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을 읽고
‘조국의 시간’을 읽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게다가 어리석다. 그 이기심을 충족 시키기 위해서 교묘하게도 정의롭게 해동한다. 오래도록 법(法)을 공부한 검찰주의자 윤석렬과 그의 졸개들이 정의(正義)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살육하였다.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람을 물어뜯는 사냥개의 입에서 나온 것임을 대통령도 우리도 몰랐다. 그 사냥개들의 사냥에서 살육에서 조국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역사가 되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록을 통해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사건을 입체화하였다는데 있다. 이제 조국의 시간을 읽는 우리의 판단이 남았다. 사실을 토로하는 그 기록을 보고 더 잔인하고 날카롭게 비난하고 물어뜯는 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됐다. 시간이 그들의 거짓과 위선을 벗겨줄 것이다. 한자한자 가족의 피를 묻혀 쓰는 심정이라 했다. 워낙 젊잖은 사람이라서 문장에서 거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지만 군데 군데서 신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느껴진다. 무간지옥을 견디는 자의 신음소리... 우리에게는 조국이라는 시간을 통과하여야 완성되는 정의(正義)가 있었는가보다. 그 시간을 통과 하여야만 하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는가보다.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367p)는 마지막 문장에서 안도의 숨을 쉰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개혁이고 인생이며 되돌릴 수 없는 개혁 그것은 제도화,제도화,제도화라고 봅니다.(239p)라고 말에 고개를 들어 먼 곳에 시선을 둔다.
조국의 시간을 읽으며 우리조계종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사들이 그럴수가 있나?라고 놀라워 했듯이 출가수행자들이 그럴 수 있나? 라는 질문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출세간이라해서 다르지 않다. 검찰이 사냥개가 되어 날뛰는 대한민국이라면 우리종단은 수행자가 사냥개가 되어 날뛰는 곳이다. 자기편 봐주기, 시간끌어 뭉개기, 약점잡아 압박하기등 검찰이 하는 비열한 짓들이 조계종안에서도 자행된다. 검찰의 애완견이 되어 검찰이 흘려주는 편향된 기사를 쓰는 기레기들이 조계종안에도 있다. 거기나 여기나 똑같다.
그러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사는게 개혁이며 수행이라 믿는다. 일부러 행복하려고 애쓰지 않고 가난을 피하지 않는자에게는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 잃을 것이 없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파괴될 지언정 패배하는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조국의 아픔을 위로한다. 조국의 생환을 기뻐한다. 그렇게 위로하고 기뻐하는 일로 불현듯 내가 위로를 받는다. 맑은 차 한잔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