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3월 만행기 -송광사- 대원사-봉갑사

후박나무 (허정) 2025. 3. 30. 22:23

3월 30일

 

조계산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에 승보사찰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나는 송광사 객실에서 몇 번 자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안심하고 송광사를 찾았다. 태고종 선암사에서 거절당한 기분을 조계종 송광사에서 윈로받기를 원했다. 송광사에 도착해서 원주 스님을 찾아갔다. 나는 선원에 다니는 스님인데 오늘 하룻밤 묵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원주스님은 오늘은 자는 사람이 많아서 방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템플스테이는 그렇다고쳐도 스님들이 자는 객실은 있지 않냐고 물었다. 그 방도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다 묵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절에서 잘 수 없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승보사찰인 송광사에서 방이 없어 잘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천은사에서처럼 내가 전국이 사찰을 찾아다니며 객실에서 스님을 재워주는가 안 재워주는가를 조사하고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 말은 차마 못했다. 

 

원주 스님이 완고하게 없다고 하길래 나는 주지 스님을 뵙고 싶다고 말했다.그러자 그스님은 옷을 입는 듯 하더니 방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나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원주실에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평소 안면이 있는 강주스님 방으로 향했다. 전화를 해보니 강주스님은 광주로 볼일보러 나갔다고 했다. 그때 기와불사 안내를 맡고 있던 거사님이 나를 종무소로 안내하여 커피를 타주었다. 광주에사는 거사님은 일요일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나는 이제까지 일을 10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 거사님에게 말했다. 그 거사님도 송광사에서 스님이 잘 수 있는 방이 없다는 것은 자기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응답했다. 방장 스님이 새로 추대되고 나서 방장 스님의 막내 상좌스님이 얼마전에 원주 소임을 맡아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그전에는 그렇치 않았다는 것이다.

 

거사님과 이야기를 하는중에 거사님은 '저는 불교의 핵심이 공존공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거사님이 정확히 보고있다고 말하고 공존공생의 상징이 사찰에서 객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객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찰은 공공의 공간이고, 사찰의 소유물은 공유물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없어도 사찰의 공유물을 이용하며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객실을 마련해 두지 않고 스님을 재워주지 않는다면 그는 공심이 없고 스님들을 평등하게 생각하지 않는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사님은 내가 송광사에서 하룻밤 잘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스님들을 대신해서 미안해 했다. 나도 송광사에서 방이 없어서 잘 수 없다는 사실을 사심없이 기록해야 하는데 승보종찰에서 방이 없어서 못잤다고 기록하기가 싫었다.

 

송광사를 떠나기전에 송광사 박물관에 들렸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스님들의 사리를 보관하던 다양한 사리구를 볼 수 있었다. 예전에 스님들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왜 그렇게 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박물관을 안내하고 있는 보살님께 브라흐미 글자가 쓰인 다포를 선물했다. 브라흐미 글자는 부처님이 사용하던 글자이며 룸비니 석주에 쓰인 브라흐미 글자의 뜻을 해석해 주었다. 오늘 두 군데 사찰을 찾았지만 두 군데 모두 숙박을 거절당했다. 저녁이 늦었으니 가까운 찜질방이라도 찾아가야한다.

 

송광사 박물관의 장삼

 

찜질방을 찾아가는 길에 갑자기 보성 대원사라는 팻말이 보였다.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현장 스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것을 거억해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원사로 향했다. 대원사에 도착하니 마침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비구니스님이 종이상자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에게 '오늘 밤 하루 묵어갈 수 있으냐'고 물었다. 스님은 '당연히 그러셔야죠'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흔쾌히 대답을 하니 선암사와 송광사에서 거절당해서 속상한 기분이 금새 치료되었다. 금방 상했다가 금방 치료되는 마음이여!라고 속으로 읊조렸다. 현장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하룻밤 묵어가기위해 객실을 안내받았다. 대원사 객실은 템플스테이 용이었는데 벽 하단에는 편백나무가 붙어있었고 화장실이 딸려있는 방은 깨끗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보일러를 켜주며 저녁 공양 시간은 6시라고 알려주었다. 오늘도 이렇게 절에서 잘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대원사의 템플스테이 규칙

 

보성 대원사를 나와서 장흥 보림사로 향하는 도중에 봉갑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봉갑사 또한 여러번 안내판을 보고 지나친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들어가 보았다. 예상과 다르게 봉갑사의 규모는 컸다.  아직 불사가 한참 진행 중인데  가파른 언덕 위에 층층이 건물들이 세워져있다. 절이 들어설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무엇보다 커다란 홍살문이 눈에 띈다. 홍살문을 바라보는 나그네에게 후원에서 보살님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여기 주지 스님은 해인사 혜암 스님 상좌이고 오랫동안 사찰 불사를 해오고있다 한다. 홍살문은 악한 기운을 쫓는 의미라고 했다. 나는 법당에 계신 부처님과 도량 자체가 악한 기운을 쫒는 것인데 다시 홍살문을 세울 필요가 뭐 있는가라고 질문 했으나 보살님으로부터 같은 대답을 들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계단에 천화인경 (天花人逕) 이라는 경전이 쓰여 있었다. 

 

천화인경(天花人逕) 인연회상몽(人煙回想夢) 

혼동(混沌)하는 은하성들 돌고돌아 일체자리 가져지고 여러 성구(星毬)는 자성(自醒)을 뽐내나니 님의선택 일곱자국 현빛성구는 여럿성빛 생명으로 받어지니 자생(自生)생을 품은 초유(初有)되었더라. 만세월이 흘렀는가 온갖가지 생의 모양 제각각이 일색이네. 홀로 님의 자취대로 .....

 

도무지 부처님이 설한 경이라고 볼 수 없는 희한한 경이다. 이 경을 도량의 중앙계단 사이에 새겨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파른 계단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글씨는 읽기도 쉽지 않다. 이 절 주지 스님의 사상이 의심된다. 아직 공사 중이어서 도량이 어수선하고 건물의  배치도 차분하지 않다. 이런 곳에서는 하룻 밤 묵고 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머뭇거려진다. 법당에서는 주지스님이 49재를 지내고 있다. 법당에서 참배를 하고 자리에서 앉아있었다. 주지스님과 얼굴을 마주쳤으나 서로 아무런 감응이 없다. 지금 시골에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살다가 돌아가시니 시골 사찰에는 절에오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다시 산속에 이런 거대한 사찰을 만들어야 하는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도갑사와 불갑사와 더불어 봉갑사가 삼갑(三甲)이라고 하는 말도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허전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보림사로 향하다.

 

 

보성 봉갑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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