가의 자제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했다. 그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알았다. 그래서 존재 깟싸빠는 거룩한 님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註.
- 나형외도 : 고행주의자의 일종이다.
- 깟싸빠의 질문형식 : 가능한 네 가지 질문방식, 즉 네 가지 명제형식을 일어 사구분별(四句分別)이라고 한다. 1) X는 Y이다. 2) X는 -Y이다. 3) X는 Y이고 -Y이다. 4) X는 Y도 아니고 -Y도 아니다' 라는 형식으로 질문하고 있다. 한역 아함경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 라는 대답 대신에 此是無記라고 되어 있다. 무기(無記 avyakata)라는 것은 유보 또는 폐기되어야 할 질문을 말한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나오는 네 가지 질문 종류 가운데 하나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사람이 질문을 받았을 때 응해서 정언적으로 대답해야 할 질문을 정언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분석적으로 대답해야 할 질문을 분석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반대질문으로 대답해야 할 질문을 반대질문으로 대답하지 않고 유보(또는 폐기)해야 할 질문을 유보(또는 폐기)하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과는 더불어 대화할 수 없다'
那先比丘經卷上
“사람은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납니까?”
“은애(恩愛)와 탐욕이 있는 사람은 후세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은애나 탐욕이 없는 사람은 후세에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마음으로 바른 법을 생각하면 후세에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까?”
“사람이 한마음으로 바른 법을 생각하여 지혜를 갖고 다른 좋은 일들을 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착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생각하는 것과 영리한 지혜를 갖는 것 이 둘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그 뜻은 각각 다르며 같지 않습니다.”
“소나 말 등 여섯 마리 가축들은 각각 지모를 갖고 있으며 그 마음도 같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일찍이 보리 수확하는 것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왼손으로 보리를 잡고, 바른손으로 보리를 벱니다.”
나선이 말했다.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애욕을 끊어냅니다. 비유하면 보리 수확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王問言:“寧有人死後復生不?”那先言:“人有恩愛貪欲者,後世便復生爲人。無恩愛貪欲者,後世便不復生。”王言:“人以一心念正法,後世不復生耶?”那先言:“人一心念正法,智慧及餘善事,後世不復生。”王言:“人以善心念正法,與黠慧者,是二事其義寧同不?”那先言:“其義各異不同。”王言:“牛、馬六畜,各自有智,謀其心不同?”那先言:“王曾見穫麥者不?左手持麥,右手刈之。”那先言:“黠慧之人斷絕愛欲,譬如穫麥者。”王言:“善哉善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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