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

사자후의 짧은 경(M11)

후박나무 (허정) 2023. 2. 13. 06:10

-상견과 단견을 가진 자는 탐욕을 가진 자요, 성냄을 가진 자요, 어리석음을 가진 자요, 갈애를 가진 자요, 취착을 가진 자요, 현명하지 못한 자요,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요, 사량 분별을 즐기자들이다. -

 

 

사자후의 짧은 경

(M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서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라.󰡓

“Idheva, bhikkhave,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ītiEvametaṃ , bhikkhave, sammā sīhanādaṃ nadatha.

 

 

3. 󰡒비구들이여, 여기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존자들은 무슨 근거와 무슨 힘으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라고 말합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는 다른 외도 유행승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그분 세존께서 우리에게 네 가지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바르게 보기 때문에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반들이여, 우리는 스승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법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행을 원만하게 갖추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호의를 가진 동료 수행자들 즉 재가자와 출가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그분 세존께서 우리에게 설한 네 가지 법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바르게 보기 때문에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고,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외도들의] 교설에는 사문들이 비어있다.󰡑라고 말합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여기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말하기를, 󰡐도반들이여, 우리도 스승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스승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법에 대한 깨끗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법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계행을 원만하게 갖추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계행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호의를 가진 동료 수행자들 즉 재가자와 출가자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이 깨끗한 믿음에 관한 한 그대들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특별한 점이며, 무엇이 차이점이며 무엇이 다른 점입니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말하는 다른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구경의 경지는 하나입니까, 아니면 구경의 경지는 여럿입니까?󰡑라고.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구경의 경지는 하나이지 여럿이 아닙니다.󰡑라고.

Evaṃvādin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massu vacanīyā: ‘kiṃ panāvuso, ekā niṭṭhā, udāhu puthu niṭṭh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ekāvuso, niṭṭhā, na puthu niṭṭhā’ti.

 

󰡐그렇다면, 그 구경의 경지는 탐욕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탐욕을 여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탐욕을 여읜자에게 있지, 탐욕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Sā panāvuso, niṭṭhā sarāgassa udāhu vītarāg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vītarā­g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sarāgassā’ti.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성냄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성냄을 여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성냄을 여읜 자에게 있지, 성냄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어리석음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어리석음을 여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어리석음을 여읜 자에게 있지, 어리석음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갈애를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갈애를 여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갈애를 여읜 자에게 있지, 갈애를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취착을 가진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취착을 여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취착을 여읜 자에게 있지, 취착을 가진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현명한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현명하지 못한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현명한 자에게 있지, 현명하지 못한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자에게 있지,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면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사량 분별을 즐기고 사량 분별을 기뻐하는 자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사량 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 분별을 기뻐하지 않는 자에게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설명하는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그 구경의 경지는 사량 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 분별을 기뻐하지 않는 자에게 있지, 사량 분별을 즐기고 사량 분별을 기뻐하는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6.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가 있나니, 존재에 대한 견해와 비존재에 대한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존재에 대한 견해에 집착하고 존재에 대한 견해에 압도되고, 존재에 대한 견해에 빠져서,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저항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집착하고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압도되고 비존재에 대한 견해에 빠져서, 존재에 대한 견해에 저항한다.󰡓

Dvemā, bhikkhave, diṭṭhiyo—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bhavadiṭṭhiṃ allīnā bhavadiṭṭhiṃ upagatā bhavadiṭṭhiṃ ajjhositā, ­vibha­va­diṭṭhiyā te paṭiviruddhā.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vibhavadiṭṭhiṃ allīnā vibhavadiṭṭhiṃ upagatā vibhavadiṭṭhiṃ ajjhositā, bhavadiṭṭhiyā te paṭiviruddhā.

 

 

7.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두 가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들은 탐욕을 가진 자요, 성냄을 가진 자요, 어리석음을 가진 자요, 갈애를 가진 자요, 취착을 가진 자요, 현명하지 못한 자요,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요, 사량 분별을 즐기고 사량 분별을 기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āsaṃ dvinnaṃ diṭṭhī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e sarāgā te sadosā te samohā te sataṇhā te saupādānā te aviddasuno te anu­ruddhap­paṭi­viruddhā te papañcārāmā papañcaratino; te na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8.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 두 가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들은 탐욕을 여읜 자요, 성냄을 여읜 자요, 어리석음을 여읜 자요, 갈애를 여읜 자요, 취착을 여읜 자요, 현명한 자요,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자요, 사량 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 분별을 기뻐하지 않는 자이다.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9. 󰡒비구들이여, 네 가지 취착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Cattārimāni, bhikkhave, upādānāni. Katamāni cattāri? Kāmupādānaṃ, diṭṭhupādānaṃ, sīlab­ba­tu­pādā­naṃ, attavā­du­pādā­naṃ. 

 

 

10. 󰡒비구들이여, 비록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그들은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하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하고,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나머지] 세 가지 경우[취착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Taṃ kissa hetu? Imāni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tīṇi ṭhānān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그러므로 비록 그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하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하고,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한다.󰡓Tasm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11. 󰡒비구들이여, 비록,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그들은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하고,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 사문이나 바라문은 [나머지] 두 가지 경우[취착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Taṃ kissa hetu? Imāni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ve ṭhānān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그러므로 비록 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하고,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한다.󰡓

Tasm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12. 󰡒비구들이여, 비록,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그들은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그들 사문이나 바라문은 [나머지] 가지 경우의 [취착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Taṃ kissa hetu? Imañ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kaṃ ṭhān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그러므로 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하지 못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더라도,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지 못한다.󰡓

Tasm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13.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러한 법과 율에서 스승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가진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지 못하고, 법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가진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지 못하고, 계행을 원만히 갖춘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지 못하고, 동료 수행자들 사이에 애정과 호의를 갖춘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법과 율이 잘못 설해졌고 잘못 선언되었고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정등각자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varūpe kho, bhikkhave, dhammavinaye yo satthari pasādo so na sammaggato akkhāyati; yo dhamme pasādo so na sammaggato akkhāyati; yā sīlesu paripūrakāritā sā na sammaggatā akkhāyati; yā sahadhammikesu piyamanāpatā sā na sammaggatā akkhāyati. Taṃ kissa hetu?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durakkhāte dhammavinaye duppavedite aniyyānike anu­pasa­ma­saṃ­vatta­nike asammā­sambud­dhap­pa­vedite.

 

 

14.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는 모든 최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면서도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바르게 천명한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견해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하고 장의 교리에 대한 취착을 철저히 안다고 천명한다.󰡓

 

15.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러한 법과 율에서 스승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가진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고, 법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가진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고, 계행을 원만히 갖춘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하고, 동료 수행자들 사이에 애정과 호의를 갖춘 자는 바른 길을 갔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법과 율이 바르게 설해졌고 바르게 선언되었고 벗어나게 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정동각자에 의해서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16. 󰡒비구들이여, 그러면 이들 네 가지 취착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을 조건으로 하고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이들 네 가지 취착은 갈애를 원인으로 하고 갈애를 조건으로 하며 갈애를 근원으로 하고 갈애에서 기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갈애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갈애는 느낌을 원인으로 하고

느낌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느낌은 감각접촉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접촉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감각접촉은 여섯 감각장소를 원인으로 하고

여섯 감각장소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여섯 감각장소는 정신물질을 원인으로 하고

정신물질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정신물질은 알음알이를 원인으로 하고

알음알이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알음알이는 의도적 행위를 원인으로 하고

의도적 행위들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을 조건으로 하고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무엇에서 기원한 것인가? 의도적 행위들은 무명을 원인으로 하고 무명을 조건으로 하고 무명을 근원으로 하고 무명에서 기원한 것이다.󰡓

 

17.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날 때 무명이 빛바랬고 명지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감각적 요감에 대한 취착을 움켜쥐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견해에 대한 취착도 움켜쥐지 않으며,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도 움켜쥐지 않고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도 움켜쥐지 않는다.

움켜쥐지 않을 때 번민하지 않고 번민하지 않을 때 스스로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사자후의 짧은 경(M11)이 끝났다.

 

 

 

 

 

Cūḷa­sīha­nāda­sutta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Bhagavā etadavoca: 

“Idheva, bhikkhave,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īti. Evametaṃ, bhikkhave, sammā sīhanādaṃ nadatha.

Ṭhānaṃ kho panetaṃ, bhikkhave, vijjati yaṃ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vadeyyuṃ: ‘ko panā­yasman­tānaṃ assāso, kiṃ balaṃ, yena tumhe āyasmanto evaṃ vadetha—idheva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ī’ti? Evaṃvādin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massu vacanīyā: ‘atthi kho no, āvuso,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dhammā akkhātā ye mayaṃ attani sampassamānā evaṃ vadema—idheva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īti. Katame cattāro? Atthi kho no, āvuso, satthari pasādo, atthi dhamme pasādo, atthi sīlesu paripūrakāritā; sahadhammikā kho pana piyā manāpā—gahaṭṭhā ceva pabbajitā ca. Ime kho no, āvuso,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dhammā akkhātā ye mayaṃ attani sampassamānā evaṃ vadema—idheva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ī’ti.

Ṭhānaṃ kho panetaṃ, bhikkhave, vijjati yaṃ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vadeyyuṃ: ‘amhākampi kho, āvuso, atthi satthari pasādo yo amhākaṃ satthā, amhākampi atthi dhamme pasādo yo amhākaṃ dhammo, mayampi sīlesu paripūrakārino yāni amhākaṃ sīlāni, amhākampi sahadhammikā piyā manāpā—gahaṭṭhā ceva pabbajitā ca. Idha no, āvuso, ko viseso ko adhippayāso kiṃ nānākaraṇaṃ yadidaṃ tumhākañceva amhākañcā’ti?

Evaṃvādino,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massu vacanīyā: ‘kiṃ panāvuso, ekā niṭṭhā, udāhu puthu niṭṭh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ekāvuso, niṭṭhā, na puthu niṭṭh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sarāgassa udāhu vītarāg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vītarā­g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sarāgass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sadosassa udāhu vītados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vītado­s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sadosass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samohassa udāhu vītamoh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vītamo­h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samohass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sataṇhassa udāhu vītataṇh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vītataṇ­h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sataṇhass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saupādānassa udāhu anupādān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anupā­dā­n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saupādānass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viddasuno udāhu aviddasuno’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viddasuno, 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aviddasuno’ti.

‘Sā panāvuso, niṭṭhā anu­ruddhap­paṭi­viruddhassa udāhu ananu­ruddha­ap­paṭi­viruddhassā’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ananu­ruddha­ap­paṭi­viruddhas­sā­vuso, sā niṭṭhā, na sā niṭṭhā anu­ruddhap­paṭi­viruddhassā’ti.

‘Sā panāvuso, niṭṭhā papañcārāmassa papañcaratino udāhu nip­pa­pañ­cā­rāmassa nip­pa­pañ­ca­ratino’ti? Sammā byākaramānā, bhikkhave,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evaṃ byākareyyuṃ: ‘nip­pa­pañ­cā­rā­massā­vuso, sā niṭṭhā nip­pa­pañ­ca­ratino, na sā niṭṭhā papañcārāmassa papañcaratino’ti.

Dvemā, bhikkhave, diṭṭhiyo—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bhavadiṭṭhiṃ allīnā bhavadiṭṭhiṃ upagatā bhavadiṭṭhiṃ ajjhositā, ­vibha­va­diṭṭhiyā te paṭiviruddhā.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vibhavadiṭṭhiṃ allīnā vibhavadiṭṭhiṃ upagatā vibhavadiṭṭhiṃ ajjhositā, bhavadiṭṭhiyā te paṭiviruddhā.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āsaṃ dvinnaṃ diṭṭhī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e sarāgā te sadosā te samohā te sataṇhā te saupādānā te aviddasuno te anu­ruddhap­paṭi­viruddhā te papañcārāmā papañcaratino; te na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āsaṃ dvinnaṃ diṭṭhī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pajānanti, ‘te vītarāgā te vītadosā te vītamohā te vītataṇhā te anupādānā te viddasuno te ananu­ruddha­ap­paṭi­viruddhā te nippapañcārāmā nip­pa­pañ­ca­ratino; te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Cattārimāni, bhikkhave, upādānāni. Katamāni cattāri? Kāmupādānaṃ, diṭṭhupādānaṃ, sīlab­ba­tu­pādā­naṃ, attavā­du­pādā­naṃ.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Taṃ kissa hetu? Imāni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tīṇi ṭhānān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asm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Taṃ kissa hetu? Imāni 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dve ṭhānāni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asm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Taṃ kissa hetu? Imañh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kaṃ ṭhān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asmā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bbu­pādā­na­pariñ­ñā­vādā paṭijānamānā; te na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n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na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nti.

Evarūpe kho, bhikkhave, dhammavinaye yo satthari pasādo so na sammaggato akkhāyati; yo dhamme pasādo so na sammaggato akkhāyati; yā sīlesu paripūrakāritā sā na sammaggatā akkhāyati; yā sahadhammikesu piyamanāpatā sā na sammaggatā akkhāyati. Taṃ kissa hetu?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durakkhāte dhammavinaye duppavedite aniyyānike anu­pasa­ma­saṃ­vatta­nike asammā­sambud­dhap­pa­vedite.

Tathāgato ca kho,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sabbu­pādā­na­pariñ­ñā­vādo paṭijānamāno sammā sabbu­pādā­na­pariñ­ñaṃ paññapeti—kām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ti, diṭ­ṭh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ti, sīlab­ba­t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ti, attavā­du­pādā­nassa pariññaṃ paññapeti. Evarūpe kho, bhikkhave, dhammavinaye yo satthari pasādo so sammaggato akkhāyati; yo dhamme pasādo so sammaggato akkhāyati; yā sīlesu paripūrakāritā sā sammaggatā akkhāyati; yā sahadhammikesu piyamanāpatā sā sammaggatā akkhāyati. Taṃ kissa hetu? Evañhetaṃ, bhikkhave, hoti yathā taṃ svākkhāte dhammavinaye suppavedite niyyānike upasa­ma­saṃ­vatta­nike sammā­sambud­dhap­pa­vedite.

Ime ca, bhikkhave, cattāro upādānā. Kiṃnidānā kiṃsamudayā kiṃjātikā kiṃpabhavā? Ime cattāro upādānā taṇhānidānā taṇhāsamudayā taṇhājātikā taṇhāpabhavā. Taṇhā cāyaṃ, bhikkhave, kiṃnidānā kiṃsamudayā kiṃjātikā kiṃpabhavā? Taṇhā vedanānidānā vedanāsamudayā vedanājātikā vedanāpabhavā. Vedanā cāyaṃ, bhikkhave, kiṃnidānā kiṃsamudayā kiṃjātikā kiṃpabhavā? Vedanā phassanidānā phassasamudayā phassajātikā phassapabhavā. Phasso cāyaṃ, bhikkhave, kiṃnidāno kiṃsamudayo kiṃjātiko kiṃpabhavo? Phasso saḷāya­tana­nidāno saḷāya­tana­sa­mudayo saḷāya­tana­jātiko saḷāya­tana­pabhavo. Saḷāya­tanañ­cidaṃ, bhikkhave, kiṃnidānaṃ kiṃsamudayaṃ kiṃjātikaṃ kiṃpabhavaṃ? Saḷāyatanaṃ nāmarū­pa­nidānaṃ nāmarū­pa­sa­muda­yaṃ nāmarū­pa­jātikaṃ nāmarū­pa­pabha­vaṃ. Nāmarūpañcidaṃ, bhikkhave, kiṃnidānaṃ kiṃsamudayaṃ kiṃjātikaṃ kiṃpabhavaṃ? Nāmarūpaṃ viññāṇanidānaṃ viñ­ñā­ṇa­sa­muda­yaṃ viññāṇajātikaṃ viñ­ñā­ṇa­pabha­vaṃ. Viññāṇañcidaṃ, bhikkhave, kiṃnidānaṃ kiṃsamudayaṃ kiṃjātikaṃ kiṃpabhavaṃ? Viññāṇaṃ saṅ­khā­ra­nidānaṃ saṅ­khā­ra­sa­muda­yaṃ saṅ­khā­ra­jātikaṃ saṅ­khā­ra­pabha­vaṃ. Saṅkhārā cime, bhikkhave, kiṃnidānā kiṃsamudayā kiṃjātikā kiṃpabhavā? Saṅkhārā avijjānidānā avijjāsamudayā avijjājātikā avijjāpabhavā.

Yato ca kho, bhikkhave, bhikkhuno avijjā pahīnā hoti vijjā uppannā, so avijjāvirāgā vijjuppādā neva kāmupādānaṃ upādiyati, na diṭṭhupādānaṃ upādiyati, na sīlab­ba­tu­pādā­naṃ upādiyati, na attavā­du­pādā­naṃ upādiyati. Anupādiyaṃ na paritassati, aparitassaṃ 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nti.

Cūḷa­sīha­nāda­suttaṃ niṭṭhitaṃ paṭham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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