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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숙박투쟁2

 
 
숙박투쟁2
 
어느 젊은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해인사로 출가하였다. 그는 해인사에서 살면서 승가대학(강원)에서 공부도하고 교무, 총무,포교등 소임도 보았다. 그는 누가봐도 해인사가 삶의 터전이고 해인사의 구성원이다. 그는 해인사를 떠나서 송광사의 선원, 봉암사 선원, 통도사 선원, 수덕사 선원에가서도 살았다. 대한민국에서 그가 살 수 있는 절은 몇 곳이나 되고 소임을 볼 수 있는 절은 몇 곳이나 될까? 조계종단에는 지역을 기반으로한 25개의 큰 사찰이 있는데 그는 종단 소속 사찰이면 어느 곳에서든 머물 수 있다. 이 사찰들은 거의가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천년동안 수많은 출가자들이 머물고 수행하는 도량이 되어주었다. 모든 사찰이 창건된 이래로 줄곧 그래왔다. 출가하여 비구스님, 비구니스님이 되면 어째서 그런 권리가 주어지는가? 부처님이 처음부터 모든 사찰을 공유물로 지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출가하여 비구가 되던 날 선배스님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너는 이제 전국에 있는 수천개의 콘도 평생회원권을 가지게 된거야!” 선배스님은 비구가되면 조계종소속 삼천여개의 사찰에서 머물고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을 콘도 회원권에 비유한 것이다.
 
 
출가초기에 나는 여러 사찰을 돌아보는 여행(만행)을 하였다. 불국사, 통도사,마곡사, 내소사, 백양사, 봉암사, 동화사, 범어사, 직지사등 참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그 때는 자가용이 없어서 대중고통을 이용하였는데 버스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 대웅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떤 날에는 스님들이 결혼하여 살고있는 태고종 사찰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하였다. 불국사 객실에서는 시 쓰는 스님을 만나 그 스님이 쓴 시를 감상하였고, 화엄사 객실에서 만난 스님과는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 받는 도반이 되었다. 그 뒤 나는 선원을 다니다가 학림에서 경전을 보고, 수덕사 말사 주지 소임도 살고, 종단 교육원의 소임도 살았다. 지금은 지리산 백장선원에서 머물고 있다. 내가 특히 백장선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서는 모든 일을 대중이 논의하여 결정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발언권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경전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백장암에서 특히 중요시 하는 것은 백장암을 찾는 스님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객실을 운영하는 일이다.
 
 
지난번 조계사에 들려서 하룻밤을 묵어가려고 했으나 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텔에서 자야했다는 이야기에 많은 불자들과 비불자들이 놀라워했다. 스님이 절에서 잘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스님들은 사찰에서 잘 수 없다면 모텔에가서 자면 되는데 이것을 문제 삼는 나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어느 스님을 재워 주었는데 그가 하룻밤을 자면서 불평만 늘어놓고, 갈 때는 여비까지 요구하는가 하면, 어느 비구스님을 하룻밤 재워드렸다가 물건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며 사찰에서 스님들을 함부로 재워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스님은 사찰에서 객스님 재워주고 차비 줘서 보내던 문화는 70년대까지 있던 문화였고 80년대 이후 사라진 문화 아닌가요? 세상이 변하고 세태가 변하고 사찰 경영 시스템이 변했다며 모텔서 자면 어떻고 호텔서 자면 어떤가?라고 반문하며 조계사 운영방침이 그렇다면 그 운영방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이러한 스님들의 반응 때문에 다시 글을 쓰게되었다. 이렇게 반응하는 스님들의 공통점은 사찰에서 숙박하는 문제를 개별 사찰의 운영방침의 문제, 사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의 전통에 집착하고 있는 개인의 문제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이미 무너진 승가공동체에 살다보면 모든 문제가 개인화되고 개별화된다. 스님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면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스님이 꼭 사찰에 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텔이나 호텔에서 자면서 볼일을 보면 된다고 충고하는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종단본 ‘불교성전’이 잘못만들어졌다고 비판하는 것도, 종단이 총무원장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일인시위를 하는 것도, 스님들이 부당하게 징계당하는 문제도 모두 개인의 문제로 보일 것이다. 문제제기하는 스님들은 조용히 수행하며 살지 못하고 종단을 시끄럽게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승가의 의미를 모르는 폐해가 너무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불교의 무아연기 사상, 출가자가 가사입고, 독신으로 살고, 대중공의를 모아 결정하고, 승가의 재산이 공유물(公有物)로 유지되는 것 등등은 변하지 말아야한다. 요즘 개인이 지은 사찰이 많은데 종단의 법에서는 그런 사찰도 종단의 재산으로 반드시 등록하게 만든다. 모든 사찰은 공유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찰이 승려들의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적어도 대중이 사는 큰 사찰에는 항상 객실(客室)이 준비되어 있어야한다.
 
 
조계사에 객실이 없는 것과 일반 작은 사찰에서 객실이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조계사는 조계종 총본산이고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로 되어있다. 종단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이 주지인 조계사가 객실을 운영하지 않는 것은 개인 사찰의 운영방침이 아니라 종단의 운영방침이 되는 것이다.총무원장이 종단의 구성원인 스님들을 절에서 자지 못하게 하는데 누가 절에서 스님들을 재워주겠는가? 이 글을 쓰면서 강남 봉은사등 몇몇 사찰에 전화를 해 보았는데 결론은 모두 객실이 없고 절에서 잘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종단의 직할사찰인 봉은사의 주지도 총무원장이다.
 
 
요즘 출가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주지가 없는 사찰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출가자가 없고 사찰이 텅텅비어가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다. 즉심즉불(卽心卽佛)이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하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무너지는 승가공동체에 대해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한다. 근본을 모르니 자기 생각으로 문제를 엉뚱하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게된다. 누구의 견해가 옳은지, 종단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불교가 지금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승가구성원들이 만나서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를 바로보지 못하면 적절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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