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가 백파긍선 율사에게 보낸 편지는 지금에도 신선하고 중요한 메세지 입니다. 그런데 번역이 부실해서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것을 누가 나서서 바로 잡을 수 없을까요?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0614A_0060_010_0030&viewSync=OT
추사 김정희거사가 백파스님에게 보낸 편지 3통
백파에게 주다[與白坡]
백파 노사(白坡老師) 선안(禪安)하신지요? 이미 더불어 거리낌없이 말을 마구 했는데 어찌 체면을 보아 자제할 이치가 있으리오. 전후 지묵(紙墨)의 사이에 일호라도 노여움을 숨겨 둔 뜻은 없었는데 보내 온 깨우침이 갑자기 이렇게 중언부언한 것을 보면 이는 사(師)가 스스로 갈등을 일으킨 것이라 나도 몰래 웃음이 터져 머금은 밥알이 튀어나와 서안(書案)에 가득하구려.
선사의 나이 장차 팔십이요, 더구나 오늘날 선문(禪門)의 종장으로서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했고 또 명안(明眼)의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기봉(機鋒)을 누가 들어서 발전(撥轉)해 주리오. 정문(頂門)도 따라서 인색(湮塞)하게 되어 침침한 귀굴(鬼窟) 속에 허다한 세월을 그저 넘기고 말다가 갑자기 목놓아 말하는 사람의 큰 사자후(獅子吼)를 부딪치니 의당 그 눈이 휘둥그레질밖에요.
내 비록 천박한 사람이지만 어찌 늙은 두타(頭陀) 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서 아울러 그 선장(先狀)에까지 언급하였겠소. 사는 하나의 속제의 문자도 오히려 깊이 궁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심심(甚深)한 불지(佛旨)를 꿰뚫어 갈 수 있으리오. 이에 나아가 사의 무너지고 빠침이 여지가 없음을 알겠으니 어찌 더욱 터져 나오는 밥알이 서안에 가득하지 않겠소?
지금 이 열다섯 가지의 조례에 대하여 앞의 일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뒤의 일설은 도로 다시 몽롱하여 수미(首尾)의 천 백 말이 한 구절도 마음에 터득되어 폐부 속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은 전혀 없고 예전 그대로 박잡하고 윤척(倫脊)이 없는 성어만을 주워 모아 구차스레 설명해 가는 것뿐이니 어찌하지요.
지난날에 한 산중의 노고추(老古錐)와 더불어 선(禪)을 논한 일이 있었는데 역시 이와 같은 말을 하여 묵은 먹과 식은 밥이 한 판에 찍어낸 것 같으니 이것이 바로 치문(緇門)의 베껴 전하는 묵은 종이[故紙]로서 굳을 대로 굳어져 깨뜨리지 못하는 것인지요?
이를테면 불설(佛說)은 화두(話頭)의 활구(活句)가 아닌 것이 없고 《법화경(法華經)》과 《화엄경(華嚴經)》은 바로 교적(敎迹)의 사구(死句)라 하였는데 두 경은 유독 불설이 아니던가요?
《소초(疏抄)》나 사기(私記)도 역시 묘유(妙有)이나 《법화》ㆍ《화엄》은 다 선문의 상승(上乘)이 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 이른바 《소초》ㆍ《사기》는 별도의 한 서(書)로 수다장(修多藏) 속으로부터 새로 번역해 온 것이어서 이 두 경과는 판연히 두 건의 물(物)인데 또다시 두 경의 문자보다 뛰어나다는 말인가요? 경은 상승이 아니요 소초가 도리어 묘유라는 말은 듣지 못했소.
더구나 그 입을 열면 대기(大機)에 대용(大用)이요 마음에 발작하면 살인(殺人)과 활인(活人)이라 하지만 본지(本地)의 풍광(風光)에 대기ㆍ대용을 어디에다 쓸 것이며 청평(淸平)의 세계에 살인ㆍ활인도 장차 무엇을 할 건고?
대기ㆍ대용을 두 사람에게 나누어 맡긴 것도 족히 가소로운 일이며 살인ㆍ활인은 한 때의 기(機)에 당한 말인데 어찌 상투로 답습하여 평소의 능사로 삼으려 드는 건가?
진공(眞空)과 묘유(妙有)를 나누어 두 문으로 만들어 마치 아울러 서고 쌍으로 일어나는 것과 같이 하니 어찌 한 마음이 다심(多心)으로 반복하는 건지요? 이는 《기신(起信)》을 잘못 읽은 사람들로서 총림(叢林) 속의 잡설과 만담이 이와 같이 몰이해하여 그 내력이 이미 오래였으니 또 어찌 전혀 사만 허물할 게 있소.
염화(拈華)의 소식을 들어 보이자 오직 가섭(迦葉)만이 알고 아난(阿難)도 몰랐는데 누가 들어서 역력히 설명하여 이와 같이 적확하고 분명하게 말한단 말이오. 언어의 길이 끊긴 곳에는 문자가 역력하여 증거할 수 있어 마침내 묘유문(妙有門)이라 생멸문(生滅門)이라 수연(隨緣)이라 보리(菩提)라 관조반야(觀照般若)라 활인검(活人劍)이라 잡화포(雜貨鋪)라 이르지 않았소.
묘유ㆍ생멸ㆍ수연ㆍ보리ㆍ관조반야 등 어와 불설에 대하여는 경(經)치고 없는 데가 없어 팔만의 권속(眷屬)이 듣지 못한 사람이 없고 믿어 받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또 어찌 염화를 들어 중(衆)에게 보여 줄 것이 있겠으며 중이 다 모르는데 가섭만 유독 알았단 말이오?
염화의 소식이 만약 과연 이에 있다면 또 어찌 문자를 세우지 않은 데 있겠는가.
황면(黃面)의 노자(老子)도 오히려 이를 언어나 문자에 나타내지 못했는데 사(師)는 마침내 다반사(茶飯事)로 말하니 문자도 본시 한 선(禪)이요 문자를 세우지 않은 것도 한 선(禪)이란 말인가? 하나의 선인데 혹은 문자를 세우고 혹은 문자를 세우지 않았단 말인가? 이는 다 말이 되지 않는 거외다.
이는 또한 사 한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후세의 선가(禪家)들이 거개 이와 같았는데 사 같은 이는 바로 또 그것을 주워 모아 구두선(口頭禪)을 만들어 주체(湊砌)하여 마지않고 천착하여 마지않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은가.
달마(達摩)가 서역에서 와서 진단(震旦)의 문자가 번역으로 와전되고 붓으로 받아 쓰는 데서 와전되고 윤색하다 와전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일체를 소제해 버리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했으니 이는 부득이한 일이었던 거요.
그러해도 달마는 오히려 《능가경(楞伽經)》을 이조(二祖)에게 부쳐 주어 서로 전하여 오조(五祖)에 이르렀는데 《능가》의 문자가 간회(艱晦)함으로써 《반야경(般若經)》으로 바꾼 것은 그것이 간직(簡直)하고 평이하여 사람마다 즐겨 따르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어렵고 쉬운 사이에 달마의 본지와는 사뭇 다름이 있었는데 사람이 다시 수정을 더한 일이 없어서 마침내 오늘날에 이르러 《능가》는 폐해지고 《반야》가 크게 행세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육조(六朝) 이래로 해석하는 자가 가장 많았는데 혹은 얕은 데 잃고 혹은 깊은 데 잃고 혹은 간략한 데 잃고 혹은 번다스러운 데 잃었던 거지요.
이를테면 삼십이분(三十二分) 같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소롭게 하는데 이는 사람이 망령되이 조명(照明)을 의탁한 것이니 바로 깎아버려도 되며 천친(天親)의 이십칠의(二十七疑)와 무차(无差)의 십팔주(十八住)는 반드시 보존하지 않아도 되며 또한 그것이 과연 두 대사(大士)의 손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거고요.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설은 이것이 바로 육조의 친필이란 말이오? 본래 글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가서 얻어왔단 말인가요. 구결(口訣) 두 글자는 곧 그것이 파탄나는 곳이니 이 역시 망탁(妄托)인 거요. 사는 헛설사로 한번 이마에 땀 쏟는 경우를 면치 못할 거외다.
함허(涵虛)의 설은 내유(來喩)로 보아 더욱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반야경》엔 어찌 여래선(如來禪) 조사선(祖師禪)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또 이미 공종(空宗)이라 일렀는데 내유를 들어 말하면 성종(性宗)이라 일러도 되고 조사종(祖師宗)이라 일러도 되지 않겠소? 매양 조사선을 위하여 따로이 문자를 세우고자 하니 역시 이상한 일이지요.
앞뒤가 비끗해지고 전부가 어긋져 떨어짐이 또 이와 같이 말한 자는 전혀 없으니 이는 망설이요 두찬(杜撰)인 것이며 지난날에 사의 말한 ‘생반삼분(生飯三分)’ 같은 것은 당초에 《대교왕경(大敎王經)》의 한 구절 한 대문도 얻어 보지 못하고서 함부로 만들고 함부로 풀이한 것인데 지금 또 《반야경》에다 사마귀를 붙이고 혹을 달 작정인가? 함허의 무리도 역시 이 병을 면치 못했는데 하물며 점점 끝이 되는 사 같은 이에 있어서랴.
화두는 지난날에 또한 누누이 말했는데도 마침내 반성하여 깨치지 못하고 또 이와 같이 황잡(荒雜)하게 말해 오니 비록 대방(大方)이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거요.
화두는 비록 조주(趙州)의 화(話)로써 화두를 삼지만 조주가 어찌 일찍이 사람에게 화두를 가르쳤는가? 특히 조주뿐만 아니라 달마(達摩)가 이조(二祖)에게 화두로써 가르쳤던가? 삼조ㆍ사조도 역시 화두 속에서 왔는가? 오조가 육조에게 의발(衣鉢)을 전하면서도 역시 일찍이 화두에 미치지 않았으며 남악(南岳) 마조(馬祖) 백장(百丈) 황벽(黃蘗)들도 화두를 들어 사람을 가르쳤다는 말은 듣지 못했소.
화두는 조송(趙宋) 이후부터 차츰 행해진 것인데 지금은 마침내 불어(佛語)는 화두 아닌 것이 없어 의리(義理)로써 설파하면 교의(敎義)가 되고 몰의리(沒義理)로써 타파하면 화두가 된다고 이르니 조송 이후의 불을 섬기는 것은 무엇 때문에 미리 옮겨 쓰고 거슬러 취하여 혹은 의리(義理)로 설파하고 혹은 몰의리(沒義理)로 타파한다는 거요?
불설은 장경(藏經)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장경 속의 팔만이 의리가 있지 않은 것은 없어 사람마다 이해할 수 있는데, 모르괘라, 어느 경이 몰의리의 경이 되는지요? 지금 화두를 불어(佛語)와 불의(佛意)로 삼는다면 세 곳에서 전심(傳心)할 때에 어찌 한 구절도 화두가 없었던가?
지금 교적(敎迹)을 사구(死句)로 삼아서 스스로 구하는 일도 끝내지 못했는데 스스로 구하는 일도 끝내지 못한 처지로서 어떻게 더 넓히어 팔만대장(八萬大藏)의 당상(唐喪)의 타진(唾津)을 하려 드는가?
화두로 사람 가르치는 것은 곧 상계(像季) 이래의 말법으로서 가장 강흔(剛狠)한 자들이 제멋대로 쓰는 것이니 화두로 사람 가르친 이후로는 다시 남악 마조 같은 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며 혹 한두 사람이 깨쳐 얻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심히 기특한 것은 없으며 그도 또한 열 백에 하나인 것이외다. 이 밖에는 허랑되이 세월만 낭비하여 오늘날 영남(嶺南)의 칠불선실(七佛禪室)과 같을 뿐이니 이 어찌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겠으며 대혜(大慧)가 그 화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어찌 면할 수 있으리오?
대혜의 문하에서 화두로부터 깨쳐 들어간 것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장자소(張子韶)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데 꾀어서 자소를 데려다가 양인을 천인으로 만들었으니 그 자소를 가르친 것은 곧 하나의 음모(陰謀)와 비계(祕計)로서 심지어는 사람들이 여불위(呂不韋)에게 비한 일도 있는데 사의 두대(頭戴)한 것은 바로 곧 이와 같을 따름인 것이외다.
종풍(宗風)의 문(門)은 문대로 호(戶)는 호대로 서로서로 분열되고 서로서로 형극이 되었는데 사는 단지 대혜(大慧)만을 알고 대혜의 법형(法兄)인 법일(法一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 호(號)는 설소(雪巢))을 알지 못하며 단지 청허(淸虛)만 알고 청허의 법형인 홍정(弘正)을 알지 못하니 이는 다 대혜ㆍ청허보다 한 등을 넘어선 자들이라오.
중고(中古)에 있어 외도(外道)를 변파한 주굉(袾宏)이나 근세에 반선(班禪) 서천의 활불 을 면척(面斥)한 달천(達天)이라든가 또는 육신(肉身)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덕청(德淸) 같은 이와 사리가 비[雨] 같았다는 성공(性空)의 여러 대덕들은 또 어찌 진묵(震黙)ㆍ환성(喚醒)ㆍ설파(雪坡)의 무리들에게 넘어 설 뿐이겠소.
사의 성문(聲聞)으로는 반드시 이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 칭술한 것은 편방(偏方)의 한 문호(門戶)의 작은 소견으로서 썩은 쥐새끼를 놓고 봉에게 소리 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외다.
선(禪)의 교법(敎法)은 체식(體式)이라 이른 것은 도대체 선을 어떻게 체식한다는 거요? 이미 문자를 세워 놓고 또 하나의 체식을 더하니 어찌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 것이 이와 같을 수 있는지 이는 모두가 진부한 것만 주워 모으고 하나도 신심(身心) 상의 체험ㆍ연구가 없이 날랜 이뿌리로 말만 늘어 놓는 것이며 또한 말을 가리지 못하고 떠들어댄 것이외다.
지난번에 《안반수의(安般守意)》를 읽으라고 권한 것은 어찌 《반야》와 《법화》를 몰라서리요. 특히 사의 근기(根器)와 식해(識解)가 이로 말미암아 들어가야만 문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안반수의》로써 이 방편의 교체(敎體)를 세워 사람마다 다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지요. 비유하자면 《법화》중의 화성(化城)과 같아서 비유하여 말한 것이니 실로 사를 슬퍼하고 민망히 여겨서 그런 것이며 사를 얕잡아 보거나 업신여긴 것은 아니오.
사의 문하의 작은 도리(闍黎)도 항상 가벼이 여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에게랴. 사는 끝내 이 의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사부(士夫)의 거만으로 여기니 어찌 평심하여 자세히 강구하지 못하시오. 사부의 거만도 오히려 불가한데 하물며 산승의 거만이겠소.
오늘날의 할 일을 위해서는 종전의 갈등을 일체 다 소제해 버리고 빨리 사의 신상에 나아가 회광반조(回光反照)하여 먼저 진ㆍ치(嗔癡)의 두 가지 독소를 도려내 버리고 다음으로 사분율(四分律) 오분율(五分律)과 갈마비니(羯磨毗尼) 등의 법을 취하여 한결같이 마감 증험해 나가면 거의 혹 앞에 나타나는 광명이 있을 것이나 사는 지금 늙지 않았소.
그러나 우리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가하다.”하였으며 사의 가문(家門)에도 역시 "소 잡는 칼을 내려뜨리고 당장에 부처를 이뤘다.”는 말도 있으니 사의 앞길은 상기도 한량이 없지 않소. 격(格) 밖에 위로 향하는 그 한 구멍에 이르러는 또 문자나 언어로써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시험 삼아 다시 생각하고 또 거듭 생각하기 바라오.
개중(個中)의 설은 더욱 낙착이 없으니 만약 개중을 논한다면 어찌 초목 곤충의 유정(有情) 무정(無情)을 말할 게 있는가. 축생(畜生)과 아귀(餓鬼)에 이르러는 어떻게 개중을 들어 논하리오. 초목 곤충의 유정 무정에 대하여 그 소식을 탐득(探得)하면 장차 무엇을 하자는 거요?
두번째 편지
오늘날의 일은 오직 곧이곧대로 잘라 말해야 하며 위곡(委曲)하거나 완전(宛轉)하는 식은 필요치 않으니 아무리 저촉되고 거슬리는 점이 있더라도 성을 내어 서로 격하지 말아 주었으면 오죽이나 좋겠소.
내시(來示)에 이른바 삼처(三處)의 전심(傳心)과 오종(五宗)의 분파(分派) 따위도 역시 지난날의 이른바 옛사람의 성어를 주워 모은 것이 어찌 아니겠소. 이는 다 지상(紙上)의 공언(空言)일 뿐 결코 사의 마음속에서 터득한 것은 아니니 이는 이른바 구두선이라는 거요. 사가 다시 또 이와 같이 갈등하여 마지않을 줄은 생각도 못했구려. 무엇으로써 사의 마음속으로 터득한 것이 아님을 아는가 하면 이에 앞서 대략 여러 선백(禪伯)들과 더불어 선을 논할 경우 이를 들어 말을 삼지 않는 이가 없어서 바로 오늘날 총림(叢林) 중의 한 가지 문면어(門面語)로 되어 있으니 이러한 때문에 근래의 총림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하여 법당(法幢)을 세울 만한 땅이 없고 혜등(慧燈)을 이어갈 곳이 없는 거요. 어찌 한탄스럽지 않으리오.
살인(殺人)ㆍ활인(活人)ㆍ대기(大機)ㆍ대용(大用)이 사의 본래 면목에 무슨 관여가 되기에 그처럼 죽음을 구하느라 겨를을 못 챙기는 꼴이 되는 건지요. 지금 살인 활인을 어느 곳에 베풀고자 하는 건지요.
더구나 적어보낸 뜻을 살피면 삼처의 전심은 도검(刀劍) 상의 일이 아닌 것 없는데 그렇다면 황면노자(黃面老子)의 사십구 년 동안 설법한 것이 필경의 귀취(歸趣)는 도검(刀劍)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 아니겠소. 구족(具足)의 상(相)을 가지고도 오히려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인데 지금 도검의 상으로써 여래를 본다 이른다면, 모르괘라, 여래가 그것을 수긍하겠는지요.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이 각기 다 얻는 바 있다면 사의 전해 얻은 것은 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요, 아니면 사람을 살리는 것인가요? 살ㆍ활을 병용하는 것은 이미 전한 바 없는데 또 어떻게 그 살ㆍ활이 병용되는 것을 알았단 말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할밖에요.
이는 다 말세 이래로 선지(禪旨)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고인의 성어에 나아가 입에 나오는 대로 말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차츰차츰 미혹에 빠지고 만 거외다.
화두로 사람 가르치는 것도 역시 한 모양의 맹갈할봉(盲喝瞎棒)에 불과한 거요. 화두의 이전에는 깨달아 통한 자가 많았는데 화두의 이후로는 깨달아 통한 자가 적음은 어째서인가? 화두 이전의 제불(諸佛) 제조(諸祖)는 화두를 말미암지 않았으니 이는 다리 세울 곳[立脚處]을 알지 못했는데도 또한 깨달아 통할 수 있었겠는가.
여래는 밝은 별을 보고 도를 깨쳤는데 지금 사람은 밤마다 별을 보지만 일찍이 한 사람도 도를 깨치지 못한 것은 또 어쩐 일이며 설사 한 사람이 화두를 인하여 도를 깨쳤을지라도 다른 사람은 또 어떻게 화두를 인하여 도를 깨치겠는가? 이는 그 근성(根性)에 따라서 가르침도 각각 등분이 있으니 화두로써 한결같이 덮어씌워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만약 화두로써 한결같이 덮어씌운다면 준동(蠢動)하는 것들도 영(靈)을 머금어서 다 불성이 있는데 어찌하여 구자(狗子)에게 화두를 가르쳐 그로 하여금 악도(惡道)를 벗어나게 하지 아니하였겠는가? 이것이 바로 대혜(大慧)의 화두를 가르치는 어긋나고 결흠되는 것이지요.
오늘날 화두로 사람을 가르치는 자도 역시 자신이 깨치고 또 남을 깨칠 수 있다고 보는가? 자신의 깨침이 없이 다만 옛사람의 성어만을 사용하여 그 깨치고 안 깨치고를 논할 것 없이 마구 사람 가르치는 방편으로 삼으며 따라서는 또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한마디 말로써 입증할 것이 있으니 《금강경(金剛經)》의 ‘응여소교(應如所敎)’를 주천로송(住川老頌)에는 ‘가지례(可知禮)’라 일렀고 또 《염송(拈頌)》 임제권(臨濟卷)의 ‘승편갈(僧便喝)’을 규암(珪庵)은 ‘가지례(可知禮)’라 일렀으니 승편갈을 어떻게 ‘가지례’라 이를 수 있겠는가.
또 한 가지 말이 서로 입증할 것이 있으니 사는 《조상경(造像經)》의 생반삼분(生飯三分)의 해(解)를 연어(鳶魚)의 비약(飛躍)으로써 풀이했다고 하니 생반삼분이 연어의 비약과 더불어 어떻게 부합된단 말인가. 만약 이 두 가지에 대하여 밝은 해석을 얻는다면 사의 살인ㆍ활인ㆍ대기ㆍ대용을 증명할 수 있으니 행여 자세한 가르침이 있었으면 하외다.
천(喘)의 의는 아마도 피로(披露)하고 선양(宣揚)하여 남김이 없을 것 같은데 마침내 깨우치지 못할 곳이 있으니 밝은 눈을 가진 사람 앞에도 과연 삼척(三尺)의 어둠이 있다는 것이 이를 두고 이름이었던가?
유문(儒門)의 독서하는 법을 구두를 익힌다고 이르는데 어찌 이와 같은 독서의 법이 있으리오. 서너집 마을 속의 동홍(冬烘) 선생도 이와 같지 않으니, 모르괘라, 공문(空門)에서는 《화엄(華嚴)》 《수릉(首楞)》을 구두 익히는 도구로 삼는 건가? 거듭 웃음이 터져나올밖에요.
논(論)에도 종ㆍ석(宗釋)이 있어 경을 종(宗)으로 하여 논을 지은 것도 있고 경을 풀이하여 논을 지은 것도 있는데 《기신》은 본시 《능엄》을 종으로 하여 논을 지은 것이지요. 어찌 《능엄》의 논례(論例)가 원래 의거가 없이 논을 만든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니겠소. 《기신》의 논 된 것은 비록 이것이 요의(了義)이기는 하나 어찌 의거가 없이 논을 만들었으리오.
사는 다만 석론(釋論)이 석경(釋經)이 되는 줄만 알고 종론(宗論)이 종경(宗經)이 되는 줄은 몰라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인가? 어찌 사가 모르리오. 미처 점검하지 못해서이겠지요.
오늘날의 할 일은 먼저 삼처의 전심과 간가(間架)의 도(圖)를 버려 버리고 경솔히 화두도 추겨 들지 말며 염송사(拈頌師) 되기를 좋아도 말며 머리를 숙이고서 《안반수의경》을 읽으면 거의 혹 일선(一線)의 광명이 앞에 있게 될 거외다.
세번째 편지
보내 온 뜻은 아울러 살폈거니와 사는 마침내 육십 년의 대강사(大講師)로 자처하며 저 사람은 곧 속인이니 저 속인이 무슨 지견이 있겠는가 하면서 설사 우자(愚者)의 일득(一得)이 있을지라도 끝끝내 마음을 비워 체험 강구하지 않고 서로 머리 숙이고자 아니하여 ‘가지례(可知禮)’나 ‘생반삼분(生飯三分)’ 같은 등의 해석에 이르러는 바로 교가(敎家)나 선가(禪家)를 천만 부당한 의체(義諦)에 몰아 넣으면서도 그것이 날로 마경(魔經) 귀굴(鬼窟) 속으로 떨어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요, 이 사람의 입이 마르고 혀가 닳도록 중언 부언하는 것이 마침 사의 분노의 장애만 키워줄 뿐이외다.
화두 아닌 게 없다라는 한 마디 말은 이야말로 근일 왕복하던 중에 약간의 미목(眉目)을 나타낸 것이니 이것이 선(禪)과 교(敎)의 융합되는 뜻이지요. 이처럼 투철한 깨달음이 있다면 의당 닥치는 대로 촉발되어 칼날을 받은 대가 짜개지듯 할 터인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횡설수설하여 전혀 착락(着落)이 없으니 모를 일이오.
만약 제불(諸佛)ㆍ제조(諸祖)의 한 말 한 구절이 화두 아닌 게 없다 한다면 《방등(方等)》ㆍ《반야(般若)》ㆍ《화엄》ㆍ《법화》에서 소승(小乘)의 《아함(阿含)》 제경(諸經)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인들 화두가 아니리오. 다만 천칠백칙(千七百則)에 따라 화두를 삼는다는 것은 이미 가소로운 것이며 사람 가르치는 방편이 ‘무(無)’자 등의 수삼 가지 말에 벗어나지 않는데 또 교를 나누고 선을 나누며 선으로서 또 허다의 문호가 나눠지니 선지(禪旨)가 만약 또 이와 같이 갈등이 된다면 누가 이를 곧이곧대로 잘라서 향상(向上)의 법문(法門)이라 이르겠는가.
《구곡설화(龜谷說話)》 같은 한 서는 산가(山家)에서 떠받들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으나 황잡하기가 이와 같은 서는 없는데 이와 같은 서에서 선지(禪旨)를 찾으려 하고 있으니 그 얼버무리고 무조리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며 비록 《전등록(傳燈錄)》ㆍ《염송(拈頌)》 같은 것도 황잡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전혀 공안(公眼)을 가진 사람이 가려서 취한 것이 없으니 또 어찌 《설화(說話)》에만 책비(責備)할 수 있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가벼이 화두를 뽑아 들려 말고 염송사 되기를 좋아도 말라는 것은 정히 오늘날 산가의 정문 일침(頂門一針)이 될 만한데 끝끝내 이 애달픈 마음을 체험 강구하려 하지 않고 오직 견강(牽强)하여 이기기를 다투는 것만으로 능사를 삼아 속인을 꺾어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속인이라고 해서 어찌 한 척(隻)의 정법안(正法眼)이 없으리오.
사의 기(氣)를 써서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을 보면 속인이 알지 못하는 그 밖에 따로 한 가지 격외의 심오한 지의(旨義)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종경에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심’자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며 그 하수(下手)하는 곳도 역시 고양이가 쥐잡듯이 닭이 알을 품듯이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구려.
사는 《태식경(胎息經)》을 들어 하학(下學)의 소승(小乘)으로 삼는데 고양이와 닭의 비유는 곧 《태식》의 처음 배우는 공부인 것이니 사는 그림자를 피하고자 해도 그림자가 더욱 몸을 떠나지 않는 격이외다.
대개 선ㆍ교(禪敎)의 두 문은 다 같이 하나의 마음 심자를 벗어나지 않는데 교의 문은 너그럽고 느리다면 선의 문은 급하고 절연하다 할 거요. 불법(佛法)이 동으로 중국에 들어와 천 년이 못 미쳐서 교문(敎門)은 하마 갈등이 많으므로 서역에서 온 달마는 부득불 한번 쓸어 없애지 않을 수 없기에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장 본심을 가리켰으니 이 역시 팔만 사천의 방편 가운데 때를 따른 방편의 하나인 것이며, 방편을 의방(醫方)에 비하자면 대승기탕(大承氣湯)과 같은 거요.
이때를 당하여 남악(南嶽)ㆍ마조(馬祖) 같은 여러 사람들이 기운은 큰 바다를 삼키고 힘은 수미산(須彌山)을 밀어 버릴 만하여 족히 ‘대승기탕’ 한 제를 당해 낼 만하였는데 송 나라 이후로는 사람의 근기(根基)가 점점 전과 같지 못하고 근자에는 기운이 이미 쇠진된 데다 진원(眞元)이 크게 내려가서 달마와의 거리는 또 천여 년이 되었으니 부득불 큰 의왕(醫王)이 때를 따라 사람을 구제하는 다시 하나의 방편이 있고서야 또 목숨을 이어 나갈 수 있을 터인데 지금 만약 ‘대승기탕’을 원기가 크게 탈진된 뒤에도 한결같이 시용한다면 당장에 죽지 않는 자는 없을 거외다.
오늘날 산가(山家)에서 이러한 도리를 알지 못하고 단지 맹갈할봉(盲喝瞎捧)으로써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어찌 크게 슬프고 민망스러운 일이 아니리오. 반드시 하나의 눈 밝은 사람이 나와 이 화두를 일소하여 없애 버려야만 법당(法幢)을 다시 일으킬 수 있고 혜등(慧燈)을 다시 불붙일 수 있을 거요. 만약 평심하여 자세히 궁구해 보면 반드시 인합(印合)이 있을 거외다.
백파에게 주다[與白坡]
白坡老師禪安。旣與之放言不諱。寧有反之之理。前後紙楞墨角。曾無一毫近似於藏怒底意。來諭之忽此斤斤。是師自作藤葛。不覺噴筍滿案也。師年將八十。又是今日禪門宗匠。平昔未甞遇善知識。又未甞見明眼人。機鋒誰爲之撥轉。頂門仍以之湮塞。沉沉鬼窟。過了許多歲月。忽撞差放言人大獅吼。宜其瞠乎爾也。吾雖菲淺。豈不容老頭陀一人。至於並及其先狀也。師於一俗諦文字。尙不得深究。何以透到甚深之彿旨也。卽此而師之敗闕無餘。尤豈不噴筍滿案也。今此十五條例。前一說似有可解。後一說還復瞢憧首尾千百言。全無一句心得而從腑肺中流出來者。依舊是掇駁襍無倫脊之成語。胡亂說去。往時與一山中老古錐論禪。亦作如此語。陳墨冷飯。如印一板。此是緇門之謄傳故紙。牢不可破者歟。如云佛說無非話頭活句。法華華嚴是敎迹死句。二a301_099c經揭非佛說耶。疏抄私記。亦是妙有。而法華華嚴。皆不得爲禪門上乘。其所云疏抄私記別是一書。自修多藏中新譯來。與此二經判是兩件物。又復超過二經文字者歟。經非上乘。疏抄還是妙有。未之聞也。且其開口則大機大用。發心則殺人活人。本地風光。大機大用。用之那處。淸平世界。殺人活人。亦將何爲。大機大用之分屬兩人。已足可笑。殺人活人之一時當機語。豈又可襲套作平生伎倆也。眞空妙有之分作兩門。有若並立雙起。何一心之反復多心。是誤讀起信來者。叢林中襍說漫談如此鶻突。其來已久。又何以專咎於師也。擧拈華消息。惟迦葉知之。阿難亦不知。誰爲之歷歷說去。如是的的明明。言語路斷處。文字歷然可證。遂謂之妙有門也。生滅門也。隨緣也菩提也。觀照般若也。活人劍也。襍貨鋪也。妙有,生滅,隨緣,菩提,觀照,般若等語。於佛說無經無之。八萬眷屬。無不聞之。無不信受。又何庸擧拈花示衆。衆皆不知。迦葉猲知a301_099d之耶。拈華消息。若果在是。又烏在於不立文字耶。黃面老子尙不得以形之言語文字。而師乃茶飯說去。文字是一禪。不立文字是一禪歟。一禪而或立文字。或不立文字歟。此皆說不去處也。此亦非師一人乃然。後來禪家擧多如此。如師者乃又掇拾作口頭禪。湊砌不已。穿鑿不已。寧不可悶乎。達摩西來。以震朝文字。爲翻譯所訛。筆受所訛。潤色所訛。一切掃除。以心傳心。是不得已也。尙以楞伽經。付與二祖。相傳至五祖。以楞迦文字艱晦。易之以般若經。以其簡直平易。人皆樂從。然艱易之間。與達摩本旨。煞有異焉。人無有更加點拎。遂至今日。楞伽遂廢。般若大行。六朝以來。解之者最多。或失之淺。或失之深。或失之簡。或失之繁。如三十二分。令人可笑。是人妄托照明者。直削之可也。天親二十七疑,无差十八住。尙不必存。亦未知果出二大士手也。六祖說。是六祖親筆耶。本不識字。何以往得來耶。口訣二字。卽其破綻處。此亦妄托也。師未a301_100a免虛瀉一遭額汗也。涵虛說。以來喩尤不可存也。般若經安得有如來禪祖師禪也。且旣謂之空宗。而以來喩言之。謂之性宗可也。謂之祖師宗可也。每欲爲祖師禪別立文字。亦可異也。前後橫决。全般差落。又無有如此說者。是妄說也。是杜撰也。如向來師所說生飯三分。初不得見大敎王經。一句一文。妄作妄解。今又欲於般若經。附疣懸贅耶。涵虛輩亦不免此病。况漸降漸末如師者乎。話頭往時。亦縷縷說之。終不廻悟。又此荒襍說來。雖大方無以轉幹也。話頭雖以趙州話爲話頭。而趙州何甞敎人話頭耶。不特趙州也。達摩敎二祖以話頭耶。三祖四祖亦以話頭中來耶。五祖之傳衣六祖也。亦未甞及話頭。南岳馬祖五丈黃蘗。俱未聞以話頭矣。話頭自趙宋以後漸行。今乃云佛語無非話頭。以義理說破則爲敎義。以沒義理打破則爲話頭。趙宋以後事佛。何以預爲挪移逆取。或以義理說破。或以沒義理打破也。佛說不出於藏經矣。藏a301_100b經中八萬。無非有義理人人可解。未知何經爲沒義理之經乎。今以話頭爲佛語佛意。則三處傳心之時。何無一句話頭耶。今以敎迹爲死句。自救不了。則以自救不了者。何乃廣之爲八萬大藏唐喪唾津耶。話頭敎。卽像季以來末法之最是剛狠自用者也。話頭敎人以後。更未聞如南岳,馬祖者出。或有一二悟得。便無甚奇特。且十百之一耳。外是虛拋浪擲。如今日嶺南之七佛禪室。此豈非誤人。而大慧安得不爲禍首也。大慧門下。從話頭悟入。爲幾人歟。無過於張子韶者。誘取子韶。壓良爲賤其敎子韶。卽一陰謀秘計。至有人譬之於呂不韋。師所頂戴者。卽如是已矣。宗風之門門戶戶。互相分裂。互相荊棘。師但知大慧。不知大慧之法兄法一。但知淸虛。不知淸虛之法兄弘正。此皆過慧虛一等者也。中古辨破外道之袾宏。近世面斥班禪 西天活佛 之達天。又如肉身不懷之德淸。舍利如雨之性空諸大德。又何啻逍震默,喚惺,雪坡輩也。師之聲a301_100c聞。必不能及此。今所稱述。不過偏方一門戶小見腐雛嚇鳳也。禪敎軆式云者。禪何以體式耶。旣立文字。又添一體式。何不禪煩之如是也。無非掇捨陳腐。了無身心上體究。利嘴說過。亦不擇言而發耳。頃者勸讀安般守意者。豈不知般若法華也。特師根器識解由此而入。然後可得門路。非以安般守意。立此方敎體。人人皆然也。壁如法華中化城。壁喩之各說之也。寔有悲閔於師。而寔非低侮於師也。師之門下小闍黎常不輕。况於師乎。師終不了此義。反以爲士夫慢。何不平心細究也。士夫慢尙不可。况山僧慢乎。爲今之計。一切掃除從前葛藤。亟就師身上回光反照。先去嗔癡二毒。次取四分五分律羯磨毗尼等法。一以勘驗。庶或有現前光明。師今老矣。然吾聖人之言曰。朝聞道夕死可矣。師家亦有放下屠刀立地成佛者。師之前路。尙未可量。至於格外向上一竅。又非文字語言所可喩破。試再思之。又重思之。
a301_100d個中之說。尤無着落。若論個中。烏在於艸木昆蟲有情無情耶。至於畜生餓鬼。何以個中論也。草木昆蟲有情。無情探得其消息。且將何爲耶。
두 번째 편지
今日之事。惟當直截說去。不要委曲宛轉。雖有所觸忤。毋以嗔恚相激。幸甚。來示所云三處傳心五宗分派。亦豈非向所云古人成語攛掇者耶。此皆紙上空言。决非師心內所得。此所謂口頭禪。不料師之亦復如是藤葛不已也。何以知非師心內所得也。前此畧與諸禪伯論禪。無不以是爲說。便作今日叢林中一段門面語。此所以近來叢林一敗塗地。法幢無地可竪。慧燈無處可續。寧不可歎。殺活機用。何與於師之本來面目。而其將救死不瞻。今欲以殺活施之何處也。且以來示觀之。三處傳心。無非刀劒上事。黃面老子四十九年說法。畢竟歸趣不過刀劒而a301_101a已。以具足相。尙不可以見如來。今以刀劒相。謂之如來。未知如來其首肯耶。殺人刀活人劒。各有所得。則師所傳得者。是殺人者耶。是活人者耶。殺活並用。旣無所傳。又何以知其爲殺活並用耶。令人不覺呵呵。此皆像季來。不解禪旨。只就古人成語。順口說去。自不覺其轉轉迷悟。話頭敎人。亦復一樣是盲喝瞎棒。話頭以前。悟徹者多。而話頭以後。悟徹者少何耶。話頭以前之諸佛諸祖。不由話頭。是不知立脚處。亦可以悟徹耶。如來見明星悟道。今人夜夜見星。曾無一人悟道者。又何也。設有一人因話頭悟道。他人又何以因話頭悟道耶。此所以隨其根性。敎各有等。不可以話頭一以冒之也。若以話頭一以冒之。蠢動含靈。皆有佛性何以敎狗子話頭。頭使之勇脫惡道耶。此是大慧敎話頭差欠處也。今日之話頭敎人者。亦有自悟而悟人耶。無自悟而只用古人成語。無論其悟與不悟。而因以爲敎人方便。又從以殺人耶。有一語相證者。金a301_101b剛經但應如所敎。住川老頌云可知禮也。又拈頌臨濟卷僧便喝。珪庵云可知禮也。僧便喝。又何以云可知禮也耶。且有一語相證者。師於造像經生飯三分解。解以鳶魚飛躍云。生飯三分。與鳶魚飛躍。何以襯合耶。若得此兩段明解。可以證師之殺活機用。幸有以詳敎之。喘義似若披宣無餘。終有未㖮處。明眼人前。果有三尺暗者是耶。至於儒門讀書之法。謂之習句讀者。寧有如此讀書法。三家村裏冬烘先生。亦不如是。未知空門以華嚴首。楞爲習句讀之具耶。重爲之噴筍。諭有宗釋。有宗經而造論者。有釋經而造論者。起信是宗楞嚴而造論者也。豈非楞嚴論例。元無無依而造論者。起信之爲論。雖是了義。何以無依而造論。師但知釋論之爲釋經。而不知宗論之爲宗經。如是爲言耶。豈師不知。似未檢耳。爲今日之計。先去三處傳心間架之圖。勿輕拈話頭。勿好作拈頌師。低頭讀安般守意經。庶或有一線明在前耳。
세 번째 편지
來意並悉。師乃自處以六十年大講師。而彼是俗人也。彼俗人有何知見。設有一得之愚。終不虛心軆究。不欲相下。以至如可知禮生飯三分等解。乃以敎家禪家。漫漊於千萬不當底義諦。自不覺其日墮於魔經鬼窟中。所可瞿然者。此之苦口弊舌。適足以長師之嗔恚障耳。如無非話頭一語。是近日往復中稍見眉目者。此爲禪敎合融之旨也。有是透悟。自當隨處觸撥。迎刃而解。今乃不然。橫說竪說。都沒着落。若諸佛諸祖一言一句。無非話頭。則方等般若華嚴法華。以至小乘之阿含諸經。何處非話頭也。但從千七百則爲話頭者。已是可笑。而敎人方便。不出於無字等數三語。又分敎分禪。禪而又分許多門戶。禪旨若又如是葛藤。誰云是直截於向上法門耶。如龜谷說話一書。山家奉以爲金科玉條。而蕪雜無如此書。從如此等書。覔得禪旨。宜其爲塗胡鶻突。雖如傳a301_101d燈錄拈頌。同一蕪雜。全無公眼揀取者。又何責備於說話耶。此所以勿輕拈話頭。勿好作拈頌師者。政爲今日山家頂門一針。終不軆究。此苦心惟以牽强角勝爲能事欲摧折俗人計俗人亦豈無一隻正法眼也師之所盛氣張皇者。若於俗人所不知之外。別有一段格外奧旨矣。及其究竟。不過是以心傳心之心字而已。其下手處。亦不過如猫捕鼠。如鷄抱卵而已。師以胎息經。爲下學小乘。而猫鷄之喩。卽胎息之初學工夫也。師欲避影而影愈不離於身矣。大槩禪敎二門。俱不出於一心字。敎門寬緩。禪門急韯。佛法之東入中國。未及千年。敎門已多藤葛。達摩西來。不得不一掃以空之。不立文字。直指本心。此亦八萬四千方便中。隨時方便之一方便。壁之於醫方。如大承氣湯。當是時也。如馬嶽馬祖諸人。無不氣呑巨海。力排須彌。足可以抵得大承氣一劑。自宋以後。人之根基。漸不如前。近則氣已衰竭。眞元大下。去達摩已又千有餘年。不a301_102a得不有大醫王隨時救人之更有一方便。便然後又可以續令。若以大承氣。一以試之於元氣大脫之後。無不立死者。今日山家不知此個道理。只以盲喝瞎棒。到頭殺人。寧非大可悲憫。必有一明眼人。一掃此話頭而空之。幢可以復起。慧燈可以再燃。若平生心細究。必有印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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