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평화 선언은 '전법포기 선언'이 아니다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
―21세기 아쇼카 선언’(초안)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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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쇼카 선언’(이하 종교평화 선언)이 발표된지도 2달이 가까워 갑니다. 그동안 이 선언에 대해서 많은 분들의 찬탄과 우려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 선언이 나오자마자 일간지들은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불교의 역할을 자임하는 선언’이라고 환영하였고 교구본사주지스님들도 ‘종교평화선언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응스님, 마성스님 그리고 다음 블로거인 진흙속의 연꽃님 등은 ‘전법포기 선언’ ‘정치적인 타협’ ‘불교계에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이 거세게 일자 화쟁위원회는 토론회를 개최(9월 19일)했고 ‘설명 자료집’을 전국 사찰에 보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화쟁위원회가 과감하게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 사상적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나의 종교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의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둘째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돼 있다는 연기법의 해석 때문입니다. 셋째는 모든 종교인들은 평화와 행복이라는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3가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종교평화 선언에 대한 감상을 적어볼까 합니다.
현재 다종교의 한국사회는 종교 간에 반목과 대립이 날로 심해져서 부부사이, 형제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친구사이에 종교 갈등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종교간 이해와 대화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의식 있는 종교인들은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종교 간의 갈등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간의 대화와 상호 존중의 자세가 절실해지고 있는 이때에 불교계에서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이 나온 것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한 것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 적절한 선언이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상대방 종교의 고유한 교리, 독특한 종교행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상대방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라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 종교의 공통성을 강조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 하지만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라는 선언은 ‘종교평화 선언’을 넘어서 ‘종교통합 선언’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주장을 하기 전에 마땅히 상대방 종교가 왜 진리인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략하고 주장만 하고 있기에 이 주장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추측 혹은 희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 종교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사실 첫 번 째로 지적한 ‘나의 종교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의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상적 배경은 연기법입니다. 잘못 적용된 연기법입니다. 연기적 세계관으로 볼 때 ‘남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나아가 ‘남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해석에서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라는 선언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약은 ‘종교평화 선언 설명 자료집’에서도 나타납니다. 성철스님의 법문을 인용하여 열린 진리관을 옹호하고 나서는 ‘실상의 자리에서 보면 유가와 도가, 불교와 기독교가 아무 차별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철스님의 법문 내용은 깨달은 분상에서 보면 노자, 공자, 석가, 예수라는 ‘존재’들이 차별 없다는 것을 설명한 것인데 ‘자료집’은 유교, 도교, 불교, 기독교의 ‘교리’가 차별이 없다고 설명 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문에서 나타나는 연기법은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의 진리를 보여주는 연기법이 아니라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대승의 연기법입니다.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는 평등의 입장에서는 다른 모든 종교인들 즉, 유일신을 믿는 자, 운명론자, 허무론 자, 인과 부정론 자등도 불성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들 모두는 평등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평등한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인연의 차이일 뿐입니다. 각자의 다른 인연이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이며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우리의 '종교'가 서로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인연의 차이일 뿐입니다. 각 '종교'가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이며 아름다움입니다.’라는 의미로 바뀐다면 매우 위험한 비약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바른 견해, 바른 정진 등의 가르침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깨달음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진리이며 평등하지만 깨달음의 입장에서도 사상이나 종교의 교리가 평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은 존중 하셨지만 삿된 견해는 꾸짖고 비판하셨습니다.
선언문에서는 모든 종교가 길은 다르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와 안락을 얻고자 하듯이 이웃종교인들도 그들이 믿는 종교를 통해 평화와 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길은 다르지만 우리가 이르고자 원하는 바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평화와 행복을 추구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은 종교인들은 물론 무종교인들까지도 동의하는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길은 다르지만 모두 정상에서 만나듯이 종교마다 가는 길은 달라도 궁극의 경지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 종교들이 자신들의 정상을 하나님, 궁극적 실재, 지복, 진리, 열반으로 부르는 것이 정말 같은 경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단언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행복이라는 의미도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행복, 천상에 태어나는 행복, 믿음의 행복, 가르침을 이해한 행복, 삼매의 행복, 예류과의 행복, 일래과의 행복, 불환과의 행복, 아라한의 행복등 다양한 수준의 행복이 있습니다. 만약 세밀한 비교 없이 평화와 행복이라는 단어가 같다고 해서 각 종교의 목적이 같다고 한다면 이 문제도 이야기하는 사람의 추측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이상 3가지 이유를 들어 선언문에서 왜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라는 표현을 하게 된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전법과 전교의 원칙’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이 선언은 전혀 전법포기 선언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전법의 기준이 불교나 사찰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 다른 종교인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 해주게 되었을 때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이것을 계기로 그 사람을 불자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면서 전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하신 전도선언의 의미입니다. 저는 '종교평화 선언'에서 인용된 '아소까 칙령'의 내용은 ‘민주주의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자유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을 자유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적 영역의 종교 활동은 민주적 이념과 시민적 상식과 부합돼야 합니다.’라는 민주주의 사상과 가장 가깝다고 봅니다. 각 종교인들이 각 종교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호존중 하는 민주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개종을 시키겠다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상대방의 행복’ 을 위해서 각자의 가르침을 전한다면 충분히 종교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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