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와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을 구별짓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붓다는 신(神)이라든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신도, 신의 화신(化身)도,
신화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는 외적으로
인간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은 존재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붓다는
유일무이한 존재,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불리운다.
붓다는 말한다.
"비구들아,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물 위로 올라와서,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듯이, 여래 또한
이 세상에서 태어나 자라지만 이 세상을 뛰어넘어 거기에 물들지 않고 주인으로 살아간다."
(상응부 138)
신이건 인간이건 어떤 스승의 도움도 없이, 붓다는 자신의 지칠줄 모르는 정열로 최상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순수함의 절정에 도달했고, 인간 중에 최상의 인간이 되었다. 그는
자비와 지혜의 화신이었으며, 그것들은 그의 가르침에서 두 가지 지도 원리가 되었다.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붓다는 인간의 지고성(至高性)을 깨달았고, 존재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단순한 환상임을 알았다. 붓다는 결코 자신이 신의 계시에 의해서
영혼들을 구제하는 구세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내심과 깨달음을 통해 그느 인간속에 잠재
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고, 사람들은 그 가능성을 계발하고 펼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깨달음과 해탈이 전적으로 이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증명했다. 교훈과 모범을 보이며 철저한 생활을 했던 구도자 붓다는 제자들에게 자립심을 길러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자신이 너희들의 귀의처이다. 어느 누가 너희들의 귀의처가 되겠는가?(법구경 160)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신과 같은)외부의 매개자 없이 해탈을 얻을 수 있으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이 해탈은 각자가 스스로 행한 행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친 사람도 바로
붓다였다.
해탈을 구걸한다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줄수 있는 존재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우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는 있겠지만, 최상의 자유란 단지 진리를 스스로 깨닫고 알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문제들을 숙고하여 자유롭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각 개인은 적절한 노력을 통해서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굴레를 부수고 기도나 신에
의지 하지 않고 인내심, 스스로의 노력, 통찰력에 의해 존재라는 족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붓다는 자신들의 문제를 영원한 존재, 구세주, 신이나 범천에게 떠맡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판단력과 탐구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내적인 힘과 자질을 개발하는 진실한 일에 몰두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말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해탈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법 즉 진리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중부 38)
불교의 승려들은 희생제를 주관하는 사제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찬식을 거행하지도 않고 죄를 면해
준다고 선언하지도 않는 다. 이상적인 불교의 승려는 인간과 초자연적인 힘들을 매개하는 중개자가
아니며 중개자가 될 수도 없다. 불교는 '각 개인은 각자의 해탈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사제의 호의는 필요없다.
"너희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여래는 단지 길을 가르쳐 줄 뿐이다."(법구경 276)
그 길은 모든 시대의 깨달은 분들이 지나갔고 가르쳐 주었던 것과 같은 옛길이다. 그것은 바로
깨달음과 가장 평온한 곳으로 인도해 주는 팔정도(고귀하고 성스러운 여덟가지 길)이다.
붓다의 또다른 특징은 그는 결코 자신만을 위해 최상의 지혜를 간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붓다에게
그와 같은 욕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 즉 사성제(四聖諦)를 발견하고 깨달은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선택된 단 한 사람만의 특전도 아니며 또한 인류 역사에서 유익한,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사건도 아니다. 깨달음이란 완전한 청정과 진실한 지혜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팔정도를 계발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길을 계발해서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들에 대해 붓다는 번뇌로
부터의 해방과 궁극적인 해탈에 관한 한 자신과 동등하다고 다음과 같이 단호히 선언했다.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사람들은
그들도 나와 같은 승리자이다. (중부 26)
그러나 붓다는 또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과 성인의 경지를 완성한 아라한의 차이점도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밝혔다.
"비구들아, 여래는 아라한이면서 완전히 깨달은 사람이다. 예전에 알려진 적이 없는 길을 알리고,
길을 아는 사람이며 길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며 길에 익숙한 사람이 바로 여래이다. 그리고
제자들이란 여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자들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아라한이면서 완전히 깨달은 사람인 여래와 통찰력에 의해 (번뇌로부터)자유로워진
제자를 구별하는 특성이다."(아래 설명 참조)
[아라한은 '성취한 사람', '훌륭한 사람' 이라는 의미로, 붓다와 성취한 제자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
되는 호칭 가운데 하나이다. 경전에 의하면 붓다에 대해 처음으로 이 말을 쓴 사람은 바로 붓다 자신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붓다가 다섯 수행자에게 첫 설법을 하기 위하여 가야에서 바라나시로 여행할 때
였다. 바라나시로 가는 도중에 가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붓다는 고행자 우파카(Upaka)를
만났다. 붓다의 평온한 모습에 감동을 받은 그는 "당신의 스승은 누구 입니까? 누구의 가르침을
따릅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붓다는 게송으로 대답했다.
진실로 나는 이 세상의 아라한이라네
내가 바로 견줄바 없는 스승이라네
붓다는 다섯 수행자들에게 설법할 때 두 번째로 아라한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 나는 완전히 깨달은
아란한, 여래이다." 이말은 단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파카(Upaka)에게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아라한이 된 사람은 붓다였다.]
제자들에게 법을 설할 때 붓다는 그들 사이에 어떤 구별도 두지 않았다. 특별히 편애하는 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 아라한이 된 사람들,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을
얽매어 존재를 재생시킬 족쇄를 벗어 버린 사람들은 한결같이 (번뇌를 제거한) 청정에 통달해 있었다.
그렇지만 지혜와 수행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뛰어났던 몇몇 유명한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신적인
능력 때문에 독툭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붓다로부터 특별한 총애를 얻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발사 출신이었던 우팔리(Upali)는 바라문(사제) 게급과 크샤트리아(왕족.무사계급) 계급에
속했던 많은 아라한들을 제치고 계율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었다.
붓다가 입적하기 전에 어떤 특별한 제자에게 자신의 교설을 위임했다는 흔적도 없다. 그의 두 상수 제자
사리풋타(Sariputta)와 마하목갈라나(Mahamoggallana)에게조차 위임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계승자로 임명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붓다가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은 결코
승가를 통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명확히 밝힌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서 둘러 서 있는 제자들에게 붓다는 말했다.
"내가 죽은 후에 내가 너희들을 위해 설하고 규정해 놓은 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라."
(장부 16. Parinibbana-sutta)
붓다가 생존해 있었을 때조차도 비구들을 통제하고 지도한 것은 바로 법과 계율이었다. 그는 군주가
아니었다. 붓다의 옛길인 팔정도는 자유인이 되는 가르침이었다.
붓다는 인도에 왕권이 확립되고 전제 정치가 성행하던 시대에 나타났다. 그러나 어떤면에서 그의
가르침은 그와 같은 전제 정부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또한 그는 정치아 정부에 대해 간섭
하지도 않았다. 그는 참견할 필요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의 민주적인 사고와 견해를 표명하는 일을 꺼리지는 않았다. 붓다의 가르침은 결정적으로 민주주의적 사상과 제도에 공헌했다. 붓다는 현명한 판단으로 당시에 존재하던 전제 왕국에
대해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민주제도를 갖춘 비구들의 공동체인 승가를 건립했다.
재틀란드(1974년까지 영국 셰틀랜드 주의 공식 명칭)의 후작으로서 인도의 총독이었던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협동적인 활동으로 입증된, 자치를 지향하는 경향은 사제(바라문)들의 권위를
거부한 불교도들로부터,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카스트에 대한 거부가 보여 주듯이 평등을 주장
하는 불교의 교리에 의해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자치제도의 초창기
실례들이 된 사건들이 어떻게 발생했느냐 하는 설명을 찾아보기 위해서 우리가 뒤여 보아야 할 곳도
바로 불경(佛經)들이다. 2,000여년 전 인도의 불교 승가에서 현대 서구 의회제도의 기초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승가의 권위는 특별한 공직자(승려)가
임명 함으로써 보존 되었다(이것은 우리들 하원에서 보면 대변인의 모태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정족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 다른 공직자(승려)가 임명 되었다(이것은 서구 의회제도에서 원내
총무의 원형이다). 안건을 제시하는 승려는 토론에 상정될 의안을 발의하는 형식으로 안건을 내
놓았다.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한 번만 행해졌지만 세 번씩이나 행해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의안이 법으로 확정되기 전에 세 번이나 낭독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의회제도가
실현 되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만일 토론에서 한 의견에 대해 다른 의견이 나온다면 안건은
다수결로 결정 되었다. 투표는 무기명 투표로 이루어졌다." (G.T. Garratt가 편집한 Legend of India(Oxford, 1937))
불법을 가르치는 붓다의 방법 또한 특이하다. 붓다는 '잘못된 교의가 가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밀스러움이다.'라고 하면서 비밀스러운 교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자인 아난다(Ananda)에게 붓다는 말했다.
"아난다야, 나는 공개적인 교의와 비밀스러운 교의 사이에 어떤 구별도 두지 않고 법을 가르쳐 왔다.
아난다야, 진리의 견지에서 여래에게는, 필수적인 몇 가지 지식들을 가르쳐 주지 않고 감추어 두는
스승의 비밀과 같은 것은 없다." (장부 10)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은 개방되어 있고 동등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고, 결코
제자들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맹목적이고 순종적인 믿음을 이끌어 내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신중한 검토와 지적인 탐구를 역설했다. '자유로운 사고의 첫번째 장'이라고 불려 온 설법 속에서
질문하는 칼라마(Kalama)인들에게 붓다는 비판적인 탐구를 하라고 분명한 어조로 촉구했다. [칼라마
숫타(Kalama-sutta)]의 내용은 경전공부에 올려져 있는 칼라마경 참조)
이와 같이 진실한 탐구에 대한 철저하고도 엄격한 입장에 따라 불교의 한 논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현명한 사람이 금의 순도를 측정하기 위해 그것을 태우고 잘라 보고 문질러 보듯이, 너희들도 단순히
나에 대한 존경 때문이 아니라 내 말을 면밀히 검토해 보고 난 뒤에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Jnanasara-samuccaya 31)
불교는 강제나 강압과는 거리가 멀며 추종자들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면밀히 검토해 보라는 불교를 대하게 되면 첫눈에 반길 것이다.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눈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어느때 붓다가 날란다에 있는 망고나무 숲에 머물고 있을 때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
육사 외도중의 한명. 묻고 답하기에 올려져 있는 육사외도 참조) 의 열렬한 신자인 우팔리(Upali)가
논쟁으로 붓다를 패배시키겠다며 그에게 왔다. 논쟁의 주제는. 견해는 서로 달랐지만 붓다와 마하비라 두 사람이 다 주장하고 있던 카르마 이론(업론(業論))이었다. 매우 우호적인 토론 끝에 붓다의 논의에
설득당한 우팔리는 붓다의 견해에 동의했다. 그리고 재가 신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붓다는 그에게
주의를 주면서 말했다.
"우팔리야, 확실하고 철저하게 검토해 보아라. 그대와 같이 잘 알려진 사람은 철저히 생각해 보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러나 우팔리는 이렇게 주의를 주는 붓다에 대해 더욱 감격하고 기뻐했다. 그래서 그는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했다. (wndqn 56, Upali-sutta).
이 일화는 붓다가 그들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면 신자들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았따는 것을
명확히 보여 준다. 이것은 포교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붓다는 다른 사람의 사상의 자유를 결코 방해하지 않았다. 사상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의 천부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그의 외모, 성격, 정신적인 성향과 어울리는 생활 방식을 다른 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떤 형태의 강요도 나쁜 일이다. 관심도 없는 믿음을 받아
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장 불쾌한 강요이다. 이와 같은 강제적인 주입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곳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붓다의 유일한 관심사는 인간이든 초인간이든 아니면 인간보다 하위의 존재이든 간에,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은 어떤 외부적인 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나 경외심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었다. 사물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믿음이나 두려움은 어떤 역활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교도들이 생각이다. 법에 대한 진실은 통찰력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지 맹목적인 믿음이나 어떤
알려진 것 또는 미지의 것에 대한 경외심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역사는 무지에 빠진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두려움 때문에 전능한 외적인 존재가 있다는 관념이
생겨 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단 이 관념이 생기게 되면, 인간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 낸
산물에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붓다는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 대한 단순한 믿음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존재의 훌륭한 상태를 향해서 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라한과라는 최상의 마지막 해탈을 얻지는 못한다). 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길을 열심히 달려 가는 사람들, 그들은 깨달음과 아라한과를 향해 가고 있다."(중부 22)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볼 때 붓다는 제자들이 무분별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떤 것을 인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붓다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경외심은 진리를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그것을 버리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무익한 의례나 의식을 신봉하는
일을 비난했다. 왜냐하면 단식이나 강에서 목욕하기, 동물의 희생등과 같이 다순히 외적인 것들을
버리는 행위는 인간을 정화 시키지 못하며 신성하고 고귀하게 만들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붓다와 순다리카 바라밧자(Sundarika Bharadvaja)라는 바라문 사이에 있었던 대화에서
그러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때 붓다는 제자들에게 해탈 후에 수행자가 어떻게 자신을
닦아야 하는가를 설하면서, 마음이 번뇌에서 벗어난 사람, 청정한 삶이 완성된 사람,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은 내적으로 목욕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때 붓다 곁에 앉아 있던 바랏바자가
이 말을 듣고 물었다.
"존자 고타마는 바후카 강에 목욕하러 가십니까?"
"바라문아, 바후카 강에는 어떤 이익이 있으냐?"
"존자 고타마여, 참으로 많은 현인들이 그 강을 믿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악행을 바후카
강에서 씻어 냅니다."
그러자 붓다는 강에서 목욕한다고 해서 악행의 먼지에 쌓인 사람들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시킨 뒤 가르침을 설했다.
"바라문아, 바로 여기 (붓다의 법과 계율)에서 목욕하라, 모든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라. 그대가 만약
거짓말이나 살생을 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며, 믿음을 가지고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 강에 가느냐? 그대의 집에 있는 우물 또한 그 강이니라."(중부 17)
붓다는 미신과 잔인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설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학대와 약탈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중생들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어떤 형태의 행위도 할 수 없도록 했다.
그렇다면 불교란 무엇인가 ?
어떤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종교라고 부르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철학으로 또는 철학과
종교가 합쳐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을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단지 윤리적인 규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불교는 마음의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 주는 도덕적, 정신적, 지적인 수행 방법이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법과 계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이. "신의 힘을 믿고 신의 힘을 숭배하고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소망을 나타내기
위한 행위를 의미하며, 그러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는 복종, 존경, 숭배를 받을 자격을 갖춘 고도의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존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The short oxford english
dictionary. 1956)이라면, 불교는 엄격한 의미에서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명백히 그러한 의미에서의
종교는 아닌 것이다.
불교 사상에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선하고 악한 행위에 대하여 상을 주고 벌을 내리는 어떤 형태의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나 확신은 없다. 불교도는 붓다에게 귀의하지만 그러나 붓다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희망 때문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보장은 없다. 붓다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각자 해탈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스승일 뿐이다.
예를 들면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는 길의 방향을 알려 주지만 이정표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는
일은 여행자가 할 일이다. 이정표가 여행자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의사는 병을 진단하고 처방전을 써준다. 그러나 그 처방전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것은 환자가 할
일이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붓다의 태도는 이해심 있고 자비로운 스승이나 의사의 태도와
같다.
최상의 예배는 진리에 대한 넓은 이해와 통찰을 가지고 무지를 없애고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하는 예배이다. 진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진실한 구원자이다.
그러나 불교도들은 그들에게 빌지 않는다. 불교도들은 진리를 보여 주는 사람들이 단지 진정한
행복과 해탈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할 따름이다. 행복이란 자신이 얻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더 좋게도 더 나쁘게도 만들 수 없다.
"깨끗함과 더러움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도 더럽게도 할 수 없다.
(법구경 165)
80세의 나이로 쿠시나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임종을 맞이하면서 붓다는 (천상의 세계에서) 자신에게
바치는 꽃을 보고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야, 바르게 생활하고 법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최상의 예의로 여래를 바르게
공경하고 반드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야, 너도 생활을 바르게 하고 법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이와 같이 너 자신을 닦아야 한다." (장부 16)
법에 따라 살아가라는 붓다의 이러한 조언은,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잘 다스리는
것이지 단순히 붓다에게 꽃을 바치는 일이 아님을 보여 준다. 붓다가 강조한 것은 올바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교도들이 불상이나 어떤 신성한 대상 앞에 꽃을 올리거나 등불을 켜서 붓다의 고귀한
품성을 기리는 것은 누구에게 기원하는 행위나 숭배의 의례, 의식 또는 행위가 아니다. 곧 시들어 버릴
꽃들과 꺼져 버릴 등불은 그들에게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즉 무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불상의 사색과 명상의 대상이 되어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붓다의 자질을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이 단순한 공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성급하게
"이것은 우상 숭배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엉터리 결론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불교가 철학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철학의 정의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어원적으로 볼 때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철학이란 지혜의 탐구와 탐구된 지혜를 둘 다 모두
의미한다.' 인도 사상에서 철학은 '진리를 보는 것'이라는 의미의 다르샤나(darsana)에 해당된다.
간단히 말해서 철학의 목적은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
불교 역시 진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사색적인 추론이나 이론적인 구조, 지식의
단순한 획득이나 축적이 아니다. 붓다는 그의 가르침이 가지는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즉
지식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삶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모든 현상적인 존재는 괴롭다(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일과
이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철학이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깨끗함(淸淨.청정)은 지혜와 이해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상응부 214). 그렇다고 해서 붓다가 단순히 지식만을 내세운 것은 아니다. 붓다는 지식은 순수한
마음과 뛰어난 도덕성을 함께 지녀야 한다고 했다. 마음을 이해하고 닦음으로써 얻어진 지혜가
진정한 지혜이다. 이것은 도움을 가져다 주는 지혜이지 단순한 사색이나 논리 또는 허울 좋은
추리가 아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단순히 지혜를 사랑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헌신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비록 이러한 것들이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인류에게 영향을
준다 하더라도). 불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정, 깨달음 즉 궁극적인 해탈로 인도하는 가르침을
실제로 적용하도록 고무한다.
우리가 비록 붓다의 가르침을 '불교(Buddhism)'라 부르고 '주의(-ism)'나 '논(-ology)' 가운데
포함시키지만 어떤 명칭을 붙이든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종교, 철학, 불교 또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이러한 명칭들은 진리와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파팃사(Upatissa)와 콜리타(Kolita) (뒤에 붓다의 제자가 된 사리풋타와 마하목갈라나)가
해탈의 가르침을 찾아 편력하고 있을 때, 우라팃사는 탁박을 하고 있는 앗사지(Assaji)비구
(붓다의 최초 다섯 비구 가운데 한 분)를 보았다. 우파팃사는 그의 위엄 있는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질문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우파팃사는 앗사지 비구를
따라 그의 수행처로 갔다. 그리고 앗사지 비구에게 다가가서 인사한 뒤 앗사지 비구가 따르는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서 물었다. 앗사지 비구는 대답하기를 주저하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저는 그분의 법과 계율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미만은 간단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우파팃사의 대답이 흥미롭다.
"벗이여, 적게 말하든 많이 말하든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의미 입니다. 많은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앗사지 비구는 붓다의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는 연기의 이이를 간단한 게송으로 읊었다.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서 생기는 것
붓다는 그 원인을 설명 하셨네
그리고 또한 그 소멸까지도
이것이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이네
우파팃사는 곧 그 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음의 첫번째 단계를 성취했다. 그리고 '모여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반드시 흩어지게 되어 있다.'(Vinaya 40)는 것을 깨달았다.
올바른 이해로 향한 이야기나 토론이 아니라면 아무리 해 봐야 그것은 우리를 해탈로 인도해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가르침과 올바른 이해이다. 우리는 자연, 나무, 꽃, 들,
강에서조차 올바른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떨어지는 잎사귀, 흐르는 물, 산불,
꺼지는 등불 들을 보고서도 깨달음을 얻고 번뇌를 제거한 예들도 많다. 이것들이 인간의 심금을
울려서 사물들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해탈하도록 도와준다. 그렇다. 연꽃은 해를
기다리다 햇빛이 비치자 마자 꽃을 피워 모두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붓다의 가르침에는 인간과 사물의 궁극적인 기원을 밝히려는 시도는 없다. 그것은 '우주는 영원
한가, 그렇지 않은가?'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라는 문제를 탐구하지는 않는다.
붓다는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신적인 안정만 깨뜨려 놓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인류가 재앙과 질병으로부터 구제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붓다는 그런 일에 대답하기를 꺼렸고 종종 문제가 자체가 잘못 설정된 그런 것들에 대한
설명을 자제했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인생의 보편적인 진리인 괴로움이라는 문제를 설명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의 실체를 느끼게 하고 괴로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붓다는 자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설명하지 않는지 명확히 말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학작들은 붓다의 이러한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그의 깨달음을 의심해서 붓다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라고 불렀다. 학자들은 논쟁하고 골똘히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면 방랑자 사쿨루다위(Sakuludayi)도 붓다에게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했는 붓다의 대답은 명백했다.
"과거는 잠시 접어두자. 미래도 잠시 접어 두자.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 하겠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불교의 연기라는 교리이다. 그런데 이것이 불교의 중심 개념인 사성제의 토대를
형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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