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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이해'를 읽고

후박나무 (허정) 2010. 9. 24. 09:34

 

[초기불교 이해]를 읽고

 

 

 

 

  각묵스님이 유학을 떠난지 20년만에 드디어 빠알리 경전을 토대로 한 초기 불교 개론서인 [초기불교 이해]라는 책을 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니까야와 주석서를 토태로 해서 한국 사람이 지은 최초의 초기불교 개론서이다. 저자는 이미 디가니까야, 아비담마 길라잡이 등을 번역하였고 올해 다시 상윳따니까야를 번역하고 그 번역과 그 주해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기존의 한문경전을 토대로 나온 불교 개론서에서 애매모호한 설명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오랜 가뭄 끝에 만나는 단비의 시원함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불교를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있다.

저자는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p82라고 설명하면서 불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5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여실지견 하게 되면 그 법들의 무상 고 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서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고(이욕) 그래서 해탈 열반을 실현하게 된다.”p81


이처럼 수행방법을 간단하고 정확하게 여실지견-염오-이욕-소멸-해탈-해탈지견등의 설해진 말씀은 주석서를 통해서 더욱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에 아래와 같은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다.


무슨 목적 경 (A10:1)

“아난다여, 이와 같이 유익한 계들의 목적과 이익은 후회 없음이다. 후회 없음의 목적과 이익은 환희다. 환희의 목적과 이익은 희열이다. 희열의 목적과 이익은 고요함이다. 고요함의 목적과 이익은 행복이다. 행복의 목적과 이익은 삼매이다. 삼매의 목적과 이익은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이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목적과 이익은 염오와 이욕이다. 염오와 이욕의 목적과 이익은 구경해탈지이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유익한 계들은 점점 으뜸으로 나아간다.”

[주석서 설명] “삼매의 목적과 이익은 있는 그대로 알고 봄(여실지견)이다.’등에서 여실지견은 얕은 위빠사나이고 염오(nibbinda)란 강한 위빠사나를, 탐욕의 빛바램이란 도(magga)를, 해탈은 아라한과를, 지견은 반조의 지혜를 말한다. 으뜸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아라한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p142

“강한 위빠사나란 10가지 위빠사나 지혜 가운데 ④공포의 지혜 ⑤ 위험을 관찰하는 지혜⑦해탈하기를 원하는 지혜 ⑨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의 4가지 지혜 이다.”p140


경에서 계-삼매-여실지견-염오-이욕-해탈 등의 순서로 설명하는 의미를 주석서에서 수행과정에 있는 수행자에게 나타나는 심리현상임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 이외에도 이 책에는 불교사전보다 더 자세한 불교용어와 교리에 대한 설명이 수두룩하다. 상카라의 의미를 5가지 정의p127, 심의식의 공통점과 차이점p130, 12연기 각각의 구성요소에 대한 설명p240, 삼세양중인과의 설명p253,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일어나게 하는 자양분에 대한 설명p354 등 기본교리들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이러한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도 보인다. 그것은 오취온고의 설명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오취온고를 행고성의 의미로 보고 3가지로 표현 하고 있다.


‘①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p94

‘② 행고성:오온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나'라거나 '내것'으로 취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다.’p95

‘③ 행고: 평온한 느낌이나 모든 형성된 것은 생멸의 현상에 지배되기 때문에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p96


 위 3가지 설명은 저자가 같은 책에서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 오취온에 대한 해석이다. 이전에 저자는 취온을 ‘나등으로 취착하는 무더기’라고 번역하다가 현재는 청정도론에 의거하여 취온을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라고 번역하고 있다. 문제는 ①번처럼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해석은 중생의 오온은 물론 아라한의 오온까지 괴로움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오온과 오취온의 차이’p158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무더기 경]에서는 취온을 ‘번뇌와 함께하고 취착되기 마련인 것을 일러 취온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아라한의 오온도 오취온이 되는가? 주석서에서는 “아비담마에 의하면 물질은 반드시 번뇌와 취착의 대상이 된다.”p160 “세간적인 아라한의 수상행식도 취온이 된다. 왜? 이런 상태의 아라한의 수상행식은 남들의 취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p161라고 설명하면서 열반에 들어간 아라한의 4온 이외에 모든 오온은 취착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라한의 몸이나 수상행식이 중생에게 대상이 될 때에는 모두 취온이 되어 중생에게 취착의 대상이 된 아라한의 오온 그 자체가 괴로움이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남들의 취착의 대상이 되는 아라한의 오온은 ‘취온’이고 ‘취온’은 취착의 대상(upādānagocarā)이라는 뜻이므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라고 번역한다. 그리하여 ‘취온고’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해석한다.

 

여기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라한이 자신의 오온을 취착한다면 모를까 단지 남들이 아라한을 취착하는 것인데, 어떻게 취착의 대상이 된다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해석 한단 말인가? 예를 들어 범부가 책상이라는 대상을 취착하면 책상 그 자체가 괴로운 것인가? 아니면 취착하는 내가 괴로운 것인가? 정상적인 상식으로는 취착의 대상인 책상 그 자체가 괴로움 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가 이해하는 4성제는 12연기의 수-애-취의 관계를 설명 한 것이라고 본다. 

느낌은 살아있는 자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법이다. 이 다양한 느낌에 갈애를 일으키는 것이 고의 원인(고집성제)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며 이 갈애가 취착으로 발전 결과가 고(고성제)인 것이다. 취착이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교리에 대한 취착의 4가지로 이렇게 5온(12처 18계)을 4가지로 취착하는 그 상태가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취온고의 설명이다.  이러한 4가지 취착은 탐욕과 사견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 사견과 탐욕을 가진 사람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오취온고의 의미라고 본다. 그러므로 ①번처럼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설명 보다는 ②번처럼 “요컨대 오온을 '나'라거나 '내것'으로 취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러한 오취온고의 해석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면서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진아니 대아니 하는 대답이 나오는 한 그것은 불교가 아니다. 불자라면 나는 누구인가에 서슴없이 오온이라고 답할 줄 알아야 한다.”p155 라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실정에서 참나, 진아, 불성등의 용어들이 아트만 처럼 영원한 실체를 상정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 하지만 그러한 아이디어와 용어들이 대승경전들과 선어록에서 연유한 것이라면 불자들에 대한 비판보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대승경전에서 왜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였는가를 살펴보고 그런 용어들이 과연 무아사상과 어긋나는가? 혹은 같은가? 하는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초기불교가 한국에 급속히 뿌리내리면서 중도는 8정도라고 인정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이다."p380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간화선과 오근 오력’p344 이라는 제목으로 간호선의 세 가지 필수 요소인 대신근, 대분지, 대의정과 오근 오력의 비교하여 간화선이 초기불교의 수행법과 다르지 않음을 밝히어 내고 있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에서 사용하는 참나, 진아도 초기불교의 연기, 무아와 서로 상통하는 점을 드러낸다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상호 보완 관계로 서로가 조화롭게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간화선 수행자들에게도 초기불교의 “열 가지 족쇄를 푼 정도에 따라서 4가지 부류의 성자로 나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의 수행정도를 점검하고 선지식들을 판단하는 요긴한 수단’이 되고 있다며 환영하고 있다.

선어록을 중요시하고 직관만을 강조해온 우리의 선 전통을 초기불교는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과 해체의 초기불교는 간화선 수행방법의 체계화에 도움이 되고, 8정도라는 종합적인 수행문화를 형성시키며, 경전 읽는 문화를 정착시켜서 대화와 토론문화를 되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초기불교 이해]는 가장 정확하게 불교를 설명하는 불교입문서가 되어 그 흐름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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