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바드라까 경(S42:11)- 찌라와시(ciravāsī)의 아버지

후박나무 (허정) 2023. 7. 15. 17:48

찌라와시(ciravāsī)의 아버지  바드라까 촌장과 부처님의 대화

 

 ‘과거에 일어났던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모두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으로 한다.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일어날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모두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으로 한다. 참으로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yaṃ kho kiñci atītamaddhānaṃ dukkhaṃ uppajjamānaṃ uppajji sabbaṃ taṃ chandamūlakaṃ chandanidānaṃ. Chando hi mūlaṃ dukkhassa. Yampi hi kiñci anāga­ta­maddhā­naṃ dukkhaṃ uppajjamānaṃ uppajjissati, sabbaṃ taṃ chandamūlakaṃ chandanidānaṃ. Chando hi mūlaṃ dukkhassā’”ti. 

 

 

 

 

바드라까 경(S42:11)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말라에서 우루웰라깝빠라는 말라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2. 그때 바드라까 촌장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드라까 촌장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게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해서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촌장이여, 만일 내가 ‘과거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라고 과거에 관하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하면 그대에게는 의심과 혼란이 생길 것이다. 촌장이여, 만일 내가 ‘미래에는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미래에 관하여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하면 그대에게는 의심과 혼란이 생길
 
 것이다. 촌장이여, 나도 바로 여기에 앉아 있고 그대도 바로 여기에 앉아 있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앉아 있는 그대에게 괴로움의 일어남과 소멸을 설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바드라까 촌장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는 이 우루웰라깝빠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대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제게는 이 우루웰라깝빠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것이 제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Taṃ kiṃ maññasi, gāmaṇi, atthi te uruvelakappe manussā yesaṃ te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Atthi me, bhante, uruvelakappe manussā yesaṃ me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5. “촌장이여, 그러면 그대에게는 이 우루웰라깝빠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더라도 그대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제게는 이 우루웰라깝빠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더라도 그것이 제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Atthi pana te, gāmaṇi, uruvelakappe manussā yesaṃ te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n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Atthi me, bhante, uruvelakappe manussā yesaṃ me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n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6. “촌장이여, 그러면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이 우루웰라깝빠에서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대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
 
절망을 일어나게 하는가? 그리고 무슨 이유와 무슨 조건 때문에 이 우루웰라깝빠에서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더라도 그대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가?”

“Ko nu kho, gāmaṇi, hetu, ko paccayo yena te ekaccānaṃ uru­vela­kap­pi­yā­naṃ manussānaṃ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세존이시여, 이 우루웰라깝빠에서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제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제가
 
그들에게 욕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우루웰라깝빠에서 어떤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거
 
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더라도 제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 것은 제가 그들에게 욕탐이 없기 때문입니다.”
“Yesaṃ me, bhante, uru­vela­kap­pi­yā­naṃ manussānaṃ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atthi me tesu chandarāgo. Yesaṃ pana, bhante, uru­vela­kap­pi­yā­naṃ manussānaṃ vadhena vā bandhena vā jāniyā vā garahāya vā nuppajjeyyu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atthi me tesu chandarāgo”ti.

 

 


 “촌장이여, 현재에서 보여지고, 이해되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얻어지고,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이러한 방법은 과거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라.

 ‘과거에 일어났던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모두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으로 한다.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일어날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모두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으로 한다. 참으로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라고.”

 “Iminā tvaṃ, gāmaṇi, dhammena diṭṭhena viditena akālikena pattena pariyogāḷhena atītānāgate nayaṃ nehi: ‘yaṃ kho kiñci atītamaddhānaṃ dukkhaṃ uppajjamānaṃ uppajji sabbaṃ taṃ chandamūlakaṃ chandanidānaṃ. Chando hi mūlaṃ dukkhassa. Yampi hi kiñci anāga­ta­maddhā­naṃ dukkhaṃ uppajjamānaṃ uppajjissati, sabbaṃ taṃ chandamūlakaṃ chandanidānaṃ. Chando hi mūlaṃ dukkhassā’”ti. 


7.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일어나는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모두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으로 한다. 참으로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금언을 말씀하셨습니다.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Yāva subhāsi­tañ­cidaṃ, bhante, bhagavatā: ‘yaṃ kiñci dukkhaṃ uppajjamānaṃ uppajjati, sabbaṃ taṃ chandamūlakaṃ chandanidānaṃ. Chando hi mūlaṃ dukkhassā’ti

 


 세존이시여, 제게는 찌라와시라는 아이가 있는데 저의 집 밖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사람을 불러 ‘여보게, 가서 찌라와시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게’라고
 
시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저는 ‘찌라와시가 아프지는 않아야 할 텐데.’라고 하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Atthi me, bhante, ciravāsī nāma kumāro bahi āvasathe paṭivasati. So khvāhaṃ, bhante, kālasseva vuṭṭhāya purisaṃ uyyojemi: ‘gaccha, bhaṇe, ciravāsiṃ kumāraṃ jānāhī’ti. Yāvakīvañca, bhante, so puriso nāgacchati, tassa me hoteva aññathattaṃ: ‘mā heva ciravāsissa kumārassa kiñci ābādhayitthā’”ti.

 



8.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대의 아들 찌라와시가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대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겠는가?”

 “세존이시여, 저의 아들 찌라와시가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것은 저의 생명이 만신창이 되어버린 것인데 어찌 제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촌장이여, 이러한 방법으로 그대는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
 
으로 한다. 참으로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알아야 한다.”
 

9.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찌라와시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그녀에 대한 그대의 열망과 애욕과 애정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그렇다면 그대가 찌라와시의 어머니를 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 그녀에 대한
 
그대의 열망과 애욕과 애정이 생기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촌장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찌라와시의 어머니가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
 
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대에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겠는가?”

 “세존이시여, 찌라와시의 어머니가 사형을 당하거나 구속되거나 벌금을 물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것은 저의 생명이 만신창이 되어버린 것인데 어찌 제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10. “촌장이여, 이러한 방법으로 그대는 ‘괴로움은 무엇이든지 모두 욕구를 뿌리로 하고
 
욕구를 근원으로 한다. 참으로 욕구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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