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p-357p-2.답변 되어질 수 없는(Abyākaraṇīya) 질문
5월 8일 목요일 오후 9시에 '답변되어질 수 없는 질문(Abyākaraṇīyapañha)'에 대해서 기관 거사님의 사회로 공부가 진행됩니다. 네 가지 질문에 대한 4가지 답변방식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① 단언적으로 답해야 할 질문, ② 분석적으로 답해야 할 질문, ③ 질문을 되돌려 주어야 할 질문, ④ 제쳐 두어야 할 질문.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이 4가지를 질문을 잘 구별하하면 오늘날에도 대화 전문가, 상담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질문을 어떻게 잘 구별해야 할까요? 답변되어질 수 없는 질문을 계속 답변하려고 애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byākaroti = 설명하다, 해설하다, 해명하다 (동사) 어근: byā (밖으로) + karoti (하다)
byākaraṇa = 해설, 설명 (명사), -ṇīya: 접미사, "~되어야 할", "~되어야 하는 성질의" 그러므로 byākaraṇīya는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고, **a-**가 붙어 abyākaraṇīya가 되면: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질문, 설명할 수 없는 질문, 답변되어서는 안 되는 질문,답변이 금지된 질문,답하지 않는 질문, 붓다께서 답변을 피하신 질문.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355p.
2. [답변되어질 수 없는 질문] (Abyākaraṇīyapañha)
1.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師拳,ācariyamuṭṭhī)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장로 말룽끼야뿟따가 질문했을 때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bhante nāgasena, bhāsitampetaṃ bhagavatā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ī’ti, puna ca therena mālukyaputtena pañhaṃ puṭṭho na byākāsi.
존자 나가세나여, 이 질문은 알지 못하던가, 숨기는 것이 있는 어느 한쪽에 의존하는 양극단을 갖고 있습니다.
eso kho, bhante nāgasena, pañho dvayanto ekantanissito bhavissati ajānanena vā guyhakaraṇena vā.
존자 나가세나여, 세존께서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로 인해 장로 말룽끼야뿟따에게 알지 못해서 답변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만약에 알면서 답변하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여래에게 가르침에 대한 사권이 있는 것이 됩니다. 이것도 양도논법의 질문으로 그대에게 제기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대가 해명해야 할 몫입니다."
yadi, bhante nāgasena, bhagavatā bhaṇitaṃ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ī’ti, tena hi therassa mālukyaputtassa ajānantena na byākataṃ. yadi jānantena na byākataṃ, tena hi atthi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 ayampi ubhato koṭiko pañho tavānuppatto, so tayā nibbāhitabbo”ti.
2.[나가세나]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장로 말룽끼야뿟따가 질문했을 때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알지 못해서가 아니고, 감추어진 것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bhāsitampetaṃ, mahārāja, bhagavatā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ī’ti, abyākato ca therena mālukyaputtena pucchito pañho, tañca pana na ajānantena na guyhakaraṇena.
대왕이여,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방식이 있습니다. 네 가지란 어떤 것입니까? ①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 ②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 ③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어야 할 질문, ④ 질문을 제쳐 두어야 할 질문입니다.
cattārimāni, mahārāja, pañhabyākaraṇāni. katamāni cattāri? ekaṃsabyākaraṇīyo pañho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paṭipucchābyākaraṇīyo pañho ṭhapanīyo pañhoti.
1) 대왕이여,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은 어떤 것입니까? '물질은 무상한가?'는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느낌은 무상한가?'는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지각은 무상한가?'는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형성은 무상한가?'는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의식은 무상한가?'는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니, 이러한 것이 단언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입니다.
“katamo ca, mahārāja, ekaṃsabyākaraṇīyo pañho? ‘rūpaṃ aniccan’ti ekaṃsabyākaraṇīyo pañho, ‘vedanā aniccā’ti ... pe ... ‘saññā aniccā’ti ... pe ... ‘saṅkhārā aniccā’ti ... pe ... ‘viññāṇaṃ aniccan”ti ekaṃsabyākaraṇīyo pañho, ayaṃ ekaṃsabyākaraṇīyo pañho.
2)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은 어떤 것입니까? '무상한 것이 물질인가?'는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무상한 것이 느낌인가?'는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무상한 것이 지각인가?'는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무상한 것이 형성인가?'는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고), '무상한 것이 의식인가?'는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이니, 이러한 것이 분석적으로 답변해 주어야 할 질문입니다.
“katamo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aniccaṃ pana rūpan’ti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aniccā pana vedanā’ti ... pe ... ‘aniccā pana saññā’ti ... pe ... ‘aniccā pana saṅkhārā’ti ... pe ... ‘aniccaṃ pana viññāṇan’ti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ayaṃ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357p.
3)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어야 할 질문이란 어떤 것입니까? '시각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겠는가?'라는 이것은 질문의 화살을 되돌려 주어야 할 질문입니다.
“katamo paṭipucchābyākaraṇīyo pañho? ‘kiṃ nu kho cakkhunā sabbaṃ vijānātī’ti ayaṃ paṭipucchābyākaraṇīyo pañho.
4) 질문을 제쳐 두어야 할 질문이란 어떤 것입니까? '세상은 영원한 것인가?'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 것인가?' '세상은 유한한 것인가?' '세상은 무한한 것인가?' '세상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 것인가?' '세상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은 것인가?' '영혼과 신체는 동일한 것인가?' '영혼과 신체는 다른 것인가?' '여래께서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여래께서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여래께서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여래께서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쳐 두어야 하는 질문이니, 이러한 것이 질문을 제쳐 두어야 할 질문입니다.
“katamo ṭhapanīyo pañho? ‘sassato loko’ti ṭhapanīyo pañho, ‘asassato loko’ti. ‘antavā loko’ti. ‘anantavā loko’ti. ‘antavā ca anantavā ca loko’ti. ‘nevantavā nānantavā loko’ti. ‘taṃ jīvaṃ taṃ sarīran’ti. ‘aññaṃ jīvaṃ aññaṃ sarīran’ti.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ṃ maraṇā’ti ṭhapanīyo pañho, ayaṃ ṭhapanīyo pañho.
357p.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장로 말룽끼야뿟따가 제기한, 질문을 제쳐두어야 할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무슨 이유로 제쳐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bhagavā, mahārāja, therassa mālukyaputtassa taṃ ṭhapanīyaṃ pañhaṃ na byākāsi. so pana pañho kiṃ kāraṇā ṭhapanīyo?
그것에 답변해야 할 원인hetu이나 이유kāraṇa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질문은 제쳐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인 세존들께는 원인 없고 이유가 없는 언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na tassa dīpanāya hetu vā kāraṇaṃ vā atthi, tasmā so pañho ṭhapanīyo. natthi buddhānaṃ bhagavantānaṃ akāraṇamahetukaṃ giramudīraṇan”ti.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현명하십니다. 참으로 그러하니, 그렇게 받아들이겠습니다."
“sādhu, bhante nāgasena, evametaṃ tathā sampaṭicchāmī”ti
논점
1.한국 스님들은 대화나 토론을 할때 단적으로 말해야 할 때와 분석적으로 말해야 할 때, 그리고 제쳐 놓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일상 생활의 다양한 주제에서 어떻게해야 4가지 방식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할수 있을까요?
2. 우주과학등 과학적 탐구등에서는 제쳐 놓아야 할 질문을 제쳐놓치 않아야 발전을 이루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제쳐 놓아야 할 질문은 없는 것일까요?
355p.
존자 나가세나여, 이 질문은 알지 못하던가, 숨기는 것이 있는 어느 한쪽에 의존하는 양극단을 갖고 있습니다.
---존자 나가세나여, 이 질문은 알지 못하거나 또는 감추려거나 하는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진 질문입니다.
eso kho, bhante nāgasena, pañho dvayanto ekantanissito bhavissati ajānanena vā guyhakaraṇena vā.
“cattāri pañhabyākaraṇāni — ekaṃsabyākaraṇīyo pañho, paṭipucchābyākaraṇīyo pañho, vibhajjabyākaraṇīyo pañho, ṭhapanīyo pañho.
(D33) saṅgītisuttaṃ
8.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나는 왜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범행의 시작과 관련이 없고,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명했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명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명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명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나는 설명했다.”
10. “말룽꺄뿟따여, 그러면 나는왜 이것을 설명했는가? 말룽꺄뿟따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attha 을 주고, 청정범행 ādibrahmacariya 의 시작과 관련되며, 염오 nibbidāya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 virāgāya으로 인도하고, 소멸 nirodhāya로 인도하고, 고요함 upasamāya 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 abhiññāya 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 sambodhāya 으로 인도하고, 열반으 nibbānāya 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설명했다.
kasmā cetaṃ, mālukyaputta, mayā abyākataṃ? na hetaṃ, mālukyaputta, atthasaṃhitaṃ na ādibrahmacariyakaṃ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ṃvattati. tasmā taṃ mayā abyākataṃ. kiñca, mālukyaputta, mayā byākataṃ? ‘idaṃ dukkhan’ti, mālukyaputta, mayā byākataṃ; ‘ayaṃ dukkhasamudayo’ti — mayā byākataṃ; ‘ayaṃ dukkhanirodho’ti — mayā byākata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 mayā byākataṃ. kasmā cetaṃ, mālukyaputta, mayā byākataṃ? etañhi, mālukyaputta, atthasaṃhitaṃ etaṃ ādibrahmacariyakaṃ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tasmā taṃ mayā byākataṃ. tasmātiha, mālukyaputta, abyākatañca me abyākatato dhāretha; byākatañca me byākatato dhārethā”ti. - 말룽꺄 짧은 경(M63)
생각할 수 없음 경(A4:77)
Acintita-sutta
“비구들이여, 네 가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생각하면 미치거나 곤혹스럽게 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부처님들의 부처의 경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 미치거나 곤혹스럽게 된다. 비구들이여, 선(禪)을 닦는 자의 선(禪)의 경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 미치거나 곤혹스럽게 된다. 업의 과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 미치거나 곤혹스럽게 된다. 세상에 대한 사색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면 미치거나 곤혹스럽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생각하면 미치거나 곤혹스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