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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애 멸진의 긴 경 (M.38)

질문: 부처님은 갈애 멸진의 긴 경(M.38) 에서 윤회하는 식(viññāṇa)을 부정하면서 간답바gandhabba)를 인정했는데 여기서 식과 간답바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띠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알음알이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Yvāyaṁ, bhante, vado vedeyyo tatra tatra kalyāṇapāpakānaṁ kammānaṁ vipākaṁ paṭisaṁvedetī”ti.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했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Nanu mayā, moghapurisa, anekapariyāyena paṭiccasamuppannaṁ viññāṇaṁ vuttaṁ, aññatra paccayā natthi viññāṇassa sambhavoti?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고 간답바가 있어서,이와 같이 세 가지가 만날 때 수태가 이루어진다.”
Yato ca kho, bhikkhave, mātāpitaro ca sannipatitā honti, mātā ca utunī hoti, gandhabbo ca paccupaṭṭhito hoti—evaṁ tiṇṇaṁ sannipātā gabbhassāvakkanti hoti.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Mahā-taṇhāsaṅkhay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惡見]가 생겼다.

 

3. 많은 비구들이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띠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윤회합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이런 아주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도반 사띠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띠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緣而生]고 설하셨습니다.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질문하고 반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하였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윤회합니다.”

 

4. 그 비구들이 어부의 아들 사띠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 없자 세존을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가서는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사띠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러자 어부의 아들 사띠는 저희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이러한 아주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도반 사띠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사띠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하셨습니다.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질문하고 반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하였습니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합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부의 아들 사띠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가 없어 이 사실을 세존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5.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말이라 전하고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를 불러오라. ‘도반 사띠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띠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띠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합니다.”

“Evaṁ byā kho ahaṁ, bhante, bhagavatā dhammaṁ desitaṁ ājānāmi yathā tadevidaṁ viññāṇaṁ sandhāvati saṁsarati, anaññan”ti.

 

“사띠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알음알이인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Yvāyaṁ, bhante, vado vedeyyo tatra tatra kalyāṇapāpakānaṁ kammānaṁ vipākaṁ paṭisaṁvedetī”ti.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했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쓸모없는 자여, 그러나 그대는 그대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그대를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6.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의] 열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했을 때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가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쓸모없는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아주 나쁜 견해를 이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비구들에게 물어보겠다.”

 

7.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내가 설한 법에 대해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가 자기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하셨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장하게도 그대들은 내가 설한 법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구나.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했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는 자신이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그것은 쓸모없는 인간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알음알이는 조건 발생이다.

 

8.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는 조건을 반연하여 생기는데, 그 각각의 조건에 따라 알음알이는 이름을 얻는다. 알음알이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눈의 알음알이[眼識]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귀와 소리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귀의 알음알이[耳識]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코와 냄새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코의 알음알이[鼻識]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혀와 맛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혀의 알음알이[舌識]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몸과 감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몸의 알음알이[身識]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마노와 법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마치 어떤 것을 조건하여 불이 타면 그 불은 조건에 따라 이름을 얻나니, 장작으로 인해 불이 타면 장작불이라고 하고 지저깨비로 인해 불이 타면 모닥불이라고 하고, 짚으로 인해 불이 타면 짚불이라고 하고, 소똥으로 인해 불이타면 소똥불이라고 하고, 왕겨로 인해 불이타면 왕겨불이라고 하고, 쓰레기로 인해 불이타면 쓰레기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알음알이는 어떤 것을 조건하여 생기는데, 그 각각의 조건에 따라 알음알이는 이름을 얻는다. 알음알이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눈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귀와 소리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귀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코와 냄새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코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혀와 맛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혀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몸과 감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몸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마노[意]와 법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마노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존재에 대한 일반적인 문답

 

9. “비구들이여, ‘이것은 생긴 것이다.’라고 보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은 음식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보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생긴 것도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보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10. “비구들이여, 이것이 생긴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불명확할 때 의심이 생기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이 음식에서 생긴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불명확할 때 의심이 생기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생긴 것도 소멸하기 마련인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불명확할 때 의심이 생기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11. “비구들이여, ‘이것이 생긴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면 그 의심은 제거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이 음식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면 그 의심은 제거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생긴 것도 소멸하기 마련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면 그 의심은 제거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12. “비구들이여, ‘이것이 생긴 것이다.’라는 이것에 그대들은 의심이 없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이 음식에서 생긴 것이다.’라는 이것에 그대들은 의심이 없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생긴 것도 소멸하기 마련이다.’ 라는

이것에 그대들은 의심이 없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13. “비구들이여, ‘이것이 생긴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이 음식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생긴 것도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잘 보았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14.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고 즐기고 재산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 여긴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재산으로 여기지 않고 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음식과 연기

 

15. “비구들이여, 네 가지 음식이 있나니,

그것은 생겨난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게 될 중생들을 지탱하게 한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먹는] 음식[段識], 두 번째는 감각접촉[觸食],

세 번째는 마음의 의도[意思食], 네 번째는 알음알이[識食]이다.”

 

16. “비구들이여, 네 가지 음식들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을 조건으로 하고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이 네 가지 음식들은 갈애[愛]를 원인으로 하고 갈애를 조건으로 하며

갈애를 근원으로 하고 갈애에서 기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이 갈애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

갈애는 느낌[受]을 원인으로 하고 … 느낌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느낌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

느낌은 감각접촉[觸]을 원인으로 하고 … 감각접촉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감각접촉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

감각접촉은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를 원인으로 하고 … 여섯 가지 감각장소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

여섯 가지 감각장소는 정신‧물질[名色]을 원인으로 하고 … 정신‧물질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정신‧물질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

정신‧물질은 알음알이[識]를 원인으로 하고 … 알음알이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알음알이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

알음알이는 의도적 행위들[行]을 원인으로 하고  … 의도적 행위들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의도적 행위들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을 조건으로 하고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의도적 행위들은 무명을 원인으로 하고 무명을 조건으로 하고

무명을 근원으로 하고 무명에서 기원한 것이다.”

 

괴로움의 발생구조[流轉門]에 대한 연기의 순관

 

17.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괴로움의 발생구조[流轉門]에 대한 연기의 역관

 

18.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老死]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취착[取]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갈애[愛]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느낌[受]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감각접촉[觸]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여섯 감각장소[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물질[名色]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알음알이[識]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 행위[行]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괴로움의 발생구조[流轉門]에 대한 연기의 정형구

 

19. “비구들이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이와 같이 설하고 나도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名色]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가,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受]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愛]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取]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라고,”

 

괴로움의 소멸구조[還滅門]에 대한 연기의 순관

 

20.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라고,”

 

21.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합니다.

여기서 저희들은 이와 같이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 행위[行]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한다.’라고 설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합니다.

이것에 대해 저희들은 이와 같이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괴로움의 소멸구조[還滅門]에 대한 연기의 정형구

 

22. “비구들이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이와 같이 설하고 나도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함으로써 저것이 소멸한다.
즉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가지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라고,”

 

존재함에 대한 지혜

 

23.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서도

 ‘나는 정말 과거에 존재했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는가?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라고 과거로 치닫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서도

‘나는 정말 미래에도 존재할까? 아니면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떠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어 무엇으로 변할까? 라고 미래로 치닫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서도

‘나는 존재하기는 하는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고

지금 현재에 대해서 안으로 의심을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24.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데도

‘우리는 스승을 존중한다. 스승을 존중하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라고 말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데도

‘사문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다른 사문들도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데도

다른 사람을 스승이라고 인정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데도

일반 사문 바라문들이 서계를 지니고 예언을 하고 점복(占卜)하는 것을

[수행의]핵심이라 여겨 다시 움켜쥐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체득한 것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25. “비구들이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하는 이 법으로써 나는 그대들을 잘 인도하였다.

내가 ‘비구들이여, 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하는 것이다.’라고

설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설한 것이다.”

 

윤회의 시작 - 수태에서부터 성장기까지

 

26. “비구들이여, 세 가지가 만나서 수태가 이루어진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가 월경이 없고,

간답바가 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더라도

간답바가 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고 간답바가 있어서,

이와 같이 세 가지가 만날 때 수태가 이루어진다.”

 

27.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아홉 달이나 열 달을

이 태아를 무거운 짐으로 크게 염려하면서 뱃속에 잘 잉태한다.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아홉 달이나 열 달이 지나면 무거운 짐으로 크게 염려하면서 이 태아를 출산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신의 피로 키운다.

비구들이여, 성자의 율에서는 모유를 피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28. “비구들이여, 그 어린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감각기능들이 원숙해지면 소년에게 어울리는 놀이를 한다.

즉 장난감 쟁기놀이, 자치기 놀이, 재주넘기, 팔랑개비 놀이,

잎사귀로 만든 튜브 놀이, 장난감 마차놀이, 장난감 활 놀이를 하며 논다.”

 

29. “비구들이여, 그 소년은 점점 성장하고 감각기능들이 원숙해지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들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긴다.

즉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인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들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긴다.”

 

윤회의 전개

 

30.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욕망을 일으키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는 혐오를 일으킨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에 구속되어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든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쥔다.

그가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쥘 때 즐거워함[愛]이 일어난다.

느낌들을 즐거워함이 바로 취착[取]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그는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는 욕망을 일으키고 사랑스럽지 않은 법에는 혐오를 일으킨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마음은 제한되어있다.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에 구속되어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든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쥔다.

그가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쥘 때 즐거워함[愛]이 일어난다.

느낌들을 즐거워함이 바로 취착[取]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윤회를 종식시키는 방법 - 점진적인 수행

 

31.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며, 가장 높은 분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며, 부처님이며, 세존이시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32.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등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33.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그것과 더불어 생활한다.

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양심적이고 동정심이 있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는 것을 멀리 여의고,

준 것만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머문다.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으며, 도덕적이고,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윈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그는 중상 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 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의고,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고, 저기서 듣고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는 욕설을 버리고 욕설을 멀리 여의고,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의고,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하고,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한다.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윈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여의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윈다.

춤, 노래, 연주,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윈다.

화환을 두르고 향과 화장품을 바르고 장신구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윈다.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윈다.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코끼리, 소, 말,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윈다.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윈다.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윈다.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윈다.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윈다.

상해, 살해,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멀리 여윈다.”

 

34. “그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資具)를 몸에 지니고 간다.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 날개를 짐으로 하여 날아가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를 몸에 지니고 간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을 경험한다.”

 

35. “그는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그는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36. “그는 나아갈 때도 돌아올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법의(法衣)‧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갈 때도 서있을 때도 앉아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한다.”

 

37.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38.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물고,

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고,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 없이 머물고,

광명상(光明相)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 ‧ 正知]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물고,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극복하여 머물고,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39.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 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윤회의 종식 - 완전한 소멸

 

40.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런 형색에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 혐오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을 버려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든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는다.

그가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을 때 느낌들을 즐거워함[愛]이 소멸한다.

그 즐거워함이 소멸하므로 취착[取]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므로 존재[有]가 소멸한다.

존재가 소멸하므로 태어남[生]이 소멸한다.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근심‧

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그는 귀로 듣고, … 코로 냄새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법에 혐오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무량한 마음을 갖는다.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을 버려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든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는다.

그가 그 느낌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을 때

느낌들을 즐거워함[愛]이 소멸한다.

그 즐거워함이 소멸하므로 취착[取]이 소멸한다.

취착이 소멸하므로 존재[有]가 소멸한다.

존재가 소멸하므로 태어남[生]이 소멸한다.

태어남이 소멸하므로 늙음과 죽음·근심‧ 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

 

결론

 

41. “비구들이여, 내가 간략하게 설한 이 갈애의 멸진을 통한 해탈을 잘 호지하라.

어부의 아들 비구 사띠는 갈애의 큰 그물과 갈애의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갈애멸진의 긴경(M38)이 끝났다.

 

출처 : 대림스님 『맛지마니까야 』2권. 초기불전 연구원. pp. 20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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