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8대성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올해 6월까지 인도성지순례 글을 연재하다가 귀국하여 중단되었다가 다시 순례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지순례를 하게되면 대부분 8대성지를 순례하게되는데 도대체 8대성지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8대성지를 지정한 이유가 타당하게 이해되지도 않고 8대성지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8대성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4대성지를 순례하는 당위성과 공덕은 이미 부처님이 열반경에 말씀해놓으셨지만 8대성지를 지정한 근거와 출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해 봤지만 누구도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볍게는 "여행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정한 것이 아닐까요?" 라는 대답부터 "부처님 혹은 아소카왕이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던중 〈불설팔대영탑명호경〉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경이 인도를 최초로 순례한 법현의 번역이라면 최소 4세기에 팔대성지가 만들어져 있던 셈이다. 다시말하면 8대성지는 8군데에 탑을 세우고 그 탑을 참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명호경에서 8대성지를 지정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까삘라성의 ‘룸비니’는 부처님의 탄생지이다. 두 번째 마가다국의 네란자라강 기슭에 있는 ‘보드가야’는 불도를 깨우친 곳이다. 세 번째 까시국의 ‘녹야원’은 처음 3전 12행의 초전법륜을 굴린 곳이다. 네 번째 사위국의 ‘기원정사’는 삼계를 꿰뚫는 대신통력을 보인 곳이다. 다섯 번째 ‘상카샤’는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내려온 곳이다. 여섯 번째 ‘왕사성’은 여러 제자들을 분별하여 자비로 교화한 곳이다. 일곱 번째는 ‘웨살리(베이살리)’는 부처님께서 자신의 수명에 대해서 사유한 곳이다. 여덟 번째는 ‘꾸시나가라’의 사라숲은 열반에 든 장소이다.”
이 경에서 나타나는 8대성지는 정확하게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8대성지임을 알 수 있다. 4세기 이전에 팔대영탑을 중심으로 순례하는 것이 유행했을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날란다 박물관에 있는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에도 나타난다. 이 조각상에는 항마촉지인의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로 각각 3가지 형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각각의 형상은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상징한다.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바치는 모습은 웨살리를 상징하고 술취한 날라기리 코끼리를 손으로 제어하는 모습은 왕사성을 나타내고 천불화현의 신통을 보이는 모습은 사위성을 나타내고 보석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상카샤를 나타낸다. 그리고 불상의 머리위에는 누워있는 열반상을 조각하여 꾸시나가라를 나타내고 있다. 〈불설팔대영탑명호경〉에서 설명하는 8대성지의 장소는 동일하지만 성지로 지정된 이유들이 조각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조각가들이 조각할 때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즉 조각가의 입장에서는 여러 제자들을 분별하여 자비로 교화한 왕사성을 조각으로 표현하여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데워닷다가 부처님을 죽이려고 풀어놓은 코끼리를 제압하는 극적인 순간을 조각으로 표현하여 그 장소가 왕사성임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웨샬리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이 3개월후에 열반하리라는 결심을 하신 것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하는 것을 보여주면 그곳이 웨살리임을 쉽게 드러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각상에서 8대성지는 온통 신통과 이적에 관련된 사건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조각가의 입장과 사람들이 신통력을 선호한다는 면에서 이런 전통은 오래도록 유지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라우리야 난다가르에 있는 재탑
불멸후 이백년후에 나타난 아소카왕은 부처님과 관련된 모든 유적지를 참배하고 8만사천탑을 세웠다. 그 많은 탑들중에서 8군데만을 골라 8대영탑명호경 같은 것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 8대성지를 순례하고 각각의 성지를 신통력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은 많은 한계를 느끼게 한다. 단순히 도리천에서 부처님이 하강했다는 이유로 상카샤가 8대성지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한가? 오히려 상카샤보다는 부처님과 제자들의 자주 머물고 많은 가르침이 설해진 코삼비 같은 곳이 8대성지에 들어가야 되지 않겠는가. 3명의 장자가 코삼비에 세운 승원들과 코삼비 근처의 숲에서 부처님은 2안거를 지내셨다. 코삼비에는 부처님께 결혼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마간디야 이야기, 사마와띠 왕비의 신심, 다문제일이된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 꾸줏따라, 우데나가 코삼비왕이 되는 기막힌 과정, 두 부모를 갖게된 바꿀라존자 이야기, 승가에 분쟁이 일어나서 부처님마저 숲속으로 떠나자 재가자들이 보시를 거부하여 승가를 화합시킨 이야기등 음미해야 할 이야기들은 수두룩하다. 특히 지금처럼 조계종의 승가구성원들의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어 승가공동체가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는 때에 코삼비 재가자들이 주는 교훈은 절실하다.
상카샤를 8대성지에 들어가게 한 이유는 사위성을 쳔불화현의 기적을 행항 곳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런 결과이다.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를 했으니 당연히 내려오는 이야기를 해야 했을 것이다. 사위성을 기원정사와 그곳에서 설해진 경전을 중심으로 설명한다면 지금처럼 상카샤가 강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코삼비 비구들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간 부처님을 시봉하는 코끼리
그러나 8대성지를 고집하는 것도 8대성지라는 틀에 갖혀서 생각하는 한계일지 모르겠다. 차라리 10대성지를 만들어 코삼비는 물론 다른 성지를 추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부처님의 고향인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아라마와 마하와나에도 부처님이 여러경전을 설하셨고 많은 사건이 있었다. 앙가국의 수도였던 짬빠의 각가라호수, 짬빠에서 가까운 위끄람실라 대학터, 빔비사라왕과 부처님이 만나 제티얀에서 라자가하로 이어지는 순례길,부처님과 가섭존자가 가사를 교환한 실라오, 아쇼카석주와 불리족의 재(災)탑이 있는 라우리야 난다가르흐(Lauriya Nandagarh)등도 성지순례지에 추가될 만하다. 지금의 8대성지는 8대성지에 들어가지 못한 중요한 성지를 소외 시키고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을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요구할 일이 아니다. 먼저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순례하는 전통을 만들면 되는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8대성지나 10대성지를 정하고 그렇게 순례하면 될 일이다. 올해 부터 나는 상카사 자리에 코삼비를 넣은 8대성지를 순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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