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만행기- 강진 백련사-월남사지-무위사
4월 1일
강진 백련사에 오다. 강진 백련사는 다산초당과 함께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마음 한쪽으로는 늘 가고 싶었던 곳이다. 또한 아는 지인이 백련사에서 장기 템플스테이를 했는데 무척 좋았다고해서 여러모로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다. 일주문을 통과해서 절에 오르는데 양쪽으로 온통 동백꽃 숲이다. 초등학생들이 동백꽃을 주우며 나를 보자 스님 '안녕하세요!'라며 손을 흔든다. 이렇게 동백꽃으로 뒤덮인 사찰은 여기뿐이지 싶다. 법당에 들어서기전 커다란 받침돌이 인상적이다.법당에는 은은한 사각 등이 불을 밟히고 있다. 아무런 디자인도 하지 않은 은은한 사각 등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법당보살님 말로는 백련사에서 독창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백련사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고 문의를 한다고 한다. 법당 마당에서는 멀리 바닷가가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사찰은 일반 산중 사찰과 분위기가 다르다. 밀물과 썰물같은 애뜻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법당에는 한글 반야심경이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한글 반야심경을 외우기 힘드니 행사때 보고하려고 곳곳에 붙여 놓은 것 같다. 저런 정성을 기울여 반야심경을 외운다해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든건 마찬가지다. 차라리 '무아경'을 독송한다면 외우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권위도 더 있을 것이다. 무아의 특징경(S22:59)을 소개한다.
한때 세존께서 바라나씨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미가다야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물질(몸)은 내(진아)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물질이 나라면 이 물질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물질이 질병이 들 수가 있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감수(受)는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지각(想)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형성(의도)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의식(識)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의식이 나라면 이 의식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의식에 대하여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의식이 질병이 들 수가 있고, 이 의식에 대하여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세존]“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육체,감수,지각,형성,의식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물질(육체)이든, 감수이든, 지각이든, 형성이든, 의식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색온)은 이와 같이‘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올바른 지혜로서 관찰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보고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수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나는 해탈했다’는 지혜[혜탈지견]가 생겨나서‘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분명히 안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에 환희하여 기뻐했다. 그리고 이러한 설법이 행해지는 동안에 다섯 명의 수행승들의 마음은 집착없이 번뇌에서 해탈했다.-
백련사 종무소에 가서 하룻밤 묵어갈 수 없느냐고 물으니 거사님이 사무장 보살님을 부른다. 사무장 보살님은 지금 선방에 불사하고 있어서 방이 없다고 했다. 템플스테이 방도 없다고 했다. 백련사 선방은 무문관으로 사용되던 5개의 방을 갖춘 건물이다. 지금은 템플스테용 객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천은사 방장선원이 최초로 템플스테이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 백련사 무문관도 템플스테이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느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템플스테이용으로 사용되는 선방(무문관)에 올랐더니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를 마치면 다음에라도 하룻밤 잘 수도 있을 것인가? 그건 다음에 다시 시도를 해봐야 알수 있겠지. 그날 나에게는 백련사에서 숙박할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공양간에서 신도들과 점심 공약을 먹었다.
백련사 대웅전 옆에는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오솔 길 표지판이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웬지 그 길을 산책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아마 하룻밤 머물수 있었으면 여유롭게 걸었을 것이다.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와서 그길을 걸어 보아야 겠다. 다시 무위사쪽으로 가다가 월남사지 표지판을 보게되었다. 월남사지에는 3층 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대웅전이 복원되어 멋진 대웅전이 세워져 있었다. 3층석탑 옆에 민가가 있었는데 해인사 스님이 그집을 샀고, 다시 그집을 대흥사 스님이 인수해서 간이 법당을 운영하고 있었다고한다. 대흥사 스님들의 노력으로 그 간이 법당을 헐고 그곳에 대웅전이 복원된 것이다, 대웅전 옆에 땅은 국가소유라고 한다. 대웅전 옆에는 군에서 지은 월남사지 안내소가 들어섰는데 월남사에서 운영한다고한다. 문화재위원들이 복원 심사를 하러 나왔는데 터가 워낙 좋아서 대웅전 복원결정을 했다고한다. 월남사지 주위를 거닐어 보니 호쾌하고 담대한 터라는걸알수 있었다. 3층 석탑은 세월의 깊이를 간직하여 웅숭한 맛이 있다. 법당 옆에는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1234) 보물 비석이 있다. 처음 왔지만 웬지 떠나기 싫은 도량이다. 여기는 지금 건물 불사를 하고있는 중이라서 주지스님께 하룻밤 자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월남사 가까이에 있는 무위사에 왔다. 무위사는 극락전이 국보로 유명한 곳이다. 나의 본사인 수덕사 대웅전과 무위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목조건물로서 교과서에 등장한다.여기에 사는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수덕사 대웅전은 내부에 기둥이 있지만 여기 극락전은 내부에 기둥이 한개도 없다고한다. 실제로 들어가서 확인하니 무위사 법당에는 기둥이 없었다. 수덕사보다 조금 늦게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건축기술이 발전되었나보다. 법당에는 참배자들이 부처님 오른쪽으로 돌 수 있도록 뒷 통로가 시원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서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도는 참배법이 널리 유행하였으면 좋겠다. 세바퀴 돌다보면 법당전체를 둘려보게 되어 법당의 다양한 측면을 관찰할 수 있다. 극락전은 마당에서 마주볼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올해 보수공사에 들어간다고한다. 보수에 들어가면 3년정도 법당을 사용할수 없기에 극락전 옆에는 임시 대웅전이 지어지고 있었다.

종무소에 들어가니 젊은 스님이 신도님과 상담하고 있었다. 스님과 맞절로 인사하고 하룻밤 묵고가고 싶다는 요청을 전했다. 스님은 난감해하며 지금 공사중이라서 방이 없다고 하였다. 나는 텔플스테이 말고 스님 전용 객실이 없느냐고 물었고 스님은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스님이 천년고찰에서 하룻밤 잘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 스님이 그렇게 꼭 자야만 하겠다면...이라고 잠시 멈추더니 지금 수리를 하기 위해서 비워둔 방이 있다고 나를 안내하였다. 나를 안내하면서도 그 방은 청소가 안되어있고 공사를 하려고 어제 모든 물건을 빼 내었다고 말했다. 안내를 하다말고 신도님과 상담을 마치고 오겠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그스님이 상담을 끝마칠때까지 법당옆 나무아래서 기다렸다. 마당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그 스님이 나타나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봉투 받으려고 이렇게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찰들이 객실을 갖추고 있는가, 객실에서 재워주는 가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다니고있다. 돌아가면 기록도 남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스님은 이 차비는 다른 스님들에게도 똑같이 주는 것이니 받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차비를 받아들고 나왔다. 다음에라도 무위사 도량에서 하룻 밤 묵고 싶다. 나는 풍수를 모르지만 어느곳에 가면 그냥 오래 있고 싶은 곳들이 있다. 월남사도 그랬고 여기 무위사도 그런 곳이다. 오래 앉아서 해지는 모습을 보고싶은 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