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
한문-모든 번뇌 경(M2)
후박나무 (허정)
2024. 11. 10. 21:35
āsavā dass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saṁvarā pahātabbā, atthi āsavā paṭisev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adhivās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parivajj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vinod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bhāvanā pahātabbā. |
①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②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③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④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⑥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⑦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 |
見斷者便見斷之(봄) 恭敬斷者恭敬斷之(감내) 親近斷者親近斷之(수용) 遠離斷者 遠離斷之(피함) 威儀斷者威儀斷之(단속) 思惟斷者 思惟斷之(수행) |
或有有漏,緣見得斷; 或有有漏,親近得斷; 或有有漏,遠離得斷; 或有有漏,娛樂得斷; 或有有漏,威儀得斷; 或有有漏,思惟得斷。 |
* ⑥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는 제목에서 설명되지 않는데 내용에는 아래와같이 짧게 설명되고 있다.
「彼云何有漏娛樂所斷?於是,比丘!生 欲想而不捨離,設起瞋恚想,亦不捨離,設 復起疾想,亦不捨離,設不捨離者,則生有 漏;能捨離者,便能不起有漏。是謂此漏 娛樂所斷。
#제목:증일아함2-40 신수장경 : 2-739a 한글장경 : 증-2-182 |
#제목:증일아함2-40 칠일품 06 40.6(六) |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 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미묘한 법을 설명하리라. 그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아, 뜻은 깊고 멀며 범행을 두루 갖추어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경 이름은 모든 번뇌를 깨긋이 하는 법이란 무엇인가. 어떤 번뇌는 봄으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어떤 번뇌는 친근함므로 말미암아 끊어지며, 어떤 번뇌는 즐김으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어떤 번뇌는 위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며, 어떤 번뇌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느니라. |
聞如是: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 園。 爾時,世尊告諸比丘:「我當說極妙之法, 初、中、竟善,義理深邃,具足得修梵行,此經 名為淨諸漏法,汝等善思念之。」 比丘對曰: 「如是。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世尊告 曰:「彼云何名為淨諸漏法? 或有有漏,緣見得斷; 或有有漏,親近得斷; 或有有漏,遠離得斷; 或有有漏,娛樂得斷; 或有有漏,威儀得斷; 或有有漏,思惟得斷。 |
어떤 번뇌가 봄으로 말미암아 끊어지는가. 이른바 범부는 성인을 보지 못하고 여래님 법을 순종하지 않으며 성현의 법을 옹호하지 않고 선지식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을 듣고는 생각해야 할 것은 분별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한다. 거기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더욱 많아진다. 이것이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생각한다는 것이니라. 그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른바 생각할 법이란,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없애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생각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지 않는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니라. |
「彼云何有漏 由見得斷?於是,凡夫之人不覩聖人,不 順從如來之法,不能擁護賢聖之法,不親近善知識,不與善知識從事。其聞法所 應思惟法者亦不分別,不應思惟者而 思惟之。未生欲漏而生,已生欲漏便增多;未 生有漏而生,已生有漏便增多;未生無明漏 而生,已生無明漏便增多。此法不應思惟 而思惟之。 「彼云何法應思惟,然不思惟此法?所言思惟法者,未生欲漏使不生,已生 欲漏而滅之;未生有漏令不生,已生有漏而 滅之;未生無明漏令不生,已生無明漏而 滅之。是謂此法應可思惟而不思惟,所不 應思惟者便思惟之。應思惟者復不思 惟之,未生欲漏而生,已生欲漏而增多;未生 有漏而生,已生有漏而增多;未生無明漏而 生,已生無明漏而增多。彼人作如是思惟: Katame ca, bhikkhave, dhammā na manasikaraṇīyā ye dhamme manasi karoti? Yassa, bhikkhave, dhamme manasikaroto anuppanno vā kāmāsavo uppajjati, uppanno vā kāmāsavo pavaḍḍhati; anuppanno vā bhavāsavo uppajjati, uppanno vā bhavāsavo pavaḍḍhati; anuppanno vā avijjāsavo uppajjati, uppanno vā avijjāsavo pavaḍḍhati— ime dhammā na manasikaraṇīyā ye dhamme manasi karoti. |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먼 과거가 있는가. 내게 먼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고. 혹은 또 생각한다. '먼 과거는 없다. 어떻게 먼 과거가 있을 것인가. 누가 먼 과거를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먼 미래가 있는가. 내게 장차 미래가 있을 것이다'고. 혹은 또 말한다. '먼 미래는 없다. 어떻게 먼 미래가 있을 것이가. 누가 먼 미래를 가졌는가. 어떻게 중생의 영혼이 있는가. 중생의 영혼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어디서 날 것인가'고, 그는 이 나쁜 생각을 내어 여섯 가지 소견을 일으키고 계속해서 삿된 소견을 낸다. 즉 '<나>가 있다'는 소견을 확실히 가지고 '<나>가 없다'는 소견을 확실히 가지며, '<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소견을 확실히 가지고 또 그 몸을 관찰해 소견을 가지고 '자기에게서 자기를 보지 않는다'는 중간 소견을 가진다. 그 때에 그는 또 이런 삿된 소견을 일으킨다. '<나>란 곧 이승에도 있고 저승에도 있다. 언제나 세상에 존재하여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옮기지도 않는다'고. 이것이 이른바 삿된 소견의 무더기로서 삿된 소견의 재앙·근심·슬픔·괴로움·번민은 모두 이것으로 말미암아 생겨 고칠 수 없고 또 버릴 수도 없어 괴로움의 근본을 더욱 더해 간다. 그래서 사문의 행과 열반의 길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
『云何有過去久遠?我今當有過去久遠?』或 復思惟:『無過去久遠?云何當有過去久遠? 為誰有過去久遠?云何復有當來久遠?我 今當有將來久遠?』或復言:『無將來久遠。云 何當有將來久遠?為誰有將來久遠?云何 有此眾生久遠?此眾生久遠為從何來?從 此命終當生何處?』 So evaṁ ayoniso manasi karoti: ‘ahosiṁ nu kho ahaṁ atītamaddhānaṁ? Na nu kho ahosiṁ atītamaddhānaṁ? Kiṁ nu kho ahosiṁ atītamaddhānaṁ? Kathaṁ nu kho ahosiṁ atītamaddhānaṁ? Kiṁ hutvā kiṁ ahosiṁ nu kho ahaṁ atītamaddhānaṁ? Bhavissāmi nu kho ahaṁ anāgatamaddhānaṁ? Na nu kho bhavissāmi anāgatamaddhānaṁ? Kiṁ nu kho bhavissāmi anāgatamaddhānaṁ? Kathaṁ nu kho bhavissāmi anāgatamaddhānaṁ? Kiṁ hutvā kiṁ bhavissāmi nu kho ahaṁ anāgatamaddhānan’ti? Etarahi vā paccuppannamaddhānaṁ ajjhattaṁ kathaṅkathī hoti: ‘ahaṁ nu khosmi? No nu khosmi? Kiṁ nu khosmi? Kathaṁ nu khosmi? Ayaṁ nu kho satto kuto āgato? So kuhiṁ gāmī bhavissatī’ti? 彼人起此不祥之念,便 興六見展轉生耶想,有我見審有此見; 無有我見審興此見;有我見無我見於 中起審見;又復自觀身復興此見;於己 而不見己;復興此見,於無我而不見無我, 於中起此見。爾時,彼人復生此邪見:我者 即是今世,亦是後世,常存於世而不朽敗, 亦不變易,復不移動。是謂名為邪見之聚。 邪見、災患、憂、悲、苦、惱,皆由此生而不可療 治,亦復不能捨,遂增苦本,由是不為沙門 之行、涅槃之道。 |
또 비구들이여, 성현의 제자는 그 법을 닦되 차례를 잃지 않고 잘 옹호하며 선지식과 더불 어 함께 일한다. 그는 능히 분별하여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도 잘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느니라. 그는 어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른바 모든 법에 있어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더욱 많아지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더욱 많아진다. 이런 법은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이니라. 그는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는가. 모든 법에 있어서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욕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생존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생존의 번뇌는 없애며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없앤다. 이것이 이른바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한다는 것이니라. |
「又復,比丘!賢聖弟子修其 法,不失次敘,善能擁護,與善知識共從事, 彼能分別;不可思惟法亦能知;所可思 惟法亦能知之;彼所不應思惟法亦不思 惟之;所應思惟法而思惟之。
「彼云何不應 思惟法而不思惟之?於是,諸法未生欲漏 而生,已生欲漏而增多;未生有漏而生,已生 有漏而增多;未生無明漏而生,已生無明漏 而增多。是謂此法不應思惟之。 「彼何等 法應思惟者而思惟之?於是,諸法未生欲 漏而不生,已生欲漏而滅之;未生有漏而不 生,已生有漏而滅之;未生無明漏而不生, 已生無明漏而滅之。是謂此法應可思惟 之。 |
그는 어떤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것은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여 곧 세 가지 법을 없앤다. 어떤 것이 세 가지 법인가. 몸이 있다는 소견과 그릇된 계율에 대한 집착과 그리고 의심이다. 이것을 바로 알고 보지 못하면 번뇌의 행이 더할 것이요, 만일 잘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면 번뇌의 행이 더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알고 보면 번뇌가 생기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번뇌의 소견이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
「彼不應思惟者亦不思惟之,可思惟 者便思惟之,彼作如是思惟,便滅三法。云 何為三?身耶、戒盜、疑。設不知、見,則增有 漏之行;設見、聞、念、知者,則不增有漏之行;已 知、已見,有漏便不生。是謂此漏見所斷也。 |
그 어떤 것이 공경으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든 굶주림과 추위를 참고·바람·비·모기·등에와 욕설과 꾸짖음에 괴로워하며 몸에 병이 생겨 고통이 심해 곧 죽게 되어도 그것을 능히 참는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괴로움이 생기고 만일 그것을 참으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공경으로 번뇌가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
「彼云何漏恭敬所斷?於是,比丘!堪忍飢寒, 勤苦風雨、蚊虻、惡言、罵辱,身生痛腦,極為 煩疼,命垂欲斷,便能忍之。若不爾者,便起 苦惱。設復能堪忍者,如是不生,是謂此漏 恭敬所斷。 |
그 어떤 것이 친근으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는 조심해서 옷을 받아도 그것을 호사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그것으로 몸을 지탱하고 추위와 더위를 피한다. 또 조심해 때때로 밥을 빌어도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몸을 지탱하며 묵은 병을 고치고 새 병은 나지 않게 하며 온갖 행을 잘 단속하여 범하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안온하게 범행을 닦으면서 세상에 오래 살려고 한다. 또 조심해 침구를 친하고 호사로운 옷을 입지 않는다. 다만 굶주림과 추위·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를 막으며 그 몸을 지탱해 도법을 행하려 한다. 또 조심해 의약을 친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그 의약으로 병을 고치고 몸을 안온하게 하려한다. 그래서 만일 친근하지 못하면 곧 번뇌의 근심이 생기고 만일 친근하면 번뇌의 근심이 없어진다. 이것이 이른바 친근으로 번뇌가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
「彼云何漏親近所斷?於是,比丘!持 心受衣,不興榮飾,但欲支其形體,欲除 寒熱,欲令風雨不加其身,又覆形體不 令外露。又持心隨時乞食,不起染著之 心,但欲趣支形體,使故痛得差,新者不 生;守護眾行,無所觸犯,長夜安隱而修梵 行,久存於世。復持心意親近床座,亦不 著榮華服飾,但欲除飢寒、風雨、蚊虻之類, 趣支其形,得行道法。又復持心親近醫 藥,不生染著之心;於彼醫藥,但欲使疾病 除愈故,身體得安隱。設不親近者,則生有 漏之患。若親近,則無有漏之患,是謂此漏親 近所斷。
13. 비구들이여, 무엇이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옷을 수용하나니 오직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에 닿음을 물리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
그 어떤 것이 멀리 떠남으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인가. 이른바 비구로서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마치 나쁜 코끼리·낙타·소·말·호랑이·이리·개·뱀·독사와 깊은 구덩이·위험한 언덕과 가시덤불 벼랑·진창들을 멀리 피하는 것처럼, 나쁜 벗과 사귀지 않고 또 나쁜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으며 깊이 생각해 마음에서 떠나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잘 단속하지 않으면 곧 번뇌가 생기고 잘 단속하면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떠남으로써 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이니라. |
「彼云何有漏遠離所斷?於是,比丘! 除去亂想,猶如惡象、駱駝、牛、馬、虎、狼、狗、蛇蚖、 深坑、危岸、柘棘、峻崖、濕泥,皆當遠離之。 莫與惡知識從事,亦復不與惡人相近, 能熟思惟不去心首,設不將護者,則生有 漏;設擁護者,則不生有漏,是謂有漏遠離 所斷。
19. 비구들이여, 무엇이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을 피하고, 사나운 소를 피하고, 사나운 개를 피하고, 뱀, 나뭇등걸, 가시덤불, 협곡, 낭떠러지, 더러운 물구덩이, 더러운 웅덩이를 피한다.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잘 곳이 아닌 곳에 다니고, 저열한 도반들을 사귀어서 지자인 동료 수행자들이 저열한 곳에 믿음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적합하지 않은 자리, 영역이 아닌 곳, 저열한 도반들을 지혜롭게 숙고하여 피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
어떻게 즐겨하는 번뇌가 끊어지는가. 이른바 비구로서 탐욕이 생겨도 버리지 못하고 성이 나도 버리지 못하며 미움이 생겨도 버리지 못할 때, 만일 그것을 버리지 못하면 번뇌가 생기고 그것을 능히 버리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즐겨하는 번뇌가 끊어진 것이라 하느니라. |
「彼云何有漏娛樂所斷?於是,比丘!生 欲想而不捨離,設起瞋恚想,亦不捨離,設 復起疾想,亦不捨離,設不捨離者,則生有 漏;能捨離者,便能不起有漏。是謂此漏 娛樂所斷。
---버림으로 없애는 번뇌 설명 |
어떻게 위의로써 끊어지는가. 이른바 비구로서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빛깔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또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서 눈을 온전히 가져 흐림이 없어 눈을 잘 단속하고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알거나 몸으로 닿임을 느끼거나 뜻으로 법을 알아도 전연 더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또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니, 만일 그 위의를 갖추지 않으면 번뇌가 생기고 그 위의를 갖추면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위의로써 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이니라. |
「云何有漏威儀所斷?於此,比丘! 若眼見色不起色想,亦不起染污之心, 具足眼根,亦無缺漏而護眼根。若耳聞 聲、鼻嗅香、舌知味、身知細滑、意知法,都 不起染污之心,亦不起想著而護意根。若 不攝其威儀,則生有漏;若攝其威儀者,則 無有漏之患。是謂此漏威儀所斷。 |
어떻게 사유(思惟)로써 번뇌가 끊어지는가. 이른바 비구로서 념각의를 닦아 탐욕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며 완전히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해탈(出要 )을 구하고, 수법각의·정진각의·기쁨각의·쉼각의·선정각의·보호각의를 닦아 탐욕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며 완전히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해탈(出要 )을 구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닦지 않으면 번뇌와 우환이 생기고 그것을 닦으면 번뇌와 우환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사유(思惟)로써 번뇌가 끊어진다는 것이니라. 7. Bhāvanāpahātabbaāsava Katame ca, bhikkhave, āsavā bhāvanā pahātabbā? |
「彼何等有 漏思惟所斷?於是,比丘!修念覺意,依無欲、 依無污、依滅盡而求出要,修法覺意、精進覺意、喜覺意、猗覺意、定覺意、護覺意,依無欲、 依無污、依滅盡而求出要。若不修此者,則 生有漏之患;設能修者,則不生有漏之患。 是謂此漏思惟所斷。 satisambojjhaṅgaṁ dhammavicayasambojjhaṅgaṁ bhāveti …pe… vīriyasambojjhaṅgaṁ bhāveti … pītisambojjhaṅgaṁ bhāveti … passaddhisambojjhaṅgaṁ bhāveti … samādhisambojjhaṅgaṁ bhāveti … upekkhāsambojjhaṅgaṁ bhāveti |
또 비구들이여, 비구로서 모든 번뇌에 있어서 소견으로 끊을 것은 소견으로 끊고, 공경으로 끊을 것은 공경하여 끊으며, 친근으로 끊을 것은 친근하여 끊고 멀리 떠남으로 끊을 것은 멀리 떠나 끊으며, 위의로 끊을 것은 위의로 끊고, 생각으로 끊을 것은 생각하여 끊으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로서 일체 위의를 완전히 갗추어 결박을 끊고 탐애를 떠나 네 가지 흐름을 건너 점점 괴로움을 벗어 난다는 것이니라. 비구들이여, 모든 번뇌를 없애고 모든 부처 세존님들이 늘 행하시는 바 일체 형상이 있는 중생들을 자비스레 생각하는 것을 나는 이제 다해 마쳤다. 너희들은 고요한 곳이나 나무 밑을 즐겨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을리하지 말라. 지금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느니라. 이것이 내 교훈이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
「若復,比丘!於比丘中 諸所有漏, 見斷者便見斷之, 恭敬斷者便 恭敬斷之, 親近斷者親近斷之, 遠離斷者 遠離斷之, 威儀斷者威儀斷之, 思惟斷者 思惟斷之。 是謂,比丘!具足一切威儀,能斷 結、去愛,度於四流,漸漸越苦。是謂,比 丘!除有漏之法。諸佛世尊常所施行慈念 一切有形之類,今已施行。汝等常樂閑居樹 下,勤加精進,勿有懈怠。今不勤加者,後悔 無益。此是我之訓教。」 爾時,比丘聞佛所 說,歡喜奉行。 增壹阿含經卷第三十四 22. 비구들이여, 비구는 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봄으로써 없애야 한다.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피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버림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행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행으로써 없애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모든 번뇌를 단속하여 머물고, 갈애를 끊어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버렸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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