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끝에서 라면을 끓이다
허무의 끝에서 라면을 끓이다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었다. 고미숙은 고전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다. 고미숙이 공부한 방식, 살아온 방식 그리고 세상에 알려진 방식은 특별하다. 유튜브에서 만나는 그녀의 동영상은 경쟁에 힘겨워하는 많은 분들에게 백수로 살아도 괜찮아!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아!라는 위로와 영감을 주고 있다. 그녀는 단순한 백수가 아니다. 공부하는 백수요, 모여서 소통하는 백수요, 글 쓰는 백수다. 그녀는 노동, 화폐, 가족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나서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먹고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가자도 보여주기 힘든 ‘세속에서 출가하기’를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줄곧 “글쓰기야말로 양생술이자 구도이며 또 밥벌이다.”라고 주장한다.
백수들의 공동체와 글쓰기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자니 우리 조계종승가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가 수행자들이야 말로 공동체를 이루는 백수, 읽고 쓰는 백수, 참선하는 백수들이 아닌가? 그녀의 조언이 더 간절히 다가오는 이유는 현재 우리승단이 공유정신이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고 그 속에서 읽고쓰는 수행자가 너무 적다는 현실때문이다. 얼마전 전국비구니회가 비구니스님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승가 공동체 유지를 위한 수익사업으로 적당한 것은 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여섯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⓵무문관 체험등 휴식형 템플스테이 ⓶승복,소품 제작 ⓷식품가공(된장,간장,김치) ⓸사찰 음식, 식당 카페 운영 ⓹도시락 사업 ⓺기타. 종단에서도 사업부를 만들어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는데 이제 비구니회에서도 제도해야 할 불자와 국민들을 물건을 팔아야 할 고객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수행자들의 공동체에서 수행에 관련된 것으로 살림살이를 삼지 않는다는 것은 승가의 역할, 수행자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노동, 화폐, 가족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나서 살아가야 할 수행자들이 노동과 화폐를 사랑하는 승가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작업이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과정이다. 자연과 자신은 서로 증여하는 관계요 물드는 관계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의 세가지 진실인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변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허무의 끝에서 이제는 라면을 끓이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알기로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불교를 언급하는 일은 많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요즘 수타니파타와 동의보감을 비교하는 강의를 하고있고 이 책속에서도 상윳따니까야, 맛지마니까야의 경전이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보니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는 니체, 공자, 부처, 스피노자, 스트븐 호킹, 카렌 암스트롱, 유발 노아 하라리등 동서양의 사상이 그녀를 통과하여 비벼지고 섞여져서 그녀의 언어로 탄생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직선적이고 수직적인 사유 방식에서 벗어나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순환에 고리를 갖는 사유 방식이 인간을 행복하게 살게하는 지혜로운 사유임을 새삼 일깨운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발전하는 봄, 번영하는 여름, 성공하는 겨울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그녀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일기의 거룩함과 글쓰기의 통쾌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읽기를 통해서 사유가 넓어지고 정신이 고요해지고 친구를 만나게되고 삶의 방향이 찾아지게 된다면 쓰기를 통해서 용기를 내게되고 밥값을 하게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자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수행이자 포교다. 명상도 읽기와 쓰기가 바탕이 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승가는 서로 협력하고 탁마하는 집단이지 서로 경쟁하는 집단이 아니다. 수행자들이 협력하고 탁마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승려노후복지가 될 수 있다.사막같은 세상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승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