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비구나 브라만이라도 이러한 5根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출리(集.滅.味.患.離)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나는 그러한 비구나 브라만을 비구 중에 비구로, 브라만 중에 브라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비구의 뜻이나 브라만의 뜻을 현세에서 스스로 충분히 알고 깨달아 실현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어떠한 비구나 브라만이라도 이러한 5根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출리(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를 있는 그대로 알면, 나는 그러한 비구나 브라만을 비구 중에 비구로, 브라만 중에 브라만으로 인정한다. 또한 그들은 비구의 뜻이나 브라만의 뜻을 현세에서 스스로 충분히 알고 깨달아 실현시킨다.
9) 여섯 접촉영역 1 chaphassayatanika.(S35:7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와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비구들이여, 어떠한 비구들이라도 여섯가지 접촉영역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벗어남((集.滅.味.患.離))을 여실하게 알지 못하면, 그는 청정한 삶을 끝내지 못한 것이며 가르침과 계율에서도 멀리 떨어진 것이다."
“Yo hi koci, bhikkhave, bhikkhu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vusitaṃ tena brahmacariyaṃ, ārakā so imasmā dhammavinayā”ti.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한 비구가 세존께 말했다.
[비구]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불안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섯가지 접촉영역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여실하게 알지 못합니다."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ṃ etadavoca: “etthāhaṃ, bhante, anassasaṃ. Ahañhi, bhante, channaṃ phassāyat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nappajānāmī”ti.
[세존] "비구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기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Taṃ kiṃ maññasi, bhikkhu, cakkh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samanupassasī”ti?
“No hetaṃ, bhante”.
[세존] "비구가여, 그렇다. 이 세상에서 비구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실하게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Sādhu, bhikkhu, ettha ca te, bhikkhu, cakkhu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aṃ bhavissati. Esevanto dukkhassa
[세존] "비구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청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기는가?"
[비구]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비구가여, 그렇다. 이 세상에서 비구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실하게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세존] "비구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후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기는가?"
[비구]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비구가여, 그렇다. 이 세상에서 비구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실하게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세존] "비구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미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기는가?"
[비구]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비구가여, 그렇다. 이 세상에서 비구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실하게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세존] "비구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촉각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기는가?"
[비구]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비구가여, 그렇다. 이 세상에서 비구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실하게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세존] "비구가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신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기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Sādhu, bhikkhu, ettha ca te, bhikkhu, mano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sudiṭṭhaṃ bhavissati. Esevanto dukkhassā”ti.
[세존] "비구가여, 그렇다. 이 세상에서 비구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실하게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면, 그것이 괴로움의 끝이다."
35.110
집착 upadanam.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와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비구들이여, 집착되는 것과 집착하는 것에 관하여 설하겠다. 잘 들어라.
“Upādāniye ca, bhikkhave, dhamme desessāmi upādānañca. Taṃ suṇātha.
비구들이여, 집착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이란 어떠한 것인가?
Katame ca, bhikkhave, upādāniyā dhammā, katamañca upādānaṃ?
비구들이여, 시각은 집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면 그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Cakkhuṃ, bhikkhave, upādāniyo dhammo. Yo tattha chandarāgo, taṃ tattha upādānaṃ
비구들이여, 청각은 집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면 그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후각은 집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면 그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미각은 집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면 그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촉각은 집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면 그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정신은 집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욕망과 탐욕이 생겨나면 그것은 집착하는 것이다.
mano upādāniyo dhammo. Yo tattha chandarāgo, taṃ tattha upādānaṃ.
비구들이여, 집착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이란 이러한 것을 말한다.
Ime vuccanti, bhikkhave, upādāniyā dhammā, idaṃ upādānan”ti.
#제목:잡아함1-249 신수장경 : 2-59c-- 한글장경 : 잡-1-244- 남전장경 : a-4-174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 때에 존자 아난다는 존자 사리불이 있는 곳에 가서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물을 일이 있는데 혹 틈이 있으면 나를 위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尊者阿難詣尊者舍利弗所。語尊者舍利弗。欲有所問。寧有閑暇為解說不。
사리불은 말하였다. "당신의 물음을 따라 아는 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존자 아난다는 존자 사리불에게 물었다. 舍利弗言。隨仁所問。知者當答。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도(盡。離欲.滅.息沒已) 다시 남음이 있습니까."
"그렇게 묻지 마시오. 즉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도 다시 남음이 있는가'고." 아난다는 또 물었다.
六觸入處 盡。離欲.滅.息沒已。更有餘不。尊者舍利弗語阿難言。莫作此問。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更有餘不
"존자 사리불이여,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는 남음이 없습니까."
"그 또한 그렇게 묻지 마시오. 즉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는 남음이 없는가'고."。
아난다는 다시 물었다.
"존자 사리불이여,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는 남은이 있기도 하고 남음이 없기도 하며, 남음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남음이 없는 것도 아닙니까."
"그 또한 그렇게 묻지 마시오. 즉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는 남음이 있기도 하고 남음이 없기도 하며, 남음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남음이 없는 것도 아닌가'고."
존자 아난다는 다시 사리불에게 물었다.
"존자의 말한 대로 한다면,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盡。離欲.滅.息沒已) 는, 있다고도 말하지 말고 없다고도 말하지 말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또한 말하지 말고,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고도 또한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 그 말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有亦不應說。無亦不應說。有無亦不應說。非有非無亦不應說。此語有何義。 尊者舍利弗語尊者阿難。
존자 사리불은 존자 아난다에게 말하였다.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도 남음이 있는가.'고 한다면, 이것은 곧 빈 말이요, '없는가.'고 한다면 이것도 곧 빈 말입니다. '남음이 있기도 하고 남음이 없기도 한가.'고 한다면 이것도 곧 빈 말이요, '남음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남음이 없는 것도 아닌가.'고 한다면 이것도 곧 빈 말입니다.
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有餘耶。此則虛言。無餘耶。此則虛言。有餘無餘耶。此則虛言。非有餘非無餘耶。此則虛言。
만일 육촉입처가 다하고 욕심을 떠나, 멸하고 쉬고 마친 뒤에는 모든 거짓을 떠나〈반열반〉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부처님 말씀입니다.때에 두 정사(正士)는 서로 기뻐하면서 제각기 본 처소로 돌아갔다. "若言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離諸虛偽。得般涅槃。此則佛說。時。二正士展轉隨喜。各還本處。
#제목:잡아함1-249 구치라경 1
(二四九)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尊者阿難詣尊者舍利弗所。語尊者舍利弗。欲有所問。寧有閑暇為解說不。舍利弗言。隨仁所問。知者當答。尊者阿難問尊者舍利弗。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更有餘不。尊者舍利弗語阿難言。莫作此問。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更有餘不。阿難又問尊者舍利弗。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無有餘耶。尊者舍利弗答阿難言。亦復不應作如是問。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無有餘耶。阿難復問尊者舍利弗。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有餘無餘.非有餘非無餘耶。尊者舍利弗答阿難言。此亦不應作如此問。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有餘無餘.非有餘非無餘耶。尊者阿難又問舍利弗。如尊者所說。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有亦不應說。無亦不應說。有無亦不應說。非有非無亦不應說。此語有何義。尊者舍利弗語尊者阿難。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有餘耶。此則虛言。無餘耶。此則虛言。有餘無餘耶。此則虛言。非有餘非無餘耶。此則虛言。若言六觸入處盡。離欲.滅.息沒已。離諸虛偽。得般涅槃。此則佛說。時。二正士展轉隨喜。各還本處。
#제목:잡아함1-209 육촉입처경
209. 육촉입처경. 신수장경 : 2-52c . 한글장경 : 잡-1-213. 남전장경 : s.35.71~73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웨살리의 지바까 꾸마라가 가진 망고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육촉입처가 있다. 어떤 것이 여섯인가. 안입처, 이입처·비입처·설입처·신입처·의입처이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 육촉입처의 생성,소멸,유혹,위험,출리에 대해서 참다이 알지 못하면, 마땅히 알라.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내 법·율에서 거리가 멀기는 허공과 땅 사이와 같느니라."
沙門婆羅門於此六觸入處 集.滅.味.患.離(생성,소멸,유혹,위험,출리) 不如實知。當知是沙門婆羅門去我法律遠。如虛空與地。
때에 어떤 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께 예배한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그 여섯 가지 부딪쳐 들이는 기관의 생성,소멸,유혹,위험,출리을 낱낱이 참다이 아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었다. "내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묻는 대로 나에게 대답하라.
비구여, 너는 안촉입처를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그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착하고 착하다! 比丘。汝見眼觸入處 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佛告比丘。善哉。善哉
이 부딪쳐 들이는 기관을 '<나>가 아니다. <다른 나>도 아니다.그 둘의 합한 것도 아니다'라고 참다이 알고 보는 사람은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게 되나니, 이것을 첫째의 부딪쳐 들이는 기관이라 한다.
於此眼觸入處 非我.非異我.不相在。如實知見者。不起諸漏.心不染著.心得解脫。是名初觸入處
그것을 이미 끊고 이미 알면, 그 근본을 끊는 것은 마치 타알라 나무 머리를 끊는 것과 같아서, 미래법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나니, 이른바 눈의 식과 빛깔이 그것이니라.
已斷.已知。斷其根本。如截多羅樹頭。於未來法永不復起。所謂眼識及色。
너는 다시, 이입처·비입처·설입처·신입처·의입처를 '이것은 <나>다. <다른 나>다. 그 둘의 합한 것이다'라고 보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 汝見耳鼻舌身意觸入處 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
"착하고 착하다! 이입처·비입처·설입처·신입처·의입처을 '<나>가 아니다. <다른 나>도 아니다. 그 둘의 합한 것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참다이 알고 보는 사람은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게 되나니, 비구여, 이것을 육촉입처라 한다. 그것을 이미 끊고 이미 알면 그 근본을 끊는 것은 마치 타알라 나무 머리를 끊는 것과 같아서 미래의 욕심이 다시는 나지 않나니, 이른바 뜻의 의식과 법이 그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제목:잡아함1-209 육촉입처경
(二○九) 如是我聞。 一時。佛住毘舍離耆婆拘
摩羅藥師菴羅園。爾時。世尊告諸比丘。有六觸入處。云何為六。眼觸入處。耳.鼻.舌.身.意觸入處。沙門婆羅門於此六觸入處集.滅.味.患.離不如實知。當知是沙門婆羅門去我法律遠。如虛空與地。時。有異比丘從坐起。整衣服。為佛作禮。合掌白佛言。我具足如實知此六觸入處集.滅.味.患.離。佛告比丘。我今問汝。汝隨問答我。比丘。汝見眼觸入處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佛告比丘。善哉。善哉。於此眼觸入處 非我.非異我.不相在。如實知見者。不起諸漏.心不染著.心得解脫。是名初觸入處已斷.已知。斷其根本。如截多羅樹頭。於未來法永不復起。所謂眼識及色。汝見耳鼻舌身意觸入處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佛告比丘。善哉。善哉。於耳.鼻.舌.身.意觸入處非我.非異我.不相在。作如是如實知見者。不起諸漏.心不染著。以得解脫。是名比丘六觸入處已斷.已知。斷其根本。如截多羅樹頭。於未來世欲不復生。謂意識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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