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게송(偈頌)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ā
9분교(九分敎, navaṅga-sāsana)에 인연(因緣), 비유(譬喩), 논의(論議)의 3가지를 추가하면 12분교가된다. 5부니까야에서 9분교가 나타나는 경은 적게 배움 경(A4:6), 비구름 경2(A4:102), 쥐 경(A4:107), 용솟음 경(A4:186), 귀로 들음 경(A4:191), 법에 머무는 자 경1(A5:73), 법에 머무는 자 경2(A5:74), 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2(A5:155), 까라나빨리 경(A5:194), 아난다 경(A6:51), 법을 앎 경(A7:64), 뱀의 비유경(M22), 공에 대한 긴 경(M122)과 비구위방가, 비구니 위방가등 14경이다.
비구위방가에서는
“ 세존이신 위빠시(vipassi) 과 세존이신 시키(sikhi) 과 세존이신 웻사부(vessabhu) 의 청정한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위빠시(vipassi) ,시키(sikhi),웻사부(vessabhu) 세존은 경(sutta),응송(geyya),수기(veyyākaraṇa),게송(gāthā),감흥어(udāna),여시어(tivuttaka),본생담(jātaka),미증유법(abbhutadhamma),문답(vedalla)이 거의 없었다Appakañca. 제자들에게는 학습계율(sikkhāpada)이 시설되지 않았고, 의무계율(pātimokkha)도 부과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존이선 까꾸싼다(kakusandha) 와 세이신 꼬나가마니(koṇāgamana) 와 세존이신 까싸빠 의 청정은 오래갔다. 그것은 그 부처님들은 경(sutta),응송(geyya),수기(veyyākaraṇa),게송(gāthā),감흥어(udāna),여시어(tivuttaka),본생담(jātaka),미증유법(abbhutadhamma),문답(vedalla)을 설했고 제자들에게 학습계율(sikkhāpada)과 의무계율(pātimokkha)을 부과하였다."
율장에 의하면 9분교의 가르침은 과거 7불이 동일하게 설한 것이다. 부처님이 설법한 것을 제자들이 기억하고 외웠다가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9분교라는 전통으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새내기 출가자들은 스승으로부터 9분교를 교육을 받았고 그것을 외워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제1차 결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열반경에 등장하는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그 당시에 작은 단위의 승가에서 공개결집이 자주 있었음을 말해준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나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은 법이고 이것은 율이고 이것은 스승의 교법입니다.’라고 하면, 그런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말고 공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않은 채로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대조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지 않고 율과 맞지 않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이것은 물리쳐야 한다. 그의 말을 경과 견주어 보고 율에 비추어 보아서 만일 경과 견주어지고 율과 맞는다면 여기서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잘 호지한 것입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여기서 "경과 율"은 경(sutta),응송(geyya),수기(veyyākaraṇa),게송(gāthā),감흥어(udāna),여시어(tivuttaka),본생담(jātaka),미증유법(abbhutadhamma),문답(vedalla)의 9분교를 말한다. 석가모니불의 불멸후 제1차 결집에서 5부니까야로 전환되어 결집되었다.
적게 배움 경(A4:6)
Appassuta-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적게 배웠고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하는 자, 적게 배웠지만 배움으로 성취하는 자, 많이 배웠지만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하는 자, 많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배움으로 성취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 사람은 적게 배웠고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을 적게 배웠다.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appakaṃ sutaṃ hoti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ā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그는 이런 것을 적게 배웠을 뿐만 아니라 적게 배운 이런 것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법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적게 배웠고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 사람은 적게 배웠지만 배움으로 성취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을 적게 배웠다. 그는 이런 것을 적게 배웠지만 적게 배운 이런 것의 뜻도 깊이 알고 법도 깊이 알기 때문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적게 배웠지만 배움으로 성취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지만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을 많이 배웠다. 그는 이런 것을 많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지만 배움으로 성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배움으로 성취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을 많이 배웠다. 그는 이런 것을 많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많이 배운 이런 것의 뜻도 깊이 알고 법도 깊이 알기 때문에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배움으로 성취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2. “배움도 적고 계에도 철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계와 배움, 양쪽 모두로 그를 비난하노라.
비록 배움이 적더라도 계에 철저하면
사람들은 그의 계를 찬탄한다.
그의 배움도 성취된다.
비록 많이 배웠지만 계에 철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의 계를 비난한다.
그의 배움도 성취되지 않는다.
많이 배웠고 계에 철저하면
사람들은 계와 배움, 양쪽 모두로 그를 찬탄하노라.
많이 배웠고, 법을 지니고, 통찰지를 갖춘
마치 잠부의 금과 같은 부처님 제자를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으리.
신들도 그를 찬탄하고, 범천도 찬탄하도다.”
비구름 경2(A4:102)
Val?hak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비구름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천둥만 치고 비는 내리지 않는 비구름,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비구름,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비구름,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비구름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비구름이다.”
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비구름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천둥만 치고 비는 내리지 않는 자,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자,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자,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자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둥만 치고 비를 내리지 않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천둥만 치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천둥만 치고 비는 내리지 않는 비구름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비구름과 같다고 말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비는 내리지만 천둥은 치지 않는 비구름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비구름과 같다고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천둥도 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비구름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비구름 비유와 같다고 말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린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천둥도 치고 비도 내리는 비구름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비구름과 같다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비구름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쥐 경(A4:107)
M?sik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쥐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것,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것,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것,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쥐이다.”
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는 쥐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자,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자,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자,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자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자이다. 예를 들면 구멍을 파지만 [그 안에] 살지 않는 쥐와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쥐와 같다고 말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구멍 안에] 살지만 구멍을 파지 않는 쥐와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쥐와 같다고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구멍을 파지도 않고 [그 안에] 살지도 않는 쥐와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쥐와 같다고 말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법을 잘 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구멍도 파고 [그 안에] 살기도 하는 쥐와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사람을 이런 쥐와 같다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세상에는 쥐의 비유와 같은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용솟음 경(A4:186)
Ummagga-sutta
1.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세상을 이끕니까? 무엇이 세상을 끌어당깁니까? 어떤 것이 생겨나서 이것을 지배합니까?”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참으로 그대의 용솟음치는 [통찰지]는 경사스럽구나. 그대의 영감은 경사스럽고 그대의 질문은 좋구나. 비구여, 그대는 참으로 ‘세존이시여, 무엇이 세상을 이끕니까? 무엇이 세상을 끌어당깁니까? 어떤 것이 생겨나서 이것을 지배합니까?’라고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마음이 세상을 이끄노라. 마음이 세상을 끌어당기노라. 마음이 생겨나서 이것을 지배하노라.”
2. “잘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세존께 다른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많이 배우고 법(경장)을 호지한 자, 많이 배우고 법을 호지한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가 많이 배우고 법을 호지한 자입니까?”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참으로 그대의 용솟음치는 [통찰지]는 경사스럽구나. 그대의 영감은 경사스럽고 그대의 질문은 좋구나. 비구여, 그대는 참으로 ‘세존이시여, ‘많이 배우고 법(경장)을 호지한 자, 많이 배우고 법을 호지한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가 많이 배우고 법을 호지한 자입니까?’라고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나는 많은 법을 설하였나니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만일 비구나 네 구절로 된 게송[四句偈]이라도 그 뜻을 완전하게 알고 법을 완전하게 알아서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다면 그는 많이 배우고 법(경장)을 호지한 자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3. “잘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세존께 다른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가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입니까?”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참으로 그대의 용솟음치는 [통찰지]는 경사스럽구나. 그대의 영감은 경사스럽고 그대의 질문은 좋구나. 비구여, 그대는 참으로 ‘세존이시여,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가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입니까?’라고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여기 비구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듣고 그 뜻을 통찰지로써 꿰뚫어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듣고 그 뜻을 통찰지로써 꿰뚫어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듣고 그 뜻을 통찰지로써 꿰뚫어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듣고 그 뜻을 통찰지로써 꿰뚫어 본다. 비구여, 이와 같이 그는 잘 배우고 꿰뚫는 통찰지를 가진 자이다.”
4. “잘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세존께 다른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가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입니까?”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참으로 그대의 용솟음치는 [통찰지]는 경사스럽구나. 그대의 영감은 경사스럽고 그대의 질문은 좋구나. 비구여, 그대는 참으로 ‘세존이시여,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가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입니까?’라고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여기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과 둘 다의 이익과 모든 세상의 이익을 생각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그는 현명하고 큰 통찰지를 가진 자이다.”
귀로 들음 경(A4:191)
Sot?nugata-sutta
1. “비구들이여, 귀로 들은 것들, 외워서 친숙해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네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잘 배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완전히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그에게 마음챙김이 일어나는 것은 느리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귀로 들은 것들, 외워서 친숙해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기대되는 첫 번째 이익이다.”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잘 배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잘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와서]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한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전에 청정범행을 닦은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라고.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북소리에 능숙한 자와 같다. 그는 큰길을 가다가 북소리를 들으면 북소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의심이나 혼란이 없이 북소리를 정확하게 판단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법을 잘 배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잘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와서]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한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전에 청정범행을 닦은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라고. 그러면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귀로 들은 것들, 외워서 친숙해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기대되는 두 번째 이익이다.”
3.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잘 배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잘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와서]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신의 아들이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한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전에 청정범행을 닦은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라고. 그러면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소라 고동소리에 능숙한 자와 같다. 그는 큰길을 가다가 소라 고동소리를 들으면 소라 고동소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의심이나 혼란이 없이 소라 고동소리를 정확하게 판단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법을 잘 배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잘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와서]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신의 아들이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한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전에 청정범행을 닦은 바로 그 법과 율이구나.’라고. 그러면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귀로 들은 것들, 외워서 친숙해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기대되는 세 번째 이익이다.”
4.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잘 배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잘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와서]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하지도 않고, 어떤 신의 아들이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먼저 그곳에] 화현한 자가 [나중에 그곳에] 화현한 그에게 ‘존자여,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존자여,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전생에 청정범행을 닦았지 않았습니까?’라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러면 그는 ‘존자여, 기억합니다. 존자여, 기억하고말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마치 [어릴 때] 흙장난을 하고 놀던 두 친구가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서로 만난 것과 같다. 그러면 [그 흙장난을 두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여보게, 이것을 기억하는가? 여보게, 이것을 기억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친구는 ‘여보게, 기억한다네. 여보게, 기억하고말고.’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다. 그는 이러한 법들을 귀로 들은 뒤 외워서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 잘 꿰뚫는다. 그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죽어서 어떤 신의 무리에 태어난다. 거기서 행복한 그에게 법문의 구절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신통을 가졌고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은 비구가 [와서]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하지도 않고, 어떤 신의 아들이 신들의 회중에서 법과 율을 설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먼저 그곳에] 화현한 자가 [나중에 그곳에] 화현한 그에게 ‘존자여,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존자여,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전생에 청정범행을 닦았지 않았습니까?’라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러면 그는 ‘존자여, 기억합니다. 존자여, 기억하고말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에게 느리게 마음챙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중생은 재빨리 특별함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귀로 들은 것들, 외워서 친숙해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기대되는 네 번째 이익이다.
비구들이여, 귀로 들은 것들, 외워서 친숙해진 것들, 마음으로 숙고한 것들, 견해로 완전히 꿰뚫은 것들에서 이러한 네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법에 머무는 자 경1(A5:73)
Dhammavih?r?-sutta
1.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에 머무는 자, 법에 머무는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가 법에 머무는 자입니까?”
2.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가르침을 완전히 외운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완전히 외우는 것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홀로 앉음을 소홀히 하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몰두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 비구는 교학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3. “비구여, 다시 비구는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는 이런 법을 이해시키는 것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홀로 앉음을 소홀히 하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몰두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 비구는 [법을] 이해시키는 것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4. “비구여, 다시 비구는 비구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반복해서 암송한다. 그는 이런 반복적인 암송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홀로 앉음을 소홀히 하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몰두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 비구는 반복해서 암송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5. “비구여, 다시 비구는 비구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마음으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그는 이런 법에 대한 사유로 하루 종일을 보내고, 홀로 앉음을 소홀히 하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몰두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 비구는 사유는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6.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가르침을 배운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완전히 외우는 것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지 않고 홀로 앉음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몰두한다. 비구여, 이와 같은 비구가 법에 머무는 자이다.”
7. “비구여, 이와 같이 나는 교학을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법을] 이해시키는 것을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반복해서 암송을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사유를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법에 머무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다. 비구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나는 연민으로 하였다.
비구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법에 머무는 자 경2(A5:74)
Dhammavih?r?-sutta
1.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법에 머무는 자, 법에 머무는 자’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가 법에 머무는 자입니까?”
2.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가르침을 완전히 외운다. 그러나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 비구는 교학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3. “비구여, 다시 비구는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 비구는 [법을] 이해시키는 것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4. “비구여, 다시 비구는 비구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반복해서 암송한다. 그러나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 비구는 반복해서 암송은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5. “비구여, 다시 비구는 비구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마음으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그러나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 비구는 사유는 많이 하지만 법에 머무는 자라고는 하지 않는다.”
6.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가르침을 배운다. 그리고 그는 통찰지로써 더 높은 뜻을 꿰뚫어 안다. 비구여, 이와 같은 비구가 법에 머무는 자이다.”
7. “비구여, 이와 같이 나는 교학을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법을] 이해시키는 것을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반복해서 암송을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사유를 많이 하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고, 법에 머무는 비구에 대해서 설했다. 비구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나는 연민으로 하였다.
비구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정법을 혼란스럽게 함 경2(A5:155)
Saddhammaniy?ma-sutta
1.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경우가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들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첫 번째 경우다.”
3.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남에게 상세하게 설해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두 번째 경우다.”
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남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세 번째 경우다.”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반복해서 암송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네 번째 경우다.”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다섯 번째 경우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가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7.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경우가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들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가르침을 배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첫 번째 경우다.”
9.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남에게 상세하게 설해준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두 번째 경우다.”
1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남으로 하여금 상세하게 말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세 번째 경우다.”
11.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상세하게 암송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네 번째 경우다.”
12.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들은 들은 대로 완전히 외운 대로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는 다섯 번째 경우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가 정법을 확고하게 하고 혼란스럽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
까라나빨리 경(A5:194)
K?ra?ap?l?-sutta
1.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까라나빨리 바라문이 릿차위들을 위해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 까라나빨리 바라문은 삥기야니 바라문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삥기야니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삥기야니 존자는 이 정오에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나는 사문 고따마를 뵙고 오는 길입니다.”
“삥기야니 존자는 사문 고따마의 탁월한 통찰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현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존자여, 내가 누구라고 사문 고따마의 탁월한 통찰지를 알겠습니까? 사문 고따마의 탁월한 통찰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삥기야니 존자는 사문 고따마를 엄청난 칭송으로 칭송하시는군요.”
“존자여, 내가 누구라고 사문 고따마를 칭송하겠습니까? 사문 고따마는 참으로 칭송받아야 할 사람들 가운데 칭송받아야 할 사람이요, 신과 인간들 가운데 최고입니다.”
“그런데 삥기야니 존자는 어떤 이익을 보기에 사문 고따마에게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까?”
“존자여, 예를 들면 으뜸가는 맛에 깊이 만족하는 자는 다른 저열한 맛을 바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분 고따마 존자의 가르침을 듣는 자는 그 가르침이 어떤 것이든, 즉 경(經)이든, 응송(應頌)이든,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이든, 게송(偈頌)이든, 감흥어(感興語)든, 여시어(如是語)든, 본생담(本生譚)이든, 미증유법(未曾有法)이든, 문답[方等]이든, 이 이외에 다른 어떤 범부인 사문ㆍ바라문들의 교설을 바라지 않습니다.
존자여, 예를 들면 배가 고파 지친 사람이 꿀 덩어리를 얻게 되면 어디를 맛보더라도 달콤하고 황홀한 맛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분 고따마 존자의 법을 듣는 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즉 경(經)이든 … 문답[方等]이든, 그것으로 마음이 흡족하게 되고 청정한 믿음을 얻게 됩니다.
존자여, 예를 들면 사람이 노란 전단향이나 붉은 전단향과 같은 전단향 나무 조각을 얻게 되면 아랫부분이나 중간부분이나 윗부분의 어떤 곳에 냄새를 맡더라도 순수한 향기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분 고따마 존자의 법을 듣는 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즉 경(經)이든 … 문답[方等]이든, 그것으로 희열을 누리고 기쁨을 누립니다.
존자여, 예를 들면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환자가 있는데 유능한 의사가 그의 병을 바로 제거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분 고따마 존자의 법을 듣는 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즉 경(經)이든 … 문답[方等]이든, 그것으로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사라져버립니다.
존자여, 예를 들면 호수가 있어 그 물은 맑고 달콤하고 차고 투명하며, 고요하고 아름답고 여러 종류의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데, 더위에 시달리고 더위에 압도되고 지쳐있고 심한 갈증을 느끼고 목마른 사람이 그 호수로 와서는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고 모든 근심과 피곤함과 열병을 가라앉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그분 고따마 존자의 법을 듣는 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즉 경(經)이든 … 문답[方等]이든, 그것으로 모든 근심과 피곤함과 열병을 가라앉힐 것입니다.”
2. 이와 같이 말했을 때 까라나빨리 바라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땅에다 오른쪽 무릎을 꿇은 뒤 세존이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세 번 감흥어를 읊었다.
“그 분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그 분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그 분 세존ㆍ아라한ㆍ정등각께 귀의합니다.”
“경이롭습니다, 삥기야니 존자여. 경이롭습니다, 삥기야니 존자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삥기야니 존자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삥기야니 존자여.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삥기야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아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합니다.”
아난다 경(A6:51)
?nanda-sutta
1. 그때 아난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 “도반 사리뿟따여, 어떻게 비구가 배우지 못한 법을 배우고, 배운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전에 마음에 와 닿은 법들이 마음에 남아있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됩니까?”
“아난다 존자는 많이 배운 분입니다. 아난다 존자가 밝혀주십시오.”
“도반 사리뿟따여, 그렇다면 잘 듣고 마음에 잡도리하십시오. 나는 이제 설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응답했다.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배웁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합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말해줍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합니다. 그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봅니다. 그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안거를 납니다. 그는 자주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합니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그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에 대해서 의심을 없애줍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이렇게 비구가 배우지 못한 법을 배우고, 배운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전에 마음에 와 닿은 법들이 마음에 남아있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됩니다.”
4.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도반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이여. 아난다 존자는 참으로 이런 금언을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난다 존자가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였다고 알겠습니다.”
5. “참으로 아난다 존자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배웁니다. 아난다 존자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법을 설합니다. 아난다 존자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남들에게 자세하게 말해줍니다. 아난다 존자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자세하게 암송합니다. 아난다 존자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 지속적으로 고찰해 보고 마음으로 숙고해 봅니다. 아난다 존자는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통하고 법(경장)을 호지하고 율[장]을 호지하고 논모[論母, 마띠까]를 호지하는 장로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안거를 납니다. 아난다 존자는 자주 그들에게 다가가서 묻고 질문합니다. ‘존자들이시여, 이것은 어떻게 되며 이 뜻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에 대해서 의심을 없애줍니다.”
법을 앎 경(A7:64)
Dhammann?-sutta
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무엇이 일곱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을 아는 자, 의미를 아는 자, 자신을 아는 자, 적당한 양을 아는 자, 때를 아는 자, 회중을 아는 자, 인간의 높고 낮음을 아는 자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법을 아는 자가 되는가?”
3.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안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dhammaññū hoti? idha, bhikkhave, bhikkhu dhammaṃ jānāti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만일 비구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법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方等]이라는 [아홉 가지] 법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법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의미를 아는 자가 되는가?”
4.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이 말의 의미고, 이것은 이 말의 의미다.’라고 각각의 말의 의미를 안다. 만일 비구가 ‘이것은 이 말의 의미고, 이것은 이 말의 의미다.’라고 각각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의미를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이것은 이 말의 의미고, 이것은 이 말의 의미다.’라고 각각의 말의 의미를 안다. 그래서 그는 의미를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자신을 아는 자가 되는가?”
5.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안다. 만일 비구가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나에게는 이 정도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와 영감이 있다.’라고 자신을 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가 되는가?”
6.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의복과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구완을 위한 약품의 [네 가지] 필수품을 받음에 적당한 양을 안다. 그래서 그는 적당한 양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때를 아는 자가 되는가?”
7.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금은 가르칠 시간이다.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다. 지금은 수행할 시간이다. 지금은 한거할 시간이다.’라고 [적당한] 때를 안다. 만일 비구가 ‘지금은 가르칠 시간이다.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다. 지금은 수행할 시간이다. 지금은 한거할 시간이다.’라고 [적당한] 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시간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지금은 가르칠 시간이다.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다. 지금은 수행할 시간이다. 지금은 한거할 시간이다.’라고 [적당한] 때를 안다. 그래서 그는 때를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와 때를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회중을 아는 자가 되는가?”
8.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다. 이것은 바라문의 회중이다. 이것은 장자의 회중이다. 이것은 사문의 회중이다. 거기에는 이와 같이 다가가야 하고 이와 같이 서야 하고 이와 같이 앉아야 하고 이와 같이 말해야 하고 이와 같이 침묵해야 한다.’라고 회중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이것은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다. … 이와 같이 침묵해야 한다.’라고 회중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회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는 ‘이것은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다. … 이와 같이 침묵해야 한다.’라고 회중을 안다. 그래서 그는 회중을 아는 자라 불린다. 이와 같이 법을 아는 자와 의미를 아는 자와 자신을 아는 자와 적당한 양을 아는 자와 때를 아는 자와 회중을 아는 자를 [설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인간의 높고 낮음을 아는 자인가?”
9.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성자들을 친견하고자 하고, 다른 사람은 성자들을 친견하고자 하지 않는다. 성자들을 친견하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성자들을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성자들을 친견하고자 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정법을 듣고자 하고, 다른 사람은 정법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 정법을 듣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정법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정법을 듣고자 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귀 기울여 법을 듣고 다른 사람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법을 듣는다. 귀를 기울여 법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귀를 기울여 법을 듣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귀를 기울여 법을 듣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들은 뒤 법을 호지하고, 다른 사람은 들은 뒤 법을 호지하지 않는다. 들은 뒤 법을 호지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들은 뒤 법을 호지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들은 뒤 법을 호지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고, 다른 사람은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지 않는다.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호지한 법들의 의미를 숙고하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다른 사람은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 않는다.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의미를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여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두 사람 가운데 한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도를 닦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도를 닦지 않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도를 닦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도를 닦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도를 닦지만 남의 이익을 위해서는 도를 닦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비난받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도를 닦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도 도를 닦는 사람은 그 때문에 칭송받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인간의 높고 낮음을 아는 자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다.
뱀의 비유 경(M22)
법문의 배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130]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3. 많은 비구들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러한 아주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고깃덩이의 비유로 … 건초 횃불의 비유로 … 숯불 구덩이의 비유로 … 꿈의 비유로 …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이 열린 나무의 비유로 … 도살장의 비유로 … 칼과 쇠살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지만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했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4. 그 비구들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131]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 없자 세존을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저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러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저희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러한 아주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저희들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지만 그는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가 없어 이 사실을 세존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5.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이라 전하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불러오라.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132]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6.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감각적 욕망을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뼈다귀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고깃덩이의 비유로 … 건초횃불의 비유로 … 숯불구덩이의 비유로 … 꿈의 비유로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이 열린 나무의 비유로 … 도살자의 비유로 … 쇠살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자여, 그러나 그대는 그대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그대를 긴 세월 불이이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7.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의] 열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했을 때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세존께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한 것을 아시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쓸모없는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아주 나쁜 견해를 이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비구들에게 물어보겠다.
8.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133] 그대들도 내가 설한 법에 대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가 자기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장하게도 그대들은 내가 설한 법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고나.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자신이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그것은 그 쓸모없는 인간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9.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감각적 욕망 없이 감각적 욕망의 인식 없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일으킨 생각 없이 감각적 욕망에 탐닉할 것이다.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뱀의 비유
1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과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는다면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어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134]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과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과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을 염소발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르고 그런 다음 그 뱀의 머리를 잘 붙잡는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뱀이 비록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휘감겠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그 사람이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 붙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과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이 내 가르침의 뜻을 잘 이해하거든 그대로 잘 호지하라. 그러나 내 가르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나에게 다시 묻거나 현명한 비구들에게 물어보아라.
뗏목의 비유
1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하려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강을 보았다 하자.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그는 [135] 생각한다.
이 강은 참으로 크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참으로 나는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리라.
그리하여 그 사람은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갈 것이다. 강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내가 갈 곳으로 가야겠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해야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에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땅에 내려놓거나 물에 띄워놓고 내가 갈 곳으로 가리라.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자가 참으로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했나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14. 비구들이여, 뗏목에 비유하여 그대들에게 설한 법을 이해하는 자들은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
15.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견해의 토대가 있다 무엇이 그 여섯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① 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②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③ 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④ 심리현상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⑥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136]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긴다.
16.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이 법에 인도되어서 ① 물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② 느낌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③ 인식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④ 심리현상들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⑥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어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17. 그는 이와 같이 관찰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다.
번민
18. 이와 같이 설하셨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 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는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19. 세존이시여, 밖으로 존재하는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오, 내게 그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내게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얻지 못하는 구나!라고 그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밖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20. 세존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는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있다.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하고,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면 [137]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21. 세존이시여,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하다, 비구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는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가 없다. 그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모든 견해의 토대, 결심, 편견, 고집, 잠재성향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형성된 것들을 가라앉히고,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리고, 갈애를 멸진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인 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나는 단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파멸해버리겠구나. 참으로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구나.라고. 그는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비구여, 이와 같이 안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번민한다.
23.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런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은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런 자아에 대한 교리에 취착함을 본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나도 자아에 대한 교리를 취착할 때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자아에 대한 교리에 취착함을 본 적이 없다.
24.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그 견해를 의지할 때 ・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런 견해를 의지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은 그 견해를 의지할 때 ・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견해에 의지함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여. 나도 그 견해를 의지할 때 [138]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견해에 의지함을 본 적이 없다.
25. 비구들이여, 자아가 있다면 나의 자아에 속하는 것도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자아에 속하는 것이 있다면 나의 자아도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나 자아도 자아에 속하는 것도 진실로 사실로 얻을 수가 없을 때에, 이것이 세계요, 이것이 자아다. 나는 죽은 뒤에도 항상할 것이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아니하여 영원토록 여여하게 머물 것이다.라는 견해의 토대는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이 아니겠는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것은 전적으로 완전히 어리석은 법입니다.
26.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27.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139]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보아야 한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알음알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보아야 한다.
28.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도 염오하고 느낌에도 염오하고 인식에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도 염오한다.
29.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랜다.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아라한
30.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 빗장을 밀어제친 자, 도랑을 가득 채운 자, 기둥을 뽑아버린 자, 걸쇠를 푼 자라고도 하고, 깃발을 거두었고 짐을 내려놓았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라고도 한다.
3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빗장을 밀어제친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무명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빗장을 밀어제친 자가 된다.
3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도랑을 가득 채운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다시 태어남을 가져다주는 태어남의 형성력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도랑을 가득 채운 자가 된다.
33. 비구들이여, 어떻게 기둥을 뽑아버린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갈애를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기둥을 뽑아버린 자가 된다.
34.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걸쇠를 푼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걸쇠를 푼 자가 된다.
35.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깃발을 거두었고 짐을 내려놓았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나라는 자만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가 깃발을 거두었고 짐을 내려놓았고 족쇄에서 벗어난 성자가 된다.
3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를 인드라나 브라흐마나 쁘라자빠띠를 포함한 신들이 찾으려고 해도 여래의 알음알이는 이것이 의지해 있다.라고 파악할 수가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여래를 지금・여기에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여래에 대한 잘못된 비난
37. 비구들이여, 이렇게 설하고 이렇게 선언하는 나를 두고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이 헛되이 거짓으로 사실과는 다르게 비난한다. 사문 고따마는 [중생들을] 망하게 하고,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허무를 선언한다.라고.
비구들이여, 나를 두고 그 사문・바라문들이 근거 없이 헛되이 거짓으로 사실과는 다르게 비난하여 사문 고따마는 [중생들을] 망하게 하고, 또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허무를 선언한다.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도 않고 그렇게 설하지도 않는다.
38. 비구들이여, 예나 지금이나 나는 괴로움을 천명하고 괴로움을 소멸하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여래를 헐뜯고 비난하고 비방하더라도 여래는 성가셔하거나 낙담하거나 마음으로 싫어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더라도 여래는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마음으로 득의만연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 여래는 단지 전에 철저히 안 [오온]을 두고 거기에 대해 그들이 이러한 존경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여길 뿐이다.
39.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다른 이들이 그대들을 헐뜯고 비난하더라도 그대들은 성가셔하거나 낙담하거나 마음으로 싫어하지 마라.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다른 이들이 그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더라도 그대들은 기뻐하지 말고 즐거워하지 말고 마음으로 득의만연하지 마라.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그대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 그대들도 단지 전에 철저히 안 [오온]을 두고 거기에 대해 그들이 이러한 존경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여기라.
그대들 것이 아님
40.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한다.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심리현상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41.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제따 숲에서 어떤 사람이 풀이나 나무토막이나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가져가거나 태우거나 그것으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그대들은 이 사람이 우리를 가져간다든지 태운다든지 우리를 가지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그것은 저 사진도 아니고, 제게 속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그대들의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ㅇ디ㅏ. 비구들이여,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그대들이 그것을 버리면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잘 설해진 법
4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아라한이고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고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존재의 족쇄를 부수었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비구들의 윤회란 알려지지 않는다.
43.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잘 설한 법에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제거한 비구들은 모두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는 돌아오는 법이 없다.
4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어진 비구들은 모두 한 번만 돌아올 자들이어서 한 번만 이 세상에 돌아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4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한 비구들은 모두 흐름에 든 자들이어서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142]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4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법을 따르고 믿음을 따르는 비구들은 모두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47.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분명하고 열려있고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잘 설한 법에서, 내게 믿음이 깊고 나를 좋아하는 그들 모두는 천상으로 향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뱀의 비유경(M22)이 끝났다.
공에 대한 긴 경(M12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의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까삘라왓투로 탁발을 가셨다. 까삘라왓투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낮 동안 홀로 않기 위해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지은] 승원으로 가셨다. 그 무렵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지은]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세존께서는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지은] 승원에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참으로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지은]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구나. 여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가?
그 무렵 아난다 존자는 여러 비구들과 함께 삭까 사람 가따가 [지은] 승원에서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으심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삭까 사람 가따가 [지은] 승원으로 가셔서 마련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참으로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지은]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삭까 사람 깔라케마까가 [지은] 승원에는 거처가 많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은 저희들이 가사를 만드는 시기입니다.
3.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에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에 사는 즐거움에 몰두하면, 무리를 좋아하고 무리를 즐기고 무리의 즐거움에 몰두하면 그는 빛나지 않는다.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에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에 사는 즐거움에 몰두하면, 무리를 좋아하고 무리를 즐기고 무리의 즐거움에 몰두하면서,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려움이 없이 얻으리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난다여, 그러나 비구가 대중에서 멀리 벗어나 혼자 머물 때 출리의 즐거움과 떨쳐버림의 즐거움과 고요함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즐거움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려움 없이 얻으리라는 것은 가능하다.
4. 아난다여, 참으로 비구가 대중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에 사는 것을 즐기고 대중에 사는 즐거움을 몰두하며, 무리를 좋아하고 무리를 즐기고 무리의 즐거움에 몰두하면서 일시적이고 고요한 마음의 해탈이니 일시적이지 않고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것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난다여, 그러나 비구가 대중에서 멀리 벗어나 혼자 머물 때 일시적이고 즐거운 마음의 해탈이나 일시적이지 않고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는 것은 가능하다.
5. 아난다여, 형색을 즐기고 그것에 애착을 가질 때, 형색은 변하고 바뀌어가므로 거기에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형색은 단 하나도 나는 본 적이 없다.
6. 아난다여, 그러나 여래는 어떤 표상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안으로 공을 구족하여 머무는 것을 바르게 깨달았다. 아난다여, 만일 여래가 이렇게 머물 때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나 왕이나 왕의 대신이나 외도나 외도의 제자들이 찾아오면, 여래는 자신의 마음을 멀리 여윔으로 향하고 멀리 여윔으로 기울이고 멀리 여윔에 기대고 은둔하고 출리를 기뻐하고 번뇌의 원인이 될 모든 법들을 제거한 뒤, 반드시 그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과 관련된 말을 한다.
7. 아난다여, 그러므로 비구가 만일 안으로 공을 증득하여 머물리라고 원한다면 그는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해야 한다.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하는가?
8.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을 …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한다.
9. 그는 안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아난다여, 그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그는 밖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 그는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 그는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그 비구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가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잡도리할 대 나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 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지 않고 확립하지 못하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0. 아난다여, 그러면 그 비구는 이전처럼 그 처음 삼매의 표상에 안으로 마음을 고정시키고 안정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고 삼매에 들게 해야 한다.
그는 안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안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 아난다여, 이렇게 되면 비구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가 안으로 공을 마음엥 잡도리할 때 나의 마음이 공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그는 밖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 그는 안팎으로 공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 그는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 아난다여, 이렇게 되면 비구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가 흔들림 없음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나의 마음이 흔들림 없음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이 생기고 확립하고 확신이 생긴다.라고,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1.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그의 마음이 경행으로 기울면 그는 이와 같이 내가 경행할 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경행을 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만일 그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그의 마음이 서 잇는 것으로 기울면 … 앉는 것으로 기울면 … 눕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와 같이 내가 누울 때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눕는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2.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그의 마음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렇게 결심한다.
이런 이야기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며,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왕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이야기, 공포에 관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수레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옛적 유령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는 하지 않으리라.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나다여,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오염원을 지워 없애고 마음을 활짝 여는 데 도움이 되며,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즉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한거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나는 하리라.라고 결심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3. 아난다여, 비구가 이렇게 머물 때 만일 그의 마음이 사유하는 것으로 기울면 그는 이런 사유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여,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나니, 그것은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와 악의와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이다. 이런 사유를 나는 하지 않으리라.라고 결심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는 이런 사유는 성스럽고, 해탈로 인도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종결로 인도하나니 출리와 관련된 사유와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이다. 이런 사유를 나는 하리라.라고 결심한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4. 아난다여,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라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아난다여, 이들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15. 여기서 비구는 매순간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라고 자신의 마음을 반조해야 한다. 아난다여, 만일 비구가 반조하는 도중에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난다.라고 꿰뚫어 알면, 그는 나에게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탐이 제거되지 않았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른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아난다여, 만일 비구가 반조하는 도중에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꿰뚫어 알면, 그는 나에게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이 제거되었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6. 아난다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있다. 여기에 대해 비구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여기데 대해 비구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17. 그가 취착의 [대상인] 이들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머물 때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 내가 있다.라는 자만이 제거된다. 아난다여, 그러면 그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해 내가 있다.라는 자만이 나에게 제거되었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18. 아난다여, 이런 법들은 전적으로 유익함에 기반을 두며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사악한 마라가 근접할 수 없다.
19.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난다여? 어떤 유익함을 보기에 제자는 설령 스승이 내치더라도 스승을 따라야 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 뜻을 친히 설명해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세존의 말씀을 잘 듣고 비구들은 마음에 새겨 지닐 것입니다.
20. 아난다여, 제자는 경이나 응송이나 수기 때문에 스승을 따라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오랜 세월을 그대들은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 외우고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었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그러나 오염원을 지워 없애고 마음을 활짝 여는 데 도움이 되며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즉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한거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난다여, 이러한 이야기를 위해서 제자는 설령 스승이 내치더라도 스승을 따라야 한다.
21. 아난다요, 이럴 경우 스승의 재난이 있고, 이럴 경우 제자의 재난이 있고, 이럴 경우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이 있다.
22. 아난다여, 어떤 것이 스승의 재난인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스승은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오면 그는 미혹에 빠지고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치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 스승은 스승의 재난에 의해 재난에 빠졌다고 한다.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며, 고민을 가져다주고,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며,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으로 인도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무너뜨린다.
아난다여, 이것이 스승의 재난이다.
23. 아난다여, 어떤 것이 제자의 재난인가?
아난다여, 여기 스승의 제자는 그 스승의 한거를 본받아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찾아오면 그는 미혹에 빠지고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치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 제자는 제자의 재난에 의해 재난에 빠졌다고 한다.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며, 고민을 가져다주고,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며,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으로 인도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무너뜨린다.
아난다여, 이것이 제자의 재난이다.
24. 아난다여, 어떤 것이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인가?
아난다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나니 그는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며, 가장 높은 분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며, 부처님이며, 세존이다.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그를 찾아온다. 바라문이아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찾아오더라도 그는 미혹에 빠지거나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거나 탐욕의 노예가 되거나 사치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런데 여기 스승의 제자가 그 스승의 한거를 본받아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이처럼 은둔하여 머물 때에 바라문이나 장자들이 성읍이나 지방에서 찾아오면 그는 미혹에 빠지고 감각적 욕망을 일으키고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치하게 된다. 아난다여, 이 청정범행을 닦는 자는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에 의해 재난에 빠졌다고 한다.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며, 고민을 가져다주고, 괴로운 과보를 초래하며,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으로 인도하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를 무너뜨린다.
아난다여, 이것이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이다.
아난다여, 여기서 청정범행을 닦는 자의 재난은 스승의 재난이아 제자의 재난보다 더 괴로운 과로블 초래하고, 더 쓴 과보를 가져오며, 악처에 떨어지게도 한다.
25.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애로 나를 대하고 적대감으로 나를 대하지 마라. 그러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이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고 자애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스승은 제자들을 애민히 여기고 이익을 바라며 연민의 정을 일으키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한참 벗어나버린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제자들이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고 자애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다.
26. 아난다여,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이 자애로 스승을 대하고 적대감으로 스승을 대하지 않는가?
아난다여, 여기 스승은 제자들을 애민히 여기고 이익을 바라며 연민의 정을 일으키어 법을 설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러면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제자들이 자애로 나를 대하고 적대감으로 나를 대하지 마라. 그러면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27. 아난다여, 나는 도기공이 완전히 굽지 않은 도기를 다루는 방식으로 그대들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거듭해서 그대들을 제어하고 그대들에게 말할 것이다. 아난다여, 거듭해서 그대들의 [결점을] 없애도록 할 것이니 근기가 수승한 자는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공에 대한 긴 경(M122)이 끝났다.
비구율장
Mahāvibhaṅga Pārājikakaṇḍa
[세존] “사리뿟따여, 세존이신 위빠시(vipassi) 과 세존이신 시키(sikhi) 과 세존이신 웻사부(vessabhu) 의 청정한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리뿟따여, 세존이선 까꾸싼다(kakusandha) 와 세이신 꼬나가마니(koṇāgamana) 와 세존이신 까싸빠 의 청정은 오래갔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선 비뺏씬과 세존이신 씨컨과 세존이신 뱃싸 부의 청정한 삶은 오래가지 않은 것에는 어떠한 원인과 어떠한 조건이 있습니까?"
“Bhagavato ca, sāriputta, vipassissa bhagavato ca sikhissa bhagavato ca vessabhussa brahmacariyaṃ na ciraṭṭhitikaṃ ahosi. Bhagavato ca, sāriputta, kakusandhassa bhagavato ca koṇāgamanassa bhagavato ca kassapassa brahmacariyaṃ ciraṭṭhitikaṃ ahosī”ti.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ena bhagavato ca vipassissa bhagavato ca sikhissa bhagavato ca vessabhussa brahmacariyaṃ na ciraṭṭhitikaṃ ahosī”ti?
“Bhagavā ca, sāriputta, vipassī bhagavā ca sikhī bhagavā ca vessabhū kilāsuno ahesuṃ sāvakānaṃ vitthārena dhammaṃ desetuṃ.
“They made no effort to give detailed teachings to their disciples.
그에게는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이 거의 없었다. 제자들에게는 학습계율이 시설되지 않았고, 의무계율도 부과되지 않았다. 이들 존귀한 부처님들과 그 아래서 깨달은 제자들이 멸한 뒤에, 그들은 나중에 여러 가지 이름, 여러 가지 성씨, 여러 가지 계급, 여러 가지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였는 데, 그들이 그 청정한 삶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사리뿟따여, 예를 들어, 여러 가지 꽃들이 니무판위에 실로 찰 묶지 않고 놓아두면 그것들은 바램 흩어지고 부서지고 해체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것은 실로 묶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뿟따여,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존귀한 부처님들과 아래서 깨달은 제자들이 별한 뒤에, 그들은 나중에 여라 가지 이름, 여러 찌 성씨, 여러 가지 계급, 여러 가지 기문으로부터 출가하였는데 그들이 그 청정한 삶을 빠르게 소멸시킨 것이다.
Appakañca nesaṃ ahosi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ā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Apaññattaṃ sāvakānaṃ sikkhāpadaṃ. Anuddiṭṭhaṃ pātimokkhaṃ. Tesaṃ buddhānaṃ bhagavantānaṃ antaradhānena buddhānubuddhānaṃ sāvakānaṃ antaradhānena ye te pacchimā sāvakā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jaccā nānākulā pabbajitā te taṃ brahmacariyaṃ khippaññeva antaradhāpesuṃ. Seyyathāpi, sāriputta, nānāpupphāni phalake nikkhittāni suttena asaṅgahitāni tāni vāto vikirati vidhamati viddhaṃseti. Taṃ kissa hetu? Yathā taṃ suttena asaṅgahitattā. Evameva kho, sāriputta, tesaṃ buddhānaṃ bhagavantānaṃ antaradhānena buddhānubuddhānaṃ sāvakānaṃ antaradhānena ye te pacchimā sāvakā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jaccā nānākulā pabbajitā te taṃ brahmacariyaṃ khippaññeva antaradhāpesu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