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

지루한 해제법어

후박나무 (허정) 2011. 8. 10. 08:07

 

 해인사에 주석하고 계신 조계종 종정 스님의 해제 법어가 나왔다.

 다음은 해제법어의 전문이다. 종정스님의 법문에 대한 느낌을 말해보려한다.

 

 

사자후에 뇌(腦)가 찢어지도다

 

섭현귀성(葉縣歸省) 선사에게 분양선소(汾陽善昭) 선사가 절을 하자 이에 물었습니다.
“그대는 조금 전에 어떤 도리를 알아차렸기에 나에게 절을 올렸는가?”
“그것은 제가 바로 본분의 목숨을 던진 경계였습니다.
뒷날 이 말을 전해들은 경산지우(徑山智愚) 선사는 법상에서 주장자를 세우고 말했습니다.
“봉황은 봉황을 낳고 사자는 사자를 낳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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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나의 법문이 끝난다.

 

 


‘사자후’에 대하여 <증도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자후무외설(獅子吼無畏說)이여
백수문지개뇌열(百獸聞之皆腦裂)이로다
사자의 포효처럼 두려운 상대가 없는 말씀이여!
모든 짐승이 듣고서 하나같이 뇌가 갈가리 찢어지노라.

영가현각 선사의 이 법문을 듣는 순간 이것은 이미 뇌가 갈가리 찢겨지는 일입니다. 이것일까 저것일까 하고 분별한다면 그 순간 여우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갖가지 삿된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자의 몸에서 생긴 벌레가 사자살을 파먹듯이 내 마음 속에 작은 망상은 점점 커져 결국 나를 잡아먹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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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영가대사의 법문을 인용하신다. 앞의 법문과 연결점이 없다.

그리고 대뜸 이 영가스님의 법문을 듣는 순간 이미 뇌가 찢긴다고 한다.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으면 모든 짐승들이 두려워 떤다는 사실을 영가스님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뇌가 찢긴다'고 표현했는데 종정스님은  수행자들이 이 법문을 들으면 뇌가 찢긴다고 하고 한다. 이유는 뒤에 등장한다. "이것일까 저것일까 하고 분별한다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분별하는 것은 삿된 견해를 일으키는 것이고, 삿된 견해는 사자의 몸에서 생긴 벌레여서 결국 나를 잡아먹고 만다는 것이다.

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영가현각스님이 비유로 든 법문을 인용하여 이 법문을 듣는 순간 뇌가 갈가리 찢겨진다는 충격적인 말을 먼저 하시는가? 이 법문의 내용은 "화두를 분별해서 알려고 하면 그르친다"는 말인데 ....

이런 표현은 충격요법이라해도 불친절하고 과장되다. 

선사들은 이렇게 충격적인 언어 사용을 즐겨하는데....앞으로도 계속 주장자를 치고 이런 선어록을 인용해야만 하나?  이 표현을 신문기자도 제목으로 뽑았다. <사자후에 뇌(腦)가 찢어지도다>라고.

선사나 기자들은 충격적인 표현을  좋아하나보다.

이런 표현을 자주 접하는 대한민국 불자들은 일반적인 언어표현으로 된 법문은 시시하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납자가 법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들을 수 있다면 헛소리도 사자후가 될 것이요, 납자가 탐욕에 물든 견해로써 법을 듣는다면 설사 사자후라고 할지라도 여우 울음소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덕산 선사는 누구라도 문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렀고, 임제 선사는 학인이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내질렀습니다. 이런 사자후도 눈 어두운 자들은 여우 울음소리로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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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가 탐욕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법을 들으면 사자후도 번뇌가 된다. 그렇다면 번뇌가 될는 줄도 모르고 주장자를 두드리고 할을 하는 조실 방장 스님들은 어리석은 사람인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그리고 해마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법문을 되풀이하는 것이 과연 사자후일까?   

 

 

 

그래서 선지식들은 보리심(菩提心)이 대사자후(大獅子吼)요, 대비심(大悲心)이 대사자후(大獅子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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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맥도 대뜸이다. 보리심과 대자비, 이것이 진정한 사자후 란다.

만약 보리심(菩提心)이 무엇이고 대비심(大悲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하실까?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서 이번 철에 수행자들이 어떤 실천을 하였는가?

지혜와 자비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가를 이제 세상에 나아가는 수행자들에게 해제법문으로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세상에 나아가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방법을 법문해 주시면 해제법문이 더 신선하고 빛나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일방적인 법문보다는 "인터뷰 형식"의 해제 법문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신묘년 하안거 한 철 동안 정진한 힘은 해제 이후 경계를 만났을 때, 과연 사자후가 나오는지 여우 목소리가 나오는지 만행길 위에서 스스로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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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하면 스님들은 세상에 나아가 여기저기 행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살피는 수행자라면 해제후 세상에 나가서 경계를 만나야만 자신이 사자인지 여우인지 알수 있을까?

자신이 머문 선방에서 자신은 동료수행자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다른 대중을 위해서 어떤 배려를 하였고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

소욕지족으로 살아가는 수행자로서 어떤 물건들을 청구해서 사용 했는지? 

해제비에 마음을 쓰느라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핸드폰등 전자기기를 선방에서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공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도반이 한명이라고 있었는지?

 

 

방장스님 입장에서는

이번 철에 방부드린 대중은 각각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대중들이 각각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를 한번이라도 점검을 하셨는지?

대중들이 간식꺼리로 무엇을 사다가 먹는지?

대중의 공부점검을 위해서 선원에 몇번이나 다녀 가셨는지?

하루의 이번철 대중이 해제비를 얼마를 타가는 가를 알고 계신지?

대중들이 그 해제비 때문에 대중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문제들에 얼마나 관심을 두시고 계신지 묻고싶다.

 

또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여우 아니면 사자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의 폭력성과 위험성이다.

수행자는 아직 깨닫지 못했기에 분별심이 있고 탐진치가 있다. 그런데 이 법문에 의하면 이런 수행자들은 모두 '여우'에 속한다. 올해 선방에서 2187명이 수행하였는데 이들 중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가 있다는 소식이 없으니

결국 이 번철에도 2187명의 여우가 있는 셈이다.

부처님은 점진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수행계위로 4향4과를 말씀하시고 이들은 모두 성인들이라고 설명하신다.

이 밖에도 믿음을 성취한자, 가르침을 성취한 자, 가르침을 따르는 자등등 많은 공부단계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선사들의 법문은 '도' 아니면 '모'다.  수행의 정도를 인정해 주는 가르침이어야지 깨닫지 못했으니 모두 여우의 무리들이다.라는 가르침은 수행자를 비하 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10가지 족쇄의 유무에 따라 수행계위를 나누고 자신과 남을 점검해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사자아(獅子兒)는 등공반척(騰空返擲)하고
준요자(俊鷂子)는 불연구과(不戀舊窠)로다
사자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가 몸을 되돌려 던지고
날쌘 매는 해묵은 보금자리를 그리워하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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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스스로가 위에서 질문한 일상생활을 챙기지 않고 "사자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가 몸을 되돌려 던진다"는 법문이 수행자들에게 어떤 소용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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