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불자회

[종합]마하박가 종합정리(9월 ~1월 온라인불자회)

후박나무 (허정) 2024. 8. 5. 20:25

율장 마하박가 영상토론공부는 2022년 9월 ~2023년1월까지  온라인불자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장 크나큰 다발 (Mahäkkhandhaka

 

I 첫 번째 송출품

보리수이야기(Bodhikathä)

 

한때 세존께서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은 직후, 우루벨라지역의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칠일 동안 홀로 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지복을 누리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밤의 초야에 연기법의 순관과 역관에 대하여 정신활동을 기울였다.

 

 

[세존]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가지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세존]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가지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가지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 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3.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싯구를 읊으셨다.

 

[세존]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dhamma)가 나타나면,

사실(dhamma)들이 원인을 갖는다(sahetu)는 것을 분명히 알므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11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13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11Yato pajānāti sahetudhamman”ti.11

[의견 ] *첫번째 게송에서 전재성거사는  dhamma를 '진리'와  '사실'이라고 다르게 번역하였는데  이러한 번역이 혼란을 주고 있다. 첫번째 게송을 읽을때 dhamma를 옛스님들의 번역어인 '법'이라고 번역하여 읽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참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법dhamma이 나타날때, 거기서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그가 원인을 갖는 법dhamma을 분명히 보기때문에) 

 

[의견 ]* 첫번째 게송에서 원인(hetu)을 언급하는 것은 앗사지비구가 사리뿟따에게 설한 게송과 닮았다. 앗사지 비구는 아래처럼 부처님이 원인(hetu)을 설하는 분이라고 말한다. 

“모든 법은 원인에 의해 생겨납니다.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합니다. 또한 그 법의 소멸함도 설합니다. 이것이 대사문의 가르침입니다.”(마하왁가)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ye dhammā hetuppabhāva  tesaṃ hetuṃ tathāgato āha
tesaṃ ca yo nirodho  evaṃ vādī mahāsamaṇo

 

그리고 세존께서는 밤의 중야에 연기법의 순관과 역관에 대하여 정신활동을 기울였다.

[세존]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가지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세존]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가지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가지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 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싯구를 읊으셨다.

 

[세존]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조건지어진 것들은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Yato khayaṃ paccayānaṃ avedī”ti.

(참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진리가 나타날때, 거기서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그가 조건들이 소멸하는 것을 분명히 알기때문에) 

그리고 세존께서는 밤의 후야에 연기법의 순관과 역관에 대하여 정신활동을 기울였다.

 

[세존]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가지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 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세존]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가지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가지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싯구를 옳으셨다.

[세존]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태양이 어두운 허공을 비추듯, 그 거룩한 님은 악마의 군대를 부쉬버린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Vidhūpayaṃ tiṭṭhati mārasenaṃ, Sūriyova obhāsa­ya­manta­likkhan”ti.

(참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진리가 나타날때, 태양이 어두운 허공을 비추듯, 그는 마라의 군대를 부쉬버린다) 

 

 

 

논점

 

9월 1일 목요일 저녁 9시, 온라인불자모임에서 율장대품에 대한 MEET 영상토론이 있었습니다. 황태종거사님,도정스님,일봉스님,선우거사님,허정이 참여하여 9시에서 10시 40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보리수 아래에서 7일 동안만 앉아 있는 이유는 ?  12연기의 순관 역관을 다 관찰해야 하는 이유는 ?

 -- 위와 같은 마하박가의 내용을 보면 12연기가 후대 부파불교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물으면 12연기라고 답해야 한다.

*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에 들어 가듯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사성제에 들어간다.고 부처님은 "코끼리 발자국 경"에서 말씀 하신다.

 

2. 12연기가 아닌 사성제가 모든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가 아닌 "이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 12연기가 현실적인 수행이 되는 것은 현재 일어나는 '수'와 '갈애'의 사이에서 느낌이 갈애로 이어지는 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이 관계는 사성제의 '고성제(결과)'와 '고집성제(원인)'에 해당된다. '수'와 '갈애'의 관계는 첫번째 화살과 두번째 화살로 비유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수행은 갈애를 소멸시키는 것이며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다. 

* 12연기의 설명에서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괴로움의 다발들이 이와 같이 소멸한다"라고 설명되는 것을 보면 사성제를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맛지마니까야 성스러움을 구함경(M26)은 출가초기의 6년고행, 율장대품은 보리수하에서 깨닫는 것에서 부터 사리뿟따 출가이야기까지, 대반열반경(D16)은 80세가 된 부처님의 마지막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개를 합치면 훌륭한 '부처님 생애'를 만들 수 있다.  

* 이와같이들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지 않는 점이 놀랍습니다. 정직함의 표현인가

 

 

 

 

-대당서역기-

 

여래께서는 인도의 달력으로 폐사거월(吠舍佉月) 후반 8일에 등정각을 이루셨는데 이 날은 당나라의 3 8일에 해당한다. 상좌부측에서는 폐사거월 후반 15일에 등정각을 이루셨다고 하는데 이 날은 당나라의 3 15일에 해당한다. 이 때 여래의 나이 30세이셨는데 어떤 이는 35세라고 한다.

 

보리수의 북쪽에 부처님께서 거니셨던 곳이 있다. 여래께서 정각을 이루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7일 동안 고요히 선정에 들어 계셨다. 그리고 나서 일어나신 뒤 보리수의 북쪽에 도착하시어 7일 동안 거니셨는데, ·서쪽 방향으로 다니셨다. 그런데 걸으신 10여 걸음에는 기이한 꽃들이 발자국마다 18송이씩 피어났다. 후세 사람들이 여기에 벽돌을 쌓아서 기단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3척 남짓하다. 옛 선현들의 말에 의하면 이 성스러운 유적지의 기단은 사람들의 수명의 길고 짧은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먼저 정성스럽게 기원한 뒤에 그 크기를 헤아리면 수명이 길고 짧은 사람에 따라 그 수치에 증감이 있다.

 

거니셨던 기단의 북쪽 길 왼편에 반석이 있는데 그 위에 커다란 정사를 지었으며 그 속에는 불상이 있다. 불상은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옛날 여래께서 이곳에서 7일 동안 보리수를 바라보셨는데 잠시도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나무의 은혜를 보답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계신다.

 

보리수의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큰 정사가 있는데 그 속에 유석(鍮石)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있다. 매우 진귀한 보배로 장식되어 있으며 동쪽을 향하여 서 계신다. 앞에는 푸른 돌이 있는데 그 무늬가 매우 기이하고 이채롭다. 이것은 옛날 여래께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자 범왕(梵王) 7보당(寶堂)을 일으키고 제석이 7보좌(寶座)를 세웠는데 부처님께서 그 위에서 7일 동산 사유하신 곳이다. 이 때 기이한 광명으로 보리수를 비추셨다고 한다. 성현께 서 떠나가신 지 세월이 오래 지나자 보석은 변하여 돌이 되었다.

 

보리수의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다. 높이는 백여 척에 달하며 무우왕이 세운 것이다. 보살이 니련하(尼連河)에서 목욕하신 뒤에 보리수로 나아가시다가 잠시 무엇으로 자리를 삼아야 할지 홀로 생각에 잠기셨 다. 그러다가 깨끗한 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이 때 제석천이 풀 베는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어 풀을 짊어지고 길을 걸어갔다. 보살이 말하였다.

"짊어지고 있는 풀을 베풀어주지 않겠소?"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제석천은 보살의 명을 듣고 공손히 풀을 바치니, 보살은 풀을 받아 들고 앞으로 나아가셨다.

 

풀을 받아 든 곳에서 동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가 있다. 이곳은 보살께서 장차 불과(佛果)를 증득하려 하시자 푸른 공작과 사슴떼들이 나타나 상서로운 징조를 띠던 곳이다. 인도에서 길조를 상징할 때 이런 경사스러운 징조가 일어난다. 따라서 정거천(淨居天)27)은 세간의 풍속에 따라 무리지어 다니거나 날거나 맴돌며 신령스럽고 미묘하게 신성함을 나타내었다.

 

보리수 동쪽 큰 길의 좌우에는 각각 솔도파가 하나씩 있는데, 이것은 마왕이 보살을 훼방 놓던 곳이다. 보살이 장차 불과를 증득하려 하자 마왕은 보살을 찾아가서 전륜성왕의 자리를 이어받도록 청하며 달래고 권하였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크게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이번에는 마왕의 딸들이 스스로 나서서 보살을 유혹하였다. 그러나 보살의 신령스런 위엄으로 예쁜 얼굴이 노쇠한 모습으로 변하자 쇠약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서로 부축하고 떠나갔다.

 

 

2. 아자빨라니그로다이야기(Ajapalakatha)

 

1. 그리고 세존께서는 칠일이 경과한 뒤에 그 삼매에서 일어나 보리수 아래에서 나와서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다가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아자빨라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홀로 가부좌를 하고 칠일 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리며 앉아 있었다.

그때 어떤 훔훔거리는 오만한 바라문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 한쪽으로 물러 나 섰다. 한쪽에 서서 그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 "고따마여, 어떻게 해서 바라문이 됩니까? 바라문을 만드는 성품들은 무엇입니까?" 

“kittāvatā nu kho, bho gotama, brāhmaṇo hoti, katame ca pana brāhmaṇakaraṇā dhammā”ti?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알아채고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싯구를 옳으셨다.

 

[세존] "어떠한 사제이든지 악한 원리를 제거하고,

훔훔거리지 않고 젊음을 여의고 자제하고, 

지혜에 통달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한 자, 

세상에서의 융기가 결코 없는 자라면, 

이치에 맞게 하느님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리.“

“The brahmin who has shut out bad qualities,   “Yo brāhmaṇo bāhitapāpadhammo,

Who is humble, free from flaws, and self-controlled,    Nihuṁhuṅko nikkasāvo yatatto;

Who has reached final knowledge and has fulfilled the spiritual life—   Vedantagū vusitabrahmacariyo,

He may rightly proclaim himself a brahmin,    Dhammena so brahmavādaṁ vadeyya;

Having no conceit about anything in the world.”   Yassussadā natthi kuhiñci loke”ti.

"어떠한 바라문이든지 악함을 제거하고,

거만하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여 번뇌를 여의고

지혜에 통달하여,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세상에서 자만하지 않게 살아가는 자라면,

그는 스스로 정직하게 바라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

*전재성의 '젊음을 여의고'라는 번역은 맥락적으로 맞지 않다. 오점을 여의고(ni+kasāvo)라고 번역해야 한다. 

*ussada adj. full of; covered with; abundant; excessive; lit. sinking up; swelling [ud–√sad–a]

 

 

 아난다여, 한때 나는 우루웰라에서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처음 정등각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그러자 마라 빠삐만이 나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마라 빠삐만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제 세존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선서께서는 반열반에 드십시오. 세존이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실 시간입니다.’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마라 빠삐만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빠삐만이여, 나는 나의 비구 제자들이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많이 배우고[多聞], 법을 잘 호지(護持)하고,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에 따라 도를 닦고, 합당하게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자기 스승에게 속하는 것을 파악한 뒤 그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며, 다른 [삿된] 교설이 나타날 때 그것을 법으로 잘 제압하고, 제압한 뒤 [해탈을 성취하는]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대반열반경(D16 )-

 
 
 

3. 무찰린다이야기(Mucalindakathā)

 

1. 그리고 세존께서는 칠일을 경과한 뒤에 삼매에서 일어나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아래에서 나와서 무찰린다 나무 아래로 다가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무찰린다 나무 아래에서 홀로 가부좌를 하고 칠일 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리며 앉아 있었다.

2 그런데 그때 아닌 큰 구름이 일어나 칠일 간 비를 내리고 찬 바람이 부는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용왕 무찰린다가 자신의 궁전에서 나와서 '한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열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등에, 모기, 바람, 더위, 뱀과의 접촉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며 세존의 몸을 따리로 써 일곱 번 감아올리고 머리 위에 크나큰 후드를 펼치고 섰다.

3. 그렇게 용왕 무찰린다는 칠일이 경과한 뒤에 비가 그쳐 청명한 날씨가 된 것을 알고 세존의 몸에서 따리를 풀었다. 자신의 본색을 버리고 바라문 학인의 모습으로 나투어 세존께 귀의하며 세존의 앞에 섰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알아채고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싯구를 읊으셨다.

 

[세존] "가르침을 배운 자, 보는 자, 만족한 자에게 멀리 여임이 행복이고,

생명에 대한 자제, 세상에서 폭력의 여임이 행복이다.

세상에서 탐욕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뛰어넘음이 행복이다.

그런데 '내가 있다'는 교만의 제거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다."

“Seclusion is bliss for the contented“  Sukho viveko tuṭṭhassa,

Who sees the Teaching that they have learned.  sutadhammassa passato;

Kindness to the world is happiness,   Abyāpajjaṁ sukhaṁ loke,

For one who’s harmless to living beings.   pāṇabhūtesu saṁyamo.

Dispassion for the world is happiness,   Sukhā virāgatā loke,

For one who overcomes sensuality.   kāmānaṁ samatikkamo;

But removing the conceit ʻI am’,   Asmimānassa yo vinayo,

This, indeed, is the highest bliss.”   etaṁ ve paramaṁ sukhan”ti.

[세존] "가르침을 배운 자, 보는 자,

만족한 자에게 홀로지냄이 행복이다.

생명들에 대해서 자제하고,

세상에서 폭력의 여읨이 행복이다.

 

세상에서 탐욕을 여의고

욕망을 뛰어넘음이 행복이다.

그런데 '내가 있다'는 교만의 제거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다."

 

 

 

 

4.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의 이야기(Räjäyatanakathä)

 

1. 그리고 세존께서는 칠일을 경과한 뒤에 삼매에서 일어나 무찰린다 나무아래에서 나와서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에서 홀로 가부좌를 하고 칠일 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리며 앉아 있었다.

2 그때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가 욱깔리 지방에서 그 지역으로 여행을 오는 도중이었다. 마침 그 두 상인들 따뿟싸와 발리까의 친척이 되는 하늘사람 이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하늘사람] "벗들이여, 세존께서 비로소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고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 계십니다. 그대들은 가서 세존께 보리죽과 밀환(蜜丸)을 공양 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들에게 그것이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3. 그래서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는 보리죽과 밀환을 가지고 세존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 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한쪽으로 물러 서서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따뿟싸와 발리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오랜 세월 안녕과 행 복이 있도록, 보리죽과 밀환을 받아 주십시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여래들은 손으로 받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보리죽과 밀환을 받을 것인가?' 

 

그러자 네 하늘나라의 대왕이 세존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읽고 사방으로부터 네 돌발우를 바쳤다.

Then, reading the mind of the Buddha, the four great kings offered him four crystal bowls from the four directions, saying,

Atha kho cattāro mahārājāno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catuddisā cattāro selamaye patte bhagavato upanāmesuṁ

 

[하늘나라의 대왕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제 보리죽과 밀환을 받으십 시오."

세존께서는 새로운 돌발우에 보리죽과 밀환을 받았고, 받아서 드셨다.

5. 그러자 두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따뿟싸와 발리까]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최초로 두 번의 귀의를 제창한 재가의 남자신자였다.

“Sir, we go for refuge to the Buddha and the Teaching. Please accept us as lay followers who have gone for refuge for life.”

“ete may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a dhammañca, upāsake no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e saraṇaṁ gate”ti.

By means of the double refuge, they became the first lay followers in the world. Te ca loke paṭhamaṁ upāsakā ahesuṁ dvevācikā.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의 이야기가 끝났다.

 

 

토론정리

9월 8일  '부처님이 성도후 3곳의 나무를 옮겨다니는 부분'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참가자는 도정스님,일봉스님,유연스님,허정스님,박정규거사,문선우거사,박재현거사,조영조거사, 이계표거사님이었습니다. 우명숙보살님과 다른 분들이 참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meet토론방 입장이 30분간이나 지연되는 소동이 있어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9월1일 처럼 참여자가 함께 책을 읽고 소감, 논점 토론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논점

 

1.먼저  부처님은 왜 7곳을 옮기시면서 깨달음을 음미 하셔야 했는가? 

설법을 하시기 위한 사유를 하셨으며 설법준비기간이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한 화엄경 설법이 7처9회(7처를 옮겨다니며 9회에 걸쳐 설법함)로 펼쳐지는것과  마하박가에서 부처님이 깨닫고 7번 옮겨다닌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지금 보드가야 대탑주위로 7처에 대한 안내판은 미얀마스님들이 세워 놓은 것인데, 무찰린다 연못이 대탑에서 남쪽으로 2km떨어진 모짜림마을과 연못이 있다는 것이 확인됨으로서 그 안내판들의 위치가 사실과는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도 아마 네란자라 강건너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자료 링크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참고자료1]: 보드가야 대보리사의 7선처(七禪處), 대각을 이룬 붓다가 49일간 일주일씩 옮겨다니며 지낸곳: https://kusala.tistory.com/24

 

2. 부처님이 설명하는 최고의 행복은 ? '내가 없다'는 행복은 금강경에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없애라는 것과 상통하며 불교의 핵심이다는 정리가 있었습니다. 

 

3. 4개의 바루가 생긴 사연은 ? 4사람이 4개의 바루를 바쳤는데 그것을 부처님이 하나로 만드셨다. 한국에서 4개의 바루를 크기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 하나로 포개서 보관하는 전통이 여기서 생겼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부처님 당시에는 비구들이 목바루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기타:범천을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한가?  '생명에 대한 자제'가 이해하기 어렵다. 생명을 헤치는 것을 삼가하라는 의미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토론끝에 이번에 봉은사앞에서 폭행을 당한 박정규 거사님이 참가하셔서 폭행사건이후 상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자승총무원장때 적광스님이 백주대낮에 총무원 지하실로 끌려가 폭행을 당하였던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이러한 폭력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적광 스님 폭행'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공업을 이번 사건을 통해 뼈아프게 느낀다" 는 소감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우리가 폭력근절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하는 논의가 있었고 A4용지에 '승려들의 폭력이 부당하다는글, 피해자에 대한 응원 글'을 써서 그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을 서로 공유하는 운동을 벌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불자회> 분들이 먼저 시도해 보면 좋을듯합니다. 다음에는 토론방에 입장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미리 준비를 하겠습니다.  김민서님이 들어 오셨다면 님이 제기하신 '4성제와 12연기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한 토론이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끝내는 인사로 '사홍서원'을 노랬했는데 너무 길어서 다음에는 자애경 한토막을 3번 읊조리는 것으로 끝냈으면 합니다.

-끝-

 

 

 

5. 하느님의 권청 이야기(5. Brahmayācanakathā)

 

1. 그리고 세존께서는 칠일을 경과한 뒤에 삼매에서 일어나 라자야따나 나무아래 에서 나와서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거기서 세존께서는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서 지냈다.

After seven days, the Buddha came out from that stillness and went from the ape-flower tree to a goatherd’s banyan tree,

Atha kho bhagavā sattāhassa accayena tamhā samādhimhā vuṭṭhahitvā rājāyatanamūlā yena ajapālanigrodho tenupasaṅkami.

and he stayed there.Tatra sudaṁ bhagavā ajapālanigrodhamūle viharati.

 

 

2 그때 세존께서 홀로 떨어져 명상할 때에 마음에 이와 같은 사념이 일어났다.

Then, while reflecting in private, the Buddha thought this:

Atha kho bhagavato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evaṁ cetaso parivitakko udapādi

 

 

[세존]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I have discovered this profound truth, so hard to see, so hard to comprehend. It’s peaceful and sublime, subtle, beyond the intellect, and knowable only to the wise.“  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순관)

But human beings delight in holding on, find pleasure in holding on, rejoice in holding on, 

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

and because of that it’s hard for them to see causal relationships, dependent origination. 

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역관)

This too is very hard for them to see: the stilling of all intentional activities, the giving up of all ownership, the stopping of craving, fading away, ending, extinguishment. idampi kho ṭhānaṁ su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If I were to teach this truth, others would not understand, and that would be wearying and troublesome for me.” 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sā mamassa vihesā”ti.

 

3. 마침 세존께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다.And spontaneously, these verses never heard before occurred to the Buddha:Apissu bhagavantaṁ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불붙은 자들은 보지 못한다.

“What I’ve discovered with difficulty,“Kicchena me adhigataṁ,

There’s no point in making it known.halaṁ dāni pakāsituṁ;

For those overcome by sensual desire and ill will,Rāgadosaparetehi,

This truth is hard to understand.nāyaṁ dhammo susambudho.

Those who are excited by sensual desire,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

Obstructed by a mass of darkness,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

Won’t see what goes against the stream,Rāgarattā na dakkhanti,

What’s subtle and refined, profound and hard to see.”tamokhandhena āvuṭā”ti.

[세존]'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지금 설하지 말아야겠다.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깨닫기 어렵다.

“Kicchena me adhigataṁ,

halaṁ dāni pakāsituṁ;

Rāgadosaparetehi,

nāyaṁ dhammo susambudho.

 

흐름을 거슬러가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한다.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

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

Rāgarattā na dakkhanti,

tamokhandhena āvuṭā”ti.

 

 

4.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성찰하셔서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When the Buddha reflected like this, he inclined to inactivity, not to teaching.Itiha bhagavato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a.

 

그 때 하느님 싸함빠띠가 세존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시는 바를 알아차리고 이와 같이 생각했다. ·

Just then the supreme being Sahampati read the mind of the Buddha. He thought, Atha kho brahmuno sahampatissa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etadahosi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이와 같이 성찰하셔서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하신다면 참으로 세계는 멸망한다. 참으로 세계는 파멸한다.'

“The world is lost; it’s perished!—for the Buddha, perfected and fully awakened, inclines to inaction, not to teaching.”

“nassati vata bho loko, vinassati vata bho loko, yatra hi nāma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5. 그래서 하느님 싸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 는 듯한 그 사이에, 하느님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세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Then, just as a strong man might bend or stretch his arm, so Sahampati disappeared from the world of supreme beings and appeared in front of the Buddha.

Atha kho brahmā sahampati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brahmaloke antarahito bhagavato purato pāturahosi.

 

 

그리고 하느님 싸함빠띠는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끓은 채 세존께서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He put his upper robe over one shoulder, placed his right knee on the ground, raised his joined palms, and said,

Atha kho brahmā sahampati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aritvā dakkhiṇajāṇumaṇḍalaṁ pathaviyaṁ nihantvā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bhagavantaṁ etadavoca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Please teach, Venerable Sir, please teach!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

There are beings with little dust in their eyes who are ruined because of not hearing the Teaching. There will be those who understand.”

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이 읊었다.

This is what Sahampati said, and he added:

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na athāparaṁ etadavoca

 

 

[싸함빠띠] "때묻은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윈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Earlier, among the Magadhans,   “Pāturahosi magadhesu pubbe,

An impure teaching appeared, conceived by defiled people.   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

Open this door to the deathless!  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

Let them hear the Teaching, discovered by the Pure One.   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Just as one standing on a rocky mountain top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

Would see the people all around,    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

Just so, All-seeing Wise One,    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

Ascend the temple of the Truth.   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

Being rid of sorrow, look upon the people,   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

Sunk in grief, overcome by birth and old age.    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Stand up, Victorious Hero!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

Leader of travelers, wander the world without obligation.    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

Sir, proclaim the Teaching;    Desassu bhagavā dhammaṁ,

There will be those who understand.”    Aññātāro bhavissantī”ti.

 

 

 

8. 이와 같이 설하자, 세존께서는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이르셨다.

[세존] "하느님이여, 내가 홀로 떨어져 명상할 때에 마음에 이와 같은 사념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여, 나에게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습니다. Evaṁ vutte, bhagavā brahmānaṁ sahampatiṁ etadavoca“mayhampi kho, brahme, etadahosi‘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idampi kho ṭhānaṁ su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mamassa vihesā’ti.Apissu maṁ, brahm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흐름을 거슬러 가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불붙은 자들은 보지 못한다.' 하느님이여. 나는 이와 같이 성찰하여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Kicchena me adhigataṁ,halaṁ dāni pakāsituṁ;Rāgadosaparetehi,nāyaṁ dhammo susambudho.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Rāgarattā na dakkhanti,tamokhandhena āvuṭā’ti.Itiha me, brahm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9. 하느님 싸함빠띠는 두 번째에도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Dutiyampi kho brahmā sahampati bhagavantaṁ etadavoca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습 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na athāparaṁ etadavoca

 

[싸함빠띠]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원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Pāturahosi magadhesu pubbe,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Desassu bhagavā dhammaṁ,Aññātāro bhavissantī”ti.

 

[세존]이와 같이 설하자, 세존께서는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이르셨다. 

"하느님이여, 내가 홀로 떨어져 명상할 때에 마음에 이와 같은 사념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한다.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 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또한 이와 같은 도리, 즉 모든 형성의 멈춤, 모든 집착의 버림, 갈애의 부숨, 사라짐, 소멸, 열반도 보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여, 나에게 이와 같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놀라운 시들이 떠올랐습니다.

Dutiyampi kho bhagavā brahmānaṁ sahampatiṁ etadavoca“mayhampi kho, brahme, etadahosi‘adhigato kho myāyaṁ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Ālayarāmā kho panāyaṁ pajā ālayaratā ālayasammuditā.Ālayarāmāya kho pana pajāya ālayaratāya ālayasammuditāya duddasaṁ idaṁ ṭhānaṁ yadidaṁ idappaccayatāpaṭiccasamuppādo;idampi kho ṭhānaṁ sududdasaṁ yadidaṁ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ṁ.Ahañceva kho pana dhammaṁ deseyyaṁ, pare ca me na ājāneyyuṁ, so mamassa kilamatho,  mamassa vihesā’ti.Apissu maṁ, brahme, imā anacchariyā gāthāyo paṭibhaṁsu pubbe assutapubbā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묘한 진리를 어둠에 뒤덮이고 탐욕에 불붙은 자들은 보지 못한다.' 하느님이여. 나는 이와 같이 성찰하여 진리를 설하지 않고 그냥 있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Kicchena me adhigataṁ,halaṁ dāni pakāsituṁ; Rāgadosaparetehi,nāyaṁ dhammo susambudho. Paṭisotagāmiṁ nipuṇaṁ,gambhīraṁ duddasaṁ aṇuṁ;Rāgarattā na dakkhanti,tamokhandhena āvuṭā’ti. Itiha me, brahme, paṭisañcikkhato appossukkatāya cittaṁ namati, no dhammadesanāyā”ti.

 

하느님 싸함빠띠는 세 번째에도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Tatiyampi kho brahmā sahampati bhagavantaṁ etadavoca

 

[싸함빠띠]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뭇삶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다.“ desetu, bhante, bhagavā dhammaṁ, desetu sugato dhammaṁ.Santi sattā apparajakkhajātikā, assavanatā dhammassa parihāyanti, bhavissanti dhammassa aññātāro”ti.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ṁ vatvāna athāparaṁ etadavoca

 

 

[싸함빠띠]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인들에게 퍼져있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젖히소서! 그들이 듣게 하소서! 청정한 님께서 깨달은 진리를.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현자여,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진리로 이루어진 전당에 오르소서, 슬픔을 여원 님께서는 슬픔에 빠지고 생사에 고통받는 뭇삶을 보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캐러밴의 지도자여, 허물없는 님이여, 알아듣는 자가 반드시 있으리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여 주소서."

“Pāturahosi magadhesu pubbe,Dhammo asuddho samalehi cintito;Apāpuretaṁ amatassa dvāraṁ,Suṇantu dhammaṁ vimalenānubuddhaṁ.

Sele yathā pabbatamuddhaniṭṭhito,Yathāpi passe janataṁ samantato;Tathūpamaṁ dhammamayaṁ sumedha,Pāsādamāruyha samantacakkhu;Sokāvatiṇṇaṁ janatamapetasoko,Avekkhassu jātijarābhibhūtaṁ.

Uṭṭhehi vīra vijitasaṅgāma,Satthavāha aṇaṇa vicara loke;Desassu bhagavā dhammaṁ,Aññātāro bhavissantī”ti.

 

 

이와 같이 설하자, 세존께서는 하느님의 청원을 알고는 뭇삶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The Buddha understood the request of that supreme being. Then, with the eye of a Buddha, he surveyed the world out of compassion for sentient beings.

Atha kho bhagavā brahmuno ca ajjhesanaṁ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ṁ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si.

 

 

그 때 세존께서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다.

He saw beings with little dust in their eyes and with much dust in their eyes, with sharp faculties and with dull faculties, with good qualities and with bad qualities, easy to teach and difficult to teach. He even saw some who regarded the next world as dangerous and to be avoided, while others did not.

Addasā kho bhagavā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11. 예를 들어, 청련화(uppala) , 홍련화(paduma), 백련화(puṇḍarīka)의 연못에서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수중에 잠겨 자라고,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에까지 나와 있으며,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을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것이 있다.

It was just like blue, red, and white lotuses, sprouted and grown in a lotus pond: some remain submerged in the water without rising out of it, others reach the surface of the water, while others still rise out of the water without being touched by it.

Seyyathāpi nāma uppaliniyaṁ  paduminiyaṁ  puṇḍarīkiniyaṁ  appekaccāni uppalāni  padumāni  puṇḍarīkāni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ānuggatāni anto nimuggaposīni, appekaccāni uppalāni  padumāni  puṇḍarīkāni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samodakaṁ ṭhitāni, appekaccāni uppalāni  padumāni  puṇḍarīkāni  udake jātāni udake saṁvaḍḍhāni udakaṁ accuggamma ṭhitāni anupalittāni udakena; 

 

 

12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금밖에 오염되 지 않은 못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못삶, 둔한 감각능력 을 지닌 못삶, 아름다운 모습의 못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하느님 싸함빠띠에게 시로 대답하셨다.

evamevaṁ bhagavā buddhacakkhunā lokaṁ volokento addasa satte apparajakkhe mahārajakkhe tikkhindriye mudindriye svākāre dvākāre suviññāpaye duviññāpaye, appekacce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appekacce na paralokavajjabhayadassāvine viharante;

When he had seen this, the Buddha replied to Sahampati in verse:disvāna brahmānaṁ sahampatiṁ gāthāya paccabhās

 

[세존]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하느님이여,

곤란을 예견하고 나는 승묘한 진리를 설하지 않았네.'

“Open to them are the doors to the deathless!“   Apārutā tesaṁ amatassa dvārā,

May those who hear release their faith.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ṁ;

Seeing trouble, supreme being,    Vihiṁsasaññī  paguṇaṁ na bhāsiṁ,

I did not speak the sublime and subtle Truth.”   Dhammaṁ paṇītaṁ manujesu brahme”ti.

* let them renounce their faith.(아이비 호너) Let those with ears to hear commit to faith(수자또비구)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사함빠띠 범천에게 게송으로 대답했다.

"그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 자신의 믿음을 보여라.

범천이여, 이 미묘하고 숭고한 법을

피로해질 뿐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은 "나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그곳에서 사라졌다." 성스러운 구함 경 (M26) 각묵번역

 

13. 그 때야 비로소 하느님 싸함빠띠는 '세존께서는 진리를 설하는 것을 내게 동의하셨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존께 인사를 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Sahampati thought,Atha kho brahmā sahampati“The Buddha has consented to teach.” He bowed down, circumambulated the Buddha with his right side toward him, and disappeared right there.“katāvakāso khomhi bhagavatā dhammadesanāyā”ti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tatthevantaradhāyi.

 

 

하느님의 권청 이야기가 끝났다.

 

 

 

 

9월 15일 마하박가 MEET 영상토론에서는 '범천권청'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범천권청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고 그 사실성에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초로 나타나는 마하박가의 범천권청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불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알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오부 니까야와 율장에는 사함빠띠가 50번 등장하는데 부처님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어떤 사실을 알려주려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번 처럼, 김영조거사님, 일봉스님, 박정규거사순으로 이어서 읽고나서 읽은 소감, 논점을 토론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부산에서 윤미순보살님,경주에 사는 일봉스님, 박재현거사님,황태종거사님,박정규거사님, 김영조거사님, 한병식거사님,허정, 이렇게 8명이 참여하였습니다. 

 

논점

 

1. 부처님이 깨닫고나서 설법을 망설인 것은 당신이 아승지겁동안 바라밀을 닦아온 것에 비교하면 모순일까?

모순되지 않는다. 자신이 깨달은 깨달음의 경지와 중생이 가진 욕망의 경향성을 비교하면, 중생들이 원하는 것과 깨달음의 경지가 너무 차이가 나서  잠시 망설일 수 있다. 범천의 권청을 받고 부처님 스스로 숙고하고 난뒤, 그래도 이 세상에는 극소수이지만 깨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찾아 전도여행을 떠나신 것이다. 

 

2. 제석천이 아닌 사함빠띠 범천이 간청하였을 때 설법을 결심한 이유는?

제석천은 욕계의 천신이고 범천은 욕계를 벗어난 천신이다. 범천은  스스로가 조물주, 창조자라고 생각하는 최고의 신이고 그 당시에 사람들이 세상의 창조자라고 믿고 있는 신이니 범천의 권청으로 부처님은 범천보다 더 높은 존재이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위없는 깨달음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익이 있기에  범천이 등장하여 3번 권청을 한 것이다. 이러한 범천의 3번의 권청은 불자들에게 청법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3. 짧은 시간을 나타낼때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표현하는데 경에서는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 는 듯한 그 사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하게 된 이유는? 

추측하건데 천신들은 인간보다 몸집이 더 큰 존재이기에 존재의 크기로나, 시각으로 상대방을 파악하기로나 눈을 깜박이는 것보다는 팔을 접고 피는게 더 어울릴 것이다.  

 

4."마가다에 오염된 자들이 생각해낸 부정한 가르침"은 어떤 가르침인가?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난 그 시기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상이 나타나 있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그 모든 사상과 차별성을 가질 것이다. 육사외도가 뜻하는 여러사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64가지 견해(D1범망경)가 논파하는 효과가 있다.  

 

5.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와 '귀를 가진자, 믿음을 보여라'중에 어떤 번역이 타당한가? 

부처님은 설법하기도 전에 믿어라,혹은 믿음을 보여라 라고 말하는 분이 아니기에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라는 번역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틀이 지나서 토론의 내용을 정리하자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너무 간단히 적었습니다.토론 분위기는 적당히 긴장감이 있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6. 가르침의 바퀴를 굴림에 대한 이야기(Dhammacakkaappavattanakatha)

 

1. 한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내가 누구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kassa nu kho ahaṃ paṭhamaṃ dhammaṃ deseyyaṃ? Ko imaṃ dhammaṃ khippameva ājānissatī”ti? 

 

[세존] '그 알라라 깔라마는 현자로서 유능하고 슬기로운 자이며, 오랜 세월 눈에 티끌을 여원 자이다. 내가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그가 빨리 이 가르침을 이해할 것이다.'

2 수행승들이여, 그 때 보이지 않는 어떤 하늘사람이 세존께 말했다.

[하늘사람] "세존이시여, 알라라 깔라마는 죽은 지 이미 칠일이 되었습니다." 세존께도 역시 '알라라 깔라마는 죽은 지 이미 칠일이 되었다.'라는 앎이 일어났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알라라 깔라마는 그 성품이 위대했다. 만약 그가 가르침을 들었다면, 신속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3.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누구에게 내가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 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그 웃다까 라마뿟따는 현자로서 유능하고 슬기로운 자이며 오랜 세월 눈에 티끌을 여원 자이다. 내가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그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그때 보이지 않는 하늘사람이 세존께 말했다.

[하늘사람] "세존이시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 밤에 죽었습니다.(마하바스투에서는  3일전에 죽었다. mahāhānir-Ārāḍasya adya, try-ahaṁ kālagato Ārāḍo Kālāmo. )

." 세존께도 역시 '웃다까 라마뿟따는 지난 밤에 죽었다.'라는 앎이 일어났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웃다까 라마뿟따는 그 성품이 위대했다. 만약 그가 가르침을 들었다면, 신속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5.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누구에게 내가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내가 정진하며 스스로 노력할 때에 나를 도와 많은 도움을 준 다섯 명의 수행승들이 있다. 내가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그런데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세존께서는 청정해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다섯 명의 수행승들 이 바라나씨시의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 공원에서 지내는 것을 보았다.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지역에서 계실 만큼 계시다가 바라나씨 시로 출발했다.

 

7. 그런데 사명외도 우빠까가 가야 강과 보리수 사이에서 길을 가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말했다.

Addasā kho upako ājīvako bhagavantaṃ antarā ca gayaṃ antarā ca bodhiṃ addhā­na­maggap­paṭi­pannaṃ, disvāna bhagavantaṃ etadavoca

 

[우빠까]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맑고 피부색은 청정하다.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였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누구의 가르침을 즐겨 배우는가?“

“vippasannāni kho te, āvuso, indriyāni, parisuddho chavivaṇṇo pariyodāto. Kaṃsi tvaṃ, āvuso, uddissa pabbajito? Ko vā te satthā? Kassa vā tvaṃ dhammaṃ rocesī”ti?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사명외도 우빠까에게 시로써 말했다.

 

[세존]  "나는 일체를 극복한 자, 일체를 아는 자이다. 

일체의 사실에 오염되지 않았고, 

일체가 버려졌고 갈애가 부수어져 해탈되었다. 

스스로 곧바로 알았으니,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

“Sabbābhibhū sabba­vidū­hamasmi,
Sabbesu dhammesu anūpalitto;
Sabbañjaho taṇhākkhaye vimutto,
Sayaṃ abhiññāya kamuddiseyyaṃ.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고, 

천상과 인간의 세계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네. 

나는 참으로 세상에서 거룩한 님, 위없는 스승이고

유일한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자로서

청량한 적멸을 얻었다. 

Na me ācariyo atthi,
sadiso me na vijjati;
Sadevakasmiṃ lokasmiṃ,
natthi me paṭipuggalo.

Ahañhi arahā loke,
ahaṃ satthā anuttaro;
Ekomhi sammāsambuddho,
sītibhūtosmi nibbuto.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하여

까씨 국으로 가네

눈 먼 세계에서

불사(不死)의 북을 두드리리."

Dhammacakkaṃ pavattetuṃ,
Gacchāmi kāsinaṃ puraṃ;
Andhībhūtasmiṃ lokasmiṃ,
Āhañchaṃ amatadundubhin”ti.

 

9. [우빠까] "벗이여, 무한승리자가 될 만하다고 자인합니까?"

“Yathā kho tvaṃ, āvuso, paṭijānāsi, arahasi anantajino”ti.

 

[세존] "번뇌가 부수어지면 그들도 나와 같은 승리자가 되리. 악한 것을 정복하여, 우빠까여, 나는 승리자가 되었네.' 

“Mādisā ve jinā honti,

ye pattā āsavakkhayaṃ;

Jitā me pāpakā dhammā,

tasmāhamupaka jino”ti.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하자 사명외도 우빠까는 '벗이여,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라고 말하고 머리를 흔들며 샛길로 사라졌다.

 

 

 

 

범천의 요청을 3번 받고 드디어 오비구를 만나러 바라나시로 갑니다. 중간에 우빠까를 만나는데 그에게 사자후를 합니다. 그러나 우빠까는 고개를 흔들며 가버립니다. 이 사건은 부처님의 설법이 실패한 기록일수도 있겠습니만 그렇치 않습니다. 우빠까는 나중에 부처님 앞으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논점:

1."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며 가능성있는 중생을 찾는 부처님의 태도는 일생동안 이어졌을까?

부처님은 그런 태도를 보이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뭇 삶들은 평등하게 언제나 부처님을 찾을 수 있었다.  

2. "그때 보이지 않는 하늘사람이 세존께 말했다." 이렇게 천신이 먼저 말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말하려는 태도라고본다. 

3. "일체를 아는 자(一切知者, sabba­vidū)" 와 "전지전능자(GOD)"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전지자는 '항상 끊임없이' 앎과 봄이 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항상 끊임없이 앎과 봄이 현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숙고하신 뒤, 알고 싶어하는 것을 아는 일체지이다.

ex) 만약A라는 사람이 어제 도둑질을 했다면 부처님은 그일을 알고 계실까?

"마음을 기울이면 알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 동원림 녹자모 강당에서 포살을 할 때 부처님께서는 동참한 비구들의 마음을 굽어보신 뒤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한 사람을 발견하시고 밤이 되어 초경,이경,삼경이 될 때 까지 3번이나 시자였던 아난존자가  “비구들이 계목을 암송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청을 올렸으나 부처님은 계속 침묵하고 계셨다. 그렇게 침묵하는 이유를 부처님은 “회중이 청정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4.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고, 천상과 인간의 세계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네."라는 문장과 부처님의 탄생게(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오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吾當安之)와 비교해 보자.

비슷한 점이 있다. 

 

기타: 9명(출가자4명,재가자5명)의 참여자가 1시간 30분동안 진지하게 토론하였다. 그런데 막상 토론의 내용을 정리하려고 하면 생각나는게 거의 없다. 그러니 들어오셔서 참관하시길 권한다. 박정규거사님은 집으로 걸어가면서 토론에 참여하였다.토론이 끝나고 비폭력대화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였고 언제 방기연거사님으로부터 비폭력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다. 한국불교에 대한 염려중에 천박한 보살사상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라바르 언덕에 있는 아소까왕이 아지와까에게 기증한 동굴

 

[참고자료]

** Upaka: After this meeting Upaka went to the Vankahāra country and there, having fallen desperately in love with Cāpā, the daughter of a huntsman who looked after him, starved for seven days and in the end persuaded the huntsman to give her to him in marriage. For a living, Upaka hawked about the flesh brought by the huntsman. In due course Cāpā bore him a son, Subhadda. When the baby cried, Cāpā sang to him saying, "Upaka's son, ascetic's son, game-dealer's boy, don't cry," thus mocking her husband. In exasperation he told her of his friend Anantajina, but she did not stop teasing him. One day, in spite of her attempts to keep him, he left her and went to the Buddha at Sāvatthi. The Buddha, seeing him coming, gave orders that anyone asking for Anantajina should be brought to him. Having learnt from Upaka his story, the Buddha had him admitted to the Order. As a result of his meditation, Upaka became an anāgāmī and was reborn in the Avihā heaven https://www.palikanon.com/english/pali_names/u/upaka.htm

 

 

** Cāpā 

A trapper's daughter in Vankahāra who became the wife of the ājīvaka Upaka and bore him a son, Subhadda.

When Upaka, unable to bear his wife's taunts, renounced the world and joined the Order, she followed him to Sāvatthi, and there, having become a nun, attained arahantship. 

 

**佛告比丘諸佛常法毘婆尸菩薩當其生時從右脅出專念不亂從右脅出墮地行七步無人扶侍遍觀四方擧手而言

天上天下唯我爲尊 要度衆生生老病死 此是常法(대본경)

 

** 아지비카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마칼리 고살라가 속해 있던 종교.
한역불전(漢譯佛典)에서는 ‘사명외도(邪命外道)’라고 번역하였는데, 원래는 ‘생활법에 관한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자’라는 뜻이다. 나중에 자이나교에 흡수되었다. 고살라는, 생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영혼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득(得) ·실(失) ·고(苦) ·낙(樂) ·생(生) ·사(死) 등 12가지를 생각하였다. 영혼은 물질과 같이 취급되어 모든 원소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등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일체의 생물이 윤회(輪廻)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무인무연(無因無緣)이고, 그것들이 청정(淸淨)해지고 해탈(解脫)하는 것도 역시 무인무연이다. 그것들에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고 운명 ·상황 ·본성에 지배되어 무한히 긴 시간을 어리석은 자나 어진 자가 함께 유전하다가 고통의 종말에 이른다. 그 동안에는 수행에 의해 해탈할 수도 없다. 고살라는 이상과 같은 결정론을 주장하면서 브라만교의 권위를 부정하였다. (두산백과)

 

 

 

날라서 강을 건넜다는  마하바수투 이기

 

 

Bhagavān-āha:
운이 좋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 pathyā
 “No haṁso Narmadātīre nāvikaṁ paripṛcchati,
“거위는 뱃사공에게 Narmadā를 건너달라고 간청하지 않습니다.

   ⏑−⏑−¦⏑−−−¦¦−−⏑⏑¦⏑−⏑− pathyā
 Svakena bāhuvīryeṇa haṁso tarati Narmadāṁ.”
거위는 자신의 엄청난 에너지로 나르마다 강을 건넌다.”

   ⏑⏑⏑−−¦⏑−−−¦−⏑−−¦⏑−⏑−
 Iti vaditvāna Saṁbuddho haṁsarājevă prakrame,
이렇게 말하고 삼붓다는 거위왕처럼 건너갔습니다.

   −−−−¦−,−−−¦¦−⏑−−¦⏑−⏑− mavipulā
 Gaṁgāyā tīre asthāsi oghatīrṇo Mahāmuni.
바다를 건너 위대한 현자는 갠지스 강의 (다른) 강둑에 섰습니다.

 

 

 

 

6. 가르침의 바퀴를 굴림에 대한 이야기(Dhammacakkaappavattanakatha)73)

 

그래서 세존께서는 점차로 유행하면서, 바라나씨 시에 있는 이씨빠따나의 미가다야로 다섯 명의 수행승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 들은 멀리서 세존께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들은 서로 약조했다.

 

[다섯 수행승들] "벗이여, 수행자 고따마가 온다.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졌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 영접하지도 말고 발우와 옷을 받지도 말자. 그러나 그가 앉기를 원한다면, 자리를 깔아주자."

11. 그렇지만, 세존께서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서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스스로 약조를 지킬 수 없었다. 어떤 자는 나를 맞으러 나와 가사와 발우를 받아 들었다. 어떤 자는 자리를 펴주고, 어떤 자는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또한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벗이여라고 말을 걸었다.

 

12 수행승들이여, 그와 같이 말을 걸어오자 나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래의 호칭을 '벗이여'라고 부르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13.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처럼 말했다.

[다섯 수행승들] "벗이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 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대는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앓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그대는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앓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14.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윤택하게 살지 않으며 정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사치에 빠지지도 않았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 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15. 두 번째에도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다섯 수행승들] "벗이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 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대는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앓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그대는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앓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그들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윤택하게 살지 않으며 정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사치에 빠지지도 않았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 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에도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다섯 수행승들] "벗이여, 그대는 그 행동, 그 실천, 그 고행으로도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지 못했고, 그대는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앓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그대는 윤택하게 살며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상태를 뛰어넘고, 고귀한 님이 갖추어야 할 앓과 봄에 관한 지극한 탁월함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16.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수행승에게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지금처럼 예전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다섯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없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 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수행 승들도 세존께 듣기를 원하여 귀를 기울이고 궁극적인 앎에 마음을 일으켰다.

 

 

논점:

1."'벗이여'라고 부르지 말라."  제자가 부처님을 부르는 호칭, 부처님이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은 각각 무엇인가? 

부처님이 자신을 부를때는 여래(tathāgata), 제자가 부처님을 부를때는 바가완(bhagavat세존), 반떼(bhante),

부처님에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있다라고 열거할 때는 여래십호.

 

여래(如來, tathāgata) 또는  여시래(如是來)

응공(應供, arhat) 또는 아라한(阿羅漢) 살적(殺賊) · 

정등각(正等覺,samyak-saṃbuddha)또는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vidyā-carana-sajpanna,명행구족(明行具足)

선서(善逝, sugata) 

세간해(世間解, : loka-vid,  지세간(知世間)

무상사(無上士, anuttara,  아뇩다라(阿耨多羅) · 무상(無上)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sa-damya-sārathi,   가화장부조어사(可化丈夫調御師)

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syānāṃ, 천인교사(天人教師)

불세존(佛世尊,  buddha, bhagavat, 불타(佛陀, buddha) · 지자(知者, buddha) ·  세존(世尊)

 

 

‘itipi so bhagavā arahaṃ(응공) sammāsambuddho(정변지) vij­jācara­ṇa­sam­panno(명행족) sugato(선서) lokavidū(세간해) anuttaro(무상사) purisa­damma­sāra­thi(조어장부) satthā devamanussānaṃ(천인사) buddho(불) bhagavā(세존)’ti. 

니까야에서 부처님이 자기자자신을 호칭할 때는 여래라고 하는데 우리가 아는 십호에는 여래가 들어있지 않다. 왜냐하면 여래는 부처님이 자신을 부를때만 사용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예)부처님이 자신을 여래라고 부르는 경우

 

"아난다여, 그렇더라도 이들 어리석고 경솔한 외도 유행승들이 누구인데 여래가 설하는 업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을 알 수나 있겠는가?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래가 업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분석할 때 잘 들어라."업 분석의 긴 경(M136)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은 제자들을 동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바라면서 연민을 일으켜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알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들은 잘못하여 스승의 교법에서 엇나가버린다. 비구들이여, 그것에 대해 여래는 기뻐하지도 않고 기쁨을 느끼지도 않는다." 여섯 감각장소의 분석 경(M137)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중생이 발이 없건, 두 발이건, 네 발이건, 여러 발이건, 물질을 가졌건, 물질을 갖지 않았건, 인식이 있건, 인식이 없건,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건, 그 모든 중생들에 관한 한,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자가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여래 경(S45:139)

 
 

“빠삐만이여, 그대는 조용히 있어라. 오래되지 않아 여래는 반열반에 들 것이다."탑묘 경(S51:10)

 

“띰바루까여, 이런 양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간[中]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띰바루까 경(S12:18)

 

"여래가 이것을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범부이니 이렇게 어둠에 빠지고 눈이 멀어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꽃 경(S22:94)

 

"수행승들이여, 미래세의 수행승들은 이처럼 될 것이다여래가 설하는 모든 법문은 심오하고 뜻이 깊으며 출세간적이고 공성과 상응하지만 그것들을 설할 때 그들은 잘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슬기로운 마음을 내지 않고 받아 지녀서 통달하고자 그 가르침에 관해 사유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시인이 만들어 아름답게 낭송되는 이교도의 제자들이 설한 경을 설할 때는 그들은 잘 듣고 귀를 기울이고 슬기로운 마음을 내고 받아 지녀서 통달하고자 그 가르침에 관해 사유할 것이다."쐐기 경(S20:7)

" 아난다야,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집이 없이 도를 배우지 못하게 되었더라면, 이 바른 법은 천 년을 더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백 년을 잃었으니, 남은 것은 오백 년 뿐이다. 아난다야, 마땅히 알라. 여인은 5사(事)를 얻을 수 없으니, 비록 여인은 여래·무소착·등정각과 전륜왕·제석천·마군의 왕·대범천이 되려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마땅히 알라. 만일 남자가 여래·무소착·등정각과 전륜왕·제석천·마군의 왕·대범천이 되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중아함2-116  구담미경
 

2."불사가 성취되었다" 부처님도 80세에 죽었는데 불사가 성취되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불사(不死)란 영원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부처님 당시의 목표였다. 그러한 수행목표를 성취하였다라는 선언이 불사(不死)가 성취되었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불사(不死)란 그 당시에 수행자들 대다수가 성취하길 원하는 수행목표였기에 부처님은 불사(不死)가 성취되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같은 비슷한 문장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한 후에 부처님을 브라흐마나라고 호칭하는 것에서도 보인다.

 

“[세존]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브라흐마나(brāhmaṇa)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조건지어진 것들은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Yato khayaṃ paccayānaṃ avedī”ti.

 

3. "예전에 내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수행승들이여, 나는 윤택하게 살지 않으며 정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사치에 빠지지도 않았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다. 수행승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불사가 성취되었다. 내가 가르치리라. 내 가 가르침을 설할 것이다. 내가 가르친 대로 그대로 실천하면, 머지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로서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 목적인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 라고 전에는 내가 이렇게 말한적이 없다.

전에는 내가 못 깨달았는데 깨달았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없고, 그외 일상생활에서도 진실만을 말했다.  내가 이렇게 자신있게 나의 깨달음을 주장한적이 없는데 지금은 이렇게 깨달음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참고자료료]대당서역기--이 때 다섯 사람은 멀리서 여래께서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 함께 말하였다.

"일체의성(싯타르타)이 저기에서 오고 있다. 세월이 속절없이 빨리 지나갔는데도 성과(聖果)를 얻지 못해 마음속으로 물러나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침묵으로 대할 뿐 일어나서 정중하게 맞아들이지 말기로 하자."

여래께서 차츰 다가오시자 여래의 위신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다섯 사람은 서로 약속한 것도 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고 그 동안의 안부를 여쭈며 예의에 맞추어 모시고 따랐다. 여래께서는 점차로 그들을 이끄시며 미묘한 이치를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두 번의 안거가 끝날 때가 되자 그들은 모두 과증(果證)을 얻었다.

 

 

 

 

4. 부처님은 12연기를 깨달았는데 왜 오비구에게는 4성제 법문을 설하는가?

12연기는 깨달음의 내용이지만 오비구에게 그러한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고, 점차적인 수행의 지위를 얻게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핵심과 요점을 말해야한다. 그것이 사성제이고 팔정도이고 정견이고 정념이고 위빠사나이다.  12연기에는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방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오비구에게 사성제를 설한 것이다. 사성제는 괴로움에 대한 통찰(고성제)과 고가 일어나는 원인(고집성제)와  깨달음의 경지(고멸성제)와 고의 소멸로 이르게 하는 수행(고멸도성제)가 종합적으로 설명되고 있다.하여 부처님은 4성제가 모든 가르침을 포함한다고 코끼리 발자국의 비유경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 토론 풍경: 오늘은 제가 제주도로 오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meet영상토론 링크를 8시 50분정도에 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9시10분에 토론이 진행되었고 총 7분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토론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지난번에 하기로 했던 비폭력대화에 대한 강의를 조만간 하기로 했으며 전재성님의 번역에서 부처님이 반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전과 율장을 공부할 때 일본학자, 서양학자가 써놓은 논문을 읽고 경율을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영어나 일본어로 된 논문을 읽는 것이 번거롭고 어려울 뿐더러, 그 논문은 그 시대에 살던 학자 개인의 의견이며 지금 그들의 의견이 다른 학자나 수행자들에게 반박되어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을 읽고 나서 모르는 부분이나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때가서 그들의 의견을 참조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특정한 학자,스님의 의견을 따라서 경을 해석하는 것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잘못된 견해를 고착화 시킬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 초전법륜경 -

 

17.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섬기지 않는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탐착을 일삼는 것은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도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가르침이 아닌 것으로 무익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눈을 생기게 하고(cakkhukaraṇī) 앓을 생기게 하며(ñāṇakaraṇī) 궁극적인 고요(upasamāya), 곧바른 앎(abhiññāya), 올바른 깨달음(sambodhāya), 열반(nibbānāya)으로 이끄는 중도(majjhimā paṭipadā)를 깨달았다.

 

*이 양 극단을 떠나 여래는 중도를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았나니,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각묵)

ete kho, bhikkhave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18.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눈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앓,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를 깨달았다는데, 그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앓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얇,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19. [세존] 1)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 다.줄여서 말하자면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이 모두 괴로움이다.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ṃ,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ṃ na labhati tampi dukkhaṃ. 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2)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바로 쾌락과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에 환희하며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갈애이다. ,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ṃ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 ponobbhavika adj. leading to repeated existence; leading to rebirth [puna–bhava–*ika] leads to renewed existence(비구보디)

It’s the craving that leads to future lives, mixed up with relishing and greed, taking pleasure wherever it lands. That is, craving for sensual pleasures, craving to continue existence, and craving to end existence.수자또

 

 

3)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갈애를 남김 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포기하고 버려서 집착 없이 해탈하는 것이다.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4)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예전 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Idaṃ dukkhaṃ ariyasacc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초발심시변정각?)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 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는 상세히 알려져야 한다.'라 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ariññeyy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가 상세히 알려졌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 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Taṃ kho panidaṃ dukkhaṃ ariyasaccaṃ pariññātan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 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는 제거되어야 한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 이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가 제거되었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이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 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 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실현되었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 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3. [세존] 1)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 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닦여져야 한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나고 앓이 생겨나고 지혜가 생겨나고 명지가 생겨나고 광명이 생겨났다.

3)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가 닦여졌다.'라고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에 관하여 나에게 눈이 생겨났고, 앓이 생겨났고, 지혜가 생겨났고, 명지가 생겨났고, 광명이 생겨났다.

 

24.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나의 앓과 봄이 세 번 굴린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완전히 청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 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Yāvakīvañca me, bhikkhave, imesu catūsu ariyasaccesu evaṃ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 yathābhūtaṃ ñāṇadassanaṃ na suvisuddhaṃ ahosi, neva tāv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나의 앓과 봄이 '세 번 굴려서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완전히 청정해졌기 때문에,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 의 세계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게 원만히 깨달았다고 선언했다. 나에게 '나는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 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앓과 봄이 생겨났다."

 

 

* 토론풍경:

오늘은 14분정도 참여하셨습니다.토론방에 들어왔다가 금방나간 분도 계셨고 2시간동안 꾸준히 참여하시다가 마지막 11시까지 10분이 남아계셨습니다.  해인사 선원에 계시는 탄구스님이 처음으로 참여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종회의원 선거에 나가신 도정스님의 '출마의 변'을 듣고 격려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논점:

1. 중도란 무엇인가?

고락중도다. 팔정도다.

2. 3전 12행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하여 세 번 굴린 열두 가지 형태로 있는 그대로 완전히 아는 것, 부처님이 왜 정등각자인지 왜 완벽한 깨달음인지를 알 수 있다.  

3. 목적으로서의 중도와 방법으로서의 중도는 무엇인가?

중론에 의하면 중도를 깨달음과 동등하게 보는 관점이 있다.

"因緣所⽣法 我說卽是空 亦為是假名 亦是中道義 (인연소생법 아설즉시공 역위시가명 역시중도의)"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긴 것, 이것을 공이라 할 뿐이네. 이 또한 가명이며 중도의 뜻이라네."

...이러한 관점 때문에 중도를 깨달음,공,연기,열반등과 같이 보는 견해가 대승불교에 있어왔다. 그러나 율장 마하박가에서 중도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 도닦음,방법이다.이것이 '방법으로서의 중도'이다.

 

4.왜 부처님은 4성제를  3전 12행상이라는 방식으로 처음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무상정등정각”을 선언하고 아라한의 정형구인 “내 마음의 해탈은 흔들림이 없고, 이것이 내 마지막 삶이며… “를 설하셨을까요? 

 

부처님은 성도후 보리수하에서 12연기를 순관 역관하고 아래의 게송을 읊는다.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사실들이 원인을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므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이러한 표현이 “내 마음의 해탈은 흔들림이 없고, 이것이 내 마지막 삶이며… “와 다르지 않다. 

표현만 다른 것이지 4성제와 12연기는 같은 내용이고 다만 4성제가 12연기를 포함한다.  

아래 12연기의 그림에서 느낌과 갈애사이를  가르켜 "윤회를 벗어나는 길(사성제)"이라고 설명한다. 12연기와 4성제는 이러한 관계인 것이다. 아래는 고집성제를 설명하며 12연기의 순관을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이,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A3:61~70)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ㆍ물질이 소멸하고, 정신ㆍ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무엇이 무명이냐? 보다 무엇이 괴로움이냐? 라는 물음이 더 대답하기 쉽고 발견하기 쉽다.그래서 12연기를 설하지 않고 사성제를 설한것이라본다.  

 

기타: 대승불교를 배운 사람들이 초기불교를 배우며 혼란에 처해 있는 경우가 있다.

종헌(宗憲) 제2조에 "조계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를 받들어 체득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로 한다."로 되어 있어 초기불교가 조계종의 종지에 안맞는 다고 알고있지만 이 문장에서 "근본교리를 받들어 체득하고"가 가장 핵심문장이다. 그러므로 조계종은 근본교리를 배워야 하는데 그 근본교리가 초기불교에 잘 나와 있어서 조계종 승가대학의 교과목도 1학년 초기불교, 2학년 부파불교, 3학년 대승불교 4학년 선불교를 공부하도록 배정되어 있다. 조계종의 종지는 통불교의 종지이고 초기불교의 종지라고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이어지는 초전법륜경 -

 

25.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의 말씀에 환회하고 기뻐했다. 또한 그 가르침을 설할 때에 존자 꼰당냐에게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꼰당냐]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ṃ bhaññamāne āyasmato koṇḍaññassa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ṃ udapādi—“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Koṇḍañña has understood! Indeed, Koṇḍañña has understood!”

 

 

26. 세존께서 이와 같이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실 때에 

1)땅 위의 신들(Bhummā devā)은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에 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라고 소리쳤다.

 

2) 땅 위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네 위대한 왕들(cātumahārājikā devā)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타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라고 소리쳤다.

 

3)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tāvatiṃsā devā)도 ·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 라고 소리쳤다.

 

4)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축복 받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tusitā devā)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라고 소리쳤다.

 

5) 축복받는 신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nimmānaratī devā)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 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라고 소리쳤다.

 

6)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창조하고 기뻐하는 신들의 하늘나라의 신들(para­nimmita­vasavattī devā)도 세존께서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라고 소리쳤다.

 

다른 신들이 만든 존재를 지배하는 신들의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세계의 신들도 '세존께서 바라나씨시의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에서 어떠한 수행자나 성직자나 신이나 악마나 하느님이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멈출 수 없는, 위없는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리셨다.'라고 소리쳤다.

Pavattite ca pana bhagavatā dhammacakke, bhummā devā sad­da­manus­sā­vesuṃ—“etaṃ bhagavatā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n”ti. Bhummānaṃ devānaṃ saddaṃ sutvā cātumahārājikā devā sad­da­manus­sā­vesuṃ … pe … ­cātuma­hārāji­kānaṃ devānaṃ saddaṃ sutvā tāvatiṃsā devā … pe … yāmā devā … pe … tusitā devā … pe … nimmānaratī devā … pe … para­nimmita­vasavattī devā … pe … brahmakāyikā devā sad­da­manus­sā­vesuṃ—“etaṃ bhagavatā bārāṇasiyaṃ isipatane migadāye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ṃ appaṭivattiyaṃ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n”ti.

 

27. 이와 같이 그 찰나, 그 순간, 그 잠깐 사이에 하느님의 세계에 까지 소리가 미쳤다. 또한 이 일만 세계가 움직이더니 혼들리고 크게 진동했다. 무량하고 광대한 빛이 신들과 신들의 위력을 뛰어넘어 세상에 나타났다.

 

28. 이 때 세존께서는 감흥어린 말로 이와 같이 '꼰당냐는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 꼰당냐는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라고 읊으셨다. 그래서 존자 꼰당냐는 앙냐 꼰당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Atha kho bhagavā imaṃ udānaṃ udānesi—“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ti. Iti hidaṃ āyasmato koṇḍaññassa “aññāsikoṇḍañño” tveva nāmaṃ ahosi.

 

* 사전에서 앙냐(aññā)를 완전지라고 설명한다.  *aññā):f. [Sk. ājñā] 了知,完全智,開悟,已知. -citta 知解心,了知心. aññindriya 已知根. 앙냐(aññā)를 궁극적인 앎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문맥적으로 적절치 않다.사전을 보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문장의 전후 맥락을 보고 해석을 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면 부처님은 이들에게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어로는 "understood"로 번역하였다.

 

ājānāti:[ā-jānāti] 了知,很了解. = āññati. opt. ājāneyyuṃ; pp. aññāta.

 * yadā bhagavā aññāsi kūṭadantaṃ brāhmaṇaṃ kallacittaṃ muducittaṃ vinīvaraṇacittaṃ udaggacittaṃ pasannacittaṃ, 

aññāsi  ā-jñā 了知する

 

29. 그리고 존자 앙냐 꼰당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꼰당냐]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했다.

 

[세존] "수행승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는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존자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30.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남은 수행승들도 법문으로 훈계하고 가르쳤다. 세존으로부터 법문으로 훈계 받고 가르침을 받자 존자 밥빠와 존자 밧디야에게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밥빠와 밧디야]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밥빠와 밧디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존자들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31.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들이 가져온 음식을 들며,그 남은 수행승들은 법문 으로 훈계하고 가르쳤다. 세 사람의 수행승이 탁발하여 가지고 온 것으로 여섯 명이 생활했다.

32 그런데 세존으로부터 법문으로 훈계 받고 가르침을 받자 존자 마하나마와 존자 앗싸지에게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마하나마와 앗싸지]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마하나마와 앗싸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존자들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labheyyāh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aṃ upasampadan”ti. “Ehi bhikkhū”ti bhagavā avoca—“svākkhāto dhammo, cara brahmacariyaṃ sammā dukkhassa antakiriyāyā”ti. Sāva tassa āyasmato upasampadā ahosi.

 

 

 

* 오늘도 8명이 참여하여 토론공부를 하였다. 대승불교적 시각에서 마하박가를 공부하기 보다는 마학박가 그대로 충분히 이해하고 난다음에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을 내놓아야 한다는 몇몇의 의견이 있었다. 다음주에는 마하박가를 일찍(30분내외) 끝내고 방기연거사님으로 부터 비폭력대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다. 

 

논점:

1.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의 의미는?

몸과 마음안에서  '무엇이든(오온)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생멸을 보고 자아관념이 해체된것을 의미한다. 초기불교의 구체적인 오도송이다.

 

2. 수다함(예류과)를 얻었는데 욕계 색계신(브라흐마)들이 찬탄하는 이유는 ?

인간이 가진 3가지 번뇌를 부셔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유신견(有身見sakkāya-diṭṭhi)이라는 자아관념은 부처님이 나기전의 인도사상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것으로 부처님이 아니면 아무도 깨뜨리지 못하는 것이므로 모든 신들이 찬탄할 만 하다. 다음에 무아상경을 공부할때 무아(無我)와 비아(非我) 차이를 공부하기로 하다.

아래는 수다함이 되면 없어지는 3가지 족쇄 

① 유신견(有身見,sakkāya-diṭṭhi): 고정불변하는 자아 혹은 실체가 있다고 국집하는 견해이다.

②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sīlavatavatabbata-parāmāsa]: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

sīla-habit,behaviour

vata- religious duty,observance,rite,practice,custom 

 

 

③ 의심[疑, vicikicchā]: 불/법/승, 계율, 연기법 등을 회의하여 의심하는 것

 

3. 성도후 초창기에는  "비구여, 오라(Ehi bhikkhū)”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 오비구에게 구족계가 주어졌다.  그 뒤(비구-비구니계)어떻게 변해갔나?  

1250인이라는 숫자는 금강경이나 예불문에 등장하는데 이렇게 정형화된 이유는 "비구여, 오라(Ehi bhikkhū)"라는 방식으로 비구계를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남방불교는 오비구가 출가하여 승가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여 '승가의 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우리도 '승가의 날'을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아래는 109p에 있는 구족계 수계의 변화과정이다.

 

 

 

 

 

무아상경 설법, 상윳따니까야에도 무아상경anattalakkhaṇasuttaṃ(S22.59)으로 설해지고있다.

 

33. 그후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1)"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다.“Form is not your essence.  Body, monks, is not self.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물질이 나라면 이 물질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물질이 질병이 들 수 있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Rūpaṃ, bhikkhave, anattā. Rūpañ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rūpe—‘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Yasmā ca kho, bhikkhave, rūpaṃ anattā, tasmā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rūpe—‘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For if form were your essence, it would not lead to suffering, and you could make it be like this and not be like that.

 

2) 수행승들이여, 느낌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느낌이 나라면 이 느낌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느낌에 대하여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라.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느낌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느낌이 질병이 들 수 있고 이 느낌에 대하여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라.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Vedanā anattā. Vedanā 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vedanā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vedanāya—‘evaṃ me vedanā hotu, evaṃ me vedanā mā ahosī’ti. Yasmā ca kho, bhikkhave, vedanā anattā, tasmā vedanā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vedanāya—‘evaṃ me vedanā hotu, evaṃ me vedanā mā ahosī’ti.

 

 

3) 수행승들이여, 지각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지각이 나라면 이 지각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지각에 대하여 나의 지각은 이렇게 되라. 나의 지각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지각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지각이 질병이 들 수 있고 이 지각에 대하여 '나의 지각은 이렇게 되라. 나의 지각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4) 수행승들이여, 형성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형성이 나라면 이 형성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형성에 대하여 '나의 형성은 이렇게 되라. 나의 형성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형성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형성이 질병이 들 수 있고 이 형성에 대하여 '나의 형성은 이렇게 되라. 나의 형성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5)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의식이 나라면 이 의식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의식에 대하여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의식이 질병이 들 수 있고 이 의식에 대하여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 라고 여기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옳지 않습니다."“No hetaṁ, bhante”.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옳은 것인가?"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etaṃ mama, esoham asmi, eso me attā”ti?比丘。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 是我.異我.相在不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옳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옳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형성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옳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옳지 않습니다."“No hetaṁ, bhante”.

 

[세존]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1) 어떠한 물질이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든 외적이 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탁월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물질 은 이와 같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2) 어떠한 느낌이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든 외적이 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탁월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느낌 은 이와 같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3) 어떠한 지각이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든 외적이 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탁월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지각은 이와 같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4) 어떠한 형성이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든 외적이 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탁월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형성은 이와 같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5) 어떠한 의식이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든 외적이 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탁월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의식은 이와 같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netaṃ mama), 이것은 내가 아니고(nesohamasmi),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na meso attā)' 라고 있는 그대로(yathābhūtaṃ)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ʻThis is not mine, I am not this, this is not my essence.’

 

* 주석서 설명: yasmā pana ettha

etaṃ mamāti taṇhāgāho(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는 갈애),  tañca gaṇhanto aṭṭhasatataṇhāvicaritappabhedaṃ taṇhāpapañcaṃ gaṇhāti. 

esohamasmīti mānagāho(이것은 내가 아니고는 자만), tañca gaṇhanto navappabhedaṃ mānapapañcaṃ gaṇhāti. 

eso me attāti diṭṭhigāho(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는 견해), tañca gaṇhanto dvāsaṭṭhidiṭṭhigatappabhedaṃ diṭṭhipapañcaṃ gaṇhāti. 

 

 

40.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앎(vimuttamiti ñāṇaṃ)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nibbindaṃ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41.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의 말씀에 환희하여 기뻐했다. 그리고 이러한 설법이 행해지는 동안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의 마음은 집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했다. 이로써 세상에 여섯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제목:잡아함1-34  오비구경(무아와 비아가 같이 사용되고 있다.무아와 비아를 )

(三四)如是我聞。 一時。佛住波羅奈國仙人住處鹿野苑中。 爾時。世尊告餘五比丘。色非有我。若色有我者。於色不應病.苦生。亦不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以色無我故。於色有病.有苦生。亦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受.想.行.識亦復如是。

比丘。於意云何。色為是常.為無常耶。 

比丘白佛。無常。世尊。 

比丘。若無常者。是苦耶。

比丘白佛。是苦。世尊。 

比丘。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是我.異我.相在不。 

比丘白佛。不也。世尊。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麁.若細。若好.若醜。
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實觀察 受.想.行.識亦復如是。 比丘。多聞聖弟子於
此五受陰見非我.非我所。如是觀察。於諸世間都無所取。無所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佛說此經已。餘五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남전장경 : s.22.59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국의 선인들이 사는 사슴 동산에 계시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남아 있는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물질에는 <나>가 없다. 만일 물질에 <나>가 있다면 물질에는 응당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물질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물질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생기는 것이요, 또한 물질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니,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물질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되지 않은 것인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항상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항상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항상되지 않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거기서 과연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모든 물질로서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좋거나 더럽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참다이 관찰하라. 느낌·생각·지어감·의식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비구들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다섯 가지 쌓임을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관찰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 대해서 전혀 취할 것이 없게 되고,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생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그 다섯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그리고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논점 정리

7명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근중거사님이 처음으로 참여하였다.  '초전법륜경'과 '무아상경'은 재음미해 봐야 할 중요한 경전이다. 개인적으로 금강경과 반야심경 대신에  '초전법륜경'과 '무아상경'으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 부처님이 아나따(anattā) 법문은 비아(非我)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무아(無我)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아함경에서 비아(非我)가 107번 나타나고,  무아(無我)가  63번 나타나는데 이것으로보아 비아(非我)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해보인다. 문법적으로도 A는 B가 아니다라고 해석되므로 비아(非我)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비아(非我)든  무아(無我)든 앞에 오온을 전제하여 설명하면 부처님 가르침에 맞는데, 아난다경(S44:10)에서 외도의 질문처럼 오온을 전제하지 않고 말하는 무아(無我)는 부처님이 상견이나 단견으로 떨어지기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잡아함34  오비구경에서는 무아와 비아가 같이 사용되고 있다.아직 무아와 비아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etaṃ mama, esoham asmi, eso me attā)'라는 부분을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함께 있는 것이다'(是我.異我.相在不)라고 되어 있어 한문으로 번역할때 심각한 오류가 발생했음을 알수 있다.

 

산냐(saññā)를 지각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으냐 인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으냐하는 논의가 한동안 진행되었다. 아래는 사전적인 의미 

saññā:f.[<saṃ-jñā] 想,想念,概念,表象.pl.saññā,saññāyo.saññakkhandha想蘊.saññasaññin 想想者.saññāgata 想の類.saññānānatta 想種々.saññāpaṭilābha 想得,想の獲得.saññābhava 想有.saññāmaya 想所成.saññāvipariyesa,saññāvipallāsa 想顛倒.saññāviratta 離想者,想離貪者.saññāvivaṭṭa 想退転.saññāvūpasama 想寂靜.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 想受滅定,滅尽定.saññāsamatikkama 想の超越.saññāsamāpatti 想等至.

 

saññā,(f),sense; perception; mark; name; recognition; gesture.

 

 

 

2. 부처님이 항상 무상anicca   고dukkha   무아anatta 라는 순서로 설법하는 이유는?

--수행의 순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 수행순서인 삼특상을 후대에 삼법인으로 설명하면서 부터는 삼법인(고,무상,무아) 혹은 사법인(열반,무상,무아,고)으로 설명하여 불교를 지식화 해버리는 실수가 있어왔다.  

 

3. "이로써 세상에 여섯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Tena kho pana samayena cha loke arahanto honti)"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투표를 해보았는데 편집자다 5명, 부처님이다 1명, 기권1명.

 

4.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netaṃ mama), 이것은 내가 아니고(nesohamasmi),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na meso attā)" 라고 설명하는 이유는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netaṃ mama)는 갈애(taṇhā)의 문제,  이것은 내가 아니다(nesohamasmi)는 자만(māna)의 문제,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na meso attā)는 견해(diṭṭhi)의 문제 라고 주석서에서는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을 심리상담에 응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기타: 초전법륜경과 무아상경이 모든 경전의 사상을 담고있다. 오온으로 인간을 보는 입장은 부처님이 처음 발견한 입장이다. 염오-이욕-해탈의 순서가 논점에 없어서 서운했다. 

 

 

 

*참고: 아난다경(S44:10)-무아가 단견으로 쓰이는 경전 예

 

한 때에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 때에 유행자 밧차곳따가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서로 나눈 뒤에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은 유행자 밧차곳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밧차곳따] "세존이신 고따마여, 자아(atta)는 있습니?" “kiṁ nu kho, bho gotama, atthattā”ti?(atthi + attā)

이와 같이 묻자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Evaṁ vutte, bhagavā tuṇhī ahosi.

두 번째에도 유행자 밧차곳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밧차곳따] "세존이신 고따마여, 자아(atta)는 없습니까?"“Kiṁ pana, bho gotama, natthattā”ti?(na+ atthi + attā)

두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Dutiyampi kho bhagavā tuṇhī ahosi.

그러자 유행자 밧차곳따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유행자 밧차곳따가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유행자 밧차곳따의 질문을 받고 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kiṁ nu kho, bhante, bhagavā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pañhaṁ puṭṭho na byākāsī”ti?

 

[세존] "아난다여, 내가 유행자 밧차곳따의 '자아는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똑같이 '자아가 있다' 라고 대답하면 아난다여, 그것은 내가 영원주의자(sassatavādā)인 수행자나 성직자들에 동조하는 것이다.

“Ahañcānanda,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atthattā’ti puṭṭho samāno ‘atthattā’ti byākareyyaṁ, ye te, ānanda, 

samaṇabrāhmaṇā sassatavādā tesametaṁ saddhiṁ abhavissa.

 

아난다여, 내가 유행자 밧차곳따의 '자아는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똑같이 '자아가 없다' 라고 대답하면 아난다여, 그것은 내가 허무주의자(ucchedavādā)인 수행자나 성직자들에 동조하는 것이다.

Ahañcānanda,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natthattā’ti puṭṭho samāno ‘natthattā’ti byākareyyaṁ, ye te, ānanda,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tesametaṁ saddhiṁ abhavissa.

 

아난다여, 내가 유행자 밧차곳따의 '자아는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똑같이 '자아가 있다(atthattā)' 라고 대답하면 아난다여, '일체의 법은 무아이다(Sabbe dhammā Anattā)' 라는 지혜의 발현에 순응하는 것인가?"Ahañcānanda,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atthattā’ti puṭṭho samāno ‘atthattā’ti byākareyyaṁ, 

api nu me taṁ, ānanda, anulomaṁ abhavissa ñāṇassa uppādāya:‘sabbe dhammā anattā’”ti?

 

[아난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No hetaṁ, bhante”.

 

[세존] "아난다여, 내가 유행자 밧차곳따의 '자아는 없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똑같이 '자아가 없다(natthattā)' 라고 대답하면 아난다여, '예전에 나에게 자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아가 더 이상 없다' 라고 혼미한 밧차곳따는 더욱 혼미해질 것이다."  “Ahañcānanda,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natthattā’ti puṭṭho samāno ‘natthattā’ti byākareyyaṁ, 

sammūḷhassa, ānanda, vacchagottassa paribbājakassa bhiyyo sammohāya abhavissa: 

‘ahuvā me nūna pubbe attā, so etarahi natthī’”ti.

 


 

 

 

 

 

 

7. 야사출가와 최초의 재가신자의 이야기(Yasa pabbajja pāthama upāsakathā)

 

 

 

1. 그때 바라나씨 시에 야사라고 불리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 유복한 부호의 아들이 있었다. 그에게는 세 개의 궁전이 있었는데, 하나는 겨울궁전이고, 하나는 여름궁전이고, 하나는 우기궁전이었다.

 

Tassa tayo pāsādā hontieko hemantiko, eko gimhiko, eko vassiko.

 

 

 

그는 우기궁전에서 넉달 동안은 기녀들의 음악에 둘러싸여 궁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So vassike pāsāde cattāro māse nippurisehi tūriyehi paricārayamāno na heṭṭhāpāsādaṁ orohati.

 

 

 

그때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사로잡혀 그것들을 갖추고 탐닉했는데, 그가 먼저 잠들면, 시녀들이 잠들었지만, 기름등은 밤이 지나자 타올랐다.

 

Atha kho yasassa kulaputtassa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assa samaṅgībhūtassa paricārayamānassa paṭikacceva niddā okkami, parijanassapi niddā okkami, sabbarattiyo ca telapadīpo jhāyati.

 

 

 

 

 

2 그때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먼저 깨어서, 자신의 시녀들이 잠자는 것을 보았다. 어떤 시녀는 비파(vīṇaṁ)를 겨드랑이에 끼고, 어떤 시녀는 작은 북(mudiṅgaṁ)을 목에 달고, 어떤 시녀는 장구(āḷambaraṁ)를 겨드랑이에 끼고, 어떤 시녀는 머리를 산발하고, 어떤 시녀는 침을 흘리고, 어떤 시녀는 잠꼬대를 하는데, 마치 눈앞에 시체더미를 보는 것과 같았다.

 

aññissā kacche vīṇaṁ, aññissā kaṇṭhe mudiṅgaṁ, aññissā kacche āḷambaraṁ, aññaṁ vikesikaṁ, aññaṁ vikkheḷikaṁ, aññā vippalapantiyo, hatthappattaṁ susānaṁ maññe.

 

 

 

보고나서 그에게 재난에 대한 위험이 생겨나 싫어하여 떠남에 마음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감흥어린 말을 했다.

 

Disvānassa ādīnavo pāturahosi, nibbidāya cittaṁ saṇṭhāsi.Atha kho yaso kulaputto udānaṁ udānesi

 

 

 

 

 

[야사] "! 괴롭다. ! 고통이다."

 

“upaddutaṃ vata bho, upassaṭṭhaṃ vata bho”ti. “Oh the oppression! Oh the affliction!”

 

 

 

3. 그리고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황금 신발을 신고 집문으로 향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데 장애가 없기를!'이라고 말하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성문으로 향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는데 장애가 없기를!'이라고 말하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로 향했다.

 

 

 

4.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노천에서 경행하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훌 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나서 경행을 그만두고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감흥어린 말을 했다.

 

 

 

[야사] "! 참으로 괴롭습니다. ! 참으로 고통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야사여, 여기에는 괴로움이 없고, 여기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야사여, 오십시오! 앉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가르침을 설하겠습니다."

 

“idaṃ kho, yasa, anupaddutaṃ, idaṃ anupassaṭṭhaṃ. Ehi, yasa, nisīda, dhammaṃ te desessāmī”ti.

 

 

 

 

 

5 그래서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여기에는 괴로움이 없고, 여기에는 고통이 없다.'라고 듣고 환희하고 용약하여 황금 신발을 벗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리에 앉은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세존께서는 차제설법(anupubbiṁ katha)을 설했다.

 

 

 

,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 ·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 했다. dānakathaṁ sīlakathaṁ saggakathaṁ, kāmānaṁ ādīnavaṁ, okāraṁ saṅkilesaṁ, nekkhamme ānisaṁsaṁ pakāsesi.

 

 

 

6. 그리고 세존께서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건강한 마음(kallacittaṁ), 유연한 마음, 열린 마음, 기뻐하는 마음, 청정한 마음(pasannacittaṁ)이 생겨난 것을 알자(aññāsi),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법문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Yadā bhagavā aññāsi yasaṁ kulaputtaṁ kallacittaṁ, muducittaṁ, vinīvaraṇacittaṁ, udaggacittaṁ, pasannacittaṁ, atha yā buddhānaṁ sāmukkaṁsikā dhammadesanā taṁ pakāsesidukkhaṁ, samudayaṁ, nirodhaṁ, maggaṁ.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Seyyathāpi nāma suddhaṁ vatthaṁ apagatakāḷakaṁ sammadeva rajanaṁ paṭiggaṇheyya; :evameva yasassa kulaputtassa tasmiṁyeva āsane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

 

 

 

[야사]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n”ti.

 

 

 

 

 

(바라나시로 장면 이동: 편집되었다는 것을 보여줌)

 

 

 

7. 그후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의 어머니가 궁전에 올라갔는데,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보이지 않자, 대부호인 장자를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대부호인 장자에게 말했다.

 

 

 

[야사의 어머니] "장자여, 그대의 아들 야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대부호인 장자는 사방으로 사자를 말에 태워 파견하고, 자신은 이씨빠따나 지역에 있는 미가다야를 찾았다. 대부호인 장자는 황금 신발의 흔적을 발견 하고 그것을 추적하였다. 세존께서는 대부호인 장자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Atha kho seṭṭhi gahapati catuddisā assadūte uyyojetvā sāmaṁyeva yena isipatanaṁ migadāyo tenupasaṅkami.

 

 

 

 

 

[세존] '대부호인 장자가 여기에 앉아서 여기에 앉은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를 볼 수 없도록 내가 신통변화를 나타내 보이면 어떨까?'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와 같은 신통변화를 나투었다.

 

“yannūnāhaṃ tathārūpaṃ iddhābhi­saṅ­khā­raṃ abhi­saṅ­kha­reyyaṃ yathā seṭṭhi gahapati idha nisinno idha nisinnaṃ yasaṃ kulaputtaṃ na passeyyā”ti. Atha kho bhagavā tathārūpaṃ iddhābhi­saṅ­khā­raṃ abhisaṅkharesi.

 

 

 

9. 마침 대부호인 장자가 세존께 다가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대부호]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를 보았습니까?"

 

“api, bhante, bhagavā yasaṁ kulaputtaṁ passeyyā”ti?

 

 

 

[세존] "장자여, 그렇다면, 이곳에 앉으십시오. 아마 이곳에 앉으면, 이곳에 앉아 있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대부호인 장자는 '내가 이곳에 앉으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를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환희하고 용약하여 세존께 인사를 하고 그곳에 앉았다.

 

“Tena hi, gahapati, nisīda, appeva nāma idha nisinno idha nisinnaṁ yasaṁ kulaputtaṁ passeyyāsī”ti.

 

“idheva kirāhaṁ nisinno idha nisinnaṁ yasaṁ kulaputtaṁ passissāmī”ti haṭṭho udaggo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10. 한쪽에 물러 앉은 대부호인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임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대부호인 장자에게 건강한 마음, 유연한 마음, 열린 마음, 기뻐하는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대부호인 장자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seyyathidaṃdānakathaṃ sīlakathaṃ saggakathaṃ, kāmānaṃ ādīnavaṃ okāraṃ saṃkilesaṃ, nekkhamme ānisaṃsaṃ pakāsesi. Yadā bhagavā aññāsi yasaṃ kulaputtaṃ kallacittaṃ, muducittaṃ, vinīvara­ṇa­cittaṃ, udaggacittaṃ, pasannacittaṃ, atha yā buddhānaṃ sāmukkaṃsikā dhammadesanā taṃ pakāsesidukkhaṃ, samudayaṃ, nirodhaṃ, maggaṃ.

 

* "꼰당냐는 앎을 얻었다.(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라는 문장과 여기 "야사의 아버지가 청정한 마음이 생겨난 것을 알자(aññāsi)"라는 문장에서 똑같이 안냐시(aññāsi )가 사용되고 있다.그러므로 안냐시(aññāsi )'구경의 앎'이 아니라 이해했다(understood)라는 의미인 것을 알수 있다.

 

 

 

[대부호]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ṃ taṃ nirodhadhamman”ti.

 

 

 

그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Atha kho seṭṭhi gahapati diṭṭhadhammo pattadhammo viditadhammo pari­yogāḷ­ha­dhamm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ṃ­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bhagavantaṃ etadavoca

 

 

 

[대부호]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abhikkantaṃ, bhante, abhikkantaṃ, bhante.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ṃ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세존이시여,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 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최초로 삼귀의를 제창한 재가의 남자신자가 되었다.

 

Esāhaṃ, 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ṃ­ghañca. Upāsakaṃ maṃ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n”ti. Sova loke paṭhamaṃ upāsako ahosi tevāciko.

 

 

 

 

 

 

 

 

 

논점

 

 

오늘은 7명이 토론하였다. 오늘은 주로 시계생천의 가르침과 기복불교의 차이를 토론하느라 1~3번까지의 논점만 토론하였다. 불자로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바라는 욕망, 불교적인 기복불교는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 하였다.

 

 

 

 

 

1. 부처님이 처음 사용하신 신통력은 무엇인가?

 

야사 아버지가 야사를 볼 수 없도록 한 신통인데, 더 먼저 나타난 신통은 보리수아래서 깨닫고 나서 누구에게 설법할까하고 생각하다가 웃따까라마뿟따와 알라라깔라마가 언제 죽었는지 알아내고, 오비구가 녹야원에 있다고 알아낸 신통(천안통)

 

 

 

2. 불교의 '시계천의 차제설법'은 무엇이며 언제 하는 것인가? 또 기복불교와 어떻게 다른가?

 

금생의 행복(보시,지계)-- 내생의 행복(천상)-- 궁극적인 행복(사성제로 열반성취) -이것이 불교의 전부다.

 

금생의 행복(보시,지계)과 내생의 행복(천상)은 재가자들에게 설법하셨다.

 

 

 

보시,지계,천상의 법문은 인과와 공덕을 믿고 하늘나라(극락이 아닌 천당)를 믿어야 하기에 이것만 이야기하면 기독교와 흡사하다. 기복과 작복의 뜻을 분명하게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의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

 

 

 

) 어떤 사람이 퇴근길에 절에 들려 법당에서 부처님께 절하며 자신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면 이 것은 기복인가 작복인가?

 

기복이다- 박정규거사,기영거사,일봉스님,한병식거사,황태종거사

 

작복이다- 허정스님,도정스님

 

 

 

 

 

 

위에서 든 예)가 작복인 이유:

 보시,지계,생천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불교는 보시를 하더라도 대상에 따라 공덕이 달라진다는 걸 가르친다. 그래서 보시의 대상을 선택하는 하여 같은 행위라하더라도 공덕의 차이가 있게 된다. 보시받는 대상에 따라 공덕이 달라지는데 그중에서 삼귀의 하는 공덕이 매우크다는 것은 웰라마 경(A9:20)을 보면 알수 있다.  

즉, 옆집 아저씨에게 절하고 빌지 않고 부처님께 절하고 빈다는 것은 비는 대상을 선택한 기복이며, 절한다는 것은 이미 삼귀의를 한자의 행위이거나 혹은 지금 삼귀의를 하는 행위이기에 작복(수행)이라고 봐야한다. 여기서 마음으로 삼귀의 하는 의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불자의 행위는 갠지스강에 목욕하며 하늘나라에 나게 해달라고 비는 외도의 행위나 돌을 연못에 던지고 떠올라라 비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웰라마 경(A9:20)

장자여, 그러나 그러한 보시를 할 때 보시받아 마땅한 사람이 없었으며 아무도 그런 보시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사향사과의 성인에게 공양하고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것보다 스스로 ⓽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 더 공덕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삼귀의 공덕이 이렇게 엄청나게 크니까 병든 소년이 의업만으로 천상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법구경 제2번 게송에서 맛타꾼달리가 생각으로 삼귀의한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난 이야기)에서도 알수 있다. 

 

 

참고글: 바른 기복과 삿된 기복(웰라마 경(A9:20) 해설)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349

 

 

옛스님들은 도솔천에 나기를 바라는 결사를 하기도 함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경허스님의 '결동수정혜동생도솔동성불과계사문(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 함께 정혜를 닦아 함께 도솔천에 나서 함께 불과를 이루는 계사를 결성하는 글)'에서도 도솔천에 나기를 발원하는 결사를 함.

 

 

 

3.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와   "지심귀명례"의 차이는? 

 "지심귀명례"는 현재 조계종 의례집에는 "목숨바처 귀의 합니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는 믿음의 지속성을 의미하는데   "지심귀명례"는 믿음의 강도를 나타낸다.지속적으로 귀의하고 믿음을 갖는 것이 이해를 통한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며 불교적이다. "목숨바처 귀의 합니다".라는 것은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좋치 않으므로 예불문을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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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논점은 시간관계상 토론하지 못함

 

4.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법문"은 무엇인가? 

5.  법문을 이해하고 감탄 즉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라는 정형구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몇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6. "이렇게 해서 그가 최초로 삼귀의를 제창한 재가의 남자신자가 되었다."는 누가 말한 것인가? 

 

 

 

 

 

-야사의 아버지가 최초의 삼귀의로 불자가 됨-

 

11. 그때 아버지를 위하여 가르침을 설할 때에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보여진 대로 알려진 대로 의식의 지평을 관찰하여 집착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을 해탈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Atha kho yasassa kulaputtassa pituno dhamme desiyamāne yathādiṭṭhaṃ yathāviditaṃ bhūmiṃ pacca­vek­khan­t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i.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세존] '아버지를 위하여 가르침을 설할 때에 훌륭한 가문의 아들(kulaputtassa) 야사는 보여진 대로 알려진 대로 의식의 지평을 관찰하여 집착 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했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환속하여 이전의 재가의 생활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 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이제 신통변화를 그만두는 것이 어떨까?'

—“yasassa kho kulaputtassa pituno dhamme desiyamāne yathādiṭṭhaṃ yathāviditaṃ bhūmiṃ pacca­vek­khan­t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ṃ. Abhabbo kho yaso kulaputto hīnāyāvattitvā kāme paribhuñjituṃ, seyyathāpi pubbe agārikabhūto; yannūnāhaṃ taṃ iddhābhi­saṅ­khā­raṃ paṭippas­sam­bhey­yan”ti. 

 

 

12.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 신통변화를 그만두었다. 대부호인 장자는 훌륭한 가문 의 아들 야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말했다.Atha kho bhagavā taṃ iddhābhi­saṅ­khā­raṃ paṭippas­sam­bhesi.Addasā kho seṭṭhi gahapati yasaṃ kulaputtaṃ nisinnaṃ disvāna, yasaṃ kulaputtaṃ etadavoca

 

[대부호] "얘야, 야사야, 너의 어머니가 비탄에 젖어 슬퍼하고 있다. 어머니의 목숨을 보존토록 하라."(주어라)

—“mātā te, tāta yasa, pari­deva­sokasa­māpannā , dehi mātuyā jīvitan”ti. 

 

 

13. 그러자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세존을 우러러 보았다. 세존께서는 대부호인 장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atha kho yaso kulaputto bhagavantaṃ ullokesi. 

 

[세존]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사가 학인의 앎과 학인의 봄으로써 진리를 아는 것과 보는 것이 그대와 같습니까? 보여진 대로 알려진 대로 의식의 지평이 관찰되어 집착 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된 야사가 환속하여 이전의 재가의 생활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누리는 것이 가능 하다고 봅니까?"

“taṃ kiṃ maññasi, gahapati, yassa sekkhena ñāṇena sekkhena dassanena dhammo diṭṭho vidito seyyathāpi tayā?

tassa yathādiṭṭhaṃ yathāviditaṃ bhūmiṃ paccavekkhant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ṃ. 

bhabbo nu kho so, gahapati, hīnāyāvattitvā kāme paribhuñjituṃ seyyathāpi pubbe agārikabhūto”ti?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사가 학인의 앎과 학인의 봄으로써 진리를 아는 것과 보는 것이 그대와 같습니다. 야사에게는 보여진 대로 알려진 대로 의식의 지평이 관찰되어 집착 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그가 환속하여 이전의 재가의 생활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누리는 것은 가능 하다고 봅니까?)

 

 

[대부호]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장자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학인의 앎과 학인의 봄으로써 진리를 아는 것과 보는 것이 그대와 같습니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는 보여진 대로, 알려진 대로, 의식의 지평이 관찰되어 집착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장자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환속하여 이전의 재가의 생활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yasassa kho, gahapati, kulaputtassa sekkhena ñāṇena sekkhena dassanena dhammo diṭṭho vidito seyyathāpi tayā.  tassa yathādiṭṭhaṃ yathāviditaṃ bhūmiṃ paccavekkhant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ṃ. 

abhabbo kho, gahapati, yaso kulaputto hīnāyāvattitvā kāme paribhuñjituṃ seyyathāpi pubbe agārikabhūto”ti. 

 

 

14. [대부호] "세존이시여,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집착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된 것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고, 아주 유익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늘부터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를 시자수행자로 삼아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했다. 그리고 대부호인 장자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으 로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를 하고 오른 쪽으로 돌아 그곳을 떠났다.

“lābhā, bhante, yasassa kulaputtassa, suladdhaṃ, bhante, yasassa kulaputtassa, yathā yasassa kulaputt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ṃ. adhivāsetu me, bhante, bhagavā ajjatanāya bhattaṃ yasena kulaputtena pacchāsamaṇenā”ti. 

 

그러자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는 대부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야사]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수행승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는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존자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때 세상에 일곱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야사의 출가가 끝났다.

 “Ehi bhikkhū”ti bhagavā avoca— “svākkhāto dhammo, cara brahmacariyaṃ sammā dukkhassa antakiriyāyā”ti. Sāva tassa āyasmato upasampadā ahosi. Tena kho pana samayena satta loke arahanto honti.

 

 

 

 

8. 최초의 재가의 여자신자(Pathamā upāsikā kathā)

 

 

 

1. 한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존자 야사를 시자수행자로 삼아 대부호인 장자의 처소를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존자 야사의 어머니와 전처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다가 왔다. 가까이 다가 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āyasmatā yasena pacchāsamaṇena yena 

seṭṭhissa gahapatissa nivesanaṃ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atha kho āyasmato yasassa mātā ca 

purāṇadutiyikā c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바라나시에 아소까석주 있음-

 

2 세존께서는 그녀들을 위하여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dānakathaṁ), 계행에 대한 이야기(sīlakathaṁ),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saggakathaṁ),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naṃ)의 위험(ādīnavaṃ)과 타락(okāraṃ)과 오염(saṃkilesaṃ)을, 욕망의 여임(nekkhamme )에 대한 이익(ānisaṃsaṃ)을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 서는 그들에게 건강한 마음(kallacitte), 유연한 마음(muducitte), 열린 마음(vinīvara­ṇa­citte), 기뻐하는 마음(udaggacitte), 청정한 마음(pasannacitte)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녀들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재가의 여자신자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3. 그녀들은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재가의 여자신자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수행승의 참모임(我今自歸於佛法及比丘眾)에 귀의합니다.

etā may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의 여자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 더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들이 최초로 삼귀의를 제창한 재가의 여자신자들이 되었다.Upāsikāyo no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ā saraṇaṃ gatā”ti. Tā ca loke paṭhamaṃ upāsikā ahesuṃ tevācikā.

 

4. 그러자 존자 야사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처는 세존과 존자 야사에게 훌륭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제공하고 대접하고 세존께서 식사를 마치고 발우에서 손을 뗄 때까지 한쪽으로 물러 앉았다. 그후 세존께서는 존자 야사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전처를 법문으로 교화하고 격려하고 북돋우고 기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최초의 재가의 여자신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논점

 

오늘도 8분이 참여하여 9시 15분부터 10시 50분까지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논점에 대한 토론이 끝나고 지난 시간에 논의 되었던 '기복불교'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기복불교는 바른견해의 유무에 따라 바른기복과 삿된기복으로 나누어진다.  

 

 

 

1. 야사가 아라한이 된 시점은 언제인가?

--야사가 세존께 출가하겠다고 말할때는 아나함이며 부처님이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는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라고 비구계를 받은 이후 아라한이 되었다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존자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때 세상에 일곱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2. "세존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세존(bhagavanta)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dhamma)에 귀의합니다. 또한 비구승가(bhikkhusaṅgha)에 귀의합니다." 승가(saṅgha)가 아닌 비구승가에 귀의 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 이때의 승가는 사쌍팔배의 승보인가?

--5부니까야에 비구승가(bhikkhusaṅgha)는 374번 나오는데 귀의 한다는 표현과 관련되는 비구승가(bhikkhusaṅgha)는 총 90번 나오고,  비구니승가(bhikkhunisaṅgha)는 50번 나오는데 귀의 한다는 표현과 관련되는 비구니승가(bhikkhunisaṅgha)는 0번 나온다.

* '비구승가'라는 단어의 의미는 범부승가를 의미하므로 삼귀의 할때 승가는 4인이상의 범부승가(성인포함)라는 것을 증거한다.

비구니승단이 성도후 5년만에 생겼지만 승단이 생긴 이후에도 5부니까야에 비구니승가에 귀의 한다는 표현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비구니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팔경법[八敬法]의 규정 즉, "두 안거 기간 동안 여섯 가지 법에 대해 학습계목을 성취한 식차마나는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로부터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라는 조항 때문이라고 본다.비구니승가에서 계를 받아도 최종적으로는 비구승가에 계를 받아야 했다.  

 

 

팔경법(八敬法) 이란? 

(1) 비구니가 구족계를 받은 지 100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바로 그날 구족계를 받은 비구에게 절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해야 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2)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거주처에서 안거를 나서는 안 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3) 보름마다 비구니는 비구 승가에게 포살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고 교계를 받아야 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4) 안거를 마치면 비구니는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의] 두 승가 앞에서 본 것과 들은 것과 의심쩍은 것의 세 가지에 대해서 자자(自恣)를 해야 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5) 무거운 법을 범한 비구니는 두 승가에게 보름간의 참회를 행해야 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6) 두 안거 기간(2) 동안 여섯 가지 법에 대해 학습계목을 성취한 뒤 식차마나는 두 승가로부터 구족계를 받아야 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7) 어떤 이유로도 비구니는 비구에게 욕설을 하거나 비방을 해서는 안 되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8) 아난다여, 오늘부터 비구니들이 비구들을 [교계하고 가르치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비구들이 비구니들을 [교계하고 가르치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나니,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이러한 여덟 가지 무거운 법[八敬法]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는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

 

* 부처님이 팔경법(八敬法)을 설하여 비구니 출가를 허락하고 나서

 아난다여, 만일 여자가 출가하지 않으면 청정범행은 오래 머물 것이고 정법은 1000년동안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가 출가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정법은 500년 밖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금강경에서 후오백세라고 나타나는게 아닌가 추측한다. 부처님이 직접 정법이 500년 간다고 하였으니 불멸후 500년이 다가오는 시기에 불자들의 안타까움과 한탄이 얼마나 깊었을까? 이제는 말세라고....희망이 사라져 가는 날들....그래서 후 오백세에 대승불교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3. 야사가 환속하여 재가의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는데, 어느 단계에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오하분결이 끊어진 아나함의 단계- "장자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사가 학인의 앎과 학인의 봄으로써 진리를 아는 것과 보는 것이 그대와 같습니다. 야사에게는 보여진 대로 알려진 대로 의식의 지평이 관찰되어 집착 없이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되었습니다. 그가 환속하여 이전의 재가의 생활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누리는 것은 가능 하다고 봅니까?"

 

4. 부처님이 재가자의 공양 요청을 침묵으로 허락하는 이유는 ?

승가갈마에서 대중의 의견을 물을때 침묵으로 동의를 받아내고 부처님도 침묵으로 동의한다. '이와같이 나에게 들렸다(에웜 메 수땀) '라는 표현처럼 경전이 수동태로 표현된 것도 윤회의 근본인 아상(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는 상)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습관이라고 본다.  

또 한가지 이유는 승가의 대중공사에서 손을 들거나 입으로 말하는 등의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에너지 소비가 적고 번거러움이 적다.  요즈음에 승가대중에게 구글설문지를 보내서 문자를 받은 스님들이 한번 클릭으로 찬반 의사를 표시하게 하는 것도 가장 에너지 소비가 적은 방식이 될것이다. 

 

 

5.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법문"은 무엇인가? 

사성제

 

 

 

드디어 전도선언-

 

11. 마라에 대한 이야기Mārakathā)

 

 

1. 그리고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며 알렸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하늘나라의 올가미(dibbāpāsehi )와 인간세계의 올가미(mānusāpāsehi), 그 모든 올가미(sabbapāsehi)에서 벗어났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하늘나라의 올가미와 인간세계의 올가미, 그 모든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bahujanahitāya),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bahujanasukhāya), 세상을 불쌍히 여겨(lokānukampāya) 하늘사람과 인간의(devamanussānaṁ) 안락(atthāya)과 이익(hitāya)과 행복(sukhāya)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서 같은 길로 가지 마라. 수행승들이여, 처음도 훌륭하고(ādikalyāṇaṁ)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뜻,sātthaṁ)을 갖추고 형식(문장,sabyañjanaṁ)이 완성된 가르침을 설하라.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거룩한 삶을 실현하라.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사람들(apparajakkhajātikā)도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나도 역시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우루벨라(uruvelā) 지역의 쎄나니가마 마을(senānigamo)로 가겠다."

* Pāsa,【陽】 Pāsaka,【中】 彈弓,陷阱,鈕扣洞。a sling; a snare; a button hole.

*sātthaṁ, sabyañjanaṁ : '내용'이 풍부하고 '형식'이 완성된이라고 번역했는데 가이거의 번역을 딴 것이었다 .그러나 비구 보디는 ‘의미와 문구'라고 번역했다. 각묵스님은 의미와 표현이라고 번역하였고 134회 등장한다..전재성은 내용과 형식.

*dibbā nāma dibbesu visayesu lobhapāsā. mānusā nāma mānusakesu visayesu lobhapāsā. 

 ekena dveti ekena maggena dve  agamittha.

*sātthaṃ    a   対,  ある有義(sa-attha)

*byañjana:[nt.] a syllable; a consonant; a sign or mark; curry.

 

 

2 그때 악마 빠삐만이 세존께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시로 말했다.

 

1) [빠삐만] "모든 올가미에 당신은 묶여 있네.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그대는

크나큰 올가미에 묶여 있네. 

수행자여, 그대는 내게서 벗어날 수 없으리."

“You’re bound by all snares,“Baddhosi sabbapāsehi,

Both human and divine.ye dibbā ye ca mānusā;

You’re bound by the great bond: Mahābandhana baddhosi,

You’re not free from me, monastic.”na me samaṇa mokkhasī”ti.

 

2) [세존] "나는 모든 올가미에서 벗어났네.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나는 크나큰 올가미에서 벗어났으니 죽음의 신이여, 그대가 패했네.“

 

 

3) [빠삐만] "허공 가운데 움직이는 생각(mānaso)이라는 올가미

내가 그것으로 그대를 묶으리. 수행자여, 내게서 벗어나지 못하리.“

“The snare is ethereal,“Antalikkhacaro pāso,

And it comes from the mind. yvāyaṁ carati mānaso;

With that I’ll bind you:Tena taṁ bādhayissāmi,

You’re not free from me, monastic.”na me samaṇa mokkhasī”ti.

 

“There is a snare moving in the sky,

Something mental which moves about

By means of which I’ll catch you yet:
You won’t escape me, ascetic!”

 

 

4) [세존] "형상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의 감각에 즐거운 것들

거기서 나의 욕망은 떠났으니 죽음의 신이여, 그대가 패했다."자이다.

“Sights, sounds, tastes, smells,      “Rūpā saddā rasā gandhā,

And tangibles, the mind’s delights—  Phoṭṭhabbā ca manoramā;

For these I have no desire:        Ettha me vigato chando,

Terminator, you’re defeated!      ”Nihato tvamasi antakā”ti.

 

“Forms, sounds, tastes, odours,

And delightful tactile objects—
Desire for these has vanished in me:
You’re defeated, End-maker!”

 

 

그러자 악마 빠삐만은 '세존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라고 알아채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그곳에서 즉시 사라졌다.

“jānāti maṁ bhagavā, jānāti maṁ sugato”ti dukkhī dummano tatthevantaradhāyīti.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논 점

오늘은 한국:우루과이 축구가 있는 날인데도 여지없이 참석하여 긴시강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도선사에 머무는 한산스님이 처음으로 참여하여 활발한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1. 법을 전하러 가는 마음 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과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불교중흥'과 비교해보자.

--부처님은 철저하게 상대편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설법을 하라고 말한다. 우리편 만들기, 연등접수, 신도카드 접수 하기위한 포교가 아니라 법을 듣는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하는데...고행으로 자기들끼리 걷기로 불교중흥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2. "둘이서 같은 길로 가지 마라."고 말한 의미는?

--불교가 평화의 종교라는 의미도 있고,  효과적으로 같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나서 법을 전하라는 뜻도있다.

숫따니빠타에서 "코뿔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말과 같을까? 라는 의문이 있었다. 

 

 

3."내용(뜻,sātthaṁ)을 갖추고 형식(문장,sabyañjanaṁ)이 완성된 가르침을 설하라."는 것에서 설법의 방법론에 대해서 알수 있다. 현대인에게 할수 있는 효과적인 설법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설법대회, 토론대회가 상설화 되어서 말하는 법, 글 쓰는 법을 훈련하고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한산스님은 설법대회에서 1등한 적이 있는데 다른 사찰에가서 이야기해도 반응이 별로 없더라고 말했다.  자기소리를 녹음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자신이 말하는 속도, 말투등 고쳐야할 부분이 많이 느껴진다고한다. 주지가 질투가 나서 부전스님등이 신도들과 차를 마시는 걸 못 봐주더라. 교도소에가서 설법할 때 표정이 굳어 있어서 설법하는 것이 어려웠다. 

 

4. "하늘나라의 올가미(dibbāpāsehi )와 인간세계의 올가미(mānusāpāsehi)"는 각각 무슨 의미인가?

--주석서의 설명은 다같이 탐욕의 그물(lobhapāsā)에 걸린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인 시계생천(施戒生天)과 전도선언에서 나타나는 천상의 올가미(dibbāpāsehi)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에서 천상은 여지 없이 나타난다. 부처님이 보시기에 천상은 인간세계와 같이 중생이 사는 세계이며 언제나 눈에 보이는 세계였음을 알 수 있다. 윤회를 부정하고 천상세계를 부정하는 자들은 이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5.  "허공 가운데 움직이는 생각(mānaso)이라는 올가미, 내가 그것으로 그대를 묶으리"라는 마라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 법구경에서 mano가 앞서 간다. mano라는 올가미에 묶인다등등에서 citta가 아닌  mano가 사용된 것은 mano가 먼저 인식하고 생각하고 나서 citta(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을 길게했다. 마노(mano)와 찌따(citta)의 의미와 차이점을 아는 것은 매우중요하다. 이러한 일은 전도선언에서 말하는 것처 뜻(sātthaṁ)과 문장(sabyañjanaṁ)을 각춘 가르침을 설하라는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영지(靈知)의 일부 경(A2:3:10)을 올린다. 

 

영지(靈知)의 일부 경(A2:3:10)

탐욕에 오염된 마음(rāgupakkiliṭṭhaṃ cittaṃ)과 무명에 오염된 통찰지( avijjupakkiliṭṭhā paññā)라는 용어도 눈여겨 봐야한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영지(靈知)의 일부이다. 무엇이 둘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마음이 개발된다.

마음이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욕망이 제거된다.

“dve 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attha manubhoti? 

cittaṃ  bhāvīyati.  cittaṃ bhāvitaṃ kamattham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통찰지가 개발된다.

통찰지가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무명이 제거된다.”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attham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atthamanubhoti? yā avijjā sā pahīyati. 

“탐욕에 오염된 마음(rāgupakkiliṭṭhaṃ cittaṃ)은 해탈하지 못하고 무명에 오염된 통찰지( avijjupakkiliṭṭhā paññā)는 개발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제거되어 마음의 해탈[心解脫cetovimutti]이 있고,

무명이 제거되어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paññāvimuttī]이 있다.”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bhāvīyati. 
iti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ti.

 

 

 

 

옷감을 가지고 결계 밖에서 ‘나는 돌아가지도 않겠다.’라고 생각함
결정에 의해서 그 수행승의 까티나특권은 해제된다.

“I’ll make it. I won’t return.”“Kāressaṁ na paccessan”ti,

For him the robe season comes to an end when it’s finished;niṭṭhāne kathinuddhāro;

Takes outside the monastery zone, thinking, “Just not, Ādāya nissīmaṁ neva,

And I won’t return.”“na paccessan”ti mānaso.

 

 

 

9. 야사친구 네 명의 출가이야기(Catugihisahäya pabbajja kathä)

 

1. 존자 야사에게는 네 명의 재가의 친구들로써 바라나씨 시의 대부호들과 부호들 의 가문의 젊은이들인 비말라(vimalo), 쑤바후(subāhu), 뿐나지(puṇṇaji), 가밤빠띠(gavampati)'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라고 들었다.

 

Assosuṁ kho āyasmato yasassa cattāro gihisahāyakā bārāṇasiyaṁ seṭṭhānuseṭṭhīnaṁ kulānaṁ puttāvimalo, subāhu, puṇṇaji, gavampatiyaso kira kulaputto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그들은 듣고 나서 이와 같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다니, 이것은 범상한 가르침과 계율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범상한 출가가 아닐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Sutvāna nesaṁ etadahosi“na hi nūna so orako dhammavinayo, na sā orakā pabbajjā, yattha yaso kulaputto kesamassuṁ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2 그들은 존자 야사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야사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다. 그러자 존자 야사는 네 명의 재가의 친구를 데리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 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존자 야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야사] "이들 네 명은 재가의 친구들로써 바라나씨 시의 대부호들과 부호들의 가문의 젊은이들인 비말라, 쑤바후, 뿐나지, 가밤빠띠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들을 교화하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3.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dānakathaṁ), 계행에 대한 이야기(sīlakathaṁ),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saggakathaṁ),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naṃ)의 위험(ādīnavaṃ)과 타락(okāraṃ)과 오염(saṃkilesaṃ), 욕망의 여임(nekkhamme )에 대한 이익(ānisaṃsaṃ)을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 서는 그들에게 건강한 마음(kallacitte), 유연한 마음(muducitte), 열린 마음(vinīvara­ṇa­citte), 기뻐하는 마음(udaggacitte), 청정한 마음(pasannacitte)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 Nekkhamma離欲出離

 

* 준비된 마음(kallacitte), 유연한 마음(muducitte), 장애없는 마음(vinīvara­ṇa­citte), 기쁜 마음(udaggacitte), 신뢰하는 마음(pasannacitte)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Seyyathāpi nāma suddhaṁ vatthaṁ apagatakāḷakaṁ sammadeva rajanaṁ paṭiggaṇheyya;evameva tesaṁ

 

tasmiṁyeva āsane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n”ti.

 

 

 

[젊은이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4. 그들은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젊은이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그 존자들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들 수행승들에게 법문으로 교화하고 가르침을 주었다. 세존께서 법문으로 교화하고 가르침을 주자, 그들의 마음은 집착없이 번뇌로부터 해탈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때 열한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네 명의 재가친구의 출가이야기가 끝났다.

 

 

 

 

 

 

 

 

 

10. 오십 명의 재가친구의 출가이야기(Paññäsagihisahayapabbaijakathä)

 

 

 

1. 존자야사에게는 오십 명의 재가의 친구들로써 이 나라의 첫째가거나 버금 가는 훌륭한 가문의 젊은이들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했다.'라고 들었다. 그들은 듣고 나서 이와 같이 '훌륭한 가문의 아들 야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걸치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다니, 이것은 범상한 가르침과 계율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범상한 출가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2 그들은 존자 야사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야사에게 인사 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다. 그러자 존자 야사는 오십 명의 재가의 친구들을 데리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존자 야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야사] "이들 오십 명은 재가의 친구들로써 이 나라의 첫째가거나 버금가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들을 교화하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3.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임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 서는 그들에게 건강한 마음, 유연한 마음, 열린 마음, 기뻐하는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젊은이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4. 그들은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젊은이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그 존자들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들 수행승들에게 법문으로 교화하고 가르침을 주었다. 세존께서 법문으로 교화하고 가르침을 주자, 그들의 마음은 집착없이 번뇌로부터 해탈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때 61명의 아라한이 생겨났다. 오십 명의 재가친구의 출가이야기가 끝났다.

 

 

 

 

 

 

 

 

 

 

 

오늘도 8명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토론이 끝나고 이번에 개정된 총림법과 기타 종헌종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느라 11시까지 이야기 하였습니다.

 

 

 

 

논점

 

1. 야사와 야사 친구들 54명은 야사를 인연으로 출가하였고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나중에 이 55명과 부처님1명과 5명의 비구 총 61명의 아라한이 세상에 출현하였을 때 부처님은 전도선언을 하게된다. 이렇게 재가자였던 사람들이 단지 부처님의 법을 듣고 빠른 시간에 모두 아라한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들과 부처님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야사는 부처님 보다 복이 많다. 출가생활이나 고행을 하지 않고도 아라한이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물론 부모와 아내까지 불법에 귀의 하였다.야사의 친구들이 야사에게 가진 신뢰는 사리뿟따와 목건련의 경우보다 더 신뢰가 두텁다. 

 

주석서 참고: tatra yasāadīnaṃ kulaputtānaṃ ayaṃ pubbayogo  atīte kira pañcapaññāsajanā sahāyakā vaggabandhena puññāni 

karontā anāthasarīrāni paṭijaggantā vicaranti, te ekadivasaṃ gabbhiniṃ itthiṃ kālaṃkataṃ disvā “jhāpessāmā”ti 

susānaṃ nīhariṃsu. tesu pañca jane “tumhe jhāpethā”ti susāne ṭhapetvā sesā gāmaṃ paviṭṭhā. yaso dārako taṃ 

sarīraṃ vijjhitvā parivattetvā ca jhāpayamāno asubhasaññaṃ paṭilabhi. so itaresampi catunnaṃ janānaṃ “passatha 

bho imaṃ asuciṃ paṭikūlan”ti dassesi. tepi tattha asubhasaññaṃ paṭilabhiṃsu. te pañcapi janā gāmaṃ gantvā 

sesasahāyakānaṃ kathayiṃsu. yaso pana dārako gehampi gantvā mātāpitūnnañca bhariyāya ca kathesi. te sabbepi 

asubhaṃ bhāvayiṃsu. ayametesaṃ pubbayogo. tenāyasmato yasassa nāṭakajanesu susānasaññāyeva uppajji, 

tāyeva ca upanissayasampattiyā sabbesaṃ visesādhigamo nibbattīti.

 

 

 

 

2. 부처님은 오비구에게 무아경을 설하여 아라한이 되게 했는데 야사의 친구들에게는 줄 곧 사성제를 설하시어 아라한이 되게한다. 그 이유가 있을까?

----사성제에 무아경있다

 

 

 

 

3. "보시에 대한 이야기(dānakathaṁ), 계행에 대한 이야기(sīlakathaṁ),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saggakathaṁ)"와 뒤에 이어지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naṃ)의 위험(ādīnavaṃ)과 타락(okāraṃ)과 오염(saṃkilesaṃ)을, 욕망의 여임(nekkhamme )에 대한 이익(ānisaṃsa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차제설법(시계생천, 욕망의 위험과 출리의 이익, 사성제)이 오부니까야에 73번 나온다. 시계생천은 욕망의 위험과 이욕의 이익이라는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다. 이부분을 잘 설명하는 것이 불교를 잘하는 것인데 경에는 축약되어 무슨 설명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4.  "그들에게 준비된 마음(kallacitte), 유연한 마음(muducitte), 장애없는 마음(vinīvara­ṇa­citte), 기쁜 마음(udaggacitte), 신뢰하는 마음(pasannacitte)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사성제)을 설했다."고 한다.

어떻게 설법해야 야사의 친구들처럼 위와같은  5가지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 수 있나?

---욕망을 가져서 집착을 해서 고통받은 사례들을 심도있게 설명했을 것이다.

 

 

 

 

 

5. 차제설법(시계생천, 욕망의 위험과 출리의 이익, 사성제)과 대승의 육바라밀(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바라밀) 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승 육바라밀 보시(布施)-육바라밀의 첫번째    지계(持戒)=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보시,인욕+ 팔정도=육바라밀
초기 팔정도 보시(布施)=팔정도에 포함 안됨    정어, 정업, 정명   정진(精進) 선정(禪定) 정견.정사유 보시+팔정도(차제설법) 

---육바라밀과 팔정도를 대응시켜보면 보시=보시바라밀,  지계=지계바라밀(정어,정업,정명)   정진(精進)=정진바라밀,  선정(禪定)=선정바라밀,   지혜(智慧)바라밀)=정견 정사유로 대응된다. 

---대승불교에서 출가자+재가자가  보살(출가재가보살)로 통합 되었듯이, 초기불교의 시계천+팔정도= 육바라밀로 통합 되었다고 본다. 육바라밀은  보살운동이며 그래서 큰 수레(대승)라 부르고 초기불교의 출가자 중심에서 대승불교의 재가자 중심으로 불교가 전개 되었다. 

 

 

 

6. 야사의 친구 비말라(vimalo), 쑤바후(subāhu), 뿐나지(puṇṇaji), 가밤빠띠(gavampati)는 출가후 어떠한 삶을 살았나?

 

1. Gavampati Thera.-An arahant. He was a son of a setthi in Benares, and one of the four lay companions of the Thera Yasa, who, when they heard of Yasa's renunciation, imitated him and won arahant-ship. Later, Gavampati lived in the Añjanavana at Sāketa. One day, when the Buddha visited the Añjanavana, some of the monks accompanying him slept on the sandbanks of the Sarabhū. The river rose in the night and there was great dismay. The Buddha sent Gavampati to stem the flood, which he did by his iddhi-power. The water stopped afar off, looking like a mountain peak.

In the time of Sikhī Buddha he was a huntsman and seeing the Buddha offered him flowers. Later he built a parasol and a railing for the thūpa of Konāgamana. In the time of Kassapa Buddha he was a rich house holder possessed of many cattle. One day he saw an arahant eating his meal in the sun for lack of shade, and built for him a shelter and planted in front of it a sirīsa-tree. As a result he was born in the Cātummahārājika world, and his palace was known as Serissaka. (Vin.i.18f.; Thag.v.38; ThagA.i.103f; VvA.331f; DA.iii.814 gives a slightly different version of the origin of the Serissaka-vimāna).

Gavampati was the teacher of Mahānāga, son of Madhu-Vāsettha (ThagA.i.443). It is said that the Serissaka-vimāna, occupied by Gavampati, remained in the Cātummahārajika world even after he had left it. (D.ii.356f; DA.iii.814 says he went there because he found the "climate" (utu) more agreeable. SNA.i.347 says it was because he, like Pindola-bhāradvāja, loved his old haunts).

There Gavampati often spent his siesta and held conversations with Pāyāsi, who sent through him a message to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that they should profit by the example of him (Pāyāsi) and discriminate in the bestowal of their gifts.

The Dulvā mentions (Rockhill, p.149f) that after the Buddha's death, when Mahā Kassapa wished to hold a Convocation of the chief monks, Punna was sent as a special messenger to summon Gavampati, who was then in the Serissaka-vimāna. But Gavampati did not attend, his death being imminent. Instead he sent his bowl and three robes as a gift to the Sangha.

Immediately afterwards he died, and Punna carried out his funeral rites.

Gavampati is evidently identical with Girinelapūjaka of the Apadāna (ii.457).

See also Gavampati Sutta below.

 

 

 

 

7. 아소까 왕은 바라나시의 '야사의 집'을 기념하는 석주를 세웠을까? 

--바라나시 근처에 아래사진과 같은 아소까 석주가 있다. 

 

 

 

12. 삼귀의와 구족계 이야기 (Ti sarana gamana pabbajjâ  upasampada  kathã)

 

1. 그때 수행승들이 여러 지방 여러 나라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을 데리고 '세존께서는 이들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세존께 왔다. 

Tena kho pana samayena bhikkhū nānādisā nānājanapadā pabbajjāpekkhe ca upasampadāpekkhe ca ānenti

“bhagavā ne pabbājessati upasampādessatī”ti.

 

 

그러자 수행승들도 피곤해졌고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도 피곤해졌다. 그때 세존께서는 홀로 명상하다가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세존] '지금은 수행승들이 여러 지방 여러 나라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을 데리고 '세존께서는 이들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온다. 그런데 수행승들도 피곤해졌고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도 피곤해졌다. 내가 수행승들에게 ·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각각의 지방 각각의 나라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을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라.' '라고 허용하면 어떨까?'

 

2 그래서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에 명상에서 일어나 그것으로 인연으로 그것을 기회로 삼아 수행승들의 무리를 불러 모아 법문을 하고 이르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홀로 명상하다가 나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수행승들이 여러 지방 여러 나라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을 데리고 '세존께서는 이들을 출가시켜 구족계를 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온다. 그런데 수행승들도 피곤해졌고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도 피곤해졌다. 

 

내가 수행승들에게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각각의 지방 각각의 나라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을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라.'라 고 허용하면 어떨까?

"Yannūnāhaṁ bhikkhūnaṁ anujāneyyaṁ tumheva dāni, bhikkhave, tāsu tāsu disāsu tesu tesu janapadesu pabbājetha 

upasampādethāti

 

3.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각각의 지방 각각의 나라에서 출가를 원하고 구족계를 원하는 자들을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줄 수 있다.'라고 허용한다.

Anujānāmi, bhikkhave, tumheva dāni tāsu tāsu disāsu tesu tesu janapadesu pabbājetha upasampādetha.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그대들은 이와 같이 출가시키고 구족계를 주어야 한다. 먼저 머리와 수염을 깎게 하고 가사를 입히고 한쪽 어깨에 상의를 걸치게 하고 수행승의 양 발에 머리를 조아리게 한 뒤에 웅크려 앉히고 합장하게 하여 이와 같이 말하라고 해야 한다.

Paṭhamaṁ kesamassuṁ ohārāp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āpetvā,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ārāpetvā, 

bhikkhūnaṁ pāde vandāpetvā, ukkuṭikaṁ nisīdāpetvā, añjaliṁ paggaṇhāpetvā ‘evaṁ vadehī’ti vattabbo

 

1) '고귀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고귀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고귀한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2) 존귀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존귀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존귀한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3)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Du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Du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Du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Ta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Ta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Ta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ī’ti.

수행승들이여, 이 삼귀의로써 출가시켜 구족계를 주는 것을 허용한다. 삼귀의와 구족계 이야기가 끝났다.

 

 

 

 

 

논점

 

어제는 7명이 참여하여 11시까지 토론을 하였다. 양립할수 없는 사분율과 보살계를 같이 받는 조계종 승려들의 모순, 경허와 원효가 승가의 모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도가 높다고 저자거리로 나가서 회향하는 화광동진은 불교가 아니라 도교사상일 뿐이다. 부처님 제자들은 도가 높을 수록 승가에 남아서 포교하고 제자를 길러내는등 의무를 다했다. 초기불교가 들어옴으로서 비로서 완전한 불교가 들어온 것 같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다. 

 

1. 처음으로 삼귀의로 구족계를 주게된 것은 언제이고 이 때 몇명의 비구가 필요한가?

--전도선언직후이며 비구 1인이상이 구족계를 줄수 있다. 나중에는 10인으로 늘어나고 지방에서는 다시 5인으로 줄어듦. 

 

 

2.상가에 귀의합니다(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에 '고귀한, 존귀한 , 거룩한의 뜻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형용사를 붙여서 번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남방에서 지금도 두번째(Dutiyampi),세번째(Tatiyampi)라고 붙이는 까닭은?

--두번째 ,세번째 를 번역하지 많고 원문에 없는 고귀한, 존귀한 , 거룩한을 삽입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2600년동안 두번째 ,세번째를 붙여서 삼귀의를 하는 전통은 테라와다불교가 얼마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형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나를 알수 있게 해준다.테라와다 비구율은 227개 사분율은 250개다. 사분율에는 상좌부율에 없는 탑과 불상에 대한 계목이 26개 있다. 상좌부율은 고집스럽게도 탑과 불상에 대한 계목을 율장에 추가하지 않았다. 빠알리율보다 사분율등에서 비구율이 23개나 많고 십송률이 빠알리율보다 36개나 많은 것은 탑이나 불상에 관련된 율이 첨가된 까닭이다. 이처럼 오래된 역사속에서 부처님이 제정한 율에 다른 율을 보태지 않고 오롯이 그 원형을 지켜온 것이 빠알리 경장이며 율장이다.

 

참고:  빠알리 율장에서는 비구율이 227조이고 비구니는 311조인데 한문 사분율에는 비구율이 250조 비구니는 348조, 오분율에서는 비구율이 251조, 십송율는 비구율이 263조, 근본설일체유부율에서는 비구율이 249조, 티베트역의 근본설일체유부율에서 258조로 되어 있다. 

 

 

 

3. 상가에 귀의합니다(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에서 상가(Saṅgha)에는 사쌍팔배인가? 아니면 사쌍팔배+일반비구들인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에서 공양 받아 마땅하고...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 되는 승가에 일반 비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승가에는 아라한부터 예류과까지 포함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네 가지 바른 노력을 닦는,  자애를 닦고 연민을 닦고 더불어 기뻐함을 닦고 평온을 닦고 부정을 닦고 들숨날숨을 닦는 비구들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성승가(聖僧伽)만이 귀의 대상이라면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한다. 일반인은 누가 성스러운 과를 얻었는지 알 수 없으므로 귀의 하기 어렵고, 성스러운 과를 얻은 사람이 없을 때는 귀의할 승가는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승가는 성승가와 범부승가를 의미하는 것이란 것을 알수있다.

 

 

 

4. "I go for refuge to the Buddha"  "고귀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영어와 한글 비교해보자. 어떤 번역이 더 적절한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귀의'라는 표현이 어려우므로 '부처님께 의지합니다.'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과 

 '부처님께 귀의합니다.'의 '귀의' 라는 표현은 본래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어 더 깊은 맛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5.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에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정착시키고 있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스님들이 '복수'라도 '승가'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승가'에는 깊고 넓은 뜻이 있어서 의역을 하지 않고 음역을 한것이다.

승가에는  평등정신,공유(共有)정신, 공의(公議)정신, 주인정신,  무량공덕의 대상, 청정회복 방법, 수계 안거 탁마 소입자선출등 승가운영 방법, 가장 친근한 도반, 민주공동체라는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스님들'이라고 번역하면 이러한 의미를 다 놓치는 것이다.

승가의 의미를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한다. 승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혁명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참고]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M118)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공양 받아 마땅하고, 환대받아 마땅하며, 보시 받아 마땅하고, 합장 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니 이 비구 승가(bhikkhusaṃgho)는 그러하고 이 회중(parisā)은 그러하다....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에는 아라한들이 있다. 이 비구 승가에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를 부수어 화생할 비구들이 있다. 이 비구 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를 부수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옅어져서 한 번만 돌아올 비구들이 있다. 이 비구 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를 부수어 흐름에 든 비구들이 있다. 이 비구 승가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catunnaṃ sati­paṭṭhā­nā­naṃ)을 닦는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네 가지 바른 노력을 닦는,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는, 다섯 가지 기능(pañcannaṃ indriyānaṃ)을 닦는, 다섯 가지 힘을 닦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성스러운 팔정도를 닦는, 자애를 닦는(mettā­bhāva­nā­nuyoga­manu­yuttā), 연민을 닦는, 더불어 기뻐함을 닦는, 평온을 닦는, 부정을 닦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ānāpā­nas­sati­bhāva­nā­nuyoga­manu­yuttā ) 데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

 

.....

그런데 전재성거사는 "초기불교의 경전에서는 승보의 그 구체적인 범주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면서 대지도론을 인용하며 
 승보(慣寶)에는 예류과 일래과 아나함과 아라한과의 사쌍팔배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라고 설명하며 '참사람의 모임'으로 승가를 번역하고 있다. 
율장대품 48p 비구승가(bhikkhusaṃgho)와 회중(parisā)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13. 악마에 대한 이야기(Märakathä)

 

1. 한때 세존께서는 우기가 지나자 수행승들에게 알렸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키고 이치에 맞게 노력을 기울여 위없는 해탈에 이르렀으며 최상의 해탈을 증득했다.Atha kho bhagavā vassaṃvuṭṭho  bhikkhū āmantesi—“mayhaṃ kho, bhikkhave, yoniso manasikārā yoniso sammappadhānā anuttarā vimutti anuppattā, anuttarā vimutti sacchikatā.

 

 수행승들 이여, 그대들도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키고 이치에 맞게 노력을 기울여 위없는 해탈에 이르러야 하며 최상의 해탈을 증득해야 한다."

Tumhepi, bhikkhave, yoniso manasikārā yoniso sammappadhānā anuttaraṃ vimuttiṃ anupāpuṇātha, anuttaraṃ vimuttiṃ sacchikarothā”ti. 

 

2 그 때 악마 빠삐만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시로 말했다.

Atha kho māro pāpim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gāthāya ajjhabhāsi—

 

1) [빠삐만] "그대 악마의 올가미에 묶였네. (You’re bound by the snares of the Lord of Death)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Both human and divine)

그대 악마의 올가미에 묶였네. (You’re bound by the great bond:)

수행자여, 그대 내게서 벗어나지 못했네.(You’re not free from me, monastic)

“Baddhosi mārapāsehi,ye dibbā ye ca mānusā;
Mahā­bandha­na­bad­dhosi, na me samaṇa mokkhasī”ti.

 

 

2) [세존] "나는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났네.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나는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났네. 

죽음의 신이여, 그대가 패했네.“

“Muttāhaṃ mārapāsehi,Ye dibbā ye ca mānusā;
Mahā­bandha­na­ muttomhi,Nihato tvamasi antakā”ti.

 

그러자 악마 빠삐만은 '세존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라고 알아채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그곳에서 즉시 사라졌다.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14. 지체 높은 친구들의 이야기(Bhaddavaggiyasahäyakavatthu)

 

1.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씨 시에서 계실 만큼 계시다가 우루벨라 지역으로 유행을 떠났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길에서 벗어나 한 우거진 숲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 한 나무 아래 앉았다. 

Atha kho bhagavā bārāṇasi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yena uruvelā tena cārikaṃ pakkāmi. Atha kho bhagavā maggā okkamma yena aññataro vanasaṇḍ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ṃ vanasaṇḍaṃ ajjhogāhe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그런데 그때 서른 명의 지체 높은 친구들이 부인을 동반하여 그 우거진 숲에서 놀고 있었다. 한 친구는 부인이 없어서 대신에 기녀를 동반하고 왔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방일하게 놀 때에 그 기녀가 재물을 가지고 도망갔다.

Tena kho pana samayena tiṃsamattā bhaddavaggiyā sahāyakā sapajāpatikā tasmiṃ vanasaṇḍe paricārenti. Ekassa pajāpati nāhosi

*Bhadda,Bhadra,(cp.Vedic bhadra),【形】威嚴的,吉兆的,幸運的,善的。bhaddaka,【中】幸運的事,好事物。【形】好特質的,幸運的。Bhaddakaccanā,【陰】跋陀迦旃延(羅睺羅 (Rāhula) 的母親耶輸陀羅 (Yasodharā) 的另外一個名字)。bhadda-kappa﹐【陽】賢劫

 

2 그러자 그들 친구들은 그 친구를 도와서 그 여자를 찾아 나섰다. 우거진 숲을 헤메다가 세존께서 한 나무 밑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나서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공자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자를 보았습니까?"

“api, bhante, bhagavā ekaṃ itthiṃ passeyyā”ti?

 

[세존]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여자로 무엇을 하려는가?"

 “Kiṃ pana vo, kumārā, itthiyā”ti? 

 

 

[공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 서른 명의 지체 높은 친구들이 부인을 동반하여 이 우거진 숲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부인이 없어서 대신에 기녀를 동반하고 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그때 그들이 방일하게 놀 때에 그 기녀가 재물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그 친구를 도와서 그 여자를 찾아서 우거진 숲을 헤매고 있습니다."

 

3. [세존]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에게 어떠한 것이 더욱 훌륭한 일인가? 여자를 찾는 것인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가?“

“Taṃ kiṃ maññatha vo, kumārā, katamaṃ nu kho tumhākaṃ varaṃ—yaṃ vā tumhe itthiṃ gaveseyyātha, yaṃ vā attānaṃ gaveseyyāthā”ti? 

 

[공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자기 자신을(attānaṃ) 찾는 것이 더욱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tadeva, bhante, amhākaṃ varaṃ yaṃ mayaṃ attānaṃ gaveseyyāmā”ti. 

 

[세존] "공자들이여, 그렇다면, 앉아라.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가르침을 설하겠다."

“Tena hi vo, kumārā, nisīdatha, dhammaṃ vo desessāmī”ti.

 

 

[공자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지체 높은 친구들은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4.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dānakathaṁ), 계행에 대한 이야기(sīlakathaṁ),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saggakathaṁ),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naṃ)의 위험(ādīnavaṃ)과 타락(okāraṃ)과 오염(saṃkilesaṃ)을, 욕망의 여임(nekkhamme )에 대한 이익(ānisaṃsaṃ)을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 서는 그들에게 건강한 마음(kallacitte), 유연한 마음(muducitte), 열린 마음(vinīvara­ṇa­citte), 기뻐하는 마음(udaggacitte), 청정한 마음(pasannacitte)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 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공자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5. 그들은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Te diṭṭhadhammā pattadhammā viditadhammā pari­yogāḷ­ha­dhamm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ṃ­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bhagavantaṃ etadavocuṃ—

 

[공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labheyyāma mayaṃ,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ṃ, labheyyāma upasampadan”ti.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그 존자들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Etha bhikkhavo”ti bhagavā avoca— “svākkhāto dhammo, caratha brahmacariyaṃ sammā dukkhassa antakiriyāyā”ti. Sāva tesaṃ āyasmantānaṃ upasampadā ahosi.

지체 높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끝났다.

 

 

* Bhaddavāggiyā

A group of thirty young men, converted by the Buddha. They had gone picnicking with their wives in a forest glade 

between Bārānasi and Uruvelā. One of them had no wife, and for him they found a courtesan; but she awaited the 

opportunity and ran away with their goods. While seeking for her, they saw the Buddha and enquired if he had seen 

a woman. But he answered, should they not rather seek the "self" than a woman. They all agreed thereto, 

and he preached to them. At the end of the sermon they realized the Truth and were ordained (Vin.i.23f.; DhA.ii.33f). 

Their conversion was one of the subjects sculptured in the Relic Chamber of the Mahā Thūpa. Mhv.xxx.79. According 

to the Extended Mahāvamsa (i.298) they were the step-brothers of the king of Kosala.

 

 

 

논점

 

1."한때 세존께서는 우기(6월~9월)가 지나자 수행승들에게 알렸다."라는 문장에서 부처님이 전도선언후에도 우루웰라로 안가고 제자들과 녹야원에서 우기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우기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제도 하셨을까?

---우기(6월~9월)를 지나서 우루웰라로 갔다는 것에서 부처님이 녹야원에 머문시기와 성도한 시기를 짐작해 볼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도재일은 음력 12월 8일, 

 

2.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키고(如理作意,yoniso manasikārā) 이치에 맞게 노력을 기울여(yoniso sammappadhānā) 위없는 해탈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키는 무엇인가?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통찰하는 것이 여리작의 일것이다.

- yoniso:[adv] wisely; properly; judiciously,根源より,根本的に,如理に,-manasikāra 如理作意

 

3.마라(摩羅)가 다시 찾아왔다. 보리수 아래서 깨닫기 전부터 지금까지 마라(摩羅)가 몇 번이나 찾아 왔나? 마라는 누구인가?

--범천경(S47:18) 고행경(S4:1) 코끼리경(S4:2) 아름다움경(S4:3) 권청경(S6:1) 존중 경(S6:2) 범천 경(S47:18)  사함빠띠 범천 경(S48:57) 칠 년 동안 경(S4:24) 우루웰라 경(A4:21) 도경(道經,S47:43)등.... 이 경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고 49일동안에 설해진 경전들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4."그대들에게 어떠한 것이 더욱 훌륭한 일인가? 여자를 찾는 것인가(yaṃ vā tumhe itthiṃ gaveseyyātha),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인가?(yaṃ vā attānaṃ gaveseyyāthā)?"라는 문장에서 자신을(attānaṃ) 찾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자신을 찾는 방법으로 시계생천, 사성제 통찰을 가르친다. 선종에서는 자신을 찾는 것을 화두로 삼아 "이렇게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공안을 의심하도록 한다.  

 

5."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자기 자신을(attānaṃ) 찾는 것이 더욱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구절에서 아따남(attānaṃ)을 진아(眞我)로 생각하고 부처님도 진아(眞我)를 찾으라고 가르쳤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와 진아(眞我)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문장에 따라 맥락을 보아 분별해야 할것이다.

 

 

 

참고1:

경전에서 자아(atta) 가 나타나는 용례들

 

가.비구들이여, 물질은 내가(atta) 아니다.“Rūpaṃ, bhikkhave, anattā

 

나.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atta)가 아니다.'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다.자기(atta)야 말로 자신(attano)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Attā hi attano nātho, ko hi nātho paro siyā?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Attanā va sudantena nāthaṁ labhati dullabhaṁ.법구경 160번 게송

 

라.세존이신 고따마여, 자아(atta)는 있습니까?" “kiṁ nu kho, bho gotama, atthattā(atthi + attā)”ti?

이와 같이 묻자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Evaṁ vutte, bhagavā tuṇhī ahosi.

 

 

Brahmi-label inscription found in the Manjeera valley 2022년 5월. 'Himabuhiya' 또는 'Himabudhiya'라는 Brahmi 글자는 'Hima'라는 비구니 이름

 

 

참고 2: 부처님의 언어-아라한님(S1.25)

 

[하늘사람]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이

'나는 말한다(Ahaṃ vadāmīti)'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Mamaṃ vadantī)'라고 할 수 있습니까?"

“Yo hoti bhikkhu arahaṃ katāvī,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ā”ti.

 

 

[세존]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은

오로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Yo hoti bhikkhu arahaṃ katāvī,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a;

Loke samaññaṃ kusalo viditvā,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하늘사람]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이

참으로 망상에 사로잡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Yo hoti bhikkhu arahaṃ katāvī,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Mānaṃ nu kho so upagamma bhikkhu,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ā”ti.

 

[세존] "망상을 버린 자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망상의 모든 속박은 남김없이 부서졌네.

개념지어진 것을 넘어서는 현자는 '나는 말한다'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samaññaṃ)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Vohāramattena)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Pahīnamānassa na santi ganthā,Vidhūpitā mānaganthassa sabbe;

Sa vītivatto maññataṃ sumedho,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a,Loke samaññaṃ kusalo viditvā;

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 이 시는 하늘사람이 숲속에 사는 깨달은 중생들이 ', 나의, 나에게'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듣고 불교적인 가르침이 자아가 없는 무아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한 사용이 가능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 시에서

그러한 사용은 다만 관습적인 표현방법에 불과함을 밝히고 있다. 불교에서 자아는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오온)의 복합체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Māra : Generally regarded as the personification of Death, the Evil One, the Tempter (the Buddhist counterpart of the Devil or Principle of Destruction). The legends concerning Māra are, in the books, very involved and defy any attempts at unravelling them. In the latest accounts, mention is made of five Māras  

  1. Khandha Māra,
  2. Kilesa Māra,
  3. Abhisankhāra Māra, : (m.) accumulation; preparation.
  4. Maccu Māra and
  5. Devaputta Māra  

as shown in the following quotations: pañcannam pi Mārānam vijayato jino (ThagA.ii.16);

sabbāmittehi khandha-kilesā-bhisankhāramaccudeva-puttasankhāte, sabbapaccatthike (ThagA.ii.46);

sankhepato vā pañcakilesa-khandhābhi-sankhāra-devaputta-maccumāre abhañji, tasmā . . .

bhagavā ti vuccati (Vsm.211). Elsewhere, however, Māra is spoken of as one, three, or four. Where Māra is one,

the reference is generally either to the kilesas or to Death.

12. Uru­vela ­pā­ṭihā­ri­ya­ kathā

세 번째 송출품 우루벨라의 신통변화(Tatiyabhanavara Uruvelapätihariya .

15. 첫 번째 신통변화(Pathamapatihariya)

pāṭihāriya:a.n.[paṭi-hṛ 的 grd.BSk.prātihārya] 神變,神通,示導,奇蹟.= pāṭihārika,pāṭihīra,pāṭihera.-pakkha 神變月,特別的月

 

 

1. 한때 세존께서는 점차로 유행하면서 우루벨라 지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때 우루벨라 지역에는 세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 나디 깟싸빠, 가야 깟싸빠가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오백 명의 결발행자의 영도자(nāyako), 지도자(vināyako), 최상자(aggo ), 선도자(pamukho), 제도자(pāmokkho)였고, 나디 깟싸빠는 삼백 명의 결발행자의 영도자, 지도자, 최상자, 선도자, 제도자였다. 가야 깟싸빠 는 이백 명의 결발행자의 영도자, 지도자, 최상자, 선도자, 제도자였다.

Atha kho bhagavā anupubbena cārikaṃ caramāno yena uruvelā tadavasari. Tena kho pana samayena uruvelāyaṃ tayo jaṭilā paṭivasanti—uruvelakassapo, nadīkassapo, gayākassapoti. Tesu uruvelakassapo jaṭilo pañcannaṃ jaṭilasatānaṃ nāyako hoti, vināyako aggo pamukho pāmokkho. Nadīkassapo jaṭilo tiṇṇaṃ jaṭilasatānaṃ nāyako hoti, vināyako aggo pamukho pāmokkho. Gayākassapo jaṭilo dvinnaṃ jaṭilasatānaṃ nāyako hoti, vināyako aggo pamukho pāmokkho.

 

 

2 그때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의 암자(assamo)가 있는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Atha kho bhagavā yena uru­velakas­sapassa jaṭilassa assam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uru­velakas­sapaṃ jaṭilaṃ etadavoca

 

[세존] "깟싸빠여, 그대가 괜찮다면, 내가 하릇밤을 제화당(agyāgāre)에서 지내고자 합니다."

“sace te, kassapa, agaru, vaseyyāma ekarattaṃ agyāgāre”ti?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나는 괜찮지만, 그곳에는 신통을 부리는 맹독을 품은 독사인 흉악한 용왕(nāgarājā)이 있는데, 그대를 해칠지도 모릅니다." 

“Na kho me, mahāsamaṇa, garu, caṇḍettha nāgarājā iddhimā āsiviso ghoraviso, so taṃ mā viheṭhesī”ti.

 

두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깟싸빠여, 그대가 괜찮다면, 내가 하릇밤을 제화당에서 지내고자 합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나는 괜찮지만, 그곳에는 신통을 부리는 흡악한 용왕이 있어 맹독을 품은 독사인데, 그대를 해칠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깟싸빠여, 그대가 괜찮다면, 내가 하릇밤을 제화당에서 지내고자 합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나는 괜찮지만, 그곳에는 신통을 부리는 맹독을 품은 독사인 흉악한 용왕이 그대를 해칠지도 모릅니다."

 

[세존] "깟싸빠여, 결코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 제화당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여 주십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제화당에 들어가서 풀잎으로 만든 깔개를 깔고 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바로 하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앉았다.

 

3. 마침 그 용왕은 세존께서 들어온 것을 보았다. 보고나서 고뇌하고 비탄에 잠겨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이 용왕의 피부와 가죽과 근육과 힘줄과 뼈와 골수를 해치지 않고 신통력으로 위세를 꺾어버리면 어떨까?'

 

4. 그래서 세존께서도 그처럼 신통변화를 나투어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그 용 왕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불꽃을 내뿜었다. 세존께서도 화광의 세계에 들어 불꽃을 내뿜었다. 둘이서 화광을 내뿜자, 제화당은 화염에 휩싸이고 광명에 휩싸 여 불타는 것과 같았다. 그러자 그들 결발행자들은 제화당을 둘러싸고 이와 같이 말했다.

 

[결발행자들] "훌륭한 위대한 수행자이지만, ! 용왕에게 희생되는구나."

 

 

5. 그런데 세존께서는 그날 밤이 지나자 그 용왕의 피부와 가죽과 근육과 힘줄과 뼈와 골수를 해치지 않고 위력으로 위세를 꺾어서 발우에 집어 넣은 뒤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보여주었다.

[세존] "깟싸빠여, 이것이 용왕입니다. 그의 위세는 위력으로 꺾였습니다." 

Atha kho te jaṭilā agyāgāraṃ parivāretvā evamāhaṃsu—“abhirūpo vata bho mahāsamaṇo nāgena viheṭhiyatī”ti. Atha kho bhagavā tassā rattiyā accayena tassa nāgassa anupahacca chaviñca cammañca maṃsañca nhāruñca aṭṭhiñca aṭṭhimiñjañca tejasā tejaṃ pariyādiyitvā patte pakkhipitvā uru­velakas­sapassa jaṭilassa dassesi—“ayaṃ te, kassapa, nāgo pariyādinno  assa tejasā tejo”ti.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지녔다. 신통을 부리는 맹독을 품은 독사인 흉악한 용왕을 위력으로 그 위세를 꺾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참으로 나와 같은 거룩한 님(arahā)은 아니다."

“mahiddhiko kho mahāsamaṇo mahānubhāvo, yatra hi nāma caṇḍassa nāgarājassa iddhimato āsivisassa ghoravisassa tejasā tejaṃ ­pariyā­diyis­sati, na tveva ca kho arahā yathā ahan”ti.

 

 

 [송출자]

1) 세존께서는 네란자라 강에서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말했다.

[세존] '만약 그대가 개의치 않는다면, 나는 오늘 밤을 제화당에서 보내고 싶습니다.‘

Nerañjarāyaṃ bhagavā,
Uru­velakas­sapaṃ jaṭilaṃ avoca;
“Sace te kassapa agaru,
Viharemu ajjaṇho aggisālamhī”ti.



2)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나는 개의치 않으니 원한다면 편히 보내십시오. 신통을 부리는 맹독을 품은 독사인 흉악한 용왕이 있는데, 그가 그대를 해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Na kho me mahāsamaṇa garu,
Phāsukāmova taṃ nivāremi;
Caṇḍettha nāgarājā,
Iddhimā āsiviso ghoraviso;
So taṃ mā viheṭhesī”ti.



3) [세존] '깟싸빠여, 나를 결코 해칠 수 없습니다. ! 제화당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여 주십시오.' 
허용된 것을 알고 두려움 없이 공포를 뛰어넘어 들어갔다.

“Appeva maṃ na viheṭheyya,
Iṅgha tvaṃ kassapa anujānāhi agyāgāran”ti;
Dinnanti naṃ viditvā,
Abhīto pāvisi bhayamatīto.




4) 선인(isiṃ)이 들어온 것을 보고 뱀인 용왕(Ahināgo)은 비탄에 빠져 연기를 내뿜었다. 
사람인 용왕(Manussanāgo)도 흔쾌히 거리낌 없이 그곳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Disvā isiṃ paviṭṭhaṃ,
Ahināgo dummano padhūpāyi;
Sumanamanaso adhimano,
Manussanāgopi tattha padhūpāyi.
*ahi:m. [〃] 蛇,毒蛇. -kuṇapa 死蛇. -guṇṭhika,-tuṇḍika 蛇使. -chattaka 茸,きのこ. -vātaka 蛇風病,ペストの類. -vijjā 蛇明,蛇占い.
* aṅgīrasa:m. アンギーラサ(巴利文的片假名發音),放光者.

5) 뱀인 용왕은 분노하여 참지 못하고 화염처럼 불꽃을 내뿜었다. 
화광의 세계에 밝은 사람인 용왕도 불꽃을 내뿜었다.

Makkhañca asahamāno,
Ahināgo pāvakova pajjali;
Tejo­dhātu­su­kusalo,
Manussanāgopi tattha pajjali.



6) 둘이서 화광을 내뿜자, 결발행자들은 제화당을 보고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훌륭한 위대한 수행자이지만, ! 용왕에게 희생되는구나.‘

Ubhinnaṃ sajotibhūtānaṃ,
Agyāgāraṃ ādittaṃ hoti sampajjalitaṃ sajotibhūtaṃ;
Udicchare jaṭilā,
“Abhirūpo vata bho mahāsamaṇo;
Nāgena viheṭhiyatī”ti bhaṇanti.



7) 그날 밤이 지나 뱀인 용왕의 불꽃은 사라졌다. 
그러나 신통을, 갖춘 자의 불꽃은 수승하여 다양한 색채를 띄고 있었다.

Atha tassā rattiyā accayena,
Hatā nāgassa acciyo honti;
Iddhimato pana ṭhitā,
Anekavaṇṇā acciyo honti.




8) 앙기라싸의 몸에는 청색, 적색, 심홍색 그리고
황색
, 수정색의 다양한 색깔의 광휘가 나타났다.

Nīlā atha lohitikā,
Mañjiṭṭhā pītakā phalikavaṇṇāyo;
Aṅgīrasassa kāye,
Anekavaṇṇā acciyo honti.

 

9) 발우에 뱀인 용왕을 집어넣고 바라문(brāhmaṇassa)에게 보여 주었다. 
깟싸빠여, 이것이 그대의 용왕이니 그 위세는 위력에 의해서 꺾였다.

Pattamhi odahitvā,
Ahināgaṃ brāhmaṇassa dassesi;
“Ayaṃ te kassapa nāgo,
Pariyādinno assa tejasā tejo”ti.

 

7. 그리고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의 이러한 신통변화로 인해 세존께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abhippasanno)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여기에 계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항상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첫 번째 신통변화가 끝났다.Atha kho uruvelakassapo jaṭilo bhagavato iminā iddhi­pā­ṭihā­ri­yena abhippasanno bhagavantaṃ etadavoca—“idheva, mahāsamaṇa, vihara, ahaṃ te dhuvabhattenā”ti.

 

 

 

논점

오늘 14번째(9월 1일 시작) 율장대품 마하박가 토론공부에 7명이 참여하여 토론하였고 10시 50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9시 15분에 시작하니 다른 분들도 참여 하시기 바랍니다.()()() 

 

 

1. 성도후 부처님이 보리수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우루벨라 깟싸빠 형제들을 먼저 찾아가지 않은 이유는?

--제도가 어려울걸 알고 상대적으로 제도가 쉬운 오비구를 찾아 간것이다.

 

 

2. 그러나 그는 참으로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na tveva ca kho arahā yathā ahan”ti.)라고 14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

--그 당시에서 붓다buddha, 아라하arahā, 삼사라samsara, 깜마kamma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 용어들을 불교에서 가져다 사용했지만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다. 부처님의 이름도 사람인 용왕(Manussanāgo), 선인(isi), 앙기라사(aṅgīrasa,放光者), 위대한 사문(mahāsamaṇa), 브라흐마나(brāhmaṇa), 대웅(mahāvīrā)등 다양하게 불리우고 있다. 다른 곳에서 앙기라사는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하는 가문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뱀인 용왕(Ahināgo)과 사람인 용왕(Manussanāgo)처럼 뱀과 사람을 모두 나가(nāga)부르는 것을 보면 나가(nāga)라는 단어의 용례를 알수 있을 것이다.

 

 “와셋타여,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삼명경(三明經,Tevijja Sutta)( D13 )

 

 

 

3. 신통력이 아니었다면 부처님이 우루벨라 깟싸빠 형제들을 제도 했을까? 못했을까?

--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4. "위대한 수행자여, 여기에 계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항상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믿음인가?

--완전한 믿음은 아니고 손님으로 맞이한 정도의 신뢰이자 환대이다. 

 

 

 

 

16. 두 번째 신통변화(Dutiya patitianya)

 

1. 한때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의 암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계셨다. 그때 네 하늘나라의 대왕(cattāro mahārājāno)이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두루 우거진 숲을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사방으로 물러나 섰는데(aṭṭhaṁsu), 마치 크나큰 광휘의 다발과 같았다.

Atha kho cattāro mahārājāno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ā kevalakappaṁ vanasaṇḍaṁ obhās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catuddisā aṭṭhaṁsu seyyathāpi mahantā aggikkhandhā.

 

2 그때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날 밤이 지나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됐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 다. 위대한 수행자여, 어떤 자들이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두루 우거진 숲을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사방으로 물러나 섰는데, 마치 크나큰 광휘의 다발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누굽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들은 나를 찾아와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네 하늘나라의 대왕입니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 위대한 수행자는 네 하늘나라의 대왕까지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오다니 크나큰 위력과 크나큰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고 여전히 그 우거진 숲에서 지냈다. 두 번째 신통변화가 끝났다.

 

 

17. 세 번째 신통변화(Tatiya patihariya)

 

1. 한때 신들의 제왕 제석천(devānamindo)이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두루 우거진 숲을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는데(aṭṭhāsi), 마치 크나큰 광휘의 다발과도 같았고, 이전의 광휘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훨씬 우아했다.

Atha kho sakko devānamindo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o kevalakappaṁ vanasaṇḍaṁ obhās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seyyathāpi 

mahāaggikkhandho, purimāhi vaṇṇanibhāhi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a.

 

2 마침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그날 밤이 지나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 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됐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위대한 수행자여, 어떤 자가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두루 우거진 숲을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사방으로 물러나 섰는데, 마치 크나큰 광휘의 다발과도 같았고, 이전의 광휘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훨씬 우아했습니다. 그는 누굽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는 나를 찾아와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신들의 제왕 제석천입니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는 신들의 제왕 제석천까지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오다니 커다락 위력과 크나큰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고 여전히 그 우거진 숲에서 지냈다. Atha kho bhagavā uruvelakassapassa jaṭilassa bhattaṁ bhuñjitvā tasmiṁyeva vanasaṇḍe vihāsi.

세 번째 신통변화가 끝났다.

 

 

18. 네 번째 신통변화(Catuttha patinariya)

 

1. 한때 하느님 싸함빠띠(brahmā sahampati)가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두루 우거진 숲을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는데(aṭṭhāsi), 마치 크나큰 광휘의 다발과도 같았고, 이전의 광휘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훨씬 우아했다.

Atha kho brahmā sahampati abhikkantāya rattiyā abhikkantavaṇṇo kevalakappaṁ vanasaṇḍaṁ obhās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seyyathāpi 

mahāaggikkhandho, purimāhi vaṇṇanibhāhi abhikkantataro ca paṇītataro ca.

 

2 마침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그날 밤이 지나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 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됐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 다. 위대한 수행자여, 어떤 자가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두루 우거진 숲을 비추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사방으로 물러나 섰는데, 마치 크나큰 광휘의 다발과도 같았고, 이전의 광휘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훨씬 우아했습니다. 그는 누굽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는 나를 찾아와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하느님 싸함빠띠입 니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는 하느님 싸함빠띠까지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오다니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고 여전히 그 우거진 숲에서 지냈다.

네 번째 신통변화가 끝났다.

 

 

19. 다섯 번째 신통변화(Pañcama pätihäriya)

1. 한때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큰 제사를 준비했다. 온통 앙가국과 마가다 국(aṅgamagadhā )의 사람들이 많은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움 음식을 가지고 가길 원했다.

Tena kho pana samayena uruvelakassapassa jaṭilassa mahāyañño paccupaṭṭhito hoti, kevalakappā ca aṅgamagadhā 

pahūt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ādāya abhikkamitukāmā honti.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깟싸빠] '지금 내가 큰 제사를 준비했는데, 온통 앙가국과 마가다국의 사람들 이 많은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움 음식을 가지고 올 것이다. 만약 위대한 수행자가 대중들 앞에서 신통변화를 나투면, 위대한 수행자의 이익과 명성이 올라가고 나의 이익과 명성은 줄어들 것이다. 위대한 수행자가 내일 오지 않는 것이 어떨까?'

 

2 그때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마음으로 알고 웃따라꾸루(uttarakuru)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탁발한 음식을 가져와 아노닷따 호수(anotattadahe)에서 식사를 하고 그곳에서 대낮을 보냈다. 그날 밤이 지나서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Atha kho bhagavā uruvelakassapassa jaṭilass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uttarakuruṁ gantvā tato 

piṇḍapātaṁ 

āharitvā anotattadahe paribhuñjitvā tattheva divāvihāraṁ akāsi.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됐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 다. 위대한 수행자여, 왜 어제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은 '왜 위대한 수행자가 오지 않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의 일부를 그대를 위하여 남겨 두었습니다."

 

3. [세존] "깟싸빠여. 그대는 이와 같이 '지금 내가 큰 제사를 준비했는데, 온통 앙가 국과 마가다 국의 사람들이 많은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움 음식을 가지고 올 것이다. 만약 위대한 수행자가 대중들 앞에서 신통변화를 나투면, 위대한 수행 자의 이익과 명성이 올라가고 나의 이익과 명성은 줄어들 것이다. 위대한 수행자가 내일 오지 않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4. [세존] "깟싸빠여, 나는 그대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마음으로 미루어 알고 웃따라꾸루(uttarakuru)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탁발한 음식을 가져와 아노닷따 호수에서 식사를 하고 그곳에서 대낮을 보냈습니다.“

So kho ahaṁ, kassapa, tava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uttarakuruṁ gantvā tato piṇḍapātaṁ āharitvā 

anotattadahe paribhuñjitvā tattheva divāvihāraṁ akāsin”ti.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가 마음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니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고 여전히 그 우거진 숲에서 지냈다 “mahiddhiko kho mahāsamaṇo mahānubhāvo, yatra hi nāma cetasāpi cittaṁ pajānissati, na tveva ca kho arahā 

yathā ahan”ti.

다섯 번째 신통변화가 끝났다.

 

 

 

 

오늘 동지다. 백장암 대중은 팥죽을 먹고 눈을 치웠다. 오늘 공부모임에는 전주에 사는 미경법우님이 처음 들어 왔고 한병식거사님은 전철을 타고가다가 참가하였고 박정규거사님은 산내로 내려와 기영거사님댁에서 함께 참석하였다. 미경법우님의 윤회에대한 질문이 있어서 윤회에대한 각자의 의견을 3분씩 풀어내었다. 박정규거사님의 답변이 선택되어 '오늘의 법사' 칭호를 받았다. 스님들을 제치고 법사가 된 것은 희유한 일이다.  박정규거사님에게 축하의 눈사람을 보낸다.토론공부는 듣는 공부에서 말하는 공부를 지향한다.()  

 

 

논점

 

1.사천왕과 제석천왕과 범천 싸함빠띠(sahampati)가 이 차례로 내려와 앉지 않고 서있는(aṭṭhāsi) 이유는 ?

-신들은 육체의 몸을 갖고있지 않고 빛으로된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땅과 접촉할수 없어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높은 세계에 사는 신들일수록 광휘가 더 찬란하다. 

 

 

3.웃따라꾸루(uttarakuru) 지방은 현재의 어디인가?

-아래 지도를 보라.

 

 

 

 

4. 아노닷따 호수(anotattadahe)는 현재의 어디에 있나?

--우루웰라에서 781km 떨어진 희말라야 기슭에 있다.

 

 

 

5. 앙가국과 마가다 국(aṅgamagadhā )의 사람들이 우루웰라 까쌋빠에게 많은 제사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사람들은 불을 섬기는 제사를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앙가국과 마가다 국에서 우루웰라 삼형제의 영향력은 어느정도 였을까? 두 나라는 언제 합병이 되었고 당시 16개국은 각각 어디인가?  

---위사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앙가, 마가다, 까시, 꼬살라, 왓지, 말라, 쩨띠, 왐사, 꾸루, 빤짤라, 맛차, 수라세나, 앗사까, 아완띠, 간다라, 깜보자라는 칠보가 가득한 이 열여섯의 큰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자가 된다고 하자. 그의 지배력은 8계를 준수하는 것의 16분의 1만큼의 가치도 없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위사카여, 인간들의 왕위는 천상의 행복과 비교하면 너무 작기 때문이다.”   팔관재계 경(A3:70)

 

“Sir, please don’t become fully extinguished in this little hamlet, this jungle hamlet, this branch hamlet.“mā, bhante, bhagavā imasmiṁ khuddakanagarake ujjaṅgalanagarake sākhānagarake parinibbāyi.

There are other great cities such asSanti, bhante, aññāni mahānagarāni, seyyathidaṁ

Campā, Rājagaha, Sāvatthī, Sāketa, Kosambī, and Benares campā rājagahaṁ sāvatthī sāketaṁ kosambī bārāṇasī;

Let the Buddha become fully extinguished there.ettha bhagavā parinibbāyatu.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6. 윤회를 어떻게 설명할까? 

--요즘 아이를 낳지 않으면서 반려견들을 섬기고 사는 것을 보면 조상들이 윤회해서 오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천신을 보았기 때문에 여지없이 믿는다. 

인간이 생각할수 있는 세계관은 단견, 상견, 우연, 인연론.... 윤회론, 업론이 있다.부처님이 시계천을 말하고 데와아누사티(천신을 염함)을 말하고 인과를 말하는 것은 윤회를 전제하고 있다. 불교를 공부할수록 윤회를 거부하기 어렵다.  

 

구족계 받는 형식의 변화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288

20. 깟싸빠 삼형제의 귀의(Tibhätukakassapasarana)

 

1. 그런데 한때 세존께 분소의가 생겨났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 했다.

[세존] '나는 어디에서 분소의를 씻어야 할까?' 그러자 신들의 제왕 제석천이 세존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한 손으로 연못을 파고 난 뒤에 세촌께 이와 같이 말했다. Atha kho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pāṇinā pokkharaṇiṁ khaṇitvā bhagavantaṁ etadavoca

[제석천] "세존이시여, 이곳에서 분소의를 씻으십시오." 그후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idha, bhante, bhagavā paṁsukūlaṁ dhovatū”ti.

 

[세존] '어떤 것 위에서 나는 분소의를 손질할까?' 

 

그러자 신들의 제왕 제석천이 세존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크나큰 바위를 앞에 놓았다.

 

 

[제석천] "세존이시여, 이 위에서 분소의를 손질하십시오."

“idha, bhante, bhagavā paṁsukūlaṁ parimaddatū”ti.

* paṁsu:m.[Sk.pāṃsu] 塵,塵垢,塵土,汚物.-kūla 糞掃衣,弊衣,塵堆衣.-kūladhara着糞掃衣者.-kūla-saññin糞掃物想.-kūlika 糞掃衣者.-kūlikaṅga糞掃衣支

 

2 그후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 무엇에 의지해서 나는 건널까?' 

그러자 까꾸다 나무에 사는 하늘사람이 세존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나뭇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Atha kho kakudhe adhivatthā devatā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sākhaṁ onāmesi

 

[하늘사람] "세존이시여, 여기에 의지하여 건너십시오." “idha, bhante, bhagavā ālambitvā uttaratū”ti.

kakudha tree-&nbsp; a tree the Terminalia Arjuna

그후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나는 어디에 분소의를 펄까?' 그러자 신들의 제왕 제석천이 세존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크나큰 바위를 앞에 놓았다.Atha kho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 mahatiṁ silaṁ upanikkhipi

 

[제석천] "세존이시여, 이 위에서 분소의를 펴십시오."“idha, bhante, bhagavā paṁsukūlaṁ vissajjetū”ti.

 

 

3. 그때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그날 밤이 지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때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 다. 위대한 수행자여, 여기에는 예전에 이 연못이 없었는데, 지금 이곳에 이 연못 이 있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여기에는 예전에 이 바위가 없었는데, 누가 이 바위를 놓은 것입니까? 예전에 까꾸다 나무의 가지가 드리워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드리워진 것입니까?"

4. [세존] "깟싸빠여, 여기 나에게 분소의가 생겨났다. 깟싸빠여, 그때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분소의를 씻어야 할까?' 그러자 신들의 제왕 제석 천이 나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한 손으로 연못을 파고 난 뒤에 나에게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곳에서 분소의를 씻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연못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손으로 파진 것입니다. 깟싸빠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분소의를 손질해야 할까?'

그러자 신들 의 제왕 제석천이 나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크나큰 바위를 놓은 뒤에 나에게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곳에서 분소의를 손질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바위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놓아진 것입니다."

5. [세존] "깟싸빠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 의지해서 건너야 할까?' 그러자 까꾸다 나무에 사는 하늘 사람이 나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까꾸다 나무의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뒤에 나에게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여기에 의지해서 건너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손을 내어준 까꾸다 나무입니다. 깟싸빠여, 나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 분소의를 펴야 할까?' 그러자 신들의 제왕 제석천이 나의 마음에 사념이 일어 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크나큰 바위를 놓은 뒤에 나에게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곳에서 분소의를 펴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 바위는 인간이 아닌 존재 에 의해 놓아진 것입니다."

6.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신들의 제왕 제석천이 도움을 줄 정도이니, 위대한 수행자 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7. 그후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날 밤이 지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 니다."

[세존] "깟싸빠여, 가십시오,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를 보낸 뒤에, 염부제(jambudīpo)가 그것을 따라 이름지어진 장미사과나무(jambuyā)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았다.

“Gaccha tvaṁ, kassapa, āyāmahan”ti uruvelakassapaṁ jaṭilaṁ uyyojetvā yāya jambuyā “jambudīpo” paññāyati, 

tato phalaṁ gahetvā paṭhamataraṁ āgantvā agyāgāre nisīdi.

“You just go ahead, Kassapa, I’ll come.” After dismissing him, he took a fruit from a rose-apple tree—the tree after which the Rose-apple Land of India is named—and then arrived first in the fire hut, where he sat down.

 

장미사과나무( jambuyā )-rose-apple tree

 

 

8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제화당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그대는 어떠한 길로 왔습니까? 내가 그대 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그대가 먼저 와서 제화당에 앉아 있습니다."

9. [세존] "깟싸빠여, 여기 나는 그대를 보내고 염부제가 그것을 따라 이름지어진 장미사과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깟싸빠여, 이 장미사과나무 열매는 색깔이 신선하고 향기가 좋고 맛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드십시오. "Idaṁ kho, kassapa, jambuphalaṁ vaṇṇasampannaṁ gandhasampannaṁ rasasampannaṁ.Sace ākaṅkhasi paribhuñjā”ti.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아닙니다. 그대가 가져온 것이니 그대가 드십시오." 

“Alaṁ, mahāsamaṇa, tvaṁyeva taṁ arahasi, tvaṁyeva taṁ paribhuñjāhī”ti.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나를 먼저 보내고 염부제가 그것을 따라 이름지어진 장미사 과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다니,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0. 그후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날 밤이 지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가십시오.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를 보내고 염부제가 그것을 따라 이름지 어진 장미사과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망고나무(ambo)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았다.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제화당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말했다.

“Gaccha tvaṁ, kassapa, āyāmahan”ti uruvelakassapaṁ jaṭilaṁ uyyojetvā yāya jambuyā “jambudīpo” paññāyati, tassā 

avidūre ambo …pe…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그대는 어떠한 길로 왔습니까? 내가 그대 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그대가 먼저 와서 제화당에 앉아 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여기 나는 그대를 보내고 염부제가 그것을 따라 이름지어진 장미사과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망고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깟싸빠여, 이 망고 열매는 색깔이 신선하 고 향기가 좋고 맛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드십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아닙니다. 그대가 가져온 것이니 그대가 드십시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나를 먼저 보내고 염부제가 그것을 따라 이름지어진 장미사과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망고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다니,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mahiddhiko kho mahāsamaṇo mahānubhāvo, yatra hi nāma maṁ paṭhamataraṁ uyyojetvā tāvatiṁsaṁ gantvā 

pāricchattakapupphaṁ gahetvā paṭhamataraṁ āgantvā agyāgāre nisīdissati, na tveva ca kho arahā yathā ahan”ti.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1. 그후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날 밤이 지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가십시오,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를 보내고 망고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말라끼 나무(āmalakī,emblic myrobalan tree) 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았다.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제화당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말했다.

tassā avidūre āmalakī …pe…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그대는 어떠한 길로 왔습니까? 내가 그대 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그대가 먼저 와서 제화당에 앉아 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여기 나는 그대를 보내고 망고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말라끼 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깟싸빠여, 이 아말라끼 열매는 색깔이 신선하고 향기가 좋고 맛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드십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아닙니다. 그대가 가져온 것이니 그대가 드십시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나를 먼저 보내고 망고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말라끼 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다니,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2 그후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날 밤이 지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가십시오,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를 보내고 아말라끼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리따끼(harītakī,chebulic myrobalan tree) 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았다.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제화당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그대는 어떠한 길로 왔습니까? 내가 그대 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그대가 먼저 와서 제화당에 앉아 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여기 나는 그대를 보내고 아말라끼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리따끼 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깟싸빠여, 이 하리따끼 열매는 색깔이 신선하고 향기가 좋고 맛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드십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아닙니다. 그대가 가져온 것이니 그대가 드십시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나를 먼저 보내고 아말라끼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리따끼 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를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다니,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3. 그후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날 밤이 지난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 니다."

[세존] "깟싸빠여, 가십시오,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를 보내고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tāvatiṁsaṁ)에 가서 빠릿찻따까의 꽃(pāricchattakapupphaṁ)을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았다.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제화당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말했다. “mahiddhiko kho mahāsamaṇo mahānubhāvo, yatra hi nāma maṁ paṭhamataraṁ uyyojetvā tāvatiṁsaṁ gantvā 

pāricchattakapupphaṁ gahetvā paṭhamataraṁ āgantvā agyāgāre nisīdissati, na tveva ca kho arahā yathā ahan”ti.

orchid tree flower&nbsp;&nbsp;pāricchattaka puppha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그대는 어떠한 길로 왔습니까? 내가 그대 보다 먼저 출발했는데, 그대가 먼저 와서 제화당에 앉아 있습니다."

[세존] "깟싸빠여, 여기 나는 그대를 보내고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에 가서 빠릿찾따까의 꽃을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깟싸빠 여, 이 빠릿찻따까의 꽃은 색깔이 신선하고 향기가 좋습니다. 원하신다면 가지십 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수행자여, 아닙니다. 그대가 가져온 것이니 그대가 가지시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나를 먼저 보내고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에 가서 빠릿찾따 까의 꽃을 딴 뒤에 먼저 도착하여 제화당에 앉아 있다니,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4. 한때 그 결발행자들은 불을 공양하려고 해도 땔나무를 팰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결발행자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결발행자들] '우리가 땔나무를 팰 수 없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한 비구 의 신통과 위력 때문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말했다.

 

[세존] "깟싸빠여, 땔나무를 패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비구여, 땔나무를 팼습니다." 오백 개의 땔나무가 한꺼번에 패졌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땔나무들도 패지다니, 위대한 비구는 크나큰 신통과 크 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칙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5. 한때 그 결발행자들은 불을 공양하려고 해도 불을 지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결발행자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우리가 불을 지필 수 없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한 비구의 신통과 위력 때문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말했다.

 

[세존] "깟싸빠여, 불을 지피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비구여, 불을 지폈습니다." 오백 개의 불이 한꺼번에 지펴졌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불도 지펴지다니, 위대한 비구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6. 한때 그 결발행자들은 불을 공양한 뒤에 불을 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결발행자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우리가 불을 끌 수 없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한 비구의 신통과 위력 때문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말했다.

[세존] "깟싸빠여, 불을 끄시오."

 

[우루벨라 깟싸빠] "위대한 비구여, 불을 껐습니다." 오백 개의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불도 꺼지다니, 위대한 비구는 크나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7. 한때 그 결발행자들은 추운 겨울철에 팔일제 동안에 눈이 왔을 때에 네란자라 강에서 가라앉거나 뜨거나하는 부침을 계속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결발행자들이 나와서 몸을 데우도록 오백 개의 화로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자 그 결발행자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결발행자들] "이 화로가 만들어지다니,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한 비구의 신통과 위력이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도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루벨라 깟싸빠] '이렇게 많은 화로를 만들 수 있다니, 위대한 비구는 크나 큰 신통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8. 한때 때 아닌 때에 크나큰 구름이 일어 비를 퍼부어 대홍수가 일어났다. 세존께서 계신 곳까지 물로 뒤덮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Tena kho pana samayena mahā akālamegho pāvassi, mahā udakavāhako sañjāyi.

Yasmiṁ padese bhagavā viharati, so padeso udakena na otthaṭo hoti.

 

[세존] '내가 사방으로 물을 물러나게 하여 가운데 흙먼지의 땅위에서 경행을 하면 어떨까?' 

그래서 세존께서는 사방으로 물을 물러나게 하여 가운데 흙먼지의 땅위에서 경행을 했다. 

“yannūnāhaṁ samantā udakaṁ ussāretvā majjhe reṇuhatāya bhūmiyā caṅkameyyan”ti. Atha kho bhagavā samantā udakaṁ ussāretvā majjhe reṇuhatāya bhūmiyā caṅkami.

 

 

그때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위대한 수행자가 물에 떠내려가 지 않기를 바란다.' '라고 생각하며 배로 많은 결발행자와 함께 세존께서 계신 곳으 로 그 지점으로 왔다.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께서 사방으로 물을 물러 나게 하여 가운데 흙먼지의 땅위에서 경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바로 당신이 위대한 수행자이십니까?"

[세존] "깟싸빠여, 바로 그렇습니다." 세존께서는 공중으로 올라가 배 위에 섰다.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 에게도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루벨라 깟싸빠] ·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다니,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 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 그후 세존께서는 여전히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제공하는 식사를 들면서 그 우거진 숲에 계셨다.

 

 

 

19. 한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 '오랫동안 이 어리석은 자들은 이와 같이 '위대한 수행자는 크나큰 신통 과 크나큰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같은 거룩한 님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결발행자를 자극해 보면 어떨까?' 

“cirampi kho imassa moghapurisassa evaṁ bhavissati‘’‘mahiddhiko kho mahāsamaṇo mahānubhāvo, na tveva ca kho arahā yathā ahan’ti;yannūnāhaṁ imaṁ jaṭilaṁ saṁvejeyyan”ti.

 

그래서 세존께서는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깟싸빠여, 그대는 거룩한 님(arah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거룩한 길(magga)에도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거룩한 님이 되게 하던가 그대가 거룩한 길(magga)에 들어서게 하는 그러한 도닦음(paṭipadā)도 없습니다." 

“neva ca kho tvaṁ, kassapa, arahā, nāpi arahattamaggasamāpanno.

Sāpi te paṭipadā natthi, yāya tvaṁ arahā  assasi, arahattamaggaṁ  samāpanno”ti.

 

그러자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세존이서여, 저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Atha kho uruvelakassapo jaṭilo bhagavato pādesu sirasā nipatitvā bhagavantaṁ etadavoca“labheyyāhaṁ,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labheyyaṁ upasampadan”ti.

 

 

20. [세존] "깟싸빠여, 그대는 오백 명의 결발행자의 영도자, 지도자, 최상자, 선도 자, 제도자이다. 

그들이 뜻하는 바대로(yathā te maññissanti) 그들이 행하도록(tathā te karissantī), 그들에 대해서도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apalokehi)." 

“Tvaṁ khosi, kassapa, pañcannaṁ jaṭilasatānaṁ nāyako vināyako aggo pamukho pāmokkho.

Tepi tāva apalokehi, yathā te maññissanti tathā te karissantī”ti.

*apaloketi:[BSk. ava-lokayati] ① 視る,照顧す,回顧す,注意す. ② 許可を受ける,聴許される. pp. apalokita. cf. apalokana,apalokin.

 

 

그래서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그 결발행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결발행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존자들이여, 나는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뜻하는 바대로 행하라."“icchāmahaṁ, bho, mahāsamaṇe brahmacariyaṁ carituṁ, yathā bhavanto maññanti tathā karontū”ti.

 

 

[결발행자들] "존자여, 우리들도 오랫동안 위대한 수행자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만약에 존자께서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신다면, 우리 모두가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겠습니다."

“Cirapaṭikā mayaṁ, bho, mahāsamaṇe abhippasannā, sace bhavaṁ, mahāsamaṇe brahmacariyaṁ carissati, sabbeva mayaṁ mahāsamaṇe brahmacariyaṁ carissāmā”ti.

 

21. 그래서 그 결발행자들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Atha kho te jaṭilā kesamissaṁ jaṭāmissaṁ khārikājamissaṁ aggihutamissaṁ udake pavāh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to pādesu sirasā nipatitv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결발행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들 존자들의 구족계가 이루어졌다.

“Etha bhikkhavo”ti bhagavā avoca“svākkhāto dhammo, caratha brahmacariyaṁ sammā dukkhassa antakiriyāyā”

ti.

Sāva tesaṁ āyasmantānaṁ upasampadā ahosi.

 

 

 

2022년 마지막 토론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읽을 내용이 많아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특히 멀리 호주에서 참석하신 분도 계셨고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논점

 

1.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꽃이름이 나온다.염부제는 ‘잠부(jambu)나무가 자라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염부(閻浮)는 잠부(Jambu)나무를 의미하고 제(提)는 섬·육지를 의미하는 범어 dvīpa의 음차이다. dvīpa의 뜻을 따라 염부주(閻浮州)라고도 하며, 다른 음차어로는 염부리(閻浮利), 섬부제(贍部提), 염부제비파(閻浮提鞞波)가 있다. 잠부나무는 대력 15m 정도 크기의 나무로 인도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데 강가 주변에 많이 서식한다. 염부제는  어디인가? 

--다른 천상으로 날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인도의 어디일 것이다. 

 

2. "그들이 뜻하는 바대로(yathā te maññissanti) 그들이 행하도록(tathā te karissantī), 그들에 대해서도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apalokehi)." 라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전도의 태도는 불자들이 알아야할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수 있다.

--요즘 포교하는 이들도 불교를 잘 설명하여 자발적인 불자가 되도록 해야 할것이다.

 

3. 까꾸다 나무(kakudhe)에 사는 하늘사람(devatā)은 누구인가?

--지상에 살아도 눈에 보이지 않기에 하늘사람(devatā)이라 부르는 갑다. 

 

4. 길(magga)과 도닦음(paṭipadā)의 차이는 ?

--길(magga)는 점차적인 수행과위이고 도닦음(paṭipadā)은 방법론인 8정도이다.

8정도에서 정견이 가장 중요한데 정견은 업과 윤회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답으로 업이 무엇인가? 

등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정리가 잘 안된다. 

 

마지막 부처님의 유언에서 길(magga)과 도닦음(paṭipadā)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승가'에 대해서 물으라 라는 것은 승가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준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buddhe)나 법(dhamme)이나 승가(saṅghe)나 도(magge)나 도닦음(paṭipadāya)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ṁ 

sakkhimhā bhagavantaṁ sammukhā paṭipucchitun’”ti.

 

 

 

"어떤 비구라도 그에게 스승(sattha), 가르침(dhamma), 승가(saṅgha), 공부법(sikkhāya), 도반(sabrahmacārī)에 대한 삭막함이 제거되지 않고 속박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가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함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불가능하다.여기 비구는 스승(sattha), 가르침(dhamma), 승가(saṅgha), 공부법(sikkhāya), 도반(sabrahmacārī)에 대해 회의하고 의심하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한다. 회의하고 의심하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그 비구의 마음은 근면과 전념과 인욕과 노력으로 기울지 못한다." 마음의 삭막함 경(M16)

 

 

 

 

22 그런데 결발행자 나디 깟싸빠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디 깟싸빠] '나의 형제들에게 재앙이 닦친 것은 아니겠지.' 그는 결발행자들을 보냈다.

 

[나디 깟싸빠] "가서 나의 형제에 대하여 알아보라."

 

 

그리고 스스로 삼백명의 결발행자와 함께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나디 깟싸빠] "깟싸빠여, 좋은 일입니까?"“idaṁ nu kho, kassapa, seyyo”ti?

 

[우루벨라 깟싸빠] "형제여, 그렇다네. 좋은 일이네."“Āmāvuso, idaṁ seyyo”ti.

 

그러자 그 결발행자들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 려 보내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결발행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비구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들 존자들의 구족계가 이루어졌다.

 

23. 그런데 결발행자 가야 깟싸빠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그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가야 깟싸빠] '나의 형제들에게 재앙이 닦친 것은 아니겠지.' 그는 결발행자들을 보냈다.

 

[가야 깟싸빠] "가서 나의 형제에 대하여 알아보라." 그리고 스스로 이백명의 결발행자와 함께 결발행자 우루벨라 깟싸빠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가야 깟싸빠] "까싸빠여, 좋은 일입니까?"

 

[우루벨라 깟싸빠] "형제여, 그렇다네. 좋은 일이네." 그러자 그 결발행자들은 모발더미, 변발더미, 짐더미, 제구더미들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결발행자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비구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들은 괴로움의 종식 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아라!" 이렇게 해서 그들 존자들의 구족계가 이루어졌다.

 

 

24. 세존의 가피에 의해서 오백 땔나무가 패지지 않거나 패지고, 불이 붙지 않거나 붙고, 불이 꺼지지 않거나 꺼지니, 오백 개의 화로가 만들어지니,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삼천 오백의 신통변화가 이루어졌다. 깟싸빠 삼형제의 귀의가 끝났다.

 

 

 

불타오름 경

 

21. 연소의 법문에 대한 이야기(Aditta pariyayakatha)

 

1. 한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지역에 계실만큼 계시다가 가야씨싸 산을 향하 여 모두가 예전의 결발행자인 천명의 크나큰 비구의 무리와 함께 출발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가야 시의 가야씨싸 산에서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지냈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Atha kho bhagavā uruvelāyaṁ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yena gayāsīsaṁ tena pakkām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bhikkhusahassena sabbeheva purāṇajaṭilehi.Tatra sudaṁ bhagavā gayāyaṁ viharati gayāsīse saddhiṁ

bhikkhusahassena.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세존] "비구들이여, 일체가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체가 불타고 있는가?

 

1) 비구들이여, 시각도 불타고 있고 형상도 불타고 있고 시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 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Sabbaṁ, bhikkhave, ādittaṁ.Kiñca, bhikkhave, sabbaṁ ādittaṁ?Cakkhu ādittaṁ, rūpā ādittā, cakkhuviññāṇaṁ ādittaṁ, cakkhusamphasso āditto, yamidaṁ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mpi ādittaṁ.Kena ādittaṁ?

Rāgagginā dosagginā mohagginā ādittaṁ,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ādittanti vadāmi.

 

 

2) 비구들이여, 청각도 불타고 있고 소리도 불타고 있고 청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청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청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3) 비구들이여, 후각도 불타고 있고 냄새도 불타고 있고 후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후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4) 비구들이여, 미각도 불타고 있고 맛도 불타고 있고 미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미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미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 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촉각도 불타고 있고 감촉도 불타고 있고 촉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촉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촉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 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6) 비구들이여, 정신도 불타고 있고 법()도 불타고 있고 정신의식도 불타고 있고 정신접촉도 불타고 있고 정신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3. [세존] 1)."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시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Evaṁ passaṁ,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cakkhusmimpi nibbindati, rūpesupi nibbindati, cakkhuviññāṇepi

nibbindati, cakkhusamphassepi nibbindati, yamidaṁ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smimpi nibbindati.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청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소리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청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 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후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냄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접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 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미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맛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접촉 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미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 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분명히 안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촉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촉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분명히 안다.

 

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정신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법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정신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manasmimpi nibbindati, dhammesupi nibbindati, manoviññāṇepi nibbindati, manosamphassepi nibbindati,

yamidaṁ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smimpi

nibbindati,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그가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They understand that birth has come to an end, that the spiritual life has been fulfilled, that the job has been done, that there is no further state of existence.”

 

4. 세존께서 이처럼 말씀하시자 그 비구들은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환회하여 기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에, 그 천 명의 비구들의 마음은 집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되었다. 연소의 법문이 끝났다.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ṁ bhaññamāne tassa bhikkhusahassassa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ṁsu.

 

세 번째 송출품 우루벨라의 신통변화가 끝났다.

Ādittapariyāyasuttaṁ niṭṭhitaṁ.

 

 

 

논점

 

1. 상두산(gayāsīse)에 올라서 연소법문을 설하였는데 상두산(象頭山)은 어디인가? 우리나라에 가야산 상왕산이 많은 이유는?

= 코끼리(gayā) 머리(sīse)를 닮은 산이라서 상두산이다. 원래 가자(Gaja)가 코끼리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가야(gayā)가 코끼리라는 의미로 사용됨. 가야와 상왕과 상두는 같은 의미.

아소까왕시대에는 부처님을 조각하는 것이 불경하다고 생각되어 여러가지 동물(소, 말,사자,코끼리,바퀴.보리수등)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가야산, 상왕산은 사실 붓다산, 부처산, 부처님산이다. 

 

 

2. 육근-육경-육촉-삼수-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는 설명을 어떻해 이해할까?

="탐욕 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죽음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으로 불타고 있다"

 

 

 

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시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 촉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그는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사라져서 해탈한다."

위 문장에서처럼 싫어하여 떠나는 것이 느낌에서 끝나는 이유는 ?

---느낌까지 첫번째 화살

---애착은 두번째 화살

* 수행은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

 

 

 

4.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 사라지고-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되었다'는 궁극의 앓이 생겨난다."이러한 수행단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무상․고․무아의 통찰과 염오(厭惡, nibbida-)-이욕(離慾, vira-ga)-해탈(解脫, vimutti)-구경해탈지를 주석서들은 한결 같이 염오를 강한 위빳사나로, 이욕은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로, 해탈은 과(예류과부터 아라한과까지)로, 구경해탈지는 반조의 지혜로 설명하고 있다.

 

 

 

5. "태어남은 부서졌고,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nāparaṁ itthattāyāti 를 더이상 이러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there is no further state of existence)."

이 문장을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옳은 번역인가? 윤회를 알기 쉽게 설명해 보자.

 

“비구들이여, 나의 성문 비구니들 가운데서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서 으뜸인 자는 '밧다 까삘라니(Bhaddā Kapilānī )'이다.”

“비구들이여, 나의 성문 비구들 가운데서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서 으뜸인 자는 소비따(sobhita)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윤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경전에서 많다. 

'전생, 윤회를 말하는 다양한 경전들'이라는 글을 읽어보라. (이 글 쓰는데 3달 걸림)

니까야를 읽어보고 부정이든 긍정이든 하라.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594

 

 

6. 우루엘라에서 부처님의 신통력은 몇번이나 이루어졌나?

3500번+ 

 

 

 

7.  윤회에 대하여 

 

경전에서는 윤회에 대한 설명이 무지 많이 나온다. 이것을 내 기준으로 거부하려 하지 말고 다만 

경전을 읽고 경전에 나온 사실을 말하자.다음과 같이 말하면 된다.

"경전에서는 윤회에 대한 설명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 부처님 말씀을 믿는다. (혹은 그럼에도 나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윤회를 믿거나 부정하는것 둘다 믿음의 차원이다. 갈등을 일으키는 믿음으로 나아가지 말고 "모른다"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판단 중지다" 에 머물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언제 죽을 지 알수 없다는 무상함을 느끼며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수행을 한다.

예를들면 호흡관찰, 자비관, 부정관, 참선, 염불, 경전읽기, 절수행, 보시, 지계등....

불교는 눈으로 보여지는 것(무상하다) 느껴지는 것(괴롭다)등으로 설명되기에 지금 여기에서 누구에게나 경험할수있다. 믿음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어 관념적이 아니다.

정견은 사성제를 아는 것, 즉,고와 고의 원인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견을 업과 윤회를 이해하는 것'으로 설명하면 불교가 어려워진다. 경전에서 나온대로 정견은 '고와 고의 원인을 아는 것'으로 설명하여야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 천국,영생,구원, 원죄등 믿음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설명하기에 관념적이다. 불교를 그런 관념적인 단어로 접근하지 말자.()

 

 

빔비사라 왕의 귀의 1월 12일 오후9시 토론 정리

IV 네 번째 송출품(Catutthabhänavara)

 

22. 빔비싸라 왕의 귀의에 대한 이야기(Bimbisäranamakathä)

 

 

1. 한때 세존께서는 가야시싸 산에 계실 만큼 계시다가 모두가 예전의 결발행자인 천명의 크나큰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라자가하 시로 유행을 떠났다. 세존께 서는 점차로 유행하시면서 라자가하 시에 도착했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의 랏티바나 숲에 있는 쑵빠뿟따 탑묘에 계셨다. Tatra sud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laṭṭhivane suppatiṭṭhe cetiye.

 

 

 

2 그런데 마가다 국의 쎄니야 빔비싸라 왕은 이와 같이 들었다.

 

[빔비싸라] '싸끼야 족의 아들로서 싸끼야 족으로부터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가 라자가하 시에 도착하여 라자가하 시의 랏티바나 숲에 있는 쑵빠뿟따 탑묘에 계시다.

“samaṇo khalu bh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rājagahaṁ anuppatto rājagahe viharati laṭṭhivane suppatiṭṭhe cetiye.

 

 

 

또한 그 세존이신 고따마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입니다.'라고 훌륭한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

Taṁ kho pana bhagavantaṁ gotamaṁ evaṁ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

 

 

 

그는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설법하고 있다. 그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을 갖추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 침을 설한다. 그는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거룩한 삶을 실현한다. 이와 같이 거룩한 님을 친견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3. 그래서 마가다 국의 쎄니야 빔비싸라 왕은 마가다 국의 십이만 명 (dvādasanahutānaṁ)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에게 둘러싸여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 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또한 마가다 국의 십이만 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세존께 인사를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자들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 다. 어떤 자들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합장을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자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을 대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어떤 자들은 말없이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Nahuta,【中】一萬,萬數,直譯︰那由他。Mv.I,41.︰“bahukehi kappanahutehīti.(無數萬劫中)

 

 

4. 그때 마가다 국의 십이만 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바라문들과 장자들] '위대한 수행자가 우루벨라 깟싸빠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루벨라 깟싸빠가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일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가다 국의 십이만 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의 마음에 사유 가 일어난 것을 마음으로 알고 존자 우루벨라 깟싸빠에게 시로써 말씀하셨다.

 

 

 

[세존] 1) "우루벨라에 사는 자여, 무엇을 보고, 여윈 자라고 불리는 그대는 불의 제사를 버렸습니까? 깟싸빠여, 나는 그대에게 그 사실을 묻습니다. 어떻게 그대의 불에 바치는 제물이 버려졌습니까?"

 

 

 

[까싸바] 2) "제사는 형상과 소리와 또한 맛,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여인을 환영합니다. 이것은 티끌이라고 집착의 대상 속에서 알고 그러므로 저는 제사와 공회를 즐기지 않습니다.'

 

 

 

5.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세존] 1) "깟싸빠여, 여기 그대의 정신이 형상과 소리와 또한 맛을 즐기지 않으면, 천상계와 인간계의 어느 곳을 즐기는지 깟싸빠여, 그것을 나에게 말하시오.

 

[갓싸바] 2) "저는 적정의 진리를 보고 집착의 대상을 여의고 아무 것도 없어, 욕망의 존재에 대한 집착을 여의었습니다. 다른 상태로 되지 않고 타자에 의해 이끌어지지도 않으니, 그러므로 저는 제사와 공희를 즐기지 않습니다." 그러자 존자 우루벨라 깟싸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우루벨라 깟싸빠]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의 스승이고, 저는 제자입니다." 그러자 마가다 국의 십이만 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은 이와 같이 생각했다.

 

“satthā me, bhante, bhagavā, sāvakohamasmi; ”satthā me, bhante, bhagavā, sāvakohamasmī”ti.

 

 

 

[바라문들과 장자들] "우루벨라 깟싸빠가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한다."

 

 

 

7. 그때 세존께서는 그 마가다 국의 십이만 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마음으로 알고 차례로 가르침을 설했다. 예를 들어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임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건강한 마음, 유연한 마음, 열린 마음, 기뻐하는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난 것을 알자, 모든 부처님들에게 핵심이 되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을 설했다. , 괴로움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했다.마치 청정하여 반점이 없는 천이 올바로 색깔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마가다 국의 십일만(ekādasanahutānaṁ)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so too, while they were sitting right there, one hundred and ten thousand of those brahmin householders headed by Bimbisāra experienced the stainless vision of the Truth: evameva ekādasanahutānaṁ māgadhikānaṁ brāhmaṇagahapatikānaṁ bimbisārappamukhānaṁ tasmiṁyeva āsane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

 

 

[바라문들과 장자들] '무엇이든 생겨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만(Ekanahutaṁ)명이 재가의 남자신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The remaining ten thousand declared themselves as lay followers.  Ekanahutaṁ upāsakattaṁ paṭivedesi.

 

 

9. 그리고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알고, 진리에 깨우쳐 들어가, 의심을 뛰어넘고 의혹을 제거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신뢰하여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빔비싸라] "세존이시여, 예전에 내가 태자였을 때에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내가 태자였 을 때에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1) '참으로 나를 왕위에 관정시켜주면 좋겠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

 

2) '참으로 나의 영토에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출현하면 좋겠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Tassa ca me vijitaṁ arahaṁ sammāsambuddho okkameyyā’ti, ayaṁ kho me, bhante, dutiyo assāsako ahosi, so me etarahi samiddho.

 

 

 

3) '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을 모시면 좋겠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의 세 번째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Tañcāhaṁ bhagavantaṁ payirupāseyyan’ti, ayaṁ kho me, bhante, tatiyo assāsako ahosi, so me etarahi samiddho.

 

 

 

 

 

4)'참으로 세상에 존귀한 님께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의 네 번째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So ca me bhagavā dhammaṁ deseyyā’ti, ayaṁ kho me, bhante, catuttho assāsako ahosi, so me etarahi samiddho.

 

 

 

5) '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면 좋겠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의 다섯 번째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Tassa cāhaṁ bhagavato dhammaṁ ājāneyyan’ti, ayaṁ kho me, bhante, pañcamo assāsako ahosi, so me etarahi samiddho.

 

 

 

 

 

세존이시여, 예전에 내가 왕자였을 때에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들 이 나에게 이루어졌습니다."

 

 

 

10. [빔비싸라]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존자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나를 재가신도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이 다하도록 귀의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내일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했다.

 

11. 그러자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를 하고 오른 쪽으로 돌아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그날 밤이 지나자 훌륭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 러운 음식을 준비하여 세존께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빔비싸라] "세존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모두가 예전의 결발행자인 천명의 크나큰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라자가하 시로 들어갔다.

 

 

 

12. 그때 신들의 제왕 제석천이 학인의 모습으로 화현하여 부처님을 비롯한 무리의 앞에서 이러한 시를 을으며 갔다.

 

[제석천] 1) "제어된 님으로서 제어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잘 해탈된 님으로서 잘 해탈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황금장식처럼 금색의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에 들어오셨다.

 

2) 고요한 님으로서 고요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잘 해탈된 님으로서 잘 해탈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황금장식처럼 금색의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에 들어오셨다.

 

3) 해탈된 님으로서 해탈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잘 해탈된 님으로서 잘 해탈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황금장식처럼 금색의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에 들어오셨다.

 

4) 건너간 님으로서 건너간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잘 해탈된 님으로서 잘 해탈된 님들인 예전의 결발행자들과 황금장식처럼 금색의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에 들어오셨다.

 

5) 열 가지 처소와 열 가지 힘과 열 가지 가르침을 알아 열 가지를 갖춘 그 세존께서는 천 명의 사람들에계 둘러싸여 라자가하 시에 들어오셨다."

 

 

 

사람들이 신들의 제왕 제석천을 보고 이와 같이 말했다.

 

[사람들] "이 학인은 단아하다. 이 학인은 아름답다. 이 학인은 우아하다. 그런 데 이 학인은 누구의 학인인가? 이와 같이 말하자 신들의 제왕 제석천은 그 사람 들에게 시로써 말했다.

 

[제석천] "모든 경우에 견고하고 제어된 님, 청정한 님, 견줄 수 없는 님, 거룩한 님인 행복한 님이 세상에 있는데, 나는 그를 섬깁니다."

 

14. 마침 세존께서는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의 거처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마련된 자리에 수행승들의 무리와 함께 앉았다. 그러자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부처님을 비롯한 수행승들의 무리에게 훌륭 한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대접하여 제공하고 세존께서 발우에서 손을 떼자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15.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서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빔비싸라] '세존께서는 어디에서 지내는 것이 좋을까?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왕래가 편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오기 쉽고, 낮에는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조용하고 소음이 없고, 인적이 없고, 사람을 여의고, 홀로 명상하기에 알맞은 곳일 것이다.'

 

16. 그래서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빔비싸라] '나의 이 벨루바다 숲은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 지도 않고, 왕래가 편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오기 쉽고, 낮에는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조용하고 소음이 없고, 인적이 없고, 사람을 여의고, 홀로 명상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내가 이 벨루바나 숲을 부처님을 비롯한 수행승의 무리에 보시하면 어떨까?'

Yannūnāhaṁ veḷuvanaṁ uyyānaṁ buddhappamukhassa bhikkhusaṅghassa dadeyyan”ti.

 

 

17. 그리고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는 황금으로 만든 금병을 세존께 바쳤다.

Atha kho rājā māgadho seniyo bimbisāro sovaṇṇamayaṁ bhiṅkāraṁ gahetvā bhagavato oṇojesi

 

[빔비싸라] "세존이시여, 나는 이 벨루바나 숲을 부처님을 비롯한 승가에 기증하겠습니다."세존께서는 그 숭원을 받으셨다.  “etāhaṁ, bhante, veḷuvanaṁ uyyānaṁ buddhappamukhassa bhikkhusaṅghassa dammī”ti.Paṭiggahesi bhagavā ārāmaṁ.

 

그후 세존께서는 마가다 국의 왕 쎄니야 빔비싸라를 법문으로 교화하고 격려하고 북돋우고 기쁘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것을 인연으로 법문을 하고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승원을 받는 것을 허용한다."“anujānāmi, bhikkhave, ārāman”ti.

빔비싸리왕의 귀의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오늘로서 율장대품을 주제로한 21번째 meet 영상 토론입니다.

 

 

 

 

논점

 

 

1.랏티바나 숲에 있는 쑵빠뿟따 탑묘는 어디쯤인가? 탑묘와 탑의 차이는? 

--cetiya(탑묘)와 thupa(탑)의 차이. 탑묘는 부처님 이전에 있었던 서낭당 같은 곳이고 탑은 전륜성왕이나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우기 시작함. 후대에 탑묘는 예배장소가 되고 탑은 그안에 들어가게 되며 위하라는 요사체의 의미로 사용됨 .

 

2. "그 세존이신 고따마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입니다.'라고 훌륭한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경장율장논장을 통털어 빔비사라왕이 처음으로 하는 표현이다. 야사와 친구들, 우루웰라삼형제도 이렇게 말하진 못했다. 빔비사라왕은 어떻게 이러한 표현을 알았을까? 누가 처음에 이런 소문을 퍼뜨렸을까?

--최초로 여래십호를 말한 이는 빔비사라왕이다.  여래십호가 널리 퍼지게 된것은 대전기경등에서 위빠시 부처님, 까쌋빠 부처님을 부르던 이름이었는데 그것을 부처님이 기억해내어 제자들에게 알려주었다고 봄. 

 

 

 

3.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 지도 않고, 왕래가 편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오기 쉽고, 낮에는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조용하고 소음이 없고, 인적이 없고, 사람을 여의고, 홀로 명상하기에 알맞은 곳"은 시내에서 몇km쯤 떨어진 곳 일까? 

--기원정사와 사위성의 거리가 2~3km되므로 보통 3~4km가 떨어져 있었을 것으로 추측됨.

 

4. 제티얀에서 라자가하로 걷는 길은 현재 어느곳일까?

---제티얀에 일본절에서 참배하고 출발하고 있음. 정토회 법륜스님은 제티얀에서 라자가하로 난 산길을 매년 정기적으로 순례하고 있음. 

 

 

5. 십이만명중에서 십일만명이 예류과를 얻고 일만명이 재가자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야사와 야사의 친구, 지체높은 자제들 삼십명, 가섭삼현제 천명,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이백오십명,  예류과를 얻은 십이만 명의 바라문들과 장자들, 마하빠자빠띠와 오백명의 비구니들이 아라한이 된 것들......이렇게 성도 초기에  단체적으로 과위를 단박에 얻는 것은 부처님과 과거생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짐. 

 

6. 최초의 절 죽림정사는 누가 누구에게 보시한 것인가?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이 속한 승가에 보시한 것이다.모든 사찰이 공유물이 된 이유이고 지금도 출가자라면 누구나가 사찰안에서 평등하게 대접하고 대접받는 주인으로 살아야 하는 근거가 됨. 

마하빠자빠띠가 부처님께 가사를 올릴때에도 부처님앞으로 받는 것을 세번 거부하시고 승가의 이름으로 받음심. 그 뒤 기원정사, 꼬삼비 승원등 어떤 보시물이건 모두 승가의 이름으로 받으셨다. 

 

* 이번달 말에 토론공부가 끝납니다.영상토론 참여자들이 마하박가를 공부하며 느낀점을 글로 써서 온라인불자회 게시판에 올려 주셔요. 몇줄이라도 좋습니다. 이런 작업은 다른 참여자들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본인에게는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하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삿짜까 짧은 경 (M35)

󰡒앗사지 존자여, 사문 고따마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인도합니까? 그리고 사문 고따마께서는 가르침을 어떻게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합니까?󰡓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제자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하여 제시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인식은 무상하다. 심리현상들은 무상하다.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아이다. 느낌은 무아이다. 인식은 무아이다. 심리현상들은 무아이다. 알음알이는 무아이다.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은 무아이다.󰡓라고. 악기웻사나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하십니다.󰡓

 

 

 

 

 

 

 

 

 

* 부처님의 초기설법 5곳에 나타나는 차이점과 공통점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설법 내용은 상담에도 응용가능할까? )

 

오비구= 사성제- 무아경-

야사와 친구들= 시계천 -

지체높은 자제들= 나를 찾아라

우루웰라가섭= 불타오름경

사리뿟따 =연기법송

 

싸리뿟따와 앗사지 만남 1월 19일 오후9시 토론 정리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존재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23.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이야기(Sāri­putta­mo­g­gal­lā­na­pabbaj­jā­kathā)

 

1. 한때 유행자 싼자야가 라자가하 시에서 이백오십 명의 크나큰 유행자의 무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 싸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유행자 싼자야에게서 청정한 삶을 닦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약속을 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 '먼저 불사(不死)에 도달하는 자가 다른 자에게 알려 주자.'

2 그때 존자 앗싸지가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라자가하 시로 탁발하러 가는데,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바라보거나 돌아보거나 굽히거나 펴거나 단정하게 눈을 아래로 향하고 위의를 갖추고 들어갔다. 그때 유행자 싸리뿟따가 존자 앗싸지가 탁발을 하면서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바라보거나 돌아보 거나 굽히거나 펴거나 단정하고 눈을 아래로 향하고 위의를 갖추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생각했다.

 

[싸리뿟따] '세상에 거룩한 님이나 거룩한 경지로 가는 길을 갖춘 님이 있다면, 이 수행승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이 수행승에게 다가가서 '그대는 누구에 의지하여 출가했고,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고, 누구의 가르침을 좋아하는가?'라고 물어보면 어떨까?'

3. 그러나 유행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생각했다.

[싸리뿟따] '이 수행승은 집안으로 들어가 탁발하기 때문에 지금은 적당한 시간 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자를 위해 길을 배운 이 수행승을 따라가면 어떨까?' 그후 존자 앗싸지는 라자가하 시에서 탁발을 하고 탁발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래서 유행자 싸리뿟따는 존자 앗싸지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앗싸지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 섰다. 한쪽에 서서 유행자 싸리뿟따는 존자 앗싸지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청결하고 피부색은 맑고 깨끗합니다. 그대는 누구에 의지하여 출가했고,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고, 누구의 가르침을 좋아합니까?“

 

4. [앗싸지] "벗이여, 싸끼야 족 출신의 싸끼야의 아들인 위대한 수행자가 있습니 다. 나는 그 세존께 의지해서 출가했고, 그 세존께서 나의 스승이고, 나는 세존의 가르침을 좋아합니다."

[싸리뿟따] "그런데, 존자의 스승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가르칩니까?"

[앗싸지] "벗이여, 나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내기입니다.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신참입니다. 저는 상세하게 가르침을 설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간략하게 그 사실을 설하겠습니다." 

 

그러자 유행자 싸리뿟따는 존자 앗싸지에게 말했다.

[싸리뿟따] "벗이여,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적거나 많거나 설해 주십시오, 그 의미를 나에게 설해 주십시오. 나의 바람은 오직 그 의미뿐 많은 문구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5. 그러자 존자 앗싸지는 유행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은 법문을 말했다.

[앗싸지] "사실(법)들은 원인으로 생겨나며 그 원인을 여래는 설합니다. 그것들이 소멸하는 것 또한 위대한 수행자께서 그대로 설합니다."

“Ye dhammā hetuppabhavā,Tesaṁ hetuṁ tathāgato āha;

Tesañca yo nirodho,Evaṁvādī mahāsamaṇo”ti.

 

 

그때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유행자 싸리뿟따에게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싸리뿟따]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싸리뿟따] "만약 오로지 이것만이라고 하여도 오히려 이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니, 그대들은 이미 근심 없는 진리를 꿰뚫었으니, 지난 수천억 우주기 중에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6그후 유행자 싸리뿟따가 유행자 목갈라나가 있는 곳으로 찾아 갔다. 유행자 목갈라나는 유행자 싸리뿟따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유행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목갈라나]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청결하고 피부색은 맑고 깨끗합니다. 벗이 여, 그대는 어떻게 불사(不死)를 얻은 것입니까?""Kacci no tvaṁ, āvuso, amataṁ adhigato”ti?

싸리뿟따] "벗이여, 그렇습니다. 불사를 얻었습니다.“Āmāvuso, amataṁ adhigato”ti.

 

 

[목갈라나] "벗이여, 그런데 어떻게 불사를 얻은 것입니까?"

7. [싸리뿟따] "벗이여, 여기 나는 수행승 앗싸지가 탁발을 하면서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바라보거나 돌아보거나 굽히거나 펴거나 단정하고 눈을 아래로 향 하고 위의를 갖추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 세상에 거룩한 님이나 거룩한 경지로 가는 길을 갖춘 님이 있다면, 이 수행승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이 수행승에게 다가가서 '그대는 누구에 의지하여 출가했고, 그대의 스승 은 누구이고, 누구의 가르침을 좋아하는가?'라고 물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 습니다."

 

[싸리뿟따]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이 수행승은 집안으로 들어가 탁발하기 때문에 지금은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내가 이 수행승의 뒤를 따라서 원하는 자에 의해 알려진 길을 따라가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벗이여, 그후 수행 승 앗싸지는 라자가하 시에서 탁발을 하고 탁발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존자 앗싸지가 있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앗싸지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 섰습니다. 한쪽에 서서 나는 존자 앗싸지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싸리뿟따]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청결하고 피부색은 맑고 깨끗합니다. 그대 는 누구에 의지하여 출가했고,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고, 누구의 가르침을 좋아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9. [앗싸지] '벗이여, 싸끼야 족 출신의 싸끼야의 아들인 위대한 수행자가 있습니다. 나는 그 세존께 의지해서 출가했고, 그 세존께서 나의 스승이고, 나는 세존의 가르침을 좋아합니다.‘

[싸리뿟따] '그런데, 존자의 스승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가르칩니까?'

[앗싸지] '벗이여, 나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신참입니다. 저는 상세하게 가르침을 설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간략하게 그 사실을 설하겠습니다.' 그러자 나는 수행승 앗싸지에게 말했습니다.

[싸리] '벗이여, 그렇게 해주십시오.' 적거나 많거나 설해 주십시오, 그 의미를 나에게 설해 주십시오. 나의 바람은 오직 그 의미뿐 많은 문구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10. [싸리뿟따] "그러자 수행승 앗싸지는 나에게 이와 같은 법문을 말했습니다.

 

[앗싸지] '모든 법은 원인으로 생겨나며 그 원인을 여래는 설합니다. 그것들이 소멸하는 것 또한 위대한 수행자께서 그대로 설합니다." “Ye dhammā hetuppabhavā,Tesaṁ hetuṁ tathāgato āha;

Tesañca yo nirodho,Evaṁvādī mahāsamaṇo”ti.

 

그때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유행자 목갈라나에게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

[목갈라나]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nti.

 

[목갈라나] "만약 오로지 이것만이라고 하여도 오히려 이것이 올바른 가르침이며, 그대들은 이미 근심 없는 진리를 깨달았으니, 지난 수천억 우주기 중에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Now this is the truth, even just this much—  Eseva dhammo yadi tāvadeva,

The sorrowless state that you have penetrated,   Paccabyattha padamasokaṁ;

Unseen and neglected   Adiṭṭhaṁ abbhatītaṁ,

For innumerable eons.”  Bahukehi kappanahutehī”ti.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이야기가 끝났다.

* Nahuta,【中】一萬,萬數,直譯︰那由他。Mv.I,41.︰“bahukehi kappanahutehīti.(無數萬劫中)

 

 

 

 

논점

 

1. '"사실들은 원인으로 생겨나며 그 원인을 여래는 설합니다. 그것들이 소멸하는 것 또한 위대한 수행자께서 그대로 설합니다.(Ye dhammā hetuppabhavā,Tesaṁ hetuṁ tathāgato āha;Tesañca yo nirodho,Evaṁvādī mahāsamaṇo)라는 게송의 의미는 ? 이 게송을 '연기법송'이라 부르는 이유는 ? 

--12연기를 설하고 결론적으로 읊은 게송들과 같은 의미 즉, 연기법의 순관과역관을 설명하고 있으며 4성제를 설명하고 있다. 

 

 

2. 보리수하에서 읊은 첫번째 게송과 두번째 게송은 다음과 같다. 연기법송과 다음 두가지 게송에서 나타나는 인(hetu)과 연(paccayā)의 차이점은? 인연(hetu+paccayā)이 함께 사용될 때에는 어떤 의미가 되나?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연(因緣)은 어떤 의미인가?

--24연중에 첫번째가 因緣(hetupaccaya)이다. 이러한 因緣이 24연을 대표해서 널리 일반인들에게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因緣은 무엇인가? 한 생각 일으키는 것, 마음을 내는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에 따라서 인연이 이루어지고 떠나가고 지속되고 단절된다.(예.연인 사이에 '인연이 다했다'는 '마음이 다했다'는 의미....) 그런데 지금 한 생각을 일으키는 마음, 이전에도 마음이 있고 또 그 이전에도 일으킨 마음이 있어서 끝없이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한 생각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이  마음(의도,결심)가 현재 나의 언어행위와 몸행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1) 원인의 조건(hetupaccaya, 因緣)

(2) 대상의 조건(ārammaṇapaccaya, 所緣緣)

(3) 지배의 조건(adhipatipaccaya, 增上緣)

(4)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anantarapaccaya, 無間緣)

(5)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samanantarapaccaya, 等無間緣) 

(6) 함께 생긴 조건 (sahajātapaccaya, 俱生緣)

(7) 서로 지탱하는 조건(aññamaññapaccaya, 相互緣)

(8) 의지하는 조건(nissayapaccaya, 依止緣)

(9)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upanissayapaccaya, 親依止緣)

(10) 먼 저 생긴 조건(purejātapaccaya, 前生緣)

(11) 뒤에 생긴 조건(pacchājātapaccaya, 後生緣)

(12) 반복하는 조건(āsevanapaccaya, 數數修習緣)

(13) 업의 조건(kammapaccaya, 業緣)

(14) 과보의 조건 (vipākapaccaya, 異熟緣)

(15) 음식의 조건(āhārapaccaya, 食緣)

(16) 기능[根]의 조건 (indriyapaccaya, 根緣)

(17) 禪의 조건(jhānapaccaya, 禪緣)

(18) 도의 조건(maggapaccaya, 道緣)

(19) 서로 관련된 조건(sampayuttapaccaya, 相應緣)

(20) 서로 관련되지 않은 조건(vippayuttapaccaya, 不相應緣)

(21) 존재하는 조건(atthipaccaya, 有緣)

(22) 존재하지 않은 조건(natthipaccaya, 非有 緣)

(23) 떠나가버린 조건(vigatapaccaya, 離去緣)

(24)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avigatapaccaya, 不離去緣)이다.

 

 

보리수하에서 첫번째 읊은 게송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dhamma)가 나타나면,

사실(dhamma)들이 원인을 갖는다(sahetu)는 것을 분명히 알므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kaṅkhā)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Yato pajānāti sahetudhamman”ti.

 

보리수하에서 두번째 읊은 게송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조건지어진 것들은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khayaṁ paccayānaṁ avedī”ti.

 

 

3.수다원을 얻었는데 "벗이여, 그렇습니다. 불사(不死)를 얻었습니다.“Āmāvuso, amataṁ adhigato”ti"라고 말하는 이유는 ?

--불사(amata)는 그당시 사문바라문들이 목표로 하는 수행의 목표였을 것이다. 지금의 열반처럼..... 기독교에서 영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불사(不死)는 인간에게 매력적인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불사(不死)의 의미를 탐진치의 소멸이라고 기존의 사람들과 다르게 표현하신다. 

 

 

 

4.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그대들은 이미 근심 없는 진리를 깨달았으니, 지난 수천억 우주기 중에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Adiṭṭhaṁ abbhatītaṁ,Bahukehi kappanahutehī”ti.)"라는 이런 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말할수 있나?

--셀수 없이 많은 시간을 이렇게 표현 한 것 같다. kappa+ 나후따nahuta(10,000)

 

 

 

5.앗사지는 탁발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리뿟따와 만났다. 지금 조계종에서 탁발을 재개한다면 불교 포교가 활성화 될까?

--기간을 정하고, 탁발하는 형식을 정해서, 격조있게 탁발 한다면 포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신에 한문으로 된 반야심경을 읊는 것에서 탈피하여 설법이나 상담을 할 수 있는 스님들이 탁발하여야한다. 탁발은 수행자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방법이며 불자들이 손쉽게 보시공덕을 짓는 방법이며 늘 전법을 할 수 있는 깨어있는 기회이다. 

 

 

 

*공지: 이번달 1월 26일 목요일에 마하박가 토론공부가 끝납니다.영상토론 참여자들이 마하박가를 공부하며 느낀점을 글로 써서 온라인불자회 게시판에 올려 주셔요. 몇줄이라도 좋습니다. 올려주시는 글은 다른 분들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본인에게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앗사지가 다른 사람에게 법문하는 경

삿짜까 짧은 경 (M35)

󰡒앗사지 존자여, 사문 고따마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인도합니까? 그리고 사문 고따마께서는 가르침을 어떻게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합니까?󰡓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제자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하여 제시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인식은 무상하다. 심리현상들은 무상하다.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아이다. 느낌은 무아이다. 인식은 무아이다. 심리현상들은 무아이다. 알음알이는 무아이다.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은 무아이다.󰡓라고. 악기웻사나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하십니다.󰡓

󰡒앗사지 존자여, 사문 고따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고 하시니, 우리는 참으로 달갑지 않은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고따마 존자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어떤 대화를 한번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의 아주 나쁜 견해를 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출가 1월 26일 오후9시 토론 정리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존재들이 안락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24.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출가이야기(Sāri­putta­mo­g­gal­lā­na­ pabbaj­jā­kathā)

 

1. 그후 유행자 목갈라나는 유행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목갈라나] "벗이여, 세존의 앞으로 갑시다. 세존께서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싸리뿟따] "벗이여, 이곳에 우리에게 의지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백오십 명의 유행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뜻하는 바대로 행하도록, 그들에 대해서도 배려합시다." 

“Imāni kho, āvuso, aḍḍhateyyāni paribbājakasatāni amhe nissāya amhe sampassantā idha viharanti, tepi tāva apalokema.

 

 

그리고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그 유행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유행자들에게 말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 "벗들이여, 우리는 세존의 앞으로 갑니다. 그 세존이 우리의 스승입니다."

[유행자들] "우리는 존자들에 의지하고 존자들을 바라보며 여기서 지내고 있습 니다. 만약 존자들이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살려한다면, 우리 모두가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청정한 삶을 살 것입니다."

“Mayaṁ āyasmante nissāya āyasmante sampassantā idha viharāma, sace āyasmantā mahāsamaṇe brahmacariyaṁ carissanti, sabbeva mayaṁ mahāsamaṇe brahmacariyaṁ carissāmā”ti.

 

2 그래서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유행자 싼자야가 있는 곳을 찾아 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유행자 싼자야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

"벗이여, 우리는 세존의 앞으로 갑니다. 그 세존이 우리 의 스승입니다."

“gacchāma mayaṁ, āvuso, bhagavato santike, so no bhagavā satthā”ti.

 

[싼자야] "벗들이여, 안 된다. 가지 말라. 우리 세 사람이 이 무리를 통솔하자." 

“Alaṁ, āvuso,  agamittha, sabbeva tayo imaṁ gaṇaṁ pariharissāmā”ti.

 

 

두 번째에도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유행자 싼자야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 "벗이여, 우리는 세존의 앞으로 갑니다. 그 세존이 우리 의 스승입니다."

[싼자야] "벗들이여, 안 된다. 가지 말라. 우리 세 사람이 이 무리를 통솔하자." 세 번째에도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유행자 싼자야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 "벗이여, 우리는 세존의 앞으로 갑니다. 그 세존이 우리 의 스승입니다."

[싼자야] "벗들이여, 안 된다. 가지 말라. 우리 세 사람이 이 무리를 통솔하자."

 

3. 그래서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이백오십 명의 유행자를 데리고 벨루바나 정사를 찾아 갔다. 그러나 유행자 싼자야는 그곳에서 입으로부터 뜨거운 피를 토했다. 

Atha kho sāriputtamoggallānā tāni aḍḍhateyyāni paribbājakasatāni ādāya yena veḷuvanaṁ tenupasaṅkamiṁsu. Sañcayassa pana paribbājakassa tattheva uṇhaṁ lohitaṁ mukhato uggañchi.

 

 

세존께서는 싸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나서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저기 오고 있는 두 명의 벗이 꼴리따와 우빠띳싸이다. 그들은 나의 최상의 한 쌍의 제자 최상의 한 쌍의 현인이 되리라.' 

“ete, bhikkhave, dve sahāyakā āgacchanti, kolito upatisso ca. Etaṁ me sāvakayugaṁ bhavissati aggaṁ bhaddayugan”ti.

 

 

[편집자]그들이 심오한 앓의 경계 속에서 집착의 대상이 부서진 가운데 위없는 해탈을 얻자, 

스승께서 벨루바나 정사에 도착하여 이와 같이 수기(byākāsi)를 준 것이다.

They had not even reached the Bamboo Grove,Gambhīre ñāṇavisaye,

Yet had a profound range of knowledge,Anuttare upadhisaṅkhaye;

About the supreme end of ownership, about freedom.Vimutte appatte veḷuvanaṁ,

And the Teacher said of them:Atha ne satthā byākāsi.

 

 

[세존] "저기 오고 있는 두 명의 벗이 꼴리따와 우빠띳싸이다. 

그들은 나의 최상의 한 쌍의 제자, 최상의 한 쌍의 현인이 되리라."

“These two friends are coming,“Ete dve sahāyakā,

Kolita and Upatissa.Āgacchanti kolito upatisso ca;

They will be an excellent pair,Etaṁ me sāvakayugaṁ,

My most eminent disciples.”Bhavissati aggaṁ bhaddayugan”ti.

 

 

 

4. 마침내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와 목갈라나]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오라!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니, 그대는 괴로움의 종식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살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그것이 그 존자들에게 구족계가 되었다.

 

 

5. 그래서 마가다 국의 이름있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세존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했다. 사람들은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

Tena kho pana samayen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māgadhikā kulaputt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anti.

Manussā ujjhāyanti khiyyanti vipācenti

 

 

[사람들] "수행자 고따마가 아들을 빼앗았다. 수행자 고따마가 남편을 빼앗았다. 수행자 고따마가 혈통을 끊어놓았다. 

“aputtakatāya paṭipanno samaṇo gotamo, vedhabyāya paṭipanno samaṇo gotamo, kulupacchedāya paṭipanno samaṇo 

gotamo,“The ascetic Gotama is making us childless; he’s making us widows. He’s breaking up good families

 

오늘 그는 천명의 결발행자를 출가시켰고, 산자야의 제자였던 이백오십 명의 유행자를 출가시켰다. 

 idāni anena jaṭilasahassaṁ pabbājitaṁ, imāni ca aḍḍhateyyāni paribbājakasatāni sañcayāni pabbājitāni.

A thousand dreadlocked ascetics have now gone forth because of him, and also these two hundred and fifty wanderers who were disciples of Sañcaya.

 

마가다 국의 이름있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수행자 고따마에게서 청정한 삶을 영위한다." 

Ime c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māgadhikā kulaputtā samaṇe gotame brahmacariyaṁ carantī”ti.

All these well-known gentlemen from Magadha are practicing the spiritual life under the ascetic Gotama.”

 

 

또한 수행승들을 보고 이와 같은 시로써 꾸짖었다.

[사람들] "위대한 수행자가 마가다 국의 기립밧자에 왔다. 

모든 싼자야의 추종자를 데리고 이제 누가 그에게 넘어갈 것인가?“

“The Great Ascetic has arrived“Āgato kho mahāsamaṇo,

At Giribbaja in Magadha.māgadhānaṁ giribbajaṁ;

After leading away all of Sañcaya’s disciples,Sabbe sañcaye netvāna,

Who will he lead away next?”kaṁsu dāni nayissatī”ti.

*Giribbaja : name for Rājagaha.The place was called Giribbaja (mountain stronghold) because it was surrounded by five hills -  Pandava, Gijjhakūta, Vebhāra, Isigili and Vepulla

 

수행승들은 그 사람들이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자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그 사실을 알렸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잡음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칠일 갈 것이다. 칠일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을 보고 이와 같이 '위대한 수행자가 마가다 국의 기립밧자에 왔다. 모든 싼자야의 추종자를 데리고 갔으니, 지금 누가 또 그에게 넘어갈 것인가?'라고 시로써 꾸짖는 자가 있다면, 그대들은 이러한 시로써 응답하라.

 

[세존] '위대한 영웅인 여래는 바른 진리로써 이끈다. 

진리로써 이끄는 현자를 누가 질시할 수 있는가?"

‘Indeed, the Great Heroes, the Buddhas,‘Nayanti ve mahāvīrā,

Lead by means of a good teaching.saddhammena tathāgatā;

When you understand this, what indignation can there be Dhammena nayamānānaṁ,

Toward those who lead legitimately?’” usūyā vijānatan’”ti.

 

 

7. 그러자 사람들이 수행승들을 보고 이러한 시로써 비난했다.

[사람들] "위대한 수행자가 마가다 국의 기립밧자에 왔다. 모든 싼자야의 추종자를 데리고 갔으니, 지금 누가 또 그에게 넘어갈 것인가?" 수행승들은 그 사람들에게 응답했다.

 

[수행승들] "위대한 영웅인 여래는 바른 진리로써 이끈다. 진리로써 이끄는 현자를 누가 질시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싸끼야의 아들들인 수행자들이 비법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잡음은 오직 칠일 간만 지속되고, 칠일이 지나자 사라졌다. Manussā dhammena kira samaṇā sakyaputtiyā nenti no adhammenāti sattāhameva so saddo ahosi, sattāhassa accayena antaradhāyi.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출가이야기가 끝났다. 네 번째 송출품이 끝났다.

 

 

 

논점

 

 

 

1."수행승들이여, 저기 오고 있는 두 명의 벗이 꼴리따와 우빠띳싸이다. 그들은 나의 최상의 한 쌍의 제자 최상의 한 쌍의 현인이 되리라."   부처님은 어떻게 출가전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있었을까? 

..꼴리따와 우빠띳싸는 사람이름으로 나오지만 지명이름으로도 나오므로 이 것은 지역이름 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뿟따(사리의 아들) 목갈라나라는 이름이야말로 그들의 이름 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이름은 출가하고 법명으로 지어진게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한 이들에게 법명을 지어주는 관습은 없었다.

 

 

 

2. 율장 대품에는 편집자의 표현이 들어간 곳이 여러군데 있다. 경전에도 그러한가?

예) [편집자] "그들이 심오한 앓의 경계 속에서 집착의 대상이 부서진 가운데 위없는 해탈을 얻자", 

"스승께서 벨루바나 정사에 도착하여 이와 같이 수기(byākāsi)를 준 것이다."

....마하박가에서는 아래와 같은 다양한 곳에서 편집자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로써 세상에 여섯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그때 세상에 일곱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야사의 출가가 끝났다."

" 이렇게 해서 그때 열한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네 명의 재가친구의 출가이야기가 끝났다."

"이렇게 해서 그때 예순한 명의 거룩한 님이 생겨났다. 오십 명의 재가친구의 출가이야기가 끝났다."

"세존의 가피에 의해서 오백 땔나무가 패지지 않거나 패지고, 불이 붙지 않거 나 붙고, 불이 꺼지지 않거나 꺼지니, 오백 개의 화로가 만들어지니,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삼천 오백의 신통변화가 이루어졌다. 깟싸빠 삼형제의 귀의가 끝났다."

 

 

 

3. 라자가하는 기립바자(산으로 둘러쌓인 요새,Giribbaja)라고 불린다. 그러한 환경조건이 마가다국이 인도를 통일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자연적인 요새 덕분에 전쟁에서 매우 유지한 위치에 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16개국을 통일하는데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래지도에서 산안에 둘러 쌓인 곳은 빔비사라왕의 구 왕사성, 빨간 사각형이 있는곳은 아자카삿투가 살던 신 왕사성이다.  

 

4. 여기서도 부처님은 스스로를 위대한 사문(mahāsamaṇo) 현자(vijānatan) 위대한 영웅(mahāvīrā) 여래(tathāgatā)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번 독용과 대결하는 장에서는 부처님이 스스로를 사람인 용왕(Manussanāgo), 선인(isi), 앙기라사(aṅgīrasa,放光者), 위대한 사문(mahāsamaṇa), 브라흐마나(brāhmaṇa)등 다양하게 명명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부처님이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전통의 사람들에게 붓다를 인식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최고의 권위라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자신에 비유하였다. 이 것이 언어의 불완전성이고, 상대밥에게 가장 이해시키기 쉬운 언어의 활용이었다. 이렇게 유연성이 많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지금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것이다.  

 

 

5.  "벗이여, 이곳에 우리에게 의지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백오십 명의 유행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뜻하는 바대로 행하도록, 그들에 대해서도 배려합시다." 라는 말이나 사리뿟따가 산자야에게 벗이여!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산자야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동등한 관계라는 느낌이든다.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서로가 서로를 벗이여, 라고 부른 점에서 셋이서 공동체의 대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만 나이는 산자야기 가장 많았을 것이다. 

 

 

 

6. 마하박가를 영상토론으로 공부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자.

 

.....마하박가를 23주에 걸쳐서 공부했다. 마하박가에는 부처님의 깨달음부터 사리뿟다의 출가 이야기 까지 시간순으로 등장한다. 이점은 매우 중요해서 전도선언이후에 제자들이 삼귀의로서 출가시키는 제도가 생겨났음을 알수 있는등 다양한 것을 알수 있다. 또한 가장 먼저 설해지는 12연기법문- 초전법륜경(4성제를 3전 12행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기 밖에 없고 중도가 8정도라는 것을 알수 있다) -  무아경(가장 쉽게 설명하는 무아에 대한 설명...)-  시계천법문(불교에서 재가자에게 강조하는 부분으로 믿음의 부분이다)- 불의 설법(연소경) - 연기법송(모든 법은 원인을 가지고 일어난다)등 정말로 중요한 경전들이 나타난다. 현재 조계종의 승가대학에서 배우는 교재들(반야심경-금강경- 화엄경-선어록)보다 마하박가와 그안에 나타나는 경전들을 배우는 것이 더 불교를 이해하는데 효과적이고 더 수행에 도움이 될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마하박가는 한번 읽고 마는 것은 부족하고 평생 머리맡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이렇게 나의 소감만을 적어본다.  

 

 

*** 

코로나이후로 영상토론이 대중화되어 우리도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매주 목요일에 공부를 했다는 것이 희유한 일이라고 본다. 꼬삼비경에는 "바른견해를 갖게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고 근본적인 것이고 종합적인 것이고 포괄적인 것이라고 나온다." 우리도 이런 토론을 통해서 바른 견해를 갖게 되면 우리의 인생도 그만큼 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안목이 달라짐으로 해서 우리의 신구의 산업도 달라진다. 공부를 마치는 소감을 각자가 이야기 해주셨는데 나의 이야기만 올린다. 다른 분들은 각자가 소감을 올려 주시기 바란다. 이런 작은 일에서 공부모임이 활성화 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어떤 주제와 교재를 가지고 공부할 것인가를 각자가 추천하기로 결의하였다.

 

내가 추천하는 경전 및 교재:

추천하는 이유: 

 

 

*공지: 1월 26일 목요일에 마하박가 토론공부가 끝납니다.율장대품을 주제로 한 23번째 토론이며  마지막 토론 입니다.영상토론 참여자들이 마하박가를 공부하며 느낀점을 글로 써서 온라인불자회 게시판에 올려 주셔요. 몇줄이라도 좋습니다. 올려주시는 글은 다른 분들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줄 것이고 본인에게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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