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

끼따기리 경(M70)

후박나무 (허정) 2023. 1. 24. 17:49

끼따기리 경

(M7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까시를 유행하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설명하셨다.

 

2. “비구들이여, 나는 밤에 먹는 것을 삼간다. 비구들이여, 내가 밤에 먹는 것을 삼갈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한다.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밤에 먹는 것을 삼가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밤에 먹는 것을 삼갈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문다고 인식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3. 그때 세존께서는 까시에서 차례로 유행하시다가 마침내 끼따기리라는 까시의 성읍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까시의 성읍인 끼따기리에 머무셨다.

 

4. 그때 앗사지와 뿌납바수가라는 두 비구가 끼따기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밤에 먹는 것을 삼가십니다. 비구 승가도 그러하고요. 도반들이여, 밤에 먹는 것을 삼갈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합니다. 오십시오, 도반들이여. 그대들도 밤에 먹는 것을 삼가십시오. 도반들이여, 그대들이 밤에 먹는 것을 삼갈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474]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우리는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습니다.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어도 우리는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여기에서 눈이 보이는 [이익을] 버리고 미래에 얻어질 이익을 추구하겠습니까? 우리는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을 것입니다.”

 

5. 그 비구들은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설득할 수 없자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은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가서는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밤에 먹는 것을 삼가십니다.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는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우리는 저녁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설득할 수가 없어서 세존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6.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이라 전하고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불러오라.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셨습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께서 존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앗사지 비구와 뿌납바수까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사실인가? 많은 비구들이 그대들을 만나러 가서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밤에 먹는 것을 삼가십니다. 비구 승가도 그러하고요. 도반들이여, 밤에 먹는 것을 삼갈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대들은 그 비구들이ㅔ게 도반들이여, 우리는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습니다.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어도 우리는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여기에서 눈에 보이는 [이로움을] 버리고 미래에 얻어질 이로움을 추구하겠습니까? 우리는 저녁에 먹고 아침에 먹고 오후에 아무 때나 먹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인간이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어떤 느낌을 경험하면 그에게 해로운 법들을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은 증장한다.’라고 법을 설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이렇게 법을 설한 것을 알지 못하는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들지만,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들지만,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괴로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들지만,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8.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내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든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통잘지로써 체득하지 못했다 하자. 내가 그와 같이 알지 못하면서도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버려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타당한 일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476]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든다.’라는 것을 알고 보고 경험하고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체득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버려라.’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내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통잘지로써 체득하지 못했다 하자. 내가 이와 같이 알지 못하면서도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구족하여 머물러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타당한 일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나 나는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라는 것을 알고 보고 경험하고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체득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구족하여 머물러라.’라고 말한다.”

 

9. “비구들이여, 내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든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통잘지로써 체득하지 못했다 하자.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괴로운 느낌을 버려라.’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내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즐거운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통잘지로써 체득하지 못했다 하자.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괴로운 느낌을 구족하여 머물러라.’라고 말한다.”

 

10. “비구들이여, 내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줄어든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통잘지로써 체득하지 못했다 하자.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버려라.’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내가 여기 어떤 자는 어떤 종류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때 해로운 법들이 줄어들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한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하고 통잘지로써 체득하지 못했다 하자. 그러므로 [477] 나는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구족하여 머물러라.’라고 말한다.

 

11.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비구들에게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렇지만 나는 모든 비구들에게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더 이상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12. “비구들이여,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고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고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존쟁의 족쇄를 부수었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3. “비구들이여,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지만 위없는 유가안은을 원하면서 머무는 유학인 비구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들은 적당한 거처를 사용하고 선우들을 섬기면서 기능들을 조화롭게 유지할 때,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구들의 이런 불방일의 열매를 보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14.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일곱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양면으로 해탈한 자, 통찰지로 해탈한 자, 몸으로 체험한 자, 견해를 얻은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이다.”

Satti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satta? Ubhato­bhāga­vimutto, paññāvimutto, kāyasakkhi, diṭṭhippatto, saddhāvimutto, dhammānusārī, saddhānusārī.

 

 

15.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양면으로 해탈한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써 번뇌들을 보아 그들은 완전히 제거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양면으로 해탈한 자라 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ubhato­bhāga­vimutt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16.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통찰지로 해탈한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지만 그는 통찰지로써 번뇌들을 보아 그들은 완전히 제거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통찰지로 해탈한 자라 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paññāvimutt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paññāvimutto. 

 

17.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몸으로 체험한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여 머물고, 그는 통찰지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몸으로 체험한 자라 한다.

이런 비구들에게는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들은 적당한 거처를 사용하고 선우들을 섬기면서 감각기능들을 조화롭게 유지할 때,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구들의 이런 불방일의 열매를 보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kāyasakkhi?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kāyasakkhi.

 

 

18.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견해를 얻은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지만, 그는 통찰지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하고 또 여래가 선언하신 법들을 통찰지로써 잘 보고 바르게 검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해를 얻은 자라 한다.Katamo ca, bhikkhave, puggalo diṭṭhippatt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ap­pa­veditā cassa dhammā paññāya vodiṭṭhā honti vocaritā.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diṭṭhippatto.

 

 

이런 비구들에게도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들은 적당한 거처를 사용하고 선우들을 섬기면서 감각기능들을 조화롭게 유지할 때,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구들의 이런 불방일의 열매를 보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19.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해탈한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지만, 그는 통찰지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하고 또 여래에 믿음을 심고 뿌리내려 확고하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믿음으로 해탈한 자라 한다.

이런 비구들에게도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들은 적당한 거처를 사용하고 선우들을 섬기면서 감각기능들을 조화롭게 유지할 때,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구들의 이런 불방일의 열매를 보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saddhāvimutto.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e cassa saddhā niviṭṭhā hoti mūlajātā patiṭṭhitā.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saddhāvimutto. Imassapi kho ahaṃ, bhikkhave, bhikkhuno ‘appamādena karaṇīyan’ti vadāmi. Taṃ kissa hetu? Appeva nāma ayamāyasmā anulomikāni senāsanāni paṭisevamāno kalyāṇamitte bhajamāno indriyāni samannā­na­yamāno—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Imaṃ kho ahaṃ, bhikkhave, imassa bhikkhuno appamādaphalaṃ sampassamāno ‘appamādena karaṇīyan’ti vadāmi. (5)

 

 

20.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법을 따르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며, 그는 통찰지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하고 , 여래에 선언하신 법을 그의 통찰지로 충분히 사유하여 받아들이고 또한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통찰지의 기능의 이런 법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법을 따르는 자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dhammānusārī?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ap­pa­veditā cassa dhammā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api cassa ime dhammā honti, seyyathidaṃ—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dhammānusārī.

 

 

이런 비구들에게도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들은 적당한 거처를 사용하고 선우들을 섬기면서 감각기능들을 조화롭게 유지할 때,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구들의 이런 불방일의 열매를 보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21.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믿음을 따르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지만, 그는 통찰지로써 보아 일부 번뇌들을 제거하고 ,여래에 대해 충분한 믿음과 사랑이 있고 또한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통찰지의 기능의 이런 법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믿음을 따르는 자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saddhānusārī?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e cassa saddhāmattaṃ hoti pemamattaṃ, api cassa ime dhammā honti, seyyathidaṃ—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saddhānusārī.

It’s a person who doesn’t have direct meditative experience of the peaceful liberations that are formless, transcending form. Nevertheless, having seen with wisdom, some of their defilements have come to an end. And they have a degree of faith and love for the Realized One. And they have the following qualities:the faculties of faith, energy, mindfulness, immersion, and wisdom.This person is called a follower by faith.

 

 

이런 비구들에게도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존자들은 적당한 거처를 사용하고 선우들을 섬기면서 감각기능들을 조화롭게 유지할 때,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나와 출가한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 비구들의 이런 불방일의 열매를 보기 때문에 방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Imassapi kho ahaṃ, bhikkhave, bhikkhuno ‘appamādena karaṇīyan’ti vadāmi. Taṃ kissa hetu? Appeva nāma ayamāyasmā anulomikāni senāsanāni paṭisevamāno kalyāṇamitte bhajamāno indriyāni samannā­na­yamāno—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nti, tadanuttaraṃ—brahma­cari­ya­pari­yosāna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Imaṃ kho ahaṃ, bhikkhave, imassa bhikkhuno appamādaphalaṃ sampassamāno ‘appamādena karaṇīyan’ti vadāmi. (7)

 

 

22. “비구들이여, 나느ᅟᅡᆫ 구경의 지혜가 단박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닦음으로 구경의 지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23. “비구들이여, [480] 그러면 어떻게 순차적으로 공부짓고 순차적으로 행하고 순차적으로 도를 닦아 구경의 지혜가 이루어지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에 대해 믿음이 생긴 자는 스승을 친견한다. 친견하면서 공경한다. 공경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귀 기울이면서 법을 배운다. 배우고 나서 법을 호지한다. 호지한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뜻을 자세히 살필 때에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인다.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에 열의가 생긴다. 열의가 생길 때에 시도한다. 시도할 때 세밀하게 조사한다.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 노력할 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본다.”

 

24.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는] 참으로 그런 믿음이 없었고, 참으로 친견이 없었고, 참으로 공경이 없었고, 참으로 귀 기울임이 없었고, 참으로 법을 들음이 없었고, 참으로 법을 호지함이 없었고, 참으로 뜻을 자세히 살펴봄이 없었고, 참으로 법들을 사유하여 받아들임이 없었고, 참으로 열의가 없었고, 참으로 시도가 없었고, 참으로 세밀한 조사가 없었고, 참으로 노력이 없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길을 잃었고, 그릇된 도를 닦았다. 비구들이여, 이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이 법과 율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얼마나 잘못 들어섰던가?”

 

25. “비구들이여, 네 구절로 된 진리가 있나니, 그것을 암소할 때 지자는 오래지 ㅇ낳아 통찰지로써 그 뜻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암송하리라. 이것을 잘 이해하도록 하라.”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누구라고 그 법을 이해하겠습니까?”

 

26. “비구들이여, 스승이 세속적인 것을 중히 여기고 세속적인 것을 상속받고 세속적인 것에 애착을 가지고 머문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런 것을 얻으면 이것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얻지 못하면 이것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이런 흥정을 해서는 안되는데 하물며 그가 모든 세속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여래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27.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세존은 스승이시고, 나는 제자이다. 세존께서는 아시고,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스승의 교법은 증장할 것이고 자양분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다음과 같이 [481] 생각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다. ‘피부와 힘줄과 뼈가 쇠약해지고 몸에 살점과 피가 마르더라도 남자다운 근력과 남자다운 노력과 남자다운 불발로써 얻어야 하는 것을 얻을 때가지 정진을 계속하리라.’라고.

비구들이여, 스승의 교법에 믿음을 가진 제자가 통찰하여 취할 때 두 가지 결실 가운데 한 가지 결실을 얻나니, 바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증득하거나 만일 취착이 남아있다면 불환자가 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끼따기리 경(M70)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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