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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

칠조어론... 시작부분..

 

제 1 장

 

觀雜說 品一

 

煙  色

 

千佛이 모인 자리에서는 千佛이 싫어[嫌]하고 群摩가 득시글거리는 데서는 群摩가 미워[憎]하는, 더러운 냄새의, 털 안 깎아 짐승 같은, 法盲僧 하나가 오늘도, 오라지도[請] 않은, 누구네 잔치의 앞자리에 버티고 앉았습. 咄!   

                                                                                                           --觀雜說 品一

 

村僧今日, 事不獲己, 曲順人情, 方登此座. 喝. 소주 맛 좋은 날, 썩 좋은 날 오늘, 乞僧이입지, 몇 모금 소주에 몇 입가심 豬肉을 보챈다 해도, 그 탓에 너무 허물치들 마십습지.

 

村僧은 그리고, 헤헵, 저육으로 기름을 삼아, 눈을 밝붉혀, 우리들의 우주의 입이 되는 데를 찾아 열어, 그 목구멍을 통해, 거기다 눈을 던져넣고, 그 안쪽에서 우리들이, 대체 무엇으로 하여금 저렇게도 바쁜지, 그것을 좀 竊視하려 하는바, 이제부터 촌승이 무엇이든 말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村僧의 눈앞을 스쳐가는 풍경에다, 눈이 잉아 걸어, 말[言語]의 북실 몇 바름 풀어낸 결과일 것입습지.


道流들께서 그런즉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러므로 촌승은 보는 자며, 그것도 훔쳐보는 자며, 무엇을 짓[作]거나, 定義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렇다면, 촌승이 촌승의 혀로, 무슨 말을 만든다 해도, 촌승이 그것에다, 촌승 나름의 무슨 질서를 부여할 수도 있다거나, 취사선택을 할 수도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습지.

 

이런 범주의 말하기는 그렇다면, 그 말이, 듣는 이의 귓속으로 들어가, 누룩이 돼서, 때로는 대단히 빠르게, 때로는 대단히 더디게, 그 심정 속에서 의미의 술을 익히는 것이기보다는, 반대로, 듣는 이를, 그 말 속에로 끌어들여, 듣는 이로 하여금, 문맥을 잇게 하는 것일 듯싶습지.

 

이런 투의 문장은 그렇다면, 듣는가, 단어단어의 역할을 담당하여, 듣는 이가 쓴다[作文]고 해야겠는감. 咄.

 

저육 맛 좋은 날, 좋은 날 오늘, 無事乞에게는, 매일이 오늘, 매일이 좋은 날 오늘.

 

흣, 흐, 묘한 것은 그래도 말인뎁지, 끼니 때는 어김없고도 끊임없어 끼니 때마다 하나씩도 둘씩도 일곱씩도 오고, 그러면 아무리 무사걸이라 한다 해도, 그때마다 물 안 마시고, 팔베게론, 장부팔자 꼬끼요--할 수만은 없던 것, 헥, 커, 당찮은 소리를.

 

글쎕지, ‘無事’란, 그 修業중의 비구가, 배고프지 않기 위해, 밭 갈거나 사고 파는 짓을 함이 없다는 뜻인 것이고, 그런고로 배가 고파도 좋다는 뜻은 전무하던 것읊.

 

그렇걸랑, 남이 흘리는 땀의 공양을 받으려거든, 작게나 크게나 받기는 마찬가지인 것, 이왕이면 큰 바리대에다 받되, 이왕에 일곱 집 들르려거든, 대문이 소슬하여 큰 데로만 들를 일이던 것.

 

그렇지 않고, 중이, 어느 문전에서 밥을 빌기도, 法을 보시하기라고 하여, 사흘을 굶은 어떤 과택네 문전에서, 목탁 두들겨 염불을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어 못 내놓고 욕설이나 뱉아 내놓는, 그 과택의 넋이, 매 목탁 소리에마다 한치씩, 열치씩 떨어져내려, 그 염불이 멀어지고 있을 때에는, 그 과택도 정토에서는 훨씬 더 멀어져 있을 것, 그렇다면, 그 중은 공평무사하게 법보시를 하여 苦海를 표표히 건너뛰어 彼岸에 희게 앉아을 때, 왜냐하면, 저 공평무사한 비구가, 다만 그 집 문전에 서 법보시를 했었다는 그 까닭으로, 그래서 그 법 탓에 그 과택은, 나라카에로 떨어져내리고 있는다면, 비구여, 彼岸에 앉은 자여, 그것을 비구가 바라 행할 만한 일이겠는갑?

 

허, 허기는 그러함에도, ‘無事乞’이라는 자가, 그런 일에 마음을 쓰다보면, 바빠져버리고, 환속에의 길이 훤히 넓어져버리기도 쉽겠는갑.

 

咄, 창자도 또한, 닿을 데 없는, 고통스러운 긴 여로이던 것을. 급쎕지, 그놈의 창자가 얼마나 길고도 깊었으면, 이 한 乞鬼, 그 한 창자를, 오늘까지 채워넣었음에도 채우지를 못하여 이렇게도 게걸거리고 있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군입지.

 

늘 그냥 디립다 배만 고프고, 먹어도 먹은 탓에 배만 육시러게 고프고, 그래 어디 옴팡한 데서는 울기도 더러 울고 그랬입닌답.

 

그러다 생각해낸 것은, 우리 어머니라면 분명히, 그 까닭을 아실 것이라고 했었읍지.

 

자식 하나 이승길 내보낸다며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서, 저승을 하나씩 꼴깍꼴딱 새우며, 그 자식의 별로 크지도 못한 채신 속에다, 이승가면 많이, 많이많이 먹으라고, 창자를, 한 발도 말고, 두 발도 말고, 그것도 열두 발 씩이나 사려넣고 꿰매준 듯한뎁습지, 아으 어만님, 어만님은 걱정이 너무 많으셨에욥, 염려가 너무 많으셨에욥.

 

허, 헌뎁습지, 그뿐만은 아니던 것을, 그 어미의 자식은 알게 되기에 이르렸었는뎁지, 그, 글쎕지, 그 저승 동지밤만큼이나 길어 열두 발이던 그 창자 끝에는, 아뿔사, 이런 수가, 글쎕습지, 구, 구멍이 하나 뻥 하나, 어쩌면 둘, 구멍이 하나 뻥 나 있던 것을.

 

어만님은, 아으, 그때 당해, 하필 골무를 잊으셨납, 실 한 바람이 모자라셨납, 그것도 아니면, 사랑방 아반님이 올라와 호롱불을 불어끄셨납.

 

어만님은 글쎄 어찌히실려고, 그 한 끝을 막아 맺음키를 보류해두셨읍납? 哀哉, 哀哉.

 

허, 헌뎁습지, 이것 봅습지, 헌데 그것은입습지, 그냥 구멍만 열린 것은 아닌 것으로갖다가시나 알게 되게도 되었었는뎁습지, 이것 보셉습지, 꿰맴을 못 받아, 그 입이 먹으면 먹는 대로 바로 새버려, 채우지를 못하게 한다는 거기, 거기 헌데, 하으, 이걸 뭣이라꾸, 글쎕지, 뭣이래야꼬, 무엇이 입을 맞촤대어, 그 위쪽 창자에 고인것의, 한방울 반 찌꺼기도 남김이 없이, 쪽쪽 빨아들이고 있는, 어떤 입이 있는 걸 보았드랬는뎁습지, 흐흣크클, 카, 칸지러, 칸지러 못살겠시읍.

 

허, 허, 어만님, 어만님이 설마, 그, 그럴 수가, 어만님이 그라실 수가? 어만님은 저승 암캐---그 뒷두리는 황천에 잠과놓고, 제 자식의 창자를 빨대로 이승을 빨아, 자기의 자궁에 기름을 쌓는 자식놈의 암컷.

 

자식께 배고픔을 뱃속에 배부르게 처넣어놓고, 그 몸부림을 통해, 저만 덕지덕지 기름을 얹는 암컷.

 

그 자식은 그렇게 하여, 그 어미년의, 자급자족의 종교를 위해, 끝없이 순교만을 감행해야 하는 운명인 것을.

 

새끼를 낳는 대로 그 애미는, 그 새끼의 똥창자 끝에 구멍을 뚫어 제 목구멍을 딱 잇워 꿰매고,(에미와 자식이 한몸임.) 그리고는, 그 새끼에게 젖먹인다고 제가 제 젖을 빨다가, 그 새끼가 자라는 대로, 그 새끼으 根 끝에서 精水를 빨아내, 그 새끼의 정수로 새로 새끼를 배는뎁지, 道流들, 그래서 과연 이 자식은, 한번이라도, 그 애미의 下門을 벗어나오기는 벗어나온 적이 있었는갑?--- 道流들.

 

이것은, 有情들이, 有情들 자신들에 대해 물어보아야 되는, 그 중 심각한 의문 중의 하나라는 것이, 촌승의 믿음인뎁지, 그렇다는즉슨 도류들은, 부디 이것을 기억해두십습지

 

만약 그리하여, 니브리티를 성취취 못한 有情은 어떤 것이라도, 한번도, 이 짐승의 뱃속[畜生道]을 벗어나본 일이 없다고 한다면, 有情들은, 보다 더 눈에 힘을 주어, 자기네들이 ‘밖’이라고 이해하는, 그 ‘무엇의 안’인 것을 면밀히 관찰해보아야겠습지.

 

그리하여 우리가 만약, 여기를 출발점으로 하여, 얘기를 몇 마디만 더 진전시키기로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유정들이 ‘밖’이라고 이르는 그 ‘밖’이란 결국, 그 유정들이 입게 된, 그 ‘몸’ 말고,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습지.

 

그리하여 촌승은, 기회를 얻게 되면, 그런 얘기를 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말겠습지만, 우리들이 ‘무의식’이라고 이르는 것은, 우리들의 ‘밖’에 있다고 알게 됩습지.

 

그러니 우리들 입은 ‘몸’이, 우리들의 ‘무의식’ 자체라는 결론인뎁지, 왜냐하면 ‘의미’란, ‘의식’화를 치른 것이기 때문에, ‘의미’는 ‘무의식’일 수가 없다면, 당연한 귀결은, 그 ‘의미(signified)'를 담은 用器, 또는 ’기호(signifier)'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고 되겠습지.

 

그 ‘용기’ 또는 ‘기호’의 역할이, 우리들이 입은 ‘몸’이며, 우리들이 ‘밖’이라고 부르는, 외계, 저 우주입습지.

 

각설. ---우리들의 어머니, 프라브리티의 암컷. 드룩년, 無底의 六(肉)慾坑. 그러자니 그 암컷의 자식은, 지옥을, 열두 발 기럭지의 거위(蛔蟲) 모양, 뱃속 가득히 사려넣고, 그 탓에, 먹어도 먹으면 먹어도 배는 더 고프고, 그 탓에, 닿을 데도 없는 길을 멈추지도 못했습지.

 

글쎕지, 창자야말로, 프라브리티이던 것이더라 말입습지. 프라크리티 우리 어머니는, 헷헵, 글쎕세욥, 입이 요니였으며, 요니는 똥꾸녁, 그리고 똥꾸녁은 입이었더라고 헙습넨답.

 

추악하도록 아름다운 암컷.

 

그래서 아무것.

 

하나도, 우리 어머니께 담긴 것치고, 생성치 않은 것은 없는데읍습지욥, 그런고로, 아무것 하나도, 어머니께 변절하여 떠나려 해도, 저 찼던 불알은 그만두더라도, 쓸모없는 발톱 하나라도 제 것이라고 갖고는, 떠나지를 못합습지욥.

 

은총이며 저주 우리 어머니는.

 

아픔쟁이, 성욕으로, 殺慾으로, 늘 배가 뒤틀려, 그 스스로 지옥인 암컷. 咄, 咄, 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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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읽기가 거북했던 박상륭의 칠조어른이 오늘 보니 

흰두철학의  프라브리티의 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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