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비교 윤문

대인연경(大因縁経) Mahānidāna Sutta( D15 )

후박나무 (허정) 2024. 10. 9. 12:36
   
1.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kurūsu viharati kammāsadhammaṁ nāma kurūnaṁ nigamo.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Yāva gambhīro cāyaṁ, bhante, paṭiccasamuppādo gambhīrāvabhāso ca, atha ca pana me uttānakuttānako viya khāyatī”ti.
 
“Mā hevaṁ, ānanda, avaca, mā hevaṁ, ānanda, avaca. Gambhīro cāyaṁ, ānanda, paṭiccasamuppādo gambhīrāvabhāso ca. Etassa, ānanda, dhamm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ayaṁ pajā tantākulakajātā kulagaṇṭhikajātā muñjapabbajabhūt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saṁsāraṁ nātivattati.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 연기(縁起)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 제게는 분명하고 또 분명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다. 그리고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 아난다여,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헝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2.‘Atthi idappaccayā jarāmaraṇan’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jarāmaraṇan’ti iti ce vadeyya,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jātī’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jātī’ti iti ce vadeyya, ‘bhavapaccayā jātī’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bhavo’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bhavo’ti iti ce vadeyya, ‘upādānapaccayā bhavo’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upādānan’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upādānan’ti iti ce vadeyya, ‘taṇhāpaccayā upādānan’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taṇhā’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taṇhā’ti iti ce vadeyya, ‘vedanāpaccayā taṇhā’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vedanā’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vedanā’ti iti ce vadeyya, ‘phassapaccayā vedanā’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phasso’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phasso’ti iti ce vadeyya, ‘nāmarūpapaccayā phasso’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nāmarūpan’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nāmarūpan’ti iti ce vadeyya,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iccassa vacanīyaṁ.
 
‘Atthi idappaccayā viññāṇan’ti iti puṭṭhena satā, ānanda, atthītissa vacanīyaṁ. ‘Kiṁpaccayā viññāṇan’ti iti ce vadeyya,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n’ti iccassa vacanīyaṁ.
 


2. “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늙음ㆍ죽음[老死]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ㆍ죽음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ㆍ죽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취착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갈애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느낌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정신ㆍ물질[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정신ㆍ물질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정신ㆍ물질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알음알이[]을 조건으로 하여 정신ㆍ물질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난다여, ‘조건이 있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만일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정신ㆍ물질[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3. Iti kho, ānanda,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ṁ,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ṁ, nāmarūp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ṁ,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ṁ. Jāti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devānaṁ vā devattāya, gandhabbānaṁ vā gandhabbattāya, yakkhānaṁ vā yakkhattāya, bhūtānaṁ vā bhūtattāya, manussānaṁ vā manussattāya, catuppadānaṁ vā catuppadattāya, pakkhīnaṁ vā pakkhittāya, sarīsapānaṁ vā sarīsapattāya, tesaṁ tesañca hi, ānanda, sattānaṁ tadattāya jāti nābhavissa. Sabbaso jātiyā asati jātinirodhā api nu kho jarāmaraṇaṁ paññāyethā”ti? Variant: sarīsapānaṁ vā sarīsapattāya siriṁsapānaṁ vā siriṁsapattāya (bj, km, pts1ed); siriṁsapānaṁ siriṁsapattāya (sya-all)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jarāmaraṇassa, yadidaṁ jāti.
 
‘Bhavapaccayā jāt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bhavapaccayā jāti. Bhav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kāmabhavo vā rūpabhavo vā arūpabhavo vā, sabbaso bhave asati bhavanirodhā api nu kho jāti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jātiyā, yadidaṁ bhavo.



3. “아난다여, 이처럼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하여 정신ㆍ물질이,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일어난다.”

 
4.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ㆍ죽음이 있다[生縁老死]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ㆍ죽음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신들이 신이 되고, 간답바들이 간답바가 되고, 약카들이 약카가 되고, 정령들이 정령이 되고, 인간들이 인간이 되고, 네발짐승들이 네발짐승이 되고, 새들이 새가 되고, 파충류들이 파충류가 되는 이런 태어남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저런 중생들의 이런 태어남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면 이처럼 태어남이 소멸해버려 태어남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늙음ㆍ죽음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늙음ㆍ죽음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태어남이다.”
 
5.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有縁生]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 이러한 존재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존재가 소멸해버려 존재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태어남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태어남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존재이다.”


‘Upādānapaccayā bhav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upādānapaccayā bhavo. Upādānañ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kāmupādānaṁ vā diṭṭhupādānaṁ vā sīlabbatupādānaṁ vā attavādupādānaṁ vā, sabbaso upādāne asati upādānanirodhā api nu kho bhav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bhavassa, yadidaṁ upādānaṁ.
 
‘Taṇhāpaccayā upādān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ṁ. Taṇh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rūpataṇhā saddataṇhā gandhataṇhā rasataṇhā phoṭṭhabbataṇhā dhammataṇhā, sabbaso taṇhāya asati taṇhānirodhā api nu kho upādāna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upādānassa, yadidaṁ taṇhā.
 
‘Vedanāpaccayā taṇh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vedanāpaccayā taṇhā. Vedan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sabbaso vedanāya asati vedanānirodhā api nu kho taṇh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taṇhāya, yadidaṁ vedanā.
 




6. “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取縁有]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慾取], 견해에 대한 취착[見取],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戒禁取],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我語取] 이러한 취착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취착이 소멸해버려 취착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존재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취착이다.”
 
7.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愛縁取]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형상에 대한 갈애, 소리에 대한 갈애, 냄새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 감촉에 대한 갈애, 법에 대한 갈애 이러한 갈애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갈애가 소멸해버려 갈애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취착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취착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갈애이다.”
 
8.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受縁愛]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형상에 닿아서 생긴 느낌, 소리에 닿아서 생긴 느낌, 냄새에 닿아서 생긴 느낌, 맛에 닿아서 생긴 느낌, 감촉에 닿아서 생긴 느낌, 법에 닿아서 생긴 느낌 이러한 느낌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느낌이 소멸해버려 느낌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갈애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갈애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느낌이다.”


 
9. Iti kho panetaṁ, ānanda, vedanaṁ paṭicca taṇhā, taṇhaṁ paṭicca pariyesanā, pariyesanaṁ paṭicca lābho, lābhaṁ paṭicca vinicchayo, vinicchayaṁ paṭicca chandarāgo, chandarāgaṁ paṭicca ajjhosānaṁ, ajjhosānaṁ paṭicca pariggaho, pariggahaṁ paṭicca macchariyaṁ, macchariyaṁ paṭicca ārakkho. Ārakkhādhikaraṇaṁ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i.
 
‘Ārakkhādhikaraṇaṁ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ārakkhādhikaraṇaṁ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anti. Ārakkh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ārakkhe asati ārakkhanirodhā api nu kho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 aneke pāpakā akusalā dhammā sambhaveyyun”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ṁtuvaṁpesuññamusāvādānaṁ anekesaṁ pāpakānaṁ akusalānaṁ dhammānaṁ sambhavāya yadidaṁ ārakkho.
 
‘Macchariyaṁ paṭicca ārakkh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macchariyaṁ paṭicca ārakkho. Macchariyañ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macchariye asati macchariyanirodhā api nu kho ārakkh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ārakkhassa, yadidaṁ macchariyaṁ.




‘Pariggahaṁ paṭicca macchariy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ariggahaṁ paṭicca macchariyaṁ. Pariggah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pariggahe asati pariggahanirodhā api nu kho macchariya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macchariyassa, yadidaṁ pariggaho.
 
‘Ajjhosānaṁ paṭicca pariggah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ajjhosānaṁ paṭicca pariggaho. Ajjhosānañ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ajjhosāne asati ajjhosānanirodhā api nu kho pariggah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pariggahassayadidaṁ ajjhosānaṁ.
 
‘Chandarāgaṁ paṭicca ajjhosān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chandarāgaṁ paṭicca ajjhosānaṁ. Chandarāg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chandarāge asati chandarāganirodhā api nu kho ajjhosāna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ajjhosānassa, yadidaṁ chandarāgo.
 
‘Vinicchayaṁ paṭicca chandarāg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vinicchayaṁ paṭicca chandarāgo. Vinicchay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vinicchaye asati vinicchayanirodhā api nu kho chandarāg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chandarāgassa, yadidaṁ vinicchayo.
 
16. ‘Lābhaṁ paṭicca vinicchay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lābhaṁ paṭicca vinicchayo. Lābh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lābhe asati lābhanirodhā api nu kho vinicchay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vinicchayassa, yadidaṁ lābho.
 
‘Pariyesanaṁ paṭicca lābh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ariyesanaṁ paṭicca lābho. Pariyesan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abbaso pariyesanāya asati pariyesanānirodhā api nu kho lābh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lābhassa, yadidaṁ pariyesanā.
 
‘Taṇhaṁ paṭicca pariyesan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taṇhaṁ paṭicca pariyesanā. Taṇhā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sabbaso taṇhāya asati taṇhānirodhā api nu kho pariyesan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pariyesanāya, yadidaṁ taṇhā. Iti kho, ānanda, ime dve dhammā dvayena vedanāya ekasamosaraṇā bhavanti. Variant: dhammā  ime dhammā (mr)
 
19. ‘Phassapaccayā vedanā’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hassapaccayā vedanā. Phasso ca hi, ānanda, nābhavissa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kassaci kimhici, seyyathidaṁ 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n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sabbaso phasse asati phassanirodhā api nu kho vedan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vedanāya, yadidaṁ phasso.




9
가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갈애

 
9. “아난다여, 이처럼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추구를 조건으로 얻음이, 얻음을 조건으로 판별이, 판별을 조건으로 욕망[慾貪], 욕망을 조건으로 탐착이, 탐착을 조건으로 거머쥠이, 거머쥠을 조건으로 인색이, 인색을 조건으로 수호가, 수호를 원인으로 하여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수많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난다.”
 
10. “수호를 원인으로 하여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수많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난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수호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수호가 소멸해버려 수호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수많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수많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나는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수호다.”
 
11. “인색을 조건으로 수호가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인색을 조건으로 수호가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인색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인색이 소멸해버려 인색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수호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수호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인색이다.”
 
12. “거머쥠을 조건으로 인색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거머쥠을 조건으로 인색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거머쥠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거머쥠이 소멸해버려 거머쥠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인색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인색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거머쥠이다.”
 
13. “탐착을 조건으로 거머쥠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탐착을 조건으로 거머쥠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탐착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탐착이 소멸해버려 탐착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거머쥠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거머쥠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탐착이다.”
 
14. “욕망을 조건으로 탐착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욕망을 조건으로 탐착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욕망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욕망이 소멸해버려 욕망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탐착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탐착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다.”
 
15. “판별을 조건으로 욕망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판별을 조건으로 욕망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판별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판별이 소멸해버려 판별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욕망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욕망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판별이다.”
 
16. “얻음을 조건으로 판별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얻음을 조건으로 판별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얻음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얻음이 소멸해버려 얻음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판별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판별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얻음이다.”
 
17. “추구를 조건으로 얻음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추구를 조건으로 얻음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추구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추구가 소멸해버려 추구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얻음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얻음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추구다.”
 
18.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있다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갈애가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갈애가 소멸해버려 갈애가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추구를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추구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갈애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두 가지 법들이 이처럼 두 가지 부분으로 느낌에 의해서 하나가 된다.”
 
19.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触縁受]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형상에 대한 감각접촉, 소리에 대한 감각접촉, 냄새에 대한 감각접촉, 맛에 대한 감각접촉, 감촉에 대한 감각접촉, 법에 대한 감각접촉 이러한 감각접촉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다여, 감각접촉이 소멸해버려 감각접촉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느낌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느낌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감각접촉이다.”
 

 








 
20. ‘Nāmarūpapaccayā phasso’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nāmarūpapaccayā phasso.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tesu liṅgesu tesu nimittesu 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rūpakāye adhivacan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rūp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pe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nāmakāye paṭigh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peyehi uddesehi nāmakāyassa ca rūpakāyassa c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pe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adhivacanasamphasso vā paṭighasamphasso vā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peyehi uddesehi nāmarūp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pe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phassassa, yadidaṁ nāmarūpaṁ.


 
21.‘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ṁ. Viññāṇañca hi, ānanda, mātukucchismiṁ na okkamissatha, api nu kho nāmarūpaṁ mātukucchismiṁ samuccissathā”ti?
 
“No hetaṁ, bhante”.
 
“Viññāṇañca hi, ānanda, mātukucchismiṁ okkamitvā vokkamissatha, api nu kho nāmarūpaṁ itthattāya abhinibbattissathā”ti?
 
“No hetaṁ, bhante”.
 
“Viññāṇañca hi, ānanda, daharasseva sato vocchijjissatha kumārakassa vā kumārikāya vā, api nu kho nāmarūpaṁ vuddhiṁ virūḷhiṁ vepullaṁ āpajjissa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nāmarūpassayadidaṁ viññāṇaṁ.





20.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다[名色縁触]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여기 [느낌, 인식, 상카라들, 알음알이의]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에 의해서 정신의 무리[名身]라는 개념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질의 무리[色身]에서 이름 붙이기를 통해 생기는 정신의 감각접촉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여기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에 의해서 물질의 무리라는 개념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신의 무리에서 부딪힘을 통해 생기는 [물질의] 감각접촉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여기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에 의해서 정신의 무리와 물질의 무리라는 개념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고유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름 짓기로 얻어지는 [정신의] 감각접촉이나 부딪힘으로 얻어지는 [물질의] 감각접촉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여기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에 의해서 정신ㆍ물질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이나 개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감각접촉을 천명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감각접촉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정신ㆍ물질이다.”


 


21.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이 있다[識縁名色]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이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알음알이가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 정신ㆍ물질이 모태에서 발전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알음알이가 모태에 들어간 뒤 잘못되어버렸는데도 정신ㆍ물질이 [오온을 구비한] 그러한 상태를 생기게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알음알이가 동자나 동녀와 같은 어린아이일 때 잘못되어버렸는데도 정신ㆍ물질이 향상하고 증장하고 번창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정신ㆍ물질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알음알이이다.”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n’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tadānanda, imināpetaṁ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ṁ. Viññāṇañca hi, ānanda, nāmarūpe patiṭṭhaṁ na labhissatha, api nu kho āyatiṁ jātijarāmaraṇaṁ dukkhasamudayasambhavo paññāyeth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ṁ nidānaṁ esa samudayo esa paccayo viññāṇassa yadidaṁ nāmarūpaṁ.


Ettāvatā kho, ānanda, jāyetha vā jīyetha vā mīyetha vā cavetha vā upapajjetha vā.
 Ettāvatā adhivacanapatho, ettāvatā niruttipatho, ettāvatā paññattipatho, ettāvatā paññāvacaraṁ, ettāvatā vaṭṭaṁ vattati. itthattaṁ paññāpanāya yadidaṁ nāmarūpaṁ saha viññāṇena aññamaññapaccayatā pavattati.

 









22. “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다[名色縁識]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다는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알음알이가 정신ㆍ물질에 확립됨을 얻지 못하였는데도 미래에 태어남과 늙음ㆍ죽음과 괴로움의 일어남이 생긴다고 천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알음알이의 원인이고, 근원이고, 기원이고, 조건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정신ㆍ물질이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알음알이와 정신ㆍ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이름짓는 토대가 생기고, 어원에 입각한 언어의 토대가 생기고, 개념을 얻는 토대가 생기고, 통찰지의 영역이 생기며, 이 알음알이와 정신ㆍ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윤회는] 전개되는 것이다. 정신ㆍ물질은 알음알이와 더불어 [오온의] 이러한 상태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이름짓는 길이 생기고, 이와 같이 하여 언어의 길이 생기고, 이와 같이 하여 提示의 길이 생기고, 이와 같이 하여 알아차림의 영역이 생기며, 이와 같이 하여 윤회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런 상태를 나타내기 위함이니 그것은 곧 nāmarūpa와 식별이 서로 의존하며 전개됩니다.



 
 
 Attapaññatti


23. Kittāvatā ca, ānanda,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rūpī me paritto attā’ti. 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rūpī me anan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rūpī me parit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rūpī me ananto attā’ti.
 
Tatrānanda, yo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Variant: rūpiṁ  rūpī (mr)Etarahi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Variant: rūpiṁ  rūpī (mr)Etarahi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Variant: arūpiṁ  arūpī (mr)Etarahi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Variant: arūpiṁ  arūpī (mr)Etarahi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a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Ettāvatā kho, ānanda, attānaṁ paññapento paññapeti.
 



자아를 천명함
 
23. “아난다여,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자아라고 천명하는가? 아난다여,  물질[]을 가진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졌고 유한하다.’고 천명한다. 아난다여,  물질을 가진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졌고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아난다여,  물질을 가지지 않은[無色]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았고 유한하다.’고 천명한다. 아난다여,  물질을 가지지 않은[無色]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았고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24.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진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는 자는 자아는 현생에서 물질을 가지고 유한하다고 천명하거나, 혹은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생에 자아는 물질을 가지고 유한하다고 천명한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진 [자아를 천명하는] 자에게는 이미 유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잠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진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는 자는 자아는 현생에서 물질을 가지고 무한하다고 천명하거나, 혹은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생에 자아는 물질을 가지고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진 [자아를 천명하는] 자에게는 이미 무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잠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는 자는 현생에서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지만 유한하다고 천명하거나, 혹은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생에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지만 유한하다고 천명한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하는] 자에게는 이미 유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잠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는 자는 현생에서 그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거나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내생에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한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하는] 자에게는 이미 무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잠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사람들은] 이렇게 자아를 천명한다.”




3. Naattapaññatti


25. Kittāvatā ca, ānanda,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rūpī me paritto attā’ti. 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rūpī me anan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rūpī me paritto attā’ti. Arūpiṁ vā hi, ānanda,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rūpī me ananto attā’ti.
 
Tatrānanda, yo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parit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parit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Tatrānanda, yo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Etarahi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tattha bhāviṁ vā so arūpiṁ anantaṁ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atathaṁ vā pana santaṁ tathattāya upakappessāmī’ti iti vā panassa na hoti. Evaṁ santaṁ kho, ānanda, arūpiṁ anantattānudiṭṭhi nānusetīti iccālaṁ vacanāya. Ettāvatā kho, ānanda, attānaṁ na paññapento na paññapeti.









자아를 천명하지 않음

 
25. “아난다여, 그런데 [성자들은] 어떻게 천명하지 않으면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가? 아난다여, 물질[]을 가진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으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졌고 유한하다.’고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물질을 가진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으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졌고 무한하다.’고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물질을 가지지 않은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으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았고 유한하다.’고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으면서 나의 자아는 물질을 가지지 않았고 무한하다.’고 천명하지 않는다.”
 
26.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진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는 지금 현재에서 그 물질을 가진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거나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음 생에서 물질을 가진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진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에게는 유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결코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진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는 지금 현재에서 그 물질을 가진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거나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음 생에서 물질을 가진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결을 가진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결코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는 지금 현재에서 그 물질을 가지지 않은 유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거나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음 생에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유한한자아를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에게는 유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결코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는 지금 현재에서 그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거나 비록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다음 생에는] 그러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다음 생에서 물질을 가지지 않은 무한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한한 자아라는 견해가 결코 잠재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난다여, [성자들은] 이렇게 천명하지 않으면서 자아를 천명하지 않는다.”
 
 

 
4. Attasamanupassanā


27. Kittāvatā ca, ānanda, attānaṁ samanupassamāno samanupassati? Vedanaṁ vā hi, ānanda, attānaṁ samanupassamāno samanupassati: ‘vedanā me attā’ti. ‘Na heva kho me vedanā attā, appaṭisaṁvedano me attā’ti iti vā hi, ānanda, attānaṁ samanupassamāno samanupassati. ‘Na heva kho me vedanā attā, nopi appaṭisaṁvedano me attā, attā me vediyati, vedanādhammo hi me attā’ti iti vā hi, ānanda, attānaṁ samanupassamāno samanupassati.


Tatrānanda, yo so evamāha: ‘vedanā me attā’ti, so evamassa vacanīyo: ‘tisso kho imā, āvuso, vedanā sukhā vedanā dukkhā vedanā adukkhamasukhā vedanā. Imāsaṁ kho tvaṁ tissannaṁ vedanānaṁ katamaṁ attato samanupassasī’ti? Yasmiṁ, ānanda,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dukkhaṁ vedanaṁ vedeti, na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su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Yasmiṁ, ānanda, samaye duk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a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duk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Yasmiṁ, ānanda, samaye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eti, neva tasmiṁ samaye sukhaṁ vedanaṁ vedeti, na dukkhaṁ vedanaṁ vedeti; adukkhamasukhaṁyeva tasmiṁ samaye vedanaṁ vedeti.


Sukhāpi kho, ānand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Dukkhāpi kho, ānand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Adukkhamasukhāpi kho, ānanda, vedanā aniccā saṅkhatā paṭiccasamuppannā khayadhammā vayadhammā virāgadhammā nirodhadhammā. Tassa sukhaṁ vedanaṁ vediyamānassa ‘eso me attā’ti hoti. Tassāyeva sukhāya vedanāya nirodhā ‘byagā me attā’ti hoti. Variant: byagā  vyaggo (bj); vyāgā (pts1ed); byaggā (mr)Dukkhaṁ vedanaṁ vediyamānassa ‘eso me attā’ti hoti. Tassāyeva dukkhāya vedanāya nirodhā ‘byagā me attā’ti hoti. Adukkhamasukhaṁ vedanaṁ vediyamānassa ‘eso me attā’ti hoti. Tassāyeva adukkhamasukhāya vedanāya nirodhā ‘byagā me attā’ti hoti. Iti so diṭṭheva dhamme aniccasukhadukkhavokiṇṇaṁ uppādavayadhammaṁ attānaṁ samanupassamāno samanupassati, yo so evamāha: ‘vedanā me attā’ti. Tasmātihānanda, etena petaṁ nakkhamati: ‘vedanā me attā’ti samanupassituṁ.


Tatrānanda, yo so evamāha: ‘na heva kho me vedanā attā, appaṭisaṁvedano me attā’ti, so evamassa vacanīyo: ‘yattha panāvuso, sabbaso vedayitaṁ natthi api nu kho, tattha “ayamahamasmī”ti siy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tena petaṁ nakkhamati: ‘na heva kho me vedanā attā, appaṭisaṁvedano me attā’ti samanupassituṁ.


Tatrānanda, yo so evamāha: ‘na heva kho me vedanā attā, nopi appaṭisaṁvedano me attā, attā me vediyati, vedanādhammo hi me attā’ti. So evamassa vacanīyo vedanā ca hi, āvuso, sabbena sabbaṁ sabbathā sabbaṁ aparisesā nirujjheyyuṁ. Sabbaso vedanāya asati vedanānirodhā api nu kho tattha ‘ayamahamasmī’ti siyā”ti?


“No hetaṁ, bhante”.


“Tasmātihānanda, etena petaṁ nakkhamati: ‘na heva kho me vedanā attā, nopi appaṭisaṁvedano me attā, attā me vediyati, vedanādhammo hi me attā’ti samanupassituṁ.


Yato kho, ānanda, bhikkhu neva vedanaṁ attānaṁ samanupassati, nopi appaṭisaṁvedanaṁ attānaṁ samanupassati, nopi ‘attā me vediyati, vedanādhammo hi me attā’ti samanupassati. So evaṁ na samanupassanto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anupādiyaṁ na paritassati, aparitassaṁ 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Variant: aparitassaṁ  aparitassanaṁ (mr)‘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Evaṁ vimuttacittaṁ kho, ānanda, bhikkhuṁ yo evaṁ vadeyy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tissa diṭṭhī’ti, tadakallaṁ. Variant: itissa  iti sā (sya-all, km)‘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tissa diṭṭhī’ti, tadakallaṁ. ‘Hoti ca na c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tissa diṭṭhī’ti, tadakallaṁ. ‘Neva hoti na na hoti tathāgato paraṁ maraṇā itissa diṭṭhī’ti, tadakallaṁ.


Taṁ kissa hetu? Yāvatā, ānanda, adhivacanaṁ yāvatā adhivacanapatho, yāvatā nirutti yāvatā niruttipatho, yāvatā paññatti yāvatā paññattipatho, yāvatā paññā yāvatā paññāvacaraṁ, yāvatā vaṭṭaṁ, yāvatā vaṭṭati, tadabhiññāvimutto bhikkhu, tadabhiññāvimuttaṁ bhikkhuṁ ‘na jānāti na passati itissa diṭṭhī’ti, tadakallaṁ. Variant: yāvatā vaṭṭaṁ, yāvatā vaṭṭati 
자아를 관찰함
 
27. “아난다여,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관찰하면서 자아를 관찰하는가? 아난다여, 느낌을 관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아를 관찰한다.  느낌은 나의 자아다.’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다.’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느낀다. 나의 자아는 느끼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아난다여, [사람들은] 이와 같이 관찰하면서 자아를 관찰한다.”
 
28. “아난다여, 여기서  느낌은 나의 자아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이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세 가지 느낌이 있나니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느낌들 가운데서 그대는 어떠한 자아를 관찰합니까?’라고. 아난다여,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때는 오직 즐거운 느낌만을 느낀다. 아난다여,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때는 오직 괴로운 느낌만을 느낀다. 아난다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지 못하고 괴로운 느낌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때는 오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만을 느낀다.”
 
29. “즐거운 느낌도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요[縁起]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아난다여, 괴로운 느낌도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요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아난다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며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요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하면 나의 자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한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괴로운 느낌이 소멸하면 나의 자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소멸하면 나의 자아는 사라져버렸다.’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느낌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결국 자아는 현생에서 무상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여있고, 일어나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관찰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느낌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30. “아난다여, 여기서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이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만약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31. “아난다여, 여기서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느낀다. 나의 자아는 느끼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이 말해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만약 모든 종류의 느낌이 남김없이 전부 소멸해 버린다면 느낌이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그 어디서도 느낌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도 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그러므로 느낌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자아는 느낀다. 나의 자아는 느끼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32. “아난다여, 비구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으며, 자아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관찰하지도 않으며, 자아는 느끼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느낀다고 관찰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이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취착하지 않으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해탈한 마음을 가진 비구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는 견해를 가졌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졌다.’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견해를 가졌다.’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그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견해를 가졌다.’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아난다여, 이름과 그것의 토대가 그 어떤 범위까지 미치건, 어원에 입각한 언어와 그것의 토대가 그 어떤 범위까지 미치건, 개념과 그것의 토대가 그 어떤 범위까지 미치건, 통찰지와 그것의 영역이 그 어떤 범위까지 미치건, 윤회의 회전이 그 어떤 범위까지 미치건, 그 모든 것을 비구는 최상의 지혜로 안 뒤 해탈했다. 그러므로 그 비구는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이러한 견해를 가졌다.’라고 한다면 참으로 옳지 않다.”



5. Sattaviññāṇaṭṭhiti



33. Satta kho, ānanda, viññāṇaṭṭhitiyo, dve āyatanāni. Variant: Satta kho, ānanda satta kho imā ānanda (bj, sya-all, km, pts1ed)Katamā satta?
 
Santānanda, sattā nānattakāyā nānattasaññino, seyyathāpi manussā, ekacce ca devā, ekacce ca vinipātikā. Ayaṁ paṭhamā viññāṇaṭṭhiti.
 
Santānanda, sattā nānattakāyā ekattasaññino, seyyathāpi devā brahmakāyikā paṭhamābhinibbattā. Ayaṁ dutiyā viññāṇaṭṭhiti.
 
Santānanda, sattā ekattakāyā nānattasaññino, seyyathāpi devā ābhassarā. Ayaṁ tatiyā viññāṇaṭṭhiti.
 
Santānanda, sattā ekattakāyā ekattasaññino, seyyathāpi devā subhakiṇhā. Ayaṁ catutthī viññāṇaṭṭhiti.
 
Santānanda, sattā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ūpagā. Ayaṁ pañcamī viññāṇaṭṭhiti.
 
Santānanda, sattā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ūpagā. Ayaṁ chaṭṭhī viññāṇaṭṭhiti.
 
Santānanda, sattā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ūpagā. Ayaṁ sattamī viññāṇaṭṭhiti.
 
Asaññasattāyatan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meva dutiyaṁ.
 
Tatrānanda, yāyaṁ paṭhamā viññāṇaṭṭhiti nānattakāyā nānattasaññino, seyyathāpi manussā, ekacce ca devā, ekacce ca vinipātikā. Yo nu kho, ānanda, tañca pajānāti, tassā ca samudayaṁ pajānāti, tassā ca atthaṅgamaṁ pajānāti, tassā ca assādaṁ pajānāti, tassā ca ādīnavaṁ pajānāti, tassā ca nissaraṇaṁ pajānāti, kallaṁ nu tena tadabhinanditun”ti?
 
“No hetaṁ, bhante” pe
 
“tatrānanda, yamidaṁ asaññasattāyatanaṁ. Yo nu kho, ānanda, tañca pajānāti, tassa ca samudayaṁ pajānāti, tassa ca atthaṅgamaṁ pajānāti, tassa ca assādaṁ pajānāti, tassa ca ādīnavaṁ pajānāti, tassa ca nissaraṇaṁ pajānāti, kallaṁ nu tena tadabhinanditun”ti? “No hetaṁ, bhante”. “Tatrānanda, yamida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Yo nu kho, ānanda, tañca pajānāti, tassa ca samudayaṁ pajānāti, tassa ca atthaṅgamaṁ pajānāti, tassa ca assādaṁ pajānāti, tassa ca ādīnavaṁ pajānāti, tassa ca nissaraṇaṁ pajānāti, kallaṁ nu tena tadabhinanditun”ti? “No hetaṁ, bhante”.
 
“Yato kho, ānanda, bhikkhu imāsañca sattannaṁ viññāṇaṭṭhitīnaṁ imesañca dvinnaṁ āyat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anupādā vimutto hoti, ayaṁ vuccatānanda, bhikkhu paññāvimutto.
 

 






일곱 가지 알음알이의 거주처

 
33. “아난다여, 참으로 일곱 가지 알음알이의 거주처[識住]와 두 가지 장소[]가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아난다여, 각자 다른 몸을 가지고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지고 [거기에 태어난]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들과 어떤 신들과 어떤 악처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것이 첫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아난다여, 각자 다른 몸을 가졌지만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지고 [태어난]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기 이 세상에서] 초선(初禅)을 닦아서 [죽은 뒤] 범중천에 태어난 신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아난다여, 모두 같은 몸을 가졌지만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광음천의 신들이다. 이것이 세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아난다여, 모두 같은 몸을 가졌고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변정천의 신들이다. 이것이 네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아난다여, 물질[]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아난다여,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処)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아난다여, 일체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処)에 도달한 중생들이 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그리고 무상유정처가 있고 두 번째로 비상비비상처가 있다.”
 
34. “아난다여, 각자 다른 몸을 가지고 각자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들과 어떤 신들과 어떤 악처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것이 첫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그런데 이러한 첫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를 꿰뚫어 알고 그것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사라짐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위험을 꿰뚫어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아는 자가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각자 다른 몸을 가졌지만 모두 같은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기 이 세상에서] 초선(初禅)을 닦아서 태어난 범중천의 신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이것이 세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이것이 네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이것이 여섯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이것이 일곱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곱 번째 알음알이의 거주처를 꿰뚫어 알고 그것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사라짐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위험을 꿰뚫어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아는 자가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무상유정처를 꿰뚫어 알고 그것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사라짐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위험을 꿰뚫어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아는 자가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비상비비상처를 꿰뚫어 알고 그것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사라짐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달콤함을 꿰뚫어 알고 그것의 위험을 꿰뚫어 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꿰뚫어 아는 자가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비구는 일곱 가지 알음알이의 거주처[識住]와 두 가지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고서 해탈했다. 아난다여, 이를 일러 비구는 통찰지로써 해탈한 자[慧解脱者]라고 한다.”
 
 

6. Aṭṭhavimokkha


Aṭṭha kho ime, ānanda, vimokkhā. Katame aṭṭha?
 
Rūpī rūpāni passati ayaṁ paṭhamo vimokkho.
 
Ajjhattaṁ a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ayaṁ dutiyo vimokkho.
 
Subhanteva adhimutto hoti, ayaṁ tatiyo vimokkho.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catuttho vimokkho.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pañcamo vimokkho.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chaṭṭho vimokkho.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sattamo vimokkho.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aṭṭhamo vimokkho.
 
Ime kho, ānanda, aṭṭha vimokkhā.
 
Yato kho, ānanda, bhikkhu ime aṭṭha vimokkhe anulomampi samāpajjati, paṭilomampi samāpajjati, anulomapaṭilomampi samāpajjati, yatthicchakaṁ yadicchakaṁ yāvaticchakaṁ samāpajjatipi vuṭṭhātipi. Āsavānañca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vuccatānanda, bhikkhu ubhatobhāgavimutto. Imāya ca, ānanda, ubhatobhāgavimuttiyā aññā ubhatobhāgavimutti uttaritarā vā paṇītatarā vā natth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āna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īti.
 
Mahānidānasuttaṁ niṭṭhitaṁ dutiyaṁ.
여덟 가지 해탈[八解脱]
 
35. “아난다여, 참으로 여덟 가지 해탈[八解脱]이 있다. 무엇이 여덟인가?
 여기 비구는 [안으로] 색계에 속하는 [에 들어]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이다.
 안으로 물질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이다.
 깨끗하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세 번째 해탈이다.
 물질[]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다.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를 구족하며 머문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다.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다.
 일체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상수멸(想受滅, 인식과 느낌의 그침)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덟 가지 해탈이다.”
 
 
맺는말
 
36. “아난다여, 비구는 이 여덟 가지 해탈을 순서대로도 증득하고, 역순으로도 증득하고, 순서대로와 역순으로도 증득한다. 그리고 그는 원하는 곳마다 원하는 때마다 원하는 만큼 증득하기도 하고 출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脱]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아난다여, 이를 일러 비구는 양면해탈[兩面解脱]을 한 자라고 한다. 아난다여, 이 양면해탈과는 다른 더 높고 더 수승한 양면해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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