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은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편집한 것일까?
●열반경은 사건의 발생순서대로 편집한 것인가?
부처님은 음력 4월 15일(Vesākha)에 열반하셨으므로 부처님이 웨살리에서 수명을 포기하시고 3개월 후에 열반에 드시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1월 15일(Māgha)이어야 한다. 그런데 벨루가나에서의 하안거는 8월15일(Poṭṭhapāda)에 끝나므로 안거가 끝나고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실때까지 5개월의 공백이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사리뿟따 존자는 10월 15일(Kattika)에 입적하였고 목갈라나 존자는 보름후(다음 달의 초하루)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날란다에서 꾸시나가라까지는 150km이므로 안거를 지내고 걸어가실때 걸린 시간은 10일~ 15일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라자가하에서 웨살리는 125km이므로 10일~1개월정도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마지막 여행길은 총 4개월 보름(안거3개월+보름+1달)정도 걸린 것으로 보이지만 위에서 보듯이 6개월의 공백을 합치면 10개월 보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사리뿟따가 죽었을때 아난다와 부처님이 사위성에 있었다는 점이다. 쭌다 경(S47:13)에 의하면 사리뿟따는 날란다에서 죽었을때 쭌다가 사리뿟따의 가사와 발우를 챙겨서 사위성에 있는 아난다에게 알렸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열반에 들고나서 부처님은 욱까쩰라 경(S47:14)에서 내게는 회중이 텅 빈 것처럼 여겨진다고 말씀하시는 장면도 나온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마지막 여행은 10개월 보름정도 걸렸고 그 기간에 사위성에 들리셨고 그때 사리뿟따가 죽었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셨다라고 보아야 할까?
날란다에서 사위성까지는 460km나 걸리는 먼길이다. 마지막 여행길에 그 길을 80세 부처님이 다녀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1]
인도의 음력달력 이름
Citta(3~4월) Vesākha(4~5월) Jeṭṭha(5~6월) Āsāḷha(6~7월) Sāvaṇa(7~8월) Poṭṭhapāda(8~9월) Assayuja(9~10월) Kattika(10~11월) Māgasira(11~12월) Phussa(12~1월) Māgha(1~2월) Phagguṇa(2~3월)
[참고2]
주석서 설명 380-381. catutthe V.3.253 aciraparinibbutesu sāriputtamoggallānesūti naciraparinibbutesu dvīsu aggasāvakesu. tesañhi
dhammasenāpati kattikamāsapuṇṇamāya parinibbuto, mahāmoggallāno tato aḍḍhamāsaṃ atikkamma amāvasuposathe. satthā dvīsu aggasāvakesu parinibbutesu mahābhikkhusaṅghaparivāro mahāmaṇḍale cārikaṃ caramāno anupubbena
ukkacelanagaraṃ patvā tattha piṇḍāya caritvā gaṅgāpiṭṭhe rajatapaṭṭavaṇṇavālikāpuline vihāsi. tena vuttaṃ “aciraparinibbutesu sāriputtamoggallānesū”ti.
kattikamāsa : (m.) name of a month; October-November.
[참고3]
대반열반경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행적 요약
1.1 라자가하: 독수리봉 산(영취산) 아자따삿뚜의 대신 왓사까라-왓지공격 문의
1.13 암발랏티까: 왕의 객사
1.15 날란다: 빠와리바의 망고 숲 사리뿟따의 사자후
1.19 빠딸리 (1) 공회당 설법
1.26 상동 (2) 마가다 대신들: 빠딸리뿟다 간설
1.29 상동 (3) 마가다 대신들의 공양청
1.33 강가강 신족통으로 도강
2.1 꼬띠가마 사성제 설법
2.5 나디까: 벽돌집 천안통(死后生處)
2.11 웨살리: 암바빨리 망고 숲 (1) 正念正知
2.14 상동 (2) 암바빨리 기녀 공양청
2.15 상동 (3) 릿차위들 공양청
2.21 벨루와가마 (1) 웻살리 전역에서 안거 지시 * 우기철: 5개월(양력 6월-10월), 안거: 3개월(6.15-9.15)
2.23 상동 (2) 세존 병으로 극심한 고통
2.25 상동 (3) 스승의 주먹 + 낡은 수레,가죽 끈
2.26 상동 (4) 자등명/법등명, 4수관(身受心法)
3.1 웻살리 (1) 6탑묘 칭송
3.3 상동 (2) 4여의족: 일겁 체류
3.4 상동 (3) 아난다 간청 안함(3회)
3.7 상동 (4) 마라 빠삐만 권청: 부처님 수락(3달내 반열반)
3.10 상동 (5) 수명의 상카라 포기: 지진, 천둥번개
3.13 상동 (6) 지진의 8가지 원인
3.21 상동 (7) 8회중(끄사뜨리아,바라문,장자,사문, 사대천왕,삼십삼천,마라,범천)
3.24 상동 (8) 8승처
3.33 상동 (9) 8해탈
3.34 상동 (10) 아난다에게 마라와의 대화설명 (우루웰라 - 짜빨라 탑묘)
3.38 상동 (11) 아난다의 간청(3회): 일겁 more
3,40 상동 (12) 이미 늦었다.(오늘 및 과거 10장소 에서 암시를 준 바 있다)
3.49 상동(중각강당) (13) 대중설법 및 3개월내 열반함
4.1 빤다가마 사성제 설법
4.5 핫티가마 -> 암바가마 -> 잠부가마 -> 보가나가라
4.7 보가나가라: 아난다 탑묘 4가지 큰 권위
4.8 빠와: 쭌다의 망고 숲 쭌다의 공양
4.20 상동 적리 걸리심
4.21 빠와 -> 꾸시나라 (1) 마실 물 요구
4.26 상동 (2) 뿍꾸사 말리뿟따와의 대화, 황금가사 2벌
4.37 상동 (3) 황금가사 입혀드림, 오늘밤 3경 반열반
4.39 까꿋다 강 목욕 망고 숲 누워서 휴식
4.42 상동 아난다에게 쭌다의 앞날 부탁
5.1 꾸시나라: 살라 숲 (1) 침상 준비
5.3 상동 (2) 만다라꽃 + 천상음악, 참수행 강조
5.4 상동 (3) 우빠와나 제낌, 신들의 배려
5.7 상동 (4) 4가지 순례장소
5.9 상동 (5) 아난다의 질문: 여인 대처 요령
5.10 상동 (6) 아난다의 질문: 존체 수습 방안
5.12 상동 (7) 탑 조성 (4 존재)
5.13 상동 (8) 아난다의 울음 및 부처님 위로
5.15 상동 (9) 아난다에 대한 칭송
5.17 상동 (10) 아난다 다른 열반지 추천
5.19 상동 (11) 와셋타들에게 열반예정 통보하라
5.23 상동 (12) 수밧다 유행승: 6사외도 및 8정도
5.30 상동 (13) 수밧다 구족계
6.1 상동 (14) 마지막 유훈: 법과 율을 스승으로
6.2 상동 (15) 반떼, 도반 호칭
6.3 상동 (16) 사소한 계율 폐지 가능
6.4 상동 (17) 찬나 비구 처벌 지시
6.5 상동 (18) 마지막 질문 (3회)
6.7 상동 (19)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6.8 상동 (20) 선정 출입 상세과정: 초선 - 상수멸 - 초선 - 4선 - 열반
6.10 상동 (21) 지진 및 천둥번개, 사함빠띠 범천의 게송, 삭까(인드라)의 게송, 아누룻다의 게송, 아난다의 게송
사리뿟따의 사자후 4. Sāriputtasīhanāda
1.15. 그때 세존께서는 암발랏티까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날란다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응답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날란다에 도착하셨다.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āyasmantaṃ ānandaṃ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ḷand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ṃ,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yena nāḷandā tadavasari, tatra sudaṃ bhagavā nāḷandāyaṃ viharati pāvārikambavane.
1.16.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pasanno)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
“evaṃ 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사리뿟따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구나.
“Uḷārā kho te ayaṃ, sāriputta,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셨다.’라고 과거의 모든 아라한ㆍ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te, sāriputta, ye 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ṃsīl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ṃ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실 것이다.’라고 미래의 모든 아라한ㆍ정등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pana te, sāriputta, ye 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ṃsīl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i, evaṃdhammā evaṃpaññā evaṃvihārī evaṃvimutt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시대에 아라한ㆍ정등각이다. 그러면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통찰지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이다.’라고 [나에 대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Kiṃ pana te, sāriputta, ahaṃ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cetasā ceto paricca vidito: ‘evaṃsīlo bhagavā itipi, evaṃdhammo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bhagavā itipī’”ti? “No hetaṃ, bhante”.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참으로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ㆍ정등각들에 대해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cetopariyañāṇaṃ]가 없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가?”
“Ettha ca hi te, sāriputta,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natthi. Atha kiñcarahi te ayaṃ, sāriputta, uḷārā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ṃ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ṃpasanno ahaṃ,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ṃ sambodhiyan’”ti?
1.17. “세존이시여, 제게는 분명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ㆍ정등각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다운 추론(dhammanvayo, by inference from the teaching)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튼튼한 기초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혜롭고 입지가 굳고 현명한 문지기가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Na kho me, bhante,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ṃ atthi, api ca me dhammanvayo vidito. Seyyathāpi, bhante, rañño paccantimaṃ nagaraṃ daḷhuddhāpaṃ daḷhapākāratoraṇaṃ ekadvāraṃ,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aññātānaṃ nivāretā ñātānaṃ pavesetā.
그러나 그는 그 도시의 모든 통로를 다 순찰하면서 성벽의 이음매와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것 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도시를 들어오고 나가는 큰 생명체는 누구든 모두 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So tassa nagarassa samantā anupariyāyapathaṃ anukkamamāno na passeyya pākārasandhiṃ vā pākāravivaraṃ vā, antamaso biḷāranikkhamanamattampi. Tassa evamassa: ‘ye kho keci oḷārikā pāṇā imaṃ nagaraṃ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 sabbe te imināva dvārena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ti.
세존이시여, 과거의 모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들께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pañca nīvaraṇe]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upakkilese)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処]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覚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dhammanvayo vidito: ‘ye te, bhante, ahesuṃ atītamaddhānaṃ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bojjhaṅge yathābhūtaṃ bhāvetvā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iṃsu.
세존이시여, 미래의 모든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들께서도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시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시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실 것입니다.
Yepi te, bhan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issanti.
세존이시여, 현재의 세존께서도 아라한ㆍ정등각이시니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Bhagavāpi, bhante, etarahi arahaṁ sammāsambuddh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o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1.18. 세존께서는 거기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머무시면서 많은 비구들에게 이러한 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한 것이 삼매다. 이러한 것이 통찰지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라고.
쭌다 경(S47:13) Cun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의 날라까가마까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쭌다 사미가 사리뿟따 존자의 시자로 있었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그 병으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註) 쭌다 사미는 사리뿟따의 동생이었다. 구족계를 받기 전에 불리던 이름이었는데 장로가 된 후에도 이렇게 불렸기 때문에 쭌다 사미라고 하는 것이다. 쭌다 사미는 마하쭌다 존자로도, 쭌다 존자로도, 쭌다까 존자로도 불렸다고 한다.
3. 그러자 쭌다 사미는 사리뿟따의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으로 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발우와 가사입니다.”
4. “도반 쭌다여, 이것은 세존을 뵙고 말씀드려야 할 문제입니다. 도반 쭌다여, 같이 세존을 뵈러 갑시다. 뵙고서 이 문제를 세존께 말씀드립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쭌다 사미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5. 그때 아난다 존자와 쭌다 사미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쭌다 사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발우와 가사입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저의 몸은 무겁기만 합니다. 방향 감각도 잃어버렸고 법들도 제게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6. “아난다여,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계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그대의 해탈지견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는가?”
7.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면서 저의 계의 무더기를 … 해달지견의 무더기를 가져가 버리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사리뿟따는 저를 교계하고 감싸주고 일깨워주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법을 가르치기에 피로한 줄 몰랐으며 동료 수행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자였습니다. 저희는 사리뿟따 존자가 베풀어준 법의 자양분과 법의 재물과 법의 도움을 기억합니다.”
8.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9. “아난다여, 예를 들면 속재목[心材]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꺾어진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가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다.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10.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11.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12. “아난다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SN 47.14
욱까쩰라 경(S47:14) Ukkacel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왓지에서 욱까쩰라의 강가 강 언덕에 고귀한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무셨는데 그것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든 뒤 오래지 않았을 때였다.
2. 그 무렵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침묵하고 침묵하는 비구 승가를 둘러보신 뒤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들자 내게는 회중이 텅 빈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의 회중은 텅 비지 않았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물던 그 방향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4. “비구들이여, 지금의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듯이 과거의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도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지금의 나에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라는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듯이 미래의 세존.아라한.정등각자들께도 고결한 두 상수제자가 있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이롭다. 비구들이여,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놀랍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승의 교법에 따라 행할 것이고 스승의 교계에 따를 것이며, 사부대중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며 존중하고 높이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경이롭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놀랍다. 왜냐하면 이러한 두 제자가 완전한 열반에 들었는데도 여래에게는 근심과 탄식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들이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꺾어진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속재목을 가지고 튼튼하게 서 있는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7.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9.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 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