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

소공경 M.121

후박나무 (허정) 2008. 12. 5. 10:41

121. 공(空)에 관한 작은 경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의 뿝빠라마에 있는 미가라마뚜 강당에 계셨다.


2. 그 때에 존자 아난다가 아침 일찍 홀로 명상하다가 일어나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 앉았다. 한 쪽으로 물러 앉은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3. [아난다]“세존이시여, 한 때에 세존께서는 싸끼야 국, 나가라까라는 이름의 싸끼야 족의 마을에 계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곳에서 저는 ‘아난다여, 나는 요즈음 자주 공에 든다.’라고 세존의 앞에서 직접 듣고 세존의 앞에서 직접 배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올바로 듣고 올바로 파악하고 올바로 정신을 기울여 올바로 기억한 것입니까?”


4. [세존]“아난다여, 그렇다. 그대는 그것을 올바로 듣고 올바로 파악하고 올바로 정신을 기울여 잘 기억한 것이다. 아난다여, 이전에도 지금도 나는 자주 공에 든다. 예를 들면 이 미가라마뚜 강당과 같다. 이 미가라마뚜 강당에는 코끼리들, 소들, 말들, 암말들이 공하고 금이나 은도 공하고 여자나 남자들의 모임도 공하다. 그러나 단지 공하지 않은 것(不空)이 있다. 즉, 수행승들의 참모임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


5. 그와 마찬가지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마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사람들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숲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숲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마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사람들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단지 이러한 고뇌가 있다. 즉, 숲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마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사람들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숲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6.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사람들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숲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땅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땅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예를 들어, 아난다여, 소의 가죽을 백 개의 막대기로 주름이  없이 잘펴는 것과 같이, 아난다여, 마치 이와 같이 수행승은 이 땅위에 있는 평지와 패인 곳, 하천과 골짜기, 그루터기와 가시덤불, 산과 구릉 그 모든 것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땅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땅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사람들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숲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땅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사람들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숲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땅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7.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숲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땅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숲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땅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숲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땅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8.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땅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땅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땅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9.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10.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11.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해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어떠한 고뇌도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며, ‘이 지각의 세계는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지금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12. 그런데 또한 아난다여, 어떤 수행승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고,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한 지각 하나만을 조건으로 정신을 기울인다. 그의 마음은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한 지각에 뛰어들어 그것을 신뢰하고 정립하고 결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 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도 조건지어진 것으로서 사유된 것이다. 이 조건지어진 것으로서 사유된 것은 무상하고 괴멸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또한 이와 같이 보아서 그 마음이 욕망의 번뇌에서 해탈되고 존재의 번뇌에서 해탈되고 무명의 번뇌에서 해탈된다. 해탈되면 그에게 ‘나는 해탈했다.’는 앎이 생겨난다. 그는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는 일이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욕망의 번뇌를 조건으로 고뇌가 있지만, 여기에는 없다. 존재의 번뇌를 조건으로 고뇌가 있지만, 여기에는 없다. 무명의 번뇌를 조건으로 고뇌가 있지만, 여기에는 없다. 그러나 유일한 고뇌가 있다. 즉, 생명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각 영역을 지닌 몸 그 자체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욕망의 번뇌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고, ‘이 지각의 세계는 존재의 번뇌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고, ‘이 지각의 세계는 무명의 번뇌에 관하여 공하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생명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각 영역을 지닌 몸 그 자체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13. 그래서 아난다여, 과거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하였다고 한다면, 그들은 모두 이와 같은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한 것이다. 아난다여, 미래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한다면, 그들은 모두 이와 같은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현세의 어떠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한다고 해도, 그들은 모두 이와 같은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나도 이와 같은 구경의 위없이 청정한 공을 성취하리라’라고 배워야 한다.


14.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존자 아난다는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만족하여 기뻐했다.

 

[맛지마니까야] 제 5권

121. 공에 대한 작은 경. 45쪽 - 53쪽

전재성역저. 한국 빠알리성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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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경을 설명해 봅니다.

 

1.숲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현현한 것으로 나타난다.

Evampissa esā, ānanda, yathābhuccā avipallatthā parisuddhā suññatāvakkanti bhavati.

 

2.땅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라고 분명히 안다.

 

3.무한한 공간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4.무한한 의식의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5.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6.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7.인상 없는 마음의 삼매에 대한 지각을 조건으로 하는 유일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8.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욕망의 번뇌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고,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존재의 번뇌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알고, 그는 이 지각의 세계는 무명의 번뇌에 관하여 공하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생명을 조건으로 여섯 가지 감각 영역을 지닌 몸 그 자체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하고 [구경의 위없는(전재성거사와 각묵스님은 이 단어를 생략했는데 이 단어는 최상의 경지를 표현하기 위해 여기에 1번 등장함)]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

.Evampissa esā, ānanda, yathābhuccā avipallatthā parisuddhā paramānuttarā suññatāvakkanti bhavati.

 

 

1번부터 7번 까지는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한 공이 나타나고 8번에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가 공한 경지는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하고 구경의 위없는 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공은 이전단계의 명상주제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다가 마지막은 3가지 번뇌없음에 이르러 구경의 위없는 공성(paramānuttarā suññatā)’이라고 부르며 아난다에게 그런 공에 머물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을 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으므로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라는 문장도 위에 1~8번과 같이 8번 등장합니다.

공을 말하더라도 단계적인 공을 말하다가 마지막으로 형용사 paramānuttarā를 붙여 궁극의 공을 말합니다. 이처럼 공의 의미보다 앞에 형용사가 어떤 것이 붙느냐애 따라 공의 경지가 달라지므로 우리는 단어의 문맥을 살펴서 공을 이해하여야 할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수행의 경지를 모두 거기에 없는 것(), 있는 것(hoti,atthi)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수행의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지침서가 된다는 점에서 친절하고 지혜로운 설명이라고 봅니다. 수행의 상태는 ~~이 아닌 것, ~~이 없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은 매우 유용하고 친절하고 명확해서 2600년이 지난 지금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해없이 이해 할 수 있게 합니다.

 

수다원을 유신견이 없는 상태, 사성제에서 깨달음을 갈애가 없는 상태, 12연기에서는 무명이 없는 것, 10가지 족쇄가 없는 것, 탐진치가 없는 것이란 표현들이 모두 ‘~~이 없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단리망연즉여여불(但離妄緣卽如如佛), 단진범정 별무성해(但盡凡情 別無聖解)라는 말처럼 ‘~~이 없는 것이란 표현은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번뇌가 있나없나 탐욕이 있나없나는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법은 스승의 인가가 불필요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인가를 받았는데 스승답지 못하거나 탐욕이 보인다면 다시 10가지 족쇄를 기준으로 판단 해야합니다. 인가받았다고 스승답지 못하는 행위를 하는데도 침묵하고 있는 것은 서로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위 소공경에서 보듯이 공에 머무는 것은 8가지 공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해탈이란 단어처럼 부처님은 공을 여러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계십니다. 공이 나누어지는 데에는 앞에 어떤 주어와 형용사가 오느냐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공에 머문다 할때는 삼매에 머무는 것으로, 멸진정에 머무는 것으로, 탐진치 없음에 머무는 것으로 다양하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위없는 공에 머무는 것은 정각자의 머무름으로 한정되고요. 이렇게 문장 전체를 보고 공을 판단하는 것이 초기경의 공이라면 대승에서는 주어도 형용사도 없는 공을 말하고 있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무아경에서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samanupassituṃ)이 타당하겠는가?”라고 묻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온이 부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가 부정되고 있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것, 견해, 착각, 고정관념, 번뇌가 부정되고 있습니다.

 

[세존] "띳싸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띳싸여, 이와 같이 물질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욕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열정을 떠나고, 갈애를 떠났다면 그 물질이 변괴하여 변이해도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다.“.(S22:85)

 

 

오온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自性).’라고 보는 것(견해)이 없다(공하다)는 것이 五蘊自性皆空의 뜻입니다. 이말이 정확하게 오온에는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五蘊皆空으로 번역해서 오온이 없다(공하다)’라고 번역하면 혼란 스럽습니다. “왜 여기 오온이 있는데 없다고 하지?” “! 이 공()은 없다는 뜻이 아니고 더 심오한 뜻이 있겠구나!” 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합니다. 뒤에 무고집멸도 무무명 역무무명진으로 이어지는 법공(法空)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반야경이 등장하는 시기에는 필요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거추장스러운 표현들로서 불교를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단어(pada)와 문장들(byañjana)이 잘못 구성될 때 뜻(attho)도 바르게 전달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법이 정법(saddhamma)을 어지럽히고 사라지게 한다," 어지럽힘 경 (A2:2O)

 

부처님은 ~~이 아닌 것, ~~이 없는 것이란 평범한 표현으로 삼매도 설명하고, 공도 설명하고, 중도도 설명하고, 깨달음, 해탈 열반도 설명하시면서 당신의 법은 잘 설해졌다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자등명 법등명하라는 유훈도 주셨습니다.

 

제가 五蘊皆空五蘊自性皆空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하고, 더 나아가서 반야심경무아경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천장암 주지소임을 살 때 한동안 무아경을 반야심경 대신 봉독했는데 불자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전재성님이 번역한 이것은 그에게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고 청정하고 [구경의 위없는] 공이 현현된 것으로 나타난다.”에서 구경의 위없는 공성(paramānuttarā suññatā)’이 생략되었는데 각묵스님 번역본도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pts본이나 수따센트럴(https://suttacentral.net/mn121/en/sujato)에는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타니싸로 비구와 일본어 번역본은 생략하지 않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There is this.' And so this, his entry into emptiness, accords with actuality, is undistorted in meaning, pure superior & unsurpassed.

 

このようににこの如実不顛倒清浄最上にして無上空性顕現こ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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